이혼 후 무림세가 데릴사위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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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거암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8.23 15:21
최근연재일 :
2024.09.09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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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9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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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DUMMY

역시나 계셨구나.

소교주에게 격체전력을 해주던 도중 들려왔던 목소리를 잊을 수 없었다.


-감히 끼어들지 말고 지켜보게.


처음에는 환청인줄 알았다.

너무나 그리워서 나도 모르게 떠올린건줄 알았다.


허나 이렇게 내 앞에 서있으시다는걸 알게되니, 나는 사무치는 감정에 눈시울이 붉어질 뻔했다.


"아직 널 제자로 받는다고 하지는 않았네만."

"아, 그걸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대천마신교의 일원로, 신선검마(神仙劒魔) 대협을 뵙습니다."

"쯧. 아이다운 모습은 정말 하나도 없는 아이인고."


스승님은 그리 말하시고는 나를 지나쳐 소교주에게 다가갔다.


"소교주님, 대업을 얻으셨군요. 경하드립니다."

"ㄱ, 감사해요 일원로."


소교주는 스승님이 어려운지 떨떠름한 반응으로 말을 받았다.

그런 그녀를 보며 스승님은 온화한 목소리로 물으셨다.


"죄송합니다만 혹시 소교주님의 배동을 잠시 데려가도 괜찮으시겠습니까?"


스승님의 말에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드디어 스승님과 대화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감격스러웠기 때문이다.


"..."


허나 천세아는 답지않게 입을 다물었다.

내 쪽을 힐끔힐끔 쳐다보던 그녀는 이내 결심한 듯, 주먹을 꽉 쥐며 답했다.


"제가 이제 막 배동을 만나서요. 대화도 제대로 하지 못했어요."


거절을 담은 말이었다.


"!?"


나는 당황하며 천세아와 스승님 쪽을 번갈아 바라봤다.

아니, 방금 전까지 그렇게 소심했던 아이가?


"..."


스승님은 소교주의 거절에 순간 멈칫하시더니, 이내 흐뭇하게 미소지으시며 대소를 터뜨리셨다.


"허허허! 그러셨군요. 송구합니다 소교주님."

"아니에요."

"그럼 저는 나중에 돌아오겠습니다."

"죄송해요 일원로."

"늙은이에게 남아도는건 시간 뿐이니, 그런 말 마십시오."


아니다.

스승님의 시간이 얼마나 남은지 알고있는 내 입장에서는 일분일초가 아까웠다.


'아니, 이게 아닌데!?'


"나중에 보자꾸나. 네 주인을 잘 모셔라."


그렇게 말씀하신 스승님은 이내 순식간에 전각을 빠져나와 기척을 감추셨다.

과연 신선검마 다우시다. 진짜 신선도 저렇게 움직이지는 못하겠는...아니, 그게 아니라.


"소교주님?"

"이름이..백유강이라고 했지?"


갑작스레 무언가가 바뀐 소교주의 모습에 나 또한 평정을 되찾고는 예를 갖췄다.


"네.."

"내 배동이라고 했고?"

"분에 맞지않지만 그렇습니다."

"그렇구나. 잘 부탁해?"


그녀는 웃으면서 나에게 손을 뻗었다.

나는 웃고있는 그녀의 미소에 섬뜻함을 느끼며 두 손으로 그녀의 손을 잡았다.


뭔가...잘못 걸린 것 같다.

하지만 계획을 수정하기에도 이미 늦은 뒤였다.


**


결국, 조금 늦은 밤까지 천세아의 질문공세를 받아준 나는 기가 빠진채로 소마전으로 돌아가고 있다.


'저리 밝은 성격일줄은 몰랐는데.'


어렸을 적이니 커가며 성격이 달라지긴 하겠지만, 오늘 본 그녀의 두 성격은 도저히 내가 아는 사람이 맞는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소심함과 밝음.

내가 아는 천세아라는 여인과는 연이 없다 못해 다른 세상에 있는 것 같은 성격들이었는데 말이지.


덕분에 그 여자아이를 어떻게 대해야하는지 감도 안잡혔다.

분명히 복수의 대상인데, 머리 속에는 다른 사람으로 인식해버리니까 말이다.


'그래도 마음을 바꿀 일은 없다.'


내가 겪은 일은 전부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즉, 언제가 됐든 천세아는 내가 아는 소교주가 되어버린다.


복수의 대상이라는건 마찬가지다.

...그 빌어먹을 여자를 다시 떠올리니 더 막막해지네.


어째, 내 인생은 이렇게 힘들기만 하냐.


"하아..."

"본교의 작은 하늘을 뵙고왔는데도 한숨을 쉬다니, 불경한 아이로고?"

"!!?"


난 급하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오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소교주께서 하실 말씀이 많으셨나보구나. 이 시간까지 처음 보는 아이와 같이 계셨던걸 보면."

"검마님을 뵙습ㄴ..."

"되었다."


스승님은 손을 올려 내 말을 막으시고는 소마전 구석의 나무에 기대 앉으셨다.


"잠깐만 기다려주세요. 의자 가져올테니까."

"됐다. 가끔은 흙바닥에서 앉아있는 것도 나쁘지 않으니."

"그런가요?"


내가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한 표정을 짓고있자, 스승님은 껄껄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어리긴 어리구나. 자연을 느낄 줄 모르다니."


어리다는 말에 나는 자연히 미소를 지었다.

안에 들어있는 놈은 이립이지만 스승님의 앞에서는 조금 어려도 되지 않을까.


"네가 소교주님을 바꿨구나."

"소교주께서 스스로 바뀌신거죠."

"하지만 그 계기를 만들어준건 너지."


이 이상 겸손을 떠는 것도 좋지 않았다.

내가 입을 다물고 스승님을 바라보자 스승님은 피식 웃으시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깐 이리 와보거라."

"예."


내가 가까이 다가오자, 스승님은 내 중단전에 손을 대셨다.

시원한 산들바람같은 내공이 중단전을 횡단하여 하단전까지 도달했다.


"극양지체라고는 해도 소교주님에게 너의 양기를 건네준건 악수였다. 실패했다가는 둘 다 주화입마였어."

"성공할 자신이 있었기에 행한 것입니다."

"광오(狂傲)하구나."

"자신감이지요."


한마디도 지지않는 내 모습에 스승님은 인상을 쓰셨다.


"고얀놈."

"스승되실 분께 잘보이고 싶은 제자의 마음을 어찌 몰라주십니까."

"뭐라는거냐. 나는 겸손한 아해를 좋아한다."

"그 이상으로 재능있는 아해를 좋아하시죠."

"하아...한 마디를 안지는구나. 백유강이라 했지?"


스승님은 자리에 앉은 채로 조금 기운을 꺼내드셨다.


"왜 너는 내 제자가 되길 원한게냐?"

"..."

"교주님께서 내리신 청이라면 대장로나 대호법, 혹은 교주님께 직접 가르침을 하사받는 것도 가능했다. 교주가 들어주는 청이란 그런 것이니까 말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대장로, 진천패검(震天霸劍) 황혁준

대호법, 마존(魔尊) 단목린

게다가 교주까지.


현 마교에서 가장 강한 세 명이다.

허나, 나는 그들따위 안중에도 들어오지 않았다.


나의 스승님은 단 한 분 뿐이다.

설령 시간을 거슬러 돌아온 현재까지도 그건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


이유라 할 것도 없다.


그가 나의 두 번째 아버지였으니까.

천마신교에서 마영대를 제외하면 유일하게 나를 대하는 마음이 진심이셨던 분이시니까.


-미안하구나 강아...난, 선택하지 못했다...그 무엇도 선택하지 못했어...


임종 직전까지 스승님은 나에게 죄책감을 품고계셨다.

그 당시의 나는 그 분이 왜 이렇게 미안해하시는지 잘 몰랐다.


허나, 삶을 끝내고 다시 돌아온 지금은 안다.


그 분께서는 천마신교와 제자 중, 어느것도 선택하지 못하고 괴로워하셨다.


제자의 희생을 최대한 늦췄지만, 천마신교의 대의를 위해 희생 자체를 막지는 않으셨다.

그 부분이 원망스럽냐고 묻는다면...전혀.


-강아...도..


스승님은 당신의 숨이 끊어지는 마지막 순간에 결국, 천마신교가 아닌 제자인 나를 택하셨으니까.

그러나 나는 스승님의 마지막 말을 '도망'이 아닌 '도륙'이라고 왜곡했다.


결국, 나는 스승님의 마지막 말조차도 제대로 실현해드리지 못한 못난 제자였다.

허나...그럼에도 조금만 욕심을 부려보고 싶어졌다.


"검마님이시니까요."

"..."

"그외에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나는 그리 말하고는 돌바닥에서 무릎을 꿇었다.


"신선검마시여."


당신은 눈을 먼 나에게 풍경을 선물해줬다.


"제가 스승으로 모실 분이시여."


당신이 나에게 인의를 알게 해줬다.

사람의 온기가 무엇인지, 왜 세상을 살아가야하는지 알려줬다.


비 오는 날, 수련을 하다 지쳐 잠든 내가 고뿔에 걸리지 않도록 침상에 옮겨주셨다.

전쟁을 치르고 돌아온 나에게 따스한 밥을 직접 차려주셨다. 천마신교의 일원로나 되시는 분이 말이다.


그 밥상의 따스함이 여전히 선명하다.

넓은 등에서 잠들어갈 때의 온기를 기억한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은가?

내가 이분을 스승으로 삼는 이유로 말이다.


"스승으로 모시려 합니다. 부디, 내치지 말아주십시오."


스승님은 찰나의 순간, 심연에 발을 담글 정도로 깊게 고민하시는 듯 했다.


"···의아하구나."

"..."

"난 분명 너를 처음 본 것일지언데, 너는 왜 나를 그리 여기는게냐?"


무슨 뜻인걸까.

무엇을 깨달으시고 그리 말씀하시는걸까.


"...하나만 묻겠다."

"하명하십시오."

"너는 어떤 길(道)을 걷고 싶느냐. 백도(白道)이더냐, 흑도(黑道)이더냐, 마도(魔道)이더냐?"


스승님의 질문에 나는 담담하게 답했다.


"모르겠습니다."

"모른다?"

"예. 그러니, 제가 걸을 길을 찾기 위해 일단 나아가보려합니다. 삶이란 수십개의 길중 하나를 선택해서 걷는 것 아니겠습니까."


스승님은 내 말에 잠시간 말을 잃으셨다.

잠시간의 침묵 끝에 스승님은 다시 입을 여셨다.


"...구배지례는 받지 않겠다."

"!!"


구배지례.

무림에서 제자가 스승에게 제자가 되길 허락받았을 때 자신의 모든 예를 갖추어 아홉 번 절하는걸 말한다.


스승님은 그런 허례허식은 치우고 바로 제자로 받겠다고 말하신 것이다.


"내일 인시(寅時 : 오전 3~5시), 마검봉에 찾아오거라."

"충!!!"


나는 벅차오르는 감정을 감추지 못했다.

입꼬리가 절로 실실 올라간다.


"그리도 좋더냐, 별난 놈일세."

"헤헤..."


뒷머리를 긁적이자, 스승님은 인상을 찌푸리며 말하셨다.


"웃지마라. 정드니까."

"헤헤헿..."

"이 놈이..."


투덜거리시던 스승님의 목소리에는 아주 작은 기대감이 담겨계셨다.


**


그날 새벽.

나는 잠을 전혀 자지 않고 밤새 운기조식을 하다가 시간에 맞춰 마검봉에 도착했다.


"왔느냐."


그곳에는 진검 두 자루를 쥐고 계시는 스승님이 평소와는 다른 장포를 입은 채로


"스승님을 기다리시게 했군요. 다음번엔 더 일찍 나오도록 하ㄱ..."

"그만. 진짜 귀염성이라고는 없는 아해로고."


그리 말씀하신 스승님은 나에게 아무런 소리도 없이 검을 던졌다.


-타악!


내가 가볍게 날아오는 검을 받아내자, 스승님은 고개를 끄덕이시며 말씀하셨다.


"그래, 확실히 시야를 잃었지만 세상을 볼 수 있나보구나."

"한정적이지만...예, 그렇습니다."


그 말에 스승님은 나를 바라보며 말씀하셨다.


"유강아."

"예, 스승님."

"솔직히 말하자면, 넌 수상한게 한 두가지가 아니다."


스승님은 기세를 조금 개방하셨다. 경거망동 하지 말라는 뜻이렸다.


"어떻게 감풍심법을 배웠는지, 어떻게 본교를 이리 잘 아는지 같은 표면적인 것부터...아이답지 않은 그 심성까지 말이다."

"..."

"그저 천재라는 단어로는 너의 그 괴이함을 풀 수 없다."


과연, 예리하시다.

그렇지만 나 또한 그 부분에 대해서 뭐라 변명해야할지 생각을 정리해놓았단 말이지.


"그게...!"


하지만 내가 생각해낸 변명은 스승님의 말 한 마디 덕분에 사용하지 않아도 될 수 있었다.


"허나,"


스승님은 은은하게 뿜어내고 계셨던 기운을 갈무리하셨다.

압박감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마검봉의 선선한 바람만이 내 볼을 스쳐지나갔다.


"너의 심의가 올곧고, 사특함이 보이지 않으니 그 부분에 대해서는 물어보지 않겠다."

"..."

"인간에게는 누구나 숨기고 있는 비밀 하나 쯤은 가지고 있는 법이다. 그리 생각하겠다."

"...감사합니다."

"됐다."


스승님은 한숨을 내쉬며 말씀하셨다.


"비밀과 과묵은 대부분 약이다만, 과하면 너 스스로를 잡아먹는 독이 될게다. 항상 조심하거라."


나는 스승님에게 포권하며 말했다.


"명심하겠습니다!"


당당하게 거짓말을 인정하는 내 말에 스승님은 껄껄 웃으셨다.


"말은 청산유수구나 아주!"


그리 말씀하시더니 이내 발걸음을 옮기셨다.


"감풍심법을 익혔으니 알겠지. 본 노두의 무공은 천지자연중, '바람'에 그 의(意)를 두고있다."

"예."

"감풍심법의 상승무공이 무엇인지는 알고있느냐?"

"...경청하겠습니다."


스승님은 발걸음을 멈추지 않으시며 심법을 운용하셨다.


"직접 느끼는게 빠르겠지. 바람에 집중해보거라."


스승님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조금씩 머리카락을 훑고 지나가는 바람이 느껴졌다.

단전에서 조용히 태어난 미풍(微風)이 이내 자연의 바람과 합쳐지며 산들바람이 되어간다.


-휘이이익!!


산들바람은 주위의 바람과 합쳐지며 더욱 커다란 돌풍이 되어갔다.

슬슬 바닥에 떨어진 나뭇가지 뿐만 아니라 나무에 잘 뻗어있는 가지들도 흔들리기 시작한다.


굳세게 버티고 있던 나뭇가지들이 위태롭게 떨어지려는 순간.


"무엇을 느꼈느냐."


스승님은 돌풍을 다시 분해하여 산들바람으로 만드시고는 나를 보며 물으셨다.


"..."


스승님의 질문에 나는 고민했다.


과거의 나는 스승님이 느끼게 해주신 바람에 대한 감상으로 '강하다.' 라는 대답을 했다.

점점 커져가는 바람을 보며 나도 언젠가 거대한 태풍이 되어 중원을 쓸어버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으니까.


허나, 현재의 나는 그 강함이 아닌, 바람의 끝에 초점을 맞췄다.


미풍에서 산들바람으로, 산들바람에서 돌풍으로, 그리고 돌풍에서 다시 산들바람으로.

약해지는 듯 했지만 그 안에 담긴 자연의 의치를 단어로 표현하자면...


"순환(循環)...아니, 맞나?"

"허?"


아, 순간 입으로 뱉어버렸다.

스승님의 눈에는 한번 바람을 느낀 것 만으로 무공의 심의까지 파악한 것으로 보일 것 아닌가?


대종사도 그런 미친 머리는 가지고 있지않다.


"뭐 이런..."


계속 평정을 유지하던 스승님마저 내 말에 학을 떼셨다.

스승님은 잠시간 말을 못하시고 중얼거리시더니 이내 말씀하셨다.


"넌...정말 감을 잡을 수조차 없구나."

"죄송해요..."

"뭐가 말이더냐. 잘 해놓고는 사과해서 자신을 깎아먹지 말거라."


스승님이 내 머리에 손을 올리시고는 말씀하셨다.


"네 추측대로 이 심공의 심의는 순환에 있다."

"...애매모호합니다."

"무(武)란 원래 그런 것이다. 자신만의 답을 쌓아가는 것을 깨달음이라 부르며, 그게 쌓여 경지가 되는 것이지."


스승님은 잠시 반대 편 산의 봉우리를 쳐다보시더니 말씀하셨다.


"무공의 시작이 어땠겠느냐."

"살아남기위해 자신을 단련하기 위해서가 아닙니까?"

"그것도 맞다. 그럼 정파 놈들의 무공은 어떻게 시작됐을까?"

"그야...깨달음을 위해서?"

"맞다."

"으음..."


쉽지는 않은 일이다.

작금의 무림에서 깨달음을 위해 무공을 배우는 사람은 모래알에 섞여있는 금가루보다도 적지 않을까.


"한 가지의 예를 들어주마."


스승님은 자신의 깨달음을 나에게 전수하려하시는 듯 했다.


"정파의 태산북두(泰山北斗)중 남존(南尊), 무당파의 심의가 무엇인지 아느냐."

"태극이 아닙니까."

"그렇다. 태극(太極). 그 모호하고 애매한 이치를 무당은 무공을 통해 깨달으려 노력하지."


그리 말한 스승님은 양 손에 각기 다른 바람을 담으셨다.


"하나의 바람을 양이라 하고, 또 다른 바람을 음이라 하마."


스승님이 양손을 모으자, 두 개의 바람이 회전하며 점차 태극의 문양을 피워냈다.


"그 두 바람이 만나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걸 태극이라고 부르지."

"..."

"무당파의 도사들은 자신의 몸을 세상삼아 음과 양의 기운을 조화롭게 맞추어 깨달음을 추구한다."

"그럼 태극이 세상의 진리입니까?"

"그럴리가. 그럼 그놈들은 여지껏 등선하지않고 뭐하고 있겠느냐."


스승님은 이내 태극을 띄고있는 바람을 더욱 빠르게 회전시켰다.


"나의 무공이 태극과 다른 것은 태극의 상태에서 완벽히 조화를 이루지 않는다는 것에 있다."


스승님의 바람이 볼을 스쳐지나간다.

머리카락을 쓰다듬고, 손을 스치며, 옷자락을 뒤흔든다.


"태극이 존재한다는 것은 음과 양이 절대적으로 섞이지 않는, 다른 존재라는 대전제 속에 있다."

"..."

"어찌 세상에 그런 절대적인게 있겠는가. 만약 존재한다고 해도 그 태극이 존재하는 시간은 정말 눈 깜빡할 만큼의 찰나에 불과하겠지. 애초에 태극(太極)이란 이름에 붙은 극(極)도 극한, 끝을 의미하는 말이다."


스승님의 손 끝에서 회전하던 두 바람은 어느새 그 경계선을 잃고 하나가 되어있었다.


"세상은 개인이자 단체이며, 각자이자 전부3이다."

"..."

"음과 양은 본래 하나이되, 현재는 둘로 존재하고, 다시 하나가 되지."


완벽히 하나가 되어가는 바람이 주위의 또 다른 바람을 빨아들인다.


"태극은 음양은 그 색을 잃고 회색이 되어간다."


일점에 모인 극한이 바람이 되어 쏘아진다.


-파아아아아앙!!


마치 거대한 매가 창공을 가로지르는 듯한 소리가 지천을 뒤흔들었다.


"극한까지 치솟은 음과 양은 하나가 되고, 다시 둘로 나뉘어지지."


쏘아진 바람은 흩어져 대자연의 품에 돌아갔다.


"이 모든 과정을 통틀어 나는 순환(循環)이라고 부른다."

"허억..."


바위에 딱 손가락만한 구멍이 뚫려있다.

저 정도의 위력이 정통으로 바위에 꽃혔는데도 바위가 박살나기는 커녕 구멍을 제외하면 스친 흔적조차 없다.


전성기의 나보다도 더욱 뛰어난 경지의 선풍통지(仙風通指)였다.


"그 모든 무공의 근본이 현재는 풍영추혼심공이라 부르고있는 무공인 천풍심공(天風心功)이다."

"천풍...심공...?"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풍영추혼심공의 원래 이름이 있었다니...


"나는 결국 이 무공을 풍영추혼이란 이름으로 부르지만, 너는 내가 아니지 않느냐?"

"..."

"그러니 너 또한 천풍심공으로 시작하거라. 그러다 대성을 하고 깨달음을 얻었을 때, 너만의 이름으로 이 무공을 부르거라."


스승님은 내 어깨를 두드리시며 깨달음을 건네주셨다.

천하십좌까지 올랐던 나에게 새로운 깨달음을 건네주신 것이다.


"...예."


스승님은 자신이 뚫어버린 바위를 가리키시며 말씀하셨다.


"꼭 지법이 아니어도 좋다. 너는 도와 검을 주로 사용하는 것 같더구나."

"검을 주로 사용합니다. 도는...그, 양기를 사용할 때 주로..."

"버릇인지, 아니면 너 나름의 도법인지는 모르겠지만 좋다. 나와 같은 검을 주로 사용한다는건 나쁘지 않은 일이지."


스승님이 검을 꺼내셨다.

떠오르는 새벽녘의 여명이 스승님의 검 끝에 담겨 나를 찔러왔다.


"오늘부터 너를 가르칠 것이다. 목표는 검풍만을 사용해서 바위에 구멍을 뚫는 것."

"!..."

"바위에 금조차 가면 안된다. 크기도 너무 커서도 안된다. 방금 내가 보여준 것과 똑같아야한다."

"음..."

"외공의 단련을 사용한 검풍도 금한다. 오로지 깨달음을 통해 얻은 검풍으로 뚫어야한다."


언뜻 말도 안되는 소리같지만 사실 충분히 가능하다.

방금 스승님은 손가락에 담긴 두 개의 바람을 극한으로 회전시켜 바위를 뚫어냈으니까.


여기서 내공은 그저 회전력을 극대화하는데 사용된 매개체일 뿐, 바위를 뚫은 위력은 어디까지나 순수하게 바람의 위력이다.

풍영추혼심공이 신공절학이라 불릴 뻔했던 이유도 이것에 있다.


바람을 사용하니만큼, 내공을 극한으로 아낄 수 있다는 점. 바람을 다루는데는 검기나 검강을 뽑아내는 것보다 훨씬 더 적은 내공이 든다.

그렇다고 검기나 검강을 사용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생각하고 보니 진짜 사기네 이거.


"검기나 검강을 실어서 바위를 뚫어버리는건 어렵지 않다. 허나, 심의를 담은 바람을 조종해서 구멍을 뚫는건 쉽지 않지. 어떠냐, 해보겠느냐?"

"...스승님의 말씀이시니까요."


나는 바로 시작하겠다는 듯 검을 뽑았다.


"감풍심법으로 갈 수 있는 한계를 느끼거라."

"예."


하단전의 내공을 개방한 다음, 검 끝에 바람을 모은다.

스승님처럼 작게는 몸의 한께 때문에 불가능하지만, 나름대로 봐줄 정도는 모인다.


"하아앗!!"


-휘이이익!!


그대로 검을 찔러넣었지만, 바위는 박살나기만 할 뿐, 구멍은 뚫리지 않았다.


"감풍심법이란 말 그대로 바람을 느끼게 해줄 뿐, 섬세함이 부족하지."

"..."

"게다가 방금 넌 무의식 중에 검기를 뽑아내더구나."

"!"

"꺼내지 않아도 될 것을 과히 꺼냈다가는 내공이 필히 낭비된다."

"명심하겠습니다."


분명히 배웠을 가르침일텐데...스승님이 없는 세월동안 잊어버린건가.


-꽈아악...


나는 나의 오만함에 역겨움이 들었다.


"...낙심하지 말거라. 애초에 그 나이에 검기상인의 경지에 발을 들인 것 만으로도 고금에서 손가락 안에 드는 천재이다."

"하지만 부족해요. 경지 자체는 이류니까요."

"그게 더 놀랍다만. 이류밖에 안되는 내공으로 어찌 검기를 뽑아낸 건지.."


난 그리 말하며 검을 고쳐잡았다.


"다시 한번 부탁드립니다."

"그래."


검끝에 바람이 담긴다.

한 점에 모이던 바람이 흩어지고, 그 바람은 자연이 되어 마교의 계절을 뒤바꾼다.






계절이 지난다.

몇번이고 지나고 다시 돌아오길 반복한다.


세상또한 순환의 이치 속에서 오고 가기를 계속한다.


마림의 벚꽃이 피고 지기를 일곱 번.

마검봉의 나무에 단풍잎이 피고 지기를 여섯 번 정도 했을까.


"..."


내 코에 익숙한 마검봉의 산내음이 맡아졌다.

가을의 단풍이 머리 위에서 떨어져 흩날리며 추락한다. 벌써 일곱 번째 맞이하는 가을이 져물어가는걸까.


비가 내리고 난 뒤 맺어진 웅덩이에 단풍잎이 떨어지는 순간,


"..."


나는 칼집에서 검을 꺼냈다. 검날에 닿은 단풍잎이 반으로 잘려 웅덩이에 떨어졌다.

그 광경을 지켜본 나는 조용히 검 끝에 바람을 담아냈다.


-휘이이이익!!


강물에 먹이를 뿌리면 미친듯이 모여드는 금붕어처럼 수많은 바람의 흐름들이 내 검 끝에 모여든다.

칠 년의 세월은 시간을 역행한 나에게도 깨달음이란걸 선물해줬다.


-휘이이익...


스승님이 극한까지 바람을 회전시켰다면, 나는 극한까지 바람을 압축한다.

면면부절(綿綿不絶)의 이치를 가진 바람은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계속 세상을 유영한다.


그런 바람을 내공을 사용한 검막에 가두며 점점 회전할 수 있는 범위를 줄인다.

그러다 이내 움직일 수 없을 만큼 작은 막에 갇히는 순간, 바람은 점점 회전을 할 때의 힘만큼의 파괴력을 지니게 된다.


바람이 부는 소리가 점점 사그라들더니, 이내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게됐다.

줄이고 또 줄인 바람은 이내 한계점에 도달하고, 버티다 못해 폭발하게된다.


-파아아아앙!!


검끝에 담겨있던 바람이 한점에 뻗어나가며 바위를 꿰뚫는다.


꿰뚫린 바위에는 아무런 금도, 상처도 나있지 않았다.

그저 중앙에 손가락만한 구멍이 뚫려 틈 사이로 햇빛이 들어올 뿐이었다.


"됐다."


열 일곱이 된 나는 다시 한번 풍영추혼심공을...아니.

천풍심공을 대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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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 후 무림세가 데릴사위가 되다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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