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웃자!
잠을 설쳐서 그런지 힘이 없다.
퀘스트를 받아도 집중도 안 되고.
“주인님! 뒤!”
“뒤?”
고개를 돌리자 머리를 노리고 날아오는 커다란 화염구 하나.
반응하고 피하기엔 늦은 타이밍이었지만.
어느새 팔목에서 뻗어져 나온 투명한 보호막이 마녀의 공격을 튕겨냈다.
투웅!
[‘드라우프니르’의 배리어 내구도 : 89%]
이번에 새로 얻은 유산, [드라우프니르].
내구도가 닳으면 일정 시간 후 스스로 재생되고,
내구도가 0이 되면 긴 쿨타임이 생긴다.
“···으아, 놀래라.”
“어휴! 정말롱!”
이번 엘리트 몬스터는 굴린이와 상성이 좋지 않았다.
‘화염 마녀’의 특징. 시전 속도와 움직임이 느리다.
마녀가 두 번째 마법을 캐스팅하는 사이.
굴린이가 재빨리 녀석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소환수 ‘굴린이’가 ‘냉기의 돌진 Lv.1’을 발동하였습니다.]
사르르르! 파캉!
붉게 떠오른 마법진을 감싸는 얼음 결정들.
정반대의 속성이 맞부딪히며 뿌연 수증기가 피어올랐다.
츠츠츠츠츠!
[각성자 ‘이시현’이 ‘비천창 Lv.1’을 발동하였습니다.]
‘화염 마녀’가 황급히 에너지 배리어를 캐스팅했지만.
슈우우욱! 파캉!
이미 창이 지팡이를 꿰뚫고 지나간 후였다.
「 끼야아아악! 」
소름 끼치는 비명과 함께, 이내 ‘화염 마녀’의 몸이 한 줌의 재로 흩어졌다.
[엘리트 몬스터 ‘화염 마녀’를 처치하였습니다.]
[경이로운 업적을 달성하였습니다.]
[추가 보상이 지급됩니다.]
보상을 확인하기도 전에 굴린이가 버럭 성을 냈다.
“지금 제정신이신 겁니깡? 그러다 다치기라도 하면 어쩌려공!”
“···미안. 왜 화를 내고 그래.”
“컨디션이 안 좋으면 탑 공략을 좀 쉬십숑.”
“그래도 약속은 약속인데. 얼른 57층까지 올라가야지.”
“그럼 당분간 엘리트 몬스터 공략을 쉬시든지용.”
“그러기엔 보상이 너무 짭잘한 걸.”
“이것도 싫공, 저것도 싫공!”
할 말이 없다.
내가 왜 이러는지.
나도 내 마음을 모르겠는 걸 어떡해.
“무슨 걱정이라도 있으십니깡?”
“걱정? 흠···.”
걱정이라···.
“최근에 갑자기 관심을 확 받아서 멘탈이 좀 흔들렸나?”
“근데 어차피 주인님이 한 일인 줄 아무도 모른다면서용?”
그렇긴 하지.
“너무 집에만 계셔서 그런 거 같은뎅. 이참에 나가서 바람이라도 좀 쐬고 오십숑.”
요즘 들어 부쩍 감정 기복이 심해진 거 같다.
긴장을 너무 많이해서 그런가?
아니면···.
···진짜 굴린이 말대로 집에만 박혀 있어서 그런가?
***
탑 공략도 일찍 끝낸 김에 오랜만에 친구와 약속을 잡았다.
정확히 말하면 아는 동생.
예전에 같이 영화관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던 동생이다.
가장 친한 친구이기도 하다.
“···얼마만에 약속이냐.”
탑 공략하고, 굴린이 먹을 거 챙겨 주고, 집 청소하고.
스킬 써서 다음 층 패턴 보고, 아이템 챙기고.
친구 만날 시간이 어딨어.
취직 전에는 시간이 많지만 돈이 없고.
취직하면 돈이 있지만 시간이 없다더니.
탑 등반도 꼴에 취직이긴 한가 보다.
옛말 틀린 거 하나 없다.
영화관 앞 골목에 있는 작은 술집에 들어갔다.
평일이라 그런지 사람이 별로 없었다.
“어, 형 왔어?”
“오랜만이네.”
이름은 허창욱.
나보다 두 살 아래다.
“웬일이래? 형이 먼저 약속을 다 잡고.”
“···그냥 집에만 있으니까 심심해서. 뭐 먹을래?”
“늘 먹던 걸로.”
“오케이.”
이 집에 오면 안주는 늘 고정이다.
빙어 구이에 해물 순두부찌개.
“형은 요즘 뭐 하고 살아? 말도 없이 알바 그만두더니.”
“일이 좀 있어서. 그냥 공부하지 뭐.”
“무슨 공부?”
“···그냥 취직 공부. 전공 공부도 하고···.”
홀짝.
최근 심해진 우울감의 원인에 대해 생각을 좀 해봤다.
내가 내린 결론.
고민을 털어놓을 곳이 없다.
가족들한테도 아직 말 안 했고.
친구는 뭐 애초부터 많지도 않았고.
얼마 없던 친구들도 공부하면서 다 멀어졌으니.
사실, 친구를 만난다 해도 선뜻 털어놓기 힘들다.
생각해보자.
달에 수천 만 원을 버는 전문직(?) 종사자가,
취직 준비 중인 친구를 불러냈다.
그러더니 일이 너무 힘들다고,
너무 유명해져서 사람들이 자기를 알아볼까 봐 걱정이라고 말한다 치자.
···공감이 될까?
공감은 무슨.
내가 친구여도 욕부터 나오겠다.
허창욱이 소주를 입에 털어넣으며 물었다.
“무슨 고민 있어?”
“어?”
“뭔 고민을 그렇게 오래 해?”
“아, 그냥 생각할 게 좀 있어서.”
“크으으! 달다, 달아. 고민 있으면 뭐든 말 해. 한창 힘들 때잖아. 형이나, 나나.”
···한창 힘들 때라.
고3 때는 수능만 치면 세상이 끝나는 줄 알았고.
입대했을 때는 전역하면 모든 게 해결될 줄 알았다.
한창 취직 준비로 바빴을 때.
진짜 취직만 하면, 아무런 고민없이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근데 그게 아니었다.
변화는 고민을 낳고, 고민은 또다른 고민을 낳는다.
아무리 남들이 공감하기 힘든 고민이라고 해도.
나도 속시원하게 털어놓을 곳이 필요하다.
그렇게 생각하니···.
그래. 내가 얘 아니면 누구한테 고민을 이야기하겠어.
“야, 창욱아.”
“어?”
“나 각성자 됐다.”
“···뭐?”
“각성자 됐다고. 탑 등반.”
“···푸흡!”
···웃어?
큰맘 먹고 말했는데 반응이 왜 이래.
“크학! 아니, 형 요즘 많이 힘들어?”
“어?”
“아니면. 뭐 연기 준비해? 재능 좀 있는 거 같은데?”
아, 설마 못 믿는 거?
“하하, 진짜 웃긴 형이네! 하하, 하···.”
“···.”
“하···.”
꿀꺽!
“진짜야?”
“어.”
“거, 거짓말 아니고?”
“그렇다니까. 너한테만 말하는 거야. 아직 아무도 몰라.”
“다 걸고? 진짜 그 각성자? 내가 아는?”
“목소리 좀 낮춰. 동네방네 다 소문내고 다니게?”
“미친!”
주변을 살피던 허창욱이 나에게로 몸을 바짝 붙였다.
무언가 잔뜩 기대하는 듯한 저 초롱초롱한 눈동자.
익숙한 반응인데.
아, 김진수.
김진수와 똑같은 반응이다.
“등급이 뭔데? 협회는? 지금 몇 층이야? 돈 얼마 버는데?”
“하나씩 물어, 하나씩.”
“아, 알겠어. 등급! 무슨 등급인데?”
“등급? 음···.”
내가 바로 답을 하지 않고 머뭇거리자 잠시 정적이 흘렀다.
“사실은···.”
“아, 등급 많이 낮구나?”
“어?”
“괜찮아. 난 그래도 형 존경해. 저층 각성자 날로 먹는다고 욕 많이 하던데 나는 그렇게 생각 안 해.”
“···그, 그래?”
내가 저층 각성자보다 더 날로 먹고 있긴 한데.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다, 야.
“어차피 그 사람들이 모은 재료로 공략 아이템 만드는 거 아니야?”
“그렇긴 하지.”
탑과 각성자에 대한 세부적인 내용은 기밀이지만 큰 흐름에 대해선 다들 알고 있다.
현재 공략 상황이 어떤지. 협회가 어떤 식으로 돌아가는지.
아주 대략적으로 말이다.
“저층이라지만, 결국 자기 등급에 맞게 목숨 걸고 재료 캐는 거고. 목숨 건 만큼 돈 많이 받는 거고. 나는 충분히 그럴 만하다고 생각해.”
허창욱이 조금 씁쓸한 듯 거칠게 빙어 구이를 뜯었다.
“···조금 부럽긴 하지만.”
“늦게 말해서 미안하다.”
“아냐, 그럴 수 있지. 그럼 협회는 들어간 거야?”
“일단은?”
“예전에는 각성자 돼도 협회는 안 들어갈 거 같다더니.”
“그걸 아직 기억하고 있네.”
예전에 아르바이트하며 나눴던 대화.
시간이 꽤 지났는데 아직 기억하고 있구나.
“각성자 되고, 이것저것 알아보니까 그냥 들어가는 게 나을 거 같아서.”
“···그렇구나. 그럼 혹시···.”
조금 떨리는 듯, 허창욱이 마른 입술에 침을 발랐다.
“그 사람 알아?”
“누구?”
“전설 등급 각성자.”
···아.
석호윤이랑 장효민?
“아직 직접 만난 적은 없는데, 유명하지. 두 사람 다 공략팀에서···.”
“아니 아니. 석호윤이랑 장효민 말고.”
“그럼 누구?”
“이번에 새로 등장한 세 번째 전설 특성.”
···아. 저요?
“탑 등반의 귀재이자, 대한민국을 각성자 강국으로 만들 역대급 인재!”
언제부터 내 수식어가 저렇게 길었지?
“···랑 만난 적 있어?”
“아, 하하.”
동생아.
지금 네가 만나고 있단다.
“아까도 말했지만 내부 이야기는 하기 힘들어. 아직 공개되지도 않았고.”
“···그래? 에이, 쩝.”
“응.”
허창욱이 입맛을 다셨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사인이나 좀 받아줘. 나 팬이란 말이야.”
“팬이라고?”
“응. 멋있잖아. 지금 엄청 핫할걸?”
나도 모르는 사이 팬도 생겼다.
“이거 봐.”
허창욱이 오늘 뜬 뉴스 기사를 보여주었다.
『 - 6일 연속 엘리트 몬스터 공략? 각성자 협회, ‘전설 특성 등장은 맞지만, 엘리트 몬스터는 아니야.’
- [뉴스 픽] 각성자 협회, 세 번째 전설 특성 보유자 영입 인정. 신원은 아직 밝힐 예정 없어···.
- [오늘의 핫뉴스] 새로운 각성자, 57층 등반 전까지 모든 혜택과 연봉 포기?
[댓글]
ㄴ 드디어 한 건 했구나! 협회!
ㄴ 세금만 축내는 줄 알았는데. 이번 건은 칭찬할 만한 듯.
ㄴ 아니. 근데 혜택이랑 연봉 다 포기하면, 저 사람은 땅 파서 돈 버나?
ㄴ 윗 댓. 그래도 님보단 돈 잘 벌듯.
ㄴ 능력도 능력인데, 인성도 좋네. 응원합니다. 』
“협회에서 계속 부정하고는 있는데, 6일 연속 엘리트 몬스터 공략도 사실이라는 여론이 지배적이야. 그것도 그 사람이 한 거라고.”
“···.”
“해외에서 수많은 오퍼가 왔지만 모두 거절. 최신 층 등반 전까지 받을 연봉 전액 기부!”
“······.”
이건 나도 몰랐던 이야기다.
“하루빨리 탑 공략에 도움 되고 싶어서 하루에 한 층씩 등반 한다던데. 너무 무리하지는 말라고 다들 난리야.”
“그···런 맥락은 아니긴 한데.”
“뭐라고?”
“아, 아니. 대단하다고.”
“엄청 진중하고 책임감 있는 사람인데, 또 언론 노출을 꺼린대. 과도하게 신상을 파헤치는 행위는 자제해달라고 하더라. 돈, 명예 다 관심 없다는 거지. 너무 멋있지 않아?”
김진수.
이 미친 사람아.
대체 무슨 일을 벌여 놓은 거야?
“형.”
“응?”
“진짜, 부탁이야. 나중에 협회에서 만나게 되면 사인 하나만···. 아니, 두 개만.”
“두 개?”
“우리 엄마도 팬이거든. 요즘 아침마다 뉴스에 댓글 다셔. 다치지 말라고. 늘 응원한다고.”
“···.”
이걸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음···.
에라 모르겠다.
그냥 웃자!
“응원! 나도 응원하지! 하, 하하하!”
“하하하! 알겠지? 약속한 거다!”
“그래! 얼마든지! 하하하하!”
아이.
행복해.
-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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