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집 망나니는 엔터재벌이 너무 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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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5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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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8 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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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5. 화형식(1)

DUMMY

005. 화형식(1)


“나 저 사람 정말 싫어!”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가 치뤄지는 해였다.

나는 당시 에덴 엔터테인먼트 신입사원이었다.

회식자리였을 거다. 한국당 국회의원으로 출마한 현영관이 TV에 모습을 드러내자 성도희 회장은 진절머리를 쳤다.


“왜, 왜요? 혹시 옛 애인이라도.”


회장이라고 하지만 부하직원들과 격의 없는 농담도 주고받던 회사 분위기.

누군가 던진 짓궂은 농담에 성도희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던 게 아직도 기억이 난다.


“KG그룹 성민철 회장 오른팔, 비서실장 출신이야.”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에요?”

“알다마다. KG에서 에덴 엔터테인먼트 계열 분리할 때 앞장서서 훼방 놓던 놈이었지.”

“아...”

“처음 영화, 드라마, 음악, 게임을 제작, 유통하는 회사 만들겠다니깐, 저 새끼가 아주 코웃음을 치더라. 영화쟁이들, 동네 백수들 모아 놓고 그게 잘 되겠냐고.”

“헉, 완전 양아치네.”

“혹시 저 자식 지역구에 사는 사람! 저 새끼는 절대 안 돼!! 저얼대!!”


***


1995년까지 성민철 회장 비서실장직 수행, 이후 KG물산 사장으로 영전. 2000년 KG그룹에서 은퇴 후, 2004년 한국당 후보로 국회의원 당선.


‘2008년인가? 뇌물 수수로 구속되고 아주 그냥 나락 갔었지.’


나는 현영관의 뒤를 따르며 그에 대한 전생의 기억을 떠올렸다.

현영관이 TV에 나올 때마다 성도희가 얼마나 치를 떨었던지,

그래서 나도 현영관을 관심이 있게 지켜봐 왔다.


‘앞으로 좀 재밌어지겠는데?’


성도희가 원수처럼 여기던 그를 재벌 3세가 되어 아버지를 모시는 비서실장으로 다시 만나다니.


“타십시오.”


현영관이 나를 데리고 온 곳은 공항 건물과 조금 떨어져 있는 주차장.

그곳에 검은색 벤츠가 세워져 있었다. 나는 직관적으로 저 안에 성민철, 아버지가 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예상대로 차 뒷좌석에는 40대 후반의 성민철 부회장이 눈을 감은 채 앉아 있었다.


“타라.”


내가 잠시 머뭇거리자, 성민철은 눈을 감은 채 나에게 짧게 지시했다.


‘누가 보면 아들이 아니라 그냥 부하직원인 줄 알겠어.’


나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성민철, 아버지의 옆자리에 앉았다.

탁. 문이 닫히고 벤츠가 서서히 주차장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어떻게 된 거냐?”


차가 출발하고 몇 분간은 어색한 침묵이 이어졌다. 무거운 정적을 깨고 드디어 성민철이 입을 열었다. 하지만 눈은 여전히 감은 상태.

솔직히 차에 오르기 전 단단히 각오 했었다. 성민철에게 등짝을 몇 차례 맞을 수도 있고, 그 이상의 무력이 오고 갈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런데 어떻게 된 거라니? 아들에게도 무슨 보고를 받고 싶은 것일까?


“작은 사고였습니다. 지금은 괜찮습니다.”

“누가 지금 그걸 물어?”


그제서야 성민철이 감은 눈을 뜨고 나를 쳐다봤다.

노기가 서려 있지는 않았다. 도무지 감정을 잃을 수 없는 눈빛이었지만,

그 안에 사람을 압도하는 힘 같은 게 느껴졌다.


“공항까지 나온 이유가 있을 거 아니냐. 평소에 안 하던 짓을 하는 이유가.”

“그러니깐 그게... 그냥 궁금했습니다.”

“궁금해?”

“네...”

“뭐가?”

“아버지가 하시는 일이요.”

“......”


예상치 못한 대답에 생각이 많아진 걸까. 성민철이 한동안 말없이 턱을 쓰다듬었다.


“너도 이젠 성인이다.”

“......”

“마음을 고쳐먹은 거냐?”

“네?”

“방황을 끝내는 거냐고.”

“네.”


성민철의 시선이 다시 한번 나를 향했다. 여전히 알 수 없는 눈빛이다. 부담스럽다.

그리고 한동안 더 부담스러운 침묵이 벤츠 안을 가득 채웠다.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걸 들었습니다. 공항에서요.”


내가 먼저 이 부담스러운 침묵을 깨야 할 것 같아서 입을 열었다.


“......”

“KG에서 만든 제품에 대한 불만이 많은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아버지가 해외에 휴양이나 즐기러 간 것처럼 생각해요.”


도발이라고 생각한 걸까? 성민철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앞 좌석에 앉은 현영관이 내 말을 급히 막았다.


“예석군, 말을 가려서 해. 부회장님께서 이번 출장에서 얼마나 애를 많이 쓰셨는지 아나?”

“자네는 가만있게.”


성민철은 오히려 현영관의 말을 막았다. 그리고 그의 시선이 다시 내 얼굴을 향했다.


“그래, 하고 싶은 말이 뭐야?”

“뭔가 이벤트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이벤트?”

“네. 변화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잖아요. KG가 세계 일류가 되려면.”

“......”

“그 말에 맞는 행동을 사람들한테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요? 이를테면...”

“...이를테면?”

“그러니깐 이를테면, KG전자 제품들을 한곳에 모아 두고 태우는 퍼포먼스를 한다거나...”


성민철이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쳐다봤다.


“예석군, 그게 무슨 막말이야. 제품을 태운다니!”


성민철은 이번엔 현영관의 말을 막지 않는 대신, 긴 한숨을 내쉬었다.

어라, 이게 아닌데... 다시 침묵이 이어졌다. 이전보다 더 무겁고, 숨도 쉬기 힘들 정도로 무거운 침묵이었다.


***


벤츠는 장충동의 고급 주택가로 향했다.

으리으리함을 자랑하는 주택들. 마치 서울 하늘 아래서 내가 더 성공했다고 서로 경쟁하며 짖어대는 듯했다.

차가 멈춰선 어느 주택 앞. 그 집은 그렇게 짖어대는 주택들과는 결이 달랐다. 심플하고 정갈하지만 위엄이 느껴졌다. 짖어대는 개 떼들 사이에 어슬렁 거리며 모습을 드러내는 사자 같달까?

저택의 대문이 열리고 성민철과 나는 마당으로 들어섰다. 범상치 않아 보이는 조각품들이 정원수들과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집이 아니라 유럽의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온 듯한 착각을 들 정도였다. 저택의 첫인상은 성민철의 눈빛만큼이나 사람을 압도하는 힘이 있었다. 건물이 주는 위압감에 어깨가 움츠려 드려는 것을 느끼고 나는 일부러 헛기침하며 허리를 꼿꼿이 세웠다.

앞으로 내가 살아갈 집이다. 익숙해져야 한다. 이 기세에 눌리면 끝장이다. 이 저택의 일원으로 살아가기 위해선.


“오..셨어요.”


거실에는 내 어머니이자 성민철의 처 유희라. 내 형이자 이 집의 장남 성예준. 그리고 그 뒤로 가정부로 보이는 여자 세 명이 도열하여 우리를 맞이했다. 아니, 성민철을 맞이했다.


“그런데 어떻게 예석이랑 같이...”


유희라, 어머니가 마치 어려운 수수께끼를 만나듯 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마 성민철과 나란히 서 있는 둘째 아들의 모습이 낯설겠지. 궁금하기도 하고.


“공항에서 만났어.”

“공항에서요? 예석이, 병원에 있던 거 아니었어?”


입원해 있는 둘째 아들 앞에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던 어머니다.

유철규 팀장의 말에 의하면 둘째 아들의 선을 넘은 방황에 가족들도 지칠 대로 지쳐 있는 상태를 넘어 포기 단계라고 했다.

그런 망나니 아들이 갑자기 멀쑥한 모습으로 아버지와 함께 나타났으니 꾀나 그 이유가 궁금하겠지. 나는 그 궁금증에 기름을 붓듯 또렷하고 정중하게 이야기했다.


“오늘 퇴원하고, 바로 공항으로 갔습니다. 미리 얘기 못 드려서 죄송합니다. 어머니.”

“어...그, 그래.”


성민철이 정장 자켓을 벗어 유희라에게 건넸다.


“앞으로 예석이 신경 좀 써.”

“네?...네.”

“성예준 과장, 요새 힘든 건 없고?”

“네, 부회장님.”

“많이 배워둬. 작은 거 하나 놓치지 말고.”


나는 입이 살짝 벌어졌다. 아들을 회사 직함으로 부르는 성민철에 한 번, 그걸 받아 아버지를 부회장이라 호칭하는 나의 형, 성예준에 한 번.

성민철은 믿음직한 큰아들 성예준의 어깨를 한 번 툭 치고 안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마치 사자가 자신의 새끼를 앞발로 툭 치며 애정과 신뢰를 표현하는 것처럼.

아버지의 신뢰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성예준이 의아한 듯 나를 아래위로 훑었다.


“성예석, 어떻게 된 거야?”

“제가 오늘은 좀 피곤해서요...”


궁금증에 가득 찬 어머니와 형을 뒤로하고, 나는 2층에 있는 내 방으로 향했다.


***


정갈하고 기품있는 저택의 분위기와는 정반대로 요란하게 꾸며 놓은 성예석의 방.

옷장을 가득 채운 갖가지 명품들, 벽에는 엑스재팬, 건스앤로지스, 메탈리카 등과 같은 1990년대를 수놓았던 락그룹의 포스터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참 가지가지 하는구나.”


유철규를 통해서 충분히 듣긴 했으나, 제 방을 꾸며 놓은 꼴을 보아하니 확실히 성예석 이 놈은 지독한 사춘기에서 못 빠져나온 망나니 재벌 3세가 확실하다.


성민철 부회장과의 첫 만남으로 긴장한 탓일까. 나는 일단 침대에 몸을 뉘었다. 길고 긴 하루였다. 공항에서부터 이 집에 오기까지 상황들을 복기해 보던 나는 침대에서 확 몸을 일으켰다.


“오버였나?”


KG 제품을 한곳에 모아 불에 태우는 ‘화형식’ 퍼포먼스는 내 머리에서 나온 생각은 아니었다.


‘세계 일류’ 선언을 하고 난 뒤에도 KG 제품들의 불량률이 좀처럼 줄어들지 않자, 성민철 부회장은 생산공장 마당에 핸드폰과 세탁기, TV 등 KG 제품들을 모아 놓고 불을 지르게 한다. 공장의 모든 직원들과 언론이 지켜보는 가운데.

효과는 만점이었다. 부정적이었던 여론을 되돌린 것은 물론이고, KG 전 직원들이 이 충격적인 장면에 경각심을 갖고 불량 없는 고품질 제품을 생산하는 데 주력하는 계기가 된다.


30년이 넘도록 회자되고 있는 KG의 중요한 역사적 한 장면이었기에, 내 기억에도 또렷이 남아 있다.

문제는 그 ‘화형식’이 지금으로부터 2년 후인 1994년 쯤 일어난 일이라는 것.


“너무 설레발을 떨었어. 젠장.”


이런 유치한 방법으로 부회장의 환심을 사려 했다니.

나는 몸을 부르르 떨며, 벽에 걸린 엑스재팬 멤버 요시키를 괜히 노려봤다.


“뭘 봐. 요시키야!”


****


해외 출장에서 돌아오고 첫 출근길이다.

벤츠 뒷 좌석에 앉아 서류를 들여다보는 성민철의 표정은 언제나 굳어있다.

그가 요새 가장 먼저 확인하는 건 KG 제품 불량률이다.


‘최대한 많이 팔아 최대한 많이 남긴다.’


입버릇처럼 고품질을 강조해 오고 있지만, 생산 공장 말단 직원부터 임원진에 이르기까지 이 낡은 생각에서 좀처럼 벗어나질 못하고 있다.


‘화형식이라...’


처음엔 철 없는 둘째 아들이 생각 없이 내뱉은 실언이라 여겼다.


‘생각하면 할수록 그럴듯하단 말이야.’


하지만 성예석의 툭 내뱉은 말은 계속 성민철의 머리를 맴돌며 구체화 되고 있었다.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앞좌석에 앉은 비서실장 현영관이 뒤를 돌아봤다.


“네? 어떤 말씀이신지...”

“어제, 예석이가 한 말 있잖아. 우리 제품을 태우자는 거.”

“회장님, 예석 군이 아직 어려서 한 말일 뿐입니다. 너무 마음에 담아 두지 마십시오.”

“...자네는 한참 멀었어.”

“네?”

“출근하는 대로 임원 회의 소집해.”


끝.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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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004. 첫 대면 24.08.27 792 12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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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001. 성도희가 죽었다 24.08.26 986 12 14쪽
1 000. 프롤로그 (수정) 24.08.26 1,012 13 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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