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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5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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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0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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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8. 공룡이 나타났다!(2)

DUMMY

018. 공룡이 나타났다!(2)


“매일 저녁이면 퇴근하는 직장인들이 쏟아져 나오는 명동 거리에 공룡이 출현했습니다. 보시는 바와 같이 명동 한 건물 벽면에 공룡의 형상을 한 그림자가 비치고 있습니다.”


신입으로 보이는, 조금 전 김소민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여기자자 마이크를 손에 꼭 쥔 채 리포트를 이어갔다.

김소민은 내가 제보한 동양일보 기자의 여동생이다. 운이 좋게도 동양일보의 기사가 김소민 눈에 띄었고, 내가 영화 홍보인 것을 동양일보 측에 밝히고, 이를 김소민도 알게 되자, 뉴스 인터뷰를 하여야겠다고 마음먹은 것. 이것이 내가 지금 카메라 앞에 서게 된 과정이다.


“이것은 다름 아닌 공룡 영화를 홍보하기 위해서 KG그룹 영상사업단에서 벌인 일이라고 합니다. KG그룹 성예석 씨의 설명을 들어보겠습니다.”


김소민이 마이크를 내 입 앞으로 가져다 댔다.

젠장, 1993년에 공중파 방송 뉴스 인터뷰라니. 그리고 이 미칠듯한 긴장감은 뭐지.

나는 어색한 서울 사투리로 말문을 열었다.


“이 공룡 그림자는 다가오는 5월에 개봉하는 ‘쥬라기 공원’이라는 영화를 홍보하기 위해 준비한 것입니다.”

“어떤 영화인지 설명해 주시죠.”

“네, ‘쥬라기 공원’은 영화 E.T와 죠스 등으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스티븐 스필버그가 제작, 감독한 영화로서, 이번에 KG그룹에서 전격 수입하여 개봉하게 됐습니다.”

“정말 기대 되는대요. ‘쥬라기 공원.’. 어떤 영화인지도 간단히 소개해주시죠.”

“길게 말하지 않겠습니다.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게 되실 겁니다.”

“그게 끝인가요.”

“네.”

“네, 명동 길거리에서 김소민 기자였습니다.”


***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다음날. KBC 방송의 뉴스 보도 덕분에 조선, 동양, 한국 일보 등 모든 신문이 앞다투어 ‘쥬라기 공원’과 독특한 홍보 방식에 관한 기사를 쏟아 냈다.

책상 위에 펼쳐진 그 일간지들을 읽어 내려가던 성민철이 신문 너머로 서 있는 현영관에게 물었다.


“대중들 관심을 끄는 데는 성공한 것 같습니다.”

“그래?”


성민철은 입꼬리가 실룩거렸다.

공룡 그림자를 만들어 내는 데 기껏 해봐야 수십만 원이나 들었을까?

하지만 그로 인한 홍보 효과는 수천만 원 이상이다.


“그놈이 장사꾼 기질은 타고난 모양이군. 그렇지 않나?”


성민철은 약간 상기된 목소리로 다시 현영관에게 물었다.

팔불출처럼 보일까 차마 자기 입으로는 못하겠으니, 부회장은 지금 비서실장의 입에서 대신 둘째 아들 칭찬이 나오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그런 마음을 헤아리지 못할 리 없는 현영관이지만, 그는 입을 한일자로 만들었다.

현영관의 미지근한 반응에 실망한 성민철은 목소리 톤을 다시 낮추었다.


“그래, 이 영화 개봉이 언제라 했지?”

“다음 달 10일입니다.”

“그렇군.”

“부회장님, 지금 영화 보다는 다음 달 출범하는 미래산업 TF를 신경 쓰셔야 합니다.”

“자네 지금 날 가르치는 건가?”


성민철이 날카로운 눈빛을 보냈다.


“그게 아니라...”

“어린놈이 그래도 해보려고 하는 데 관심 정도는 가져야 하지 않겠나?”

“네, 맞습니다.”

“그런데 말이야. 공교롭게 되어버렸어.”

“네?”

“일정이 말이야. 첫째 놈이랑 둘째 놈이 경쟁하는 형국이 되어 버렸잖아.”

“그러면 영화 개봉 일정을 늦춰볼까요?”

“그럴 필요 없어. 그래도 마음 잡고 뭐든 해보려는 얘가 괜히 상처받을까 걱정인 거지, 내 말은.”


성민철의 시선이 다시 신문 기사로 옮겨졌다.

현영관은 그런 성민철을 놓치지 않고 눈에 담았다.

두 아들을 향한 마음이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음을 그는 직감할 수 있었다.


***


KG그룹 근처 고급 일식집의 비밀스런 특실. ‘쥬라기 공원’의 특이한 홍보방식에 대한 기사를 읽어 내려가는 성예준의 이마에 주름이 크게 잡혔다.


“지금 회가 목으로 넘어갑니까?”


불안해하는 성예준과는 다르게 맞은편의 현영관은 여유롭게 참치회를 음미하고 있었다.


“성 차장도 한 점 들어보라니까. 입에서 아주 녹아.”


얼마전까지 자신에게 존댓말을 하던 현영관은 어느샌가부터 자신에게 은근히 말을 놓기 시작했다. 기분이 그리 좋지는 않지만 성예준은 지금 자기에게 가장 필요한 사람이 현영관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도 해야 할 말은 해야 하기에 성예준은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실장님!”

“어허, 아니 앞으로 큰일 하실 분이 아이들 장난질 같은 거에 마음을 쓰면 어쩌나. 명동에 공룡? 발상 자체가 아주 유아적이야.”

“신문이며 방송이 온통 예석이 이 자식이 수입해 온 영화 이야기뿐입니다.”

“그래서요? 달라지는 건 없습니다. 뭐가 이렇게 불안한 거지?”

“나는 여태껏 이렇게 신문 지상에 오른 적 한번 없습니다. 아버지가 당연히 나와 예석이를 비교하지 않겠어요?”


마치 어린아이가 떼를 쓰듯 흥분하는 성예준을 바라보는 현영관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올라갔다. 저렇게 열등감에 사로잡히면 잡힐수록 저 녀석을 자신의 손안에서 요리하기 편해진다.


“망나니 약쟁이 둘째 아들이 이제 정신 차리고 방송도 탔으니 당연히 부회장님도 속으로는 흐뭇해하시겠죠.”

“뭐라고?”


화르르. 성예준의 눈빛에서 불이 번쩍였다.


“그렇다고 사리 분별이 분명하신 부회장님께서 애들 코 묻은 돈이나 만지는 영화판에 투자하실 것 같습니까?”

“......”

“초대 회장님의 꿈이자 그룹 미래를 좌지우지할 자동차 산업은 접고? 설마요?”

“TF팀. 일정을 좀 앞당기죠. 슬슬 언론홍보도 신경을 쓰고.”

“다 제가 알아서 진행하고 있습니다. 예준군은 그냥 제가 시키는 대로만 하면 돼.”

“언론도 언론이고, 우선 아버지 마음을 사로잡을만한 뭔가가 있어야겠어요.”


현영관은 헛웃음이 터져 나오려는 걸 참았다.

자신이 생각했던 것 보다 성예준은 정신적으로 아직 어리고, 유약했다.

저래서 도대체 어떻게 이 거대한 그룹을 운영하겠다는 것인지 의문을 들 정도였다.


“TF팀 발족하는 날, 르노 관계자들도 좀 부르는 건 어떻습니까? 우선 그 자리에서 양해각서라도 써야 언론도 관심을 갖을 것이고, 아버지도 좀 고개를 끄덕이지 않겠어요?”

“흠, 그렇다면...”


고민하는 듯 턱을 쓰다듬는 현영관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떠올랐다.


“자금이 좀 더 필요할 것 같은데.”

“돈이라면 이미 많이 줬을 텐데요.”

“파리에서 한국까지 비행기로 10시간이 넘습니다. 몇 푼 찔러줬다고 그 콧대 높은 나라 놈들이 그 생고생을 감당하려고 할까요?”


성예준이 곤란하다는 듯 마른 세수를 했다.


“뭘 걱정하십니까? 성예준. 이름만 대면 돈줄 대려는 곳은 쌔고 쌨습니다.”


현영관이 참치회를 두 점씩 집어 탐욕스럽게 입안으로 밀어 넣었다.


***


“저를 보자고 하셨다고요?”


KG그룹 사옥 옥상.

네이비색 점퍼를 입은, 자신을 영성기술이란 회사의 대표라고 밝힌 중년의 남자가 내 앞에서 머뭇거리더니, 눈을 질근감고 90도로 허리를 굽혔다.


“안녕하십니까! 영성기술 대표 강영성 입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에 나도 모르게 나는 절로 한 발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뭐하시는 겁니까? 지금.”

“KG 전자에 부품을 납품하고 있습니다.”

“네?”

“마그네트론. 전자레인지에 고주파를 발생시키는 장치를 KG전자에 3년째 납품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뜬금없는 말을 내뱉던 중년 남자는 안주머니에서 주섬 주섬 두툼한 봉투 하나를 꺼내 나에게 내밀었다.


“이게 뭔가요?”

“최근에 KG전자에서 단가를 더 내리라고. 그러지 않으면 값산 중국산으로 대체하겠다고...”


중년 남자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지금 회사가 처한 상황을 얘기했다.


“왜 그런 이야기를 저한테 하시는 거죠? 그리고 이 봉투는 뭡니까?”

“20년 동안 오로지 이 부품 개발에 매진해 왔습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중국산으로 대체 한다니요. 분명히 불량률도 엄청 날 겁니다. 사후관리도 전혀 되지 않을테고요.”

“사장님, 저는 영상사업단 직원입니다. 전자 쪽은 제가...”

“부회장님 아드님이시잖습니까.”


그제야 나는 상황이 정리되었다.

KG전자가 하청 업체에 단가를 낮추지 않으면 중국산 부품으로 대체하겠다는 압박을 가했고, 하청 업체 사장은 어떻게든 이 상황을 넘기기 위해 뇌물을 안주머니에 품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KG그룹 일가 중 하나인 나를 찾아온 것이다.


“혹시 이 봉투, 나 말고도 돌린 사람들이 많습니까?”

“네?”

“솔직히 얘기하십시오.”


네 단호한 태도에 당황하던 중년 남자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KG 전자 부사장, 사장. 거기에 일가 친인척들까지요.”

“그렇게까지 했는데도 단가를 내리랍니까?”

“제가 오죽했으면 물어 물어 여기까지 왔겠습니까. 흑.”


결국 그 중년 남자는 짧은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잘 들으세요. 이럴 돈으로 제품에 더 투자하십시오.”

“네?”

“영업사원도 더 뽑고, 마케팅도 확장하세요.”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한 중년 남자는 젖은 눈으로 나를 멀뚱히 쳐다볼 뿐이었다.


“제품에 정말 자신이 있다면요. 전자레인지. KG만 만듭니까? 그리고 한국만 시장입니까? 그깟 돈 몇 푼으로 상황이 바뀔 거라고 생각했습니까?”


내가 더욱 세차게 중년 남자를 몰아 부치자, 그는 단념한 듯 봉투를 다시 품 안에 넣었다.


“죄송합니다. 오늘 일은 없던 걸로 해주십시오.”


다시 꾸벅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 중년 남자.

내 입에서 짧은 한숨이 나왔다.


“나라 경제가 이딴 식으로 돌아가니깐 경제 위기가 오는 겁니다!”


답답한 마음에 나는 그의 등 뒤에 소리를 쳤다.

1990년대엔 아무리 작은 공장이라도 기업활동을 하기 위해서 뇌물을 주고받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는 말을 까마득한 회사 선배에게 듣긴 했었다.

그런데 직접 경험해 보니 뒷골이 당길 지경이다.

나는 멀어져 가는 중년 남자를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뇌물 행위를 제재하거나 감시할 방법도, 의지도 없던 시절.

은행이 차명 계좌를 당연한 듯 받아 주던 정말 답도 없는 시대다.

그런데 어쩌나. 이 좋은 시절도 이제 곧 끝이 날 것 같은데.



끝.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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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18. 공룡이 나타났다!(2) 24.09.10 655 9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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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015. 여왕의 귀환(1) 24.09.07 677 9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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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013. 왕국이 잃어버린 조각 24.09.05 689 10 11쪽
13 012. 전쟁의 시작 24.09.04 690 9 11쪽
12 011. 스티븐 스필버그(4) 24.09.03 693 10 12쪽
11 010. 스티븐 스필버그(3) 24.09.02 701 10 11쪽
10 009. 스티븐 스필버그(2) 24.09.01 703 1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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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007. 화형식(3) 24.08.30 743 11 12쪽
7 006. 화형식(2) 24.08.29 752 11 11쪽
6 005. 화형식(1) 24.08.28 764 12 11쪽
5 004. 첫 대면 24.08.27 789 12 10쪽
4 003. 재벌집 막내 아들이 아닌 재벌집 망나니라니! 24.08.26 827 11 11쪽
3 002. 재벌집 마약쟁이 (소제목수정) 24.08.26 893 12 11쪽
2 001. 성도희가 죽었다 24.08.26 985 12 14쪽
1 000. 프롤로그 (수정) 24.08.26 1,011 13 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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