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집 망나니는 엔터재벌이 너무 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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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5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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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9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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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6. 화형식(2)

DUMMY

006. 화형식(2)


KG그룹 본사, 출근하자마자 성민철 회장은 회의실로 임원진들을 불러 모았다.


“내가 몇 년 동안 불량률 제로. 이제는 양이 아닌 질로 승부해야 한다고 수백 번을 강조했어. 그런데 지금 나아진 게 무엇이 있나.”


아침부터 시작된 부회장의 불호령에 임원진 모두 잔뜩 긴장한 눈치다.


“지금 국내 시장에 선택지가 KG 밖에 없는 것 같지? 만에 하나 미국산, 일본산 제품들이 관세 없이 우리 시장에 마구잡이로 풀린다고 생각해봐. KG가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아?!”


탁! 성민철이 책상을 한번 치고는 임원들 한명 한명에게 따가운 시선을 보냈다.


“정신들이 다 썩어 빠졌어. 여기 모인 임원진부터 생산 공장 말단 직원들까지 모두 다 말이야! 정신을 제대로 바짝 차리게 본때를 보여줘야 해!”


성민철의 옆자리에 앉은 고영구 전략기획본부장이 크흠, 하고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부회장님, 그룹 차원에서 직원 교육을 강화하도록 하겠습니다.”


부회장을 진정시키려 한 말이었지만, 오히려 그 말이 이미 불이 붙은 성민철의 심기에 기름을 끼얹는 격이었다.


“교육? 부회장이 수백 번을 불량률 제로를 외치고 다녔는데 여태껏 변한 게 없었어. 그런데 교육? 어떤 교육? 강당에 직원들 몇 명 앉혀 놓고 대학 교수 불러다 지루한 교양 강좌나 열 속셈 아니야?! 그러고 우리 교육 잘 했습니다 하고 나한테 보고할 거지?”


전략기획본부장은 침을 삼키며 부회장의 눈치를 살폈다.


“부회장님 혹시 생각하고 계신 거라도...”


성민철이 기다렸다는 듯 눈을 반짝였다.


“KG 제품들, 컴퓨터부터 티비, 세탁기, 핸드폰까지 싹 다! 공장 마당에 모아 놓고 불을 지를 생각이야.”


처음엔 부회장이 열이 뻗쳐 그냥 하는 소리라 여기고, 임원들은 성민철의 눈치를 살필 뿐이었다.


“내가 지금 농담하는 걸로 보이나?! 그 정도는 해야 다들 정신을 차릴 것 아닌가? 다들 어떻게 생각하나?”


농담이 아니라니. 그제야 임원진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고영구 본부장을 시작으로 임원들이 그제야 다급하게 입을 열기 시작했다.


“그룹 이미지에 좋을 게 하나도 없습니다. 부회장님.”

“직원들 사기도 생각하셔야 합니다.”

“명현 전자와 비교 했을 때 우리 쪽 불량률은 그리 높은 편도 아닙니다.”

“맞습니다. 부회장님. 국내기업들과 비교 했을 때 그 누구도 KG의 기술력을 따라올 순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 제품을 우리 손으로 불에 태운다니요.”

“너무 극단적이십니다. 교육을 강화하는 쪽으로 생각을 해보시지요.”


탁! 성민철이 다시 책상을 손바닥으로 치자 술렁거리던 회의실이 다시 잠잠해졌다.

노기 어린 눈빛으로 자신의 의견을 극구 반대하는 임원들을 훑는 성민철.


그의 시야에 이질적인 무언가가 포착되었다. 하나같이 흰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맨 임원들 사이에 카키색 점퍼를 아무렇게나 걸치고, 수염이 덥수룩한 누군가가 하품까지 하며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성민철이 턱짓을 하며 현영관에게 나지막이 물었다.


“저 사람은 누구야?”

“아 네... 영상사업단에 장지욱 단장입니다.”

“영상사업단장도 임원인가?”

“그게 좀 애매하긴 한데...임원 회의 소식 듣고 제 발로 들어온 거라.”

“씁. 그래? 크흠. 거기! 영상사업단장!”


부회장의 입에서 자신의 직함이 불리자, 장지욱은 졸음에 반쯤 감겨 있던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떻게 생각하나, 자네는?”

“네? 네...그러니깐. 제 생각은... 말입니다.”


회의실의 모든 사람들이 시선이 장지욱의 입으로 모여졌다.


“크흠. KG 제품을 산처럼 쌓아 놓고 화형식을 거행한다? 캬~ 비쥬얼적으로 임팩트가 대단할 것 같습니다. 영화로 치면 30년 후에도 회자 될 만한 장면이 될 것 같은데요.”


듣던 중 반가운 소리다. 마음을 굳힌 성민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결정된 거야! 잘못되면 책임은 내가 져! 차질 없이 준비하도록 해! 최대한 빨리!"


***


‘이 모든 걸 다 계산하고 한 말일까?’


간만에 가족과 함께 하는 저녁 식탁.

성민철은 자신의 맞은편에 앉은 둘째아들 성예석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전자 제품 화형식. 분명 충격이 클 것이다.

생산공장 말단 직원에서 임원들에게까지 이제는 정말 변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제대로 심어줄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이 모습이 뉴스로 방영되면 값싼 저품질 제품이라는 KG 제품을 향한 대중들 불만도 어느정도는 잠재울 수 있다. 한마디로 내외부 인식의 큰 변화를 가져다줄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비싼 돈 주고 탑스타를 고용해서 광고 열 편을 찍는 것보단 훨씬 남는 장사다.


‘몇 달 전만 해도 마약에까지 손을 대던 망나니였어.’


평소엔 집구석에 코빼기도 잘 안 비치던 녀석이, 이제는 저녁 시간에 맞춰 함께 식사까지 하고 있다.


‘이제야 좀 집구석 같네.’


성민철의 형, 성민수. 그가 아버지 성여홍을 배신한 이후로 집안에 긴 그림자 같은 것이 드리워졌다. 혹자는 성민수의 몫까지 손에 쥐게 되었다면서 성민철을 추켜세웠다. 하지만 KG그룹은 이미 한 사람이 모든 것을 결정하고 책임지기엔 너무나 커져 있었다. 그래서 홀로 남겨진 성민철에겐 하루하루가 부담과 불안의 연속이었다.

둘째 아들의 선을 넘는 방황에 제대로 손을 대지 못한 이유도 여기 있었다. 부자간의 갈등으로 아들이 아버지를 배신하는 일은 이 집안에 더 이상 있어서는 안 된다. 차라리 망나니가 될지언정 배신자는 되게 하지 말자는 생각에 둘째 아들에게서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정말 정신을 차린 거라면...그렇다면 여한이 없다.’


성민철은 나란히 앉아 밥을 먹고 있는 예준과 예석, 두 아들을 번갈아 바라봤다.


“성예석.”

“네.”

“내일 어디 좀 같이 가지.”

“어디를요?”

“평택.”

“평택이요? 거기는 왜...”

“네가 말한 그 이벤트 말이다.”

“이벤트라면...”

“그래. 설마 벌써 잊은 거냐?”

“혹시... 화형식 말씀하시는 건지...?”

“그래. 그 화형식을 내일 평택 공장에서 하기로 했다.”

“......”

“왜? 싫으냐?”

“아닙니다. 가겠습니다.”

“그래. 날이 차다. 옷 단단히 챙겨 입어.”


***


다음날.

나는 유철규와 함께 예정된 시간보다 일찍 평택에 도착했다.


KG전자 평택 생산 2공장.

평소 같았으면 공장 직원들이 짜투리 시간을 활용해 족구나 즐겼을 앞마당에,

KG 마크가 새겨진 전자 제품들이 무덤처럼 쌓여있었다.

그 제품 주위에 모인 사람들은 제 자식 장례라도 치르는 우울한 표정이다.


“입사 이래 가장 충격적인 순간이네요.”


화형식을 기다리는 전자 제품 무덤을 바라보는 유철규의 입이 벌어졌다.


“그 정도예요?”

“네. 도련님은 그저 장난처럼 한 말일지도 모르겠지만 KG 직원들한텐 아마 자기 장례 치르는 느낌일걸요?”

“그럼 성공이네요.”

“네?”

“오늘 죽고, 이제 다시 태어나야죠. 불량률 제로, 고품질 생산, 세계 일류. 오늘이 KG그룹이 그 목표를 향해 가는 진정한 시작점이 될 겁니다.”


유철규의 입이 더 벌어졌다. 하긴 망나니 성예석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다니, 많이 놀랐을 거다.


그때, 낡아 빠진 경차 티코가 마당을 가로질러 들어와 멈춰 섰다.


“아우! 드럽게 춥네. 날 한번 잘 잡았어.”


어울리지 않은 덩치, 카키색 점퍼와 덥수룩한 수염. 깜찍한 경차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은 한 사내가 차에서 내리며 투덜거렸다. 그리고 뒷좌석에서 커다란 카메라를 꺼내 어깨에 짊어지고 뷰파인더로 주위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그림은 허벌나게 멋지게 나와 불겠구먼. 허허, 세상에 이런 구경이 어딨겠어. 흐흐.”


나는 외모와 어울리지 않게 천진난만한 웃음을 흘리는 사내를 유심히 살피다가, 유철규에게 물었다.


“누구예요?”

“저 카메라요? 장지욱이라고. KG 영상사업단 단장이에요.”

“영상사업단?”


1990년 초반. 외화를 중심으로 영화와 비디오 시장이 조금씩 규모가 커지자, KG를 비롯한 몇몇 대기업들은 산하에 관련 부서를 만들었다. 그 과정에서 영화판에 있던 사람들이 영입되기도 했다고 들었다.


“KG그룹 임원치고는 좀 소탈하네요.”

“그게... 뭐 그룹 안에서도 영상사업단은 그냥 비싼 노가다꾼 이라는 인식이 좀 있어요.”

“노가다꾼? 그래도 같은 직원인데 그런 표현은 좀 그렇지 않나?”

“그게 다 이유가 있습니다. 저 처럼 입사 시험을 친 것도 아니고, 영화판에서 굴르던 사람들을 마구잡이로 데려온 거니깐... 편견이 좀 있다고 해야 할까? 그나마 처음 들어왔던 사람들도 지금은 대부분 나가고 없어요. 다들 워낙 자유로운 영혼들이기도 했고요. 이제 장지욱 단장이랑 그 밑에 한 서너 명 남아 있으려나?”

“그래서 단장이 직접 카메라를 들고 여기까지 온 거 군요.”

“간만에 할 일이 생긴 거죠. 영상사업단, 당장에 없어져도 이상할 게 없는 부서란 인식이 강한데... 이번 기회에 부회장님 눈에라도 띄어서 산소호흡기라도 달려는 거겠죠.”

“안타깝네요. 잘만 키우면 그룹 핵심으로 성장할 수도 있을 텐데.”

“에이, 도련님, 농담도. 글쎄요. 우리 영화가 미국에서 아카데미에서 상이라도 받으면 그럴 날이 올 수도 있겠죠, 뭐. 하하하.”

“농담 아닙니다. 큼.”


나는 정색하며 유철규를 쳐다봤다.


“아니, 뭐 저는... 네, 그럴 수도 있겠죠.”


유철규가 단념했다는 듯 입술을 쓸었다.


실제 KG 영상사업단은 IMF 여파로 1998년 해체된다. 2000년대 들어 한국영화 시장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한국 문화산업이 세계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이 1992년인 지금은 상상도 못 할 정도로 커지는 걸 생각하면 땅을 치고 후회할 일. 반면, 그 덕에 에덴 엔터테인먼트가 큰 경쟁자 없이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했지만.


"이제 회장님 오실 때가 됐는데."


유철규가 손목시계를 확인하고 고개를 들자 마침, 마당으로 검은색 벤츠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카메라를 어깨에 멘 장지욱 단장이 미친놈처럼 달리는 벤츠 앞으로 뛰어 들어갔다. 덕분에 급정거하는 벤츠.


“저, 저거 회장님 찬데. 저 새끼 미친 거 아니야?”


유철규가 기함을 했다. 앞 자리에서 현영관 비서실장이 내려 인상을 찌푸렸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촬영 삼매경에 빠져 있는 장지욱. 그리고 드디어 뒷좌석 문이 열리고 성민철이 모습을 드러내자, 흩어져 있던 직원들이 우르르 도열하며 그를 맞이했다.

성민철은 뒷짐을 쥔 채 운동장 한가운데 쌓여 있는 전자제품들을 가만히 쳐다봤다.

그의 시선이 전자제품 더미를 지나 나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침내 나와 눈이 마주친 성민철 부회장. 둘째 아들이 반갑다거나 멋쩍다거나 하는 평범한 반응 조차 없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그는 다시 시선을 옮기며 비서실장을 향해 입을 열었다.


"시작하게."


끝.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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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000. 프롤로그 (수정) 24.08.26 1,011 13 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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