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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5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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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5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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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3. 왕국이 잃어버린 조각

DUMMY

013. 왕국이 잃어버린 조각


짙은 갈색의 원목으로 짜여진 책장. 그 책장을 빼곡히 채운 온갖 종류의 책들과 서류들.

그 사이로 묵직한 집무용 테이블과 의자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성민철의 서재에 들어서자 알 수 없는 중압감이 몰려왔다.


‘내가 이곳을 들어와 보다니.’


서재. 아무나 함부로 침범할 수 없는 지극히 개인적인 공간이다. 때로는 중요한 결정이 내려지는 공간이기도 하고.

조금전, 아버지의 서재로 향하는 내 뒷모습을 보는 형, 성예준의 눈빛이 흔들리는 걸 보니 아마 큰아들인 그도 이곳에 발을 들여놓은 적이 거의 없는 듯했다.

테이블 위에 손을 가지런히 모아 올려놓은 성민철은 한동안 말없이 나를 주시했다.


“그래, 어떻더냐?”


주어가 없는 의문문. 그동안 내가 파악한 성민철의 말버릇 중 하나다.

그런 화법은 사람을 당황하게 한다. 그리고, 의도했든 의도치 않았든, 결국 저도 모르는 사이에 본심을 드러내게 한다.

스스로 그런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 나는 가만히 말없이 성민철을 응시했다.


“미국은 큰 나라다. 거기에 갔다 왔으면 보고 느낀 게 있을 거 아니야? 설마 내가 그 출장을 바람이나 쐬라고 허락했을 것 같으냐?”


결국 본심을 드러낸 건 내가 아닌 성민철이었다.

성민철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나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마치 내 생각이나 의도를 읽어 보려고 하는 듯했다.


“네, 아버지 말씀처럼 미국은 큰 나라, 대국大國입니다.”

“......”

“그런데 덩치가 크면 민첩하게 움직이기 힘든 법입니다. 반면에 우리나라는 작지만 그대신 빠르게, 민첩하게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성민철은 의자 등받이에 등을 기대고 두 손은 여전히 깍지를 쥔 채 나를 바라봤다.


“그럼. 빠르고 민첩하게 움직이면 네 형도 넘어설 수 있을 것 같으냐?”


예상치 못한 갑작스러운 질문에 나는 잠시 할 말을 찾기 위해 눈동자를 이리저리 움직여야 했다.

그런 나를 성민철은 놓치지 않고 관찰하는 듯했다.


“보아하니 그런 마음도 갖고 있는 것 같구나.”

“......”

“KG그룹. 여긴 네 생각보다 크고, 복잡하다. 거대한 왕국이란 말이다. 이 왕국을 제대로 다스리려면 그에 맞는 법이 필요하고, 질서가 필요하기 마련이다.”


성민철은 몸을 일으켜 내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와 멈춰 섰다.

그의 낮은 숨소리가 귓가에 들릴 정도의 거리였다.


“만약에 네 형을 넘어설 생각이라면 지금 당장 거둬들여라.”


나는 성민철의 눈가가 꿈틀거리는 것을 놓치지 않고 확인했다.

조금 전 내 마음을 꿰뚫어 보려던 날카로운 눈빛은 아니었다.

어쩌면, 나에게 동의를 구하는 간절한 눈빛일지도.


“혹시, 이 왕국에 질서를 깬 사람이 있었나요?”


나는 주저하지 않고, 성민철이 가장 아파하고 두려워하는 부분을 파고들었다.

아마 조금 전 성예준과 나의 대립을 보며 성민철은 본능적으로 승계 갈등으로 인해 이 왕국에서 쫓겨난 형, 성민수를 떠올렸을 것이다.

자신의 대에 이런 비극을 물려주고 싶진 않겠지. 그러니 차라리 둘째의 방황을 다행이라 여기며 그동안 방관했을지도 모른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

“저는 그 질서를 깰 마음이 없습니다.”

“...진심인 거냐.”


성민철의 입가에서 짧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안도의 한숨일 것이리라.


“저는 단지...”


나는 성민철의 얼굴을 정면으로 응시했다.

이번에는 내가 본심을 드러낼 차례다.


“이 왕국이 잃어버린 조각을 회복하고 싶을 뿐입니다.”


***


새벽 3시 30분.

몇 차례 시도해 봤지만 잠이 오질 않는다.

성민철은 하릴없이 침대에 걸터앉았다.


- 이 왕국이 잃어버린 조각을 회복하고 싶을 뿐입니다.


어젯밤, 둘째 아들이 수수께끼처럼 남긴 말이 귓가에서 떠나질 않는다.

그리고 그 말이 오랜 세월 애써 묻어두었던 기억과 감정을 들추어내기 시작했다.


형, 성민수의 아버지를 향한 무모한 배반의 시도.

결과는 너무나 가혹했다.

끊는다고 끊어지지 않는 것이 혈육이라고 하는데,

아버지, 성여홍은 그를 단칼에 끊어내듯 미국으로 몰아냈다.


“잠이 안 와요?”


결국 옆에서 자고 있던 아내, 유희라도 결국 깨고 말았다.


“무슨 걱정 있어요?”

“그냥... 생각이 좀 많아져서, 요즘.”

“예석이 때문에요?”

“......”

“왜요? 이제 철 좀 들어보겠다고 하는데.”

“그 놈 속에 뭐가 든지 모르겠어.”

“나도요. 가끔은 저러다 또 무슨 큰일을 치려나 무섭기도 해요.”

“당신도 예석이 한테 신경 좀 써. 이제는. 예준이만 싸고돌지 말고.”

“네... 그런데 요새 그런 생각도 듭디다. 저 얘가 정말 우리 아들이 맞나 하고요.”

“무슨 소리야?”

“갑자기 변해도 너무 변했어요.”

“둘 다 똑같은 우리 자식이야.”

“그럼요. 우리 자식이죠.”

“...내일은 아버지한테 갔다 와야겠어.”

“그러게. 당신 아버님 안 뵌 지 꽤 됐어요.”


***


KG 중앙병원. 특실.


생명을 유지해 주는 복잡한 의료장비가 성여홍의 몸 이곳저곳과 연결되어 있다.

KG그룹 창업자, 성여홍. 그가 뇌출혈로 병원 신세를 진지도 3년이 다 되어간다.

특실의 문이 열리고 병원장과 의료진들을 대동한 채 성민철 부회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혈압, 혈중산소농도 모두 정상입니다. 당분간 생명에 큰 지장은 없을 겁니다.”


병원장이 머리를 조아리며 성여홍 회장의 상태에 대해 브리핑 했다.


“의식은?”

“기본적인 인지능력, 시각, 청각, 촉각. 일정부분 반응은 하고 계십니다.”


외부의 자극에 반응하는 건 가능하다. 청각도 정상이라 몇몇 질문에는 눈을 깜빡이며 단순한 의사 표시를 하기도 한다.


“...회복 될 가능성은?”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병원장이 깊이 머리를 숙이자, 그 뒤로 의료진들도 차례로 머리를 숙였다.

정상적인 의식 회복은 어렵고, 예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는 뜻이다.


“아버지와 단둘이 있고 싶네.”


성민철이 한마디에 병원장과 의료진들이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병실에 성여홍과 성민철, 부자가 덩그러니 남겨졌다.


“아버지 저 왔습니다. 민철입니다.”


끔뻑. 성여홍이 눈을 길게 한번 끔뻑거렸다.

알았다는 표시다.


“죄송합니다. 자주 찾아봬야 하는데.”


이번에는 눈을 끔뻑거리지 않은 채 허공만 응시하고 있는 성여홍.

서운하단 표시일까. 예전에는 아버지의 기침 소리에도 전전긍긍하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이젠 그럴 필요가 없다. 그 사실이 슬프게 다가왔다.

그 슬픔을 몰아내기 위해 성민철은 혼잣말을 이어갔다.


“아버지, 요새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예석이 말입니다. 아버지, 막내 손자. 그놈이 요새 정신을 좀 차렸습니다. 엉뚱한 일을 벌여서 신경이 쓰이긴 하지만...”

“그런데 예준이요. 그놈이 이제는 그런 동생놈 때문에 마음을 쓰는 것 같습니다.”

“이럴 거면 한 놈만 낳을 걸 그랬습니다.”

“...아버지도 이런 심정이었습니까?”


자식이 생기기 전까지, 형 성민수를 단번에 미국으로 쫓아낸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었다. 이해할 수 없음을 너머 두려운 존재이기도 했다.

하지만 아버지가 되어보니 그리고 그룹을 이끄는 총수의 자리에 앉아보니 성여홍을 이해하지 않으려야 이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성민수가 일으킨 ‘투서사건’은 단순히 부자간의 갈등이 아니었다. 성민수는 결국 KG그룹 전체에 돌이킬 수 없는 깊은 상처를 낸 것이다. 그런 그를 단순히 부정父情으로 감쌀 수는 없었다. 게다가 욕망에 사로잡혀 이미 눈이 돌아간 성민수는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돌이킬 생각이 없었다. 그런 그를 차라리 떨어뜨려 놓는 것이 성여홍과 KG그룹에게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성도희.


성민수의 딸. 그 아이가 깨어진 부자 관계를 이어주는 마지막 끈 같은 존재였다.


“도희, 그 아이가 나중에 성인이 되면 무엇이든 하고 싶단 걸 지원해 주거라.”


성여홍은 입버릇처럼 이야기하곤 했다. 손녀를 향한 애정 만큼은 숨길 생각이 없어 보였다. 성민수에게서 이루지 못한 것을 그의 자식은 해주길 바라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꿈꾸던 KG는 이게 아니었다.”


성도희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꼭 이렇게 결론이 나곤 했다.

아버지가 꿈꾸던 KG, 그 왕국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이제는 그 꿈, 그 왕국을 재건하기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식물인간이 되어 버렸다.

그런 성여홍을 가만히 응시하는 성민철의 입가에 긴 한숨이 새어 나왔다.


“아버지, 예준이가 말입니다. 이상한 이야길 했습니다.”

“왕국의... 잃어버린 조각을 찾고 싶다고요.”

“혹시, 그 녀석한테 저 모르게 무슨 이야기라도 하셨었습니까?”

“저는 아버지처럼은 하지 않을 겁니다. 두 놈 자식 모두 잃지 않고 제 밑에 둘 겁니다.”

“...제가 별 이야길 다합니다. 다음에 다시 오겠습니다. 아버지.”


성여홍의 손이라도 한번 잡아볼까. 뻗었던 손을 성민철은 결국 다시 가만히 거두었다.

온기가 사라진 그 손을 잡으면 감정이 와르르 무너질 것 같아서.

그렇게 성민철은 뒤돌아서서, 병실문을 나섰다.


끔...뻑.


그런 둘째 아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성여홍이 길게 한 번 눈을 끔뻑였다.


***


“친애하는 7천만 국내외 동포 여러분.... 오늘 우리는 그렇게도 애타게 바라던 문민 민주주의의 시대를 열기 위하여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국민 여러분. 저는 14대 대통령 취임에 즈음하여, 새로운 조국건설에 대한 시대적 소명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저는 신한국 창조의 꿈을 가슴 깊이 품고 있습니다. 신한국은 보다 자유롭고 성숙한 민주사회입니다. 문화의 삶, 인간의 품위가 존중되는 나라입니다.... 누구나 신바람나게 일할 수 있는 사회, 우리 후손들이 이 땅에 태어난 것을 자랑으로 여길 수 있는 나라, 그것이 바로 신한국입니다. 우리 모두 이 꿈을 가집시다.”


TV화면에서 김명삼 대통령이 취임사를 낭독하는 장면이 송출되고 있었다.


1993년 2월.

군부가 아닌 민주화 운동에 몸 담았던 정치인, 김명삼이 처음으로 대통령이 되어 ‘문민정부’가 시작되었음을 알렸다.


KG그룹은 그 어느 때보다 분주하게 돌아갔다.

김명삼의 취임사와 그의 공약들을 분석하여 앞으로 어떤 미래가 펼쳐질지 예측하여야 했다.

영상사업단도 예외가 아니었다. 끊임없이 전화가 울려대고, 장지욱 단장은 무언가 계속 업무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팔짱을 낀 채 TV에서 흘러나오는 역사의 한 장면을 눈에 담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저들처럼 분주히 움직일 필요가 없었다. 재벌 3세이기 때문은 아니다.


취임사를 낭독하는 김명삼 대통령. 그가 앞으로 남길 선명한 빛도, 그와 견줄만한 검은 어두움도 나는 이미 알고 있었기...때문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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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014. 대통령 김명삼 24.09.06 684 10 11쪽
» 013. 왕국이 잃어버린 조각 24.09.05 691 10 11쪽
13 012. 전쟁의 시작 24.09.04 692 9 11쪽
12 011. 스티븐 스필버그(4) 24.09.03 694 10 12쪽
11 010. 스티븐 스필버그(3) 24.09.02 704 10 11쪽
10 009. 스티븐 스필버그(2) 24.09.01 706 10 12쪽
9 008. 스티븐 스필버그(1) 24.08.31 721 10 11쪽
8 007. 화형식(3) 24.08.30 747 11 12쪽
7 006. 화형식(2) 24.08.29 755 11 11쪽
6 005. 화형식(1) 24.08.28 767 12 11쪽
5 004. 첫 대면 24.08.27 792 12 10쪽
4 003. 재벌집 막내 아들이 아닌 재벌집 망나니라니! 24.08.26 830 11 11쪽
3 002. 재벌집 마약쟁이 (소제목수정) 24.08.26 893 12 11쪽
2 001. 성도희가 죽었다 24.08.26 986 12 14쪽
1 000. 프롤로그 (수정) 24.08.26 1,014 13 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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