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집 망나니는 엔터재벌이 너무 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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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5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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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30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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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7. 화형식(3)

DUMMY

007. 화형식(3)


“우리는 자랑스러운 KG그룹의 일원으로서, KG 제품 불량률 제로가 되는 그날까지 뼈를 깎는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선서를 하는 앳돼 보이는 공장 여직원의 목소리가 떨렸다.

목소리가 떨리는 것이 당연했다. KG 전자 평택 공장 전 직원과 서울에서 내려온 KG그룹 성민철 부회장과 임원단들. 방송국 중계 카메라까지. 모든 이들의 시선이 이 어린 직원에게 집중되고 있었으니.


선서가 끝나자 시작된 화형식. TV, 세탁기, 핸드폰, 전자레인지, 비디오플레이어 등등. 사람 키를 훌쩍 넘게 쌓아 올려진 KG 전자 제품들 위로 석유가 쏟아 부어졌다.


화르르.


잠시 후 불이 댕겨지자, 장관이 연출되었다. 수 천, 아니 수억원 대의 제품들을 삼킨 시뻘건 불길 위로 검은 연기가 솟구쳤다.

몇몇 마음이 약한 직원들 눈에는 눈물까지 그렁그렁 맺혔고, 서울에서 새벽부터 차를 타고 달려온 임원들은 하늘만 바라보며 긴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미래를 앞당겼어.’


전생의 삶에서 KG 전자의 이른바 ‘화형식’은 지금으로부터 2년 후인, 1994년에 일어났던 일이다.

2018년 성민철 회장이 타계하고 그의 삶을 회고하는 한 방송에서는 그가 KG를 세계적인 기업으로 키운 극적인 장면 중 하나로 이 ‘화형식’을 꼽을 정도였다.


일어난 시기 말고도 바뀐 것이 있다면 ‘화형식’의 아이디어가 성민철 부회장이 아닌 그의 둘째 아들인 성예석, 나의 머리에서 나왔다는 것.


나는 시종일관 성민철의 반응을 살폈다. 한동안 감정을 알 수 없는 특유의 표정으로 제품들이 불에 타들어 가는 모습을 지켜보던 그는, 뒷짐을 지고 돌아서더니 고개를 서너 번 가볍게 끄덕였다.


‘마음에 들었다는 사인이다.’


나는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 이벤트가 마음에 들었다면, 앞으로 내가 해보려는 일도 조금은 수월해질 수 있을 것이다.


***


“신문과 방송. 모두 어제 화형식 이야기뿐입니다.”


다음날. 이른 아침부터 비서실장 현영관이 부회장실 문을 두드렸다. ‘화형식’의 반응을 전하기 위함이었다.


“직원들 분위기도 100%, 아니 200% 바뀌고 있습니다. 임원들도 오늘은 다들 본사가 아닌 현장으로 출근했습니다. 충격이 대단했던 모양입니다. 이번엔 뭔가 제대로 바뀌긴 할 것 같습니다. 부회장님.”


비서실장의 보고를 받은 성민철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올라갔다.


“아침부터 호들갑은. 나도 다 알고 있어.”

“탁월한 결정이셨습니다. 이번에 또 배웁니다. 부회장님.”

“어디 이게 내 머리에서 나온 생각인가.”

“네?”

“예석이, 그놈 머리에서 나온 거잖아.”

“아... 그래도 어쨌든 구체화하고 결정하신 건 부회장님께서···.”

“뭘 해주면 좋겠나?”

“네?”

“예석이 그놈한테 뭘 해주면 좋겠냐고. 그놈도 이제 회사에 힘을 보태야지.”

“외람되지만 지금은 좀 지켜보시는 게...”

“왜? 비서실장 눈엔 아직도 약에나 손대는 망나니로 보여?”

“아닙니다. 그런 뜻이. 예석군, 아직은 어리기도 하시고...”

“스물세 살이면 성인이네. 성인. 지 밥벌이할 나이라고.”

“네, 부회장님 뜻이 그러시다면... 성예준 과장처럼 건설 쪽 부서부터 차근차근 경험을 하게 하시죠. 아니면 예석군이 아이디어가 좋으니, 기획실도 좋은 선택지가 될 것 같습니다.”

“그래? 흠... 그래. 성예준 과장이 추진력이 장점이라면 예석이는 이 머리, 아이디어가 좋단 말이야.”

“기획실 쪽으로 자리 하나 만들라고 해두겠습니다.”

“서둘지는 말고. 이놈 생각도 직접 한 번 들어봐야겠으니깐.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도통 모르겠단 말이지... 비서실장, 집에 전화 한 통 넣어봐.”

“댁으로요?”

“그래, 간만에 둘째 놈이랑 점심이나 하게.”

“네. 식당은 어디로 예약을 할까요?”

“흠. 예석이 더러 정하라 그래. 뭐, 햄버거든 피자든. 요새 젊은 놈들 좋아하는 거 나도 오래간만에 맛 좀 보게.”


***


한촌 도가니탕.

2020년대엔 전국에 가맹점이 200개가 넘는 이름만 대면 다 아는 유명 프랜차이즈지만,

1992년 지금은 시장 한구석에 자리 잡은, 단골에게나 유명한 평범한 도가니탕 집이다.


성민철 부회장이 점심을 같이하겠다고 하니, 식당은 알아서 정하라는 비서실 전화에 나는 이곳, 한촌 도가니탕을 지목했다.


이 평범한 국밥집이 유명해진 건 2000년대 성여홍 회장 타계 후 성민철이 정식 회장 자리에 오르면서 진행한 회고록 형식의 잡지 인터뷰 기사를 통해서였다. 그 기사에 의하면 성여홍 회장은 종종 어린 성민철 회장의 손을 잡고 한촌 도가니탕을 찾았다고 한다. 그 기사 덕분에 KG그룹 회장 맛집으로 소문이 나 유명해지기 시작해, 200개 프랜차이즈 기업으로 성장한 것.


비서실에서 보내 준 차를 타고 식당에 도착했다.

이미 정장을 차려입은 KG그룹 직원들이 몇몇 테이블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한 쪽에 마련된 방에 성민철 부회장이 앉아 있었다.


“오셨어요?”

“예석이 네가 여길 어떻게 알아?”

“여기요? 아직 유명하진 않아도 단골들한테 소문이 자자한 집이에요.”

“그, 그래?”

“아버지도 좋아하실 것 같아서 여기로 정했어요. 물론 저도 종종 오는 곳이고요.”


믿을 수 없다는 듯, 성민철의 눈이 가늘어졌다.

젊은이들이 좋아한다는 피자나 햄버거, 아니면 호텔에 딸린 고급 식당 정도를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인 성여홍 회장과 자신만 아는 비밀 장소 같은 식당으로 점심 약속 장소를 정할지는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충격이라도 받을 걸까? 아니면 이 장소를 어떻게 내가 알고 있는지, 의문이 풀리지 않은 걸까? 성민철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내가 선수를 칠 순간이다.


“뭘 원하는지 물어보고 싶으신 거죠?”

“뭐?”

“속만 썩이던 제가 공항에 갑자기 나타나고, 아버지 마음에 드는 아이디어도 꺼내 놓고. 궁금하실 것 같아서요. 제가 무슨 생각으로 이러는지.”


마침, 김이 모락모락 나는 도가니탕이 식탁 위에 올려졌다.

도가니탕을 가만히 쳐다보는 성민철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좀처럼 자기감정을 드러내거나,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는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자신의 아버지와 추억이 깃든 장소에 이제는 제 아들과 이렇게 얼굴을 맞대고 앉아 있다?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그래. 정말 원하는 게 있는 게냐?”


내가 원하는 거? 앞으로 30년 동안은 상승 곡선을 그리며 성장할 KG 주식을 달라고 할까. 내가 알고 있는 미래지식을 이용해서 엄청난 부를 축적하게 종잣돈을 좀 달라고 해 볼까. 그런 생각도 해 봤다.


하지만.


성민철. 지금은 KG그룹 부회장이자 앞으로 제2대 회장이 될 사람. 그래서 한국, 아니 세계 경제를 쥐고 흔들 수 있을 만큼 엄청난 부와 권력을 소유하게 될 인물.

그가 지금 내 앞에, 아버지란 이름으로 앉아 있다. 이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이 모든 것을 얻는 것이다. 이 식당도 그 마음을 얻기 위해 선택한 곳이다.

그리고 환생, 빙의, 다중 우주... 무엇이 되었든. 1992년, 성예석. 내가 이 시대, 재벌 집 둘째 아들이 된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성민철의 마음을 얻는 일이 우선이다.


나는 말없이 도가니탕 국물을 떠서 맛을 보았다. 진한 사골 국물이 식도를 타고 온몸으로 퍼지는 기분이었다.


“내가 하는 일이 궁금하다고 했었지?”


아들의 침묵에 안달이 난 아버지가, 답을 재촉하듯 다시 입을 열었다.


“......”

“그렇다면 회사로 들어와야 할 거다. 네 형처럼.”

“......”

“기획실 쪽으로 자리 하나 만들어 두라고 할 셈이다. 처음부터 높은 자리 앉을 생각하지 마라. 네 형도 대리부터 시작해서 이제 기껏해야 과장이다.”


나는 가만히 숟가락을 내려놓고, 성민철을 쳐다봤다.


“왜? 싫으냐? 누구 밑에서 지시받고 일할 생각 하니깐 밥 맛이 떨어져?”


성민철의 눈빛이 다시 날카로워졌다.


“아버지.”

“...그래.”

“저는 영상사업단에서 일해보고 싶습니다.”

“뭐? 영상사업단?”

“네.”


성민철은 적잖이 당황한 듯 보였다. 날카로운 눈빛은 다시 사그라들고, 생각을 정리하려는 듯 눈동자를 바삐 움직이기 시작했다.


“거긴 배울 게 없어. 조금 더 지켜보다가 영 메가리 없다 싶으면 내후년쯤 걷어낼까 하는 부서다. 영화니 대중문화니 하는 거. 한국에선 딱히 미래가 안 보여. 내가 볼 땐.”

“정말 확신하세요?”

“뭐?”

“영화니 대중문화니 하는 거. 딱히 미래가 안 보인다는 거요.”

“예석아, 영상사업단 거기는 발족시키고 여태까지 적자다 적자. 그건 다른 기업들 영상 부서 사정도 마찬가지고. 게다가 배울 것도 없어. 죄다 영화쟁이들만 모아 둔 곳이라. 기업가는 말이다. 돈벌이가 되는데, 앞으로 돈벌이가 될 곳. 거기에 엉덩일 붙이고 앉아 있어야 되는 법이다.”

“돈벌이. 그게 되면요?”

“뭐?”

“영화니 대중문화니 하는 게, 돈벌이가 되면요? 저는 앞으로 그게 큰 돈이 될 것 같아서 영상사업단으로 가겠다고 말씀드린 거예요.”

“네가 아직 뭘 잘 모르는구나. 영상사업단은 안 된다.”

“그럼 아버지, 저랑 내기 할까요?”

“뭐?”

“돈 되는 걸 보여 드리면 되죠? 영화니, 대중문화니 하는 게.”

“......”

“일 년만 시간을 주세요. 그럼. 돈 된단 걸 증명해 보일 테니깐.”

“만약, 못한다면? 증명을.”

“그땐, 아버지가 원하시는 대로 하죠.”

“그 약속 지켜야 한다.”

“증명하면요?”

“뭐?”

“내기잖아요. 제가 영상사업단 적자를 흑자로 돌려놓으면 아버지도 저한테 뭔가 약속하셔야 할 것 같은데요.”

“그래, 그 땐 네가 원하는 걸 들어주는 걸로 하지.”

“약속하신 겁니다.”


나는 계약이 성사되었다는 표시로 깍두기 하나를 성민철의 밥그릇 위에 얹어 주었다.


***


“회장님, 영상사업단은 배울 게 없습니다.”


아들과의 식사를 마치고 본사로 향하는 차 안.

영상사업단에 아들 예석이 들어갈 자리를 만들라는 부회장의 지시에 비서실장 현영관이 고개를 저었다.


“해보겠다잖아. 지도 무슨 생각이 있겠지.”

“부회장님, 그래도 예석군을 이제 만들어진지 2년밖에 안 된 적자 부서에 보내시는 건...”

“비서실장.”

“네, 부회장님.”

“예석이 그 놈이 말이야.”

“......”

“도가니탕 맛을 알아.”

“네?”

“어쩌겠나. 입맛까지 지 할애비, 애비를 닮았는데... 해보고 싶다는데 하게 해줘야지.”


성민철이 가만히 창밖을 내다봤다.

종로 대한극장. 공교롭게 영화관이 눈에 들어왔다.

1958년 개관하여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국내 최대규모의 영화관.

영화관 앞으로 많은 사람들이 표를 끊기 위해 줄을 서 있었다.

-미스터 맘- 페인트칠로 조악하게 그려진 영화 간판과 영화 제목은 성민철의 눈에는 유치하게만 비춰졌다.


“저게... 저런게 돈이 된다고? 맹랑한 자식. 그래, 거기서 고생 좀 해봐라. 지도 돈 버는 게 얼마나 삭신이 쑤시는 일인지 경험해 봐야 알지...”


성민철의 입꼬리가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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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011. 스티븐 스필버그(4) 24.09.03 694 10 12쪽
11 010. 스티븐 스필버그(3) 24.09.02 704 10 11쪽
10 009. 스티븐 스필버그(2) 24.09.01 706 10 12쪽
9 008. 스티븐 스필버그(1) 24.08.31 719 10 11쪽
» 007. 화형식(3) 24.08.30 747 11 12쪽
7 006. 화형식(2) 24.08.29 755 1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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