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계 붉은 옥수수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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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신
작품등록일 :
2024.08.27 13:28
최근연재일 :
2024.09.17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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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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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8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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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엘리베이터를 타고 2

DUMMY

미친 듯이 버튼을 눌렀다.


눈동자는 무시무시한 속도로 달려드는 미치광이 거인을 향해 있었다.


거칠게 숨을 내뱉었다. 심장이 마구 요동치며 가슴이 위아래로 들썩였다.


그런 나와는 달리 놈에게선 지친 기색 따윈 찾아볼 수 없었다.


가면 사이로 새까만 눈동자가 엿보였다.


어두운 밤보다 훨씬 더 검고 진득한 두 눈. 그 눈동자는 비정상적으로 너무 커서 흰자위가 아예 없는 것 같았다.


낫이라도 들고 있었더라면 죽음의 사자처럼 느껴졌을 정도였다.


...징글징글하게도 놈은 여전히 쇠망치를 손에 쥐고 있었다.


‘저걸로 날 짓뭉개 버리려는 건가. 뼈를 가루로 만들고 살점은 발라서 이빨로 뜯어 먹으려고?’


내 눈에 비친 놈의 모습은 사람이 아닌 피에 굶주린 악마 같았다.


가면 속 두 개의 눈구멍에서 유황불이 솟아오르는 듯 갑자기 놈의 눈동자가 이글거리며 타올랐다.


그 모습을 보자 뒷덜미가 서늘해졌고, 온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손가락이 여전히 버튼 위에 올려져 있다는 거였다.


몇 층을 누른 건지는 몰랐으나, 그런 건 안중에도 없었다.


‘꺼져버려!’


다급한 맘과는 달리 엘리베이터 문은 너무 느리게 움직였다.


엄청난 속도로 건물 바닥을 가로지른 놈이 내게로 손을 뻗으려는 순간, 그리고 이글거리는 눈동자 속으로 내 몸이 빨려 들어가려던 그때 다행히도 엘리베이터 문이 닫혔다.


이윽고.


놈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엘리베이터가 움직였다.


-끼이익!


귀에 거슬리는 소리.


머리 위 불 켜진 숫자가 눈에 들어왔다.


1, 2, 10, 27 ...


눈을 의심했다.


벽면에 붙어 있는 버튼으로 시선을 돌렸다.


전 층에 불이 들어와 있었다. 겁에 질린 탓에 정신없이 버튼을 마구 눌러서 그런 것이라 생각했다.


얼굴을 찌푸리며 고개를 치켜들었다.


35... 43.. 50 ... 숫자가 제멋대로 커지고 있었다.


본능적으로 달갑지 않은 일이 벌어지려 한다는 걸 직감했다.


층수를 알리는 숫자는 멈출 줄 몰랐고, 그에 따라 심장의 속도 또한 전속력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망할.


고장 난 엘리베이터를 타다니.


이 건물은 기껏해야 10층 높이밖에 되지 않았다.


그보다 아래거나 한두 층 더 높을 수도 있겠지만.


-슈슈슉!


우주선 엔진처럼 들려오는 엘리베이터 작동 소리.


...엘리베이터는 이제 100층을 향해 질주하고 있었다.


이러다 우주 끝까지 갈 기세였다.


체감상 지금쯤이면 벌써 10층 꼭대기에 도착했어야만 하는데.


급히 비상 버튼을 눌렀지만, 엘리베이터는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이대로 꼼짝없이 고장 난 기계 안에 갇혀 버리고 말 거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파고드는 순간, 갑자기 숨쉬기가 힘겨워졌다.


뱃속은 뒤집힐 것만 같았고, 심장은 덜커덩거렸다.


이 망할 놈의 고철 덩어리의 운명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바닥에 처박혀 찌그러지는 거. 쓰레기가 될 숙명이었다.


피 묻은 쇠망치를 들고 있는 미친 거인에 이어 이번엔 고장 난 엘리베이터라니.


다음번엔 뭐가 날 기다리고 있을까.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엘리베이터 때문에 몸을 제대로 가눌 수조차 없었지만, 그래도 정신을 잃지 않으려 애쓰며 연신 심호흡을 했다.


내 손은 여전히 비상벨을 두드리고 있었다.


“멈춰! 멈추라고!”


요란스레 소리를 내지르던 그때였다.


엘리베이터가 갑자기 움직임을 멈췄다.


-덜컹!


반동으로 인해 몸이 심하게 흔들렸다.


수초 후.


온몸이 종잇조각처럼 구겨지거나 뼈가 부러지는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았음을 확인한 나는 잔뜩 움츠렸던 몸을 폈다.


-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치켜들었다.


잔뜩 굳은 얼굴. 눈앞에 보이는 숫자를 노려 보았다. 0층을 가리키고 있었다.


지하도 아니고, 지상도 아니고. 0층이라니.


여기가 4차원이라도 된다는 건가.


그런 건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이야기였다.


4차원 세계.


과거와 미래를 오가거나 죽은 자들의 세상을 이어주는 괴상망측한 공간. 꿈과 연결된 곳이기도 한 장소.


그 누구도 와본 적이 없는 곳에 내동댕이쳐졌을 거라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이 머릿속을 파고들었다.


“그럴 리가 없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갑작스레 미치광이 거인을 맞닥뜨리더니 정신이 어떻게 된 모양이었다.


아마도 여긴 1층이거나 맨 꼭대기 층일 것이다.


내가 탄 엘리베이터는 고장이 난 게 확실했고, 조만간 난 새로 얻은 원룸으로 돌아갈 게 분명했다.


그렇게 생각하며 문 앞을 똑바로 노려 보았다.


코앞에 미치광이 거인이 버티고 서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곧바로 방어태세를 갖췄다.


어차피 이젠 이판사판이었다.


만일 괴상한 가면을 뒤집어쓰고 피투성이 쇠망치를 든 놈과 다시 마주친다면 주먹을 날려 이빨을 몽땅 부숴버릴 작정이었다.


-슈슈슉!


듣기 거북한 소리에 이어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고, 바깥세상이 드러났다.


낯익은 광경과 마주하게 될 거라는 기대와는 달리 눈 앞에 펼쳐진 건 조금 전과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내가 마주한 건.


낮은 천장.


오래된 시멘트와 얼룩진 유리 벽으로 되어있는 작은 건물 내부였다.


여긴...


기억에 없는 곳이었다.


유리 벽을 통해 보이는 밖은 잿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우중충해 보이는 사방은 낮이라 하기엔 내리쬐는 빛이 너무 옅었고, 밤이라 표현하기에도 부적절해 보였다.


어스름한 저녁 무렵 같기도 한 세상.


‘엘리베이터를 타고 움직인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


내가 보고 있는 모습은 뭐라 딱히 설명할 수 없는 광경이었다.


게다가 보고 느끼고 있는 모든 것들이 생소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숫자 ‘0’ 을 가르키고 있는 엘리베이터도 그렇고, 짧은 시간 동안 확 바뀌어 버린 바깥세상도 그렇고.


뭔가 잘못된 게 확실했다.


논리적으론 설명이 불가능한 상황. 머릿속 나사 하나가 풀려 버린 것처럼 멍했다.


‘뭐야 대체...’


손가락 하나 까닥할 수 없었다.


그저 우두커니 서 있을 뿐. 시선은 여전히 앞쪽을 향하고 있었다.


갑자기 기억을 잃어버리기라도 한 걸까.


괴상한 녀석을 목격한 충격으로 기억의 일부를 날려버린 걸지도 모른다는 어처구니없는 생각이 튀어나왔다.


정신없이 뛰어가다가 아무런 대책 없이 건물 엘리베이터 안으로 뛰어들었고, 순간 미친 거인이 휘두른 쇠망치에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건지도 모른다.


흠...


고개를 흔들었다.


난 미치지 않았다. 절대로.


세상을 살면서 종종 미쳐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내 정신은 더 또렷해졌고, 기억은 짙은 물감을 바른 것처럼 선명하고 날카로워졌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손으로 머리를 매만져보았다.


피가 흐르는 곳은 없었다.


볼록하게 튀어나온 혹 같은 것도 보이지 않았다.


내 정신은 멀쩡했다.


그렇다면 여긴 어딜까.


...아무리 봐도 이곳은 내가 살던 곳이 아니었다.


생각하고 말 것도 없이 본능적으로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사람들이 이세계라 일컫는 곳. 4차원 공간. 이종족이 사는 괴상한 땅... 같은 단어들이 떠올랐다.


그러자 잠재적인 위험으로부터 방어태세를 갖추고자 몸이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힘 빠진 다리로 겨우 서 있던 육체는 생존을 위해 무서운 속도로 지친 몸을 회복시켰다.


천천히 팔을 들어 올렸다.


손가락으로 엘리베이터 버튼을 꾹 눌러보았다.


불도 들어오지 않았고, 미동조차 없었다.


또 한 번 버튼을 꾹꾹 눌렀다. 1부터 10까지. 그리고 비상벨도 두드렸다.


문은 여전히 열려 있었지만, 더 이상의 움직임은 없었다.


내 동작에도 아무런 신호가 없는 엘리베이터.


맘에 들지 않았다. 사기꾼한테 돈을 떼어먹힌 것도 모자라 미친 거인과 고장 난 엘리베이터까지 엉겨 붙다니.


꼭대기에 매달린 감시 카메라를 향해 손을 흔들어 보았다.


누군가 날 지켜보고 있지 않을까, 하는 헛된 희망을 품은 채로.


밖으로 나가길 주저하며 망설이고 있던 그 순간이었다.


-쉿쉿!


귀에 거슬리는 소리가 엘리베이터 내부를 훑었다.


절로 얼굴이 찌푸려졌다.


뱀이 혓바닥을 날름거리는 소리, 포식자가 조심스레 마른 나뭇잎 사이를 스치는 움직임 같기도 했다.


이래저래 달갑지 않다는 느낌이 드는 것만은 분명했다.


복잡하고 어지러운 머릿속이 더더욱 엉키려는 찰나였다.


-어서 내려!


앙칼진 목소리가 송곳처럼 내 귀를 찔렀다.


갑작스레 들려온 음성에 화들짝 놀라 재빨리 뒤를 돌아보았다.


차가운 엘리베이터 벽. 보이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불구하고 간신히 정신을 차리려 애쓰고 있었지만, 마음과는 달리 난 바짝 긴장하고 있었다.


잘못 들은 거라고 하기엔 여자의 목소리가 너무나도 생생했다.


귀에서 피가 날 만큼 날카롭고 섬뜩한 목소리.


머리칼이 쭈뼛거렸고,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흘러 내렸다.


“여긴 어딜까.”


무의미한 말이었다.


내가 겪어온 세상이 아닌, 전혀 다른 곳에 와 있음을 일찌감치 깨달은 나는 몸에서 힘을 뺐다.


아무리 여기가 어디냐고 외쳐봤자 누구 하나 대답하는 이도 없고. 괜히 에너지만 낭비할 뿐이었다.


세상엔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해야만 하는 상황들이 많았다.


내키진 않았지만 싫다고 버텨도 어차피 가야만 하는 길.


지금이 바로 그 순간이었다.


이곳에 우두커니 서 있어봤자 아무 일도 일어나질 않을 것이다.


어쩌면 이 망할 고물 기계는 내가 폭삭 늙어 썩어 문드러질 때까지 꼼짝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크게 숨을 한번 내쉰 나는 곧장 엘리베이터 밖으로 나갔다.


천천히 건물 내부를 가로질렀다. 경비원 따윈 보이지 않았다.


살아있는 생명체는 나밖에 없을 것이다.


어처구니없는 생각이었다. 이곳에서 숨 쉬는 인간이 나 혼자 일 거라니.


도가 지나친 상상이었다. 게다가 그건 행운이 아니라 재앙이었고, 겪고 싶지 않은 일이기도 했다.


불길한 생각은 그만하자고 마음먹었다.


건물 밖으로 나온 나는 잠시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보았던 모습과는 달리 이번엔 좀 더 생생하게 주위 모든 것들이 다가왔다.


희미한 햇살이 간신히 사방을 비추고 있는 광경이었다.


좀 더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공포영화에서나 볼법한 모습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렸다.


보이는 모든 게 을씨년스럽고, 지금 당장이라도 어디선가 인간을 지옥으로 밀어 넣는 괴상한 것들이 튀어 나올법한 느낌에 절로 숨소리를 죽였다.


고요.


길가게 드문드문 서 있는 자동차들은 움직임이 없었다.


잎이 무성한 가로수조차도 흔들림이 없었다.


‘기분 나쁜 곳이야.’


생동감을 전혀 느낄 수 없는 곳.


회색 크레파스가 떠올랐다. 이곳에 딱 어울리는 색깔이었다.


미치광이 거인을 봤을 때 보다 한층 더 몸 안의 모든 것들이 경계수위를 높이고 있었다.


하지만 계속 이렇게 서 있을 수만은 없었다.


여기 온 이상, 그리고 엘리베이터가 움직이지 않는 한은 뭔가 액션을 취해야만 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찾든지 아니면 몸을 숨길 곳을 찾던지.


“해가 지기 전에.”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나름 멋진 모습으로, 무심한 척 말을 내뱉었지만 누가 보더라도 내 모든 것들이 어색하게 느껴졌다.


갑작스레 낯선 곳에 뚝 떨어졌으니 당연히 그럴 수밖에.


하늘은 잔뜩 흐렸고, 희미한 빛이 간신히 바닥을 비추고 있었다.


여긴 이상한 세계가 확실했다.


“가보자.”


불안한 마음을 떨쳐내며 미지의 세계를 향해 몸을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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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데빌의 정체 2 24.09.15 8 1 13쪽
20 데빌의 정체 24.09.14 8 1 13쪽
19 또 다른 이세계 방문자 2 24.09.13 9 1 14쪽
18 또 다른 이세계 방문자 24.09.12 8 1 13쪽
17 깜짝 파티 24.09.11 8 1 13쪽
16 회전목마 아이들 2 24.09.10 8 1 12쪽
15 회전목마 아이들 24.09.09 11 1 13쪽
14 이세계 편의점 24.09.08 10 1 13쪽
13 토머스의 수첩 4 24.09.07 10 1 12쪽
12 토머스의 수첩 3 24.09.06 9 1 14쪽
11 토머스의 수첩 2 24.09.05 11 1 13쪽
10 토머스의 수첩 24.09.04 11 1 12쪽
9 은신처 2 24.09.03 11 1 12쪽
8 은신처 24.09.02 12 1 13쪽
7 웰컴 투 헬 2 +1 24.09.01 17 1 12쪽
6 웰컴 투 헬 +1 24.08.31 18 2 14쪽
5 그것들 2 +1 24.08.30 18 3 13쪽
4 그것들 24.08.29 25 3 13쪽
» 엘리베이터를 타고 2 +1 24.08.28 35 3 12쪽
2 엘리베이터를 타고 24.08.27 42 3 14쪽
1 쇠망치를 들고 뭘 하겠단 걸까 24.08.27 64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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