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계 붉은 옥수수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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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신
작품등록일 :
2024.08.27 13:28
최근연재일 :
2024.09.17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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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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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0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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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회전목마 아이들 2

DUMMY

-헉헉.


승우는 있는 힘껏 뛰고 싶었지만. 여동생의 손을 잡고 있기에 속도를 조절할 수밖에 없었다.


제발 지옥의 시체 같은 저놈의 눈에 띄지 않기만을 바랐다.


“오빠, 왜 그래? 손 아파.”


동생의 목소리를 뒤로 한 채 승우는 안전한 장소를 고르려 애썼다. 크고 작은 집과 단단한 벽돌을 쌓아 올린 빌라 같은 것들, 그리고 아무도 없는 상점 따위가 눈에 띄었다.


“손 놓으면 안 돼!”


간신히 그 말을 내뱉은 승우가 잠시 그 자리에 멈춰섰다.


재빨리 뒤를 돌아보았다. 키가 크고 구부정한 등을 가진 그것은 천천히 이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지만, 아직까진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한 듯 다른 것에만 관심을 두고 있었다.


이를테면 장난감처럼 아무런 움직임 없이 길가에 서 있는 자동차라던가 발밑을 구르는 이빨에 반쯤 잘려나간 죽은 짐승 따위였다.


승우는 재빨리 몸을 틀었다. 지금이 기회라고 생각하며 적당한 곳을 고르려 주변을 둘러보았다.


12살 아이가 헤쳐나가기엔 너무 참혹한 상황.


아이는 차라리 무차별적으로 지구를 공격하는 외계인과 맞서 싸우는 편이 훨씬 더 나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곳에선 적이 누구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기억에도 없는 장소에 갑작스레 와버린 것도 그렇고, 멀찍이 보이는 썩은 시체도 그렇고. 보이는 모든 것, 주변에 있는 것들 전부 다 비정상적이라 느껴졌다.


“오빠, 집에 갈래. 엄마한테 가자. 응?”


아무것도 모르는 여동생은 자꾸만 집에 가자고 보챘다.


“가만히 있어 봐.”


승우는 필사적이었다. 지금 이 기회를 놓치면 다시는 집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오빠, 가자. 집에 가자.”


여동생의 목소리를 뒤로 한 채, 허둥지둥 몸을 숨길 곳을 찾고 있을 때였다.


멀리 보이는 빌딩 위로 희미한 빛이 반짝거렸다. 우주를 향해 신호를 보내고 있는 안테나 같기도 했고 십자가 같기도 한 그것은 승우를 향해 손짓이라도 하는 듯 계속 빛을 내뿜고 있었다.


명확하게 밝은 빛은 아니었으나 머리 위 시커먼 구름과 칙칙해 보이는 주변의 모든 것들과는 대조적으로 느껴졌다.


승우는 빌딩이 맘에 들었다. 무사히 저곳에 도착하기만 하면 어렵지 않게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샘솟았다.


빌딩 안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이 있을지는 나중 문제였다.


“가자.”


아이는 여동생의 손을 잡고 뛰기 시작했다. 희미한 빛을 품고 있는 곳을 향해서.


출입문 앞에 겨우 다다랐을 때 승우는 거칠게 숨을 내뱉고 있었다.


거의 울상이 되다시피 한 동생은 너무 힘이든 탓인지 그 자리에 주저앉으려 했다.


그다음은 불을 보듯 뻔했다.


엄마, 아빠를 소리쳐 부르며 울음 터뜨리기.


승우가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긴 위험해. 빨리 안으로 들어가자.”


“저기 엄마가 있는 거야?”


“그럴지도 몰라.”


“그럴지도?”


승희는 오빠의 말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인상을 찌푸리며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엄마랑 아빠는 어디에 있는 건지, 여긴 어디인지 물었지만, 대답은커녕 힘들게 뛰기만 하고. 불만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싫어. 그냥 여기 있을래.”


“안 돼. 위험해.”


“길을 잃으면... 그 자리에 가만히 있으라고 했어. 엄마가 그랬단 말이야.”


“에휴. 이 바보.”


“내가 왜 바보야? 오빠가 바보잖아.”


빽 소리를 지르는 여동생의 모습에 승우는 뒤를 흘끔거렸다. 썩은 시체같이 생긴 그것이 제발 이쪽에 관심을 두지 않기만을 바랐다.


동생을 향해 입을 열었다.


“우린 지금 미로 탈출게임 중이야.”


“누가 그걸 믿을 줄 알아? 오빠는 공부도 못하잖아.”


승우는 할 말을 잃었다. 여동생이 그걸 어떻게 알고 있을까? 아니, 그보단 공부를 잘하고 못하고는 이것과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갑작스레 여동생이 미워졌다. 머리를 한 대 쥐어박으려다 그만두었다. 공부를 못한다는 말에 화가 났지만. 지금은 화를 낼 때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생존다큐멘터리에서 보았던 대로 지금은 긴급... 매우 위급한 상황이었다.


썩은 시체가 하나일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이렇게 넓은 세상에 설마 썩은 시체가 하나일까? ...그럴 리 없었다.


“미로를 탈출해야 엄마, 아빠를 다시 만날 수가 있어.”


승우는 강제로 여동생과 함께 빌딩 안으로 들어가고 싶었지만, 만일 그랬다간 날카로운 울음소리에 유리창이 와장창 깨져버리고 말 것이다.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썩은 시체들이 우르르 몰려들 것이고. 그건 공부와는 상관없이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었다.


“휴.”


아이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고 싶지 않았다. 결국 승우는 묘수를 낼 수밖에 없었다.


“오빠 말 들으면 소원 들어줄게.”


“소원? 정말?”


“약속은 꼭 지킬 거야. 갖고 싶은 게 있으면 말해 봐, 뭐든지.”


갑자기 여동생의 눈망울이 커졌다. 반짝이는 눈동자. 찌푸렸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배.”


“무슨 배?”


승우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예상치 못한 말이었다. 커다란 곰 인형이 갖고 싶단 말을 짐작한 아이는 긴장하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여동생 달래기. 썩은 시체로부터 도망가기. 그리고 끝까지 살아남기 같은 문제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집중했다.


“방에 있는 거.”


“그게 뭐야?”


“아빠랑 같이 만든 거 있잖아. 엄청 큰 배.”


망했다...


승우는 입을 쩍 벌렸다. 설마 그것을 갖고 싶다고 말할 줄은 예상치 못했다는 듯 아이의 눈동자가 마구 흔들렸다.


여동생이 말한 그것은 아빠와 함께 긴 시간에 걸쳐 직접 만든 것으로, 길이 50센티미터가 넘는 조립식 배였는데, 승우가 제일 아끼는 작품이었다.


아이는 항해사가 되고 싶었다. 그 때문인지 바다와 관련된 거라면 그것이 무엇이든 유독 관심이 갔다. 특히 바다 위를 달리는 배는 승우에게 있어 값진 보물이나 마찬가지였다.


승우는 그것만은 안된다며 딱 잘라 거절하고 싶었지만, 여동생의 표정으로 보아 다른 건 소용 없을 거라는 걸 알아차렸다.


끄덕끄덕.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와!”


여동생이 웃으며 그 자리에서 폴짝 뛰어올랐다. 양 갈래로 묶은 머리칼이 토끼의 그것처럼 귀엽게 흔들렸다.


“가자.”


동생 손을 잡은 승우는 유리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두려움 같은 건 전혀 없었다.


심장이 격렬하게 타올랐다.


놈을 향해 나이프를 움직였다.


내뿜는 괴성과 욕설이 공중으로 흩어졌다.


발끝까지 길게 늘어진 놈의 옷자락이 깃발처럼 펄럭였다.


첫 번째 공격은 실패였다.


그러나 곧 두 번째, 세 번째 공격이 빠르게 이어졌고.


칼날이 놈의 목덜미를 깊숙이 파고들었다.


-후드득!


검붉은 핏물이 허공 위로 튀어 올랐다. 한 번으로 끝낼 수 없었다.


혹시 되살아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뭐든 확실히 끝내는 게 좋다고 생각하며.


연거푸 나이프를 휘둘렀다.


-꾸워어!


괴상한 소릴 내지르던 놈이 길쭉한 손으로 내 목을 움켜쥐었다. 무시무시한 힘이 느껴졌다.


-쿵!


휘청거리는 놈과 함께 바닥을 굴렀다.


숨이 막혔지만 악착같이 버텼다.


놈의 상처에서 흘러나오는 핏물이 바닥을 흥건하게 적셨고.


-커억.


내 목을 조르던 놈의 손에서 빠르게 힘이 빠져나갔다.


피를 모조리 쏟아 버린 듯 바닥이 붉게 물들었다. 비릿한 피 냄새가 주위에 가득했다.


놈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확실하게 숨이 끊어졌음을 알 수 있었다.


몸을 일으켰다. 나이프에선 핏물이 뚝뚝 흘러내리고 있었다.


기침에 새여 나왔다.


“지옥으로 꺼져.”


일그러진 얼굴로 말을 내뱉으며 잠시 그 자리에 선 채 숨을 골랐다.


놈을 죽였음에도 불구하고 분노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치솟는 불길처럼 몸과 마음을 활활 태우고 있었다.


지금 이렇게 머뭇거릴 시간이 없단 걸 알면서도 태풍처럼 몰아치는 감정을 통제하기 힘이 들었다.


거친 숨소리. 이글거리는 눈동자.


한동안 내 눈은 피투성이로 변한 놈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감성에 젖어 있을 시간도, 고작 나이프 몇 번 휘둘렀다고 숨을 고르며 휴식을 취할 여유가 내겐 없었다.


나보다 머리 두 개는 더 큰 놈을 단번에 시체로 만들어 버리다니.


좀비들도 이렇게 쉽게 없앨 수 있지 않을까.


피 냄새를 맡고 좀비들이 미친 듯이 몰려들 거란 생각이 들 때쯤.


어느새 다가온 골리앗이 낑낑거리며 내게 몸을 비벼댔다.


골리앗을 보자 가슴속에서 소용돌이치던 분노가 가라앉기 시작했다.


주머니 속에 넣어둔 지도를 꺼내 들었다. 애초에 내가 가려던 곳은 저 멀리 떨어져 있는 10층 건물이었다.


그러나 지도에 나와 있는 화살표 방향은 반대쪽을 가리키고 있었다.


잠시 그 자리에 선 채 생각에 잠겼다.


처음 계획했던 그대로 건물을 향해 몸을 움직일지, 아니면 화살표 방향대로 북쪽으로 갈지 말이다.


-깡!


골리앗이 짖었다. 꾸물거리지 말라는 말을 하고 싶은 듯했다.


“그래. 서두르자.”


나는 지도로 보이는 그것을 다시 접어 호주머니 속에 집어넣었다.


우선은 처음 계획대로 건물 안으로 들어가 볼 생각이었다. 왜 그런지는 알 수 없었다.


엉성하게 표시된 그것을 툭, 던져 준 보이지 않는 존재에 대한 반감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냥 본능일 수도 있고.


도로 곳곳에서 보이는 자동차 또한 확인해 볼 참이었다. 그냥 가만히 놓여 있는 장난감인지 아니면 정말 움직이는 자동차가 맞는지 말이다.


머릿속에선 자동차고 뭐고 간에 다 무용지물이라고 소리치고 있었지만. 뭐든 확인이 중요했다. 굳이 걸어서 이동할 필요는 없었다. 그건 너무 위험하고 힘든 선택이었다.


“서둘러.”


움직임을 빨리했다. 골리앗이 헥헥거리며 속도를 올렸다.


길을 걷는 동안 내 눈빛은 서늘했고, 가슴속에서 뜨거운 분노와 차가운 이성이 머물렀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배불리 먹고 물도 많이 마시고, 내 삶을 망쳐놓은 놈을 박살 내버렸으니 기분이 무척 황홀해야만 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 반대였다. 왜 그런지는 알 수 없었다.


차라리 좀비들이라도 나타나 준다면 멋지게 해치울 수 있었을 텐데.


분노의 대상이던 미치광이를 없애버렸기 때문일까.


길가에 부러진 나무 조각 몇 개가 나뒹굴고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움직임을 멈췄다. 신경질적으로 그중 한 개를 발로 세게 걷어찼다.


그것은 멀리 허공을 가로지르더니 툭, 하고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고개를 들어 빛을 가늠했다. 지옥 깊은 곳에서나 볼 수 있을 만큼 우중충한 모습. 하늘 한쪽으론 시커먼 구름이 걸려 있었다.


보기만 해도 갑갑하고 우울해지는 광경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한낮이라 부를 만큼의 빛이 새어 나오고 있단 사실이었다.


하지만 안심할 수 없었다. 이곳은 해가 빨리 저물었고, 낮에도 좀비들이 돌아다니고 있었으니까.


다시 걸음을 옮기려던 찰나였다.


손톱으로 할퀸 자국, 뜯겨나간 살점, 찢어진 옷자락. 한 무리의 좀비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저것들이 어디 숨어있었을까.


하지만 굳이 그런 생각을 할 필요도 없었다.


10여 미터쯤 앞.


허름한 창고 문이 활짝 열려 있었고, 그 안에서 좀비들이 떼를 지어 밖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그것들은 곧장 내 쪽으로 몸을 움직였다.


어기적거리면서,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내뱉으면서.


조금 전 살펴보았던 엉성한 지도가 떠올랐다. 거기엔 분명 화살표가 북쪽을 향해 있었지만 내 목적지는 다른 방향이었다.


영문도 모른 채 이곳으로 굴러떨어진 가련한 존재에게 지도를 내밀며 미로 탈출 게임을 시작하라고 말하며 낄낄, 웃음을 터뜨리고 있는 이세계 창조자의 복수극일까?


그 생각이 들자 몸에 소름이 돋았다. 이렇게 유치한 방법으로 인간을 괴롭히다니.


“도망쳐, 골리앗!”


목소리가 갈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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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불의 힘 루드락샤 24.09.17 5 1 14쪽
21 데빌의 정체 2 24.09.15 8 1 13쪽
20 데빌의 정체 24.09.14 8 1 13쪽
19 또 다른 이세계 방문자 2 24.09.13 10 1 14쪽
18 또 다른 이세계 방문자 24.09.12 9 1 13쪽
17 깜짝 파티 24.09.11 9 1 13쪽
» 회전목마 아이들 2 24.09.10 9 1 12쪽
15 회전목마 아이들 24.09.09 11 1 13쪽
14 이세계 편의점 24.09.08 10 1 13쪽
13 토머스의 수첩 4 24.09.07 11 1 12쪽
12 토머스의 수첩 3 24.09.06 9 1 14쪽
11 토머스의 수첩 2 24.09.05 12 1 13쪽
10 토머스의 수첩 24.09.04 12 1 12쪽
9 은신처 2 24.09.03 11 1 12쪽
8 은신처 24.09.02 12 1 13쪽
7 웰컴 투 헬 2 +1 24.09.01 18 1 12쪽
6 웰컴 투 헬 +1 24.08.31 19 2 14쪽
5 그것들 2 +1 24.08.30 18 3 13쪽
4 그것들 24.08.29 26 3 13쪽
3 엘리베이터를 타고 2 +1 24.08.28 35 3 12쪽
2 엘리베이터를 타고 24.08.27 42 3 14쪽
1 쇠망치를 들고 뭘 하겠단 걸까 24.08.27 65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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