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계 붉은 옥수수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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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신
작품등록일 :
2024.08.27 13:28
최근연재일 :
2024.09.17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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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3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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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은신처 2

DUMMY

문을 열었다.


잠시 그대로 서 있었다.


널찍한 거실, 커다란 창문 옆에 자리한 조그마한 테이블. 그 위에 램프가 하나 놓여 있었는데, 놀랍게도 불이 켜져 있었다.


불빛이 흘러나오는 램프라...


잔혹한 좀비들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물건이었다.


조심스레 집안으로 들어섰다.


어둠 속 그늘진 곳에서 반갑지 않은 무언가가 툭 튀어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긴장을 늦추지 않은 채 조용히 문을 닫았다.


거실로 보이는 곳을 향해 걸음을 옮기며 재빨리 주위를 살폈다.


사람도, 좀비도 보이지 않았다.


오래된 먼지 냄새가 코를 찔렀다.


악취라던가 피비린내 따위는 없었고, 방문은 모두 닫혀 있었다.


벽에 걸린 시계는 12시 정각에 멈춰서 있었다.


그 옆으론 그림 액자가 하나 걸려 있었는데, 울창한 숲과 그 너머 커다란 성이 하나 그려져 있었다.


좀비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광경에 허탈감마저 느끼며 한동안 우두커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시끄럽게 소리를 내지르는 좀비들은 짐승처럼 으르렁거리며 서로를 물어뜯었지만, 내가 서 있는 이곳은 인간이 살아가기에 부족함이 전혀 없을 만큼 완벽한 장소였다.


차라리 모든 게 무너지고, 부서졌더라면 지금과 같은 혼란스러운 감정은 들지 않았을 것이다.


비현실적인 공간. 잔뜩 뒤틀린 장소에 와버렸다고 생각하니 다시금 마음이 무거워졌다.


하지만 이젠 혼자가 아니었다.


“조금만 더 살펴보자.”


가슴팍에 안고 있는 자그마한 녀석을 향해 나직이 말을 내뱉었다. 그 행위만으로도 마음의 위로가 되었다.


다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주방으로 보이는 곳엔 그릇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고, 컵과 주전자 같은 것들도 엿보였다.


부서지거나 깨진 식기 따윈 없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게 흐트러짐 하나 없이 잘 정돈되어 있었다.


좀비들이 머물고 있을 가능성은 제로라고 판단했다.


이세계가 아닌 현실의 그것처럼 대부분의 것들이 양호했다. 멈춰서 있는 시계라던가 지옥의 괴수가 숨어있을 것처럼 보이는 어두운 성을 그려 넣은 그림이 조금 마음에 걸렸지만.


그것은 이세계를 창조한 존재의 취향일거라 생각했다.


주방 옆쪽에 있던 문을 열자 욕실 내부가 드러났다.


벽면에 불을 켜는 스위치가 고정되어 있었다.


‘불이 켜질까?’


궁금했지만 지금 당장 그걸 건드릴 마음은 없었다.


환한 불빛을 본 놈들이 우르르 몰려들고 말 테니까. 만일 불이 켜진다면 말이다.


이번엔 침실로 추정되는 방문을 열었다.


벽 한쪽을 가득 채우고 있는 커다란 옷장과 널찍한 침대. 네모난 창문 위로 두꺼운 커튼이 늘어져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 베란다 쪽을 살펴보려다가 오른쪽에 나 있는 작은 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현관에선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있어서 이제야 눈에 띈 것이다.


다른 곳과는 달리 그곳은 3분의 1쯤 문이 열려 있었다.


안은 어두웠다. 거실에 켜놓은 램프에서 불빛이 흘러나오긴 했지만, 그 빛이 작은 방 안쪽까지 스며들긴 불가능했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


지금까지 별일 없었는데, 설마.


손에 진땀이 배어났다. 꿈틀거리는 강아지를 여전히 꼭 안아 든 채로 천천히 방문을 열었다.


방안은 무척 깜깜했다. 마치 사방이 새까만 벽으로 둘러싸인 것처럼.


섣불리 몸을 더 움직일 수가 없었다.


안에 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을 발견한 나는 너무 놀라서 하마터면 소리를 내지를 뻔했다.


작은 침대 하나. 그 위에 누군가 누워 있었다.


인간. 아니면 좀비로 보이는 그것은 죽은 듯 미동조차 없었다.


나처럼 아무 준비 없이 이세계로 와버린 가련한 생존자일까?


자세히 살펴보고 싶은 마음에 탁자 위 램프를 집어 들고 다시 방으로 향했다.


아직까지 아무런 움직임이 없는 것으로 보아 잠들어 있는 게 분명했다.


현관 쪽을 흘끔거렸다. 침입자는 없었다.


램프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에 의지해 침대 위를 자세히 살폈다.


눈동자가 흔들렸다.


내가 발견한 존재는 좀비가 아니라 인간이었다.


죽은 듯 미동조차 없는 남자.


여긴 어떻게 건너온 것일까?


나는 우선 자그마한 꼬맹이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혹여라도 낯선이의 출몰에 놀라 방방 뛰거나 시끄럽게 짖으면 어쩌나, 걱정했지만. 다행히 눈치가 빠른 녀석이었다.


털 뭉치 꼬맹이는 코를 바닥에 박더니 킁킁거리며 열심히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나는 침대 위 인간에게로 관심을 돌렸다.


색이 바랜 청바지와 체크무늬 셔츠, 턱에 난 수염이 제법 긴 것으로 보아 오랫동안 이곳에 머물러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어쩌면 원래부터 기다란 수염을 가지고 있었는지도 모르고.


음... 램프를 손에 든 채 이리저리 남자의 모습을 살펴보던 그때였다.


따스하고 물컹한 무언가가 내 종아리를 툭, 쳤다. 소스라치게 놀라 눈을 휘둥그레 떴다.


내 심장을 철렁 내려앉게 한 건 귀여운 꼬맹이 녀석이었다.


“간 떨어지는 줄 알았잖아.”


녀석을 보자 경직됐던 몸이 조금 풀어졌다.


꼬맹이는 내게 걱정하지 말라는 말을 하고 싶은 듯 살랑살랑 꼬리를 흔들어댔다.


“너랑 놀 시간 없어. 상황이 심각하거든.”


작은 목소리로 말한 뒤 다시 남자에게로 관심을 돌렸다.


허리를 굽힌 채 그의 코밑에 손가락을 갖다 대었다.


호흡이 없었다.


죽은 사람을 눈앞에 두고 있었지만, 거부감이 일진 않았다.


친구가 될 수도 있었는데.


그 생각이 들자 마음이 착잡하고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좀비의 먹이가 된 어린아이와 연관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달리 확인할 길이 없었다.


“혹시 너 아는 사람이니?”


강아지를 향해 물었다. 별 관심 없다는 듯 녀석은 까만 눈알을 굴리며 내 몸에 얼굴을 비벼댔다.


아무래도 죽은 남자와는 초면인 것 같았다.


“네 주인은 어디에 있는 거야?”


역시나 녀석은 대꾸가 없었다.


내 눈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고개를 갸웃거리기만 했다.


-헥헥.


녀석이 혀를 내밀었다. 배가 고픈 것 같았다.


그도 아니면 목이 마르거나.


하지만 지금은 배를 채울 때가 아니었다. 딱히 먹을 걸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었고.


“먹을 게 없어.”


녀석은 내 말을 알아들은 건지 미심쩍은 눈초리로 날 쳐다봤다.


“걱정 마. 설마 굶기야 하겠니?”


대충 강아지를 안심시킨 뒤, 다시 남자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그의 정체가 궁금했다. 그가 어디에서 왔고, 언제 숨이 끊어졌으며, 나와 똑같이 엘리베이터를 탔는지 말이다.


몸에 별다른 상처가 없는 것으로 보아 좀비들의 습격을 당하진 않은 듯했다.


입고 있는 옷엔 핏자국도 없었고, 찢어진 흔적도 없었다.


나는 그가 줄곧 집 안에서만 머물러 있었음을 알아차렸다.


딱히 나갈 데도 없으니 그럴 만도 했다.


밖으로 나가봤자 이빨을 드러내며 상대의 살점을 찢어발기는 놈들만 우글거릴 텐데. 굳이 안전한 곳을 버리고 자신을 송두리째 위험한 곳으로 내던질 필요는 없었다.


아직 시체가 썩지 않은 것으로 보아 죽은 지 얼마 안 된 것 같았다.


‘시체와 밤을 지새우게 생겼군.’


기분이 묘했다.


그가 왜 죽었는지 궁금했다.


심장마비라도 온 것일까?


아니면 나처럼 공포에 질려서 저절로 숨이 턱, 막혀 버리기라도 한 걸까.


시체가 내 물음을 답을 해줄 리 만무했다.


이미 저 세상으로 건너가 버린 그로부터 시선을 돌렸다.


침대 발치엔 커다란 배낭 하나가 놓여 있었다. 여행길이라도 오르려는 사람처럼 짐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그걸 보자 또 다른 호기심이 발동했다.


죽은 남자의 유품.


소중히 다뤄야겠지만 생존에 필요한 물건들이 들어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곧 배낭을 집어 들었다.


조용히 문을 닫고 거실로 나왔다.


꼬맹이도 잽싸게 내 뒤를 따랐다.


램프와 배낭을 바닥에 내려놓고 고개를 돌렸을 때였다.


커다란 창문 위로 내려온 커튼이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다.


그걸 보자 갑자기 몸이 얼어붙었다.


조금 전에도 창문이 열려 있었던 걸까.


기억이 나질 않았다. 그러나 내가 모르는 사이 누군가 안으로 들어왔다면 아직까지 알아차리지 못할 리가 없었다.


난 이제 혼자가 아니었다.


개는 인간보다 훨씬 앞서 위험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내 시선이 양옆으로 꼬리를 흔들고 있는 꼬맹이에게로 향했다.


갑자기 녀석의 덩치가 무척 커 보였다.


흑곰을 한 번에 때려눕힐 수 있을 만큼 힘도 세고, 좀비들의 뼈도 통째로 씹어먹을 만큼 무자비하고 야만적인 짐승의 냄새가 폴폴 나면서...


정신을 차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자그마한 말티즈에게 어울리는 건 개껌밖에 없었다. 콩알만 한 사료라던가 뼈다귀 모양의 간식 같은 거 말이다.


창문을 닫을 생각으로 몸을 움직이려던 찰나였다.


시끄러운 소리가 귀를 찔렀다.


단박에 좀비들이 몰려 왔다는 걸 알아챘다.


주위를 살필 새도 없이 재빨리 창문을 닫고, 현관으로 달려가 잠금장치를 확인했다.


심장이 거세게 뛰었다.


천천히 숨을 고르며 그 자리에 멈춰 서 있었다.


아래층에서 들려오는 소란은 점점 더 심해졌고, 뒤로 물러갔던 공포란 놈이 뾰족한 이빨을 드러내며 히죽거렸다.


피를 튀기며 싸우던 놈들이 이곳으로 기어들어 온 게 확실했다.


만일 내가 1층에 몸을 숨겼더라면.


생각만으로도 몸에 소름이 돋았다.


이세계에서 발견한 이름 모를 시체에 이어 좀비들의 먹이가 될지도 모르는 위험에 처하더니.


절망이란 놈이 끊임없이 내게 손짓을 하고 있었다.


좀비들은 내가 문을 잠가도 그걸 부수고 들어올 가능성이 컸다.


동족도 잡아먹는 판국에 그깟 문 하나쯤 박살 내는 건 일도 아닐 테니까.


내가 그렇게 어정쩡한 자세로 서 있는 동안에도, 귀에 거슬리는 소리는 계속 이어졌다.


잠시 중단했던 동족 목덜미 물어뜯기를 다시 시작한 건지, 분노에 찬 괴성이 더더욱 커졌다.


단단한 무언가가 세게 벽에 부딪히는 소리가 뒤를 이었다. 놈들이 서로 뒤엉켜 싸우다가 상대를 벽에 내동댕이쳤을 거라는 걸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피 튀기는 살육 현장이 눈에 선했다.


싸우려면 넓은 데 가서 싸울 것이지.


오늘 밤을 무사히 넘길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조금씩 무너져 내렸다.


바닥에 앉아 있던 꼬맹이 또한 위험한 상황을 눈치챈 것 같았다. 녀석은 고개를 들고 끊임없이 코를 벌름거렸지만, 목구멍 밖으로 울음소리를 내뱉는 대책 없는 짓은 하지 않았다.


몸을 떨며 꼬리를 축 늘어뜨린 것으로 보아 잔뜩 겁을 집어먹은 게 분명했다.


그 모습이 너무 불쌍해서 가만히 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괜찮아. 여긴 안전해.”


강아지를 안심시키기 위해 거짓말을 했다. 사실 여기가 안전한지는 나도 잘 모른다.


일단 좀비들을 피해 들어온 것이니까.


거실로 되돌아갔다.


어차피 현관 앞에 쭈그리고 앉아 있어봤자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을 테고, 몸만 피곤할 뿐이다.


그래, 들어 올 테면 들어와 봐라. 냄새나고 구역질 나는 족속들아!


마음속으로 좀비들에게 욕설을 내뱉었다.


창문 위로 드리운 커튼 사이로 밖을 엿보았다.


달 같지도 않은 달이란 놈은 조금 전 보다 더더욱 붉은 빛을 내뿜고 있었다. 피를 잔뜩 빨아 먹어 배가 터질 것처럼 부풀어 오른 모습이었다.


그리고 드러난 것은...


어디서 튀어나온 것인지 모를 놈들이 사방에서 미친 듯이 몰려들고 있는 광경이었다.


“큰일이군.”


절로 그 말이 튀어나왔다. 조금 전 4층을 오르기 전 보았던 놈들의 몇 배는 됨직한 숫자였다.


그것들은 우왕좌왕하며 거리를 배회하고 있었다.


붉은빛을 내뿜는 둥근 달의 출몰이 잠들어 있던 좀비들을 깨우기라도 한 것일까.


오늘 밤을 무사히 넘긴다고 하더라도 살아있는 저 시체들을 따돌리고 어떻게 집으로 돌아가야 할지 막막했다.


B급 영화 한복판에 서 있는 난 길을 잃고 만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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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붉은 옥수수밭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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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불의 힘 루드락샤 24.09.17 5 1 14쪽
21 데빌의 정체 2 24.09.15 8 1 13쪽
20 데빌의 정체 24.09.14 8 1 13쪽
19 또 다른 이세계 방문자 2 24.09.13 9 1 14쪽
18 또 다른 이세계 방문자 24.09.12 8 1 13쪽
17 깜짝 파티 24.09.11 8 1 13쪽
16 회전목마 아이들 2 24.09.10 8 1 12쪽
15 회전목마 아이들 24.09.09 11 1 13쪽
14 이세계 편의점 24.09.08 10 1 13쪽
13 토머스의 수첩 4 24.09.07 10 1 12쪽
12 토머스의 수첩 3 24.09.06 9 1 14쪽
11 토머스의 수첩 2 24.09.05 11 1 13쪽
10 토머스의 수첩 24.09.04 11 1 12쪽
» 은신처 2 24.09.03 10 1 12쪽
8 은신처 24.09.02 11 1 13쪽
7 웰컴 투 헬 2 +1 24.09.01 17 1 12쪽
6 웰컴 투 헬 +1 24.08.31 18 2 14쪽
5 그것들 2 +1 24.08.30 18 3 13쪽
4 그것들 24.08.29 25 3 13쪽
3 엘리베이터를 타고 2 +1 24.08.28 34 3 12쪽
2 엘리베이터를 타고 24.08.27 42 3 14쪽
1 쇠망치를 들고 뭘 하겠단 걸까 24.08.27 64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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