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계 붉은 옥수수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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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신
작품등록일 :
2024.08.27 13:28
최근연재일 :
2024.09.19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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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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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8 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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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하얀 깃털

DUMMY

-쾅쾅!


문은 단단히 잠겨 있었다. 급히 유리를 깨부수려던 순간이었다.


-스르륵.


문이 열렸다.


분명 단단히 잠겨 있었는데 갑자기 문이 열리다니.


뭔가 이상했지만 주춤거릴 시간이 없었다.


실제 아이들이 공포에 질려 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건물 안에 갇혔다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내가 뭐라 말할 새도 없이 태연이 열린 문 안으로 후다닥 뛰어들어갔다.


-깡!


골리앗이 잽싸게 뒤를 따랐다.


“기다려!”


태연을 향해 소리쳤다. 안에 좀비들이 우글거리고 있거나 매우 위험한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었지만, 태연과 골리앗은 그런 건 안중에도 없는 듯했다.


-타다다닥!


급히 안으로 들어섰다.


화려하게 장식된 트리와 빨간 고깔모자를 쓰고 있는 인형, 그리고 뚱뚱한 눈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데스크 쪽을 보자 덩그러니 놓여 있는 빈 의자가 있었고, 위쪽으로는 환영한다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몇 발자국 앞서가고 있는 태연의 뒷모습이 보였다.


빠르게 바닥을 가로질렀다. 요란스레 계단을 내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살려주세요!”


모습을 드러낸 아이들.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남자아이와 여자아이였다.


“너희들 괜찮은 거니?”


태연이 아이들을 향해 가까이 다가가며 물었다.


“위층에 사나운 검은 개가 있어요. 데빌 아저씨가 우릴 가둬놨어요. 문과 창문을 몽땅 걸어 잠그고 어디론가 사라져버렸거든요. 도와주세요.”


빠른 속도로 말을 내뱉은 남자아이의 숨소리가 점점 거칠어졌다. 혹시라도 우리가 다시 건물 밖으로 나가 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는 듯 조금 불안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태연이 입을 열었다.


“걱정하지 마. 우리가 집에 데려다줄게.”


“정말요? 혹시 여기기 어딘지 알 수 있을까요? 밖에 썩은 시체들이 돌아다니고 있어요. 데빌 아저씨가 그러는데...”


“조금 천천히. 차근차근 말해줄래?”


태연은 흥분하며 계속 말을 잇는 아이에게 부탁했다.


-깡!


골리앗의 목소리에 아이들이 시선을 옮겼다.


꼬리를 흔들며 눈사람을 보고 있던 골리앗의 모습에 아이들의 안색이 환하게 밝아졌다.


“우와!”


-깡!


골리앗은 우두커니 가만히 서 있는 눈사람에게서 관심을 껐다. 그러고 나서 쪼르르 아이들을 향해 뛰어갔다.


-헥헥.


혀를 내밀고 꼬리를 흔드는 골리앗을 본 여자아이가 까르르 웃었다.


“진짜 귀엽다. 와!”


지금껏 계속 말을 잇던 남자아이 또한 첫눈에 반해 버렸는지 긴장이 많이 풀린 모습을 한 채 소리 내어 웃었다.


혹시라도 좀비들이 아이들의 모습으로 위장을 한 것은 아닐까, 하며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었지만, 골리앗을 보며 웃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자 곧 그런 의심이 눈 녹듯 사라졌다.


사악함 같은 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천사의 얼굴. 이곳에선 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엄청 귀엽지? 나도 얘를 처음 봤을 때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 이런 곳에 강아지가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거든.”


태연 또한 첫날 골리앗을 보며 느꼈던 기분을 얘기하며 자연스레 아이들과 어울리고 있었다.


엘리베이터가 있는 곳을 향해 눈을 돌렸다.


날 이곳으로 내동댕이친 고물 엘리베이터가 떠올랐다.


엘리베이터 혐오증이라도 생긴 것인지 멀쩡히 서 있는 저것을 타는 순간 여기보다 더 끔찍한 곳으로 날 데려가 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눈에 비친 저것은 엘리베이터가 아니라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고물, 쓰레기였다.


내가 그렇게 어정쩡하게 서 있을 무렵 파란색 운동화를 신은 남자아이가 다가와 물었다.


“저와 여동생을 집으로 데려다주실 수 있죠?”


나도 그러고 싶다...


나 또한 그럴 수 있기를 진심으로 원했다.


아이들의 눈엔 내가 자신들을 집으로 데려다줄 수 있는 천사로 느껴지는 것 같았다.


큰 위험으로부터 무사히 빠져나왔다는 안도감마저 느끼고 있는 모습이었다.


하긴... 충분히 그럴만하다고 생각했다.


어쩌다 이상한 곳으로 와버렸는데 이상한 곳에 갇혀 있다가 어른들을 만나게 되었으니. 어린아이들의 눈엔 나와 태연이 신... 에 버금가는 존재로 보일 것이리라.


음...


남자아이는 내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삼촌이라고 불러도 되죠?”


“삼촌?”


아이의 말에 태연이 물었다.


그러나 곧 손뼉을 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재범이 삼촌이 좋겠다. 형이라 부르긴 좀 그렇고. 아저씨도 아니고.”


“재범이 삼촌? 우릴 꼭 엄마랑 아빠한테 데려다줄 거죠?”


아이가 재차 물었다. 확답을 들어야만 뒤로 물러날 듯 내 눈을 똑바로 응시하고 있었다.


-하하.


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고물 엘리베이터를 타고 이곳에 도착한 첫날 여길 꼭 빠져나리라 결심했으니까.


골리앗의 재롱에 빠져있던 여자아이가 끼어들었다.


“와! 오빠, 이제 우리 집에 갈 수 있는 거야?”


“당연하지. 내가 말했잖아. 누군가 우릴 도와주러 올 거라고.”


아이들은 나를 삼촌이라고 부르며 해맑게 웃었다.


이세계 오빠에 이어 삼촌이 되어버린 순간이었다.


웃음이 터져 나왔다.


-하하하!


사실 나도 여기가 어딘지 잘 모르겠어. 너희들이 나를 좀 도와줘야겠어. 앞으로 시끄럽게 굴지 말고 울지 말고 위험한 행동도 하지 말고.., 또 뭐가 있더라. 아무튼 늘 조심하고 경계해야 한다.


이따위 말이 떠올랐지만, 그 말을 내뱉을 순 없었다.


조금 후.


아이들이 머물러 있던 2층을 수색했다. 사나운 검은 개는 보이지 않았다.


아무도 없는 듯 건물 전체가 조용했다.


곧바로 옥상을 확인해보고 싶었지만, 우선은 아이들과 태연을 1층 식당으로 데려갈 필요성을 느꼈다.


갑작스레 몸이 피곤했다. 졸지에 삼촌이 되어버려서 그런 걸까?


휴식이 필요했다.




그로부터 30분쯤 후.


아이들과의 대화 끝에 몇 가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여동생과 함께 회전목마를 타고 있었어요. 전 싫다고 했지만, 엄마가 사진을 찍어야 한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탔거든요. 정말 싫었는데...’


남자아이의 이름은 김승우. 나이는 12살. 양 갈래로 머리를 묶고 있는 여자아이는 8살, 김승희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고, 모두 밝은 성격이었다.


‘썩은 시체를 보자마자 동생과 함께 도망쳤어요.’


‘곧장 이리로 온 거니?’


‘네. 이곳으로 뛰어 왔어요. 아! 건물 위에 뭔가 반짝이는 게 보였거든요.’


난 아이들의 말을 주의 깊게 들었다. 이곳에 오기 전 겪은 일과 건물 안에서 있었던 일들에 대해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어떤 실마리를 발견할지도 모르니까.


‘그런데 문이 열리지 않았다고?’


‘조금 전엔 아무리 애를 써도 출입문이 열리지 않았어요. 우린 갇혔다고 생각했어요. 2층으로 올라가 창문을 열어보았지만, 역시나 마찬가지였어요. 복도엔 사납게 생긴 검은 개가 서 있었어요... 창문 밖으로 삼촌을 보았을 땐 정말 눈물이 났어요. 하지만 꾹 참았어요. 남자는 울면 안 된다고 아빠가 말씀하셨거든요.’


승우가 말을 마치자 태연이 아이스크림을 내밀었다.


“우리 아이스크림 먹을까?”


1층 식당 안엔 먹을게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우리가 몇 년 동안 배불리 먹고 마셔도 다 못 먹을 만큼 많은 양이었다.


“우와! 아이스크림 먹을래.”


“난 딸기 맛.”


골리앗에게 정신이 팔려있던 승희의 관심이 아이스크림으로 향했다.


아이스크림은 아이들에게 마법 같은 존재였다.


“예삐, 이리 와.”


승희의 말에 골리앗이 귀를 쫑긋거렸다. 꼬맹이는 꼬리를 흔들며 슬쩍 내 눈치를 보았다.


그러다가 태연을 향해 시선을 돌리기도 하고.


-깡깡!


꼬맹이가 요란스레 짖으며 앞발로 바닥을 벅벅 긁으며 시간을 끌었다.


의견을 묻는 얼굴이었다.


예삐? 그 이름이 나랑 어울린다고 생각해? 좀 더 근사한 것으로 부탁하고 싶다...


“예쁘지? 귀엽기도 하고. 사랑스러워라!”


태연 또한 골리앗에게 무한 애정을 쏟고 있었다.


그러자 꼬맹이의 얼굴이 갑작스레 거만해졌다.


자신을 사랑해 줄 사람들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아챈 듯했다.


꼬맹이는 먼 산을 바라보거나 헥헥거리거나 바닥에서 구르기 놀이를 하며 자신의 귀여움을 한껏 과시했다.


승희가 다시 골리앗을 향해 계속 손짓했다. 분홍색 딸기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예삐야! 이리 오라니까.”


차마 두 번은 거절하지 못하겠는지, 꼬맹이가 쪼르르 승희 곁으로 다가갔다.


까맣고 동그란 눈동자를 깜박이면서. 혀를 내밀어 승희의 손을 한차례 핥더니 냅다 또 한 번 바닥을 구르며 재롱을 부렸다.


그 모습을 보며 잠시 이세계 탈출에 대한 부담을 잊었다.


태연은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그리고 승우는 초콜릿이 섞인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었다.


“삼촌은 아이스크림 싫어해요?”


딱히 먹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들의 동심을 파괴할 수 없었다. 맛있는 건 서로 나눠 먹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내 얼굴을 바라보는 반짝이는 아이의 눈동자.


난 냉장고에서 아이스크림 하나를 집어 들었다. 콜라 맛이었다.


-깡!


때맞춰 골리앗이 짖었다. 실컷 재롱을 부렸더니 배가 고픈 모양이었다.


냉장고 옆에 있던 과자를 접시에 담아 바닥에 놓았다.


이걸 왜 이제 주느냐고 꿍! 소리를 낸 골리앗이 접시에 코를 박고 먹기 시작했다.


-헥헥. 냠냠.


즐거운 간식 시간.


그러는 동안에도 내 머릿속은 바삐 돌아가고 있었다.


좀비들을 향해 소리를 내질렀다는 데빌이란 자는 어디로 간 것일까? 그자가 정말 좀비들을 잡아먹은 것일까? 아이들을 붙잡아 두려는 목적은?


더 나아가 데빌이 고물 엘리베이터나 회전목마, 그리고 계단 같은 것들을 이용해 사람들을 이곳으로 끌고 오는 건 아닐까, 하는 의심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어서 빨리 그자를 만나보고 싶었다. 진짜 이세계 창조자든 뭐든 간에 말이다.


조금 후.


간식 시간을 끝낸 우린 옥상으로 향했다. 태연에게 아이들과 함께 식당에 있으라고 말했지만, 모두 내 말을 듣지 않았다.


“나도 같이 갈래, 재범 오빠.”


“삼촌, 저도 갈래요. 확인해보고 싶어요.”


“나도! 예삐도 같이 가자!”


-깡!


우린 함께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혹시라도 좀비가 숨어있을 가능성도 있고, 사악한 그 무엇이 옥상 구석진 곳에 몸을 웅크린 채 먹잇감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했지만. 식당에 태연과 아이들만 남겨놓는다는 것도 께름칙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빠르게 위로 향했다. 이세계에 도착한 그 날처럼 엉뚱한 곳으로 날 데려다줄 거라는 불길한 상상은 버렸다.


이젠 눈앞에 닥친 일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어둡고 우울한 생각이나 상상은 미래에 아무 도움이 되질 않았다.


그건 에너지를 갉아먹을 뿐이다.


10층 꼭대기에 이르러 문이 열렸다.


짙은 회색, 차가워 보이는 복도를 가로질렀다. 태연과 아이들, 그리고 골리앗이 내 뒤를 따랐다.


계단을 올라 철문 앞에 다다랐다. 아무 일도 일어나질 않았다. 아이들이 둘이나 있어서 그런지 평소보다 신경이 더 쓰였다.


“문이 잠겨 있었어요.”


승우의 목소리를 뒤로 한 채 철문 손잡이를 잡아당겼다.


아무런 저항 없이 부드럽게 열렸고.


기다란 벤치 하나가 놓여 있는 옥상이 눈앞에 드러났다.


“와! 어떻게 된 거지? 문이 열리네.”


승우가 의아해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럼 이제 우리 집에 갈 수 있어, 오빠?”


“아직. 기다려 봐.”


아이들의 목소리.


“조심해, 재범 오빠.”


태연의 목소리가 뒤를 이었다.


바닥을 가로질렀다. 평범해 보이는 콘크리트 바닥이었다. 삐죽 솟은 나무 한 그루가 눈에 들어왔다.


건물에 들어오기 전 보았던 바로 그 나무였다. 하얀 나뭇가지, 뾰족한 나뭇잎이 유독 눈에 띄었다.


은빛 가루를 뿌려 놓은 듯 나뭇가지가 반짝거렸다.


“아, 이거였구나. 나뭇가지가 빛을 낸 거야.”


승우는 조금 실망한 얼굴이었다.


“그래도 예뻐. 나 한번 만져볼래.”


승희는 나무가 마음에 든다는 듯 작은 손으로 나뭇가지와 나뭇잎을 매만졌다.


-깡깡!


골리앗이 자기도 끼워달라고 조르며 제자리에서 핑그르르 한 바퀴 돌았고.


“그런데 이건 뭐야?”


태연이 눈을 깜박이며 나뭇잎 사이에 끼어 있던 무언가를 집어 들었다.


모두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다.


...눈부시게 하얀 깃털이 태연의 손에 들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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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붉은 옥수수밭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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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악마의 성을 빠져나오다 NEW 4시간 전 2 0 13쪽
» 하얀 깃털 24.09.18 5 1 13쪽
22 불의 힘 루드락샤 24.09.17 7 1 14쪽
21 데빌의 정체 2 24.09.15 10 1 13쪽
20 데빌의 정체 24.09.14 11 1 13쪽
19 또 다른 이세계 방문자 2 24.09.13 10 1 14쪽
18 또 다른 이세계 방문자 24.09.12 10 1 13쪽
17 깜짝 파티 24.09.11 9 1 13쪽
16 회전목마 아이들 2 24.09.10 9 1 12쪽
15 회전목마 아이들 24.09.09 13 1 13쪽
14 이세계 편의점 24.09.08 12 1 13쪽
13 토머스의 수첩 4 24.09.07 12 1 12쪽
12 토머스의 수첩 3 24.09.06 11 1 14쪽
11 토머스의 수첩 2 24.09.05 12 1 13쪽
10 토머스의 수첩 24.09.04 12 1 12쪽
9 은신처 2 24.09.03 11 1 12쪽
8 은신처 24.09.02 12 1 13쪽
7 웰컴 투 헬 2 +1 24.09.01 20 2 12쪽
6 웰컴 투 헬 +1 24.08.31 20 3 14쪽
5 그것들 2 +1 24.08.30 21 3 13쪽
4 그것들 24.08.29 27 3 13쪽
3 엘리베이터를 타고 2 +1 24.08.28 36 3 12쪽
2 엘리베이터를 타고 24.08.27 45 3 14쪽
1 쇠망치를 들고 뭘 하겠단 걸까 24.08.27 68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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