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후 와이프가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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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리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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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2 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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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후 와이프가 바뀌었다 023화

DUMMY



“자, 슛 들어가겠습니다! 카메라 롤!”

“롤링!”

“액......!”

“잠깐만요, 감독님!”


그 순간 최지아가 스톱을 외쳤다.

끼고 있던 헤드셋을 벗으며 최경수 감독이 물었다.


“지아 씨 왜? 무슨 문제 있어?”

“아뇨. 30초만 대사 정리 좀 하고 갈게요.”

“아~ 난 또 뭐라고. 오케이. 잠깐 대기 좀 하다 가겠습니다.”


돌고 있던 카메라가 꺼지고 스태프들이 잠시 담소를 나눴다.

그 사이 최지아의 시선은 어느 한쪽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뭐야? 누군데 저렇게 다정하지?’


그곳엔 정우와 어떤 한 여자가 서로를 마주 보고 서 있었다.

촬영장에 온 뒤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낯선 얼굴.

정우에게 가려서 자세히 보이진 않았지만 어쩐지 둘 사이가 심상치 않게 느껴졌다.


‘정우 씨는 왜 머리를 만지고 있는 거야......? 그것도 손까지 잡고?’


최지아가 충격을 받은 건 두 사람이 주고받는 행동들 때문이었다.

여자의 하얀 손은 정우의 손목을 잡고 있었고, 정우는 그런 여자의 긴 생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있었다.

누가 봐도 연인 사이에서나 나눌 법한 스킨십들.

충격적인 장면에 심장이 쿵쿵하다 못해 뭔가로 찔리는 듯한 느낌마저 들고 있었다.


“자, 준비됐으면 이제 가볼까요? 첫 씬이니까 편하게 가보자고 지아 씨. 틀려도 되니까.”

“아, 네...... 알겠습니다.”

“자, 갑니다! 롤링! 액션!”


불안한 마음을 가득 안고 일단은 촬영에 집중하는 최지아였다.



“아잇, 뭐 하는 거야? 더럽게.”

“더러운지 안 더러운지 만져보라니까? 머리 감았다고! 진짜로.”


하지만, 실제로는 그녀의 생각과 아예 딴 판인 상황이 펼쳐지고 있었다.

손을 탈탈 털며 정우가 인상을 팍 구겼다.


“거짓말하지 마. 너 머리 안 감은 날마다 일부러 머리 묶고 다니잖아. 네 입으로도 직접 얘기해 놓고는 무슨.”

“그건 옛날이고! 형사 일 시작한 후로는 맨날 묶고 다닌다니까? 감든, 안 감든?”

“에에, 에비, 에비. 저리 치워. 안 만지고 싶으니까.”

“뭐? 애비, 애비? 너 지금 우리 아빠 찾았냐? 이걸 확!”

“아악!”


정우의 손등을 꽉 물어버리는 서정아.

머리를 감았는데도 자꾸 안 믿어주니까 성이 나버렸다.

이빨 자국이 크게 찍힌 손등을 바라보며 정우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개 버릇 남 못 준다더니, 진짜 그 말이 딱이네. 네가 강아지냐? 왜 자꾸 사람을 물어?”

“강아지? 나 강아지 좋아하는데? 집에도 두 마리나 키워. 그리고, 나 얼굴도 강아지상이잖아?”

“넌 호랑이상이지. 아니다, 사잔가? 아무튼 순한 얼굴은 절대 아니야. 네버.”

“네버 같은 소리하고 있네. 하여튼 잘해주려고 해도 잘해줄 수가 없어요. 허구한 날 매를 벌어서.”


벌써 20년지기 친구인데도 매번 한결같은 두 사람이다.

물론 먼저 시비를 거는 쪽은 항상 정우이긴 했지만.

아이스박스에서 커피 하나를 꺼내 정우가 건네며 물었다.


“그나저나 무슨 일이야? 뭐 할 말이 있다며.”

“응. 저번 사건 때문에 좀 묻고 싶은 게 있어서. 와, 근데 너 이런 곳에서 촬영하는 거야? 난 영화 촬영장은 난생처음 와보네?”

“아아, 가까이 가지는 말고. 지금 씬 들어가서 잡음 끼면 안 되니까.”

“짜식, 출세했다? 저런 톱스타들하고 일도 같이하고. 저 사람들이 너랑 말은 섞어준대?”

“섞어주지 그럼. 내가 없으면 촬영장이 안 돌아가는데.”

“푸하하. 허세도 적당해야지. 하여튼 늘 한결같다니까. 하남자스러운 건.”

“뭐? 하남자? 나 진짜 처음 듣는다 그런 말. 진짜로.”

“그래, 오늘은 처음이겠지. 이제 오전 10시밖에 안 됐으니까.”


하여튼 서정아한테 말로는 절대 당해낼 수가 없다.

아니지, 싸움도 잘해서 맨날 여기저기 터지는 쪽도 자신이지?

엄마, 아빠가 검사고 자기는 형사면서 어쩜 이렇게 폭력적인 건지.


“그래서 뭔데, 할 말이. 밤에 전화까지 한 걸 보면 굉장히 중요한 얘기일 것 같은데.”


정우가 내준 옆자리에 앉으며 서정아가 고개를 주억였다.


“응. 저번 사건 때문에 왔어. 너한테 좀 물어봐야 할 게 있어서.”

“사건? 어떤...... 아, 구승학 대표?”


그렇지 않아도 정우도 한번 연락을 해볼까 싶었었다.


“뉴스 보니까 벌써부터 보석 어쩌고저쩌고하던데. 그게 가능해? 증거 나왔지, 현장에서 바로 체포까지 됐지. 게임 끝난 거 아니야?”

“그쪽에서 대형 로펌을 섭외해서 이래저래 수 쓰느라 그러는 거야. 그건 걱정마. 보석은 절대 허가 안 날 거니까.”

“흐음, 그래?”

“다만 좀 더 확실하게 처리를 하고 싶어서 너한테 추가 진술 좀 요청하려고 왔어. 어쨌든 검찰에 송치 보낼 때 최대한 많은 증거를 첨부해서 보내는 게 좋으니까. 구형을 생각해서라도.”


추가 진술이라고 하니 딱히 할 말이 떠오르지는 않았다.

애초에 그 사건은 오재식이 조사하던 걸 서정아에게 제보를 했던 거니까.

마약이 개입돼 있다는 건 순전히 자신의 추측에 의해서였고.

입맛을 다시며 정우가 입술을 뗐다.


“그런 거라면 내가 아니라 당시에 구승학 대표를 조사하던 탐정분 연락처를 알려줄게. 그래도 그분이 꽤 오랫동안 따라다녀서 진술해 줄 건 많을 거야. 나도 그분 얘기 듣고 너한테 연락을 했던 거라.”

“음, 그래? 그럼 그렇게 해줘. 그거랑 또 다른 제보자 얘기들 취합해서 최종적으로 기소 의견 보내려니까.”

“제보자? 나 말고 누가 또 있었어?”

“응. 나도 나중에 안 사실인데, 네 전화 받기 바로 직전에 다른 제보가 있었다더라고. 그래서 신빙성이 있다 생각하고 출동을 나가게 됐던 거고.”

“그래? 누군지는 모르고?”

“알아도 너한테는 얘기해줄 수가 없지. 제보자 신원은 철저히 지켜야 하니까. 그리고 그쪽은 사수가 맡아서 나도 자세한 건 몰라. 중요한 건 동시에 제보가 들어왔다는 거지.”


자신 외에도 또 다른 제보자가 있었다니.

이건 다소 예상치 못한 사실이었다.

만약 그 또 다른 제보자가 없었다면 이 일은 그냥 묻힐 수도 있었던 건가?

그렇게 생각하니 어쩐지 아찔한 기분이 들었다.


“아, 그리고. 너도 나한테 뭐 부탁할 거 있다며? 그건 전화로 해도 되는 거야?”

“아참, 너 오늘 비번이지? 시간 좀 돼?”

“시간은 되는데, 왜? 밥 사 주게? 오다 보니까 이 근처엔 별로 먹을 것도 없던데?”


아무래도 세트장 자체가 외진 곳에 짓다 보니 근처는 허허벌판이나 다름없었다.

정우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런 건 아니고, 어제 너 연락 받고 안 그래도 감독님이 부탁했던 게 떠오르더라고. 마침 너도 할 말이 있다고 하니까 겸사겸사해서 오라고 한 거야. 자문 좀 구할 수 있을까 해서.”

“자문? 무슨 자문?”

“이번 영화가 범죄물이 섞인 장르거든. 너는 형사고 너희 부모님은 검사이시니까 디테일하게 자문 좀 구할 수 있을까 싶어서. 감독님이 경찰 쪽으로 아는 사람 없냐길래 내가 물어본다고 했었거든.”


그 말에 서정아의 눈빛이 반짝였다.


“오, 그 말로만 듣던 전문가 자문이라는 걸 나한테 구하겠다는 거야? 이 마약 수사팀의 막내에게?”

“아참, 너 막내였지? 그럼 별로 도움이 안 될 것 같기도 하고......”


퍽.


“짜식이. 원래 막내가 돌아가는 사정은 제일 잘 아는 법이야. 일이란 일은 다 처리하니까.”

“아오, 아파. 너 감독님 앞에서도 이런 모습 보일 건 아니지? 나도 체면이라는 게 있는 사람이다? 사회적으론 지위가 있다고.”

“예예~ 사람들 앞에선 아주 떠받들어 줄 테니까 걱정마. 후후, 자문이라니. 이거 벌써부터 들뜨는데?”


한껏 표정이 상기돼 있는 서정아를 바라보고 있던 때, 뒤에서 최지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우 씨?”

“아, 지아 씨. 벌써 끝났어요?”

“네. 그런데 이분은 누구.”


심각한 표정으로 서정아를 바라보는 최지아.

그녀의 시선은 정우의 손과 서정아의 손을 쉴 새 없이 오가고 있었다.

분명 저 두 손이 맞잡았던 순간을 두 눈으로 목격했었으니까.


“아, 여긴 제 친구 서정아라고, 저랑은 초등학교 때부터 친한 사이에요. 저번 일로 물어보고 싶은 게 있다길래.”

“그럼 여사친?”

“네? 아, 뭐. 일단 사람이긴 하니까.”


그 말에 서정아가 정우를 흘겨봤다.

‘여자 사람 친구’의 줄임말인데 왜 거기서 사람을 강조하는 건가 싶었기 때문이다.

둘만 있었다면 또 주먹이 날라갔겠지만 사람들 앞에선 한껏 띄어주기로 했기 때문에 미소를 지으며 서정아가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정우 친구 서정아라고 해요! 우리 정우가 이렇게나 멋지고 대단한 일을 하다니. 덕분에 이런 유명하신 분도 뵙게 되고 영광인데요?”

“...... 우리 정우요?”

“네?”

“방금 우리 정우라고......”


그 말에 서정아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뭐가 잘못됐나 싶었기 때문이다.


‘뭐야. 내가 뭐 실수한 거야? 왜 저렇게 심각해?’


“하하하, 그럼 우리 정우 말고 남의 정우라고 할까요? 전 사실 어느 쪽이든 별로 상관은 없는데.”

“아, 아니에요. 저는 최지아라고 해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가볍게 눈인사를 나누고 자신의 전용 자리에 앉는 최지아.

정우는 서정아에게 잠깐 기다리라고 한 뒤 최지아에게 텀블러를 건넸다.


“저 친구가 그 친구예요. 지난번에 구승학 대표를 현장에서 검거했던 친구. 마약 수사팀에서 근무한다고 했었던.”

“네? 그 형사 친구가 저분이라고요? 저 여자분이?”

“네. 왜 그러시죠?”

“아니...... 그러기엔 너무 형사 비주얼이 아니잖아요. 얼굴도 예쁘고 몸매도 좋고, 게다가 웃는 얼굴은 선하기까지. 정말로 형사님이 맞아요?”


그중 어느 것도 공감할 수 없던 정우는 짧게 입맛을 다셨다.

뭐 객관적으로 보면 아예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순순히 고개를 끄덕여주고 싶지는 않았다.

그랬다간 몸에서 알러지 반응이라도 나올까 봐.


“정우 씨, 잠깐만 이리로 와 볼래요?”


갑자기 손짓으로 정우를 부르는 최지아.

가까이 다가가자 물티슈 몇 장을 꺼내서는 정우의 손을 닦기 시작했다.


“손은 갑자기 왜?”

“원래 밖에 나오면 자주 씻어 줘야 해요. 촬영장에 먼지가 많아서.”

“그런데 왜 한 손만......”

“유독 이 손이 지저분한 것 같아서요. 휴, 이제 됐다. 아무거나 막 만지고 그러면 안 돼요. 알겠죠?”


아무것도 만진 게 없는데 갑자기 왜 이러나 싶었다.

만진 거라곤 아까 전 서정아의 두피밖에 없는데.

잠깐. 두피?


“혹시.”

“혹시 뭐요? 저 아무것도 안 봤는데요?”

“그거 보고 이러는구나? 질투가 나서.”


질투라는 말에 결국 크게 숨을 쉬었다 내뱉는 최지아.

입술을 팔자로 그리며 속상한 얼굴빛을 보였다.


“저도 아직 못 잡아본 정우 씨 손이란 말이에요. 그런데 다른 사람이 만지니까......”

“하하.”

“웃지마요. 저 정말로 속상하니까.”

“으음.”


휴대폰을 보고 있는 서정아 쪽을 잠깐 힐긋하곤 정우가 최지아의 옆자리에 앉았다.

그런 뒤 싱긋 웃음을 지으며 그녀의 무릎 위에 있는 물티슈를 꺼냈다.


“왜......”

“지아 씨가 닦아줬으니까 저도 닦아줄게요. 아무래도 촬영장엔 먼지가 많으니까.”

“아, 안 그래도......”

“앞으론 이 손 말고 다른 손은 안 잡으면 되는 거죠? 남자든 여자든 상관없이.”

“......”

“그리고, 지아 씨가 훨씬 예뻐요. 몸매는 제가 말할 수 없지만 웃는 얼굴도 지아 씨가 훨씬 선하고. 적어도 제 기준에는요.”


그 말에 최지아가 되물었다.


“몸매는 왜 말할 수가 없어요? 저는 정우 씨 스타일이 아니에요?”

“아뇨, 그런 게 아니라. 그건 함부로 얘기할 수가 없으니까요.”

“왜...... 아, 직접 보지 않아서요?”


아무래도 정우의 반응이 그런 것 같아 최지아가 어깨를 활짝 폈다.

그런 뒤 한껏 자신감이 차 있는 어투로 정우를 향해 말했다.


“그럼 그건 걱정 안 해도 되겠네요. 곧 자연스럽게 알게 될 거니까.”

“네?”

“알게 될 거라고요. 정우 씨가 어떤 스타일을 좋아하는지.”


아무 말도 못 하고 그저 눈만 깜빡이는 정우.

자기도 모르게 그 순간 목구멍으로 침이 ‘꼴깍’ 삼켜졌다.






작가의말

힘든 월요일 파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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