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을 다스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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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질럿
작품등록일 :
2016.03.15 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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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4.18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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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3.17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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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청각(三淸閣)(1)

DUMMY

성호의 차가 서울로 들어오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지만 이미 자정이 다가오는 시간이었다.

조수석의 부용은 수 차례 깨어나기를 반복했지만 삼청각(三淸閣)의 청천당(聽泉堂)으로 가달라는 말만 남겼을 뿐 나아지는 기색이 없었다.

성호는 초조해졌다.

병원으로 가볼까 생각도 들었지만 부용이 거절하기도 했고 퇴마를 하다가 다쳤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하고 치료해야 할지도 막막하게 느껴져 그저 부용의 말대로 삼청각을 향해 운전했다.

그녀가 말했다면 무언가 이유가 있을 거라 믿어보는 거였다.

호흡을 가빠하며 힘들어하는 그녀의 숨소리를 들으며 성호 역시 초조함에 손에 땀이 배어났다.

삼청터널을 지나 삼청각의 정문에 도착한 성호는 그대로 차를 몰아 기둥만 존재하는 입구로 들어섰다.

고전 양식의 담벼락을 따라 나있는 도로를 조금 올라가니 천추당(千秋堂)이라는 건물이 나타났고 코너를 도니 작은 현관이 나있는 담벼락 안으로 청천당의 현판이 보였다.

성호는 문 앞에 급하게 주차를 하고 조수석으로 돌아가 부용을 안아 들어 차에서 내리게 했다.

저 건물 안에만 들어가면 뭔가가 해결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 성호는 제대로 서있지도 못하는 부용을 안아 든 채로 성큼성큼 마당을 가로질러 건물의 계단을 올라섰다.

“계십니까! 도와주세요!”

성호의 외침에 인기척이 들리더니 문이 열렸다.

성호와 눈이 마주친 것은 제주에서 그에게 인색하게 굴던 노파였다.

노파는 휘둥그래진 눈으로 성호를 보다가 안겨있는 사람이 부용임을 알고 놀라 소리쳤다.

“이게 무슨 짓이냐!”

“설명은 해드릴 테니. 이 아가씨 좀 살려주세요.

이리로 가라고 해서 온 거니까요.”

성호는 노파의 외침은 무시하고 그대로 부용을 안은 채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조용한 밤의 때아닌 소동에 주변에 있던 사람 몇이 청천당으로 몰려왔다.

노파는 별일 아니라는 듯 사람들을 돌려보내고는 문을 걸어 잠그고 성호에게 말했다.

“아가씨는 안으로 모셔라.”

건물 안에는 내실이 따로 있어 그리로 노파가 앞장섰고 뒤따른 성호는 내실에 펼쳐진 이불 위에 부용을 조심스레 눕혔다.

“어찌된 거냐. 아가씨가 왜 뭍에 오신 게야!”

성호는 숨을 돌리며 말했다.

“부여에서 사람들 죽어나간 거 아세요?

제가…… 거기를 데려갔어요.

근데 거기서 흑치상지라는 악귀한테 당했어요.

바로 여기로 데려다 달라고 해서 데리고 온 거니까 일단은 부용씨부터 살려주세요.

잘못은 나중에 혼내주시고요.”

악귀라는 말에 노파의 놀란 표정이 굳어진다.

“악귀가 어떻게 한 것이냐?

몸 안으로 들어간 것이냐?

부딪친 것이냐?”

성호는 가만히 부용의 일을 떠올려보고는 흑치상지의 동작을 따라 하며 노파에게 재현해보았다.

“이렇게?

이렇게 휘두르고 나서 부용씨가 맞고 쓰러진 거죠.”

“그 다음엔!

그 다음엔 그 악귀가 가만히 두더냐?

아가씨에게 다른 해를 끼치지는 않았느냐?”

“아뇨.

바로 다시 주먹을 휘둘렀는데……

제가 막아서긴 했는데……

아……이 부적만 남기고 사라졌어요.”

성호는 메고 있는 베낭의 겉 주머니에서 타다 남은 부적조각을 노파에게 건네주었다.

노파는 부적조각을 건네 받고는 한참을 성호의 베낭과 부적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다른 물건은 함께 없었느냐?”

성호는 베낭에서 챙겨두었던 작은 주머니를 꺼내어 마저 노파에게 건네주었다.

“이것도 주워왔습니다. 그게……”

“뼈 조각 일 테지……

사람들을 부를 테니 나가있어라.

이제는 네가 관여할 일이 아니다.”

노파는 머리맡의 인터폰을 들어 어딘가에 연락을 하는 모양이었다.

성호는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내실을 나와 건물을 나오니 세 명의 흰옷을 입은 중년여인들이 청천당의 현관으로 들어서는 모습이 보였다.

그 중 한 명이 성호에게 다가와 인사했다.

“국무(國巫)님께서 모시라 하셨습니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성호는 안내자를 따라 청천당의 맞은편에 있는 유하정(幽霞亭)이라는 정자로 들어섰다.

“여기서 기다리시죠.”

안내하던 중년여성이 인사를 하고 돌아서려 하자 성호가 말을 걸었다.

“그런데 누가 저를 여기 있게 하라고 하셨다고요?”

“국무님입니다.

저희 어머님이시죠.”

“궁무요?”

성호는 무슨 말인지 모르지만 일단은 잠시라도 앉아 있고 싶어 여인에게 인사하고 의자를 찾아 등을 기대었다.

사방이 통 유리로 트여있는 유하정의 창밖으로 청천당의 불빛이 눈에 들어왔다.

성호는 긴장이 풀려 잠깐 눈을 감았다고 생각했는데 눈을 떠보니 벌써 멀리에선 여명이 밝아오고 있었다.

성호는 피곤한 몸으로 의자에서 일어나 창가로 걸어가 보았다.

서울이 깨어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바로 앞의 청천당은 밤새 켜져 있었을 불빛이 여전히 마당을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청천당의 문이 열리고 노파가 세 명의 여인들과 걸어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성호는 유하정을 나가 노파에게 다가갔다.

여인들은 노파에게 인사하고 자리를 피했다.

“어떻게 되셨어요?”

“아가씨는 이제서야 주무시고 계시니

네놈만 여기서 조용히 하면 된다.

유하정으로 가자.”

노파는 성호를 지나쳐 유하정으로 걸어 올라갔다.

성호는 노파가 얼마나 화를 내며 잔소리를 해댈지 걱정하며 뒤를 따랐다.

노파는 이층으로 올라가 동이 트는 아침의 시내를 내려다보며 말을 아끼고 있었다.

성호는 물끄러미 노파의 뒤에 서서 말을 꺼내주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13년전이었다.

아가씨가 제주도로 가셨던 건......

쫓기듯 가셨었지……

혹시라도 부정을 탈까 노심초사하며 모시고 산 것이 13년이란 말이다.”

“죄송합니다.”

성호는 노파의 말에 바로 사과를 했다.

하지만 노파는 아랑곳 없이 계속 말을 이어 나갔다.

“제주에서 우리가 귀신을 가지고 흥정이라도 하는 것으로 보였느냐?

네 놈 마음대로 불러내면 아무 때고 올 사람으로 보였단 말이냐?”

“그럼 왜 그렇게 숨어 지내시려는 겁니까?”

성호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노파에게 물었다.

노파는 대답 없이 뒤돌아 서서 성호를 노려보고는 말했다.

“그곳에서 부적을 쓴 놈을 보았느냐?”

성호는 동네할머니 같던 노파가 이곳에서는 자못 근엄하게 말을 꺼내는 것이 조금 이상하게 느껴졌지만 노파의 질문에 성실하게 대답했다.

“탑 앞에서 기도하는 것처럼 보이던 남자였습니다.

가까이 가보려고 했더니 사람들 속으로 사라졌고요.

아 부용씨가 토지신이 사라졌다는 얘기도 했었네요.”

노파는 마지막 말을 듣더니 무서운 눈으로 쏘아보며 말했다.

“한번만 더 네놈의 입에서 아가씨의 이름이 나온다면 혀를 뽑아버리겠다.

아가씨라고 부르도록 해라.

네 놈을 지금 사지 멀쩡하게 내버려두는 것도 아가씨 덕분이니.”

“네……그러죠.”

성호는 마지못해 대답을 하고 가방을 챙겼다.

“어디를 가려는 게냐.”

“부여에서의 일도 끝났고,

부……아니 아가씨도 무사 하신 것 같으니 이젠 전 가봐야 할거 같아서요.”

“내 허락이 있기 전까진 그대로 있도록 해라.”

성호는 어이없어 하며 말했다.

“저도 제 일이 있습니다.”

“잡다한 네 놈의 일생에

뭐하나 제대로 된 일이라고 할 수 있는 게 있다고 생각하느냐?

돈은 어떻게든 벌고 사는 모양이다만

네 놈이 하는 일은 내 이미 알아봤으니

그런 말 같지도 않은 소리 하지 말고 여기서 기다려라.”

성호는 자신이 프리랜서 기고나 데이트레이딩 같은 여러 가지로 돈을 벌고 있음을 밝히지 않았음에도 그걸 알아낸 노파의 신기(神氣)에 놀라 더 이상 간다는 말은 꺼내지 않았다.

“할머님. 그런데 왜 여기에 계셨던 겁니까?

여기는 음식점 아닙니까?”

노파는 성호의 물음에 씁쓸한 표정으로 있다가 고개를 돌렸다.

“이 산이 무슨 산이냐?”

“산이요? 아……북악스카이웨이가 있으니 북악산이죠.”

“북악산이 무슨 산인지 아느냐?

저 아래 보이는 것이 무엇인지 보이느냐?”

노파가 가리키는 곳은 아침안개에 가리워지기 했지만 경복궁이 자리한 곳이었다.

노파의 곁에 선 성호는 보이는 대로 말했다.

“경복궁이죠.”

“북악은 경복궁의 주산(主山) 이니라.

왕실의 기도를 올리던 곳이 바로 이 자리였지.”

성호는 자신이 아는 대로 노파의 말에 응대했다.

“조선은 유교국가였지 않습니까.

굿이나 뭐……배척했던 것으로 아는데요.”

“유생들이 길길이 날뛰었지.

하지만 왕실의 사람들의 마음을 달래준 게 그 유생 놈들의 상소였을까?

아니면 우리 기도와 굿이었을까?

궁에서 드리던 기도조차 마음대로 할 수가 없으니 이 산중턱으로 숨어 올라와서 했던 게지.

그 자리에 이렇듯 밥집이 들어선 게다.”

“여기는 서울에서 운영하는 곳인데 할머님이랑 저 다른 분들은 여기서 일을 하시는 건지……”

그 말에 노파는 처음으로 웃으며 말했다.

“일이라면 일인 게지.”

노파의 웃음에 성호는 조금은 긴장된 마음이 풀렸다.

“무슨 공연 같은걸 하시나 봐요. 그럼.”

그 말에 노파는 다시 싸늘한 표정으로 변했다.

종잡을 수 없는 노파의 표정에 성호는 차라리 부용이 더 편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광대들이나 하는 짓을 한다는 게냐.

네 놈과는 말을 섞을수록 답이 안 나오는구나.”

노파는 청천당으로 모여드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는 유하정을 내려갔다.

성호는 노파의 뒤를 따라 걸어가 마당 한곳에 서있었다.

노파는 건물 앞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 사람들이 정렬하는 것을 기다렸고, 어느새 마당을 가득 메운 하얀 한복의 여인들이 제각기 공손히 두 손을 모으고 마당에 자리잡고 있었다.

여인들은 젊은 사람부터 나이든 사람까지 각양각색이었다.

정장을 입은 한 남자가 성호의 옆으로 다가왔다.

“조식이 준비되었습니다.

가시죠.”

성호는 그 말에 고개 숙여 답례하고 움직이려다 궁금한 것을 물어보았다.

“지금 여기서 무슨 행사를 하시는 거죠?”

성호의 말에 남자는 웃으며 말했다.

“행사까지는 아니고 그냥 아침 문안 드리는 겁니다.”

“할머님께요?”

“네. 국무(國巫)시니까요.”

“국무요?”

“대대로 나라의 기도나 굿을 하시는 무당을 말합니다.

예전엔 왕실의 기도나 굿을 하시기도 했고요.

저희 삼청각에서는 귀빈이시죠.

일년에 한번씩 이곳에서 모임을 하시는데 그때는 저희도 다른 손님을 일체 받지 않습니다.

전국에서 따님들이 백여 분 정도 모이시죠.”

“딸이요?”

“신딸들 입니다.

국무님께 신내림을 받으신 따님들인 거죠.”

마당의 여인들이 모두 엎드려 노파에게 절을 했다.

- 국무님께 문안인사 드립니다.

노파는 웃으며 인사를 받고 있었다.

성호는 생각보다 대단한 무당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 생각은 그런 저 노파가 받들어 모시는 부용은 어떤 사람인가 하는 것이었다.

노파는 인사를 받고 사람들을 둘러보다가 한 사람과 눈을 마주치고는 얘기했다.

“어제 부여에서 원귀들이 많이 생겨났다.

부여 선화는 어여 짐 챙겨서 집으로 가라.

가서는 그 윈귀들 달래주고 좋은 곳으로 보내도록 해라.

그리고 고란사에 초향이라고 어린 귀신이 사는데

그 아이가 어미를 보고 싶어하니 좋은 곳으로 올려 보내주도록 해라.”

“네. 어머님.”

한 여인이 고개 숙여 대답했다.

“오늘은 내가 다른 말하기 전까지는 모두 여기 산신님께

지성으로 공양을 드리고 태울 것을 준비해라.”


작가의말

간혹 지나가면서 보아왔던 삼청동의 삼청각을 배경으로 써봤습니다.

서울시가 관리하는곳인데 이곳에서 몰래 혜택을 보던 공무원이 얼마전 징계를 받았죠.

몇 억을 해먹은것도 아니고 말도 안되는 밥값 할인 받다가 그런 꼴이 우습네요.

좀도둑은 잡아들이고 대도는 떵떵거리면서 사는 세상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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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무당산(武當山)(1) +2 16.04.08 251 6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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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마니산(摩尼山)(2) +2 16.03.31 283 9 14쪽
20 마니산(摩尼山)(1) +2 16.03.30 449 7 14쪽
19 천부인(天符印)(4) +2 16.03.29 320 9 13쪽
18 천부인(天符印)(3) +2 16.03.28 367 7 12쪽
17 천부인(天符印)(2) +2 16.03.25 351 8 12쪽
16 천부인(天符印)(1) +2 16.03.24 289 8 13쪽
15 서대문(西大門)(3) +2 16.03.23 347 7 12쪽
14 서대문(西大門)(2) +2 16.03.22 282 10 13쪽
13 서대문(西大門)(1) +2 16.03.21 377 11 13쪽
12 삼청각(三淸閣)(3) +4 16.03.18 382 9 13쪽
11 삼청각(三淸閣)(2) +4 16.03.18 384 12 11쪽
» 삼청각(三淸閣)(1) +2 16.03.17 325 10 11쪽
9 흑치(黑齒)(4) +4 16.03.17 461 10 12쪽
8 흑치(黑齒)(3) +2 16.03.17 447 10 12쪽
7 흑치(黑齒)(2) +2 16.03.16 421 12 13쪽
6 흑치(黑齒)(1) +2 16.03.15 451 11 12쪽
5 애월만가(漄月輓歌)(4) +4 16.03.15 538 14 14쪽
4 애월만가(漄月輓歌)(3) +3 16.03.15 433 1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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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애월만가(漄月輓歌)(1) +3 16.03.15 707 16 13쪽
1 프롤로그 +2 16.03.15 1,279 16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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