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을 다스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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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질럿
작품등록일 :
2016.03.15 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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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4.18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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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3.17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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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흑치(黑齒)(3)

DUMMY

먼저 눈을 뜬 것은 부용이었다.

몸을 덮고 있던 성호의 옷을 보고 성호를 바라보니 아침기온이 쌀쌀한지 팔짱을 낀 채 운전석에 기대어 누워있는 모습이었다.

덮고 있던 옷을 다시 성호에게 덮어주려는데 성호가 눈을 떴다.

“몸은 어떠세요. 정말 병원에는 안 가보셔도 되는 건지……”

눈을 비비며 성호가 부용에게 말했다.

“네. 괜찮아요.”

성호는 눈을 비비고는 밤새 습기로 덮인 창문을 닦아 창밖을 내다보다가는 다시 질끈 눈을 감는다.

“아……미치겠네……”

“저들에게는 안 보일 테니 걱정 마세요.”

아직 정리중인 아파트의 주차장위로 어젯밤의 악몽 같던 현장에서 생겨난 정처 없는 영혼들이 다시 눈에 들어왔다.

“아침인데도 귀신이 보이는 겁니까?’

“낮이라고 귀신이 자는 건 아니니까요.

양기가 충만해도 순음지기(純陰之氣)는 쉽게 사라지지 않아요.”

부용은 측은하다는 듯이 주차장의 영혼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식사는 어떻게 하시겠어요?”

“저도 가벼운 음식이면 될 거 같은데요.”

성호는 차를 움직여 근처의 아침식사가 가능한 곳에서 부용과 가볍게 식사를 하고 시간을 맞추어 부소산성의 입구로 향했다.

삼충사는 매표소를 지나 가까운 곳에 위치해있었다.

이른 시간이라 오가는 사람은 없었지만 언제고 사람들이 몰려들지 모르는 곳이었다.

입구에 높게 달려있는 ‘의열문(義烈門)’이라는 현판을 지나 안으로 들어서니 깨끗하게 정비된 너른 마당을 건너 다시 ‘충의문(忠義門)’이라는 문이 들어서있고 그 뒤로 삼충사가 문을 열고 두 사람에게 모습을 드러냈다.

“예전에 와봤던 기억은 있지만 꽤나 넓은 곳이네요.

왕궁의 후원이었다고 하더니……”

부용은 삼충사의 열린 문 안으로 신을 벗고 들어섰다.

중앙의 인물화 앞에 놓여져 있는 향로에 향의 불을 붙여 꽂아 놓고는 잠시 눈을 감고 기도를 한다.

기도를 멈추자 기다렸다는 듯 성호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묻는다.

“여기서 어떤걸 하시려는 건가요……

제사를 드리시려는 건지……”

“이 분들은 여기 계시지 않아요.

최소한의 예로 모시기 위해 배향을 했습니다.”

“이분들이라면……”

성호는 향로 뒤로 그려져 있는 초상화아래 명패의 이름들이 하나씩 눈에 들어온다.

- 성충(成忠)

- 흥수(興首)

- 계백(階伯)

“혹시 모르니 놀라지 마시고 예를 갖춰주세요.”

“저희 모습을 이분들이 보시는 겁니까?

어제 주신 부적이 있는데……”

“잡귀를 막는 부적입니다.

이 분들께서는 수호령(守護靈)들 이시기 때문에 부적은 아무 영향 없습니다.”

부용은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아 합장하며 조용히 말했다.

“소(召).”

성호는 오싹한 기운이 드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아무런 변화도 보이지 않았다.

“이분들이 오신겁니까?”

부용은 성호의 뒤를 바라보며 두 손을 모아 인사를 올렸다.

“오셨습니까?”

“부르시는데 와야지요.”

성호는 뒤에서 들려오는 갑작스런 목소리에 놀라 몸을 돌려 뒷걸음질 했다.

선명하진 않지만 아침햇살 사이로 사람의 형태를 한 모습들이 서있었다.

처음 보는 의관을 입고 있는 모습들에 성호는 적지 않게 당황했다.

“인사를 올리세요.

백제의 삼공(三公)이십니다.”

부용의 말에 성호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 숙여 인사를 올렸다.

지난밤부터 이어지는 혼란스러운 경험에 성호는 머릿속이 아득했다.

“지난밤에 있었던 일을 아십니까?”

부용이 조용히 묻자 문관의 복장을 한 두 사람이 한숨을 쉬었다.

“알지요. 알다마다요.”

“누구의 짓인지 아시겠습니까?”

“흑치(黑齒)의 짓이요.”

굳은 얼굴의 장수가 말했다.

성호는 짐작으로 계백장군이라 느껴졌다.

“흑치라 하심은 누구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부용은 계백에게 다시 한번 물었다.

“흑치상지(黑齒常之).”

계백은 짧게 대답했다.

“왕께서 신임하셨던 두 장수가 있었습니다.

안에는 계백 밖에는 흑치라는 말도 있었죠.

여기 계신 계백공께서는 왕의 명을 직접 행하시는 달솔(達率)이셨고

흑치상지는 대대로 지방의 안위를 담당하던 달솔이었습니다.”

“그 놈은 배신자요.”

계백이 말을 끊으며 내뱉었다.

“가문 대대로 백제의 녹을 먹어놓고는

백제를 멸한 당나라의 개가되어 백제를 아예 뿌리째 없애버렸소.”

그렇게 긴 세월이 흘렀음에도 계백은 아직도 분한 듯 힘주어 말했다.

계백의 말을 듣던 다른 두 사람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왜 이곳에서 그런 짓을 벌인 걸까요?”

부용은 궁금한 것을 물어보았지만 세 사람 모두 고개를 저었다.

“알 수가 없습니다.

악귀가 되어 왜 지금에서야 다시 나타나 사람들을 해하는지……”

“그도 백성들에게는 존경 받는 장수였습니다.

사사로운 욕심도 없었고 인자한 사람이었습니다.”

“흥수공께서는 아비인 흑치사차(黑齒沙次)와

동문수학하신 것 때문에 너무 불쌍히 여기시고 계십니다.”

계백이 흥수의 말을 잘랐다.

“그는 더 이상 백제의 신하가 아니외다.

당나라의 신하지요.”

성충도 계백의 말에 힘을 보탰다.

부용은 세 사람의 말을 계속 듣다가는 안될 것 같아 마지막 질문을 건냈다.

“그자는 지금 어디에 있는 걸까요.

지난밤 사라진 이후로 흔적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정림사(定林寺)로 갔소이다.”

계백이 말했다.

“그 놈에게 부끄러움이란 게 있다면 이 땅에서 고개를 들고 다니지 못했을 것이오.

죽어서도 부끄러움을 모르니 개탄할 지경이오.”

계백은 홀연히 자취를 감췄다.

뒤를 이어 성충과 흥수도 부용에게 인사를 하고 사라졌다.

모두가 사라질 때까지 부용은 고개를 숙여 두 손 모아 인사를 하고 있었다.

성호는 사라지는 모습들을 지켜보다가 부용의 옆으로 다가갔다.

“어디로 가신겁니까.”

“머무시는 곳으로 가신 겁니다.”

“이젠 정림사지로 가야 하는 건가요.”

성호의 물음에 부용은 고개를 끄떡이는 것으로 답을 했다.

그 모습을 본 성호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핸드폰을 켜서 정림사지의 위치를 확인했다.

“직진하면 바로 앞에 있군요.

그러면 가서도 아까처럼 불러내시는 겁니까?”

“글쎄요. 사람들 사이에서 그럴 순 없겠죠.

아무래도 찾아봐야겠죠.

……

영이 이젠 조금 친숙해지셨나요?”

“전혀.”

성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계단을 내려갔다.

멀리 의열문을 통해 지난밤의 사건에도 불구하고 여행을 온 학생들이 떼를 지어 입장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런 사건이 벌어진 곳이 지척임에도 일정은 변경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두 사람은 서둘러 삼충사를 벗어났다.

정림사지는 이미 많은 관광객들이 모여있었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정림사지5층 석탑을 지나 박물관으로 이동하고 있었고, 깃발을 든 관광객들의 무리가 탑 주변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었다.

중국인들로 보이는 그들은 탑을 ‘피잉지타아’ 라고 부르고 있었다.

정림사지5층 석탑이라고 부르는 것은 우리나라 사람들이었고,

중국인들은 1층 탑신에 새겨져 있는 ‘대당평백제국비명(大唐平百濟國碑銘)’이라는 당나라 소정방이 남긴 백제정벌기념글귀 때문에 ‘피잉지타아’, 다시 말해 ‘평제탑(平濟塔)’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관광객들의 사진촬영을 보면서 성호와 부용은 주변을 서성거렸다.

부용이 악귀의 기운을 탑 주변에서 느꼈기 때문이었다.

“이곳이에요.”

성호는 주변을 돌아보지만 특이한 점은 없었다.

“전 모르겠어요.”

“주변에서 느껴져요.

그런데 이 기운이 뭘까요……”

부용은 눈을 감은 채로 무언가를 찾는 듯 고개를 들었다.

“가까이에서 느끼게 되니 좀 달라요.

그 악귀가 맞긴 한데 제가 알던 것과는 성질이 다른 것 같아요.”

성호는 부용이 하는 말을 알아낼 방법이 없어 그저 듣고만 있었다.

“한적한 곳을 찾아서 토지신을 불러봐야겠어요.”

부용의 말이 이제는 놀랍지도 않은 성호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나무 몇 그루와 함께 벤치가 있는 곳을 찾아 그리로 부용과 함께 자리를 옮겼다.

부용은 벤치에 앉아 눈을 감고 잠시 기도를 하고는 말했다.

“소(召).”

성호는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삼충사에서와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부용은 잠시 뒤 눈을 떴다.

“어찌된 일일까요?

토지신은 자리를 비우진 않는데……”

부용은 주변을 둘러보다가 다시 탑 주위에 모여있는 관광객들을 쳐다보았다.

“저 안에서 악한 기운이 느껴져요.

하지만 보이진 않아요.”

“설마 탑 안에서 느껴지는 건 아니겠죠?

탑을 뜯어볼 수도 없는 일이니까요.”

성호는 벤치에 앉아 삼삼오오 모여 움직이는 관광객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부용은 관광객들 사이에서 혼자 움직이는 한 남자에게 시선이 끌렸다.

모두가 사진촬영에 열중인 가운데 홀로 탑에 기도라도 하듯이 우두커니 합장을 하고 있는 이였다.

성호도 마침 그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

“폐허가 된 절인데도 기도를 하는 사람이 있네요.”

“술사(術師).”

부용이 나지막이 말했다.

“네?”

성호는 부용의 말을 제대로 듣지 못해 다시 물었다.

“술사에요.

기도가 아니라 수인(手印)을 맺고 있어요.”

부용의 말을 듣고 다시 보니 기도하는 손 모양이 손바닥을 가만히 합친 모양이 아닌 조금은 다른 모양으로 보였다.

“저자에게 악귀가 빙의된건가요?”

“빙의 된 걸로는 보이지 않아요.

주문을 외우고 있겠죠.

가까이 가봐야겠어요.”

부용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걸어가자 성호도 바로 뒤를 따랐다.

두 사람의 발걸음이 조심스레 주목하고 있던 이에게 다가갔다.

순간 두 손을 모아 기도하던 모습의 그 사람은 이동하는 관광객의 무리에 묻혀 사라졌다.

“사라졌어요.”

성호가 관광객들 사이를 눈여겨보다가 말했다.

“우리가 오는 것을 알아챘던지.

아니면 하던 일을 마친 거겠죠.”

부용은 사라진 남자가 서있던 주변을 살펴보았다.

탑을 감싸고 있는 낮은 울타리 너머엔 잔디가 덮여있었다.

부용은 다듬어 지지 않아 길이가 일정치 않는 잔디 사이의 바닥에서 무언가를 발견했다.

“저것……”

부용이 가리킨 곳에는 눈에 잘 띄지 않을 만큼의 작은 주머니가 놓여져 있었다.

“가져올까요?”

성호는 주머니를 눈으로 확인하고 부용에게 물었다.

“아녜요. 지금 손으로 만지시면 위험할 수 있어요.

저기서 어제 그 기운이 느껴지네요.

그 술사가 무슨 짓을 한 걸까요……”

부용은 눈을 감고 깊은 생각에 빠졌다.

“토지신이 사라진 것과 관련이 있을 것 같네요.

토지신은 이 땅에서 생겨난 모든 일을 지켜보고 있었을 테니까요.

지금 여기서 할 수 있는 건 없어요.

해가 지면 다시 와보죠.”

성호는 해가지면 이곳도 문을 닫는다고 말하려 했지만 주변을 살펴보니 월담을 해도 괜찮을 만큼 허술한 관리 때문에 달리 토를 달지 않았다.

“저녁때 다시 오신다면 시간이 많이 남는데 그 동안 어디 가보실 곳이라도 있나요?”

“악귀가 있는 곳은 찾았지만 빙의 된 부려진 영혼들도 찾아봐야죠.

모두 젊은 여자들이었어요.

그렇게 많은 여자들의 영혼들을 어디서 불러왔을까요?”

부용의 질문에 성호는 다시 한번 휴대폰을 꺼내어보았다.

그가 검색하는 동안 부용이 화면을 함께 들여다 본다.

“지금 검색하고 있어요.

……

이것도 습관이네요……

부여에서 젊은 여자들 영혼이 어디에 많을지 찾다니……”

성호는 어이없다는 듯이 고개를 들다가 부용과 눈이 마주쳤다.

”혹시……

휴대폰 없으시죠.

한번도 꺼내시는걸 본적 없는데……”

부용이 무안했는지 한발 뒤로 물러났다.

“저는 필요가 없어서……”

“영혼보다 먼저 찾아봐야 할게 뭔지 저는 알겠네요.”

성호가 검색하던 것을 멈추고 웃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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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천부인(天符印)(2) +2 16.03.25 351 8 12쪽
16 천부인(天符印)(1) +2 16.03.24 288 8 13쪽
15 서대문(西大門)(3) +2 16.03.23 347 7 12쪽
14 서대문(西大門)(2) +2 16.03.22 282 10 13쪽
13 서대문(西大門)(1) +2 16.03.21 376 11 13쪽
12 삼청각(三淸閣)(3) +4 16.03.18 381 9 13쪽
11 삼청각(三淸閣)(2) +4 16.03.18 382 12 11쪽
10 삼청각(三淸閣)(1) +2 16.03.17 324 10 11쪽
9 흑치(黑齒)(4) +4 16.03.17 459 10 12쪽
» 흑치(黑齒)(3) +2 16.03.17 447 10 12쪽
7 흑치(黑齒)(2) +2 16.03.16 420 12 13쪽
6 흑치(黑齒)(1) +2 16.03.15 451 11 12쪽
5 애월만가(漄月輓歌)(4) +4 16.03.15 537 14 14쪽
4 애월만가(漄月輓歌)(3) +3 16.03.15 433 17 12쪽
3 애월만가(漄月輓歌)(2) +2 16.03.15 561 15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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