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을 다스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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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질럿
작품등록일 :
2016.03.15 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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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4.18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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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4.12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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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무당산(武當山)(3)

DUMMY

북경공항을 이륙하려 대기하고 있는 비행기의 조종실에 스튜어디스가 노크를 하고 들어갔다.

“커피 준비해드릴까요?”

“아니. 지금은 들고 있는 게 있어서 말이야.

공항에서 서비스라며 한 아가씨가 주지 뭐야.

이따가 부탁하지.”

커피를 입에 달고 살다시피 하는 조종사가 사양하며 말했다. 스튜어디스는 조종실을 나가려다 발 밑에 떨어진 작은 종이조각 하나를 주워 들어서 확인해 보려다가 밖에서 부르는 소리에 얼른 종이를 작은 호주머니에 넣고 나가보았다.

“미숙씨. 이륙준비 기내 확인해요.”

“네. 알겠습니다.”

기내의 승객들 머리 위에 놓인 짐칸이 제대로 닫혀있는지를 확인하며 승무원들이 오가고 있었다. 주선은 신문을 펼쳐 읽다가 승무원과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끄덕였다.

“네. 손님 도와드릴까요?”

“이륙하게 되면 위스키 센 걸로 한잔 부탁합시다.”

“네. 알겠습니다.”

주선은 고도가 높은 곳에서 마시는 술은 안 취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경석에게 보고하기 전에 비행기에서 한잔 정도야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승무원에게 부탁했다. 굉음을 내며 북경공항을 이륙한 비행기는 얼마 지나지 않아 공해상으로 이동했고 기내 서비스를 마친 미숙은 난기류로 인해 모두 잠시 자리에 앉아있게 되었다. 굳게 닫혀있는 비상구 앞의 자리에 앉은 미숙은 허리춤의 주머니에서 빠져 나오려 하는 작은 종이조각을 집어 들었다. 순간 그녀의 표정이 웃는 모습 그대로 굳으면서 맞은 편에 마주 보며 앉아있는 승객과 눈을 마주쳤다. 승객 역시 미숙의 눈웃음에 미소로 답했지만 그녀의 눈이 왠지 초점이 맞지 않는다고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미숙은 안전띠를 풀더니 비상구의 개폐장치인 안전레버에 손을 가져다 댔다. 그걸 보고 있던 승객은 단지 안전 점검이려니 생각하고 보고 있었지만 그녀가 레버를 작동시켜 비상구가 공중에서 문이 열리자 그녀가 청소기에 빨려 들어가듯 비상구 밖으로 빨려나갔고 기내는 몰아치는 바람과 요동치는 짐칸에서 떨어지는 화물들로 아수라장이 되어버렸다. 비행기는 크게 흔들리며 기체에는 조금씩 균열이 가기 시작했고 급격하게 바다로 추락하고 있었다.



성호는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켜놓은 채로 휴대폰으로는 검색을 하고 있었다. 아버지가 남겨준 ‘붉은 산’이라는 숙제를 풀기 위해 구글링을 해보지만 온통 김동인의 ‘붉은 산’만이 검색될 뿐이었다. 하지만 검색을 통해 성호는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일제시대에 일본과 대적하느라 암암리에 동지의식을 가지고 있었을 거라 여겼던 중국과 조선이 서로간의 학살을 벌였던 만보산사건을 알게 되었다. 중국의 민족운동과 조선의 민족운동이 결탁하기를 바라지 않았던 일제가 교묘한 이간질로 조선 내에서 중국인배척운동이 벌어지게 하여 중국인 100여명이 폭력으로 사망하게 되고 이에 광분한 중국인들 역시 만주지역에서 조선인들을 대량으로 학살했던 사건이었다. 그 이후에 나왔던 소설이 만주를 배경으로 하는 김동인의 ‘붉은 산’이었다.

그 사건과 할아버지께서 관련이 있으신 것인지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알아낼 수 있는 것은 그게 다였다. 피곤한 눈을 감고 소파에 기대어 있다 보니 가만히 인기척이 느껴졌다. 어느새 부용이 소파 한쪽에 와서 앉아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모양이었다. 방안에서만 있는 것도 지루하고 힘이 들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어려서부터 늘 책만 보았다던 사람이 프로그램들을 즐겨보기 시작하는 것이 한창 텔레비전에 빠져있는 어린아이들과 다를 것이 없는 모습이었다. 성호는 아무런 내색 없이 잠에서 깬척하며 말을 걸었다.

“언제 오셨어요.

아……할머님은 부산에 무슨 일로 가신 거죠?

부용씨를 잘 모시고 있으라고 신신당부를 하시고 가시던데…...”

“제사때문에요.

해마다 부산에 가세요.”

“제사요?”

부용은 채널을 돌리며 덤덤하게 말했다.

“신내림을 받으시기 전에 할머니도 결혼을 하셨었고 하루하루 사는 게 힘들었지만 잘 살아보시려고 애쓰셨대요.

시어머니에게 구박받고 남편은 바람을 피고 아이도 못 낳는 여자라고 고생이 심하셨던 것 같아요.

그때 그 남편 분 제사라고 하셨던 것 같아요.”

“미운 정이라도 드신 걸까요?

저라면 그런 인연이라면 안 챙길 거 같은데요.”

“모르겠어요.

할머니만 아시겠죠.”

조용히 얘기하는 부용을 성호는 가만히 바라보았다. 아무렇지 않은 척 하고는 있지만 성호의 시선을 신경 쓰고 있는 눈치였다.

“부용씨……”

부용이 성호의 부름에 고개를 돌려 성호와 눈을 마주치고는 금새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다.

“혹시 저 불편하세요?”

“아니요.”

홍조가 되어있는 얼굴을 숨기지도 못하고 부용은 아무렇지도 않은 척 또다시 두근거리는 마음을 애써 누르고 있었다. 성호는 입에서만 맴도는 말을 숨을 들이마시고는 꺼내기 시작했다.

“서대문에서 제가 정신을 잃고 부용씨에게 실례를 범했을 때요……”

“전 다 잊어버렸어요.”

성호가 말을 다 꺼내기도 전에 부용이 그녀답지 않게 말을 잘랐다. 하지만 성호도 아랑곳 하지 않고 기왕에 꺼낸 말을 이어갔다.

“북한강에서도 그렇고요……”

“마음에 두지 마세요.

어쩔 수 없는 일들이었잖아요.

제 잘못도 있고요.”

성호는 잠깐 뜸을 들이다가 말했다.

“부용씨가 늘 제 편이 되어주시는 것도 좋고.

웃는 모습도 좋거든요.

그런데 자꾸 어색해지는 것 같아서요.

요즘 저를 좀 불편해 하시는 것 같아서 그게 마음에 걸렸어요.

그냥 저만 그렇게 느끼는 거겠죠?”

갑작스런 성호의 말에 부용은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모르는 표정이었다. 부용은 성호가 자신에게 고백을 하는 것이라 생각했고 성호는 단지 어색함을 지우기 위해 편하게 마음을 터놓은 것이었다. 성호는 가족 같은 편안함을 느끼고 싶어서 그렇게 이야기 한 것이지만 부용은 성호의 말을 오해했다. 자신과 같은 고민을 하고 있던 것으로만 생각이 든 것이었다.

“저도 성호씨가 좋아요.”

말을 하고서도 부용은 스스로의 말에 놀라고 있었다. 눈을 감고 스스로를 자책하는 것만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성호는 뭔가 자신이 예상했던 대화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부용의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잠시 고민했다. 문득 북한강에서 자신의 손을 어루만지던 부용의 손길이 기억났다. 기억을 거꾸로 거슬러 자신이 무언가를 할 때마다 기쁘게 도와주던 그녀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녀의 말이 그녀와의 기억에 오버랩 되며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성호의 전화벨이 울린 것은 부용과 서로의 눈을 그윽하게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주선이 함께한 이후 좀처럼 직접 전화를 거는 일이 없던 민경석이 직접 걸어온 전화였다.

“예. 풍백님.”

“뉴스를 봤나?”

“아닙니다. 무슨 뉴스인가요.”

“이사람. 천하태평이구먼.

뉴스를 틀어보게.”

성호는 서둘러 채널을 돌려 볼륨을 키웠다. 화면에는 바다한가운데에서 형체도 알아볼 수 없도록 조각나버린 비행기동체가 촬영되고 있었고 자막이 커다란 글씨로 지나가고 있었다.


- 긴급속보: 북경 발 인천공항 행 여객기 서해상에 추락. 탑승객 전원 사망한 듯.


“무슨 일 입니까?

우리나라 비행기인가요?”

“북경에서 출발한 인천으로 오는 비행기였네.

주선이 타고 있었네......”

부용은 화면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어 놀란 성호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생존자는 있습니까?”

“없네.

아무도 탈출하지 못한 것 같네.”

“저희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네.

시신을 수습하고 있으니 다른 연락을 하기 전까진 그대로 있도록 하게.

알고 있어야 할 것 같아 연락했네.

주선을 대신할 사람은 찾아 보내도록 할 테니……”

경석의 전화는 거기까지 였다.

“무슨 전화죠?”

걱정하는 눈빛으로 부용이 성호에게 물었다. 성호는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

“최선생님이 저 비행기에 타고 있었다고 합니다.”

부용은 ‘아’하는 탄식과 함께 눈을 감더니 손을 모아 기도했다.

“돌아가신 걸까요?”

“생존자는 없다고 하네요.”

성호와 부용은 아무 말없이 화면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이윽고 부용은 차마 볼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숙였고 눈물을 흘렸다. 그런 모습을 보며 성호는 그저 부용의 흐느끼는 손을 잡아줄 뿐이었다.



경석은 성호와의 통화를 마치고 서랍을 열어 액자를 꺼냈다. 오래 전의 자신과 아내 그리고 하나밖에 없는 아들 도훈의 앳된 모습이 낡은 사진 속에 담겨있었다. 사진은 남아있지만 그 사진을 찍어주었던 주선은 이제 사라졌다. 아내가 죽고 장례를 치르는 동안 모든걸 혼자 처리했던 도훈이 전화를 걸어와 자신에게 의절의 말을 꺼냈던 순간이 떠올랐다. 평생을 외로움 속에서 살아온 어머니처럼 이젠 아버지도 똑 같은 고통을 받을 차례라며 모든 연락을 끊고 잠적했던 도훈이었다. 소재지와 연락처를 매번 어떻게든 알아낸 주선 덕에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사는지는 알고 있었지만 차마 연락을 하지는 못했었다. 하지만 이젠 주선이 없으니 영영 연락이 끊길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찾아왔다. 망설임 끝에 경석은 주선이 남기고 간 연락처를 찾아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이십여 년이 지났지만 한번에 알아들을 수 있는 목소리였다. 수화기너머로 앳된 아이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아빠 전화하시잖아. 조용.”

여인의 목소리가 들리자 아이의 목소리가 줄어들었다.

“여보세요.”

도훈이 다시 한번 말했다.

“나다......”

경석의 목소리를 알아들었는지 건너편에선 침묵이 흘렀다.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나는 것이 자리를 피하는 듯이 들렸다.

“몸은 건강하십니까......”

“그래 나야 늘 그렇지.

도훈이 너는 어떻게 살고 있니.”

경석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모르는 척 물어보았다.

“결혼을 했고 아이가 하나 있습니다.”

“그래. 이름은 뭐라 지었니.”

“지수라고 지었습니다.”

“지수.

민지수라.

이름이 예쁘구나.”

“제 전화는 주선이형이 알아내셨겠죠.”

“그래 주선이가 내게 알려주었다.”

경석은 주선의 이름을 말하며 마음이 무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주선이형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 모양이네요.”

“왜 그리 생각하니.”

“......

시험하시는 건가요.”

“아니다.

그냥 궁금해서 그런다.”

“아버지께 무슨 일이라도 있으셨다면 형이 전화했겠죠.

하지만 주선이형 없이는 저를 찾기 힘드실 테니

저를 지금 찾으셔야만 하는 일이 생긴 거겠죠.”

“그래. 네 말대로구나.

......

주선이가 죽었다.”

도훈은 지난 시절 친형처럼 따랐던 주선이 죽었다는 얘기에 잠시 말을 멈추었다. 하지만 슬퍼할 겨를도 없이 그의 머릿속이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누구와 관련된 일입니까?”

“단군님이시다.”

“찾아내신 거군요. 그렇다면 주선이 형이 상대한 건 누구죠?”

“중국이다.

주선이는 중국 쪽을 조사하고 뭔가를 알아내고 오는 길이었다.

비행기가 추락했고 공교롭게도 그 안에 주선이가 있었지……

염치없지만……

네 도움이 필요하구나.”

도훈은 잠시 생각에 잠겨있다가 말을 꺼냈다.

“지수에게 할아버지를 만나러 가자고 해야겠네요.

곧 찾아 뵙겠습니다.”

도훈은 전화를 끊으며 뒤따라 나온 딸 지수를 바라보았다.

“우리 지수.

할아버지한테 인사하러 갈까?”

지수를 뒤따라 나온 세민이 그 말을 듣고 말했다.

“잘 생각하셨어요.

평생을 뵈지 않고 살수는 없는 거잖아요.

아버님 건강은 괜찮으신 건가요?

편찮으셔서 부르신 건가요?”

“건강은 괜찮다고 하시는데 연세가 있으시니 예전과 다르시네요.

호랑이 같던 분께서 순해지셨어요.”

도훈은 모질게 먹었던 마음이 가족을 얻고서는 어느 샌가 풀려있음을 느꼈다. 이미 마음속으로는 아버지를 용서한지 오래되었지만 자신의 선택이 가족을 위해 바람직한 것인지는 확신이 들지 않았다.

“서울로 갈 준비를 하자고요.

지수가 서울공기를 힘들어할까 걱정이 되기는 하네요.”

도훈은 집 앞을 가로지르는 동강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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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동정호(洞庭湖)(3) +2 16.04.18 349 4 16쪽
32 동정호(洞庭湖)(2) +5 16.04.15 242 7 15쪽
31 동정호(洞庭湖)(1) +2 16.04.14 301 4 11쪽
30 무당산(武當山)(4) +4 16.04.13 242 4 12쪽
» 무당산(武當山)(3) +2 16.04.12 287 4 12쪽
28 무당산(武當山)(2) +4 16.04.11 286 5 13쪽
27 무당산(武當山)(1) +2 16.04.08 251 6 13쪽
26 북한강(北漢江)(3) +2 16.04.07 316 6 10쪽
25 북한강(北漢江)(2) +2 16.04.06 345 7 12쪽
24 북한강(北漢江)(1) +2 16.04.05 247 7 12쪽
23 마니산(摩尼山)(4) +2 16.04.04 264 8 13쪽
22 마니산(摩尼山)(3) +2 16.04.01 354 8 12쪽
21 마니산(摩尼山)(2) +2 16.03.31 282 9 14쪽
20 마니산(摩尼山)(1) +2 16.03.30 447 7 14쪽
19 천부인(天符印)(4) +2 16.03.29 318 9 13쪽
18 천부인(天符印)(3) +2 16.03.28 366 7 12쪽
17 천부인(天符印)(2) +2 16.03.25 351 8 12쪽
16 천부인(天符印)(1) +2 16.03.24 288 8 13쪽
15 서대문(西大門)(3) +2 16.03.23 347 7 12쪽
14 서대문(西大門)(2) +2 16.03.22 281 10 13쪽
13 서대문(西大門)(1) +2 16.03.21 376 11 13쪽
12 삼청각(三淸閣)(3) +4 16.03.18 381 9 13쪽
11 삼청각(三淸閣)(2) +4 16.03.18 382 12 11쪽
10 삼청각(三淸閣)(1) +2 16.03.17 324 10 11쪽
9 흑치(黑齒)(4) +4 16.03.17 459 10 12쪽
8 흑치(黑齒)(3) +2 16.03.17 446 10 12쪽
7 흑치(黑齒)(2) +2 16.03.16 419 12 13쪽
6 흑치(黑齒)(1) +2 16.03.15 450 11 12쪽
5 애월만가(漄月輓歌)(4) +4 16.03.15 536 14 14쪽
4 애월만가(漄月輓歌)(3) +3 16.03.15 433 17 12쪽
3 애월만가(漄月輓歌)(2) +2 16.03.15 561 15 11쪽
2 애월만가(漄月輓歌)(1) +3 16.03.15 706 16 13쪽
1 프롤로그 +2 16.03.15 1,277 16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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