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을 다스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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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질럿
작품등록일 :
2016.03.15 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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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4.18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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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3.17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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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흑치(黑齒)(4)

DUMMY

부용은 극구 사양했지만 성호가 마음의 빚이라도 갚아야 한다며 건네준 새 휴대폰을 손에 들고 있었다.

“직접 해보세요. 제가 하는걸 보셨으니까요.”

성호의 말에 부용은 어색한 손짓으로 휴대폰을 만져보았다.

노파와 늘 집안에만 있느라 필요가 없던 휴대전화가 신기하기도 하고 조금은 욕심이 나기도 했던 모양이었다.

“저는 우선 짐작이 가는 곳이 있어서 그리로 운전하겠습니다.

오전에 갔던 곳입니다.”

성호는 부용이 검색하는 것을 기다리지 않고 차를 몰아 다시 부소산성 입구에 도착했다.

“낙화암으로 가보시죠.

정말 삼천 명의 영혼이 물속에 있는 게 보인다면 미쳐버릴지도 모르지만……”

차를 주차하고 성호와 부용은 낙화암을 가리키는 표지판을 따라 얕은 산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다음 번에도 이렇게 이런 일이 있으면 다시 부탁 드려도 될까요”

천천히 길을 걷다가 성호가 말했다.

“할머니가 안 된다고 하실 거에요.”

“제가 전화로 몰래 여쭤보면 되죠.

계시는지 안 계시는지.”

부용이 웃으며 말했다.

“조왕신이 다 일러바칠걸요.

제가 있는 집은 조왕신이 워낙 수다쟁이라서……”

“조왕신은 또 뭔가요. 그것도 영혼인가요?”

“부엌에서 불을 지키는 신이에요.

어느 집에나 있어요.”

부용은 이젠 성호가 조금은 편해졌는지 묻지 않은 내용도 하나 둘 일러주고는 했다.

숨이 조금 가빠질 만큼 산을 오르자 백마강이 눈에 들어왔다.

낙화암은 울타리가 쳐져 있는 너른 바위였다.

관광객들 사이에서 조심스럽게 둘러보았지만 성호의 눈에는 삼천이란 숫자에 어울릴만한 모습은 바위 위는 물론 강물 위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여기 같았는데……”

성호가 주변을 살펴보는 사이 부용은 돌아서 길을 걸었다.

“이쪽이요.”

부용이 가리킨 곳은 고란사(皐蘭寺)로 가는 길이었다.

부용의 앞으로 한 여인이 길을 안내하는 것이 성호에게도 보였다.

여인의 안내를 받아 두 사람이 도착한 고란사는 낙화암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작은 절이었지만 관광객으로 넘쳐있었다.

두 사람을 안내하던 여인은 어느새 인가 사라졌다.

“아까 그분은 누구였죠?”

“산신(山神)입니다.”

부용이 대답했다.

다른 때였다면 말 같지도 않은 소리라고 했겠지만 성호는 이제 그녀의 말에 어느 정도 쉽게 수긍이 갔다.

“산신령은 남자 아닌가요?”

“신의 세계에서 남자와 여자는 의미가 없어요.”

“아까처럼 불러내신 건가요?”

“아니에요.”

성호의 질문에 부용은 가만히 웃어 보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산신이 안내한 이유가 여기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대웅전을 따로 갖추지 못한 고란사는 본당만이 존재하는 작은 절이었다.

그 옆으로 산길이 나있고 부용은 그리로 걸음을 옮겼다.

성호는 부용의 뒤를 따라 몇 걸음 옮기자 그 곳에는 부용을 기다렸던 것으로 보이는 수십 명의 여인들이 서있었다.

그들 앞에 부용이 도착하자 그들은 모두 고개 숙여 부용에게 절을 올렸고 부용도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여쭤볼 것이 있어 찾아왔습니다.”

부용이 말했다.

“지난밤 이곳을 찾은 악귀가 있었습니까?”

“흑치장군이 찾아 왔습죠.”

나이 들어 보이는 여인이 말했다.

“저희는 불당에 있어 소리만 들었지만 산 이곳 저곳에 떠돌아 다니던 여인네들이 흑치장군에게 끌려갔습니다.”

“저는 보았습니다.”

어려 보이는 소녀가 앞으로 주위사람들의 눈치를 보다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당나라 장수가 언니들 여럿을 끌고 사라졌어요.”

“또 너는 예불에 빠진 것이야.”

혀를 차며 한 여인이 말했다.

“누구든 뭐라 말하는 소리를 들으셨나요?”

부용이 소녀에게 가만히 물었다.

“원통하다. 원통하다.

살아서는 매적(賣賊)이요.

죽어서는 역적(逆賊)일세.

구슬프게 울면서 언니들을 잡아가던걸요.”

소녀는 또랑또랑하게 노래라도 하듯이 들었던 내용을 부용에게 전해주었다.

성호는 부용의 뒤에 서있다가 용기를 내어 한마디를 꺼내어보았다.

“모두 궁녀 분들이신 겁니까?”

소녀가 성호를 보며 말했다.

“궁녀도 후궁도 그냥 백성도 있죠.”

부용이 생각에 잠겨있는 사이 성호는 소녀에게 질문을 계속 건냈다.

“저희가 알기로는 낙화암에서 떨어지신 분들이 삼천 명이나 되신다고 들었습니다.”

“도대체 누가 그래요?”

소녀가 어이없다는 듯이 화를 냈다.

“칼을 든 놈들이 달려드는 데 다들 도망친 거죠.

사비는 한번도 신라 놈이던 당나라 놈이던 발을 디딘 적이 없었으니까요.

산길을 넘어 도망치다 바위에서 뛰어내려 땅 위에 떨어진 언니들은 모두 죽었고,

강물에 빠진 언니들은 몇몇은 살아 도망치기도 했지만 물에 빠져 그대로 떠내려가기도 했고요.

그런 저희를 하나하나 몇 명인지 헤아린 사람이 있다는 건가요?”

“초향아.”

“네. 마마님.”

소녀는 이름을 불리자 고개 숙여 답하고는 뒤로 물러났다.

“어린 것이 아직 수행이 부족해 생전의 미련을 다스리지 못했습니다.

두 분께서는 노여워 마십시오.”

점잖아 보이는 부인이 말을 하자 성호는 오히려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궁금한 것이 너무 많아 실례를 저지른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끌려가신 분들은 모두 돌아왔나요?”

부용이 묻자 여인들은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잘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아무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부용은 여인들에게 인사를 하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오늘밤에도 같은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모두 안전하게 계시기 바랍니다.

그럼 이만……”

부용이 인사를 마치자 여인들은 하나 둘 사라지기 시작했다.

모두가 사라졌을 때 소녀만이 남아 두 사람에게 다가갔다.

“아깐 죄송했어요.

말씀 안 드린 것이 있는데……”

소녀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조용히 말을 다시 꺼냈다.

”사실 어제 저는 산을 넘어서까지 몰래 따라가봤어요.

숨어봤는데 그 검은 장군이 언니들을 데리고 어떤 사람에게 갔어요.

무서워서 가까이는 가지 못해서 어떻게 된 건지는 모르겠어요.

저는 사실 산을 넘어가면 안 된다고 했거든요.”

부용은 소녀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요.

혹시 원하는 게 있나요?”

소녀는 잠시 망설이다 부용에게 말을 꺼냈다.

“어미에게 가고 싶어요.

여기 있는 언니들도 마마님도 모두 좋은 분들이지만 어미가 보고 싶어요.”

부용은 측은하다는 듯 바라보다가 말했다.

“초향이라고 했죠. 지금은 안되지만 제가 꼭 사람을 보내서 그 원을 들어드릴게요.”

“정말요?”

소녀는 기쁜 표정으로 놀라며 말했다.

“대신 당분간은 어제처럼 위험하게 있지 마세요.”

“네. 꼭 그럴게요. 고맙습니다. 안녕히 가셔요.”

소녀는 웃으며 사라졌다.

두 사람이 산길을 내려오자 스님 한 분이 지켜보다가 말을 건넸다.

“거기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법당은 여기 하납니다.”

“네. 길을 잘못 들었네요.”

성호는 스님에게 인사하며 부용과 함께 왔던 길을 돌아갔다.

인사를 받은 스님은 의아해하며 두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법당으로 들어갔다.

길을 되돌아 오며 성호가 부용에게 물었다.

“사람에게 갔다고 했죠?”

“네. 그 술사가 맞을 거에요. 막아야겠죠.

어제처럼 또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정림사지는 저녁이 되자 을씨년스러운 기운이 돌았다.

석탑을 비추는 조명을 제외하고는 휑한 공터너머로 박물관을 둘러싼 가로등만이 드물게 비춰주고 있었다.

석탑을 지나치던 바람 한줄기가 제자리를 맴돌다 그대로 가라앉고 잠시 적막이 흘렀다.

전압이 불안정한 듯 조명이 깜빡이다가 꺼져버리더니 석탑의 울타리 안에서 검은 기운 하나가 피어 올랐다.

키가 2미터는 넘을 것 같은 거구의 모습이 고통스러워하며 몸을 일으켰다.

어찌나 고통스러워 하는지 이를 가는 소리가 부용과 성호가 몸을 숨기고 있는 담벼락의 그늘까지 들려왔다.

성호는 부용의 부탁대로 다른 것은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부용이 정신을 잃지 않도록 하는 일에만 집중하기 위해 들리는 소리는 무시하려 애썼다.

부용은 검은 기운의 장수가 고통을 이겨내지 못하고 결국엔 몸을 움직이려 하자 빠르게 다가가 외쳤다.

“속(束)!”

검은 장수는 몸을 비틀대다가는 멈추었다.

하나의 행동만 취했을 뿐인데 부용은 기진맥진해 보였다.

“흑치장군.

왜 사람들을 해하십니까……”

부용의 말에 흑치상지는 부용을 돌아보며 힘겹게 말했다.

“내 뜻이 아니다……”

흑치상지의 목소리에 성호는 무심코 그를 바라보았다.

고통스러운 듯 이를 가는 그의 모습이 보였다.

검은 기운 탓인지 선명하게 볼 수는 없었지만 그의 이빨이 검게 물들어 있었다.

그를 왜 흑치라고 부르는지 알 것 같았다.

“누구의 부림을 받는 겁니까?”

지쳐있는 부용이 질문을 했다.

“내 뼈……

훔쳐간 내 뼈로……

나를 불러내 내 뜻과는 상관없이 나를 움직이게 한다……”

“부리는 자가 누구인가요?”

“……”

흑치상지는 말이 없었다.

부용은 그가 모르고 있다 하더라도 그를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누군가가 더 이상 그를 이용해 악행을 저지르지 못하게 막아야 했다.

“당신의 뜻이 아니라 해도 이미 많은 사람들을 해치셨습니다.

여인들의 혼들도 이미 소멸되었겠죠.

이곳에 더 머무르실 순 없습니다.”

부용이 가만히 두 손을 모아 예를 갖추고 외쳤다.

“며……”

그녀의 말이 채 떨어지기도 전에 흑치상지는 그녀의 술법이 풀렸는지 몸을 돌려 손을 휘둘러 그녀를 쳐냈다.

손끝의 검은 기운이 부용에게 뻗치더니 부용의 몸에 닿자 부용의 몸이 크게 뒤로 꺾이며 튕겨졌다.

성호는 놀라 쓰러진 부용의 앞으로 다가가 붙잡고 흔들었다.

“이봐요. 깨어나요!”

쓰러진 부용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고 흑치상지는 걸음을 두 사람이 있는 곳으로 옮겼다.

초조하게 부용을 흔들던 성호는 거구의 그림자가 다가오자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이봐요! 어떻게 해요! 일어나요!”

흑치상지는 두 사람 앞에 이르러 포효하며 주먹을 쥐고는 어깨위로 올렸다가 크게 내리꽂았다.

성호는 부용의 앞에서 몸을 움츠리며 손에 들고 있던 가방을 머리위로 들어 그 주먹을 막아내려 했다.

흑치상지의 주먹이 성호의 가방에 부딪치는 순간 가방에서 강렬한 빛이 내뿜어지며 그 빛은 흑치상지의 몸을 꿰뚫어 버렸다.

몸을 관통 당한 흑치상지는 앞으로 쓰러져 무릎을 꿇고는 서서히 관통 당한 부위에서부터 조각조각 먼지처럼 사그라져갔다.

검은 기운이 걷히며 그의 얼굴에선 고통이 사라지고 있었고, 성호는 들고 있던 가방을 내려 그 모습을 보았다.

뒤집힌 가방에선 청동거울이 떨어졌다.

“내 뼈를……

모두 찾아……

태워주시오……”

흑치상지는 성호에게 마지막 말을 남기고는 바람에 날려 사라졌다.

그가 무릎을 꿇고 있던 자리에는 타다 남은 조그만 종이부적하나가 뒹굴었다.

“이봐요. 부용씨.

사라졌어요……”

멍하니 있던 성호는 털썩 자리에 주저앉았다.

긴장되어있던 어깨에도 힘이 빠져 늘어졌다.

그 앞으로 뒹굴러 온 종지조각을 집어 들어 보고는 가방한쪽 주머니에 넣고 탑 아래 잔디 사이에서 봐두었던 주머니를 가져왔다.

헝겊으로 만들어진 주머니 안에는 작은 돌 조각 같은 것이 손에 잡혔다.

그게 말했던 뼈 조각인 듯 했다.

계속해서 부용을 흔들어 깨웠다.

“부용씨. 어떻게 된 건진 모르겠지만 일어나보세요.

내가 뭔가 한 것 같은데……”

부용이 눈을 힘겹게 뜨며 말했다.

“서울로……”

짧게 말을 마치더니 부용은 그대로 눈을 감고 쓰러졌다.

성호가 가만히 호흡을 확인하니 숨소리가 아주 약했고 얼굴은 하얗게 질려있었다.

“부용씨!”


작가의말

흑치상지는 백제멸망 후 백제부흥운동을 펼치다가 당군에 항복하고는 국공()이라는 귀족계급에 오를만큼 스스로 공을 많이 세웠던 백제출신의 장수입니다.

민족의 배신자인지 이민세대의 개척자인지 논란거리이지만 능력이 출중했던 사람이었다는것은 기록에 남아있습니다.

측천무후시절 누명을 쓰고 자결하였으나 후에 복직되었고, 실제 무덤 묘지석이 북망산에서 1929년에 출토되어 연구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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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동정호(洞庭湖)(3) +2 16.04.18 349 4 16쪽
32 동정호(洞庭湖)(2) +5 16.04.15 243 7 15쪽
31 동정호(洞庭湖)(1) +2 16.04.14 301 4 11쪽
30 무당산(武當山)(4) +4 16.04.13 242 4 12쪽
29 무당산(武當山)(3) +2 16.04.12 287 4 12쪽
28 무당산(武當山)(2) +4 16.04.11 286 5 13쪽
27 무당산(武當山)(1) +2 16.04.08 251 6 13쪽
26 북한강(北漢江)(3) +2 16.04.07 316 6 10쪽
25 북한강(北漢江)(2) +2 16.04.06 345 7 12쪽
24 북한강(北漢江)(1) +2 16.04.05 247 7 12쪽
23 마니산(摩尼山)(4) +2 16.04.04 265 8 13쪽
22 마니산(摩尼山)(3) +2 16.04.01 354 8 12쪽
21 마니산(摩尼山)(2) +2 16.03.31 283 9 14쪽
20 마니산(摩尼山)(1) +2 16.03.30 447 7 14쪽
19 천부인(天符印)(4) +2 16.03.29 318 9 13쪽
18 천부인(天符印)(3) +2 16.03.28 367 7 12쪽
17 천부인(天符印)(2) +2 16.03.25 351 8 12쪽
16 천부인(天符印)(1) +2 16.03.24 288 8 13쪽
15 서대문(西大門)(3) +2 16.03.23 347 7 12쪽
14 서대문(西大門)(2) +2 16.03.22 282 10 13쪽
13 서대문(西大門)(1) +2 16.03.21 376 11 13쪽
12 삼청각(三淸閣)(3) +4 16.03.18 381 9 13쪽
11 삼청각(三淸閣)(2) +4 16.03.18 382 12 11쪽
10 삼청각(三淸閣)(1) +2 16.03.17 324 10 11쪽
» 흑치(黑齒)(4) +4 16.03.17 460 10 12쪽
8 흑치(黑齒)(3) +2 16.03.17 447 10 12쪽
7 흑치(黑齒)(2) +2 16.03.16 420 12 13쪽
6 흑치(黑齒)(1) +2 16.03.15 451 11 12쪽
5 애월만가(漄月輓歌)(4) +4 16.03.15 537 14 14쪽
4 애월만가(漄月輓歌)(3) +3 16.03.15 433 17 12쪽
3 애월만가(漄月輓歌)(2) +2 16.03.15 561 15 11쪽
2 애월만가(漄月輓歌)(1) +3 16.03.15 706 16 13쪽
1 프롤로그 +2 16.03.15 1,279 16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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