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을 다스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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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질럿
작품등록일 :
2016.03.15 07:28
최근연재일 :
2016.04.18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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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4.07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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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북한강(北漢江)(3)

DUMMY

“아가씨를 데리고 제주로 간지 얼마 되지 않았던 때였네.

그때가 열세 살이었지.

심신이 약해져서 매일 경기를 일으키셨고

귀신을 보는 분이니 당연히 차귀부를 써서 눈을 가려야 했네.

하지만 고개만 돌리면 안보는 사이에 집밖으로 뛰쳐나가시는 것이 일상이었지.”


“혼자서 돌보신 거에요?”


다은이 노파에게 물었다.


“딸들이 전국각지에 백 명이 있어도

소문이 나지 않도록 돌봐야 했으니 혼자 해야 했지.

몇몇이 교대로 제주에 와서는 넉넉하진 않지만

부족하진 않게 살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가기는 했고……

물론 풍백의 도움이 제일 컸지.

그게 아가씨가 병원에서부터 가져온 낡은 인형 하나가 있었는데 그게 사달이 났어.

병원에 들어가기 전부터 몸에서 떼지 않던 인형이었다고는 하는데……

어린아이니 그냥 그러려니 한 게 잘못이었어.

태풍이 불던 날이었는데 그날 인형에 숨어있던 악귀가 모습을 드러냈지.

살인귀였어.

춘천에서도 아가씨에게 빌붙어 숨어 지내던 놈이었는데

부적들이 모두 비에 젖어 휴지조각이 되고 나니 기다렸다는 듯이 나타난 게야.

그 놈이 아가씨 몸 안으로 들어가자 아가씨가 부엌으로 뛰어들어가더니 칼을 들고나와 미친 사람처럼 휘두르더구나.

난 간신히 몸을 피해서 부지깽이를 들고 아가씨를 내리쳤지.”


노파는 아직도 아찔한 장면이 떠오르는 듯 몸서리를 쳤다.


“명주실로 된 밧줄로 아가씨를 묶고 퇴마를 했지만 어찌나 독한 놈인지 좀처럼 나가질 않더구나.

그런데 그 놈이 그런 이야기를 했어.

이 아이가 사람을 얼마나 잘 죽이는지 아느냐고 말이야.

시키는 자신도 혀를 내두를 정도라나.

15년 전 춘천에선 부랑자들이 목이 잘려 죽는 일들이 있었어.

여섯인가 일곱째까지 그랬는데 아가씨가 병원에 들어가고서야

그 사건들이 멈췄고 유야무야 넘어간 게지.”


“아가씨가 하신 일이래도 빙의 된 상태였으니 어쩔 수 없는 거죠……”


성호가 낮의 일을 떠올리면서 말했다.


“아가씨께서는 기억을 못하시고 있네.

기억하신다면 저리 여린 분이 어떻게 견디시겠나.”


“춘천이라는 말에 심하게 거부감을 보이셨어요.

결국엔 이성을 잃으실 정도가 되어버리셨고요.

그 악령이 아직 아가씨에게 남아있는 걸까요”


“그 악령은 아가씨께서 직접 소멸시키셨으니 이젠 남아있지 않네.

자신을 괴롭히던 악귀란 것도 모르시고 그러셨지

그 뒤로 지금의 모습이 되신 게야.

하지만 그것들이 아직은 기억저편에 남아있으실 게야……

다시는 마주치고 싶지 않은 잊어버린 기억이신 게고…...

내 생각이 맞다면 떠오르는 기억을 피하시려고 하신 게 아닐까 싶네.”


세 사람은 모두 아무 말없이 방바닥만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먼저 성호가 입을 열었다.


“계속 덮어두실 건가요.”


“그럼 신고라도 하자는 겐가.”


노파가 버럭 화를 내며 말했다.


“아뇨.”


성호가 고개를 저었다.


“아가씨께서 하신 게 아니라 악귀가 했다는 거 알고 있습니다.

저도 이젠 수 차례 봤고요.

하지만 아가씨도 알고 계셔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 드리는 말씀이에요.

이겨내시게 해야죠.”


“아닐세.

마음이 여리신 분께서 얼마나 자책을 하시겠나.

그저 조심시키고 모르시게 해서 맘이라도 편하게 사시게 해야 하네.

뭍으로 나오지 않으려고 했던 이유도 그런 이유라네.

혹시라도 기억을 찾으실 까봐 그랬던 것이고

또 같은 일이 벌어질까 자네들에게 얘기하는 것이지

어두운 기억을 꺼내달라고 말하는 게 아닐세

다은이 너도 우사랑 같은 생각인 게냐?”


잠자코 있던 다은은 노파의 물음에 가만히 대답했다.


“계룡산에 있을 때 산속 암자에서 노스님과 함께 오래 있었어요.

그때 그 노스님이 다른 욕심은 하나도 없으신 분이

어느 겨울에 난초 화분 하나를 얻으시고는 방안에서 애지중지 키우셨거든요.

방안에서 잎사귀를 닦아가며 자식처럼 겨울을 보내시고

봄날이 되어서는 적당한 곳에 뿌리를 내리도록 땅에 심어주셨는데

충분히 살수 있는 환경인데도 말라 죽더라고요.

그때 노스님이 하신 말씀이 원래 내 것이라고는 없는 것인데 내 것 인양 마음을 쓰니

자연으로 돌아가야 할 자연의 것조차 본분을 잊고 죽게 만들었구나 하셨어요.”


“나보고 들으라는 소리냐.”


노파가 노여워하며 다은에게 묻자 다은이 굽힘 없이 말했다.


“아버지께서도 본분을 잊은 자는

성심을 다해도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없다고 하셨어요.

단군께서도 원하지 않았던 잘못이더라도 있다면 아시고 받아들이시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저 같은 어린아이도 그거는 알고 있어요.

죄를 물으려는 게 아닌데 너무 감싸시는 것 같아요.”


“내가 말을 괜히 꺼냈구나.

너희 모두 내가 죽기 전까지 지금 이야기들은 입 밖으로 꺼내지 말아라.

아가씨를 보호하기 위해 너희가 존재하는 게다.

아가씨는 너희가 이래라저래라 할 수 있는 분이 아니니

추호도 지금의 그런 생각들을 다시는 꺼내지 말도록 해라.

나가봐라.”


노파는 잔뜩 어두워진 얼굴로 두 사람을 물러나게 했다.

현관으로 나가는 성호를 다은이 따라 나섰다.


“왜 할말 있어?”


다은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성호보다 먼저 현관을 나가 성호의 집 현관문을 열었다.

엘리베이터를 끼고 마주보고 있다 보니 이웃이란 경계는 없었고 한집이나 마찬가지였다.

집에 들어서니 다은은 창가를 바라보며 서있었다.


“하고 싶은 말 있으면 해.

할머니께서 아시면 또 작당하는 줄 아시겠다.

얼른 얘기하고 가라.”


“저 중국에 가봐야겠어요.”


성호는 뜻밖의 말에 그저 다은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아버지를 찾아보려고?”


“아뇨. 그것보다 가봐야 할 곳이 있어요.”


“왜? 갑자기.”


“실은 그날 아버지께서 쪽지를 남겨주셨어요.

제가 찾아가야 할 곳을 알려주신 것 같아요.”


“운사의 임무는 단군을 지키는 거라면서 그렇게 해도 되겠니?”


“아버지께서 알려주신 건 이유가 있을 것 같아요.

아저씨가 도와줘요.”


“내가? 어떻게?”


“할머니 좀 설득해주세요.

못 가게 하실 게 뻔하니까요.”


“글쎄 내가 말한다고 들어주실까?

제일 미운 털 박힌 게 난데?

아무튼 말씀은 드려볼게.”


“고마워요. 아저씨.”


“만약 가게 된다면 가보려고 생각해둔 곳은 있니?

그 넓은 땅에서 너 혼자서 찾아 갈 수는 있는 거야?”


성호의 말을 듣던 다은이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어려서부터 아버지께서 말씀해주신 곳이 있어요.

찾아가기 어려운 곳은 아니니까 걱정 안 하셔도 되요.”


다은의 결정은 굳이 노파를 설득할 필요는 없었다.

어린 나이였지만 당차고 똑똑한 아이라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으니 부용과 풍백이 그 결정을 지지해주었고 중국으로 가는 건 중국출장을 앞둔 주선과 함께 떠나기로 했다.

북경으로 향하는 주선과 달리 다은은 호북성(湖北省)의 무한(武漢)으로 가는 직항을 선택했다.


“선생님 바래다 주셔서 감사합니다.

북경에는 조심해서 다녀가세요.”


인천공항에서 주선과 헤어지고서부터 다은은 홀로 여행을 시작해야 했다.

무한공항에 도착하고선 공항을 벗어나 버스를 타야 했고 십언(十堰)이란 도시로 향했다.

무한에서 십언까지 장장 다섯 시간을 달리고서야 웅장한 자태로 구름에 둘러 쌓인 높다란 산자락에 도착할 수 있었다.

관광객들이 오고 가는 가운데에 커다란 금색 글씨로 보란 듯이 쓰여져 있는 산 입구의 현판이 다은의 눈에 들어왔다.

무당산(武當山)이었다

소림과 더불어 무학의 양대 산맥이라던 무당은 소림만큼 활발한 대외사업을 벌이지 않고 있었다.

문화대혁명의 여파로 공산주의의 이름아래 파괴된 많은 건물들이 다시 자본주의 관광이라는 이름아래 복원되는 동안 무당은 화려한 모습을 보이는 소림의 무술에 비해 상대적으로 양생(養生)을 추구하는 도가 특유의 느긋함 때문인지 유명세는 소림에 비해 덜한듯했다.

관광객들도 외국인들보다 내국인들이 많았고 도사복장을 한 이들이 종종 모습을 보이고는 사진촬영에 응해주고는 했다.

다은은 무당산입구 언저리의 찻집 앞에서 발을 멈췄다.

찻집에는 낡은 현판에 ‘태극다관(太極茶館)’이라고 쓰여있었다.

아버지가 건네주었던 쪽지에 적혀있는 그대로 였다.

다은이 들어가자 한 무리의 관광객들이 인솔자를 따라 우르르 몰려나갔다.

낡은 옷차림의 노인 하나가 천천히 관광객들이 나간 빈자리를 치워내고는 정리하고 있었다.

다은이 한쪽 빈자리에 앉자 힐끗 쳐다보고는 여전히 정리만 하다가 컵에 차를 한잔 따라 내어준다.

다은은 아버지에게 들었던 기억대로 찻잔을 두 손으로 공손히 받아 손가락에 찻물을 묻혀 낡은 상위에 무(武)자를 그려 보였다.

무심코 지나치던 노인이 그 모습을 보고는 다은과 시선을 마주쳤다.


“누구의 제자인가?”


노인이 묻자 다은은 서툰 중국어로 대답했다.


“한국에서 온 천가한의 딸 천다은이라고 합니다.”


다은의 말을 들은 노인이 따뜻하게 웃어 보이며 다가와 다은의 어깨를 다독이며 말했다.


“멀리서 왔구나.”


노인이 어깨를 가볍게 다독였을 뿐인데 다은은 숨이 가쁘도록 어지러움이 느껴져 의자에 앉은 채로 순간 비틀거렸다.

노인이 다은이 방심하고 있는 사이에 내력을 다은에게 밀어 넣어 다은의 수련 정도를 알아보려 했던 것이었다.


“어린 아이 치고는 수련의 깊이가 아주 좋구나.”


“어르신. 왜 저에게……”


“여섯 시가 되면 가게 문을 닫으니 그때 다시 오너라.”


다은을 지켜보던 노인이 다시 어깨를 두드려주며 내력을 회수하자 메스껍고 어지럽던 것이 사라졌다.

다은은 급히 일어나 노인에게 예를 올리고는 가게를 빠져 나왔다.

노인은 힘이 빠져 걸어나가는 다은을 슬쩍 바라보고는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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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서대문(西大門)(2) +2 16.03.22 282 10 13쪽
13 서대문(西大門)(1) +2 16.03.21 376 1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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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흑치(黑齒)(2) +2 16.03.16 420 12 13쪽
6 흑치(黑齒)(1) +2 16.03.15 451 11 12쪽
5 애월만가(漄月輓歌)(4) +4 16.03.15 537 14 14쪽
4 애월만가(漄月輓歌)(3) +3 16.03.15 433 17 12쪽
3 애월만가(漄月輓歌)(2) +2 16.03.15 561 15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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