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을 다스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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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질럿
작품등록일 :
2016.03.15 07:28
최근연재일 :
2016.04.18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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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3.15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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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흑치(黑齒)(1)

DUMMY

들어가기 전)

중국의 남부지역 보이차의 고향 운남에는 이빨을 검게 물들인 소수민족이 있어 이를 흑치족(黑齒族)이라고도 합니다.

삼국지 위지 왜인전(倭人傳)에 의하면 일부 왜인(倭人)을 흑치족(黑齒族)이라고 부르기도 했다고 하고 근대에 이르기까지 이빨을 검게 물들이는 문화가 존재했습니다.

우리나라 백제시대엔 흑치(黑齒)라는 지역이 있어서 왕족인 부여씨(扶餘氏)의 한 일족이 그곳을 영지로 삼아 성을 부여씨에서 흑치(黑齒)로 바꾸었다고 합니다.



성호는 한 사람의 연락을 받고 차를 몰아 충남 부여로 가는 중이었다.

다른 사람을 돕는 작은 낙으로 살고 있던 그였지만 최근의 일로 인해 혼란스러워진 마음을 추스르기 힘들었다.

귀신의 존재 때문이라기보다 모든 것은 환경으로 인해 신체가 영향을 받아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해왔던 그에게 제주에서의 경험은 그가 해오던 일상적이던 일에 대한 의구심을 갖게 했다.

어쩌면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 잘못 되었고 어쩌면 아무 소용없는 것일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이 들어 망설이다 출발한 여정이었다.

성호가 의뢰인의 집에 도착한 것은 정오가 되기 전이었다.

의뢰인의 집은 그리 많지 않은 단지로 구성된 아파트였다.

“오셨군요. 들어오시죠.”

반갑게 성호를 맞이한 것은 초췌해진 모습의 젊은 남성이었다.

“환자는 어느 쪽에 있습니까?”

“집사람은 ......

안방침대에 있습니다.”

안내를 받아 들어간 안방의 침대에는 한 여성이 잠이 들어있는 듯 가만히 누워있는 모습은

별 이상이 없어 보였다.

다만 성호를 인상을 쓰게 만든 것은 손발이 결박되어 묶인 모습이었다.

“선생님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저렇게 묶어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지금은 저렇게 얌전히 있지만 또 어떻게 변할지 모르겠습니다.

힘이 어찌나 세졌는지……

선생님께서도 안되시면 정신병원으로 들여보내는 수밖에 없습니다.

멀쩡했던 집사람을 그런 곳에 보낼 수는 없다고 생각해서……”

남성은 지친듯한 목소리로 성호에게 말을 건냈다.

“알아보죠.”

성호는 여느 때처럼 엘 로드를 꺼내어 수맥을 살펴보았다.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의 경우 공중에 머물러 있다고 해서 수맥을 무시하는 경향이 심하지만 수맥은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높은 위치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성호는 알고 있었다.

예상대로 안방에는 수맥이 넓게 퍼져있었다.

“안방에 수맥이 넓게 퍼져있네요.

이 정도라면 바깥 분도 영향을 받으셨을 것 같은데요.”

“제가 코골이가 심해서 저는 거실에서 잠을 자고 있습니다.”

“그러셨군요.

부인께서 베란다에서 뛰어내리시려 하셨다고요?”

“네. 저렇게 묶어 놓지 않으면

어느 샌가 달려가 베란다 난간에 매달려 있습니다.”

남자는 지친 기색으로 말했다.

며칠 전부터 갑작스런 아내의 행동에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병원만 다녀온 상태인 남편은 정신병동에 입원시키라는 의사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물어 물어 알게 된 성호에게 연락을 취한 것이었다.

성호는 여느 때와 같다면 수맥에 대한 설명을 꺼냈을 테지만 왠지 찜찜한 기분이 들어 설명은 꺼내지 않았다.

가방에서 탐지기를 꺼내어 확인해보니 큰 이상은 확인되지 않는다.

제주에서의 경험과 마찬가지 현상이었다.

일반적으로는 수맥이 심하게 확인되는 곳에서 발생하는 이상현상에는 저주파가 탐지되는 현상도 있어야 하는데 짝이 맞지 않는 일이 생기기 시작했다.

성호는 자신감이 사라졌다.

“선생님.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미칠 지경입니다.

멀쩡하던 사람이 왜 자살충동을 일으키는 건지……”

성호는 눈을 감고 고민에 빠졌다.

그 동안 자신이 처리했던 방식으로 인해 어려움을 이겨낸 사람들도 있었지만, 딱히 나아지지 않았던 의뢰인들의 모습도 떠올랐다.

지금 이 의뢰인을 돕기 위한 방법으로는 자신이 최선이 아니며 다른 도움이 필요하다는 판단이 섰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정신이 맑아졌다.

“선생님?”

남성이 성호를 재촉했다.

“하루만 시간을 주실 수 있겠습니까?

어쩌면 그보다 더 빨리 올 수도 있습니다.”

성호는 장비를 정리하며 말했다.

“하루가 지나면 달라지는 게 있습니까?

아까 전만해도 줄이 느슨해지니 어느새 풀고 베란다로 달려나간 사람입니다.

더 기다릴 수가 없습니다.”

“제가 모셔올 분이 있습니다.

제가 볼 땐 그분이 필요할 것 같네요.

정말 죄송합니다.

꼭 바로 돌아오겠습니다.”

성호는 급히 가방을 갈무리하고 현관을 나서서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무심코 떠오르는 모습을 기억에서 지워버리려 고개를 흔들지만 더 선명하게 떠오른다.

3년전 죽은 그의 아내였다.

아이를 유산하고 우울증에 걸려 힘들어하던 아내였다.

마지막 저녁상을 차려주고는 그의 눈앞에서 뛰어내려 투신했던 모습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그때처럼 멍하니 넋을 놓고 바라만 보지는 않으리라 생각하며 성호는 주차해놓은 차에 올라타 시동을 걸어 네비게이션에 목적지를 입력한다.

- 청주공항


제주 애월읍 하귀리.

성호는 망설임 없이 부용의 집 옆으로 차를 주차하고 내렸다.

문 앞에 섰지만 문에는 초인종이나 인터폰이 없었다.

“계십니까? 계십니까?”

성호가 조용히 불러보았지만 아무런 응답이 들려오지 않았다.

까치발로 문 너머를 보니 신발이 가지런히 정리되어있다.

“저 김성호라고 저번에 왔던 사람입니다. 계십니까?”

그제서야 방문이 열리더니 부용이 고개를 내민다.

“무슨 일로 오신 거죠?”

“안녕하세요.”

문 너머에서 성호가 인사를 하자 부용도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인다.

“이것 좀 열어주시면 안될까요?”

부용이 마당을 지나 문으로 다가와 주위를 가만히 살펴보고는 문을 열어주었다.

성호는 집안으로 들어오더니 마루에 걸터앉아 한숨을 내쉬었다..

“제가 늘 하던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할 자신도 없고,

제가 하는 일이 정답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부탁입니다. 사람 하나만 살려주시죠”

성호가 부용을 바라보며 간절하게 말했다.

부용은 의아해 하며 물었다.

“무슨 말씀이죠?

누구를 돕는다는 거죠?”

“어떤 여자입니다.

아파트에서 계속 뛰어내리려고 합니다.”

그 말을 들은 부용은 한숨을 쉬었다.

“할머니께서는 안보이시네요.”

성호가 주변을 돌아보며 물었다.

“어디 가실 데가 있으셔서요.

오시면 그때 여쭤보겠어요.

물론 안 된다고 하시겠지만……”

“지금 당장 급합니다.

한 남편의 부탁인데 아내가 그러고 있답니다.

하지만 도와주지 않으면 둘 다 죽을 겁니다.

어찌되든 살아도 사는 게 아닐 테니까요.”

부용은 여전히 망설이며 말했다.

“제가 함부로 이곳을 떠날 수가 없네요.”

부용의 말에 성호는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도와주실 생각이 아예 없으신 거 아닙니까?”

“도와드리고 싶어요.

사람을 살리는 일이라니까……

하지만 저도 그래야 하는 이유가 있답니다.”

“그럼 저 옆집에 있던 아이는 왜 살리신 겁니까.”

부용은 말을 잃었다.

“우사니 뭐니 하는 거 저도 다시 한번 찾아봤습니다.

물론 제가 그럴 깜냥이 있다면 여기에 오지도 않았겠죠.

그런 게 거창한 것이 굳이 아니더라도 사람 살리는 일이라면

사람이니까 할 수 있다면 도와주실 줄 알았습니다.”

성호는 자리를 털며 일어났다.

“저에게도 당신 같은 그런 능력이 있었다면 여기에 오지 않았을 겁니다.

제 손으로 모든 것을 마무리 했겠죠.

지금 이 시간에도 그 사람들이 어떻게 되어 있을지 모르는데

이처럼 후회할 선택도 하지 않았겠죠.”

부용은 가슴이 시려왔다.

성호의 마지막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선택……’

성호가 대문 앞까지 다가섰을 때 부용이 말했다.

“잠시만요.

기다리세요.

……

준비할게요.

금방 다녀올 수 있는 거라면 괜찮을 것 같아요.”


공항으로 오는 짧은 시간 동안 부용은 어두워지는 창밖을 보며 조금은 들뜬 모습이었다.

성호는 공항에서 비행기표를 구입하면서 부용의 신분증을 받아 제시했다.

얼결에 보긴 했지만 성호보다 4살아래로 생년월일이 나와있었다.

부용이 기다리는 곳으로 걸어간 성호는 옆에 나란히 앉았다.

간단한 손가방 하나만 챙긴 모습으로 부용은 성호에게서 비행기표를 건네 받았다.

“외출은 별로 안 하시는 편인가요?”

성호의 물음에 부용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할머님이 못하게 하시는 건가요?

제가 또 욕먹을 짓을 하는 거겠네요.”

“지금 이렇게 나온 건 제 뜻이에요.

……

제가 선택한 거에요.

어쨌든 오랜만에 나오니 기분은 좋네요.

좋아해도 되는 일인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부용을 보다가 성호는 시간을 확인하고는 말했다.

“그럼 가실까요? 탑승시간이 거의 다 됐습니다.”

기내에서도 부용은 창가에 앉아 어린아이처럼 설레는 모습으로 어두운 창밖을 바라보다가 뭔가 걱정이 되는지 가라앉는 모습을 반복해서는 보이고는 했다.

옆자리의 성호는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조심스레 물었다.

“비행 괜찮으신 거죠?

멀미라던가 고소공포증이라던가……”

“타봤어요. 오래전이긴 하지만.”

“할머님은 그런데 어디 가신 건가요?

말씀 드리지 않아도 되는 건지……”

“며칠 계시다가 오시기 때문에 걱정 안 하셔도 되요.

조용히 갔다가 조용히 오면 되니까요.

어차피 전화도 없으니까요.”

성호는 그 말을 듣고 조금은 안심이 되는지 잠시 눈을 붙여본다.

짧은 비행시간이지만 새벽부터 움직이느라 지친 몸을 잠시 쉬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륙의 흔들거림과 난기류의 흔들거림에서도 성호는 정말 오랜만에 편안하게 잠이 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랜딩기어의 작동소리와 함께 얼마 지나지 않아 착륙의 덜컹거림으로 성호는 잠에서 깨어났다.

그도 모르게 부용의 어깨 쪽으로 기대어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죄송합니다. 잠이 들었네요.

무거우셨을 텐데 깨우시지 그러셨어요.”

“괜찮아요. 피곤해 보이셔서 그냥 있었어요.

다 온건가요?”

“내리시면 차로 다시 이동해야 합니다.

저녁시간이니 그리 밀리진 않을겁니다.

식사는 어떻게 하실까요? 드시고 가시겠어요?”

부용은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그러니까 그런 것까지 걱정 안 하셔도 되요.”

두 사람은 공항주차장에 주차시켜놓은 성호의 차에 올라탔다.

장거리 여행에 익숙한 성호의 차에는 캠핑이 가능한 여러 장비들이 쌓여있었다.

“죄송합니다. 차가 좀 정신 없죠.”

부용은 웃어 보이며 조수석에 탑승했다.

어두워진 밤하늘의 청주시내를 벗어나자 도시의 불빛이 사라진 한적한 국도가 이어지고 있었다.

성호는 무료한 분위기를 피할 겸 라디오를 켜서 지방 주파수를 스캔 했다.

“음악은 들으시나요?”

“아뇨. 잘 안 듣기는 하는데

편하신 대로 하세요.”

모차르트의 오페라 마술피리에서 밤의 여왕이 부르는 아리아가 흘러나왔다.

소프라노의 화려한 기교가 차 안에 울려 퍼졌다.

“끔찍한 소리네요.”

부용이 얼굴에 인상을 쓰며 말했다.

아리아가 끝나자 DJ의 멘트가 흘러나왔다.

- 모차르트의 마술피리 중에서 ‘지옥의 복수심이 내 마음속에 끓어오르고’ 였습니다.

디아나 담라우의 목소리로 들어보았습니다.

잠시 속보를 전해드리겠습니다.

충남 부여군 부여읍에 위치한 한 아파트에서 연쇄 투신사건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성호는 볼륨을 키웠다.

- 지금까지 부여소방서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총 여덟 명의 주민이 투신해 일곱 명이 사망했다고 합니다.

- 출동한 소방대원들이 급히 에어쿠션을 설치하기는 했지만 산발적으로 뛰어내리는 사람들을 모두 보호해주지는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 현장이 연결 되는대로 속보 계속 전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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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동정호(洞庭湖)(1) +2 16.04.14 301 4 11쪽
30 무당산(武當山)(4) +4 16.04.13 242 4 12쪽
29 무당산(武當山)(3) +2 16.04.12 287 4 12쪽
28 무당산(武當山)(2) +4 16.04.11 286 5 13쪽
27 무당산(武當山)(1) +2 16.04.08 251 6 13쪽
26 북한강(北漢江)(3) +2 16.04.07 316 6 10쪽
25 북한강(北漢江)(2) +2 16.04.06 345 7 12쪽
24 북한강(北漢江)(1) +2 16.04.05 247 7 12쪽
23 마니산(摩尼山)(4) +2 16.04.04 264 8 13쪽
22 마니산(摩尼山)(3) +2 16.04.01 354 8 12쪽
21 마니산(摩尼山)(2) +2 16.03.31 282 9 14쪽
20 마니산(摩尼山)(1) +2 16.03.30 447 7 14쪽
19 천부인(天符印)(4) +2 16.03.29 318 9 13쪽
18 천부인(天符印)(3) +2 16.03.28 366 7 12쪽
17 천부인(天符印)(2) +2 16.03.25 351 8 12쪽
16 천부인(天符印)(1) +2 16.03.24 288 8 13쪽
15 서대문(西大門)(3) +2 16.03.23 347 7 12쪽
14 서대문(西大門)(2) +2 16.03.22 281 10 13쪽
13 서대문(西大門)(1) +2 16.03.21 376 11 13쪽
12 삼청각(三淸閣)(3) +4 16.03.18 381 9 13쪽
11 삼청각(三淸閣)(2) +4 16.03.18 382 12 11쪽
10 삼청각(三淸閣)(1) +2 16.03.17 324 10 11쪽
9 흑치(黑齒)(4) +4 16.03.17 459 10 12쪽
8 흑치(黑齒)(3) +2 16.03.17 446 10 12쪽
7 흑치(黑齒)(2) +2 16.03.16 419 12 13쪽
» 흑치(黑齒)(1) +2 16.03.15 451 11 12쪽
5 애월만가(漄月輓歌)(4) +4 16.03.15 536 14 14쪽
4 애월만가(漄月輓歌)(3) +3 16.03.15 433 17 12쪽
3 애월만가(漄月輓歌)(2) +2 16.03.15 561 15 11쪽
2 애월만가(漄月輓歌)(1) +3 16.03.15 706 16 13쪽
1 프롤로그 +2 16.03.15 1,277 16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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