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을 다스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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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질럿
작품등록일 :
2016.03.15 07:28
최근연재일 :
2016.04.18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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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4.13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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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무당산(武當山)(4)

DUMMY

“나누시고 싶으신 말씀이 있으시면 하세요.

제가 전해드릴께요.”

다은은 노인에게 공손히 말했지만 노인은 쓸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가로 저었다.

“내 나이가 아흔이니 곁으로 갈 날도 머지않았다.

어서 오라고 옆에서들 기다리는 모양이구나.”

노인의 말에 젊은 여인의 영혼이 손을 저으며 다은에게 말했다.

“소저. 말씀 전해주세요.

아무도 대가(大哥)를 원망하지 않는다고요.

우리 때문에 이 집에서 떠나지를 못하는 대가가 안쓰러워서 다들 이렇게 있는 거에요.”

노인도 물론이지만 다른 영혼들도 서로를 그리워하고 염려하느라 자리를 떠나지 못했던 것으로 보였다.

다은은 잠시 생각하다가 노인에게 그 말을 전했다.

“회색 옷을 입고 있는 젊은 아주머니께서 원망하지 않으신다고 하시네요.

자신들에게 미안해서 이 집을 못 떠나시는 게 오히려 미안하시다고 하고요.”

노인은 다은의 말에 웃음을 지며 말했다.

“그 여인의 눈에 혹시 쌍꺼풀이 있느냐?”

다은이 바라보니 유독 그 여인만 깊은 쌍꺼풀이 있었다.

“네. 아주 진한 쌍꺼풀을 가지고 계시네요.”

노인은 보이지 않는 허공을 바라보며 그리움 가득한 웃음을 잃지 않았다.

“열여섯에 시집을 온 내 아내란다.

이 근방에서 그렇게 예쁘고 깊은 눈을 가진 사람은 없었지.”

노인은 그리움이 가득한 눈빛으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마당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마당 가운데로 걸어가 손을 모아 예를 올리며 조용히 말했다.

“이 아이의 도움으로 오랜 숙원이 풀렸습니다.

홀로 살아남아 당신들을 욕되게 하며 살지 않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이제 저도 허리가 굽은 노인이 되어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고 있으니 편한 곳에 먼저 가셔서 이 몸을 기다려주시죠.”

노인의 말에 영혼들은 웃으며 노인에게 똑같이 예를 올리고 조용히 사라졌다.

모두가 사라지도록 노인은 숙인 허리를 펴지 않고 있었다.

“모두 가셨습니다.”

다은이 말해주자 서서히 노인은 허리를 들었다. 표정은 웃고 있었지만 눈가는 촉촉히 젖어 있었다.

“나이가 들면 정에 약해지는 법이지……”

노인은 다은을 바라보며 말했다.

“네 아비도 없던 재주를 너는 어찌 가지고 있느냐?”

“돌봐주셨던 분들의 인연덕분에 은혜를 입었습니다.”

다은은 문득 서울의 식구들이 떠올랐다.

“네게 빚을 졌구나.

이제야 네 아비가 너를 왜 보냈는지 알 것 같구나.

하하하.”

노인은 호탕하게 웃으며 다은의 어깨를 두드렸다.

“방으로 들어가자.

네게 해주어야 할 얘기가 많구나.”

밤이 새도록 노인은 다은에게 많은 것을 얘기해줬다. 오래된 무림의 이야기에서 시작되어 현재의 무림이야기까지 노인의 이야기는 끝을 몰랐다. 노인에게 따르면 무당산 곳곳에는 몇몇의 무당제자들이 살고 있는데, 노인처럼 장사를 하는 이도 있고 도사로 살아가는 이들도 있다고 했다. 무당제자들은 그래도 다른 문파에 비해 나은 편이라며 종적을 감춘 것인지 멸문한 것인지 모를 문파도 부지기수라고 했다. 노인이 다은의 아버지를 걱정했던 것은 그가 있는 것이 목격된 요녕성(遼寧省)에서 질이 나쁜 무사(巫士)와 함께 있다는 것 때문이었다. 그 무사는 도가(道家)의 도술과 무가(巫家)의 주술을 병행하는 이였는데 정부의 일을 맡아 사람을 해치는 일을 한다고 했다. 노인의 말을 듣던 다은은 자신과 겨루었던 서해천을 노인이 이야기하고 있음을 알았다.

“그런 사람도 문파가 있을까요?”

“직접 보았다면 알아볼 수도 있겠지만 글쎄다……그런 사술을 겸한다면 묘족(苗族)이나 청성파(靑城派)가 아닐까 싶긴 하지만 모르겠구나.”

골똘히 생각에 잠긴 다은에게 노인은 가만히 말했다.

“무당의 무학을 모두 익히려면 족히 30년은 걸릴 터,

네 아비가 그걸 바라고 너를 보내지는 않았을 테고

나 또한 네게 그 모든걸 알려줄만한 시간이 남아있지는 않았을 게다.”

노인은 다정하게 물었다.

“무당의 절기가 무어라고 알고 있느냐?”

“무당의 검이 천하제일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노인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그 말을 듣고 웃으며 말했다.

“모두가 그리 이야기하지.

하지만 무당의 검이 천하제일인 것이 아니라 무당검사 중에 천하제일이 있었던 것이지.

마찬가지로 천하제일이라는 소림의 곤을 무턱대고 천하제일이라고 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느냐?”

다은은 무당의 사람이 무당의 검술을 최고로 치지 않자 조금은 당황스러웠다.

“오랜 시간을 겪다 보니 생각할 시간이 많아지더구나.

과연 무당의 검이 최고일까?

그렇다면 소림의 검은 최고가 아니란 말인가?

최고라는 것은 무엇일까?

천하제일이라 함은 무적을 말하는 것인데

무적을 말하는 것은 검일까? 사람일까?”

노인의 말에 다은은 섣불리 대답할 수 없었다. 아버지로부터 배워온 무예이지만 항상 어디의 무엇이 최고라는 말만 듣고 배웠을 뿐 이유나 사실여부를 생각해 본적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네가 배운 검법은 무엇이냐.”

“천지인(天地人) 삼검(三劍)을 배웠습니다.”

“천지인이라......

예전에 네 아비도 그리 말했었지.

너희 나라에서 전수된 검법이라지.

가로로 베고 또 세로로 베고 찌르는 것이 전부가 아니더냐?

이곳 중원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삼류무사나 배운다는 하찮게 여기는 검법이지.”

“네. 맞습니다.”

하찮다는 노인의 말에 다은은 얼굴이 붉어졌다.

“부끄러워할 것 없다.

부끄러워하기 전에 누구나 할 수 있는 간단한 동작에 너희 조상이 천지인이란 커다란 글자를 붙인 이유를 알아야 한다.

제 아무리 현란한 검법이라 해도 결국엔 그 세가지 방법을 이리저리 비튼 것이 전부이지.

검을 들어 머리를 베는 것이나 팔을 베는 것이나 다 같은 베는 것인데 동작이 조금 달라진다고 이름을 다르게 붙이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검법이란 젓가락질을 하듯 몸에 익숙하도록 수련을 해서 자신도 모르게 검이 먼저 나가게 하는 것이 검법이다.

그것은 권이든 창이든 다를 바가 없겠지.

화려한 검법일수록 사람의 눈을 현혹하게 하는 허초(虛招)가 가득한 법이고 실제 상대를 해하는 것은 베기나 찌르기 중의 하나일 뿐인 게다.”

노인은 방을 나가서는 얇은 나뭇가지 두 개를 꺾어 왔다.

“무당에 왔으니 무당의 검은 보고가야 하지 않겠느냐?”

노인은 나뭇가지 하나를 다은에게 건네주었다.

“네 마음대로 나를 공격해보거라.

나뭇가지를 내 몸에 닿게 해보려무나.”

“방안에서 말입니까?”

“검을 휘두르는데 장소가 중요한 것이냐?”

다은은 나뭇가지를 고쳐 쥐고 몸을 일으켜 숨을 고르고는 노인의 어깨를 찔러 들어갔다. 노인은 가볍게 다은의 나뭇가지를 들고 있던 나뭇가지로 밀어내며 그대로 빠르게 나뭇가지를 훑어 내려왔다. 노인의 나뭇가지가 손끝에 와 닿자 다은은 순간 소름이 돋아 나뭇가지를 놓치고 말았다.

“진검이었다면 네 손가락이 이미 잘렸을 게다.

나뭇가지라고 생각하지 말고 날이 얇아 잘 휘어지는 면검(綿劍)이라 생각하고 공격해보거라.

무당의 자랑 중 하나가 면검이니라.”

다은은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는 그대로 호흡을 멈추고 노인의 복부를 찌르는척하다가는 복부를 막기 위해 움직이는 손목을 향해 찔러 들어갔다.

“잘했다!”

노인은 무엇이 좋은지 무척이나 들뜬 목소리로 말하며 손목을 찔러오는 다은의 공격을 순식간에 손에든 가지로 휘감아 자신의 몸 밖으로 튕겨나가도록 했다. 가벼운 손놀림이었지만 다은은 손목이 시큰거리는 것이 얻어맞은 느낌이 들었다.

“한번 더!”

노인이 재촉하자 다은은 이를 악물고 나뭇가지에 내력을 끌어올려 담아 무겁게 노인의 가슴을 향해 찔렀다. 그러자 노인은 막아내려 하거나 쳐내려 하지 않고 다은과 똑같이 가지를 뻗었다. 두 사람이 거의 동시에 뻗은 나뭇가지가 허공에서 서로 맞닿아 멈췄다. 가만히 멈춘 듯이 보였지만 다은의 부들거리는 나뭇가지를 노인의 나뭇가지가 파고들어 다은의 가지는 끝이 쪼개져 있었다.

“아비에게 잘 배웠구나.

그 나이에 그 정도의 성취란 흔한 일이 아니지.”

“과찬이십니다.”

“검법의 형을 정하고 익히게 하는 이유는 운기를 위함이니 태청검법(太淸劍法)이니 태극검법(太極劍法)이니 삼재검법(三才劍法)이니 해도 이름이 다르고 내공의 운용이 다를 뿐 큰 이치에서 보면 찌르고 베는 것은 마찬가지이지.

순리대로 운기를 하며 보다 효과적으로 검을 사용하게 하기 위해 형을 배우는 것뿐이니 검법은 네가 알고 있는 몸에 익은 검법으로 충분할 것 같구나.

그렇다면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것은 하나뿐이지.”

노인은 손에 든 나뭇가지를 땅에 내려놓고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태극권을 연마하듯 손 날을 서로 마주보도록 둥글게 말아 보이며 좌정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노인의 정수리에서 연한 푸른빛의 안개가 피어올라 노인의 몸을 덮고 있다가 사라졌다. 안개가 사라지자 노인은 눈을 뜨고 다은에게 말했다.

“보았느냐?”

“네 푸른 기운이 나와서 사조님을 보호하는 것이 보였습니다.”

“태청심법(太淸心法)이니라.

네가 나이에 비해 수련이 깊다고는 하나 아직은 어리다 보니 오랜 세월을 수련해온 이와 겨루게 된다면 많이 부족함을 느낄 것이다.

이 심법은 양생을 위한 심법이기도 하지만 하늘의 뜻을 따르는 순리의 심법이기도 하단다.

네가 가지고 있는 신안이 혹시라도 마물에 물들지 않도록 도와줄 수도 있는 심법이기도 하지.

구결(口訣)을 전해줄 터이니 외우고 정진하도록 해라.

이 심법이 네 부족한 부분을 도와줄 것이고 혹시 모를 사악함으로부터 너를 보호해줄 수 있을 게다.

네 아비가 널 보낸 이유가 아마도 이것일 것 같구나.”



비행기의 추락사고에서 수습된 시신들은 제각기 가족에게 인계되었지만 그나마 인계 받을 시신이라도 수습된 이들은 몇 명 되지 않았다. 한국과 중국정부의 공조 하에 일주일이 넘도록 계속되는 수색에도 더 이상 발견되는 것은 없었고 조류를 따라 중국과 한국의 해안으로 밀려온 승객들의 유품만 간혹 발견될 뿐이었다. 수거된 블랙박스의 분석결과로는 갑작스런 출입구 개폐장치 작동과 연이은 기체의 파손으로 추락한 것으로 잠정결론이 났다. 한국인 못지 않게 많은 사망자가 발생된 중국인들로 인해 한국정부는 공식적인 유감과 보상을 중국정부에 전달했다. 주선은 시신도 유품도 발견되지 않은 채로 장례를 치렀다. 가족도 없이 외롭고 단출하게 치러진 장례식을 마친 자리에서 장례 내내 상주 노릇을 한 도훈에게 경석이 말했다.

“이젠 단군께 가보아라.

필요한 모든 준비는 박팀장이 도와줄 게다.

주선이의 오른팔이었으니.”

“준비는 해두었습니다.”

도훈은 경석에게 인사를 하고 차에 올랐다. 경석과 도훈은 20여 년만의 만남이었지만 손녀딸 지수 덕에 어색하지 않게 재회할 수 있었다. 강원도의 산골에 살면서 세상일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살아가고 있었던 도훈은 간혹 들었던 해괴한 소문들은 그저 현대문명이 만들어낸 인간들의 공황상태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하나씩 알아내고 있는 그러한 해괴한 일들의 뒤에는 중국과 대화그룹이 존재하고 있고, 암암리에 자행되는 초자연적인 테러들로 인해 국민들이 서서히 불안해 하기 시작했다는 설명에 도훈은 어디서부터 실마리를 풀어나가야 할지 고민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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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동정호(洞庭湖)(3) +2 16.04.18 350 4 16쪽
32 동정호(洞庭湖)(2) +5 16.04.15 243 7 15쪽
31 동정호(洞庭湖)(1) +2 16.04.14 302 4 11쪽
» 무당산(武當山)(4) +4 16.04.13 244 4 12쪽
29 무당산(武當山)(3) +2 16.04.12 287 4 12쪽
28 무당산(武當山)(2) +4 16.04.11 287 5 13쪽
27 무당산(武當山)(1) +2 16.04.08 251 6 13쪽
26 북한강(北漢江)(3) +2 16.04.07 317 6 10쪽
25 북한강(北漢江)(2) +2 16.04.06 346 7 12쪽
24 북한강(北漢江)(1) +2 16.04.05 247 7 12쪽
23 마니산(摩尼山)(4) +2 16.04.04 266 8 13쪽
22 마니산(摩尼山)(3) +2 16.04.01 354 8 12쪽
21 마니산(摩尼山)(2) +2 16.03.31 283 9 14쪽
20 마니산(摩尼山)(1) +2 16.03.30 449 7 14쪽
19 천부인(天符印)(4) +2 16.03.29 320 9 13쪽
18 천부인(天符印)(3) +2 16.03.28 367 7 12쪽
17 천부인(天符印)(2) +2 16.03.25 351 8 12쪽
16 천부인(天符印)(1) +2 16.03.24 289 8 13쪽
15 서대문(西大門)(3) +2 16.03.23 347 7 12쪽
14 서대문(西大門)(2) +2 16.03.22 282 10 13쪽
13 서대문(西大門)(1) +2 16.03.21 377 11 13쪽
12 삼청각(三淸閣)(3) +4 16.03.18 382 9 13쪽
11 삼청각(三淸閣)(2) +4 16.03.18 384 12 11쪽
10 삼청각(三淸閣)(1) +2 16.03.17 324 10 11쪽
9 흑치(黑齒)(4) +4 16.03.17 461 10 12쪽
8 흑치(黑齒)(3) +2 16.03.17 447 10 12쪽
7 흑치(黑齒)(2) +2 16.03.16 421 12 13쪽
6 흑치(黑齒)(1) +2 16.03.15 451 11 12쪽
5 애월만가(漄月輓歌)(4) +4 16.03.15 538 14 14쪽
4 애월만가(漄月輓歌)(3) +3 16.03.15 433 17 12쪽
3 애월만가(漄月輓歌)(2) +2 16.03.15 561 15 11쪽
2 애월만가(漄月輓歌)(1) +3 16.03.15 707 16 13쪽
1 프롤로그 +2 16.03.15 1,279 16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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