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의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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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파
작품등록일 :
2012.11.19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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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22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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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2.22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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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쪽

해의 그림자 168

DUMMY

"아니...이건 닭유酉, 한획 뺀 게 서녘서西라구!"


허견이 회현방 청풍부원군댁 솟을대문을 들어서니, 붉은 애저녁햇살이 쏟아지는 마당 한가운데에 웬 열살 남짓한 도령이 웅크리고 앉아 서른 남짓한 머슴을 붙들고 한자를 가리키는 참이었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나뭇가지 하나를 쥐고 닭유酉자와 서녘서西자를 나란히 써서 나뭇가지로 콕콕 찍어대며.


"아닌디요. 이게 서녘선데요."


머슴은 두눈을 끔뻑이고 엉뚱하게도 닭유자를 손가락으로 짚었다. 도령은 답답한 지 제 가슴을 잡아뜯을 기세로 부여잡고 한숨을 내쉬었다.


"어휴...차라리 닭을 붙들고 가르칠까부다! 우희는 한번에 척척 알아듣는데 어떻게 애만도 못해?"

"..."


허견은 야무진 도령 입에서 나오는 말이 마냥 우스웠다. 입술을 비집고 나오는 실소를 참을 길이 없었다.


"푸하하! 닭새끼가 글을 가르쳐?"

"누구세요?"


춘택은 두눈을 다부지게 치뜨고 허견을 쏘아보았다. 옆에 웬 입가에 사마귀가 난 자를 대동하고 귀한 황칠부채를 살랑살랑 부치는 모습이, 한눈에도 귀티가 흐르는 사내라서 함부로 하대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사내의 무례한 발언엔 화가 치밀었다. 이집 대문으로 들어선 이상, 중궁의 사가라는 것을 알 테고, 자신에게 새끼닭 운운하는 무엄한 발언은 하면 안되는 것을.


"나? 영상대감댁 자제니라."

"아, 허적대감의 서장남庶長男이세요?"


상대가 영상대감 자제라는데도, 자신보다 나이가 세배는 많아보이는데도, 춘택은 당돌하게 응수했다. 허견의 얼굴이 돌처럼 굳었다. 자신의 가슴팍에도 닿지 않는 이 맹랑한 것이 자신의 아픈 구석을 건드렸다. 일부러 서자庶子의 서庶자를 넣어서.


"너..."

"그리구요. 닭새끼가 아니라 병아리예요. 그런 것도 몰라요?"

"이놈이...뚫린 입이라고..."

"전 병아리도 아니고, 벙어리도 아니니까요."


한마디도 지지 않는 놈이라니. 어린 것이 되로 주고 말로 받는 성질머리라니. 허견은 치가 떨려 이를 악물고서 대꾸했다.


"네가 뭘 모르는데, 동서남북에서 서쪽을 뜻하는 게 바로 닭이니라. 닭! 네놈은 서인의 핏줄이고, 서쪽서나 닭유나, 모양도 닮았고, 뜻도 닮아서 서인을 유인이라 부르지. 허니 네놈은 닭새끼든, 병아리든 그 하나니라."

"허면 남쪽은 말이니, 아저씨는 말새끼, 아니 망아지겠네요. 그것도 엉덩이에 뿔 나는, 못된 망아지."

"너..."

"광산김문의 적장손, 춘택입니다. 닭새끼가 아니라."


춘택은 야무지고 다부지게 자신을 소개했다. 서장남에 대비되도록 적장손이란 말을 똑소리나게 넣어서. 허견은 기가 막혀 숨도 제대로 못쉴 지경이었다. 이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에 비하면 최석정은 차라리 양반이었다.


"이놈이 진짜, 보자보자 하니까..."

"작은 나으리 그만 좀..."


그제야 마름 황씨가 허견을 만류했다. 더는 눈뜨고 봐줄 수가 없었다.


"우하하! 자넨 왜 여기까지 와서 애하고 싸우고 그러나? 이겨먹지도 못하면서."


어느새 등뒤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에, 허견은 등줄기가 후끈해져서 돌아보았다. 병조판서 김석주가 마침 김만기, 김만중, 김익훈과 함께 사랑채에서 나오는 참이었다.


"대감?"

"왜 또 왔는가? 우리 적장손하곤 왜 싸우고?"


김만기도 은근히 비웃음 어린 눈길로 면박을 주었다. 김만중과 김익훈도 두눈에 조소를 띠고 허견을 보는 참이었다. 허견은 얼굴이 와락 붉어졌다. 성질 같아선 다 엎어버리고 싶지만, 상대는 임금의 장인인 광성부원군 김만기에, 외종숙인 병조판서 김석주였다. 옆에서 황씨가 소매자락을 잡아당겼다.


"작은나으리..."

"후우...내일이 저희 증조부님 시호연에 두분께서 꼭 좀 와주십사...간곡히 청하러 왔습니다."


허견은 애써 서글서글하게 웃어보였다. 입꼬리에서 쥐가 날 것만 같았다. 어쩌다 이 둘이 함께 있는 지는 몰라도, 아비가 이 둘은 꼭 모셔오라 신신당부를 하였으니. 억지로 인내심을 발휘하는 허견을 무시하고, 석주는 춘택에게 손짓했다.


"이놈, 이리 좀 와보거라."

"예 어르신."


춘택은 순식간에 고분고분해져서 석주 앞으로 바짝 다가섰다. 대청과 기단의 높낮이가 달라서 석주는 팔을 내린 채로 겨우 손끝이 춘택의 머리에 닿을락 말락 했다. 그러자 춘택은 냉큼 섬돌 위로 올라섰다. 그 영민함이 흡족하여, 석주는 뻣뻣한 허리를 숙여서 오른손을 뻗어 춘택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고놈 참..."


신기한 녀석이었다. 이제 열한살인 놈이 허견이 영상댁 자제라고 신분을 밝히자마자, 곧바로 서장남이라고 정정했다. 게다가 자신은 광산김문의 적장손이라고 받아쳤다. 서인이 닭이니, 남인은 말이라며, 못된 망아지 엉덩이에 뿔 난다고 놀리기까지 했다. 이게 열한살 아이의 식견이라니, 그저 놀라웠다.


춘택은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는 석주의 손길을 느끼며, 초롱초롱 빛나는 눈길로 화답했다. 평소 조보를 꼬박꼬박 또박또박 읽으면서 세상을 읽고, 조선을 보려 하였다. 개차반 허견의 차옥 겁탈 사건 때 중궁에게 조보를 금지하고, 드나드는 친정식구들에게도 금언령을 내린 것을 보고, 우희와 얘기를 나누면서, 고모가 나쁜 일을 당할 뻔한 것도 눈치채고 우희에게 귀띔도 해주었다. 하지만 김석주가 대비전을, 대비전이 기어이 증조모를 움직여 중궁에게 언질을 주게 했다. 그러다 보니, 이 사람 병조판서 김석주의 손바닥에 올려진 조정과 왕실이 보였다.


이 손이다. 조선을 움직이는 손.


"병판대감, 제 부친께서 대감의 참석을 앙망하시니..."

"미안하지만, 내가 허리가 아파서..."


허견이 더는 참지 못하고 끼여들자, 석주는 짐짓 허리에 나머지 왼손을 얹으며 대답했다. 하지만 오른손은 계속해서 춘택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입가에 얄궂은 미소가 떠오른 채로.


"대감..."

"허리가 아프다니까. 영감이 대신 가시겠는가?"


석주가 힐끔 익훈을 돌아보았다. 익훈이 징그러운 눈웃음으로 허견을 돌아보며 대꾸했다.


"내가 가도 되시겠소? 나야, 저친구가 이번에 새로 얻은 소실이 미색이 빼어나단 소문을 들어, 한번 견식은 해보고 싶소만..."

"영감께선 상관을 침모한 죄로 조정에서 쫓겨나신 분이 아니십니까? 조신들이 모이는 자리에 끼시면 아니되지요. 앞으로도 영영 조정에 발 붙이실 수 없을 터인데."


허견은 사나워진 눈초리로 익훈을 쏘아보며 방자하게 대꾸했다. 익훈의 눈꼬리가 매섭게 치켜올라갔다. 웬만하면 감정기복을 드러내지 않는 만기도 마찬가지였다.


"말이 너무 심하지 않는가? 자네는 여기 와서 애랑 싸우고, 어른한테 맞먹고...참으로 한심하고 또 괘씸하구먼..."

"..."

"작은나으리..."


말문이 막힌 허견의 가슴이 들썩이는 것을 보고 황씨가 얼른 허견의 팔을 붙잡았다.


"작은나으리...대감마님의 뜻도 전해드렸으니 이만 가시지요."

"그러자."


허견은 김만기와 김익훈, 그리고 김석주를 쏘아보며 으르렁거리듯 답하고서 홱 돌아섰다. 허견 일행이 물러가는 뒷모습을 지켜보면서, 석주는 여전히 춘택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머릿속으로는 허적이 주절댄 말을 곱씹으면서 그의 눈길은 안채의 지붕 용마루를 향하였다. 용마루도 없는 통명전 지붕이 문득 뇌리에 떠올랐다.


닭이라...?



다음날 아침이 밝았다. 인달방 허적의 집은 조부 허잠의 시호연을 준비하는 손길로 분주한데다, 하례하러 찾아든 손님들의 발길로 북적거렸다. 좋은 날인 만큼 날씨도 맑아야만 했다. 하지만 춘사월의 길목이라선지, 날씨는 얄궂기만 했다. 푸르스름한 새벽부터 안개가 인달방을 휘감더니, 동이 트자마자 는개가 흩뿌렸다. 당장 창고에서 잠자던 의막을 가져와서 마당에 펼쳐놓았지만, 계속해서 몰려드는 손님을 수용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황가야, 서후행한테 가서 유악油幄을 빌려오거라."


허적은 별 생각 없이 마름 황씨에게 명하였다. 웬만한 의막으로는 자신의 널찍한 마당을 가릴 수가 없었다. 궁중에서 쓰는 큼직한 유악 정도는 되어야 했다. 허적의 명을 받들어 당장 황씨가 내수사로 달려가서 유악을 빌려왔다. 용과 봉의 형상을 그려넣고, 기름을 칠하여 햇볕도 비바람도 들지 않도록 만든 대형천막이 열두개의 장대에 꽂힌 채로 허적의 집 너른 마당에 세워졌다. 그 엄청난 위용은 허적의 솟을대문을 지나서 마당으로 들어서는 사람들의 입을 다물지 못하게 했다.


"어후...이거 비 때문에..."


비가 와서, 이래서야 시호연이 제대로 열리기나 할런지 걱정했던 오시수는 마당으로 한방울의 비도 떨어지지 않는 것에 놀라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구사 하나가 그의 머리 위로 씌워주었던 우산을 접고 물기를 탈탈 털었다. 오시수가 고개를 뒤로 젖히니 용과 봉이 하늘에서 춤을 추는 장관이 펼쳐져 있었다.


용봉차일龍鳳遮日...


그냥 유악이 아니라, 하필이면 왕의 유악이었다. 용봉의 문양이 증명했다. 문양이 없었으면 모를까, 버젓이 하늘로 승천하는 용과 봉이었으니...


"이건...전하의 용봉차일이 아닙니까?"


마침 마당으로 들어서던 윤휴도 굳어진 얼굴로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하늘은 보이지 않았다. 온통 하늘을 뒤덮은 너른 천막이 거대한 황룡과 봉황의 위용을 뽐낼 뿐이었다.


"왔는가?"


허적이 반기는데도, 윤휴는 고개를 젖힌 채로 굳은 얼굴로 용봉차일을 올려다볼 뿐이었다.


"나는 새도 떨어뜨렸다던 한명회가 저 용봉차일을 빌리려다 자신이 떨어졌지요. 그것도 눈 깜짝할 새에."


윤휴의 뼈 있는 충고에, 허적은 어쩐지 머쓱해져서 둘러대었다.


"서후행한테 빌려달라 하였더니, 이걸 빌려주더구먼."

"허면 전하께 허락은..."

"알아서 했겠지."

"아, 뭐..."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윤휴는 더이상 따져 묻지 않았다. 서후행이 알아서 했을 터였다. 왕에게 고하고 빌려주었든지, 자기가 알아서 재량껏 빌려주었든지, 자신이 알 바가 아니었다. 그는 이내 자신이 앉을 자리를 찾아 동편으로 향하였다. 이런 잔치자리에서조차, 철저히 신분에 따라 동편, 남편, 서편에 앉는 법이었다. 당상관인 그가 자리할 곳은 동편이니, 그의 걸음도 동편으로 향하였다. 그는 먼저 와 있던 민희 곁에 앉았다. 그 모습을 보는 허적의 두눈이 언뜻 차갑게 번뜩였다.


허목도, 권대운도 쳐냈으니, 다음은 저놈인데...


권력이란 참으로 이상했다. 피의 갈증처럼, 끝없이 목이 타게 만들었다. 물을 마시면 마실수록 오히려 목이 마르고, 술을 마시면 마실수록 오히려 취하지가 않으니, 참으로 자신의 뱃속에 충蟲이라도 들어선 모양이었다. 허적은 하객으로 참석한 민희와 오시수, 윤휴의 면면을 훑어보며 들뜬 속내를 차갑게 식혔다.


"축하드립니다 대감."


이번엔 또 서후행이 조카 서진을 거느리고 찾아왔다. 허적은 흘끔 서후행을 돌아보고 콧잔등을 찡그리며 웃었다. 웬일로 서후행이 조카까지 거느리고 왔다. 내관인 서후행과 달리 불알 두쪽이 무사한 덕인지, 전통에 활까지 차고 선 모습이 한눈에도 제법 늠름해 보였다.


"이 친구는..."

"제 조카 서진입니다."

"아, 오랜만일세..."


사실 처음 보는 얼굴도 아니지만, 허적은 새삼스레 서진을 유심히 쳐다보았다. 대를 이을 수 없는 몸인 서후행에겐 서진이 곧 아들이니, 아무래도 눈길이 갔다. 제법 골격도 좋고, 두눈에 총기가 있는 것이, 무슨 일이든 시키면 제몫을 톡톡히 해낼 것만 같았다. 장희재 보다는 꾀가 부족해 보이긴 해도, 심지는 더 곧아보이기도 했다. 토산현감을 지내고 경주영장慶州營將까지 지내어 벌써 그 품계가 종삼품까지 올랐던가. 어린 나이에 무과에 급제한 지 몇년 만에 이리 출세를 했다. 그걸 가능하게 만든 뒷배가 저 서후행일 터였다. 숙부의 뒷배 탓이라고 치부해봐도, 이놈 출세가 슬그머니 배가 아프기도 했다.


허적 자신도 아들을 둘이나 두었으니, 남의 아들을 볼 때면 내심 비교하는 마음이 들었다. 이렇게 좋은 날에, 후야를 빼놓을 수는 없다. 허적은 비로소 둘째 아들 생각이 나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마당 한켠으로 허후가 들어서서 남쪽 구석에 앉는 모습이 눈에 들어올 때까지. 아들 허후의 모습이 비범하게 보였는지, 아니면 서후행이 귀띔이라도 한 것인지, 서진이란 놈이 술잔을 들고 옆으로 다가앉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역시 만인지상 영상대감 댁의 경사이니 만큼 문무를 막론하고 모두가 한자리에 모였군요."


어느새 곁으로 다가온 민희가 좌중을 둘러보며 허적에게 소근거렸다. 이리 호화로운 잔치인 만큼 다양한 볼거리가 준비되어 있을 것만 같았다. 민희는 기대에 찬 눈빛으로 콧구멍을 벌름거렸다. 바늘 가는 데에 실 간다고, 민점도 뒤따라와서 돌아보는 참이었다.


"올 사람은 다 왔는가?"


허적은 좌중을 둘러보며 마름 황씨에게 넌지시 물었다. 한눈에도 적당인 서인보다는 남인이 더 많은 자리였다. 헌데, 서인들 중에도 김만기, 김석주처럼 왕의 지근에 있는 자들이 보이질 않았다. 오늘은 등청도 않는 날인데, 무슨 연유로 불참을 하였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견아, 부원군과 병판은 어찌 안 보이는 것이냐?"

"글쎄요..."


허적은 이내 허견에게 손짓하여 불러다 놓고 넌지시 물었다. 허견은 당혹하여 두눈을 끔뻑이며 둘러보았다. 이미 다섯차례나 자신이 직접 그들의 집을 직접 방문하여 초청의 글을 건네었다. 헌데도 그들이 찾아들지 않았으니 어쩐지 께름찍했다.


하지만 이미 해가 중천에 떠서 사당에 고유제告由祭를 올려 조부 허잠이 충정이란 시호를 받았음을 조상들께 고해야만 했다. 고유제를 우선 치르고서 그때부터 하객들이 마음껏 잔치를 누릴 수 있게 해야 했다. 어차피 밤은 길어, 저들이 퇴청하고 찾아오면 되었다. 허적은 아쉬운 대로 명안공주의 시부인 오두인의 참석에 만족해야 했다.


헌데 기단에 향안香案(제삿상)을 세우고 향로와 향합 등을 차려놓고 고유제를 올리는데, 난데 없이 닭 한마리가 향안으로 뛰어내렸다. 허적은 눈앞에서 닭이 날개를 파드득거리면서 향안 위에 올라앉자, 두눈이 튀어나올 듯 놀라버렸다.


"아니?"


벼슬이 연한 주홍빛이고 온몸에 흐르는 털의 윤기며 꽁지도 색이 담백한 것이, 한눈에도 암탉이었다. 어디서 나타난 암탉인지 향안에 올라앉아 날개를 파드득거리면서 제기를 걷어차는 것이었다.


허적은 등골이 후끈해지면서 몸서리를 쳤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손쓸 새도 없이 순식간에 향안의 향로며 제기들이 엎어지고 쏟아졌다. 하필이면 닭의 활개짓에 제사술까지 엎어져서 병풍 귀퉁이까지 튀고 말았다.


"뭐야 저 닭은?"

"웬 일이래?"

"암탉인데. 아니 저게 왜."

"도대체 어디서..."


허적은 귓전에 들려오는 수군거림에 정신을 퍼뜩 차리고선 노한 음성으로 마름 황씨에게 소리쳤다. 너무 흥분하여 온몸이 부르르 떨리고 치가 떨릴 지경이었다.


"뭣들 하느냐! 어서들 이 닭을 잡아라!"

"예, 예 나으리!"


당장에 칼을 암탉의 등줄기에 꽂아버리고 싶었지만 잔칫날에 피를 볼 수가 없어서, 황씨는 점동에게 눈짓했다. 점동이 재빠르게 향안으로 다가들어 암탉의 목줄기를 두손으로 꽉 움켜쥐었다. 점동이 암탉을 들고 마당 한켠으로 물러나자 사람들의 시선도 일제히 쏠렸다.


겨우 한숨 돌린 허적은 병풍 앞으로 다가가서 황급히 자신의 옷자락으로 얼룩을 닦아냈다. 다행히 병풍 그림 자체에는 술이 많이 튀지 않았고, 그 밑에 덧댄 속지만 흠뻑 적신 정도였다. 백년도 더 지난 귀한 이수정 그림인데 이 꼴을 만들어놓다니. 허적은 애써 분노를 가라앉혔다. 이 좋은 날 미물에게 화풀이를 할 수도 없으니, 스스로 화를 진정시키는 수 밖에 없었다. 그는 맨손바닥으로 얼굴을 몇번이고 문질렀다.



숙종은 동온돌의 장지문을 열게 하고, 대청아래로 주룩주룩 쏟아지는 빗줄기를 바라보았다. 지금쯤 허적이 신명나게 시호연을 벌일 판인데. 숙종은 입꼬리를 비틀어 웃고서 두광에게 손짓했다.


"비가 오니 잔치에 찬물을 끼얹은 셈이구나. 가서 인달방에 유악을 갖다주거라."

"유악을요?"

"그래. 잔치는 즐겨야지 않겠느냐."

"..."

"유악을 갖다주면서, 하객들의 면면을 살피거라. 누가 참석했고, 누가 불참했는지."


숙종은 입맛을 씁쓰레히 다시면서 빗줄기를 쳐다보았다. 중궁의 한이 깊으니, 하늘이 허적의 시호연에 비를 내렸나 싶었다. 하필이면 춘사월의 초입에 비가 이렇게도 많이 내리다니.


"중궁과 산책이나 해야겠구나."


허적의 집에 유막을 빌려주게 하고, 숙종은 진홍을 데리고 후원으로 나왔다. 섣달 그믐날까지만 미워하게 해달라던 그녀인데, 어쩐지 소원해진 느낌이 있었다.


진홍 자신이 다가들어도, 숙종이 그녀를 외면하곤 했다. 그런 숙종이 답답하고 불안했다. 헌데 웬일로 지아비는 우산을 씌워주며, 말 없이 후원을 거니는 참이었다.


"..."


아기를 낳은 지도, 아기가 세상을 떠난 지도 벌써 반년 가까이 흘렀다. 벌써 진홍의 온몸에서 붓기가 거의 빠졌다. 하지만 아기를 잃고 심장이 뜯겨져 나간 것 같은 고통은 진홍에겐 어제처럼 생생했다. 석달 전, 섣달 그믐날밤에 지아비가 그녀에게 의미심장한 말을 했던 것도 뇌리에 선연했다. 그때는 그냥 지아비가 기분 내키는 대로 했던 말인 줄로 알았는데. 시간이 지날 수록, 다시 곱씹어볼 수록, 그 말은 허적 부자를 물리치고, 그녀를 위해 복수하며, 그 대신에 그녀를 원망하겠다는 약속 같기도 하였다.


하지만 넉달 가까이 시간이 지나는 동안 지아비가 한 일이라곤 그저 최석정을 병조정랑에 앉힌 일 뿐이었다. 지아비가 그토록 아끼는 최석정을 김석주의 밑으로 밀어넣은 게 고작이었다. 그리고, 허적이 더 올라갈 데도 없이, 삼대의 광영을 높여주었다. 도저히 같은 하늘 아래 함께 숨을 쉴 수 없는 자들을 하늘 위로, 위로...진홍은 이를 악물고 허공을 보았다. 높이 오를 수록 추락하면 뼈도 못 추릴 것을. 진홍의 서늘한 눈길이 인달방을 향하였다.


영상대감, 제 선물은 잘 받으셨습니까?



엉망진창이 된 제삿상을 수습하고, 다시 고유제를 올린 후에, 허적은 노비들을 시켜 8첩반상을 하객들에게 돌리도록 하였다. 저마다 한사람씩 자신의 앞으로 된 소반을 받아 무릎맡에 내려놓고 침을 꼴깍 삼켰다. 고유제를 지낼 때 암탉이 소동을 일으킨 탓에 예정보다 시간이 지체되어 잔치도 지연된 탓이었다. 헌데 또 다시 웬 암탉이 날아들어, 하객들의 소반 위를 활개치고 뛰어다녔다.


푸드득푸드득!


하객들이 혼이 쏙 빠져서 뒤로 벌러덩 나자빠졌다. 닭이 미친 건지, 사람이 미친 건지. 어떻게 닭이 두번이나 날아들어 활개를 치고 난동을 부리는 건지. 암탉 주제에 어디서 그런 힘이 불끈 솟아올랐는지, 거침 없이 두발로 밥과 반찬이 당긴 그릇들을 걷어차고 뒤엎고 다니는 참이었다. 모두 가슴이 섬뜩하여 암탉을 지켜보았지만, 하객들 중 유일한 서인인 오두인은 고개를 들어 마당 위 하늘을 가린 용봉차일을 올려다보았다.


"저, 저..."

"왜 또..."

"뭐야...이거 흉존가?"

"수탉도 아니고 암탉이 어떻게 저렇게 힘이 쎄?"

"무슨 일이 생기려고..."

"암탉이 영상대감 집안을 망쳐놓는다...?"

"암탉이면..."


허적은 등골에 소름이 끼치면서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수탉도 아닌 암탉이다. 그 말이 뜻하는 건 계집 하나가 양천 허씨 문중을 망쳐놓는다는 얘기였다. 자신이나 허견이나 첩실을 두어 금이야 옥이야 달라든 대로 다 갖다바치긴 하였지만, 정작 힘은 쥐어주질 않았다. 양천허씨 문중을 망하게 할 암탉은 집안에 있지 않았다. 집밖에 있었다. 그것도 어쩌면 자신들이 암중에 괴롭혀온 중궁전...일 터였다.


이제는 정말 중궁의 목숨마저 끊어놓아야 하나.


"뭐, 섣달 그믐날에 중궁이 주상께 요망한 입을 놀렸다는 얘기가 있던데..."


어느 틈에 뒤로 바짝 다가온 서후행이 건넨 말이었다. 허적은 흠칫 놀라서 눈길을 뒤로 돌리고서 서후행의 말에 말없이 귀를 기울였다.


"오늘까지만 전하를 미워하게 해달라...뭐 그런 얘기였는데, 은근히 아주 은근히 주상께 무언가 입김을 넣은 것이지요."

"..."

"전하께서 요즘 영상을 보는 안색이 전과 같지 않으시다지요?"

"..."


한동안 뜸하더니, 뭐 얻어먹을 게 있다고 다시 기웃거리는 서후행을 허적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당장 서후행이 던진 말은 허적의 뒷목을 뻐근하게 했다.


"저 암탉을 잡아죽여라."


허적은 어금니를 꽉 물면서 마름 황씨에게 명하였다. 이 좋은 날에 피를 보긴 싫었으나, 이미 암탉이 날아들어 제삿상을 엎고, 또 잔칫상도 엎었으니, 하늘의 계시인 양 사람들이 흉조로 여기는 터였다. 분위기를 만회하려면 차라리 잡아죽여 피를 봐야 했다.


"예, 나으리."


그 자리에서 마름 황씨가 암탉의 목을 부여잡더니, 점동의 손에서 검을 뺏아들어 단칼에 암탉의 등줄기로 내리꽂았다. 암탉의 시뻘건 피가 황씨의 목깃이며 턱밑으로 뿜어져 나와, 콧마루에도 묻었다. 암탉이 짧은 괴성과 경련을 일으키며 철퍼덕 쓰러지는 광경도 끔찍했다. 하지만 마름 황씨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손등으로 쓰윽 피를 닦아내고 한손으로 암탉의 시체를 마당 한복판으로 던져버렸다. 좌중의 하객들이 모두 소스라치고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수군거렸다.


"아니 죽일 것 까지야..."

"대감께서 흥분하셨으이."

"안 그래도 요즘 전하께서 영상대감을 보는 안색이 차가워지셨다는데..."

"흉조네 흉조야."

"..."


벌써 잔칫분위기가 흉흉해졌다. 하지만 허적은 그럴수록 어깨와 등허리를 곧게 펴고, 좌중을 둘러보며 목청을 돋우어 우렁차게 일갈했다.


"이건! 유인酉人이 스스로 망할 징조니라!"


허적의 힘찬 고함에, 하객들이 고개를 갸웃했다. 유인? 하지만 장내의 사람들은 재빠르게 그 말을 알아들었다. 그중 윤휴가 바닥의 나뭇가지 하나를 줏어 짚자리 밖에다 글자를 써내렸다.


유인酉人


한획만 지우니 서인西人이 되었다. 어차피 방위로도 닭은 서쪽을 뜻하는 동물이다. 세종대왕이 앙부일구에 십이지신을 새길 때도 닭이 흰색과 서쪽을 차지했다. 계림鷄林이나 백마白馬같은 단어들도 똑같이 서쪽을 상징하는 말이었다. 하지만 나뭇가지를 손에 쥔 윤휴의 얼굴은 밝아지질 않았다.


"암, 서인이 망할 징조고 말고!"


윤휴의 곁에서 민희가 고개를 주억거리면서 동조했다. 하지만 윤휴는 나뭇가지를 너무 힘을 주어 쥐는 바람에 가지가 우지끈 부서져 버렸다. 그런 윤휴를 향해 민희가 눈을 흘기면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자, 자. 마음껏 마시고 즐기세들!"


대부분이 남인이라 표정이 대번에 밝아졌다. 하지만 서인인 오두인은 표정이 어두워졌다. 여기까지 와서 서인을 저주하는 소리를 듣자니 속이 거북했다. 당장 소리쳐 따지고 싶었지만 여기에 한편이 되어줄 서인이 없었다. 용봉차일에 잠깐 발자국을 비친에 그 누군가나마 서인이려나. 그는 똑똑히 보았다. 용봉차일을 받치는 장대 끝에 닿는 그림자, 그리고 그 틈새를 비집고 암탉 한마리를 투하하는 검디 검은 얼굴을.


허적은 입안의 혀까지 씹을 기세로 입을 실룩거리면서 피투성이가 된 암탉의 시체를 내려다 보았다. 그는 빈손을 불끈 움켜쥐었다. 중궁을 지운다...그저 야금야금 뱃속 아기들을 족족 지워가며, 왕의 눈길이 중궁에게서 다른 여인들에게로 옮겨 가기만을 기다릴 때가 아니었다. 중궁이 베갯머리 송사로 왕을 움직인다면, 더는 그 입을 놀리지 못하도록 해야만 했다. 아니, 중궁이 나섰다면, 어쩌면 자신들의 안위도 위험해질 수가 있다. 이럴 때일 수록 더욱 광성부원군과 병판대감의 동태를 살펴야 했다.


"견아, 너 가서 병판대감과 광성부원군을 모셔오너라."

"예? 하오나 소자가 활쏘기 시연을 하기로 되어 있는데..."

"너 아니어도 할 사람 많다."


허견은 다정한 아비의 입에서 툭툭 나오는 매정한 말투가 싫었다. 아비의 말마따나 활쏘기 쯤이야 물론 자신 아니어도 할 사람은 많았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입밖으로 내뱉는 아비가 싫었다. 그리 쉽게 생각하는 아비이니, 아들이 원하는 계집을 품어, 그 딸을 낳으셨겠지. 그리고 쉬쉬하며 키우다가 조카인 척 집에 들였었고. 허견은 아랫입술을 잘근 씹으면서 돌아섰다.


"놔 두세요. 그건 꼭 제가 할 테니."


이 좋은 날에, 왜 케케묵은 한이 가슴 속에서 끓어넘치는 건지. 허견은 씁쓸한 기분으로 용봉차일을 벗어나 행랑을 지나 솟을대문을 나섰다. 헌데 한발 내딛자마자 자신의 갓 옆으로 밀화구슬에 빗방울이 뚝 떨어졌다. 용봉차일 덕에 그만 비가 오는 것을 잊었다. 그는 짜증스레 손바닥으로 밀화구슬의 물기를 닦아내곤, 자신을 뒤따르는 점동에게 우장을 챙겨오라 이르고서 가만히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비는 가늘어지긴 커녕 점점 더 굵어지는 참이었다.


벌써 대로변엔 갈대로 짠 삿갓을 쓰고 갈풀로 엮은 도롱이를 두른 채로 바삐 걸어가는 행인들이 눈에 띄었다. 좀더 형편이 좋은 자들은 기름먹인 환지로 만든 입모를 쓰고, 또 기름을 먹인 유의油衣를 두르고서 돌아다니는 참이었다. 벌써 머슴들이 말 두필을 대령해 놓았는데, 왜 점동이 아직도 나오질 않는지, 괜히 짜증만 났다. 비가 문간으로 스며들어 자신의 귀한 갓을 적시는 참이었다. 하늘을 노려보며 허견이 갓위로 떨어지는 비를 손으로 툭툭 치자, 그제서야 점동이 두손에 입모와 우의를 챙기고서 헐레벌떡 뛰쳐나왔다.


"여기..."

"가자."


허견은 점동의 손에서 우선 유의를 받아들어 몸에 걸쳤다. 그리고 입모도 받아들어 갓 위로 씌우고서 실끈을 턱밑으로 바짝 잡아당기고 말 위에 올라탔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전방을 멀리 내다 보았다.


김만기와 김석주의 집은 숭례문 근처의 회현방과 장충방...여기 필운산 남쪽 기슭인 인달방에서 저기 남산 기슭인 회현방까지는 걸어서 3각을, 또 말 달려서 1각을 훌쩍 넘길 터였다. 성가셨다. 하지만 아비도 도성 안팎의 병권을 틀어쥔 병판대감과 광성부원군 만큼은 항시 예우하며 또 경계했다. 언제든지, 그들을 시야에 붙여놔야 마음이 놓인다는 아비였으니.


헌데 기분이 참 요상했다. 가슴팍에 뭔가 끈적하고 껄끄러운 무언가가 들러붙은 느낌이었다. 윤이의 어미가 생각난 탓인지, 왜 가슴 속이 들끓었다가 식었다가 하는 건지. 허견은 빗길을 말 달려서 회현방과 장충방까지 가야 하는 사실에 짜증스럽게 말고삐를 움켜쥐었다.



"전하"


진홍이 지아비와 한시진 가까이 후원을 한바퀴 산책을 할 무렵, 두광이 입술이 하얗게 부르터서 후원으로 달려왔다. 숙종은 가만히 진홍과 우산을 나눠 쓴 채로 두광을 돌아보았다.


"왜 벌써 오느냐?"

"내수사에 갔더니, 벌써 유악을 인달방에 빌려주었다고..."


두광이 말끝을 흐렸다. 평소 소유욕이 남다른 왕이었다. 특히나 왕과 왕실의 권위를 상징하는 물건에 대한 애착도 남달랐다. 거의 집착 수준이었다. 그런데, 내수사에서 감히 왕의 유악을 윤허도 구하지 않고 빌려주었다는 사실을 보고하려니 가슴이 후들거렸다.


"유악을? 감히 내 유악을?"

"..."


숙종은 기가 막혀서 헛웃음이 나왔다. 유악은 결코 왕의 윤허 없이 함부로 빌려가서도, 빌려줘서도 안되는 물건이었다. 용과 봉황이 그려져서, 오악도 만큼이나 왕을 상징하는 물건이었다. 그런 유악을 빌려가는 동안 자신이 몰랐다.


"한명회..."

"네?"

"한명회가 감히 왕에게 유악을 빌려달라 청했다가 그대로 몰락의 길을 걸었다. 헌데 허적은 내가 유악을 빌려줘도 받지 말아야 할 판에...감히 가져가?"


이내 헛웃음이 차갑게 식으면서, 숙종은 두눈을 지릅뜨고 차갑게 다그쳐 물었다.


"누가 감히 내 유악을 빌려주었다더냐?"

"그것이..."

"말하라 어서!"

"상선대감...이옵니다."

"상선?"


숙종의 입꼬리가 마침내 비틀렸다. 네놈이었구나. 드디어 꼬리를 잡았다. 숙종은 시퍼렇게 날선 눈빛으로 허공을 보았다. 그동안 왕실의 불행은, 중궁의 불행은 궐안에 허적의 숨은 조력자가 있어야지만 가능했다. 그러고 보니 중궁이 상한 민어를 잘못 먹고 조산을 할 때도, 당시 수라간을 주관했던 것이 서후행이었다. 그 서후행이 자신의 허락도 없이 허적에게 용봉차일을 빌려주었다.


"걸려들었구나, 서후행."

"..."


숙종은 차갑게 두눈을 번뜩이며, 우산 든 손을 더욱 움켜쥐었다. 두광은 가슴이 섬뜩하여 숙종의 뒷모습을 쳐다보았다. 한명회라니. 왕이 용봉차일을 빌려주려던 것이 호의가 아닌 모양이었다. 이제 보니 비가 오지 않았어도, 왕은 햇빛을 가리라며 용봉차일을 빌려줄 심산이었다. 그래놓고 허적이 용봉차일을 받아가면, 또한 이를 빌미 삼아 허적을 끌어내릴 흉중이었을 터였다.


"전하, 팔이 아프실 텐데 우산은 제가..."


두광이 보다 못해 얘기를 꺼냈지만, 숙종은 자신과 진홍 사이로 뒤에서 얼굴을 내미는 두광의 얼굴을 손바닥으로 툭 밀어냈다. 그리고는 가만히 침묵하고 앞만 보았다.


"중전마마, 소녀가 우산을..."


상아도 쭈볏쭈볏 눈치를 보다가 한발 앞으로 나섰다. 그러자 숙종은 우산을 뒤로 기울여 물기를 상아의 머리 위로 쏟아버렸다.


"앗츠..."


상아도 소스라쳐서 뒤로 한걸음 펄쩍 뛰었다. 진홍은 둘을 돌아보며, 가만히 눈짓했다. 물러나 있으라는 뜻이었다. 그리고 자신이 가만히 우산 손잡이를 맞잡았다. 숙종은 그런 진홍을 흘끗 돌아보곤 차마 응징도 못한 채로 도로 앞을 보았다. 입을 꾹 다물고서.


"오늘밤 궐문을 닫지 말도록 하고, 병조판서 김석주, 훈련대장 유혁연, 포도대장 신여철, 총융사 김만기를 패초(불러들임)하라."


시간이 속절 없이 흐르고서야, 침묵 끝에 왕의 옥음도 흘렀다. 팔이 떨어져라 우산을 맞들었던 진홍이 흠칫 놀라 쳐다보았다. 드디어, 지아비가 결단을 내렸다. 병부가 바뀔 터였다. 정권을 바꾸려면 병권부터 바꿔야 하니. 빗줄기 틈새로 허공을 보는 진홍의 눈시울이 눈물에 젖어서 붉게 반짝였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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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 작성자
    Lv.98 뚱뚱한멸치
    작성일
    14.02.22 18:45
    No. 1

    올가미를 만들어 보낸게 아니라
    스스로 올가미를 챙겨놓은 거네요

    다음 편이 기다려집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Personacon ANU
    작성일
    14.02.23 16:19
    No. 2

    드디어 서후행도 걸려들었네요!
    저도 다음편이 기다려집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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