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밭
현재 만토이펠 대대의 대대 전투 지휘소는 얕은 언덕 위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이 곳은 전면에 개활지가 한 눈에 보인다는 장점이 있었다. 소련군이 어느 방향으로 오던 독일군이 먼저 감제할 수 있을 것 이었다. 오토는 언덕 뒤쪽에 주차해둔 전차의 상태를 살핀 후 대대 지휘소 쪽을 지나가는데 병사들이 대대 전투 지휘소 인근에 참호를 파고 있었다.
'저긴 참호 파기 안 좋은데...'
지금 병사들이 참호를 파는 곳의 위치는 소련군에게 감제되는 영역이었던 것 이다. 참호를 파봤자 소련군 포격에 취약할 것이 뻔했다. 오토가 말했다.
"그 곳은 참호를 파기 좋은 위치가 아닐세!"
열심히 참호를 파던 병사가 외쳤다.
"대대장님께서 여기 참호를 파라고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만토이펠이?'
만토이펠 대대장은 계속해서 오토의 소대에만 위험한 임무를 맡기고 있었다. 오토는 만토이펠이 사악한 것 뿐만 아니라 전술적으로도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형도 고려하지 않고 참호를 파라는 명령을 보병들에게 내릴 정도로 멍청할 줄은 몰랐다.
'그냥 신경 끌까?'
오토는 망설이다가 대대 전투 지휘소로 들어갔다. 이런 곳에 참호를 파서 아군 베테랑 보병들이 피해를 입으면 이는 보전 협동에도 좋지 않았다.
지휘소에 들어가보니, 러시아 노인이 통신 감청 부대와 함께 있었다. 이 러시아 노인은 일종의 통역사로, 소련군 포로의 진술이나 통신 감청을 통역해주는 일을 하면서 음식을 받고 있었다. 들어가보니 만토이펠 대대장은 보이지 않았고 오토는 투덜거리며 대대 전투 지휘소 밖으로 나왔다.
'내가 알바냐...'
앞으로 전투 때 만토이펠은 절대 믿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대 지휘소 밖으로 나와보니 먹구름이 끼고 있었다. 마티아스가 이 광경을 보고 외쳤다.
"비가 올 것 같습니다!!"
각 차량들에는 모두 방수포를 덮어 두고, 그 위에 그물망을 덮어서 확실히 위장해둔 상태였다. 오토는 나무 막대로 땅을 찔러 보였다. 만약 비가 오기 시작하면 안 그래도 열악한 보급 상황이 더 악화될 것 이었다.
그리고 역시나 비가 오기 시작했다. 오토와 전차병들은 모두 비좁은 오두막에 들어갔다. 게오르크가 불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여긴 10월 초에 첫눈 온다더라."
"10월 초에 첫눈이 온다고?"
"10월 되면 지옥 시작이지."
이제 여름도 끝나가고 있었고 밤이 되면 찬바람이 불었다. 다행히 비는 금방 그쳤지만 이미 땅은 질퍽해진 상태였다.
'이런 토질에서 전차를 어떻게 진격시키지?'
그 때, 언덕 쪽에서 스테판이 쌍안경을 들고는 후방 쪽을 보며 외쳤다.
"저..저거!!"
"좆됐다!!"
"무슨 일이야?"
오토가 달려가서 쌍안경으로 후방을 바라보았다.
"이럴 수가!!"
"내 밥!!"
만토이펠 대대에게 식량과 탄약, 연료를 보급하는 트럭들이 모조리 비가 와서 땅에 바퀴가 묻혀버린 상태였다. 잠시 뒤, 전차들이 기동하여 트럭에 견인줄을 연결하여 진창에서 빼내주었다. 더 후방쪽에서는 트럭 50대가 모조리 땅에 파묻혀서 이동을 못하는 상태였다.
전차병들은 흑빵과 다 식은 우유죽을 반합에 배급 받아서 먹기 시작했다. 우유죽은 보관을 제대로 안한건지 약간 상한 것 같았다. 하지만 앞으로 일주일 이상 식사를 배급받지 못할 수도 있었기에 이거라도 일단 다 먹어야 했다. 잠시 뒤, 많은 병사들이 단체로 배가 아프기 시작했다. 전차를 정비하고 남은 업무를 하던 병사들은 모두 배를 움켜쥔 채로 임시로 파둔 화장실로 들락날락했다. 오토 또한 배가 아프기 시작했고, 많은 병사들이 탈수 증상에 시달렸다.
다들 기진맥진한 채로 오두막 난로에 불을 피우고는 그 앞에서 옷을 말렸다. 그리고 다음 날, 슐레프 중대는 소련군의 T-34 부대와 교전하기 시작했다.
티잉!! 쿠과광!!!
소련군 T-34 부대는 티거, 판터보다 자신의 전력이 약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키가 큰 밀밭으로 후퇴하기 시작했다. 슐레프 중대장이 무선으로 외쳤다.
"놓치지 말고 잡아!!"
하지만 다른 소련군의 전차 부대가 주공으로 공격하고 있었기에, 티거와 판터는 주공과 교전하고 있어야 했다. 그리고 4호 전차와 50mm 대전차포 등으로는 T-34를 격파할 수 없었다.
그리고 하이에 소대장은 지크프리트 4인조와 자신의 소대원들을 데리고 허리를 숙인 채로 밀밭을 가로질러 달려갔다. 로베르트는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밀밭 위로 고개를 빼꼼 들었다. 10시 방향에서 T-34 전차의 포탑이 보였다.
'으익!!!'
판처 파우스트가 다 떨어지는 바람에 지금 하이에 소대에는 화염병과 텔러미네(원반형 대전차 지뢰) 밖에 없었다. 하이에가 자신의 소대원들에게 말했다.
"화염병은 정확히 엔진 커버에 던져야 불이 붙는다! 엔진 커버 쪽으로 던진다!!"
소대원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하이에는 텔러미네를 하나 챙겼다. 이 텔러미네(원반형 대전차 지뢰)를 T-34의 캐터필러에 끼워넣으면 기동 불가로 만들 수 있다.
트드등 트드드등 트드등
10시 방향 T-34의 주포가 불을 뿜었다.
티잉!!
이 광경을 보고는 T-34로 접근하던 하이에의 소대원들과 지크프리트 4인조는 오줌을 지렸다.
'맞으면 좆된다!!!'
하이에는 결국 소대원들에게 모범을 보이기 위해 선두에 서서 T-34 전차로 천천히 접근했다.
스슥 스스스슥
그리고 하이에는 허리를 숙이고 접근하여 T-34의 캐터필러에 텔러미네를 끼워 넣고는 잽싸게 달아났다.
쿠과광!!!
하이에가 화염병을 들고 있는 신병에게 외쳤다.
"던져!!"
그 신병은 T-34로 접근하지 못하고 멀리서 화염병을 던졌다. 화염병은 T-34의 궤도 옆에 떨어졌다.
화르륵!!!
밀밭이 타오르기 시작했고, T-34의 포탑이 선회하기 시작했다. 하이에가 외쳤다.
"산개해서 도망쳐!!"
하이에와 소대원들은 밀밭 속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우아아악!!!"
지크프리트 4인조 또한 제각기 밀밭 속으로 달아난 다음 자리에 엎드렸다. T-34의 포탑이 선회하며 사방으로 기관총을 긁었다.
드륵 드르륵 드르륵 드륵
하이에 소대원들은 모두 포복 자세로 밀밭을 기어가기 시작했다. 하이에는 화염병을 베테랑에게 맡기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내가 직접 던졌어야했다!!'
그 때, 오토 소대의 판터가 T-34를 향해 철갑탄을 발사했다.
티잉!!! 쉬잇!!
판터가 발사한 철갑탄은 T-34를 스치고 지나갔다. T-34는 다시 판터를 향해 포탑을 선회시키기 시작했고 그 틈을 타서 하이에와 지크프리트 4인조, 소대원들은 밀밭을 가로질러 도망치기 시작했다.
"튀어!!!"
판터와 T-34가 몇 번 포탄을 주고 받았고, 결국 판터가 발사한 철갑탄이 T-34의 장갑을 뚫고 들어갔다. T-34 차체 내부 고폭탄이 유폭을 일으키며 엄청난 폭발과 함께 T-34의 포탑이 하늘 높이 솟아올랐다.
쿠과광!!!
올라프는 20m 앞에 떨어진 포탑을 보고는 비명을 질렀다.
"우아악!!!"
그렇게 밀밭 한 가운데서 T-34는 격파당한채로 시꺼먼 연기와 시뻘건 불꽃을 내뿜고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T-34들은 티거, 판터와 함께 포탄을 주고 받고 있었다.
티잉!! 티잉!!
T-34는 주포 뿐만 아니라 동축 기관총도 불을 뿜고 있었다. 하이에는 그래도 베테랑인 지크프리트 4인조와 함께 T-34로 접근하기 시작했다. T-34의 주포는 현재 티거 전차를 향해 있었고 지금이 기회였다. 하이에는 다시 잽싸게 텔러미네를 T-34의 캐터필러에 넣고는 도망쳤다.
쿠과광!! 콰광!!
그 틈을 타서 크리스티안과 호르스트가 T-34의 엔진 커버에 화염병을 던졌다. 크리스티안이 던진 화염병이 정확히 T-34의 엔진 커버에 맞았다.
화르륵!!
하이에와 지크프리트 4인조는 그렇게 T-34를 격파하고는 허리를 숙인채로 도망갔다. 잠시 뒤, 밀밭에는 수 많은 소련군의 T-34들이 격파되어 시커먼 연기를 내뿜고 있었다. 그런데 지크프리트 4인조의 로베르트는 혼자서 길을 잃은 상태였다.
'시발 다들 어디 간거야!!!'
로베르트는 MP40을 들고는 허리를 숙이고 밀밭 사이를 걸어갔다. 그 때, 3시 방향에서 밀밭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
로베르트는 식은 땀을 흘리며 3시 방향을 MP40로 조준한 채로 멈춰서있었다. 그리고 밀밭에서 소련군 전차병이 튀어나와서 로베르트를 보고는 비명을 질렀다.
"으아아악!!!!!!!!!!!"
로베르트 또한 소련군 전차병을 보고는 비명을 질렀다.
"우아악!!!"
무기를 갖고 있지 않던 소련군 전차병은 로베르트를 보고는 도망가기 시작했다.
"우악!!!"
로베르트가 소련군 전차병에게 외쳤다.
"멈춰!! 멈춰!!!"
그렇게 로베르트와 보병들은 많은 소련군을 포로로 잡는 전공을 세웠다. 이번에 독일군이 잡은 소련군 포로들은 총 70명이었는데 이들을 가둬놓을 울타리도 없었다. 각 병사들은 제각기 해야할 일이 많았기 때문에 한 두 명의 보초밖에 세워둘 수 없었다. 파울이 포로들을 감시하는 일을 맡기로 했다.
파울은 MP40을 들고는 포로 감시 업무를 하게 된 것을 자랑스러워했다. 포로를 감시하는 것은 확실히 권위가 세워지는 임무였다. 물론 파울이 소속한 기갑척탄 소대장은 파울이 하도 사고만 치고 판처 파우스트 같은 중요한 무기를 분실했기에 파울에게 이 임무를 맡긴 것 이었다.
파울은 괜히 포로들 앞에서 걸어다니면서 호통을 쳤다.
"이봐!! 주머니 뒤집어봐!!"
소련군 포로는 파울한테 주머니를 확인시켜 주었다. 소련군 포로들이 꿍얼거렸다.
"목말라 죽겠네..."
"물은 주려나?"
파울이 이들에게 호통쳤다.
"이봐 거기!! 조용히 해!! 사담은 금지다!!"
소련군 포로들은 결국 입을 다물었다. 파울은 자신에게 주어진 이 권력에 만족하기 시작했다.
'이런게 바로 권력이군!!'
하지만 포로 감시도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결국 파울은 주저앉아서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포로들은 이 틈을 타 도망칠까 눈치를 보고 있는데 소대장이 와서 파울을 꾸중했다.
"이러다가 포로들 다 도망간다!!"
파울은 소대장한테 혼이 난 것에 화가 났다.
'이 망할 놈의 포로들때문에 내가 괜히 혼났다!!'
파울은 포로들 중에서 키가 작고 어리고 만만해보이는 녀석을 후드려패기 시작했다.
퍽!! 퍽!!
"이 망할 파르티잔 새끼!!"
오토와 전차병들은 파울이 포로를 후드려패는 것을 봤지만 무시하고 지나갔다. 알프레트가 말했다.
"포로가 탈출 시도했나 봅니다!!"
마티아스가 말했다.
"어차피 탈출은 못할텐데 어리석군!!"
포수 에밀은 얼마 전 충격으로 여전히 정신이 나간 상태였다.
"으헤에...헤에에..."
오토 또한 얼마 전 소련 여군에게 당했는데 그 여군들은 멀쩡히 후방으로 보내진 것에 열이 받아서 같이 와서 포로를 패기 시작했다.
퍽!! 퍼억!!
"이 운터메쉬들!!!"
하이에가 이 광경을 보았다면 오토를 막았을테지만, 하이에는 지금 자신의 소대원들과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한편, 한스는 자신이 오래 전부터 주장해서 마련해둔 동계 장비들을 확인했다. 소련군은 겨울에는 모피 코트, 모피를 덧댄 장화를 신을 것 이었다. 소련군은 동계 장비만 충분한 것이 아니고, 오랫동안 러시아에 살았던 덕분에 추위에서도 살아남는 방법을 잘 알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한스는 연료로 불을 피우고, 사이즈가 큰 군화에 지푸라기를 넣어서 동상을 예방하는 방법에 대한 책자를 만들어서 교부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10월만 되어도 눈이 내리고 추워지기 때문에 지금부터 이에 대비해야 했다.
눈이 내리면 스키나 썰매가 필요할 것이기에 스키, 썰매들 또한 민간인들에게서 기부를 받았다. 한스는 제발 이 동계 장비들을 쓸 일이 없기를 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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