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누가 적진을 행군하며 악마의 노래를 부르는가
한편, 일본 해군 내부에서는 "세계정세 추이에 따른 시국 처리 요강"에 대해 반대 의견을 품고 있는 세력이 있었다. 한 해군 장성이 목소리를 높였다.
"아직까지는 소련이 미국에 공군 기지 사용을 허가한다한들 본토가 미국 폭격기 사거리에서 벗어납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폭격기 반경은 빠르게 증가하기 마련이고, 빠른 시일 내에 미국이 소련에 공군 기지를 쓸 경우 본토를 폭격할 수 있을 것 입니다! 시간이 갈수록 미국에 유리합니다! 한시가 촉박합니다! 독소전의 결과를 기다릴 시간이 없습니다!"
"폭격기 반경이 커진다 하더라도 최소 3년 이상은 시간이 있네!"
"그렇지 않습니다! 믿을만한 스웨덴쪽 기업가로부터 얻은 정보가 있습니다! 이 기업가의 말에 따르면 현재 미국은 폭격기 반경을 늘리기 위한 연구를 진행 중에 있습니다! 본토가 미 폭격기의 사정 거리 안에 들어오기 전에 빨리 군사 행동을 취해야 합니다!"
"독소전이 끝나기 전이 기회야! 이번 여름에 독일의 공세 때문에 우리가 남방으로 가더라도 소련군은 우리 쪽을 공격할 수 없지!! 빨리 남방으로 가야 하네!"
"일단 기다려보자고!"
그리고 중부집단군 사령부에서 한스는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내가 잠시 감옥에 간 동안 일처리를 이렇게 엉망으로 했단 말인가!!!'
한스가 자신의 담당 참모한테 말했다.
"세 공세를 시작하려면 더 많은 차량이 필요하네!"
"현재 추가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차량은 8000대입니다. 조만간 7000대의 차량을 추가적으로 이용할 수 있을 것 입니다."
"8000대? 지금 최소한 7만5000대가 필요하네!!"
한스는 자신의 모든 줄을 동원해서 중부집단군 공세에 필요한 차량을 보내달라고 연락했다. 한스는 베를린에 있는 알베르트 슈페어 군수부 장관에 전화 연결을 해달라고 부관한테 명령했다. 그런데 중부집답군 사령부로부터 너무 거리가 멀었기 때문에 통화 상태가 좋지 않았다. 슈페어의 목소리가 전화기에서 들렸다.
"지직 ㅡ 지직 현재 통화 상태가 좋지 않아 지직 - 잘 들리지 않아서 지직"
결국 전화기가 끊어졌고 한스는 욕설을 퍼부었다. 한스는 북부집단군, 남부집단군, 그리고 현 독일 본토에 있는 전차를 최대한 중부집단군으로 차출해줄 것을 요청하는 보고서를 작성했다. 잠시 뒤, OKW에서 한스의 사령부로 전화가 왔다. 서부에서 본토를 방어하는 전차를 차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답변이 왔다. 한스가 말했다.
"현재 프랑스의 정치적인 상황을 미루어보면 어차피 프랑스는 절대로 독일 제국을 침공할 수 없습니다! 최대한 서부에서 차출해서 중부집단군에 전차와 차량이 신속하게 보내져야 합니다!"
그리고 한스는 알베르트 슈페어한테도 최대한 독일의 소비재 물자 생산을 더욱 감소시켜야 한다고 전화를 했다. 부관 프란츠와 다른 참모들은 한스 파이퍼와 슈페어의 전화 통화가 잘 진행되는 것 같아서 안심을 했다. 한스가 전화를 끊고 말했다.
"전시에 그깟 생활 필수품 따위는 아무 소용이 없네! 멍청한 정치인들은 지지율이 떨어질까봐 이를 겁내는데 슈페어 이 양반은 말이 잘 통하는군! 조만간 공장 노동자들을 더 징집하는 것에도 이 친구가 동의했네!"
한스는 사령관 벽에 붙어있는 전체 전선 지도를 보며 참모들에게 이야기했다.
"남부와 북부 쪽에서는 소련군이 중부 쪽을 지원할 수 없을 정도로만 전선을 유지하면 되네! 이번 공세는 단칼에 끝날걸세!"
한스는 각 사단에 대한 보고서를 읽어 보았다. 1940년 동부전선 전체를 밀고 들어갔던 독일군의 사단은 1941년 현재 기준으로는 확실히 약화되었다.
'162개 사단 중 적극적 공세에 참가할 수 있는 사단은 10개, 제한적 공세 참가할 수 있는 사단이 현재 46개...이 외에 사단들은 신속히 정비하면...'
한스가 중얼거렸다.
"쓸만한 사단은 몇 개 없어. 최대한 눈속임을 해야겠군.."
그리고 1941년 잔인한 봄이 찾아왔다. 스몰렌스크 인근에 쓰러져있던 황금빛 레닌 동상 위를 덮고 있던 눈이 녹아내렸다. 러시아 땅 곳곳의 독일군 점령 지역에는 나무로 급조해서 만든 십자가 위에 찌그러진 슈탈헬름이 하나씩 걸쳐진 주인 없는 무덤들이 널려 있었다. 눈이 녹기 시작하자, 20개가 넘는 독일군의 시체들이 한번에 매장된 묘지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참새 한 마리가 찌그러진 슈탈헬름 위에 앉았다가 독일군이 군가를 부르며 행군해오자 이내 하늘로 날아갔다.
"그 누가 적진을 행군하며 악마의 노래를 부르는가?"
신병들은 슈탈헬름들이 걸쳐져있는 묘지를 흘끗 바라보며 계속 노래를 불렀다.
"소총수가 오데르 강가에서 노래를 흥얼거린다~ 전세계가 우리의 진군을 바라본다!"
신병들은 계속해서 행군하다가 슈탈헬름들이 한 무더기 쌓여있는 곳을 발견했다. 얼마 전까지 슈탈헬름의 안쪽에는 눈이 고여있었는데 그 눈마저 다 녹고 더러운 물이 되어 고여있었다. 한 신병은 슈탈헬름 내부에 안감을 보며 각 슈탈헬름의 이전 주인의 머리에 저 안감이 닿았을거라 생각을 하니 소름이 돋았다.
'재수없게...'
신병들이 계속 행군을 하다보니 고장난 야포와 더 이상 못 쓰게 된 총기가 우르르 쌓여있는 곳이 나왔다. 한 신병이 중얼거렸다.
"3달 안에는 전쟁 끝나겠지?"
"한 달 안에 끝날거야."
한편, 나타샤 일행은 얼마 전까지 입던 흰 위장복 대신 얼룩무늬 위장복을 입고 또 다시 작전을 수행하고 있었다. 나타샤는 덤불에 은폐한 상태로 조준경을 이용하여 둥근 방차통을 등에 엎고 있는 독일군 통신병들에 주목했다.
'...'
두 달 전까지만 해도 나타샤는 슈탈헬름만 보면 벌벌 떨었다. 대다수의 소련군은 철모가 없었기에 작업모를 썼고, 슈탈헬름을 쓴 독일군은 자신보다 훨씬 강하고 압도적인 상대였다. 하지만 나타샤는 더 이상 슈탈헬름이 두렵지 않았다. 나타샤는 심호흡을 하고 천천히 방아쇠를 당기며 어깨에 반동을 느꼈다.
탕!!!
나타샤와 동시에 뽈리나, 키라, 마가리타, 옥사나도 방아쇠를 당겼다.
탕!! 탕!! 탕!!
통신병들은 갑자기 몸에 힘이 빠진듯이 스러졌다. 나타샤 일행은 잽싸게 달려가서 독일군 통신병들의 잡낭을 뒤지고 챙길 것을 챙겼다. 나타샤는 사람의 살 속에 칼을 집어넣는 것이 고기를 써는 것만큼 쉽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 시체 또한 더 이상 두렵지 않았다. 이제 조금 있으면 이 시체들은 핏기가 완전히 사라질 것이다.
한편, 정치 장교 안토노프는 모스크바 인근에서 열심히 재봉일을 하는 민간인 여성들로 구성된 재봉대 대원들이 작업하는 곳을 방문했다. 얼마 전까지 주부였던 그 여성들은 어두컴컴하고 천장에 전등 몇 개가 달린 열악한 작업장에서 소련군의 군복을 수선하는 업무를 자발적으로 하고 있었다. 좁은 테이블 옆에 다닥다닥 붙어 앉은 재봉대원들은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옷들을 재봉틀에서 돌리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여성 민간인들은 작업장에서 줄질을 하면서 포탄이 정확하게 날아가도록 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바글거리는 작업장에서 정치장교 안토노프는 열심히 노동을 하는 민간인들을 격려하고 사령부로 돌아왔다.
안토노프는 최근 보고서들을 통하여 루마니아군, 불가리아군, 우크라이나군 또한 죽음을 각오하고 싸우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안토노프는 폴란드 전쟁때 희망찬 학생이었던 자신을 떠올렸다.
'레닌 동지의 말대로 온 유럽이 공산주의의 이름으로 해방될거라 믿었다...붉은 군대가 인류를 공산주의로 구원할거라 의심치 않았지. 소수민족을 탄압하지 말고 어떻게던 서방을 분열시켰어야 했다. 어쩌면 우리의 패배가 인류 전체의 진보일수도...'
안토노프는 10대 때부터 믿었던 신념이 아스라지기 시작했다. 안토노프는 공세가 소강된 지금 상황에서도 죽어라 포탄을 옮기는 말라빠진 병사들을 바라보았다. 취사용 차량이 오자 병사들은 부리나케 달려가서 양배추 스프와 홍차를 받았다.
안토노프가 속으로 생각했다.
'얼마 전까지 평범한 노동자였던 저들은 인류 역사상 가장 강한 전사로 자랐군. 저들이 투사가 된 것은 공산주의와 아무 관련이 없지...붉은 군대의 진정한 의미는 공산주의로 인류를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조국을 수호하는 것 이다.'
안토노프는 얼마 전부터 사격 연습을 시작한 자신의 권총을 만지며 결사 항전을 다짐했다.
'내가 죽더라도 단 한 명의 민간인이라도 더 구하고 죽을 것 이다.'
한편 중부집단군 사령부에서 한스 파이퍼는 장성들을 상대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이번 공세로 비스마르크가 후손들을 위해 남겨둔 숙원을 이룰 것 입니다."
다들 세계대전때 한가닥하며 싸웠던 장성들이 한스의 연설에 주목하고 있었다.
"더 이상 인류 문명의 퇴보는 없습니다. 여기서 실패한다면 이후 소련을 멸망시키는 것이 100년 이상 늦어질지 보릅니다! 세계대전때 이루지 못했던 임무를 지금 이 순간 끝낼 것 입니다! 독일 제국을 위하여!!"
모두 슈납스가 든 잔을 들어올리며 외쳤다.
"독일 제국을 위하여!!"
한편, 남부 지역에서는 우크라이나 조종사 올렉시의 Bf 109가 하늘을 비행했다.
트드드드드 트드드드드등 트드드드드
올렉시는 살짝 롤회전을 하며 콕핏을 통해 지상을 바라보았다.
트드드드 트드드등 트드드
눈이 녹았음에도 불구하고 땅은 여전히 퀴퀴한 잿빛이었다. 전쟁만 아니었다면 농경지로 쓰였을 비옥한 땅들 여기저기에는 굵은 참호가 그어져 있었다. 전쟁의 상흔으로 나무에선 여전히 잎사귀가 자라고 있지 않았다.
소련군의 포는 10초에 한번씩 대지를 두들기고 있었다.
구오오오오오 쿵!!!
구오오오오 쿵!!!
뿌연 연기가 퍼져나가는 탄착점이 조금씩 변하고 있었다. 혹시 탄착점이 아군 참호가 그어져있는 곳으로 정확히 이동하기만 한다면 꽤나 많이 죽을 것 이었다. 올렉시 옆에는 동료 에두아르드의 Bf 109도 같이 비행하고 있었다. 올렉시는 날개를 움직이며 에두아르드에게 신호를 주었다.
'10시 방향으로!!!'
그렇게 올렉시의 Bf 109는 에두아르드의 Bf 109와 함께 상당한 고고도에서 소련군의 남부 방어선을 한 눈에 내려다보았다. 소련군은 분명 야포와 전차 등을 거대한 침엽수림 밑에 숨겨두고 있을 것 이다. 올렉시가 비행기 날개를 움직이며 수신호를 보냈다.
"고도 낮추자!!"
그렇게 올렉시와 에두아르드의 Bf 109는 소련군의 방어선을 자세히 관찰하기 위해 고도를 낮추었다. 올렉시는 버튼을 눌러서 항공기에 장착된 카메라로 대지를 촬영했고 카메라가 작동하는 순간 Bf 109의 날개 쪽에서 불이 번쩍거렸다. 올렉시가 180도 롤회전을 하며 굵게 그어진 소련군의 참호를 확인했다. 참호 속에서 소련군이 빠른 속도로 달려가는 것이 보였다. 여기서 제대로 폭탄 하나만 떨구면 대여섯은 죽일 수 있다. 순간, 덤불 속에 은폐되어 있던 소련군의 대공포들이 대지를 울렸다.
퍼엉!!!
트트트트 트트트트트 트트트트트
올렉시와 에두아르드는 잽싸게 고도를 높인 다음, 소련군 포병대를 약올리듯이 180도 롤회전을 하며 배면 비행을 했다. 올렉시는 지상에서 소련군의 대공포들이 불을 뿜는 것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 에두아르드가 외쳤다.
"이 거리에서는 어차피 안 맞는다고!!"
올렉시는 심장이 벅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언제부턴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애국심은 하늘을 나는 것에 대한 열정에 비교하여 희미해져가고 있었다. 올렉시는 설령 자신이 전선에서 죽더라도 우크라이나를 위해서 죽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올렉시의 소원은 내일도 하늘을 비행하는 것 이었다.
'공군이 전장의 지배자다!!!'
정찰 비행을 끝나고 올렉시 일행은 비행장으로 복귀했다. 루슬란이 말했다.
"정찰 비행을 왜 이렇게 늘린거지?"
현재 남부 쪽 항공기들의 정찰 비행이 터무니없이 많이 증가한 것 이었다. 에두아르드가 말했다.
"이건 분명 남부 쪽에서 대공세를 하는거야!"
"난 모스크바 쪽일줄 알았는데."
"독일 놈들은 유전이 없잖아. 그래서 남부 쪽 유전 지대를 노리는거라고! 아마 독일 놈들도 작년만큼 모든 전선에서 공세를 할 힘은 없을거야! 그리고 이번에는 남부에서 집중적인 공세를 하는거고!"
순간 정적이 흘렀다. 남부 쪽에서 집중적인 공격을 하는 것은 좋기는 하지만 출격 횟수가 많아지면 파일럿의 수명은 더 짧아질 것이 분명했다. 올렉시가 말했다.
"기왕이면 이 쪽에서 국경선을 동쪽으로 옮겨놓는게 좋지."
다음 날 올렉시 일행은 모처럼 휴일을 맞아서 비행장 밖에 있는 선술집에 갔다. 이제는 선술집마다 독일어로 쓰여진 가격표가 붙어 있었다. 심지어 어떤 가게 안에는 빌헬름 3세의 초상화가 붙어있었다. 자신들의 영토에 선술집에서 남의 제국 황제의 초상화를 보는 것은 썩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구태여 말을 하지는 않았다.
올렉시 일행은 선술집 밖에 나와서 [독일 군대가 유럽의 해방자다] 라고 쓰여진 선전 포스터를 발견했다. 그 포스터에는 독일군이 멋지게 그려져 있었다. 에두아르드가 말했다.
"지들만 싸우나?"
루슬란은 선전 포스터에 낙서라도 하고 싶었지만 괜시리 오해를 받을까봐 건드리지는 않았다.
"재수없는 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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