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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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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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가수스의 등에 올라타다! (1)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트라이-스텔라 픽처스를 방문하는 날이다.


“...흠.”


거울 앞에서 류지호가 정장과 캐주얼 복장을 놓고 고민했다.

정장을 차려입으면 너무 격식을 차리는 것 같다.

그렇다고 대충 입으면 예의가 아니고.

결국 세미 캐주얼 스타일로 타협을 봤다.

디테일이 거의 없는 기본 라인의 재킷에 청바지, 흰색 셔츠를 받쳐 입어 심플한 세미 캐주얼 스타일을 연출했다.

셔츠는 흰색으로 골라서 얼굴을 환하게 비춰주는 반사판 역할(?)을 하도록 의도했다.

연예인이 아니더라도 대중문화계 종사자들 가운데 멋쟁이가 많다.

오래 종사하다보면 자연스럽게 패션센스가 생기게 된다.

매일 보는 사람들이 다들 멋쟁이기 때문이다.


“소개팅 나가는 것도 아닌데 유난 떠는 건가?”


첫인상은 무척 중요하다.

게다가 류지호는 미국에서 소수인종이면서 나이까지 어렸다.

졸부처럼 보여도 안 된다.

애송이처럼 보여서는 더더욱 안 된다.

류지호는 서있는 자세며, 악수하는 폼, 미소까지 거울을 보며 확인했다.

일련의 준비가 트라이-스텔라 픽처스 첫 방문을 류지호가 얼마나 각별하게 생각하는지 보여주는 단면이다.


똑똑!


류지호가 객실 문을 열자, 경호원 태세로 돌변한 죠셉이 서있다.


“벌써 출발할 시간이야?”


죠셉이 평소의 유쾌함을 버리고, 절도 있는 자세로 대답했다.


“모두 보스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어.”

“보스?”

“응. 보스.”

“안 어울리게... 내게 오기로 결정했어?”

“그런 적 없어.”

“보스라면서?”

“수행원이 그럼 뭐라고 불러? 고객님이라고 할까?”

“참 비싸게도 구네.”

“파커가문을 떠날 생각이 전혀 없으니까, 단념해.”

“그럼 왜 LA까지 따라왔어? 다른 사람을 보내지.”

“감시자. 딴 짓 하지 못하게 하라는 엄명을 받았거든.”


류지호는 조셉과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며 객실을 나섰다.

호텔 앞에 줄지어 대기하고 있는 다섯 대의 고급승용차와 수행원들.


“죠셉, 설마 저들이 우리 일행이야?”

“맞아.”


건장한 체격의 짧은 머리 백인 남자가 중앙에 있는 검정색 벤츠 승용차의 문을 열어주었다.

대기하고 있는 변호사들과 류지호가 가볍게 목례를 나눴다.


“이건 좀 과한데...”

“절대 과하지 않아.”

“내가 제임스처럼 유명한 투자회사 CEO도 아니고...”

“그러니까 더 위세를 보여야지. 너에 대한 선입견들.... 틴에이저, 아시아계, 행운의 꼬마.”


사람들이 얕잡아 볼 수도 있다는 의미다.


“여긴 미국이잖아.”

“미국이라고 다른 줄 알아? 너의 조국보다 더 심할 걸? 그리고...”

“그리고?”

“넌 네 스스로가 어떤 위치에 있는지 자각할 필요가 있어.”

“아시아에서 온 어리고 뻔뻔한 행운의 꼬마?”

“농담을 하는 거 보니까 걱정 안 해도 되겠어. 타시죠. 보스.”


죠셉이 옆으로 비켜서며 차 안을 향해 손바닥을 펴 보였다.

류지호가 차에 올라타자, 그의 옆 좌석에 신효정이 탑승했다.

이윽고 일행을 태운 승용차 행렬이 트라이-스텔라 픽처스로 향했다.


부우웅.


다섯 대의 차량이 줄지어 LA시내를 통과했다.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를 지나갈 때는 ‘Sunset Gower Studios’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옛날 콜롬비아스 스튜디오가 여기 있었구나.....?”


류지호가 부러운 시선으로 멀어지는 스튜디오 간판을 돌아봤다.

신효정이 예의 사무적인 어조로 입을 열었다.


“부동산 기업이 인수해서 독립영화와 음악 녹음 스튜디오로 사용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시간이 오래 흘렀으니 주인이 바뀌었겠죠.”

“콜롬비아스는 워너브로스의 버뱅크 스튜디오를 72년부터 함께 사용하고 있습니다.”

“소닉은 어떻게 한 대요?”

“컬버시티로 옮길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왜요?”

“컬버시티의 MSM/UA 스튜디오를 소닉이 소유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콜롬비아스 목장(Ranch) 또한 이번에 소닉의 소유가 되었기 때문에 콜롬비아스가 컬버시티에 터를 잡게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끄덕.


류지호가 고개를 가볍게 끄덕여 신효정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트라이-스텔라 픽처스로 가는 내내 류지호의 머릿속에서는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WaW 픽처스를 설립할 때와 또 달랐다.

조금 전에 지나친 초대형 스튜디오 시설은 전 세계 모든 영화제작자들의 로망이다.

최고의 영화제작사라는 상징성.

류지호는 그것이 얼마나 쓸데없는 로망인지 잘 알고 있다.

초대형 스튜디오 시설은 60년대까지 유용했다.

그 당시까지만 해도 할리우드 메이저는 공장에서 영화를 찍어내듯 수십 편을 쏟아냈다.

그런데 80년대 후반부터 인하우스 제작편수가 이십 편 이하로 대폭 줄어들었다.

자회사나 제휴 영화사에서 만든 영화를 배급하는 것으로 전략이 바뀌었다.

빛 좋은 개살구.

지금에 와서 초대형 스튜디오 시설은 매달 고정지출만 발생시키는 애물단지나 마찬가지다.


‘그래도 가지고 싶긴 하네.’


감당만 되면 스튜디오 시설을 갖고 싶은 것이 류지호의 솔직한 심정이다.

영화업 종사자라면 누군들 안 그럴까마는.


❉ ❉ ❉


LA시내에서 10마일(16Km) 떨어진 소도시 컬버시티(Culver City).

고층빌딩이 거의 없는 작은 규모의 동네다.

전반적으로 한적하고 한가롭다.

내년부터 소닉이 MSM/UA(Metro-Samuel-Mayer/United Artists) 스튜디오로 콜롬비아스 영화사를 옮겨오고, 본격적으로 투자를 시작하면 도시도 함께 발전하게 된다.

다섯 대의 승용차가 다운타운을 지나쳐 외곽으로 계속해서 나아갔다.

저만치 ‘Tri-Stella Pictures’ 간판이 걸린 건물이 류지호의 눈에 들어왔다.

3층 높이의 옆으로 길게 옆으로 누운 건물이다.

땅덩어리가 넓어서 그런 것인지 이 지역의 땅값이 저렴해서 인지는 알 수 없지만, 건물이 지나치게 땅을 많이 차지하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문득 류지호는 궁금함이 치밀어 손가락으로 트라이-스텔라 픽처스 건물을 가리켰다.


“저 건물 트라이-스텔라 소유입니까?”

“아닙니다. 임대입니다.”


그럴 거라 예상했다.


“텔레벤처스의 공동 대표인 스테판 커널이 밴쿠버에 TV스튜디오를 짓고 싶어 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 부분에 대한 조정도 이루어져야 할 것 같습니다.”

“아, 그래요?”


할리우드 비즈니스는 정말 복잡했다.

중급 규모의 영화사가 뭐 그리 합작 사업이며, 벌여놓은 것들이 많은지.


끼익.


류지호 일행을 태운 차량들이 트라이-스텔라 픽처스 현관 앞에 도착했다.

샘 리버먼 대표대행이 현관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류지호를 영접했다.

지난번에 봤을 때보다 그의 표정이 확실히 밝고 부드러웠다.

류지호는 미소를 지으며 샘 리버먼에게 물었다.


“좋은 소식이 있는 모양이네요?”

“호텔에서 지시한 사안에 진전이 있었습니다.”

"자세한 건 사무실에서 듣도록 하죠. 일단 영화사를 구경하고 싶습니다.“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샘 리버먼의 안내로 류지호가 영화사를 돌아봤다.

류지호는 내심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할리우드 중소영화사라고 해서 한국 기준으로 생각했다.

명백히 잘못된 생각이었다.

숫자로 보던 것과 실제 눈으로 확인한 회사의 규모는 하늘과 땅차이였으니까.


“여기가 진짜 트라이-스텔라 픽처스가 맞아요?”

“맞습니다. 창립 이후 한 번도 옮긴 적이 없습니다.”

“중소영화사라면서요?”

“이게 중소영화사 수준입니다. 생각보다 볼품없어 실망하셨습니까?”

“아, 아닙니다.”


중급영화사가 이 정도라면 도대체 메이저 스튜디오는 어떻다는 건지.

류지호로서는 감도 오지 않았다.

트라이-스텔라 픽처스는 대기업이었다.

건물이 크고, 사무실이 넓어서 그런 게 아니다.

정확하게 업무가 분리되어있는 수십 개의 부서들.

쉴 새 없이 울리는 전화벨, 타이핑 소리, 잠시도 쉬지 않고 종이를 토해내는 팩스.

잠깐 지나쳐가는 것만으로 부서의 숫자는 정확하게 세지 못했다.

기획/마케팅, 재무, 법무, 운영, 제작, 배급, 개발, 인터내셔널, TV시리즈, 홈비디오 등등.

적어도 열 개는 넘었다.

건물 안에 50석 규모의 자체 시사실까지 마련되어 있다.

제작팀만 5팀이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에 류지호의 놀람은 부러움으로 바뀌었다.

프로덕션 중인 영화도 있고, 포스트 프로덕션을 마무리하고 있는 팀도 있다.

그 외에 한 층의 1/3을 차지하고 있는 개인 오피스 룸도 있다.

샘 리버먼의 설명에 의하면 프리랜서 프로듀서나 감독, 작가들의 프리 프로덕션 공간이다.

이름값이 있는 이들은 따로 호텔을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텔레벤처스라는 TV시리즈 배급사를 뺀 상태에서, 이곳에 상주하는 정직원만 백여 명에 가깝다고 했다.

인턴까지 포함하면 무려 150명이다.

중급영화사인 주제에 규모가 그렇다.


‘저들의 월급만 해도 얼마지?’


비록 건물도 낡고, 비품도 낡았으며, 인테리어도 오래된 느낌이 물씬 풍겼지만, 영화사의 규모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컸다.

아니다.

막연하게 가지고 있던 할리우드 영화산업에 대한 생각을 송두리째 재정립해야 할 정도의 규모다.


‘......!’


류지호는 남몰래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등이 축축해지는 것 같기고 했다.


‘내가 쉽게 봤구나. 3,500만이란 숫자와 48억 달러라는 숫자 차이에 매몰되어 이곳이 빅 식스를 제외하고, 할리우드에서 상위레벨의 영화사라는 걸 망각했었어.’


지나치게 자신만만했음을 반성했다.

류지호가 경험한 가장 큰 영화투자배급 회사는 BS 엔터테인먼트였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강은석 감독의 ‘무비서비스’나 차영재 대표의 ‘더 갤럭시’의 규모는 이곳에 비하면 소꿉장난처럼 보였다.


“외근 나가있는 직원들도 많아서 현재 상주하고 직원이 좀 적어보일 겁니다. TV사업부 역시 이곳 정도 규모라고 보시면 됩니다.”

“내가 소유한 한국의 사업체 직원이 몇 명인 줄 아세요?”


류지호가 태연한 척 묻자, 샘 리버먼이 양손을 펼쳐 보이며 어깨를 으쓱했다.


“백 명입니다.”


허세다.

실제 정직원은 서른 명이 조금 안 된다.

그런데 매주 웨딩촬영을 위해 들락날락하는 일당제 기사들, 인턴, 근로장학생을 포함하면 그간 거쳐 간 총인원이 얼추 백여 명은 족히 되긴 했다.

샘 리버먼의 눈이 서서히 커다래졌다

놀란 눈으로 쳐다보는 샘 리버먼을 보며 류지호가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서울에 있는 제 회사의 빌딩도 4층이니 이곳보다 1층이 더 높네요.”

“장난을 치는 거라면 충분히 재미있었습니다.”

“장난 아닙니다만?”


류지호가 장난스런 미소를 지으며 신효정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한쪽 눈을 찡긋했다.


“류 대표가 말한 내용은 사실입니다.”


‘단지 과장이 섞여있어서 그렇지. 그것도 많이.’


속으로만 생각하는 신효정이다.

류지호는 주요 임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각 부서를 돌아다니며 일일이 인사를 나눴다.


‘마음 단단히 먹어야겠는걸.’


임원들은 최소 십년 이상 할리우드 영화판에서 일을 해온 사람들이다.

그런 이들과 토론하고 설득하고 때론 리드하는 일이 쉬울 리 없다.

벌써부터 몇몇 임원들의 시선이 곱지 않다.


‘과연 이 젊다 못해 어린 친구에게 영화사가 넘어간 것이 잘한 선택이었는지....’

'영화가 흥행을 못하면 그 충격을 오너가 어떻게 감당할지.‘

‘흥행산업이라는 것이 일희일비하다보면 꾸준히 해나가지 못하는 법인데.’


실제로 오너를 만나게 되면서 걱정이 드는 임원들이다.


류지호와 주요 임원들이 회의실에 모였다.


"5년간 콜롬비아스와 협력관계를 유지한다고 해서 모든 것이 해결된 것이 아닙니다. 현상유지만으로 트라이-스텔라의 미래는 없습니다. 근본적인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가장 시급한 것부터 말씀해 보세요. 경청하겠습니다.“


가장 먼저 법무를 총괄하는 댈런 맥컬리 이사가 입을 열었다.


"퇴사한 사람들이 일시적으로 다수 발생하면서 보안이 취약해졌습니다. 미계약 상태에 있는 작가와 감독들이 동요하고 있습니다. 그들과의 계약부분을 우선적으로 명확히 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대주주인 G&P... 가람 인베스트와 법무팀의 업무상 조율도 필요합니다.“

“알겠습니다. 계약할 작가와 감독 그들의 프로젝트를 정리해서 주세요. 검토해 보겠습니다. 그리고 사전에 말한 것처럼 G&P나 가람 인베스트는 트라이-스텔라의 경영에 관여하지 않습니다. 맥컬리씨는 지금까지 해 온 대로 하시면 됩니다.”


재무이사 리오넬 시몬스가 입을 뗐다.


“투자금은 언제 집행되는 것입니까?”

“그전에 명확하게 해두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G&P와 내가 밀접한 관계인 것은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그건 나의 사적인 영역입니다. 가람 인베스트먼트의 역량으로도 충분히 트라이-스텔라에 투자할 수 있으니 불안해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리오넬 시몬스는 반신반의 하는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류지호는 더 이상의 설명을 하지 않았다.

더 말해봤자 저들을 이해시킬 수도 없을 뿐더러,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모든 안건을 다 다뤄야 할 것 같습니다. 일단 가장 시급한 것부터 해결합시다.”


에헴!


샘 러버먼이 헛기침을 하며 모두의 주목을 자신에게 유도했다.


"가장 먼저 경영불안정성을 완전히 제거해야 한다고 봅니다. 운영자금이 들어오면 숨통이 트일 것이 분명하지만, 협력관계에 있는 관계자들까지 그럴 거라 보기 힘든 것도 사실입니다. 당분간 내실 경영 기조를 유지할 겁니다. 회사가 외적으로 크게 도드라진 모습을 보여주지 못할 것으로 봅니다. 단 한 가지만 보완하면 됩니다. 트라이-스텔라에 불안감을 가질 요소 하나를 꼽으라면 주저 없이 오너와 주요 경영진이 모두 젊다는 것을 꼽겠습니다. 외부에서 베테랑 경영인을 영입해야 된다고 봅니다.“

“좋은 의견입니다. 나는 이미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겠다는 의사를 명확히 했습니다. 단 매 년 라인업 구성에서 5편만 보장해 주면 됩니다.”


임원들 모두 왠지 영 떨떠름한 표정을 짓고 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내가 행사할 영화 선택권에만 올인 하는 일 없습니다. 다른 트라이-스텔라의 영화들에게도 공평하고 합리적인 투자를 할 것이라 약속합니다.”


샘 리버먼은 오너 말이 단순한 호언장담이 아니라는 느낌을 받았다.

오너를 처음 만나고 온 날부터 뉴욕의 지인들을 통해 정보를 모았다.

G&P에서 흘러나온 이야기들을 종합해 보면 오너가 꽤나 신중한 성격이다.

그러면서 영민하기까지 한 것 같다.

월가에서 큰 화제였던 G&P의 부자펀드 아이디어가 그에게서 나왔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은 파커와 그레이엄의 두 주인들이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청년이란 사실이다.

공식적으로 후원자임을 공인하지 않고 있지만, 두 가문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것만큼은 확실해 보였다.

류지호는 자신에게 묘한 시선을 던지고 있는 샘 리버먼을 재촉했다.


“리버먼씨, 계속해서 말씀 해보세요.”

“성품은 강직해 어디에서나 소신껏 우리를 대표해 발언할 수 있는 인사, 외풍을 차단할 수 있는 강한 영향력을 갖춘 인사를 모여와야 합니다. 그런 인물을 대표이사직에 앉히는 것이 최우선적으로 진행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 합니다."

"듣고 보니 가장 우선해야 할 일이군요. 그런 인사로는 누가 좋겠습니까?"

"그 문제는 신중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다음 회의에서 한 사람씩 천거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좋습니다."


사실 이사회 의장이자, 실질적인 오너 류지호가 정해도 된다.

CEO 인사는 이사회의 권한이니까.

그럼에도 류지호는 회사 임원들과 논의를 하는 자세를 취했다.

자신 앞에 놓인 물 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신 류지호가 입을 열었다.


“나는 나이가 어리다고 부끄러워하거나 주눅 들지 않습니다. 다만 능력이 모자란 게 부끄럽습니다. 여러분들도 마찬가집니다. 퇴사하지 않고 남아있는 분들은 거의 30대 후반입니다. 연륜을 들먹이기 전에 각자 능력을 재점검 해보십시오. 여러분은 지금껏 도전다운 도전을 시작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함께 앞만 보고 나아갑시다. 뒷걸음질 치다보면 결국 한순간에 후퇴하게 됩니다. 우리에게 후퇴는 없습니다. 이전처럼 버티겠다는 생각은 버립시다. 내년 이 맘 때 여러분의 계좌에 200%의 보너스가 입금되기 기대하겠습니다.”


류지호에게서 묘한 기백을 느껴졌다.


"대답을 안 하는 걸 보니, 보너스는 사양하는 걸로 알면 됩니까?"

"아, 아닙니다."


샘 리버먼이 대표로 대답했다.


“다음에 만날 때는 각자 대표이사 후보를 추천해주시고, 긴급히 처리해야 하지만 현재의 회사 상태로는 해결이 안 되는 사안만 따로 가져오시기 바랍니다. 이상입니다.”


임원들의 배웅을 받으며 류지호가 건물을 빠져나왔다.

승용차에 오르기 전에 류지호는 잠시 건물을 돌아봤다.

건물 꼭대기에 걸려있는 낡은 ‘Tri-Stella Pictures’ 간판이 류지호에게 중압감을 선사했다.


‘저 사람들 먹여 살리려면 적당히 하면 안 되겠구나.'


오늘 영화사에 와보고 나서야 자신이 살아가야 할 판이 완전히 바뀌었음을 실감했다.


'이런 사이즈가 되어야 미래지식을 이용해 먹을 수 있겠지.’


하하하.


왠지 웃음이 나왔다.

자신으로 인해 바뀔지도 모르는 트라이-스텔라 픽처스가 과연 어떤 결과를 보여줄지.

걱정이 되는 한편으로 기대감도 들었다.


“호텔로 돌아갑시다.”


돈도 권력도, 물론 좋다.

다만 영화감독으로서의 명예와 자부심은 결코 포기할 수 없다.

영화감독의 삶은 류지호에게 선택이 아니다.

반드시 풀어야 할 한(恨)이다.


❉ ❉ ❉


금력은 우연히 한순간에 얻을 수 있다.

로또복권, 주식 대박, 라스베이거스 슬롯머신 대박 등등.

유명인사가 되는 것도 어느 날 갑자기 될 수 있다.

스타가 된다던가, 선행이 알려지거나, 극악한 범죄자가 되거나.

한순간에 얻을 수 없는 것들도 많다.

대표적인 것이 진정한 친구일 것이다.

등을 맡길 든든한 동료를 얻는 것은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또한 정치력이나 권력을 얻기 위해서도 긴 시간이 필요하다.

좋은 파트너를 얻는 것도 시간이 필요하다.

서로 간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주고받을 수 있는 게 무엇인지 확인할 시간이 필요하다.

류지호가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트라이-스텔라 픽처스를 얻는 것이 끝이 아니기 때문이다.

새로운 인재들이 필요했다.


‘당장 최고경영자가 없지. 임원진을 견제할 내 사람도 없고 말이야.’


류지호와 임원들이 다시 회의실에 모였다.

임원들이 대표이사 후보로 각자 한 사람씩을 천거했다.

거론된 인사는 다음과 같았다.

모리스 믹 메다보이(Morris Mick Metavoy).

알버트 마샬(Albert Marshall).

어윙 윈클러(Irwing Winkler).

샘 리버먼은 메이저 스튜디오 유니벌스 출신이자 오라이언 픽처스 공동 설립자 메타보이를, 운영이사 로이 톰슨은 같은 영국 출신의 마샬을, 재무이사 시몬스는 ‘미다스의 손’이라고 불렸던 흥행의 귀재 윈클러를 추천했다.

주요 임원들은 이 세 사람을 놓고 난상토론을 벌였다.

토론은 상당히 치열했다.

보다 못해 류지호가 나섰다.


“윈클러씨는 나이가 너무 많습니다. 나는 젊고 역동적인 영화사를 원합니다.”


윈클러는 마르틴 스코체제 감독의 영화 다수를 제작한 할리우드의 전설적인 프로듀서겸 감독이다.

올해 <좋은 친구들>과 <록키5>를 프로듀싱한 바 있다.

다만 어윙 윈클러가 60대 중후반으로 세 명 중에 나이가 가장 많았다.


“그렇다면 영국 출신의 알버트 마샬은 어떻습니까? 그는 40대로 젊고 유능합니다. 때마침 그가 LA에 정착하기로 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현재 우리와 <야곱의 사다리>를 공동제작하고 있기도 합니다.”


알버트 마샬 역시 만만치 않은 이력을 가진 프로듀서다.

영국 출신 앨런 파커 감독의 <페임>, <더 월>, <버디>, <엔젤 하트>등을 프로듀싱했다.

그 동안 영국과 미국을 오가며 작업을 하다가 올해부터 미국에 완전 정착하기로 했다.

마지막으로 샘 리버먼이 강력하게 영입을 주장한 모리스 메타보이 또한 명불허전의 영화 제작자다.

유니벌스 스튜디오에서 영화를 시작한 이후 유나이트 아티스츠(UA)의 부사장을 역임하다가, UA 출신의 동료 네 명과 함께 1978년 오라이언 픽처스를 설립해 지금까지 왕성한 활동을 해오고 있다.

할리우드 거물들과 두루 친분이 두텁다는 강점이 있다.


“현재 메타보이씨는 오라이언의 공동창업자들과 갈등이 있는 것 같습니다.”


류지호가 질문을 던졌다.


“그 말은 오라이언과 결별할 수도 있다는 겁니까?”

“오라이언이 콜롬비아스에 일부 지분을 양도하는 것으로 제휴를 맺으려고 하는 모양입니다. 메타보이씨는 이를 탐탁지 않아 하고 있고요. 게다가 그가 제작총괄을 하고 있는 영화 두 편에 대해 내부에서 과도한 투자라는 이유를 들어 포기압박을 하고 있답니다.”

“영화 두 편?”

“예.”

“워킹 타이틀(가제)이 뭔지 압니까?”

“비밀도 아닙니다. 토머스 해리스가 작년에 출판한 <양들의 침묵>을 영화화 하는 프로젝트와 슈발츠네거를 기용해 다시 한 번 <터미네이터>를 제작하는 겁니다. 두 편 모두 프랜차이즈 시리즈로 만들고 싶어 하는 것 같습니다.”


탕!


류지호가 테이블을 두 손바닥으로 세게 치며 벌떡 일어섰다.


“당장 그 분을 모셔오세요!”


임원들은 류지호를 멀뚱히 바라보기만 했다.


“만약 메타보이씨를 모셔오면, 그 두 편도 함께 가지고 올 수 있습니까?”

“글쎄요.....”

“두 편, 각각 감독이 누굽니까?”

“<양들의 침묵>은 뉴욕파 감독이라고 하는데 잘 알려지지 않은 감독입니다. 새로운 <터미네이터>는 <어비스> 작업을 마친 제이미 캐머론이 다시 한 번 감독을 맡을 예정이랍니다.”

“예스!”


미래를 알고 있어서 이득을 보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다.

저들에게는 불확실성이 농후한 영화들이다.

반면에 류지호에게는 아니다.

두 영화는 10년, 20년이 지나고 봐도 실망스럽지 않은 영화다.

아직은 캐머런의 야망이 할리우드에서 다소 과소평가되고 있는 상황.


“메타보이씨가 두 편을 트라이-스텔라로 가지고 올 수 있다면 당장 대표이사에 앉히겠습니다. 연봉은 무조건 오라이언보다 더 준다고 하세요. 필요하다면 두 영화에 흥행수익 일부도 나눠 줄 수 있다고 하시고요.”


류지호의 마음 같아서는 당장 그의 멱살을 잡아 트라이-스텔라 픽처스로 끌고 오고 싶은 심정이다.

로이 톰슨이 손을 들었다.


“저기....”

“톰슨씨 말씀하세요.”

“알버트 마샬도 스탈론과 함께하는 대형 프로젝트를 하나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스탈론과? 프로젝트가 뭐라고 하던가요?”

“산악구조대원 이야기라고 얼핏 들은 것 같습니다.”

“.....<클리프 행어>?”


의자에 엉덩이를 걸치려던 류지호가 다시 한 번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로이 톰슨에게 강렬한 눈빛을 보내며 물었다.


“레너드 할린 감독입니까?”

“맞습니다. <다이하드> 2편을 연출한 바로 그 레너드 할린입니다.”


류지호는 황당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거론 되는 인물들 면면이 죄다 대단한 인물들뿐이었으니까.

류지호가 가장 가까이에 자리하고 있는 샘 리버먼에게 물었다.


“할리우드가 원래 이렇습니까?”

“뭐가 말입니까?”

“아닙니다. 일단 두 사람 모두 접촉해 보세요.”


샘 리버먼이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차원에서 물었다.


“두 사람 모두 말입니까?”

“가능하면 두 사람 중 한 분이 꼭 트라이-스텔라를 맡아줬으면 좋겠습니다.”


그러자 즉각적으로 조언을 빙자한 반발이 튀어나왔다.


“충동적으로 결정해도 됩니까?”

“면밀히 따져 볼 건 따져 보아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성급하게 결론 내릴 건 아니라고 봅니다.”


류지호는 임원들이 중구난방으로 떠드는 걸 가만히 지켜보다가 입을 열었다.


“대표이사를 선임하는 것은 이사회의 당연한 권리입니다만.”

“......”

“비록 가람 인베스트먼트의 대주주가 G&P라고 하지만, 나는 그들의 의결권까지 모두 위임받은 최종의사결정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노파심은 충분히 이해합니다만 권한 이상으로 이사회에 저항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예상 외로 류지호가 강하게 나가자, 임원들이 한 발 물러섰다.

다소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토론이 좀 더 진행됐다.

결국 샘 리버먼이 강력하게 추천한 모리스 메타보이를 첫 교섭 대상자로 정했다.


"교섭은 추천 당사자인 리버먼씨가 진행하세요. 다들 동의하십니까?"

"동의합니다."


샘 리버번이 의욕적으로 나서서 모리스 메타보이에게 영입을 제안했다.

첫 접촉은 별다른 성과 없이 헤어졌다.

두 번째도 마찬가지.

영입 교섭은 쉽지 않았다.

샘 리버먼이 백지 위임장을 들고 찾아가 최고의 연봉을 제시해도 모리스 메타보이는 고사만 했다.

샘 리버먼이 모리스 메타보이 영입을 위해 갖은 애를 쓸 때.

류지호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추수감사절을 보내기 위해 뉴욕행 비행기에 탑승했다.


작가의말

편안하고 행복한 주말 보내십시오. 월요일에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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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가수스의 등에 올라타다! (1) +6 22.03.12 7,891 183 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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