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적 군도 (7)
아드리아 영지에서 해안선을 따라 쭉 남쪽으로 가면 라마르 왕국의 많은 영지들을 지나 오슬릿 왕국이 나온다.
아예 해군을 포기하고 바다를 버린 라마르 왕국의 해안 다른 영지들도 아드리아 영지의 상황과 다를 바가 없었다.
곳곳에 불타서 재만 남은 어촌 마을과, 제 기능을 완전히 상실한 항구들이 보였다.
그러다 오슬릿왕국의 국경을 넘어선 순간부터 해안 마을들이 보였고 바다에선 해적들의 움직임을 감시하는 오슬릿의 해군 함선들이 순찰을 돌고 있었다.
"여기는 노략질하기 쉽지 않았나봐?"
"하하 아무래도 그렇지. 기를 쓰고 해군을 육성하고 자국의 최정예 기사도 투입했으니 말이야."
"라마르 왕국은 뭐하는 지 모르겠군"
"발렘왕국과 갈등이 깊은 라마르니까 양쪽을 다 방어 하기 쉽지 않겠지"
"덕분에 네 부하들이 신이 나게 털어갔고?"
"하하하 이거 영주님이 화가 많이 나셨군. 앞으로 잘 단속하지"
로빈의 비행 마법으로 함께 하늘을 날아가는 둘은 마치 친구처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워낙 많은 마력을 가진 로빈이었기에 비행 마법의 속력을 상당히 빠르게 조절할 수 있었고 둘은 마치 하늘을 날아가는 드래곤처럼 빠르게 이동하며 오슬릿의 해안선을 거슬러 내려갔다.
"저기다"
빠르게 바뀌는 주변의 환경을 바라보던 카시드는 만의 모양으로 들어간 해안선에 잘 정비된 오슬릿의 항구 트루히요를 보며 말했다.
"제법 발달 했는데?"
"해군을 길러 항로를 잘 방어하고 있으니까.... 덕분에 남부 교역로 출발 점이자 동대륙으로 향하는 거점으로 활용되고 있지"
"해적들과 많이 싸웠겠는데?"
"그렇지. 아무리 경계를 삼엄하게 한다고 해도 드넓은 대양을 모두 방어할 순 없어. 대륙간 교역을 위해 먼바다로 나서는 선단을 위주로 우리에게 많이 털렸지. 하지만 최근에는 저들의 해군력이 더 강화되어 쉽지 않다고 하더군"
"네가 직접 나서지는 않았나 보지?"
"개인적인 과제가 있어서 말이지. 근 10년 간 군도의 일에는 별로 나서지 않았다"
대화를 나누다 보니 항구 바로 앞까지 도달했다.
항구에는 많은 상선과 함께 군함으로 보이는 선박들도 다수 정박해 있었고, 방금 출항 준비를 마친 배들이 돛을 내리고 유유히 움직이고 있기도 했다.
전형적인 서대륙의 범선외에 동대륙의 정크선도 드문드문 보였는데 정크선에서 상당히 많은 인부들이 물건을 하역 하고 있었다.
동대륙의 상품은 서대륙에서 매우 비싸게 팔렸고 특히 라마르에서는 부르는 게 값이었다. 그런 상품이 항구에 잔뜩 쌓여 있었고 오슬릿의 상인들과 동대륙의 상인들이 활발히 교류하고 있었다.
라마르왕국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광경이었는데, 전생을 통해 상업의 중요성을 알고 있는 로빈은 이대로 시간을 보냈다면 라마르왕국을 집어삼키는 것은 발렘이 아니라 오슬릿 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항구에는 거대한 교역소가 세워져 많은 물품들이 거래되고 있었고 교역소로 끊임없이 마차가 들어오며 오슬릿의 상품들을 채워 넣고 있었다.
어찌나 마차가 많이 들어오는지 마차들이 대기할 수 있는 전용 공간이 있었는데 마치 현대 지구의 주차장 같은 모습이었다.
"왜 오슬릿이 해적 군도를 노리는 지 알겠군"
번화한 트루히요항을 보며 카시드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왜?"
"이미 자신들의 힘이 팽창할 만큼 팽창했기에 외부로 분출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저 거대한 항구와 쌓여 있는 교역품들을 봐라. 저게 모두 돈이야. 돈이 쌓이면 힘이 생기고 힘이 생기면 쓰고 싶기 마련이지"
카시드의 말에 로빈은 고개를 끄덕였다.
전생이나 현생이나 인간이 사는 곳은 어디나 다 똑같다 싶었다. 국력이 강해지면 표출하고 싶어지는 것이 당연하고 그 결과 주변과 충돌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럼 우리가 적절한 때에 잘 왔군"
"그렇지"
"꽃이 피기 전에 꺾어 버리자고"
"좋다"
로빈은 카시드를 항구에 내려 주는 것과 동시에, 수백 아니 수천개의 화염구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 * *
"생각보다 카시드가 강했습니다. 바스케츠는 제대로 저항도 못해보고 당했다고 합니다"
"그럼 지금 완전히 상황이 종료된 것이냐?"
"예 사령관님."
군도에 잠입해서 정보를 수집하던 오슬릿왕국 붉은 장미 기사단장 조르지오 베티스가 트루히요 공관 가장 높은 방에서 보고를 하고 있었다.
보고를 받는 자는 오슬릿 해군 총사령관인 호이킨이었다.
그가 바로 카시드가 경계하는 두 명의 기사 중 하나였는데 오슬릿의 해양 진출을 책임지고 통솔하는 자였다.
"내란이 크게 일어나서 전력이 줄기를 바랬는데 많이 아쉽군"
소파에 비스듬히 기대 앉아 베티스의 보고를 호이킨과 함께 듣고 있던 디에고가 말했다. 그는 카시드가 말했던 오슬릿의 마법사였다.
"그래도 우리 계획은 그대로 진행한다"
"그런데 말씀 드릴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오슬릿의 계획은 간단했다.
뛰어난 무력의 카시드를 호이킨과 디에고의 협공으로 빠르게 잡아내고 구심점을 잃은 해적들을 일망타진 하는 것이었다.
"뭔가?"
"정찰 도중 쿠샨 제국의 마법사를 만났습니다"
"쿠샨!!"
쿠샨 제국의 이름이 나오자 호이킨은 잔뜩 긴장했다.
오슬릿의 해군이 최근들어 많이 강해지긴 했어도 쿠샨의 해군에 비하면 어른과 어린아이의 수준 차이가 있었다.
"쿠샨이 군도를 노리는 건가?"
"일단 그 마법사의 말로는 카시드의 신변 확보만을 생각 한다고 하긴 했습니다만..."
만약 쿠샨이 서대륙 남부까지 진출한다면 해적 군도는 분명 매력적인 거점이었고 어쩌면 자신들이 내전을 기다리고 있던 것처럼 쿠샨이 군도와 오슬릿의 싸움을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었다.
"마법을 쓰는 것을 직접 보았나?"
"예"
쿠샨의 마법사라는 말에 디에고의 눈이 반짝였다.
"어떤 마법을 어떻게 사용했지?"
"제가 그에게 검을 휘둘렀고 그가 방어 마법을 사용했습니다"
"주문은?"
"아무런 말도 없었습니다. 주문을 외우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시동어도 말하지 않았다는 말이냐?"
"그렇습니다."
"방어 마법에 부딪혀 본 느낌은 어떠했느냐?"
"다시 시도해도 뚫을 수 없다고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가 절 대하는 여유로운 태도에서 느껴지건데 매우 경험이 많은 마법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으음....."
베티스의 설명을 들은 디에고의 표정이 굳어졌다.
설명만 들었을 때, 제국 마법사의 능력은 아무리 낮게 쳐도 자신과 동수였고 자신보다 뛰어날 확률이 훨씬 높았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는 이미 제 이름과 소속을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의 의도도 다 파악하고 있겠군"
"그럴 가능성이 높습니다"
"정말로 카시드의 신변만 건네 받는 것으로 만족 하는 지가 관건인데... 우리가 제국쪽에 따로 정보망이 없으니.."
오슬릿왕국의 정보망은 대륙 남부에 집중되어 있었고, 대양을 건너거나 대륙 중부의 사막을 지나야 하는 제국까지 정보망을 만들어 둘 정도의 국력은 아니었다.
"전하께 다시 보고 드립시다. 사령관"
디에고가 신중한 어조로 말했다.
만약 제국이 기회를 노리고 있는 것이라면 지금 군도에 쳐들어가서는 안되었다.
"그래야겠군... 하... 생각지도 못한 제국이라니.... 일단 자네는 다시 군도로 잠입하도록"
"예 사령관님"
"이만 각자의 위치로 가서....."
-콰아아아앙!! 콰쾅!
"무슨 소리냐!"
회의를 하던 셋은 갑작스레 들려온 굉음에 창문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충격적인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저....저게 다 무엇이냐!"
"설마... 마법인가...?"
트루히요 항구 위에 수천개의 화염구가 생성되어 있었고 그 화염구는 생성 되자마자 항구 곳곳에 날아가며 모든 것을 파괴하고 있었다.
-콰앙! 콰아앙! 콰아앙! 쾅! 콰앙!
-화르르륵
제대로 셀 수조차 없이 많은 화염구가 하늘에서 비처럼 쏟아지는 광경은 트루히요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태어나서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사람들은 어찌할 줄 몰라 이리저리 뛰어 다니며 도망쳤고, 정박한 배들은 불탔으며 항구에 쌓여있는 수많은 상품들도 모두 한 줌의 재로 돌아가고 있었다.
"저기 하늘에!"
실력 만큼이나 뛰어난 시력을 가진 호이킨이 가장 먼저 하늘에 떠 있는 로빈을 발견했다.
"마법사!"
호이킨이 가르킨 곳을 바라본 디에고가 외쳤다.
"설마.... 저 마법사 한 명이 이 모든 화염구를 소환했다는 말인가...?"
디에고의 얼굴에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 번졌다.
그러나 아무리 주변을 둘러봐도 다른 마법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앗! 제가 말씀드린 그자입니다. 제국의 마법사!"
"뭐라고!?"
호이킨의 발견으로 로빈의 위치를 찾은 베티스가 그를 본 순간 모두에게 말했다. 지금 하늘에 떠 있는 것은 분명 군도의 비밀 가옥 지붕에서 만난 그 제국 마법사가 맞았다.
"제국의 마법사건 어쨌건 지금은 우리 적이다! 디에고! 어서 가자!"
셋이 짧은 대화를 나누는 그 시간에도 하늘에서는 수백개의 화염구가 추가로 떨어져 항구를 불태우고 있었다.
-쨍그랑!
호이킨은 자신의 검을 챙긴 뒤, 망설임 없이 창문을 깨고 뛰어 내렸다.
그리고 온몸에 마력을 순환 시켜 속도를 올렸고 로빈이 떠있는 지점에 최대한 가까이 가서 뛰어올라 그를 공격할 생각이었다.
-콰앙! 콰앙! 콰앙!
호이킨이 공관에서 해변가까지 가는 동안 계속 화염구가 땅에 내리 꽂혔고 호이킨은 날렵한 움직임으로 불타는 곳을 피해 가며 로빈이 떠 있는 지점 근처까지 순식간에 다다랐다.
".........!!"
그 때, 무시할 수 없는 빠르기와 힘이 담긴 곡도가 호이킨에게 날아들었다.
-카아앙!
호이킨은 곡도를 방어하기 위해 로빈으로 향하던 것을 멈추고 자신의 검을 들었다.
그 결과 무지막지한 충돌음과 함께 상대방의 공격을 겨우 막을 수 있었다.
"당신이 호이킨이로군 그렇지?"
"네....네놈은.. 카시드.."
호이킨과 카시드는 서로 초면이었지만 이미 양측에 잠입 시킨 첩보들을 통해 서로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었다.
외형적으로 누가 봐도 알아 볼 수 밖에 없는 거구의 카시드도 그랬고, 일반 기사들과 달리 빛나는 은색 갑옷을 입고 있는 호이킨도 특별하긴 마찬가지였다.
"여기가 어디라고 기어들어 왔느냐?"
"하하 기어들어오다니 난 날아왔는데 말이야"
카시드는 여유롭게 웃으며 손가락으로 로빈을 가리키며 말했다.
"날아오니 금방이더군. 나도 마법사나 할 걸 그랬어"
"흥! 무식한 해적 놈이 글은 읽을 줄 아느냐?"
"아주 사람을 바보로 보고 있네"
-콰앙! 콰앙!쾅!쾅!
카시드와 호이킨이 대화를 하는 동안에도 로빈은 쉬지 않고 화염구를 날렸다. 덕분에 트루히요 항구의 모든 곳에 불길이 치솟았고 곳곳에서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이이익! 비켜라!"
-카앙!
호이킨은 검에 오러를 불어 넣었다.
그의 검은 은빛으로 빛나며 매우 빠른 속도로 카시드의 머리를 노리고 날아갔는데 카시드 역시 붉은 색 오러가 넘실거리는 곡도르 그의 공격을 방어했다.
"마음이 급하지? 하지만 저 마법사를 멈추게 하려면 날 쓰러트려야 할 것이야"
"순식간에 죽여주마! 하압!"
카시드의 말처럼 호이킨은 마음이 급했다.
어서 빨리 로빈을 제압해 트루히요를 모두 불태워 버리지 못하게 막아야 했다.
-캉! 캉캉!
하지만 카시드의 방어는 견고했다.
호이킨의 움직임도 대단했지만 카시드는 크게 어렵지 않게 모두 방어해 내고 있었다.
"흐아아아아아!"
그러자 화가 머리 끝까지 오른 호이킨이 전력을 다해 카시드에게 검을 휘둘렀다.
은빛의 오러가 정신없이 휘몰아 치며 카시드를 공략했다.
"하하하! 이거 기분 죽이는 군!"
호이킨의 속도에 맞춰 카시드도 속도를 올렸다.
카시드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는데 그는 지금 이 순간이 너무나 좋았다.
'이런 대결이 얼마 만인가!'
긴장감으로 인해 손발이 찌릿하고 온몸에 아드레날린이 솟구쳤다.
군도에는 자신의 적수가 없었기에 그는 언제나 홀로 수련 해 왔었다. 항상 강함을 추구하고 전투를 사랑하는 그에게 이런 대결은 그를 미치게 하는 이벤트였다.
"오오... 제대로 붙었군"
둘의 대결이 시작되자 하늘에 있던 로빈도 시선을 빼았겼다.
이름 : 오르진 호이킨
직업 : 오슬릿왕국 해군 총사령관
능력 : S급 기사
전투 : 3012
충성도 : -41 (미등용)
잠재력 : 뛰어남
로빈은 호이킨에게 군주의눈을 시전했다.
역시 S급 기사인 호이킨의 전투력도 대단했다. 로빈은 화염구를 계속 던지면서 둘의 대결에 시선을 두고 있었다.
-카앙!
둘의 대결 구경에 정신이 팔린 순간, 로빈에게 얼음 화살이 날아왔다.
얼음 화살은 자동 시전 된 풍벽 하나를 뚫어내고 들어왔지만 로빈이 추가로 보강한 에어쉴드안의 매직쉴드에 막혀 소멸했다.
"오호... 저 놈인가?"
시선으로 얼음 화살이 날아 온 방향을 따라 가보니 검은색 로브를 입은 한 사내가 지팡이를 들고 손을 흔들며 중얼거리고 있었다.
몇 초 지나지 않아 주문이 완성되었는지 그의 주변에 5개의 얼음 화살이 추가로 생겨났다.
이름 : 바슬리스 디에고
직업 : 오슬릿왕국 수석 마법사
능력 : A급 마법사
전투 : 1212
마력 : 1132
충성도 : -54 (미등용)
잠재력 : 뛰어남
로빈은 곧바로 군주의눈으로 그를 확인했다.
"오호 저놈이구나!"
처음으로 마법사 다운 마법사를 상대로 만난 로빈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과연 A급 마법사가 어느 정도 강할지 기대가 되었다.
'저 놈을 통해 내가 어느 정도 강한지 유추할 수 있겠지'
군주의눈은 스스로에게 사용할 수 없기에 로빈은 자신의 수준은 어느 정도 인지 알지 못했다. 그래서 디에고를 상대로 간접 비교를 해볼 생각이었다.
-팡! 팡팡!팡!팡!
가장 먼저 디에고가 날린 얼음 화살 5개를 화염구로 정확히 맞춰 소멸 시키는 것으로 시작했다.
"자 더 해봐라! 네 모든 능력을 쏟아내 봐!"
신이 난 로빈이 소리쳤다. 거리 때문에 그의 목소리가 제대로 들리지 않았지만 디에고는 갑작스럽게 소름이 쫙 돋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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