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자들 (2)
"마법사가 확실하다?"
"그렇습니다. 우리 정보원이 비행 마법을 직접 목격했고, 아드리아 영지민들은 수시로 목격한다고 합니다"
아드리아 왕국의 남부
수도 데이라를 제외하면 가장 큰 도시인 프멘틴은 존 로쉬의 영지 조지아의 주도였다.
프멘틴의 본성 응접실에서 로쉬 공작은 가신의 보고를 받고 있었는데 2왕자 제스터가 받았던 것처럼 아드리아와 로빈에 대한 보고였다.
"수준이 어느 정도 되나?"
"아직 정확히 파악되지 않았습니다. 정보원이 직접 확인한 것만 종합해 봤을 때 최소 4서클 이상의 마법사라고 예상됩니다."
"최대는?"
"그게.... 너무 터무니 없는 내용들이 있어서..."
이세계는 마법사의 능력을 구분할 때 서클의 개념을 사용했다.
서클은 마력을 순환 시키는 고리의 숫자를 말하는 것이었고 일반적으로 서클이 높을 수록 좀 더 고차원의 마법을 사용할 수 있었다.
가량 로빈이 오슬릿 왕국에서 상대했던 바슬리스 디에고 같은 경우에는 6클래스 마법사였다. 그는 군주의눈에서 A급 마법사로 표현되었었다.
6클래스 정도의 실력이면 어느 왕국을 가든 대접 받을 수 있었고, 인재가 넘친다는 쿠샨 제국에 가도 한자리를 보장 받을 수 있는 높은 수준이었다.
"터무니 없는 내용들이 다 사실이라는 가정 하에 말해봐라"
"그러면 마법사의 경지를 넘어서 마도사에 들어섰다고 봐야 합니다. 소문이 다 사실이면 8클래스 수준이라 생각됩니다"
오러블레이드를 사용하는 기사들을 소드마스터라고 따로 호칭하는 것처럼 7클래스를 넘어선 마법사들을 마도사라고 따로 호칭했다.
그만큼 7클래스에 오르면 마법사의 격이 달라졌고, 능력의 범위가 굉장히 확장되었기에 오히려 소드마스터들 보다 더 귀한 대접을 받았다.
물론 1대1로 대결한다면 7클래스의 마법사 보다 소드마스터들의 승산이 더 높았지만, 마법사의 능력은 1대1 보다 1대 다수, 그리고 다양한 전술적 움직임을 가능하게 했기에 확실히 가치는 소드마스터들 보다 높았고 숫자도 훨씬 소수였다.
"못해도 4클래스에.... 더 높은 클래스 일 수도 있는 인재가 변경백의 백작이다. 그리고 아직 2왕자에게도 포섭되지 않았다면 지금 바로 움직여야 할 것 같군"
"그렇습니다. 최근 그의 영지에서 소금이 대량으로 생산되고 있습니다. 해적이 출몰하기 전 사용했던 염전을 다시 가동 시키는 것 같은데 소금으로 돈도 상당히 벌어 들이고 있습니다"
"거기에 돈 도 많은 영지라! 놓칠 수 없는 곳이로군. 놈의 성격은? 지 아비와 똑같은가?"
존 로쉬는 파르벨을 떠올리며 물었다.
파르벨은 고지식의 전형이었고 귀족들과의 교류를 일체 거부했다.
그렇다고 왕의 휘하에서 휘둘려 지는 것도 아니었는데 크로티안도 그에게 무슨 일을 맡기려고 한다면 명분이 있어야 했고 명령이 아닌 부탁을 해야 했다.
명분이 있는 일에는 적극적으로 나서줬고, 그 모습이 때론 왕당파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정치적 힘 싸움에는 절대 끼어들지 않았기에 로쉬는 그를 중립으로 판단했었다.
"성격을 종잡을 수 없습니다. 과거 그에 대한 정보들과 최근 3년 간 수집한 정보들이 너무 다르기도 하고, 그가 접촉하는 인원은 영지내 가신 최측근 그룹만이라 세부 정보를 얻기 힘듭니다. 하지만 확실한 것 하나는 영지를 위해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부지런히? 좋은 영주가 되고 싶은 욕심이 있는 것인가?"
"그렇습니다. 일단 영지를 자신의 것으로 확실히 만들기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최근 지방관리들의 부정부패를 집중적으로 관리하고 있는데..... 관리들의 처벌 방식이 좀 상식 외 입니다..."
"어디 보자"
로쉬는 가신이 내미는 보고서를 받아들었다.
보고서에는 로빈이 게오르그를 포함하여 부정을 저지른 자들을 마을 광장에 묶어 두고 마정석으로 고문하고 있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고문을 시키는 마정석이라.... 이런 도구를 만들어 내는 것이 쉬운가?"
"알아보니 마정석을 만들고 그 안에 스스로 구동하는 마법진을 새겨 넣은 것은 상당히 난이도가 있다고 합니다. 마법사가 제작과 부여 마법쪽으로 전문성을 가지고 있다는 가정 하에 적어도 5서클 이상은 되야 가능하다고 합니다"
사실 가신이 보고한 5서클 이상의 부여 마법사가 만드는 마정석은 로빈이 제작한 것 보다 훨씬 간단한 마법과 단순한 조건만 입력되는 것이었다.
로빈이 만든 '천벌'은 그 보다 훨씬 수준이 높은 것으로 어지간한 마법사들은 다 완성된 회로를 보고도 구동 원리를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었다.
"으음... 느낌이 확실히 보통 놈은 아니야. 호랑이 새끼가 강아지 일 순 없는 법. 그의 과거 소문들은 어쩌면 조작된 내용이거나 그가 의도적으로 자신을 감추기 위해 행동한 기록일 수 있다. 현재는 분명 라마르의 주요 인물 중 하나야"
"그렇습니다"
"로빈을 포섭해야 한다. 프리델은 지금 어디있는가?"
로쉬는 아무리 공작이라 하더라도 자신보다 서열이 높은 3왕자 프리델에게 항상 존대 해야 했지만, 그가 없는 자리에서는 노골적으로 이름을 부르며 자신이 그의 밑이 아니라는 표현을 했다.
"왕자 전하께서는 수도에 머무르고 계십니다."
"아드리아로 가서 로빈을 만나라고 해. 내가 직접 부탁 했다고 꼭 전하고"
"직접...말씀이십니까? 아무리 그래도 왕자 전하가 아드리아 백작을 호출하는 것이 모양새로 보나 전례로 보나..."
"그가 올 것 같은가? 지 아비인 파르벨도 어지간한 사유 아니면 항상 국왕 전하의 부름도 거절했었다. 직접 가야 해."
"왕자 전하가 거절하실 것 같습니다...."
"흥! 그러면 좋은 세력 하나를 뺏기는 거지. 제스터에게 왕위를 뺏기고 싶으면 그렇게 하라고 전해라. 아마 그가 꽤나 괜찮은 전력이라는 것은 제스터 측에서도 알고 있을게 분명하다 그렇지 않느냐?"
"그렇습니다. 분명 홀스테인이 보고를 올렸을 것입니다"
"제스터는 이미 로빈에게 자신을 보러 오라고 연락을 보냈을 것이다. 물론 로빈이 지 아비의 성정과 같다면 절대 그 부름에 응하지 않겠지. 그럴 때 우린 직접 가서 설득해 그들과 다르다는 것을 보여야 하지 않겠나?"
"지당하신 말씀이십니다."
"사람의 마음을 얻을 때는 성의가 필요한 법이야. 얼른 프리델에게 전해. 지금 당장 아드리아로 떠나라고"
"알겠습니다 공작님"
로쉬 공작의 명령이 끝나고 가신은 그의 친필 의뢰서를 받아 들고 수도로 향했다.
왕자가 공작에게 부탁을 가장한 명령을 받는 것은 상당히 기분 나쁜 일이었지만, 자존심 만으로 세상을 살아갈 순 없는 법이었다.
* * *
"아휴.... 이게 뭔 고생이야 젠장할"
라마르의 3왕자 프리델은 마차를 타고 라마르 동쪽 끝 아드리아로 향하고 있었다.
거의 일주일 넘게 이동한 끝에 이제 조금만 더 가면 아드리아 영지의 초입에 다다를 수 있었다.
마차가 아무리 좋다고 한들 불편한 건 어쩔 수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말을 타고 직접 내달리고 싶었지만 거의 10일 가까이 걸리는 이동 시간 내내 말을 타는 것 또한 고역이었기에 프리델은 마차에 몸을 실었다.
"이제 거의 다 왔습니다 왕자님"
프리델의 수행 기사 해리엇이 연신 짜증을 내는 그에게 조용히 말했다.
이에 프리델은 한숨을 한번 내쉬고 말 없이 창밖을 바라봤다.
창 밖의 모습은 흔히 볼 수 있는 시골의 모습이었다.
초록빛 들판에 야트막한 언덕이 있었고 보일 듯 말 듯 유지되고 있는 가도가 쭉 이어져 있었다.
잘 정비된 수도 주변의 가도와 다르게 왕국 변방의 가도는 아무래도 울퉁불퉁하고 움직이기 불편했다. 당연 마차의 승차감도 나쁠 수 밖에 없었고 그 부분 역시 프리델이 짜증나게 하는 한 요소였다.
"멈추시오!"
드디어 아드리아 영지 경계에 다다르고 작지만 꼼꼼하게 지어진 아드리아 수비대 요새가 보였다.
그들은 영지의 경계를 지키며 통행 하는 자들을 검문하고 혹시 모를 침입에 대비하는 수비병이었다.
"제가 나갔다 오겠습니다"
"그래"
해리엇이 프리델에게 인사를 한 뒤 마차에서 내렸다.
거대한 덩치에 잘 다듬어진 갑옷을 입은 해리엇은 누가 봐도 기사였고 영지 수비병들은 일순간 긴장했다.
"미리 연락이 갔을 것 같은데... 3왕자님께서 아드리아 영주를 만나기 위해 가시고 계시다"
"아! 이미 연락 받았습니다. 해리엇 기사님 이십니까?"
"그렇다"
"예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해리엇을 잠시 세워둔 병사는 서둘러 뛰어가며 요새 안 누군가에게 보고를 하러 갔다.
해리엇은 자신이 누구인지 알면서도 바로 통과 시키지 않고 이렇게 세워 두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왕자님의 임무를 방해하면 안되었기에 꾹 참고 서있었다.
"안녕하십니까 기사 해리엇님. 저는 몰디아로 왕자님 일행을 안내할 아드리아의 총 내무관 알론소라고 합니다"
"안내는 필요 없다. 우린 이미 몰디아로 향하는 길을 아는 수행원들이 있으니"
"아! 일반 가도로 가시면 시간이 오래 걸리시기 때문에 운하를 이용하실 수 있도록 도와드리려 합니다. 이미 왕자님을 위해 준비된 선박이 선착장에서 대기중입니다"
"운하?....."
"예 그렇습니다. 최근에 영지 경계까지 운하가 추가로 개통되어 영지에 진입하는 외부 상인들도 요즘에는 다들 운하를 이용합니다"
"으음.... 잠시 기다려라"
"예"
내무관의 설명을 들은 해리엇은 다시 마차로 향했다.
그리고 작게 노크 한 뒤, 창문을 열어 심드렁하게 앉아 있는 프리델을 마주했다.
"운하로 이동할 수 있게 도와주겠다고 합니다. 어떻게 할까요?"
"운하? 그럼 배를 타고 가는 건가?"
"그렇습니다. 선착장에 선박을 준비해 뒀다고 합니다"
"나 배는 타본 적이 없는데?.... 그거 괜찮은 거야?"
프리델의 물음에 해리엇도 뭐라 대답하기 곤란해졌다.
사실 배를 타본 적이 없는 것은 해리엇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이었다.
"배를 타고 가면 더 빨리 도착하나?"
"확인해 보겠습니다."
프리델의 물음에 해리엇은 다시 미소를 지으며 기다리고 있는 내무관 앞으로 걸어갔다.
"선박을 이용하면 시간이 얼마나 단축되는가?"
"마차로 가시면 몰디아까지 3일은 걸립니다. 도중에 좀 많이 쉬었다 가시면 4일이 걸릴 수도 있구요. 아시겠지만 아드리아 영지가 좀 넓은 편이라서... 운하를 이용하시면 반나절 만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알겠다."
내무관에게 설명을 들은 해리엇은 곧장 프리델에게 돌아왔다.
"마차로는 3일에서 4일, 배로는 반나절이 걸린다고 합니다"
"반나절? 그게 가능해?"
"바로 들통날 거짓말을 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러면 속는 셈 치고 운하를 이용해 보자. 안 그래도 지루해 죽을 것 같았는데 잘되었군"
프리델은 배로 이동하는 것이 좀 불안하고 생소해서 웬만하면 마차로 가려고 마음먹고 있었지만 반나절 만에 몰디아에 도착할 수 있다는 이야기에 마음이 바뀌었다.
이 지루한 시간을 3일이나 줄일 수 있다면 조금 불안하고 생소해도 충분히 감수할 수 있었다.
"알겠습니다"
프리델의 명이 떨어지자 해리엇은 다시 내무관에게 돌아갔다.
"안내하라. 운하를 이용하겠다고 하신다"
"예 알겠습니다"
내무관은 말을 타고 일행의 앞에서 길을 안내했다.
해리엇은 다시 마차에 오르지 않고 묶어서 데려가고 있던 말을 하나 풀어 그 위에 올라탔다. 아무래도 이동 상황을 직접 확인해야 속이 편할 것 같아서였다.
수비대 요새가 있는 언덕을 넘어 조금만 더 내려 오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쭉 뻗은 운하가 보였다.
운하의 폭도 제법 넓어 여러대의 선박이 교행 할 수 있을 정도였고 수량도 충분해 보였다.
".........!!"
이미 이동전에 보고를 들어 해리엇도 아드리아에 운하가 있다는 말을 듣긴 했지만 글로 접하는 것과 직접 보는 것은 차원이 달랐다.
"이쪽으로 가시지요 선착장에 배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마차도 함께 적재할 수 있으니 그대로 모두 탑승하시면 됩니다"
내무관의 안내에 따라 선착장으로 이동했다.
선착장에는 사람들이 제법 많았는데 대부분 아드리아에 거래를 하러 온 상인들이었다. 그들은 왕실의 문장이 새겨진 마차를 보자 모두 길을 비키고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이 배입니다. 영주님께서 왕자님을 모시는데 부족함이 없도록 가장 최신 선박을 보내셨습니다"
선착장에는 돛대가 3개나 있는 대형 선박이 정박해 있었다.
그 선박은 가장 최근에 훌리오와 멘데스가 건조한 것이었는데 해적 군도와의 거래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었지만, 갑작스런 왕자들의 방문에 그들을 데려오기 위해 운하 끝까지 이동해 왔다.
"뭐...뭐야!?"
창문을 통해 선착장과 운하, 그리고 대형 선박까지 본 프리델이 깜짝 놀라 소리쳤다.
그는 당장 마차의 문을 열고 나와 주변을 확인했고, 모든 것을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쳐다보았다.
내무관은 그런 프리델에게 공손히 고개를 숙여 인사하며 말했다.
"아드리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프리델 왕자 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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