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렘 (1)
한 달 동안 해안가 재건 마을에서 머무르며 조선업과 어업의 진척을 돕던 로빈은 앤슨이 추가로 데려온 사람들과 두다스가 설득해서 데려온 인원들이 제 역할에 슬슬 적응하는 것을 확인 한 뒤, 몰디아로 돌아왔다.
[기초 골렘 제작서] 20포인트
바람의 칼날 마법을 사고 남은 120포인트가 아직 남아 있었기에 그 전부터 원했던 골렘 제작 마법을 구입했다.
책상 위에 고이 올려둔 마법서를 펼치고 골렘의 제작에 대하여 탐독 하던 로빈은 골렘 제작에 가장 중요한 것이 지금 자신에게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정석이 없으면 그냥 빈 껍데기 잖아?'
골렘은 마력으로 움직였고 마력은 마법사가 공급하는 것이 아닌 내부에 장치 시키는 마정석으로 통해 공급 되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어쩐지 골렘 제작인데 포인트가 너무 낮다고 했어..'
골렘은 효용이 매우 높은 기술임에도 포인트가 낮았었는데 알맹이 빠진 지식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볼 수 있었다.
로빈은 이계상점을 열어 혹시 마정석을 구할 수 있는지 찾아 보기 시작했는데 마정석을 단일로 구입하는 품목은 없었지만 마정석을 제조하는 마법서를 찾을 수 있었다.
[저효율 마정석 제조서] 100포인트
무려 100포인트나 하는 5레벨 거래 품목에 마정석 제조서가 있었는데 그냥 마정석 제조서가 아니라 저효율 마정석 제조라는 이름이 붙어 있었다.
'이게 골렘 제작의 진짜 가격이네...'
부르는게 값인 마정석 제조서였지만 안살수가 없었다.
이계상점에 약간 사기 당한 기분도 들었지만 로빈은 과감하게 저효율 마정석 제조서를 구입했다.
이세계에서 마정석은 별개의 광석이 아니라 다양한 광석을 변환해 마나를 저장하고 필요에 따라 방출시켜 마력 공급을 조절하는 일종의 아티팩트였다.
철,구리,은,미스릴 순서로 마력 효율이 좋았고 미스릴은 압도적인 효율이 있었다. 여기서 효율이란 마법사가 주입하는 마력량에 비례해서 얼마나 마력을 저장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로빈에게 효율이란 큰 의미가 없었다.
평균수준의 마력을 가진 마법사가 철로 마정석을 만들려고 하면 거의 1년 동안 마력을 쉬지 않고 주입해야 할 정도로 철은 효율이 극악이었지만, 로빈은 무한한 마력을 가졌기에 철로도 충분히 쓸만한 마정석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마정석이 있다는 가정 하에 로빈은 어떤 골렘을 만들지 구상해 봤다.
기본 골렘 제작서는 골렘의 외형에 속성을 부여하는 방법과 관절을 만드는 방법 등이 수록되어 있었고, 골렘을 직접 조종하는 형태로 마력 회로를 구성하는 방법이 적혀 있었다.
'으음... 스스로 생각하면서 행동하는 골렘은 더 높은 거래레벨에서 구입 할 수 있나보네...'
현재 만들 수 있는 모든 골렘은 마법사가 근거리에서 직접 마력을 주입해 조종하거나, 마정석을 이용해 마력 공급원을 만들고 따로 조종하는 사람이 필요한 골렘이었다.
그래도 골렘으로서 역할은 충분히 할 수 있는 형태였기에 지금 골렘도 잘만 만들면 영지에 엄청난 도움이 될 것은 분명했다.
'안술러프를 만나야겠군'
마정석도 제조하고 골렘도 만들려면 재료가 필요했다.
로빈은 곧장 영주의 방에서 내려와 안술러프가 일하고 있는 공방으로 향했다.
안술러프의 공방은 몰디아의 대장장이들이 모여있는 곳 근처에 세워져 있었다. 그는 이곳에 생활에 적응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나사우에 있을 때보다 훨씬 시골스러운 몰디아였지만 로빈이 버티고 있는 한 나사우로 돌아갈 수 없음을 알기에 한적한 도시에 정을 붙여보려 노력하고 있었다.
"안술러프 있는가?"
"엇? 영주님 오셨습니까"
공방 정리를 하고 있던 안술러프는 대뜸 문을 열고 들어오는 로빈을 맞이했다.
최근 해안 마을에서 훌리오와 멘데스를 데리고 배를 만든다고 소식을 들은 것이 마지막이었는데 어느새 몰디아에 돌아와 있었다.
"잘 지내지?"
"예 덕분에..."
"뭐 하고 있었나?"
"공방 정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선박 부품들의 퀄리티가 훌륭하더군"
"감사합니다"
훌리오의 요청에 의해 선박 부품과 도구를 제작해서 보낸 안술러프의 솜씨는 역시나 좋았다.
"자네 철판 남은 것 좀 있나?"
"예 영주님, 아직 좀 있습니다"
"내가 골렘을 좀 제작하려 해. 철판이 많이 필요 할 것 같다"
"철판으로 말씀이십니까?"
안술러프는 잘 못 들었나 싶어 다시 한번 물었다.
골렘을 만든 다는 것은 로빈의 마법 실력이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철판으로 골렘을 만든다는 것은 생소했기 때문이었다.
"그래 철판"
"보통 흙이나 돌로 만들지 않습니까? 철판으로도 가능합니까?"
"가능해. 관절 움직임을 좀 더 신경 써야 하지만 그건 자네가 있으니 문제 없지"
"죄송하지만 저는 골렘을 만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나도 없어. 그러니 함께 노력해 보자고. 종이와 연필 있나?"
안술러프는 작업실 한쪽에서 종이와 연필을 꺼내 로빈에게 내밀었다. 로빈은 종이를 책상 위에 올려 두고 자신이 구상하고 있는 아이언 골렘의 기본적인 구조를 그리기 시작했다.
"일단 형태는 이렇게 하고.... 여기 아래 부분이 좀 생소하지? 이게 무한궤도라는 건데"
로빈이 구상한 골렘은 현대시대의 탱크와 유사한 모양의 골렘이었다.
움직임은 무한궤도로 가져가고 여러가지 도구를 탑재하여 각종 작업에 활용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이 무한궤도라는 것을 좀 더 상세히 설명해주실 수 있습니까?"
"시계에 쓰이는 톱니바퀴를 철판 체인이 감싸는 형태라고 보면 이해하기 쉬울 꺼야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주자면..."
로빈은 무한궤도의 구성과 동작 원리를 안술러프에게 설명했다.
안술러프는 워낙 뛰어난 기술자인지라 로빈이 설명하는 그 이상으로 무한궤도에 대하여 빠르게 이해했다.
"장애물을 넘거나 안정적인 움직임을 가지는 것은 좋아 보입니다만, 움직이는데 상당한 동력이 필요 할 것 같습니다"
"맞아. 마력이 많이 공급되어야 하겠지"
"직접 마력을 주입하시면서 조종하실 생각이십니까?"
"아니 마정석을 장착 시킬 계획이다"
"마정석은 부르는 게 값입니다. 그리고 돈이 있어도 구하기 어렵습니다"
"내가 직접 만들거야"
"직접.... 말씀이십니까?"
"그래"
안술러프는 마정석을 직접 만든다고 말하는 로빈의 말을 의심했지만, 그가 너무 단호하게 말하여 믿지 않을 수 없었다.
'도대체 어느 정도 수준의 마법사 이신 건가?'
마정석을 만드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 어지간한 왕궁의 궁정 마법사도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거기다 마정석을 만들 수 있는 수준 높은 마법사라 하더라도 워낙 오랜 시간 마력을 주입해야 하는 극한의 비효율이 있었고, 마정석에 저장된 마력을 다 사용하면 다시 마력을 채워야 하기에 잘 만들어 지지 않았다.
"그럼 동력은 마정석으로 공급한다 생각하면.... 동력 공급 장치를 이 정도 즈음에 두고... 마력 회로를 구성했을 때..."
"본체 윗 부분에 다양한 장치를 조립식으로 장착 시킬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해. 그러니까 전방 부분에 공간을 두어야 한다"
"움직임에 대한 제어는 어떻게 합니까?"
"탑승자가 한다. 조종석도 필요해"
"그럼 조종 장치까지 고안해야 하겠군요"
"내가 대충 생각해 봤는데"
로빈은 골렘 안에서 외부를 조종할 장치의 기본 모양을 그려서 안술러프에게 보여줬다. 골렘의 움직임을 제어할 핸들과 각종 장치를 조정할 레버의 구상이었는데 안술러프는 그 조종 장치들을 한번 보고도 역할을 단번에 이해했다.
"저 핸들이라 말씀하시는 것은 선박의 키와 비슷한 원리로 제작할 수 있겠군요"
"그렇지. 그리고 추가 조종 장치들도 마력 회로를 연결해 모두 탑승자가 레버로 조종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해"
"마력 회로 만들기가 쉽지 않겠습니다. 제가 해본 회로는 대부분 무기나 방어구에 적용되었던 것들이라..."
"그렇지 않아도 자네를 위해 이것을 가져왔지"
로빈은 품 속에서 기초 골렘 제작서를 꺼내 내밀었다.
"골렘 제작에 필요한 기초적인 지식들이 총망라 되어있는 책이다. 자네가 골렘의 회로를 설계하는데 큰 도움을 줄 것이야."
"가..감사합니다"
"당분간 나도 자네의 공방으로 출근할 것이야. 같이 머리를 맞대고 골렘을 만들어 보자고"
"예 영주님"
안술러프는 로빈에게 받은 기초 골렘 제작서를 살짝 펼쳐 보았다.
앞에 로빈이 있어 조금 실례 일 수도 있었지만, 기술자이자 마법사로서 끓어오르는 호기심을 참을 수가 없었다.
'이건 진짜다!'
책을 잠깐 훑어 보았음에도 그 안에 서술 된 내용이 보통이 아님을 안술러프는 단번에 깨달을 수 있었다.
골렘 제작은 워낙 부가가치가 높기도 했고 여러 모로 활용 될 수 있었기에 지식을 가진 마법사들 사이에서 철저히 도제식으로 전달되었다.
그랬기에 이런 마법서를 잘 남기지도 않고 남겼다 하더라도 다른 사람이 그것을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 였는데 로빈은 어디서 구했는지 상세한 설명과 방대한 내용이 담긴 마법서를 아무렇지 않게 안술러프에게 넘긴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은 나 주는 건가? 아니면 다 보고 반납해야 하는 건가?'
안술러프는 마법서에 욕심이 생겼다.
로빈이 자신에게 이 책을 주는 것이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았기에 최대한 많은 내용을 따로 기억하거나 필사해 두어야 했다.
"아 참고로 나는 그 마법서 내용을 다 외웠으니 그 책은 당분간 돌려주지 않아도 된다. 여유롭게 보고 공부하도록"
"감사합니다 영주님!"
안술러프의 고민을 알기라도 한 듯 로빈이 말했고 안술러프는 신이나 크게 대답하며 고개를 숙였다.
* * *
-드드드드드드
로빈과 안술러프가 골렘을 만들기 위해 함께 노력 한지 보름.
둘은 가장 기본적인 무한궤도 하체와 탑승석만 장착된 상체를 가진 프로토 타입 골렘을 움직여 보고 있었다.
탑승석에는 안술러프가 타서 핸들을 이용해 방향을 조절하며 움직였고 우려와는 다르게 골렘은 부드럽게 움직이며 공터 바닥에 무한궤도 자국을 남겼다.
"정지하겠습니다"
안술러프는 브레이크 패달을 밟아 골렘을 멈춰세웠다.
전진과 후진, 그리고 회전까지 충분히 잘 작동 하였고 마력 공급 중단 버튼을 누르자 탑승석 뒤편에 은은한 푸른색을 빛내던 마정석에서 빛이 사라지며 마력 공급이 끝났음을 알게했다.
"마력 공급 매우 원활합니다"
"다행이군"
"정말 대단하십니다. 미스릴도 아닌 철로 이렇게 빠르고 효과 좋은 마정석을 만들어 내셨다니..."
"그 짧은 기간에 내가 지시한 모든 것을 구체화 시킨 자네도 대단하긴 마찬가지지"
로빈과 안술러프는 서로 덕담을 주고 받으며 웃어 보였다.
'이런 지방 시골 영주에서 멈출 분이 아니다.'
보름간 로빈과 함께 일하며 안술러프는 그가 머지않아 세상을 움직이는 핵심 인물 중의 하나가 될 것이라 확신했다.
철로 효율 좋은 마정석을 순식간에 만들어 내는 것에 더하여 그가 동시에 여러개의 마정석을 만드는 것을 본 순간, 안술러프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었다.
"아직 갈 길이 멀다. 본격적으로 작업을 할 수 있게 하는 상체를 만들어야 하는데 조종 레버와 연동 될 수 있도록 회로 작업도 진행해야 한다"
"그렇습니다. 말씀 하신 부분에 대한 설계도 거의 다 진행되었습니다. 확인하시겠습니까?"
"오오 그래 어디 한번 보자"
로빈은 첫번째 골렘으로 현대사회에 트랙터 같은 형태를 만들려 했다.
트랙터는 어떤 도구를 연결 하느냐에 따라 땅을 갈 수도 있고, 물건을 운반할 수도 있고 거름을 주거나 목초를 벨 수도 있었다.
안술러프는 로빈에게 트랙터에 대한 설계 방침을 이미 전달 받았고 그에 맞춰 실제 트랙터와 매우 유사한 모양의 골렘 상체를 설계하여 상세 도면을 만들었다.
"마력 공급 장치 뒷부분에 추가 걸쇠를 설치하여 땅을 갈 때 사용하는 도구를 걸거나 운반용 대형 수레를 걸 수 있도록 했으며..."
안술러프의 도면을 본 로빈은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완성만 된다면 사람의 인력에만 의존하는 이곳 이세계의 농업에 획기적인 혁신을 가져 올 수 있었다.
"좋아 이대로 제작 해. 내 도움 필요한 일이 있으면 언제든 말하고."
"예 영주님. 멋진 놈으로 만들어 올리겠습니다"
"하하 기대하지"
안술러프는 호탕하게 소리치며 말했다.
그는 요즘 기분이 매우 좋았는데 골렘을 만들면서 기술적으로 가장 진보한 사람이 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처음엔 협박이 무서워 조금 올랐던 안술러프의 충성심은 로빈과 함께 작업하면서 쑥쑥 오르고 있었다. 종종 그의 충성심을 군주의눈으로 확인하는 로빈에게 아주 만족스러운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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