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적 군도 (3)
해적 군도에서 실력 있는 대장장이가 모여있는 나사우의 파도 언덕.
많은 대장장이 중에서 가장 실력이 뛰어나다고 알려진 드워프 안술러프는 자신의 공방에서 주물을 제작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가 주물에 사용하는 도구는 다양한 거푸집 이었는데 망치로 일일이 내려쳐서 만들어야 한다는 고정 관념 없이 거푸집에 액체로 변한 금속을 부어 도구를 만드는 것에도 능숙했다.
"황동의 비율을 좀 더 올려야 하겠군"
철과 황동을 혼합하여 새로운 비율의 합금을 만들려는 그의 노력은 철과 황동의 강점을 모두 가지고 있는 금속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었다.
안술러프는 단순히 무기만 평생 만드는 대장장이가 아니라, 금속을 배합하는 연금술에도 크게 조예가 있었고, 배의 닻부터 농기구와 가정도구까지 못 만드는 도구가 없는 진정한 만능 재주꾼이었다.
"뭘 만드는 거지?"
"으응? 누구시오?"
안술러프는 자신의 공방에 갑자기 등장해 질문을 던지는 로빈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의 눈은 굳게 닫혀 있는 공방의 정문으로 향했는데 그 정문을 제외하면 자신만 통행하는 후문이 유일한 통로였다.
"당신의 능력을 가져갈 사람"
"어떻게 들어왔소?"
"저기 굴뚝으로, 덕분에 옷이 더러워 졌어"
대장간의 오른쪽 구석에 높게 솟아 있는 굴뚝을 가리키며 말하는 로빈을 보고 안술러프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의 대장간 굴뚝은 너비도 컸지만, 높이가 상당했기에 어지간한 사람이 기어 올라가기도 어려울 뿐더러 굴뚝 위에서 아래로 다치지 않고 착지 하는 것은 상당한 실력자만 가능한 일이었다.
"능력을 가져 간다니... 나를 납치할 생각이오?"
"이해가 빠르네"
"어느 해적단 소속이오? 나는 독점하게 될 경우 해적단 간의 협의가 깨질 텐데. 아.... 내전이 일어난다는 소문이 있더니 이미 다들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인가"
안술러프는 주물을 만들던 손을 거두고 천천히 움직여 화로 옆에 걸려 있는 자신의 도끼를 꺼내 들었다.
"아무래도 당신은 바스케츠 쪽이겠지?"
"아니야"
"그러면 설마 카시드가?"
"그것도 아니야. 자세한 설명은 추후에 해주도록 할 테니 일단 가자고"
".......!"
로빈이 염력 마법을 사용해 안술러프를 들어 올리자 짧막한 그의 몸뚱이가 두둥실 떠올랐다. 갑작스런 마법에 안술러프의 덥수룩한 수염이 파르르 떨렸다.
-딸깍
아직 마비 마법을 쓰기 전이라 팔다리를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던 안술러프는 자신이 도끼 아래 부분에 장치된 버튼을 눌렀다.
-파지지지지직
그러자 도끼 아래 부분에서 디스펠 마법이 펼쳐지며 안술러프의 신체를 잡아 올리던 로빈의 마력이 흩어졌다.
로빈의 마력과 디스펠 마법이 충돌하여 작은 스파크가 곳곳에 퍼졌고 공중에 떠올랐던 안술러프는 땅에 가볍게 착지했다.
"오오 아티펙트인가?"
"내가 직접 제작한 놈이지. 5회까지 작동하니 날 데려가는 것은 포기하는 것이 좋을 것이오"
"직접 제작했다고?"
"그렇소"
"오오! 어디보자"
이름 : 안술러프
직업 : 해적군도 대장장이
능력 : A급 대장장이, B급 연금술사, C급 마법사
제작 : 1077
전투력 : 421
연금술 : 564
마법 : 243
충성도 : -47 (미등용)
잠재력 : 전설적
"이야! 너는 소문 그 이상이구나!"
군주의눈으로 안술러프를 직접 확인한 로빈은 감탄했다.
그는 3가지 능력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잠재력이 무려 '전설적'이라고 뜨는 첫번째 인물이었다.
"너는 꼭 데려가야 겠다"
"허허... 내 도끼의 디스펠 마법은 아직 4회나 남아 있다고 했는데..."
"4회? 좋아 확인해 보지"
-화르륵
로빈의 눈 앞에 손가락 만한 화염구가 생성되었다.
"자 이제 3회로"
로빈의 앞에 떠 있던 화염구가 빠른 속도로 안술러프를 향해 날아갔다.
화염구의 크기와 속도를 빠르게 계산한 안술러프는 디스펠 장치를 사용하지 않고 도끼를 들어 올린 다음 크게 휘둘렀다.
-탱!
안술러프의 도끼에 부딪힌 화염구는 마치 테니스공처럼 튕겨져 나가며 반대쪽 벽으로 날아갔고 벽에 박혀 조금 타오르다가 이내 소멸되었다.
"이 정도 마법은 디스펠 장치를 사용할 필요도 없지"
"호오... 전투에도 익숙한 모습!"
"내 나이가 나이인 만큼, 스스로를 지킬 능력은 있지 않겠나?"
"정말 매력적인 인재가 아닐 수 없구나"
"후후... 자네도 보통은 넘는 마법사인듯 한데 여기까지 하고 그만 돌아가는 게 어떤가? 자네의 침입을 문제 삼지 않겠네"
"그럴 순 없지. 다시 4회 확인 작업을 해볼까?"
".....!!"
로빈은 이번에 마비 마법을 걸었다.
그가 충분히 디스펠 장치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한번에 그의 몸 전체를 마비시키지 않고 그의 오른쪽 다리에만 마법을 집중시켰다.
-파지지지지직
안술러프는 디스펠 장치를 사용하여 오른쪽 다리에 침투한 마력을 흩어버렸고 그 주위에 스파크가 터지는 것과 동시에 마비된 다리가 움직였다.
"이제 3회 남았지?"
안술러프가 디스펠 장치를 사용하여 다리의 마비를 풀자마자 로빈은 또다시 다리에 마비 마법을 걸었다.
순식간에 다시 다리가 마비된 것을 느낀 안술러프는 로빈의 실력이 상당한 것을 눈치챘다. 그는 강자가 가지는 특유의 여유로 자신을 시험하고 있었다.
"으음.... 마력이 상당한 것 같은데... 이 정도 능력의 마법사가 나사우에 머무른다고 들어본 적이 없소. 당신은 외부인이군"
"그래. 바다 건너서 왔지. 마비는 안 풀어?"
"마법을 연달아 몇 번 사용해도 전혀 힘들어 하지 않고, 주문도 외우지 않고 숨 쉬듯 마법을 쓰는 당신에게 디스펠 장치를 소모하는 것이 현명해 보이지 않소만"
"장치를 다시 만드는 게 쉽지 않나 보네"
"그렇진 않소, 마력만 주입하면 다시 쓸 수 있도록 충전되도록 만들었으니까"
"그나저나 자네도 마법사인 것 같은데 마법 좀 써봐 구경 좀 하게"
로빈은 풍벽을 재점검 하며 안술러프에게 말했다.
이세계에 와서 처음 본 마법사였기에 그가 어떤 마법을 쓸 수 있는지 궁금했다.
"나는 부여 마법만 배웠소, 당신처럼 화염구를 만들거나 사물을 움직이는 마법은 쓰지 못하오"
로빈이 워낙 괴물 같은 재능을 가지고 있어서 그렇지 마법사라고 하더라도 모든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대부분의 마법사는 자신의 적성에 맞는 한 두 가지 계열의 마법에 집중하여 평생 동안 그 마법에 숙달 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적성과 재능이 없는 마법은 노력한다고 해서 성취할 수 없었다.
안술러프의 재능은 제작에 있었기에 그의 마법적 적성 역시 부여 마법과 제작에 특화되어 있었다.
"그건 아쉽군. 그럼 더 저항할 생각이 없는 것으로 알아도 되겠지? 이만 나와 함께 가줘야겠어"
"어디로 가는 지 알려줄 순 없소?"
"아드리아 영지"
"아아.. 들어 본 적 있소. 해적들의 약탈을 피해 해안가 주민들을 모두 대피 시켰다는 곳 아니오?"
"정답"
"당신은 누군데 나를 그곳에 데려가려 하는 것이오?"
"내가 영주야"
"아드리아의?"
"그래"
"허허..."
안술러프는 고민에 빠졌다.
로빈에게 더 저항해야 할지 아니면 일단 그를 따라가야 할 지 결정하기가 힘들었다.
사실 어디서든 자신이 좋아하는 제작을 할 수 있는 곳이라면 삶의 터전을 옮기는 것은 큰 문제가 없었다.
백년 넘게 살아온 그였기에 많은 곳을 이동하며 살아 왔고, 이곳 나사우에서도 10년 넘게 살아오긴 했지만 그저 거쳐가는 곳들 중 하나일 뿐이었다.
하지만 해적들의 침입도 막지 못해 주민들을 이주 시키는 아드리아 영지에서 자신이 마음껏 제작할 수 있는 환경이 되기가 힘들 것 같았다.
"그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싶소만..."
"넘쳐 나지. 실컷 할 수 있게 해줄 테니 걱정마. 이제 가자. 나는 바쁜 사람이야"
로빈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안술러프의 몸이 점점 더 마비되고 염력 마법으로 인해 하늘로 천천히 떠올랐다.
"자...잠깐만! 내 귀중품을 좀 가져갈 수 있소?"
"하긴 재료가 많이 필요하겠지. 10분 주지. 얼른 챙기도록"
"아..알겠소"
로빈은 그가 물품을 챙길 수 있도록 마비를 풀고 땅으로 내려줬다.
안술러프는 분주하게 움직이며 짐을 챙기려 했는데 그 짐의 양이 생각보다 많았다.
"도구들을 다 챙겨야 하고... 이 철판도.... 그리고 ...."
"이봐... 이 공방을 다 챙겨갈 셈이야?"
"귀중품이 아닌 것이 없어서 그렇소... 다 제작에 필요한 것들이라"
"시간 없으니 손가락으로 가리켜. 내가 다 챙겨 줄테니"
"알겠소. 먼저 저 망치와 모루를 챙겨주시오"
안술러프의 말에 로빈이 염력 마법으로 망치와 모루를 집어 들었다.
상당한 무게가 있는 물품들인데도 전혀 힘들어 하지 않고 망치와 모루를 마력으로 들어올리는 모습에 안술러프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저 용구함 전체를 가져가고 싶은데 가능하겠소?"
"문제없지"
안술러프는 이번에 거대한 수납장을 가리켰다.
그 수납장안에는 수많은 용구가 들어 있어 무게가 상당했는데 로빈은 조금의 지체함 도 없이 용구함을 들어 올려 망치와 모루가 떠 있는 곳으로 옮겨 왔다.
"혹시... 철판들과 합금 덩어리들도 가능하겠소?"
"알겠다."
용구함까지 손 쉽게 옮기자 안술러프는 아예 재료들을 무더기로 옮겨 줄 것을 요청했다. 상당한 무게의 철판들과 안술러프가 만들어 둔 합금이 들어 올려지며 한 곳으로 모였다.
'저항하지 않기를 잘했군'
부여 마법과 제작에 특화된 안술러프였지만, 그도 마법사였기에 로빈이 사용하는 염력 마법이 얼마나 많은 마력을 필요로 하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무게에 따라 소모되는 마력양이 더 늘어나는 것이 확실했는데 어마어마한 무게를 아무렇지 않게 들어 올리는 그의 모습에서 괜한 저항을 하지 않은 자신의 안목을 칭찬하고 있었다.
"이제 그만 가자"
"알겠소"
추가로 몇 개의 짐을 더 챙긴 안술러프는 슬슬 짜증을 내려하는 로빈의 눈치를 보고 더 뭔가를 옮기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로빈은 마지막으로 안술러프를 들어올렸고 그들은 이미 훌리오와 멘데스가 잡혀있는 폐가로 날아갔다.
"저....저게 뭐야!"
사람만 데리고 날아왔던 그 전 사례와는 다르게 안술러프의 거대한 짐들과 함께 움직인 이번 비행은 아무리 하늘로 움직였다고 해도 몇몇의 해적들 눈에 띄고 말았다.
"뭐가?"
"아니 방금 말이야! 거대한 뭔가가 하늘을 날아갔어"
"어디?"
"지금은 안보이는데.... 방금 전만 해도.."
"술 좀 그만 쳐 먹어 임마"
"아니야! 진짜 봤어"
"아휴 알겠다. 알겠어"
워낙 빠른 속도로 로빈이 이동했기에 하늘을 날아가는 그를 목격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헛것을 봤나? 하며 고개를 갸웃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말했을 때 미친놈 취급을 받을 뿐이었다.
"어! 놈이 다시 왔다"
"뭐야 저 짐들은.... 엇 안술러프!"
멘데스와 훌리오는 마법진 안에서 날아오는 로빈을 보고 소리쳤다.
그리고 함께 날아온 안술러프를 보고 그가 정말 보통이 아닌 놈이란 걸 다시 한번 느꼈는데 안술러프는 어지간한 해적단 간부라 하더라도 손쉽게 제압하는 전투력이 있는 드워프였기 때문이었다.
"아니 안술러프님 아니십니까"
"자네... 배 만드는 훌리오로군"
"둘이 서로 아는 사이인가 보네? 잘 됐어. 나는 아직 할 일이 좀 남았으니 여기서 서로 대화하면서 시간 좀 보내"
로빈은 놀란 얼굴로 서로 인사하는 둘을 보며 말했다.
그는 안술러프의 짐들을 한 쪽 구석에 몰아 두고, 그의 몸에 마비 마법을 걸었다.
"어...어엇!"
"네가 협조적이긴 하지만 다리만 마비 시키고 가기에는 불안해서 어쩔 수 없으니 이해해라"
로빈은 안술러프에게 눈을 찡긋하며 말했다.
안술러프는 자신의 몸이 마비됨과 동시에 왜 훌리오와 멘데스가 앉아 있지 않고 바닥에 누워서 자신을 맞이 했는지 이해했다.
"이따 보자고"
안술러프까지 확보한 로빈은 다음 타겟을 향해 날아갔다.
로빈이 시야에서 사라지는 것을 확인한 멘도사가 고개를 획 돌려 안술러프를 다급하게 불렀다.
"안술러프님! 마법사이시지 않습니까? 이 마비 마법 좀 풀어주십시오"
"안술러프님 우리를 구하러 와주셨군요!"
멘데스와 훌리오는 그가 마법사임을 알고 기뻐서 소리쳤다.
"미안하네. 나도 잡혀왔네 마비를 풀어줄 순 없을 것 같네....."
안술러프의 힘없는 대답에 둘은 실망감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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