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전 노예 (1)
"영주님을 뵙습니다"
"오랜만이다 두다스"
염전 복구를 위해 개척 마을에서 어촌으로 이동한 로빈은 미리 연락 받고 대기중이던 두다스를 만났다.
"고기잡이는 어때?"
"어획량이 매우 좋습니다. 아무래도 긴 시간 동안 어획을 하지 않았던 효과 인 것 같습니다"
"여전히 제일 많이 잡히는 건 대구인가?"
"그렇습니다. 종종 오징어나 문어도 그물에 걸리고 있긴 하지만 대부분 대구입니다."
"판매는?"
"수도 상단 3곳이 정기적으로 방문해 염장한 대구를 사가고 있습니다. 가격 협상은 실비아님이 대신 해주시고 저희는 협상 된 가격으로 판매하고 있습니다"
두다스는 말을 이어가며 로빈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그 이유는 그의 손에 들어오는 엄청난 돈 때문이었다. 실비아가 거래 과정에서 세금을 제외한 금액을 두다스에게 전해주고 있었는데 그 금액이 두다스가 한번도 다뤄보지 못한 큰 금액이었기 때문이었다.
"실비아가 대금은 잘 지급 해주고 있나?"
"예 영주님. 대금 이야기가 나와서 말씀드리는데... 저희가 과연 이 큰 금액을 받아도 될런지..."
"그 돈으로 식량도 사고 생필품도 사고 있는 것 아니냐?"
"그렇습니다. 한 달에 두 번 어업을 쉬고 몰디아에 가서 물품들을 구입해 오고 있습니다. 저희가 물품을 잘 구입할 수 있도록 내무관님이 수레도 지원해 주셨습니다"
"그러고도 많이 남나?"
"예. 실비아님이 주신 금액이 워낙 커서..."
"그러면 저축이라도 해"
"저축...이 무엇입니까?"
"아... 은행이 없나?"
"은행이 뭔지 제가 잘..."
이세계에 은행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라마르 왕국도 수도에 은행이 있었고 각 국의 주요 도시에는 다 은행 시스템이 존재했지만, 벽지라고 할 수 있는 아드리아에 은행이 있을리가 없었고 평생 고기 잡고 농사짓던 두다스가 은행을 들어 본 적 없는 것은 당연했다.
"돈 모아 둬, 다 쓸 일이 있을 꺼야. 그리고 식량이랑 생필품 아끼지 말고 써 알겠나?"
"예 영주님. 감사합니다"
두다스는 진심으로 감사하며 고개 숙였다.
돈 이야기를 들으면 뭔가 착오가 있었으니 돈을 내 놓으라 할 줄 알았지만, 로빈은 오히려 다 쓰라고 이야기 해 줬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로빈이 어쩌면 전설이나 민담속에서 등장하는 영지민들을 위하는 영주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두다스는 가슴속에서 뭔가 뜨거운 감정이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고기를 많이 잡으면 더 많은 몫이 배당 될 것이니 열심히 해"
"예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어선을 지급 받아 어업 활동을 하고 있었기에 자신들을 소작농이라 생각했지만, 전혀 아니었다. 로빈은 잡는 양에 따라 몫을 늘려주겠다는 시장 경제의 논리를 이야기 했고 두다스의 눈빛이 한층 더 빛났다.
'경제는 무조건 자본주의 시장의 논리로 가야지'
로빈은 현대 지구에서 온 사람이었다.
경제가 발전하려면 개개인 자유의지의 활성화가 꼭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어촌 마을은 그 시작이었고 차근차근 영지의 다른 부분에서도 일한 만큼 보상을 얻을 수 있는 체계를 확실하게 만들 생각이었다.
"영주님 오셨습니까"
두다스와 이야기를 나누며 어촌 마을을 둘러보던 중 훌리오와 멘데스가 헐레벌떡 뛰어와 로빈에게 인사했다. 둘은 로빈이 온다는 것을 미리 연락 받지 못하여 두다스처럼 미리 나와있지 못했다.
"둘 다 잘 지내나?"
"영주님께서 신경 써주신 덕분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
"내 영지의 중요 기술자인데 그 정도는 해줘야지"
훌리오와 멘데스는 어촌 마을을 재건 하는 과정에서 최우선으로 거주지를 배정 받았다.
두다스 이하 어부들이 모두 천막 생활을 할 때도 둘은 목조로 지어진 신축 가옥에서 편히 쉴 수 있었고, 실비아에게 보수도 많이 지급 받고 있어서 생활에는 큰 불편이 없었다.
"명령하신 선박 건조는 꾸준히 진행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 안술러프가 많이 바쁜지 금속 재료가 넘어오는 속도가 매우 느립니다."
"안술러프 바쁘지, 그 친구 몸이 10개라도 모자랄 지경이야 요즘. 선박 금속 재료가 많이 모자라나?"
"금속 재료만 넘어오면 곧 바로 출항 할 수 있는 선박이 3척이 있습니다."
"흐으음.... 어디 다른 곳에서 구할 수 있는 방법은 없나?"
"방법이 있긴 합니다만..."
"말해봐"
"군도에서 구입하거나... 구입이 어렵다면 영주님이 저희를 데려 온 것처럼..."
"데려 온 것처럼? 훔쳐 와라? 하하하"
훌리오의 말에 로빈은 호탕하게 웃었다.
"그래. 군도에 한번 다녀오지"
"저... 혹시..."
군도에 다녀오겠다는 로빈의 말을 들은 멘데스가 굉장히 망설이는 표정으로 로빈에게 말을 걸었다.
"말 해"
"가시는 길에... 제 가족도 데려와 주실 수 있으십니까?"
"가족?"
"예.... 군도에 아내와 딸이 있습니다. 지금쯤 제가 없어져서 많이 놀란 상태일 것 같습니다"
"아아 가족이 있었군"
"엇.. 저 영주님 혹시 그럼 제 가족도..."
멘데스의 건의가 먹히는 듯한 분위기이자 훌리오도 얼른 가족 이야기를 꺼냈다.
"그럼 같이 가자. 내가 재료를 구하는 동안 가족들을 챙겨. 알겠나?"
"예! 영주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로빈의 말에 둘은 크게 소리를 내 대답하며 고개를 숙였다.
둘은 이마가 땅에 닿을 정도로 상체를 잔뜩 수그리며 로빈에게 마음을 표현했다.
'누가 보면 되게 좋은 사람인 줄 알겠네'
로빈은 쓴웃음을 지으며 그 모습을 바라봤다.
사실 관계만 따지면 그들은 일방적으로 로빈에게 납치 되었고, 가족과 생이별 하게 된 상황이었다.
여기서 가족들을 다시 만나게 해준다 한들 그들 삶에서 로빈이 결정권을 빼앗은 부분이 달라지는 것은 전혀 없었다.
"바로 출발하진 못 해. 내 볼일이 마무리 되면 출발하겠다"
"알겠습니다 영주님. 대기하고 있겠습니다"
막상 가족을 다시 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마음이 조급해지는 둘 이었지만 절대 티를 낼 수 없었다.
로빈은 추후 연락 주겠다는 말과 함께 둘을 보내고 두다스와 함께 염전 복구 지역으로 향했다.
염전은 어촌마을에서 멀지 않은 곳이라 로빈은 순식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여기까지 다 염전이었습니다."
"확실히 지금은 못쓰겠군"
"그렇습니다. 지면이 평탄하지 못하고 울퉁불퉁해 바닷물이 고여 작은 웅덩이 수십개가 생겨났습니다"
두다스는 직접 염전 지역에 들어가 폐허로 변한 여러 구조물을 설명하고 현재 염전이 다시 쓰기 어려운 상태로 변해 버린 이유를 직접 웅덩이 안에 들어가며 로빈에게 보여줬다.
"염전의 규모가 생각 보다 작구나"
"그렇습니까? 그래도 과거 라마르왕국의 소금 공급을 책임지는 곳이었습니다"
로빈은 현대인 이던 시절의 기억을 떠올려 염전의 규모를 상상했었는데, 이 곳은 그 규모에 한참 못 미쳤다.
'그... 신안 이었나? 내가 티비에서 봤던 곳이'
티비에서 봤는지 유튜브에서 봤는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았지만, 드넓게 펼쳐진 염전에서 소금이 생산되는 모습을 봤던 기억이 있었는데 지금 눈에 보이는 염전의 규모는 그것의 절반도 되지 않았다.
"저기 저 쪽의 암석 지대 말이다. 다 깎아서 평탄하게 만들면 염전으로 쓰는데 문제가 있나?"
"바닷물이 잘 들어올 수 있도록 지형을 다듬는 다면 염전으로 쓰는데 문제 없습니다"
"그럼 암석 지대 전체를 다 깎아내 버리고 모두 염전으로 만들면?"
"아... 그것 역시 지형만 다듬는 다면 문제가 없지만... 영주님이 말씀하시는 암석 지대라는 것이 혹시 저 산을 말하시는 겁니까?"
"그렇다"
"아......"
로빈이 깎을 수 있냐고 물어본 곳은 염전 폐허가 있는 해안가 위쪽으로 제법 크게 자리한 바위산이었다.
그 바위산은 해안 절벽 지대와 이어져 있었고 규모가 상당히 컸기 때문에 깎아 내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두다스는 생각했지만 그래도 로빈의 능력이라면 그런 불가능을 실현 시킬 수 있기에 진지하게 염전의 가동 여부를 고민해봤다.
"구조물이 만들어 질 수 있다면 충분히 운영 할 수는 있습니다만.... 말씀 하신 정도의 규모로 건설 되면 운영에 많은 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얼마나 필요한가?"
"제 기억을 더듬어 말씀드리면, 원래 있던 염전에 일하는 노동자가 5백명은 넘었었습니다. 지금 계획 하시는 규모는 원래 염전의 족히 10배는 될 것 같은데 그러면 5천명 이상의 노동력이 필요 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5천이라....."
영지의 인력 운용을 정확하게 알지 못하고 대충 파악하고 있는 로빈이었지만, 그래도 지금 당장 5천이라는 인력을 차출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기존의 영지민들을 차출 하기 어려운 것은 말할 것도 없고, 5개척마을도 지금 계획하고 있는 농업과 축산업을 운영 하려면 인력 운용이 빠듯했다.
"어촌 마을도 인력이 빠듯하지?"
"그렇습니다. 그나마 최근 추가 어선 건조가 뜸해져서 괜찮지만, 추가로 어선이 건조되면 저희도 인력이 많이 부족할 것 같습니다"
두다스의 말대로 어촌 마을도 인력이 빠듯했다.
지금 5천명은 커녕 5백명도 못 구할 상황이었다.
"일단 알겠다. 인력은 방법을 찾고, 오늘은 염전 기반 공사를 좀 해 놓고 가자"
"예 영주님"
로빈의 말에 두다스는 곧바로 대답하긴 했지만, 저 단단한 암석 지대를 어떻게 깎아 내린 다는 것인지 도무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
-스르르릉
그 때, 하늘에 거대한 바람의 칼날이 소환되었다.
칼날의 모양은 마치 거대한 자의 형태였는데 폭이 좁지만 길이가 매우 긴 직사각형이었다.
"저.... 저건 도대체..."
은은한 푸른 빛이 감도는 거대한 바람의 칼날을 바라본 두다스는 말을 더듬으며 칼날과 로빈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먼저 기존의 염전 지대 바닥 공사부터"
-스르르르 스르르
하늘에서 천천히 내려온 바람의 칼날은 바닥이 고르지 않게 된 기존 염전 지대에 내려와 마치 빗질을 하듯 바닥을 쓸었다.
그러자 단단한 암석이 두부처럼 썰리며 점점 바닥이 고르게 변해갔고 몇 번의 빗질이 더 있은 후에는 완전히 평평한 바닥이 되었다.
"어때? 이 정도면 충분히 염전으로 활용 할 수 있지?"
"확인해 보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두다스는 얼른 뛰어가 로빈이 깎은 바닥을 살폈다.
'이 정도 균일함은.... 마치 고급 건물 바닥 같구나..'
제대로 걷지 못하고 미끄러질 정도로 반들반들해진 바닥의 상태를 본 두다스는 로빈의 엄청난 능력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완벽합니다 영주님! 이 정도 수준의 바닥이면 작업 속도도 더 올라갈 것 같습니다"
"좋아. 나머지 기존 염전도 동일한 수준으로"
두다스의 확인이 있고 나서 로빈은 순식간에 다른 두 곳의 염전 폐허도 완벽하게 바닥 공사를 마쳤다.
"바닥이 마무리 되면 더 뭐가 필요하지?"
"들어오는 바닷물을 막아낼 물막이와 물을 퍼낼 물레방아를 설치해야 합니다. 지금 추가로 바닥을 깎아내며 염전을 보수 했기에 염전에서 바다로 물이 빠져나갈 구멍을 먼저 만든 뒤 물막이를 시공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바로 증발 시킬 수 있는 양의 물을 남기기 위한 장치로구나"
"예 그렇습니다"
"구멍은 내가 지금 만들어 주지"
-화르르르륵
로빈은 고온의 화염구를 소환하여 염전의 벽에 밀어 넣었다.
-치이이이익
화염구가 암석을 녹이며 앞으로 나아갔고 그 자리에는 물이 빠질 수 있는 구멍이 생성되었다. 화염구는 쭉 전진하다 바다가 나오는 부분에서 쏙 빠져 나왔다.
"오오! 정말 대단합니다"
이미 로빈의 화염 마법을 본 적이 있는 두다스이기에 놀라움은 바람의 칼날을 봤을 때보다 덜했지만 그의 신묘한 화염구 컨트롤에 마법사라는 존재들은 참으로 대단하다고 느꼈다.
-쏴아아아아
화염구로 인해 바다와 염전 지대가 이어지자 그 구멍을 통해 바닷물이 밀려들어왔다.
나중에 그 구멍을 물막이로 적절하게 막으며 염전에 공급되는 바닷물을 조절하면 되었다.
"자 이제 산을 좀 깎아 보자고"
기존 염전의 기본 공사가 마무리 되었다고 생각한 로빈은 바람의 칼날에 마력을 더 주입했다.
바람의 칼날은 로빈의 마력을 먹고 쑥쑥 커져 기존 염전을 보수 할 때보다 거의 5배는 거대해져 있었다.
'으....아아아.....'
하늘에 떠 있는 바람의 칼날을 보는 두다스는 등골이 오싹해 지는 것을 느꼈다.
바람의 칼날이 주는 위압감이 상당해 마치 자신의 몸도 잘려 나갈 것 같은 기분이 느껴졌다.
"가보자"
-스르르르르 스르
-쿠구구궁!
오랜 세월 이 해안에서 오만하게 자리 잡고 있던 암석지대는 로빈의 바람의 칼날에 허무하게 무너져 내렸다.
칼날에 의해 두부처럼 썰려 버린 암석지대의 잔해는 로빈이 염력 마법으로 들어 올려 바다 멀리 던져버렸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두다스는 어이가 없어 자신도 모르게 히죽히죽 웃음이 새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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