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톨레스 (4)
공간 통제(Control field)
로빈을 발견한 프톨레스가 가장 먼저 시전한 마법디스펠 계열의 최상위 마법이었다.
마력 차단이나 디스펠, 퍼지등의 많은 하위 마법들의 끝판왕 답게 그 어떤 하위 마법으로도 대항할 수 없는 절대 주문이었다.
그리고 로빈이 이계상점에서 2000포인트를 지불하고 가장 먼저 구입한 마법서였다.
[10서클 마법 공간 통제(Control field)를 구입했습니다]
- 10서클 마법은 마법서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 사용자의 뇌로 마법 지식을 직접 전송 합니다.
"뭔 수작 질을 하는 것이냐!"
로빈의 머리속으로 공간 통제(Control field) 마법이 쏟아 지듯 들어오고 있을 때, 심상치 않음을 느낀 프톨레스가 또 다른 10서클 마법 소멸(extinction)을 시전했다.
"공간 통제!"
천만다행이도 프톨레스의 소멸이 로빈의 몸을 증발 시키기 직전, 로빈은 공간 통제 마법을 완성해 냈다.
무시무시한 기세로 밀려들던 프톨레스의 마력이 로빈의 주문에 가로 막혀 더 이상 진전하지 못했다.
로빈의 몸 주변 아주 조그마한 공간은 온전히 로빈의 마력에 의해 통제되는 공간이 되었으며 로빈은 멈춰 있던 마력을 끌어 올릴 수 있게 되었다.
"........!!"
그 모습을 지켜본 프톨레스는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자신이 아닌 다른 자가 10서클 마법을 쓰는 것도 놀랐지만, 동급의 주문이 격돌한다면 더 많은 마력을 쏟아 부은 주문이 그렇지 못한 주문을 밀어낼 수 있었는데 자신의 주문이 로빈의 주문에 밀렸기 때문이었다.
분명 프톨레스의 공간 통제 주문은 로빈의 신체를 포함한 이 공간 전부를 먼저 선점하고 있었다.
하지만 로빈이 공간 통제 마법을 사용하자 그의 신체를 중심으로 아주 조그마한 공간이었지만 자신의 주문이 밀려나고 로빈의 공간이 생겨났다.
"믿을 수가 없군..."
프톨레스는 대상에 닿지 못하여 사라져 버리는 소멸(extinction) 주문을 바라 보며 말했다.
로빈의 주문에 프톨레스가 놀라고 있는 그때, 로빈 역시 자신의 머리 속에 들어온 공간 통제 마법의 원리를 이해하며 놀라고 있었다.
이 마법의 이론에 따르면 아무것도 없는 공간이라는 것은 없었다.
모든 공간은 누군가의 통제 안에 있었고 통제권은 서로 다른 존재들에 의해 뺏고 뺏길 수 있는 마치 부동산과 같은 개념이었다.
공간 통제(Control field)는 10서클의 초고위 마법이었지만, 공간을 영원히 통제하는 것이 아닌 마력을 대가로 지불하며 일시적 임대하는 느낌이었다.
프톨레스나 로빈이나 이미 누군가가 장악하고 있는 이세계의 일정 공간을 마법으로 빌려 일시적으로 자신의 통제 안에 두는 것일 뿐이었다.
"어차피 너도 나와 같은 처지 일 뿐 아니냐?"
마법의 원리를 이해하자 하늘 높은 곳에 있는 듯 했던 프톨레스가 자신의 눈높이로 내려온 느낌이었다.
그도 이세계의 진정한 주인이 아니었다. 자신과 같은 마도사 나부랭이 일 뿐이었고 조금 빨리 10서클에 도달했을 뿐이었다.
로빈은 더 많은 마력을 끌어 올리며 자신이 통제하는 공간의 범위를 확장시켰다.
신이 그에게 내려준 막대한 마력은 수천년의 세월을 갈아 넣어 마력을 키워온 프톨레스의 노력이 무색하게 그의 공간을 쭉 밀어내고 로빈의 영역을 넓혔다.
"오호..."
자신의 주문이 밀리며 오히려 본인이 압박 받는 형태가 되자 프톨레스는 진심으로 놀라며 추가로 마력을 끌어 올렸다.
골드드래곤과의 전투로 인해 입었던 손실은 며칠 휴식을 하며 거의 다 회복된 상태였기에 그의 진정한 힘은 어마어마했다.
프톨레스 역시 추가로 막대한 마력을 주문에 공급했다.
그 결과 둘의 주문이 납골당 중앙에서 힘의 균형을 이루며 교착상태에 들어갔다.
-끄그그그그극
주문과 주문이 격돌하는 경계 부분의 공간이 일그러지며 공간의 균열이 생겨났다.
균열은 어떠한 물리 법칙도 존재하지 않는 그야 말로 '무'의 공간이었는데 엄청난 인력이 생겨나 주변의 공간을 빨아들여 비어버린 자신을 채우려 했다.
-콰아아아앙!
균열로 프톨레스와 로빈의 마력이 빨려 들어가며 공간이 추가로 일그러졌고 아주 좁은 공간이 버틸 수 없을 만큼 큰 에너지가 몰리자 균열은 폭발했다.
하지만 로빈이나 프톨레스 둘 다 절대 주문인 공간 통제를 계속 시전하고 있었기에 폭발의 기운이 둘에게 전달 되지 못했고 두 주문이 격돌하는 경계 부분에서 폭발로 인한 에너지의 폭풍이 어항 속 물고기처럼 꿈틀거렸다.
"같은 처지? 그건 무슨 소리냐?"
거의 모든 마력을 끌어 올려 밀어내도 지금 형성된 경계 이상으로는 우위를 점 할 수 없게 되자 프톨레스는 한 숨 돌릴 겸 질문을 던졌다.
"주인은 아니란 말이다. 경지가 더 높아지니 확실히 더 느껴지는 군"
"주인이라... 섭리를 말하는 것인가?"
"섭리?"
"우주를 움직이는 규칙이라고 하면 알아 듣겠나?"
"아... 그래 섭리라고 할 수 도 있겠군. 아무튼 이 대단한 마법도 잠시간 힘을 빌리는 것일 뿐. 진정한 의미의 통제라고는 할 수 없더군"
"놀랄 만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군"
프톨레스는 고개를 까딱거리며 묘한 눈빛으로 로빈을 바라보았다.
'어디서 갑자기 이런 놈이 튀어 나왔을까?'
이 정도 힘을 가지려면 시간이 많이 필요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는 과정이 없는 결과는 있을 수 없다고 믿었다.
"마법은 언제부터 익혔나?"
"10년 정도 되었지"
"10년? 마도의 길에 들어선 것이 10년이라는 말인가?"
"입문이 10년 전이다"
"허허.."
프톨레스 입장에서 믿을 수 없는 이야기였지만 로빈이 거짓말을 하는 느낌은 아니었다.
"10년만에 10서클 주문을 구사한다라.... 공간 통제 주문은 스스로 깨우친 것이냐?"
"그건 영업 비밀이라서 말하기 곤란하군"
"인간이 맞긴 한 것이냐?"
프톨레스는 어쩌면 로빈이 계약을 깨고 내려온 천족이나 마족일수도 있다고 봤다.
넓게 잡아 아직 사냥하지 않은 드래곤들중 폴리모프한 자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가도 자신과 엇비슷한 마력을 보니 드래곤 수준은 확실히 넘은 것 같았다.
"인간이지. 숨 쉬어야 하고, 먹지 않으면 죽고, 자지 않으면 졸리는"
로빈은 프톨레스와 대화 하면서 계속 이계상점을 살폈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보이기 위해 상점의 각도를 프톨레스쪽으로 돌렸고 시야가 움직이지 않으면서도 상점의 목록을 살필 수 있도록 했다.
사실 마력은 더 끌어올리려면 더 할 수 있었다.
거의 전력을 다하고 있는 프톨레스와 다르게 로빈은 아직 여유가 있었다.
애초에 단 한번도 마력이 고갈 되어 본 적이 없었기에 로빈은 자신의 마력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몰랐다.
지금 쏟아 붓고 있는 마력보다 더 많은 마력을 충분히 끌어 올릴 수 있는 것은 확실했지만 어쩌면 프톨레스도 자신처럼 전력을 다하지 않고 있을 수 있기에 섣부르게 행동하지 않고 침착하게 쓸만한 주문을 찾았다.
타임 슬립(Time Slip)
무려 5천 포인트를 필요로 하는 주문이었지만 로빈의 눈을 멈추게 하기엔 충분했다.
프톨레스가 에르트라스를 잡을 때 사용한 것이 확실한 주문이었는데 생각해보니 그가 타임슬립부터 사용하지 않고 공간 통제부터 사용한 것은 로빈입장에선 천만 다행이었다.
[10서클 마법 타임 슬립(Time Slip)을 구입했습니다]
- 10서클 마법은 마법서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 사용자의 뇌로 마법 지식을 직접 전송 합니다.
로빈은 최대한 평온한 표정으로 타임 슬립을 구입했다.
쏟아지는 지식 때문에 머리가 어지러웠지만 극도의 정신력으로 태연한 모습을 유지했다.
"평범한 인간이 10년 만에 마도사가 되었다? 인간은 그렇게 할 수 없다."
"그러면 너는? 너도 인간 아닌가? 수천년을 살아 왔다고 한들 네 본질이 인간임은 변하지 않는다"
"나는 인간이라고 정의할 수 없는 존재다"
"그럼 신이라도 된다는 말이냐?"
"감히 신이라고는 할 수 없겠지. 하지만 곧 신이 될 존재다."
"하하하 반쪽짜리 신이라도 된 것처럼 들리는 군"
"그래 반신정도면 나를 설명할 수 있겠군"
오만하기 짝이 없는 프톨레스의 말이었지만 완전 틀린 말도 아니었다.
10서클의 마도사는 확실히 인간의 범주를 넘어선 존재들이긴 했다. 하지만 절대 신은 아니었다.
"내가 개인적으로 진짜 신을 만난 적이 있단 말이지?"
"으음?"
농담인듯 진담인듯 알쏭달쏭한 로빈의 말에 프톨레스가 인상을 찌푸렸다.
농담이라면 자신을 조롱하는 말이었고, 진담이라면 프톨레스도 한번도 만나지 못한 진짜 신의 존재를 만난 로빈은 섭리의 선택을 받은 자였다.
"나는 신의 도움으로 이세계에 떨어진 평범한 영혼이야. 처음에 이세계에 떨어 졌을 때만 해도 과도하게 강한 내 능력에 의문이 있었는데....."
로빈은 가볍게 머리를 흔들며 말을 이어나갔다.
프톨레스와 대화 하면서 타임 슬립 마법이 머리 속에 완벽히 들어왔고 이제 자유롭게 시전할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오늘에서야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쿠아아아아아아아아!!
로빈은 마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렸다.
여지껏 한번도 뽑아 내지 않았던 그의 존재에 잠자고 있던 거대한 마력들도 로빈의 부름에 응답하며 세상으로 폭발하듯 쏟아져 나왔다.
"으읏!"
로빈의 마력이 공간 통제(Control field) 주문에 추가로 공급되어 자신을 향해 압박해 들어오자 프톨레스는 급히 얼마 남지 않은 추가 마력을 공급해 경계를 유지 하려 했다.
하지만 마력의 차이는 막대했다.
프톨레스의 공간은 점점 줄어 들었고 곧 그의 신체에도 로빈의 통제가 들어가기 직전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프톨레스가 쓸 수 있는 방법은 하나 뿐이었다.
공간에 한정된 3차원의 싸움을 시간이 포함된 4차원의 싸움으로 바꾸는 것.
"타임 슬립(Time Slip)!"
로빈의 마력이 프톨레스를 덥치기 직전. 프톨레스의 주문이 발동되었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엄연히 존재하는 시간이라는 법칙 속에 프톨레스의 마력이 빠르게 개입하고 그를 중심으로 한 공간의 시간을 붙잡았다.
이제 멈춰버린 시간 속에서 홀로 자유로운 그가, 로빈을 가볍게 처리하기만 하면 되었다.
"아...아니?"
하지만 로빈은 멈추지 않았다.
사차원을 통해 로빈으로 뻗어가던 프톨레스의 마력은 오히려 더 거대한 흐름에 부딪혀 밀려나고 프톨레스를 향해 되돌아 오고 있었다.
로빈 역시 타임 슬립(Time Slip)마법을 사용한 것이었다.
"감히 신의 자리를 넘보는 너 같은 놈을 쳐내려고 나를 이용하시는 것이 틀림없다."
"아....아아!"
로빈의 마력이 프톨레스의 마력을 완전히 밀어내고 사차원의 영역을 지배했다.
프톨레스는 마치 얼어붙은 대지 속에 화석처럼 눈을 부릅 뜬 상태로 멈춰버렸다.
그의 마력을 포함한 모든 것 역시 모두 멈춰서 미동도 없었다.
-저벅저벅
멈춰 버린 프톨레스를 향해 로빈이 천천히 걸어갔다.
하늘을 날아서 갈 수도 있었지만, 이 순간 왠지 땅을 밀어내는 느낌을 느끼며 그에게 다가가고 싶었다.
"그러니 적당히 까불었어야지 이 사람아...."
로빈은 혀를 차며 프톨레스에게 말했다.
물론 그에게 전혀 들릴 리 없었지만, 로빈의 기분은 확실히 풀렸다.
-화르륵
열화탄을 소환했다.
이미 저항할 수 없는 그에게 대단한 마법을 사용할 필요는 없었다.
"다음 생애에는 주제 넘은 짓을 하지 말고 얌전히 살다 가시오"
엄청난 고온으로 인해 파란색이 되어버린 열화탄이 빛의 속도로 프톨레스에게 날아갔다.
신이 되려 했던 그는 결국 납골당의 다른 황제들처럼 신체와 영혼이 모두 불타버렸다. 뼛가루도 남지 않을 정도로 타올라 완전히 사라지자 로빈은 주변에 걸어뒀던 모든 마법을 해제하고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세계 생활의 거의 유일한 근심이 사라진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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