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류와 운하 (1)
"그러니까 물류의 이동이 원활하지 못하다 이거지?"
"그렇습니다"
로빈은 실비아를 데리고 몰디아 집무실로 순식간에 이동해 25가지 안건에 대해 보고 받고 있었다.
많은 안건들 중 실비아가 가장 급하다고 언급하는 것은 영지내 물류 이동이었다.
"영주님이 검은숲에 본격 진출하시면서 악슬로틀 부족과 제5개척마을, 그리고 소금바위 마을을 건설하심에 따라 영지의 재화 산출량이 급격하게 증가했습니다. 그러나 그를 뒷받침할 운송 시스템이 현저하게 부족한 실정입니다"
"그래서 지금 상황은?"
"가장 급한 곳은 5개척마을입니다. 생산한 농작물과 육류, 가죽등 많은 상품들이 창고에 가득 있는 것으로도 모자라 경작지 근처에 쌓아두고 있는 실정입니다."
"거기 개척민들에게 좀 나눠주자"
"이미 수차례 무상 분배를 했습니다. 개척민들의 집집마다 곡식이 가득 차 더 이상 보관이 어렵다고 난리입니다"
"수확량이 정말 대단하긴 한가보구나"
"영주님 말씀대로 엄청났습니다. 땅이 너무나 기름지고 비옥하여 씨를 뿌리는 족족 크게 성장합니다. 비료를 주지 않아도 그 정도인데, 오크 도시에서 잔뜩 가져온 가축들로 인해 비료도 많이 공급할 수 있어서 수확량이 어마어마하게 늘어났습니다"
"곡식들로 가축들을 계속 먹이는 데도 곡식이 남아? 돼지들이 엄청나게 먹어 치우지 않나?"
"돼지 사료용으로 재배한 옥수수는 워낙 수확량이 좋아, 돼지들을 먹이고도 충분히 남았습니다. 옥수수가 너무 많이 수확 되어 처치 곤란이라 당장 옥수수를 다 베어버리고 다른 것을 심어야 할 상황입니다"
원래 아드리아에는 옥수수가 없었다.
종자 자체가 없었기에 재배하지 못했는데, 저주 해골 부족을 정벌하면서 그들이 돼지 먹이로 사용하는 옥수수 종자들 대거 입수해 5마을에서 재배를 시작했다.
옥수수는 곡식류 중에서 가장 가성비가 좋았다.
들이는 노력도 적고 필요한 물이나 비료도 적은 것에 비해 수확량은 엄청났다. 그랬기에 가축의 사료로 딱 적당한 작물이었다.
하지만 아직 이세계 사람들에게 익숙한 작물이 아니었기에 요리법이 거의 없었고 밀에 익숙한 서대륙 인간들은 옥수수를 잘 먹으려 하지 않았다.
때문에 동물들이 먹지 않으면 처치 곤란이 되어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현재 5마을에 새로 제작한 운송용 골렘을 투입에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아시다시피 악슬로틀과 소금바위에서도 많은 양의 물품들이 쏟아지고 있기에 현재 운송용 골렘으로는 문제 해결이 어려운 상황입니다"
"골렘 말고 일반적인 수레나 말을 이용한 인적 자원 활용은 어렵나?"
"쉽지 않습니다. 가장 문제 되는 것이 가도 입니다. 아드리아 영지 내부에도 가도가 끊어진 곳이 많고 잘 정비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아.... 물론 타 영지에 비해 4~5배는 큰 영지의 기본 크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괜찮아 편하게 이야기 해"
"예 영주님. 가도 상황이 나빠 일반적인 방법으로 물류 운송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가도가 정비 된다고 해도 지금 당장 많은 수의 수레나 마차, 인력을 공급하기 어려운 실정입니다"
"으음.."
라마르왕국에서 가장 영지가 큰 곳이 이곳 아드리아였다.
그러나 수도 근처의 영지들 보다 인구밀도가 현저히 떨어지는 곳이었기에 도로망이 허술할 수 밖에 없었다.
교통 상황은 똑같은데 영지의 경제 규모가 갑자기 커져 버리니 문제가 터져 나오고 있는 것이었다.
"외부의 상인들을 이용해 그들을 5개척마을까지 유도하여 상품을 매각하는 방법도 고려해 봤으나 검은숲에 대한 뿌리 깊은 공포심 때문에 외부 상인들이 오려고 하지 않습니다."
"외부 상인들은 지금 어디를 주로 방문하고 있나?"
"몰디아와 어촌마을입니다. 소금바위 마을은 영주님의 명에 따라 접근 금지 시켜 놓고 있습니다"
로빈은 외부의 상인들이 들어오는 것을 환영했지만, 아직 리자드맨의 군락을 그들에게 보이는 것은 시기상조라 판단했다.
물론 리자드맨에 대한 이야기가 왕국에 퍼져 나가는 것은 시간문제이긴 하겠지만, 그 시간을 최대한 늦추는 것이 좋을 거라 생각했다.
"판매는 무리 없이 잘 되고 있고?"
"그렇습니다. 일단 몰디아와 어촌마을로 상품이 공급되기만 하면 팔리는 것은 순식간입니다. 우리의 저렴한 해산물과 소금은 상인들의 눈을 불타게 만드는 최고의 상품입니다"
"소금 가격은 내가 지시한 대로 했나?"
"그렇습니다. 외부에서 수입해 들어온 소금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내놓고 있습니다"
"잘했다. 매력적인 가격으로 최대한 많은 상인들이 우리 소금을 이용하게 하는 것이 최우선이야, 단기간의 이득을 쫓으면 안된다"
"알겠습니다"
"소금은 주로 어디서 판매하고 있나?"
"몰디아에서 거래하고 있습니다. 골렘을 이용해 운송하고 있는데, 거래량이 늘어나면서 이것도 점점 힘들어지고 있습니다"
로빈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문득 좋은 생각이 하나 떠올랐다.
"영지 지도를 가져와라"
"예 영주님!"
로빈의 지시에 집무실 문에서 대기하고 있던 시종이 빠르게 움직였다.
시종이 향하는 곳은 내무관 집무실이었다. 아드리아의 주요 거점이 모두 표시된 지도는 극비사항이라 내무관이 직접 작성하고 관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똑똑
"내무관입니다"
"들어와라"
시종의 연락을 받은 내무관이 직접 지도를 가지고 집무실로 찾아왔다.
"지도 찾으셨다고 해서 가지고 왔습니다 영주님"
"펼쳐봐"
"예"
내무관은 집무실 탁자에 아드리아 영지 지도를 펼쳤다.
지도는 최근 로빈이 개척한 모든 곳이 표시되어 있는 최신 업데이트 버전이었다.
지도를 바라보는 로빈의 눈에는 아드리아 영지를 흐르는 강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검은숲을 가로질러 악슬로틀 방향으로 빠져나가는 에르강... 몰디아를 통과해 어촌마을로 빠져나가는 아드리아강...'
영지의 두 개의 큰 강과 그 지류들을 샅샅이 살피던 로빈이 이내 고개를 들고 내무관에게 질문했다.
"에르강은 유량이 많은 강이지?"
"예? 아.... 예! 그렇습니다. 유량도 많고 강폭도 넓습니다."
"아드리아강 정도의 강폭을 가진 지류가 몇 개 더 생긴다고 해도 에르강이라면 큰 문제 없겠나?"
"아.... 확신할 순 없지만, 에르강의 강폭이 아드리아강의 10배는 족히 넘습니다. 정확한 측정은 해봐야 겠지만 어쩌면 15배까지 될 지도 모릅니다. 그 깊이도 가늠할 수 없구요 그렇기에 지류가 몇 개 더 생긴다고 해도 에르강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입니다"
아드리아강은 부족한 아드리아의 토목 기술로도 다리를 세울 수 있을 만큼 강 폭도 크지 않았고 유속이 빠르지도 않았다.
물론 아드리아강도 바다에 맞닿는 하류로 가면 제법 강폭이 넓어져 다리를 세우기 힘들었지만 몰디아가 있는 중상류에는 사람이 헤엄쳐서 건널 수 있을 정도 수준이었다.
하지만 에르강은 거대한 강이었다.
지구와 비교하자면 아마존강이나 나일강에 비교할 수 있을 만큼 큰 강이었고,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고 강폭도 매우 넓어 다리를 세우는 것은 엄두도 못 낼 일이었다.
"실비아"
"예 영주님"
"요즘 어선 건조 상황은 어때?"
"어선은 이미 충분히 만들어 졌습니다. 더 만들어도 인력이 없어서 출항하지 못합니다. 안그래도 훌리오와 멘데스에게 새로운 작업을 무엇으로 줘야 할 지 논의 드리려던 참이었습니다"
"잘 되었다. 아주 딱딱 맞아 떨어지는구나"
로빈이 웃으며 말하자 실비아와 내무관은 어리둥절했다.
그가 무슨 생각으로 이런 질문들을 하고 있는지 전혀 예상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운하를 만들자"
"운하...라고 하시면... 강과 강을 연결한다는 그 대공사 말씀이십니까?"
"오오 알고 있구나"
"그런건 쿠샨 같은 대제국에서나..... 아!"
운하 같은 대규모 토목사업은 왕국도 아닌 아드리아 같은 일개 영지가 진행할 일이 아니라고 말하려던 내무관은 지금 자신의 눈앞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인식하고 뒷통수를 얻어맞는 기분이 들었다.
'불의 비를 내려 저주해골 부족을 몰살 시키고, 리자드맨의 슬란을 잡아와 염전에서 노예로 부려 먹는 영주님이라면....'
내무관의 머릿속에 최근 짧은 기간 동안 로빈이 해낸 많은 일들이 떠올랐다. 골렘, 염전, 해적군도등등 어느 것 하나 상식선에서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었다.
"쿠샨 같은 대제국? 쿠샨이 운하를 만들었는가?"
"그렇습니다. 강과 바다를 연결하는 운하를 만들어 물류의 흐름을 원활하게 하였습니다."
"오오.... 그래? 이미 선례가 있으니 다들 더 잘 이해하겠군. 에르강과 아드리아강을 잇는 운하를 만들어야겠다. 그리고 다른 주요 지역을 잇는 추가 운하도 만들고 말이다"
"운하를 만드시고 배를 이용해 물류를 해결하실 생각이시군요"
"역시 실비아. 척하면 척 아니겠느냐?"
"감사합니다. 그럼 훌리오와 멘데스는 운송용 선박을 건조하도록 명령하겠습니다"
"그래. 운하 내부를 이동하며 물류를 담당한 선박을 만들어야 해. 선박은 그들이 만든다 치고.... 운용할 선원들은 어떻게 하지?"
"군도에 한번 다녀오시는 건 어떻습니까?"
"군도에?"
"예. 신선한 식량을 거래 조건으로 선원들을 좀 구입해 오시지요. 군도에는 배를 몰 줄 아는 노예들이 꾸준히 잡혀옵니다"
"식량을 거래 조건으로? 군도는 식량 많지 않아?"
"생각보다 넉넉하지 않습니다. 자체 생산이 적고 약탈에 의존하기 때문에 변동성도 심해 가격이 널뛰기도 하구요"
실비아의 말을 들은 로빈은 지난날 카시드가 제안했던 내용이 떠올랐다.
'항구 하나 지어 달라 했었지?"
여러 인재들과 물품들을 훔쳐간 것을 군사 동맹과 함께 항구 하나를 개항하는 조건으로 퉁쳤다.
이후 너무 바쁘게 움직이다 항구 만드는 것을 깜빡하고 있었는데 이참에 선원들도 얻고 항구도 하나 만들어서 슬슬 바다를 통해 경제를 성장 시킬 준비를 해야 하지 않나 싶기도 했다.
"좋아. 나중에 카시드 한번 만나러 가야겠군"
"잘 생각하셨습니다"
"그럼 일단 운하를 어떻게 만들지 논의 해야겠다. 이건 중요한 일이니 가신들을 다 불러 모아서 논의하도록 하자. 호출해라"
"예 영주님!"
로빈의 명령이 떨어지고, 내무관과 실비아는 가신들을 불러 모았다.
일단 몰디아에 머무르고 있는 마르틴과 앤슨, 내무관 재무관 그리고 일이 없어 휴식하고 있던 훌리오와 멘데스는 로빈이 직접 어촌 마을로 날아가 데려왔다.
마지막으로 안술러프가 자신을 데리러 온 실비아를 태우고 터프하게 골렘을 운전하여 몰디아 영주성에 도착했다.
아직 안술러프가 집무실로 들어오지 않은 그 시간, 집무실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경직된 자세로 로빈의 말을 들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로빈은 자신이 직접 하늘을 날아 데려온 훌리오와 멘데스를 보고 말을 걸었다.
"가족들과 지내니 좋나?"
"예 영주님. 신경 써 주신 덕분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
"다행이군"
훌리오와 멘데스는 연신 로빈에게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그들은 최근 소금바위 마을 건설 작업에 동원되어 리자드맨들과 함께 마을 건설을 했었다.
그 곳에서 소문으로만 듣던 리자드맨의 우두머리 슬란이 로빈에게 깍듯하게 고개 숙이는 모습을 보고 다시 한번 그의 능력에 감탄과 함께 두려움을 느꼈다.
'충성도가 좀 더 올랐네? 둘 다 지내기가 나쁘지 않나보군'
그런 그들에게 군주의눈을 시전한 로빈은 상승한 충성도를 보고 이곳 생활이 좋아서 충성도가 올랐구나 생각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영주님."
"아니다. 운전해서 온다고 수고했다. 어서 앉아라"
"예 알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도착한 안술러프와 실비아가 자리에 앉자 로빈은 내무관에게 눈짓으로 명령했다.
"자. 그럼 제가 오늘 여러분이 모인 이유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내무관은 집무실 탁자 가운데에 펼쳐져 있는 지도를 가리키며 모두에게 말했다.
"영주님께서 우리 영지의 물류 흐름을 개선하기 위해 운하를 만드시기로 결정하셨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가장 효율적인 운하 길을 논의하고 결정하도록 하겠습니다"
운하라는 말에 가신들은 조금 놀랐으나, 로빈이 직접 결정했다는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운하의 조건은 검은숲의 개척마을과 악슬로틀, 소금바위, 몰디아, 어촌마을을 모두 잇는 길이어야 하고 향후 개척 될 검은숲을 가장 잘 활용할 수 있는 길이어야 합니다"
내무관의 조건은 꽤나 까다로웠지만 절대 만족 시킬 수 없는 조건은 아니었다.
"그럼 논의를 시작하겠습니다"
회의가 시작되고 가신들은 저마다의 경험과 논리를 가지고 여러가지 안을 내놓았다.
제법 격론이 오간 끝에 최종적으로 합의된 운하의 물길이 지도에 푸른 선으로 표시되었다.
에르아 운하
로빈이 푸른 선으로 표시한 운하 길 위에 적은 이름이었다.
에르강과 아드리아강을 잇는 다고 해서 지은 명칭이었고 앞으로 아드리아 영지의 물류 흐름을 책임질 길의 이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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