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도의 주인이 바뀌는 날 (1)
"오랜만이군"
"잘 지냈나?"
"나야 뭐 항상 똑같지"
이름 : 카시드
직업 : 해적군도의 제왕
능력 : S급 전사, A급 해적
전투 : 3455
항해술 : 988
충성도 : -31 (미등용)
잠재력 : 89,664
로빈은 군도에 도착하자마자 카시드를 만나러 왔다.
오랜만에 만난 그의 능력은 몇 년 전과 크게 변한 것이 없었다. 다만 이제 숫자로 확인할 수 있는 그의 잠재력이 아드리아의 기사들과 현격한 차이가 있음을 확인할 순 있었다.
"옆에 계신 아름다운 여성은 누구실까?"
"에르트라스입니다. 로빈님의 충실한 부하이지요"
"허허 부하라기 보단 동반자에 가깝지"
자신을 부하라 소개하는 에르트라스를 로빈은 따스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동반자라 말했다.
이에 에르트라스는 기분이 좋아 졌는지 웃음을 숨길 수 없었다.
"왜 남의 집에서.... 사랑을 나누려면 몰디아에서 하지 그러나?"
둘의 시선 교환을 본 카시드가 어이 없다는 듯 말했다.
"오늘 중요한 용무가 있어서 왔네. 앉아서 이야기 할까?"
"그러지"
로빈이 먼저 푹신한 소파에 비스듬히 앉았고 마치 제집처럼 행세하는 로빈을 보고 카시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자리에 앉았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내 휘하로 들어와라 카시드"
"뭐?"
농담으로 듣기에도 기분 나쁜 말이 들리자 카시드의 표정이 굳었다.
물론 로빈의 표정은 전혀 농담하는 사람의 표정이 아니었다.
"내 왕국 코 앞에 있는 해적 소굴을 더 이상 방치 할 순 없다."
".........!!"
휘하로 들어오라는 말이 농담이 아님을 다시 한번 확인 할 수 있게 로빈은 해적 군도를 가만히 두지 않겠다고 했다.
카시드는 굳은 표정으로 로빈을 노려 보며 잠깐 생각에 잠겼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해군도 제대로 없는 아드리아가 군도를 어떻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해군이 뭐 필요가 있나? 내가 있는데"
"자네가 날 뛰는 걸 내가 두고 볼 것 같나?"
카시드는 가만두지 않을 것이란 말을 하며 로빈의 옆에 다소곳이 앉아 있는 에르트라스를 바라보았다.
'보통 여인이 아닐 것이다'
자신과 비슷한 전투력을 가진 로빈이 아무 생각 없이 이런 말을 내뱉을 리가 없었다.
믿는 구석이 있을 것이고 그것이 지금 보이는 에르트라스 일것 같았다.
"보아하니... 이 여인도 너와 같은 마도사 인 것 같은데...."
"마도사는 아니지만, 마법에는 도가 텄지"
"둘 이서 나를 어떻게 해 보려고 작정하고 왔군"
카시드는 그녀가 로빈과 비슷한 마법 실력을 가지고 있다면 자신에게 승산이 없다고 판단했다.
'마법사가 흔한 존재들도 아니고... 그리고 오슬릿 항구를 지키던 마법사 정도의 실력이라면 해볼만하다'
하지만 로빈과 같은 마도사는 서대륙 전체를 뒤져야 쿠샨에 한 두 명 있을 뿐이었고 다른 곳에서는 비슷한 소문을 들은 적도 없었다.
"무슨 그런 섭섭한 소리를 하나? 힘으로 굴복 시키려면 일대일 대결을 해야지. 그래야 자네도 승복하지 않겠나?"
"하하하 승복? 그런 걸 해본 지가 언제인지 모르겠다만 일대일 대결이라면 언제든 환영이지"
"그럼 시간 끌 것 없이 바로 진행하지. 자네가 내 휘하에 들어오려면 이런 과정이 꼭 필요할 것이니"
로빈은 탁자에 놓인 와인을 한 모금 마신 뒤 자리에서 일어나 거실 중앙으로 이동했다.
카시드도 함께 일어나 로빈의 뒤를 따랐고 에르트라스는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자리에서 둘을 바라보고 있었다.
"전과 똑같이 하자"
"좋다"
"들어와라"
로빈이 들어오라 말하자 카시드는 마력을 끌어올렸다.
'전력으로 부딪혀 단시간에 제압한다'
로빈과의 싸움에서 장기전으로 가면 이길 수 없다는 것이 카시드의 생각이었고 정확한 판단이었다.
이미 로빈의 마력이 마르지 않는 바다와 같다는 것을 카시드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타아앗!"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서있던 카시드는 갑자기 힘을 폭발 시켜 로빈을 향해 뛰어 들었다.
같은 마스터급이라도 제대로 피하기 힘들 정도로 전력을 다한 돌진이었고 얼마나 빨랐는지 출발하는 지점에서부터 로빈에게 이어지는 잔상이 생겨났다.
'베었다!'
그런 빠른 속력 때문이었을까?
카시드의 붉은 오러가 넘실거리는 곡도는 로빈의 허리를 반으로 갈라냈다.
-후우우웅!
허나 살과 뼈가 갈라지는 느낌 없이 그저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베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들었고 로빈 인 줄 알았던 그 형체는 연기처럼 사라졌다.
"하하하 카시드야 어딜 보고 있느냐?"
그 때, 카시드의 뒤에서 로빈의 목소리가 들렸다.
카시드는 재빠르게 뒤를 돌아 로빈을 바라봤는데 로빈이 3명이었다.
로빈이 사용한 마법은 일루시네이션이라는 환상마법이었다.
환상 마법 중에서도 기본 마법이긴 했지만 공부의 깊이가 얼마나 깊은지, 마력의 힘이 얼마나 큰 지에 따라 활용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마법이었다.
"잔재주가 늘었군"
"잔재주라니.... 환상 마법이라고 들어 봤나?"
"그래 잔재주"
"그 잔재주에 속아서 곡도가 힘차게 휘둘러 졌지?"
"타아앗!"
카시드는 3명의 로빈 중 입을 열어 자신의 말에 대답하고 있는 가운데 로빈을 향해 돌진했다.
물론 함정일 수 있지만, 이럴 때일 수록 오히려 단순하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후우웅!
하지만 이번에도 곡도가 지나가자 로빈은 연기처럼 사라졌다.
카시드는 바로 연결 동작으로 방향을 틀어 오른쪽의 로빈을 향해 곡도를 휘둘렀다.
-후우웅!
또다시 곡도는 허공을 가르며 연기만 만들어 낼 뿐이었다.
"공수는 교환되어야 재미지"
카시드의 정수리 위에서 로빈의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로빈 5명이 일정한 간격으로 서서 각각의 주문을 완성 시킨 뒤 카시드에게 날리고 있었다.
-콰앙! 쾅! 캉캉!
로빈의 다섯 신체는 각각 열화탄, 체인라이트닝, 프로즌오브, 포이즌애로우, 플레어마법을 카시드에게 동시에 쏟아부었다.
카시드는 곡도에 오러를 극한 까지 끌어올려 빠르게 돌리며 마법들을 모두 막아냈지만, 열화탄과 플레어 때문에 자그마한 불씨가 몸에 붙었고 체인라이트닝 때문에 약간의 스파크가 곡도에서 튀었다.
그리고 프로즌오브 때문에 오른쪽 팔꿈치가 살짝 얼어 붙었고, 포이즌애로우 때문에 얼어 붙은 팔꿈치의 색깔이 보라색으로 변하고 있었다.
"흐아아아압!"
카시드는 마력을 순환 시키며 오른팔에 스며든 냉기와 독기를 외부로 뿜어냈다.
그러자 동상에 걸린 듯 마비되려 했던 오른팔이 제 기능을 되찾았고, 몸에 붙은 불씨는 가벼운 움직임 몇 번으로 털어냈다.
"어때? 지난 번과 많이 다르지?"
".......!!"
카시드가 전혀 눈치 채지 못했는데 로빈이 그의 바로 등 뒤에서 귀에 다 대고 속삭이듯 말했다.
-후우웅!
바로 몸을 회전 시키며 곡도로 로빈을 베었지만 이번에도 연기만 만들어 낼 뿐이었다.
"하하하 자네 화가 많이 났군"
다섯 걸음 정도 떨어진 곳에서 로빈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공중에 뜬 상태로 팔짱을 끼고 자신의 환영에 곡도를 휘두르고 있는 카시드를 보며 말했다.
"환영이 마법도 쓰나?"
"물론"
"원래 환영은 그저 환영일 뿐이지 않나?"
"그건 일반적인 경우고, 나는 일반적이지 않으니까"
"성가시군"
"하하 역시 의무교육을 받지 않아서 그런지 표현력이 부족하네. 이럴 땐 성가시다란 표현보다 힘겹다. 곤혹스럽다. 같은 표현이 더 적절하지"
교육을 들먹이며 못 배워서 그렇다는 말을 들어도 카시드는 별로 화나지 않았다.
그는 명문가의 자제였기에 어렸을 때부터 가정교사에게 많은 교육을 받았었고, 배움에 대한 콤플렉스는 전혀 없었다.
다만 로빈의 깐족거리는 태도는 확실히 카시드의 평정심을 무너트리고 있긴했다.
"흐아압!"
카시드는 다시 정공법으로 로빈에게 돌진했다.
그의 공격은 팔짱을 끼고 웃고 있는 로빈에게 그대로 적중했으나 이번에도 연기가 피어올랐다.
'여기!'
그 순간, 카시드는 자신의 육감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곡도를 집어 던졌다.
붉은색 오러를 잔뜩 머금은 곡도는 마치 부메랑처럼 공기를 가르며 날아갔고 공교롭게도 그곳에 로빈이 서 있었다.
-카아아앙!
"오호!"
하지만 곡도가 로빈의 몸을 두동강 내지는 못했다.
자동적으로 시전 된 풍벽이 날아온 곡도를 막아냈다.
"어떻게 알았지?"
"찍었다"
풍벽 뒤에서 싱글싱글 웃는 로빈이 술래잡기에 잡힌 술래 마냥 물었다.
"하하하 하긴 답을 못 찾으면 찍어야지"
풍벽에 막혀 바닥에 떨어진 곡도를 다시 주워 든 카시드는 오러를 끌어 올려 풍벽을 힘차게 내리쳤다.
-콰아앙!
옛날에도 한번 겪어본 풍벽이기에 외부의 몇 개를 찢어버릴 생각으로 휘두른 곡도였지만 그 때와 느낌이 완전 달랐다.
풍벽을 찢기는 커녕 엄청난 반탄력에 곡도가 튕겨져 나왔고 카시드의 무게 중심까지 흔들릴 정도였다.
"좀 다르지?"
"........."
"안티 매직 쉘, 매스 프로텍트, 키네틱 필드등을 섞어 만든 새로운 풍벽이지. 옛날에 윈드 쉴드와 매직 쉴드로만 구성된 것과 아예 격이 다르다고"
카시드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지만 로빈은 그가 듣던 말던 설명을 이어나갔다.
새로운 풍벽은 대마법 방어, 물리 방어, 속성 방어등이 모두 갖춰진 그야말로 방어 마법의 결정체였다.
원래 하나하나가 마력을 엄청나게 소모하는 고위 마법이었지만, 마력 소모는 의미 없는 옵션일 뿐인 로빈에게는 수식에 모조리 집어 넣는 일이 어렵지 않았다.
"참고로 풍벽은 이렇게 사용할 수도 있지"
로빈은 카시드의 주변으로 풍벽을 소환했다.
그리고 천천히 풍벽의 크기를 줄이며 카시드를 압박해 들어갔다.
"흐아아압!"
-콰앙! 콰앙!
풍벽 안에 갇힌 카시드는 곡도에 남은 마력을 쏟아 부은 뒤, 힘껏 휘둘렀다.
그러나 풍벽은 꿈쩍도 하지 않았고 마치 고철 공장의 압착 기계처럼 천천히 카시드를 조여 들어갔다.
"으아아아!"
동작이 제한 될 정도로 풍벽이 작아지자 카시드는 곡도를 내려 놓고 온 힘을 다해 풍벽을 밀어 내려고 했다.
그의 움직임이 애처롭고 안쓰러워 보일 만도 한데 로빈은 실실 웃으며 그 모습을 재밌다는 듯 바라보고 있었다.
"으아아압!"
카시드는 생각을 전환해 바닥을 힘차게 밟았다.
풍벽이 없을 것으로 예상되는 바닥을 뚫어 탈출하려는 생각이었다.
"그 정도로 허술하진 않지"
하지만 바닥을 박살 내도 그 안에 숨겨져 있던 풍벽을 발견할 뿐이었다.
카시드는 발에 전해지는 반탄력을 느끼고 다시 한번 힘을 줘 다시 한번 밀어내 보려고 노력했다.
"아무리 힘써봐야 그거 안 밀린다 카시드"
풍벽 밖에서 웃으며 말하는 로빈의 말은 카시드의 귀에 들리지도 않았다.
어느새 무릎을 필 수도 없을 만큼 풍벽 안에 갇혀 버린 그는 이제 제대로 힘을 쓸 수도 없었다.
"일단 여기서 정지"
큰 여행 가방 정도의 사이즈로 작아진 풍벽 안에는 분함을 이기지 못하고 눈이 붉게 충혈 된 카시드가 있었다.
로빈은 풍벽을 더 줄이는 것을 멈추고 자신의 눈 앞으로 끌어 당겼다.
"우리 군도의 제왕께서 화가 많이 나셨군"
풍벽 안에서 죽일 듯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카시드를 웃으며 바라보는 로빈은 손가락으로 풍벽을 톡톡 두드리며 카시드의 신경을 더 긁었다.
"내 부하가 되라 카시드"
전투를 시작할 때 했던 제안을 다시 건넸고 카시드는 오른손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 올리는 것으로 화답했다.
"허허 이 친구.... 말이 잘 안 통하는데... 이건 어떨까?"
로빈은 사이킥 에너지를 끌어올려 오랜만에 정신지배 마법을 시전 했다.
로빈의 영혼에서 쏟아지는 사이킥 에너지가 카시드의 정신으로 파고 들려하자 카시드도 남아 있는 마력을 쥐어 짜내 방어를 시도했다.
"하하 안되지.... 마음을 열어 보거라 카시드야"
"으으으.......!!"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사이킥 에너지가 정신을 파고 들기 전에 카시드가 행동에 나섰겠지만 지금은 꼼짝 할 수 없게 완전히 포박 된 상태라 마력으로 저항하는 방법 뿐이었다.
하지만 마력으로 로빈을 이길 수 있는 존재는 아무도 없었다.
결국 카시드의 방어가 뚫리고 그의 눈이 슬슬 뒤집어 지는 것과 동시에 뇌속의 해마에 사이킥 에너지가 도달했다.
로빈은 카시드의 기억을 훑기 시작했다.
세상에서 가장 큰 강과 그 강이 범람하며 만들어지는 비옥한 대지.
황금색 성벽과 쭉 뻗은 운하가 연결된 서대륙 최고의 항구가 있는 곳.
온 세상의 물건이 모여들고 또 세상으로 제국의 물건을 뿜어내는 최고의 도시.
쿠샨 제국의 수도 쉬라즈에서 카시드의 기억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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