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쓰는 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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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루틀
작품등록일 :
2024.03.08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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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07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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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03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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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예감

DUMMY

502호가 이사 나가고 꼭 3일을 청소하고 도배한 뒤 해외 팀이 이사 들어왔다.


나는 이사를 기점으로 사무실 책상을 싹 모듈로 바꿨다. 식후 2시간은 무조건 일어서서 일할 것.


“재벌 형, 왜 돈을 그렇게 쓰지?”

“허리 힘 키우고, 다리 힘 키워. 오래오래 쓰려면 서는 습관 키워.”

“야, 소파도 들어오냐?”


내가 방으로 쓰는 곳을 박용구 대표의 방으로 만들어 책상 하나 놓고 그 앞에 소파를 놓았다. 그래봤자 4인 석인데, 퍽 모양은 나왔다.


“나 외로운데. 책상을 하나 더 놓아주지.”


이 동네 사람들은 다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방 준다고 하면 싫다고 하고, 외롭다고 하고, 절대 혼자 안 들어간다고 한다.

박용구까지 그럴 줄 몰랐는데 정종현이 우격다짐으로 밀어 넣었다.


“들어가. 대표 주제에 말이야.”

“누나들 놀러 오면 여기가 딱이긴 하겠다.”

“도윤이 이사 나가면 그 방에서 놀 거 같은데. 여기로 오겠나?”


최근 누나들이 노트북 들고 온다. 일한다고 와서는 책 읽다가 수다 떨다가 자기들 사랑방처럼 마음껏 사용 중이다.


늘 똑같이 썼는데 문단 데뷔 8년에서 12년이 되어 처음으로 작가처럼 사는 것 같다면서 행복에 들떠 다닌다.


―가난이 문학의 특권이라고? 나 가스라이팅 당했던 거였어. 더 잘 쓰고 싶어.


예전보다 책이 더 팔리고, 인세는 조금 더 많이 들어온다. 조금 넉넉한 재화를 생산하는 일이 신나다 보니 자꾸 쓴다.

원래 무엇이든 성적이 잘 나오면 재미있는 법이다. 작가들에겐 인세가 성적이다.


내가 이사 나가면 은희와 같이 안으로 들어가라고 했다면서 나영은 문짝을 떼고 들어갈 궁리 중이었다. 문 안으로는 절대 안 들어간다고. 문제는 전세라서, 남의 집 문을 떼도 되나 고민이 깊은 것이다.


“이사 나갈 때 달아놓고 나가면 되지.”


정종현의 말에 그녀들은 둘이 노닥거리면서 일하고, 글 쓸 꿈에 부풀었다. 처음 스터디할 때만 해도 이런 삶은 꿈도 꾸지 못했다고.


이사를 마치고 함께 인근 갈빗집으로 저녁을 먹으러 간 우리는 우선 배를 채웠다.

정종현과 박용구, 김은희는 소주를 깠고 심준구와 나영은 맥주, 운전해야 하는 부건과 술 끊은 나는 사이다를 깠다.


내가 술 안 먹는 이유를 모두 알기에 내 앞에선 모두 술을 조심한다.


나는 여기서 작가 동네에서 만들고 싶은 책을 털어놓았다.


“방원선 선생님 전집에 우리 작가들 책 만드는 거 말고 더 만들고 싶은 책이 있는데.”

“너무 많은 걸 만들려고는 하지 말자. 우리 본진은 작가다.”

“작가의 시간을 놓치면 그건 안 되지. 우리 원칙이잖아.”


해돋이 후 식당에 들어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1월 한 달을 작가의 시간을 살자고 하면서 나온 말이다.


―3년 동안 신간 한 권도 못 내면 편집 진에서 빼자. 작가로 돌아가서 책 쓰고, 그리고 돌아오는 거로 해. 우리는 정체성 놓치는 순간 아작 난다.


심준구 얘기였다.

내가 걱정했던 걸 심준구가 명확하게 알고 있었다. 3년에 한 권. 나는 몇 년 주기로 책을 내야 작가로서 본위를 안 잃으려나? 하면서 계산기를 두드리던 중이었다.

심준구의 말을 듣고 보니 3년에 한 권이 딱 적당해 보였다.


시집은 80편 이상을 모아야 하고 단편은 8편을 모아야 한다. 장편은 구성에 구멍이 생기면 안 되기에 작가 손에서 최소 8~10회 이상 본다. 그 시간이 매우 치열하다.


―그치. 작가로 살기 위해 만든 건데, 평생 책 한 권 내고 작가입네 하면서 남의 책 계속 만드는 건 아니지. 3년 딱 좋다.


김은희가 냉큼 동의하면서 대의가 모였다.


1월 한 달 정말 글만 쓰고 살다가 우리는 최근 신정수와 도은주의 책을 만지는 중이다. 3월 둘째 주면 서점에 깔린다.


그다음 원고를 결정하기 전에 나는 꾸준히, 천천히, 느리게 만들어 갈 시리즈를 만들고 싶었다. 반대하면 내 사비로라도 만들고 싶었고.


“원칙 지키면서 우리한테 도움 되는 책을 만들고 싶은 거지. 낼 원고 없어서 적당히 합의 보면서 내는 게 아니라 우리는 낼 책을 계속 가지고 가는 거.”

“그런 게 있나?”

“종현이 형, 세계 문학 전집은 줄 세운 기준이 뭐야? 1번이 완전 고전인데 그다음은 또 실존주의로 넘어오잖아.”

“나는 기획에 참여하지 않아서 모른다. 나는 번역가로 모집된 사람이니까.”


노벨문학상은 세계 문예 사조의 흐름을 한눈에 꿸 수 있다.

세계의 문예 사조는 흐름이 약간씩 차이를 보인다. 독일이 낭만주의를 끝내고 표현주의를 맞이할 때 한국은 계몽주의를 맞이했다. 영국이 신고전주의를 불러들일 때 프랑스는 귀족 문학이 활개 쳤고.


이렇게 다른 중에도 각국을 대표하는 문학을 한 권씩 정해 노벨은 그 시대를 기록해 왔으니 이 책들을 1회부터 쭉 정리하면 세계 문예 사조가 나올 법도 같았다.

책 후기에 문예 사조 흐름을 조금 재미있게, 재치 있게 짚어줄 작가만 잘 찾으면 퍽 의미있는 작업이 될 텐데 박용구가 일이 많다.


사후 후손에게 저작권이 넘어간 사람들을 일일이 찾아야 할 테고, 저작권 소재를 밝혀야 할 테고, 현존하는 작가들과는 번역, 출간 계약서를 써야만 한다.


나는 박용구를 바라보았다.

그가 해줘야 할 일이었다.


“뭔데? 무슨 말을 하려고 전집을 찾아?”

“노벨상하고 콩쿠르상 받은 거. 딱 두 개. 시리즈로 내는 거.”

“그건 돈으로 가져와야 하는데.”

“용구 형이 알아봐 줘야지.”

“도윤아, 그건 세다.”

“해마다 노벨상 받은 작품이 노벨상 시즌에 반짝하고 팔리잖아. 현음에서 세계 문학 전집을 만들고 있고, 문비에서도 만들 준비 중인데, 우리는 시리즈로 만들어 봤자 두 개 합쳐서 200권 정도야. 만드는 동안 또 늘겠지만, 이후론 1년에 두 권 더 만드는 거지.”

“내가 시리즈 만들다 왔는데 또 시리즈 만들게 생겼네.”


정종현이 환영의 한숨을 내쉬었다.

일이 많아진다는 뜻인데.


“용구가 가능하게 만들어 와라.”

“그리고 딱 하나만 더.”

“야, 우리 책 너무 많이 만들지 마.”

“아니, 이건 내가 할 일인데. 니체 전집.”

“니체?”

“형, 진짜 니체냐? 니체 왜 그렇게 좋아해? 그때도 니체라고 그러더니.”


부건은 실실거리며 농담한다. 내가 가장 자주 꺼내는 말의 비유가 니체다 보니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다는 뉘앙스였다.


“번역들이 되게 자의적으로 되어 있어. 꽤 성실하게 하긴 했는데, 다시 보니까 의역을 한국식으로 해놓았는데 살짝 틀어진 부분들이 있거든. 그거, 제대로 만들고 싶어.”


번역을 새로 싹 다시 하고 싶었다.

내가 독일어로 쓴 글들을 한국어로 변환하는 일이다. 독일어로 된 원서를 한 권씩 사다 보니 니체 관련 책들까지 다 샀는데 거기엔 해설을 곁들였는데 조금 더 적확하게 전달할 필요가 있었다.


“소설 하나 쓰고 번역하고, 소설 하나 쓰고 번역하고. 나는 그 루틴으로 당분간 보내고 싶거든.”

“니체야 저작권 소멸이라 꼴리면 만드는 거고. 그건 진짜 얼마 안 들 거니까 나는 콜.”


인세 나갈 일도 없다.

번역료 나갈 일도 없고.

내가 번역한 니체를 읽고 싶은 심준구는 당장 고개를 끄덕였다. 발행인이 동의하면 가는 거지, 뭐.


“선화 누나가 함정은 선생님 원고를 가지고 온다는데.”

“이숙이 누나는 김희경 신작하고 허선유 신작 가지고 온대. 김희경 작가랑 도윤이랑은 친하지 않나?”

“김희경 작가 전작에 해설 달았지. 출판사에서 원고 받아서. 개인적으로 본 적은 없어.”

“조희 누나는 강혜선 시인 어떠냐고 묻던데.”


허선유 시인의 신작은 기대된다.

강혜선 시인은 훗날 시인들의 노벨상이라는 영예로운 상을 받는데, 내 생각은 글쎄다.

그로테스크하며 형이상학적이고 전위적인 시를 쓰는데 그게 사유의 힘인지 의도한 해체인지 나는 이따금 헛갈렸다.


시든 소설이든 이해하기 쉽고 재미있어야 한다는 대원칙에서 몹시 벗어난 시이다.


“보고 결정해야지. 강혜선이라는 이름만으로 덥석 물 수는 없지. 함정은 선생님도 그렇고. 글이 늙었으면 그건 노케이.”


나는 바로 정리했다.

원고는 나와 심준구 선에서 먼저 정리한다. 다 같이 보지만 결국 결정은 두 명이 한다.

예전보다 30~50% 이상 늘어난 수익에 누나들 주변의 작가들이 죄다 원고를 들이밀겠다고 전화하는 모양이다.

우리는 사무실 번호 없고.

각자 전화번호는 우리가 알려주겠다는 말로 최소화했다. 다 알려주면 전화 받다가 하루가 간다.


그런 이유로 피했더니 현이숙이 특히 괴로운 모양이다. 내 책에 수필을 넣고 받은 인센티브 1억은 작가들 사이에 최대 화제가 되었다. 어떻게든 우리와 연결되어 그들의 책도 해외로 가지고 나가고 싶은 욕망은 현이숙 주변으로 들끓었다.


“누나들한테 사외 에디터 비를 줘야 할 거 같다. 이 정도면 누나들이 매니저야.”

“원래 우리 고문이잖아. 1년 고문료를 주자. 위촉장하고.”


크크큭.

부건이 즐겁게 웃는다.


“등단이 필생의 목표면서, 닿을 수 있을까? 하면서 머리 터지던 날들이 있었는데, 도윤이 형 전역하고 만나면서 나는 매일 꿈 같아. 그땐 작가님들 사이에 앉아있는 것만으로 심장이 벌렁벌렁했었는데.”

“야, 작가들 다 후져.”

“어. 준구 형 보면서 알았잖아.”

“너, 이리 와. 업고 놀자~.”

“헐!”

“작가들이 이렇다고.”


뻔뻔하게 리듬을 실어 농담하고 심준구는 맥주를 바쁘게 비웠다. 자기도 쑥스럽거든.


“용구가 시리즈 알아봐 주고. 네가 가지고 오면 우리는 일하니까. 그 사이에 도윤이 책 아이돌 번역 끝낼 거야.”

“종현이 네가 번역할 동안 나는 내 장편 끝내고, 감수할게. 읽는 건 금방 해.”


영어로 번역해서 미주 시장에 내놓으면 세계 출판사에서 출간 제안이 온다. 각국에서 각국 언어로 번역해서 출간하는 시스템이다.


대신 번역한 원고를 우리에게 보낸다.

이렇게 번역했고, 이런 표지를 쓴다고.

이조차 해외 출판이 대리하고 우리는 최종 출간 사인을 낸다.


***


작은 결혼식으로 직계 가족과 가까운 지인들-문인 일색으로 모아놓고 심준구와 장영린은 정식 부부가 됐다.

문단의 카사노바가 단 한 명의 여자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 채 그녀의 삶으로 들어갔다. 세상 가장 행복한 얼굴을 하고 자의적으로 걸어 들어가선 그 안에 자신을 묶었다.


“안녕하세요?”

“어, 네! 안녕하세요? 어떻게 오셨어요?”


한창 식이 진행 중인 때 정이듬이 와선 내 옆에 섰다. 나를 덕질하는 표정이 생생한 표정이었는데, 나는 지난 첫 만남 때 착각이거나 오버 씽크라고 여기며 애써 묻어 두었던 어떤 감정에 새로이 눈떴다.


사랑은 점쟁이도 아니면서 마치 미래를 보고 온 듯 많은 걸 확신하게 한다.

난, 이 여자와 연애라는 걸 하겠구나.

어쩌면 생각보다 오래 이 여자의 이런 눈빛을 대하면서 살겠구나, 하는 짐작들이 내 마음속에서 동그라미를 그렸다.


어떤 예감은 확신보다 맹렬하게 미래를 데려와 이건 분명한 현실이라고 우기기도 했다.


“작가님 저요, 부건 씨하고 스터디 열심히 하고 있어요.”

“네, 얘기 들었어요. 잘 되고 있다고요.”


부건이와 동갑이다. 동갑이다 보니 서로 존대하는 ‘-씨’를 붙이고 나머지 말은 편하게 한다고.

나보단 두 살 아래.


“재판은요?”

“큰아빠가 알아서 해요. 진술서 쓰라고 해서 두 개 썼어요.”

“잘 썼겠네.”

“그건 장담해요. 아마 진술서 공모전이 있으면 난 대상 받았을지도 몰라요.”

“이리 오세요.”


작은 결혼식이라 사람들이 몇 없어서 그녀가 외따로 되지 않게 챙겼는데, 그게 그녀의 마음을 건드렸나 보다.

자꾸만 눈이 내게로 와서 묶인다.


“이듬 씨 왔구나. 우리 스터디 멤버들 저쪽에 모여 있어. 저쪽으로 가.”


강훈직을 필두로 6명이 모여 있었다.

부건과 정이듬까지 8명.

나도 그곳에 섞이고 싶었으나 이내 정종현과 박용구 대표에게 잡혔다. 김은희와 최나영도 내 곁으로 왔고.

홍선화와 현이숙, 나조희, 백선희도 챙겨야 했다.


“영린이 아버님이 유도 국가 대표셨대. 유도 협회 부회장에 시의원이고. 바람피우면 죽는 거지.”


잘됐네.

지난 생, 원 없이 살았으니 이번 생에선 한 여자에게 충실하게 살아도 그 삶 또한 원 없을 테다.


입 다물고 있으면 니힐리스트처럼 자기 혐오에 빠진 양 무너진 표정을 물씬 풍기는 심준구는 안아주고 싶지만, 입 여는 순간 능청맞은 농담이 나와선 어안이 벙벙해질 때가 종종 있다.


“분위기 깡패시네요.”


어느새 정이듬이 내 곁에 와선 한숨을 길게 내쉬며 신랑, 신부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영린이 누나는 화려하게 생겼어요. 둘이 딱 맞아.”

“네. 맞다는 말이 맞네요.”

“재판이 안 좋게 흐르나요?”

“네? 아, 아니요.”

“왜 기운이 없어요? 스터디 멤버들이 버렸어요? 가래?”

“네. 우 작가님 옆으로 가래요.”

“저런. 누가요?”

“제가 가고 싶다고 칭얼거렸거든요. 그랬더니 꺼지래요. 그래서 냉큼 꺼져서 여기 왔어요. 그런데 왜 자꾸 부러우면서 서글플까요?”

“이듬 씨도 연애하면 되지.”

“하고 싶은 사람은 따로 있거든요.”


이렇게 대놓고 직진하는 것도 용기인데.

나는 확신 같은 예감을 뒤로 한 채 용기를 조금 더 두고 보기로 했다. 만남을 시작함으로 피폐해질지 건강해질지 그걸 가늠하고 싶은 것이다.

늘 사랑만 하면 피폐해졌으니까.


군대 가기 전에 사귀었던 대학 동기는 영장 나왔다는 말에 잘 다녀오라는 말도 없이 이별을 선언했다. 서로 기다리고, 기다릴 거라고 믿는 불안함을 자기는 견딜 자신이 없다면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돌아섰다.


입대 배웅? 그런 것도 없었다. 아주 깔끔하게 돌아섰다.


군대는 지옥이었고.

웃음을 지운 채 죽으라고 훈련에 몰입했다.

산으로 오르라고 하면 뛰어올랐고, 명중해서 맞추라면 맞췄다. 그러다가 특전사까지 갔다. 할 일이라곤 그것밖에 없었으니.


“언니들 사이에 있어요. 나는 할 일이 많아서요.”


부건의 차를 웨딩카로 만들어선 나와 부건에게 공항까지 딜리버리를 명했다.

사람 참 골고루 부려 먹는 형인데, 나는 이조차 기꺼웠다.


정이듬을 누나들 사이에 두고 나는 식사 준비, 폐백 준비, 웨딩 카 준비에 공항으로 가는 짐 가방까지 정리했다.


“준구 형은 진짜 손 많이 가.”

“오늘까지다. 내일부턴 해주지 말자.”


나와 부건이 뛰어다니는 동안 누나들 사이에 앉은 정이듬은 화제의 인물로 등극했다.

오혜림이 훔쳐 쓴 소설 원작자.

그녀가 스터디 중이라는 말과 함께 사이에 앉혔으니, 오혜림이 쓴 소설과 그녀가 쓴 소설의 다른 점과 같은 점을 집중해서 묻고 물을 테다.


누나들은 호기심을 감추는 법을 잘 모른다. 그게 좀 많이 귀엽다.

심심하진 않겠다.

홍선화가 특히 보듬어 줄 테다.


“근데 임신 초기에 비행기 타도 되나?”

“에엥?”

“어. 몰랐지? 형이 말하지 말라고 해서.”

“형한테만 말한 거야?”


자동차를 정리하면서 뒷좌석에 두었던 짐을 트렁크로 옮기느라 분주하던 부건이 우뚝 섰다. 표정엔 배신감이 한가득했다.


“전화 걸다가 나한테 걸렸어.”

“아. 그러면 패스. 소고기 찾아 먹고, 삼계탕 찾더니, 다 있어, 뭐가. 누나 몇 개월이래?”

“그때 초기라고 했으니까 3개월? 4개월? 정확히는 말 안 해서 모르겠는데.”

“완전 초기도 아닌 거네. 잠깐만.”


부건은 바로 제 엄마한테 전화 걸어선 이것저것 묻더니 “아, 그러면 다행이네. 알았어, 엄마.”하고는 끊었다. 그것으로 됐다.


“임신 7주, 8주 지나면 그때부턴 먼 거리 아니면 괜찮대. 어쩐지 가까운 데로 가더라. 하와이 타령하던 형이 말이야.”


4시간 거리.

아직 겨울인 이곳 날씨와 달리 한국의 5월 날씨 같은 곳.

그들은 길거리 음식 천국인 홍콩으로 여행 간다. 심준구로선 매우 아쉬운 장소일 텐데, 70층에 수영장이 있는 호텔, 그 하나로 그는 현재 헤벌쭉 상태였다.


신혼부부를 태워 공항으로 떠날 때까지 나는 내게 와서 머무는 눈길 하나로 햇살이 일렁이는 곳곳을 걸었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내일 오후 3시 05분에 다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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