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한 작가 천재 작가로 돌아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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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4.06.13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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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6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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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5 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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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윤 피디

DUMMY

정현에게서 들은 게 있어서 형민의 스튜디오에 제단이 있어도 지한은 놀라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한은 스튜디오 안에 무덤이 있을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그것은 병지도 마찬가지였기에 약간 넋이 나간 표정으로 형민이 건네준 차를 마시고 있었다. 스튜디오 벽에는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 작품이 걸려 있었다. 몸통이 새장인 사람과 집들이 줄지어 서 있는 거리로 사람들이 빗방울처럼 떨어져 내리는 그림이었다.


“윤 피디님, 누구의 무덤인가요?”


녹차를 한 모금 마신 뒤 지한이 이제는 침착해진 얼굴로 물었다.


“내 과거 작품의 무덤입니다.”


형민이 우울한 목소리로 답했다. 그리고 자신 앞에 앉은 지한과 병지를 보며 입가에 가련한 미소를 지었다.


“마침 두 분 잘 오셨네요. 장례를 혼자 치르는 것만큼 서글픈 일도 없으니까.”

“그렇습니까? 무덤을 만든 지는 오래된 것 같은데 아직 장례를 치르지 않았네요.”


지한은 무덤으로 눈길을 돌리며 말했다.


“......무덤을 만든 지는 6개월이 넘었죠.”

“그런데 장례는 아직 치르지 않았다는 거네요.”

“......자식 같은 작품을 아직 보낼 용기가 없어서......”

“그렇다면 굳이 작품 무덤을 만들거나 장례를 치를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아는 사람들이 과거를 떠나보내야 된다고 해서......”

“그런가요? 혹시 이 무덤 주인인 작품을 좀 볼 수 있을까요?”


그러자 형민은 지한을 지그시 보다가 슬며시 고개를 숙이며 뭐라고 중얼거렸다. 그런 형민을 보던 병지는 자기도 모르게 질색하는 표정을 지었다. 지한은 손으로 병지의 다리를 가볍게 쳤다. 그러자 병지는 퍼뜩 정신을 차리고는 억지로 입가에 미소를 장착했다.


알 수 없는 중얼거림을 끝낸 형민은 고개를 들었다.


“방금 작품과 접신해서 의사를 물어봤습니다. 유 작가에게 자기를 보여도 되는지 물어봐야 하거든요.”

“그러시군요. 혹시 작품이 제게 보이는 것을 허락했는지 물어도 될까요?”


형민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유 작가에게 보여도 된다고 허락했어요. 정현 씨가 소개한 사람이니까 믿음이 간다고.”

“고마운 일이네요.”


형민은 자리에서 일어나 먼지 쌓이고 낡은 서랍장으로 향했다. 그러고는 서랍장의 미닫이문을 열어 A4 용지 묶음을 꺼내 탁자로 돌아와 지한에게 건넸다.


“감사합니다.”


지한은 ‘부름’이라 적힌 A4 첫 장을 넘겼다. 그러고는 9 포인트 크기의 글자들 나열을 들여다보았다. 시나리오와 소설 형태가 섞인 ‘부름’은 의미를 알 수 없거나 추상적인 부분이 내용의 80퍼센트를 차지하고 있었다. 거기다 띄어쓰기를 무시한 문장이 많았고 알 수 없는 기호들로 반 페이지를 채운 곳도 있었다. 옆에서 형민의 작품을 힐금 보던 병지는 벙찐 표정을 지었다.


“혼신을 담은 작품입니다.”


지한이 ‘부름’을 다 읽고 나자 형민이 자랑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멋진 작품이네요.”


미소마저 지으며 지한이 말하자 병지는 ‘헉’ 하는 표정으로 지한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오로지 윤 피디님에게만 통할 작품이기도 합니다.”


그 말에 형민은 번들거리는 눈으로 지한을 노려보았다.


“뭐라고 했습니까?”

“윤 피디님에게 필요한 건 대중과 소통하는 기술입니다. 자신의 의도를 다른 사람에게 알맞게 전달하지 못해요. 그래서 ‘부름’을 연기할 배우나 같이 일할 스태프를 구하지 못한 게 아닐까요?”


형민은 얼굴을 험상궂게 찡그렸지만 차마 지한의 말을 반박하지 못했다. 씩씩거리고 있는 형민에게 지한은 단호하게 말했다.


“윤 피디님이 속한 분야는 이렇게 자기 혼자 예술을 하는 분야가 아닙니다. 훨씬 대중적인 분야입니다. 작품을 봐줄 대중뿐 아니라 같이 일할 사람도 필요한 분야라고요. 이런 식이면 절대 윤 피디님이 아끼는 작품을 세상에 내놓지 못할 겁니다.”


형민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해졌다. 그는 손가락으로 지한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나가! 당장 내 앞에서 꺼져!”


형민의 폭발에도 지한은 당황하지 않고 가방에서 메모지를 꺼내 이름과 연락처를 적었다. 그러고는 형민에게 내밀었다.


“윤 피디님이 ‘부름’을 땅에 묻지 않고 세상에 내놓고 싶으시다면 언제든지 제게 연락 주세요.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지한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병지도 엉거주춤 몸을 일으켰다. 지한은 자신을 쳐다도 보지 않는 형민에게 인사를 한 뒤 스튜디오 출입문으로 몸을 돌렸다.



*



극단 ‘혼’에 이어 극단 ‘능소’ 배우들을 만나고 나오면서 병지는 아쉬움과 떨떠름한 감정이 섞인 한숨을 뱉었다.


“두 극단 배우들 모두 윤 피디를 거의 극찬하네.”

“그래. 윤 피디가 프리랜서로 연출해준 곳은 거의 그런 평가지.”

“그런 사이코 짓만 하지 않았어도 참 좋았는데. 나도 삼촌을 따라다니면서 음악이나 그림 쪽으로 천재를 만나봤지만, 그 정도로 괴상하지 않았어. 저런 상태니까 권 작가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일 생각을 못 했지.”

“그 덕분에 우리에게까지 기회가 온 거 아니겠어?”


그 말에 병지는 눈을 크게 뜨고 지한을 쳐다보았다.


“우리에게 기회가 왔다고? 어제 그 사람, 다시 안 볼 것처럼 우리 쫓아냈잖아.”

“그랬지.”

“윤 피디는 이미 물 건너간 거나 마찬가진데. 그래서 어제저녁에 삼촌에게 신인이어도 좋으니까 피디 좀 구해달라고 했는데.”

“병지야. 다시 삼촌에게 전화해서 피디 구하지 말라고 해.”

“아니, 무슨 소리야? 피디 없이 어쩌려고? 배우와 작가만으로 극을 만들 수 없잖아.”

“윤 피디는 분명 나에게 전화를 걸 테니까.”

“무슨 소리야?”


지한은 대답 대신 씨익 웃으며 말했다.


“두고 보면 알아.”


그렇게만 말하고 입을 닫는 지한을 보고 병지는 더 이상 캐물어도 소용없다는 것을 알았다. 약간 불만에 찬 얼굴로 병지는 지한을 힐금 보더니 차의 스마트 키를 눌렀다. 운전석에 앉은 뒤 병지는 명훈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삼촌. 어제저녁에 피디 구해달라고 부탁한 거 있잖아요. 그 부탁 없던 걸로 할게요.”

“그래? 그 괴상하다는 윤 피디에게서 일을 맡겠다고 전화라도 왔어?”

“아직요. 그런데 유 작가가 윤 피디에게서 곧 전화 올 거라네요.”

“그래? 알았어. 피디 문제는 신경 쓰지 않으마. 일해야 하니까 이만 끊는다.”

“예.”


병지는 휴대폰을 컵홀더 옆에 둔 뒤 조수석에 탄 지한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니가 윤 피디에게서 전화 올 거라고 했다니까 삼촌이 바로 알았다고 하네.”


지한이 고개를 끄덕이자 병지가 조금 불퉁하게 물었다.


“근데 왜 삼촌은 나보다 널 더 믿냐? 내가 뭐라고 하면 삼촌이 한 번에 알았다고 하지 않는데.”

“글쎄, 잘 모르겠는데.”

“......하긴 이런 건 삼촌에게 물어야 하는 거지.”


병지가 차를 몰고 서울 시내에 들어섰을 때 지한의 휴대폰이 울렸다. 지한이 통화 버튼을 누르고 입을 채 열기도 전에 상대방의 고함소리가 병지에게까지 들렸다.


“당신, 무슨 짓을 한 거야!”

“윤 피디님, 안녕하세요.”


그 말에 병지는 눈을 휘둥그레 뜨고 지한을 쳐다보았다. 지한은 급히 휴대폰을 귀에서 떼고 병지에게 말했다.


“병지야, 앞! 앞!”


병지가 전방으로 눈을 돌려 핸들을 바로 한 덕분에 옆 차선으로 넘어가지 않을 수 있었다.


“당신, 어떻게 나에게 이런 짓을 할 수 있지? 당신 말대로 명예훼손으로 고소할 거야!”

“윤 피디님, 지금으로선 윤 피디님이 고소할 조건이 되지 않습니다. 명예훼손으로 고소하시려면 제 말이 틀렸다는 것을 입증한 뒤에 해야죠.”

“감히 나와 내 자식 같은 작품을 모욕한 메일을 내게 보내? 거기다 내 작품을 흉내 내서 보낸 건 또 뭐야?”

“아, 그거요.....”


지한은 마치 재미난 이야기라도 들은 듯이 피식 웃었다.


“웃어? 당신, 지금 이게 웃긴 거야?”

“윤 피디님이 이렇게 화나서 전화한 건 제가 보낸 시나리오가 더 멋져서가 아닐까요? 윤 피디님이 그토록 오랫동안 못한 일을 제가 단번에 해내니 그렇게 화가 나신 거죠.”

“뭐? 내가 화난 이유가 당신이 보낸 시나리오가 훌륭해서라고? 아무리 뚫린 입이라도 그딴 말을.....”


지한은 형민이 말하는 도중에 끼어들었다.


“혹시 이건 어떠세요? 윤 피디님의 작품을 누가 더 잘 표현하는지 겨뤄보는 거요.”

“내 작품으로 겨뤄보자고? 나와 당신이?”

“그래요. 10분짜리 극을 두고 배우들에게 누가 더 잘 표현했는지 투표해달라고 하는 거죠. 만약 윤 피디님이 이긴다면 자기 작품도 제대로 표현 못하는 무능한 피디라고 했던 저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하시면 됩니다.”

“당신 말이야. 감방 가고 싶어 환장했네. 난 절대 합의 안 해줄 거야.”

“알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긴다면.....”


이번에는 형민이 지한의 말을 끊어먹었다.


“웃기지마. 당신이 이기긴 뭘 이겨?”

“그래도 만약의 경우가 있잖습니까?”

“흥!”

“만약 제가 이긴다면 윤 피디님은 FN 소속 피디가 되어 내 말을 따라줘야 합니다.”

“어림없는 소리 마!”

“저는 감방 가는 것을 걸었습니다. 그렇다면 피디님도 거는 게 있어야죠. 혹시 저에게 지실까봐 두려우세요?”

“뭐? 이 건방진 자식이......”


형민이 부들거리는 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린 정도였다.


“해! 당장 하자고! 원하는 대로 감방에 넣어줄 테니까!”


지한은 잠시 형민이 씩씩거리는 소리를 듣고 있다가 느긋하게 입을 열었다.


“윤 피디님, 10분짜리 극에 대해서 말인데요. 똑같은 배우를 써서 윤 피디님이 연출하는 걸로 하죠.”

“똑같은 배우를 써서 내가 연출한다고?”

“예. 배우의 연기력이 판단에 영향을 주면 안 되니까요. 그리고 솔직히 제가 일을 맡길 피디님이 없어 윤 피디님에게 제가 쓴 것까지 연출을 부탁드리는 겁니다.”

“흥, 내가 당신이 쓴 걸 제대로 연출할 거라 믿나 보지?”

“예. 윤 피디님은 ‘부름’을 베이스로 한 작품을 스스로 망치지 못할 테니까요. 아무리 그것이 제가 쓴 시나리오라고 해도 말입니다.”

“그..... 그건 뭐......”


윤 피디는 말문이 막히기라도 한 듯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투표할 배우들은 10분짜리 극에서 연기할 배우들입니다. 자신이 연기했으니 극에 대해서 잘 알겠죠. 똑같은 조건을 위해서 출연할 배우는 10명으로 했으면 합니다. 그분들이 심사까지 하는 거죠.”

“......당신, 피디를 못 구했다면서 배우를 구할 수는 있고?”

“다행히 정현 씨가 소개해준 극단이 있어서요. 극단 ‘혼’과 극단 ‘능소’ 중 어떤 배우에게 연기를 부탁할까요?”

“.....극단 ‘혼’ 녀석들이 좀 더 연기력이 깊긴 하지......”

“그럼, 극단 ‘혼’ 소속 배우들에게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런데 당신 말이야. 간이 배 밖으로 나온 거야? 나한테 지면 감방 가야 하는데 긴장도 안 하는데?”

“자신 있으니까요.”

“흥, 그 자신감이 언제까지 가나 두고 보지.”


형민은 비아냥거리는 목소리로 말한 뒤 전화를 끊었다.


“성격 급하기도 하지. 시나리오 완성은 언제까지며 극을 며칠 안으로 만들고 언제 배우들에게 심사받을지 의논하지도 않고 전화를 끊어버리네.”


지한이 형민의 의사를 묻는 메시지를 보냈다. 지한을 힐금 쳐다본 뒤 다시 눈앞 차선으로 눈길을 돌리며 병지가 물었다.


“이게 다 무슨 소리야?”

“어제저녁에 윤 피디의 ‘부름’ 중 일부분을 시나리오로 써서 보냈거든. 이런 간단한 극도 제대로 못 만들면서 왜 아직도 피디로 일하는지 모르겠다는 메시지를 넣어서. ‘부름’은 무능력한 피디의 저질 작품이라는 말도 했지.”


그 말을 듣고 병지는 입을 딱 벌렸다.


“그렇게나 애지중지한 작품을 저질이라 했다고? 그러니 윤 피디가 저렇게 날뛰잖아.”

“그게 노림수였으니까.”

“욕이 노림수라고? 더구나 윤 피디더러 명예훼손으로 너를 고소하라고 했다며?”


지한이 고개를 끄덕인 뒤 말했다.


“이 정도 도발은 해야 윤 피디를 움직일 수 있거든.”


작가의말

잘 부탁드립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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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윤 피디 24.08.06 17 1 11쪽
» 윤 피디 24.08.05 26 1 12쪽
65 영역 싸움 시작 24.08.03 27 1 12쪽
64 영역 싸움 시작 24.08.02 27 1 12쪽
63 영역 싸움 시작 24.07.31 29 1 12쪽
62 함정 24.07.30 30 1 12쪽
61 함정 24.07.29 26 1 12쪽
60 함정 24.07.27 28 1 13쪽
59 함정 +2 24.07.26 27 1 12쪽
58 함정 24.07.24 30 1 12쪽
57 함정 +2 24.07.23 29 1 12쪽
56 함정 24.07.22 29 1 12쪽
55 함정 24.07.20 31 1 13쪽
54 마약 스캔들 24.07.19 32 1 12쪽
53 마약 스캔들 +2 24.07.17 29 1 12쪽
52 마약 스캔들 24.07.16 31 1 12쪽
51 마약 스캔들 24.07.15 32 1 11쪽
50 마약 스캔들 24.07.13 37 1 12쪽
49 권 회장 24.07.12 31 1 13쪽
48 권 회장 24.07.10 30 1 13쪽
47 권 회장 24.07.09 35 1 12쪽
46 화상회의 24.07.08 35 1 11쪽
45 화상회의 24.07.06 35 1 12쪽
44 요구 24.07.05 36 1 11쪽
43 요구 24.07.03 39 1 12쪽
42 요구 24.07.02 37 1 11쪽
41 미끼 24.07.01 39 1 12쪽
40 미끼 24.06.29 38 1 12쪽
39 미끼 24.06.28 42 1 11쪽
38 미끼 24.06.26 45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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