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한 작가 천재 작가로 돌아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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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4.06.13 21:51
최근연재일 :
2024.09.16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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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6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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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윤 피디

DUMMY

형민은 낡고 오래된 컴퓨터 화면을 한 시간 째 노려보고 있었다. 화면에는 지한이 보낸 ‘부름’ 시나리오가 떠 있었다. 지한은 ‘부름’을 읽고 핵심이 무엇인지 바로 파악했다. 형민이 ‘부름’에서 가장 신경 쓴 부분은 바로 초현실적 장면과 신내림을 섞은 부분이었다.


형민은 머리를 손으로 싸매고 끙끙거리며 중얼거렸다.


“이건 말도 안 돼...... 어떻게 나도 못한 것을......”


형민은 어린 시절부터 영상이나 그림을 좋아했다. 그림 기법 중에서도 그의 마음을 끈 것은 초현실주의였다. 형민은 초현실주의 대표 화가 중 한 사람인 르네 마그리트를 가장 좋아했다. 일상과 비일상의 만남, 말도 안 되는 기괴함이 르네의 그림에 있었다.


르네 마그리트에 대한 집착이 심해지던 어느 날 형민은 르네가 자신의 몸에 깃드는 상상을 했다. 그러나 형민은 상상만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오래전에 죽은 그 천재가 실제로 자신 몸에 깃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그런 집착이 신내림이라는 무속 의식의 관심으로 이어졌다.


‘부름’은 르네 마그리트가 열중했던 초현실주의와 무속의 신내림과 강신무를 섞은 작품이었다. ‘부름’을 완성했을 때 형민은 자신의 정신세계를 완벽히 표현했다는 기쁨에 사로잡혔다. 하지만 누구도 ‘부름’을 이해해주지 않았다.


“투자자는 물론 배우나 같이 일했던 피디조차 ‘부름’을 이해해준 사람이 없었는데...... 어떻게 녀석은 한 번만 읽고도 그런 장면을 쓰냐고......”


형민이 지한에게 전화를 걸어 윽박질렀던 이유는 질투가 나서 그랬던 것이다.


“녀석이 쓴 대로 배우가 연기한다면......”


형민은 배우가 강신무를 추고 신내림을 받는 장면을 상상하고는 황홀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발작하듯 몸을 떨며 소리를 버럭 질렀다.


“시발, 난 왜 그걸 보고 싶은 거냐고!”


형민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부름’은 내 꺼라고! 그러니 내가 가장 잘 써야 한다고!”


형민의 눈이 번들거렸다.


“분명 녀석이 그랬지. 대결에서 지면 감방 가겠다고. 시발, 니 도발 실컷 받아준다.”


*


‘부름’ 시나리오 완성일로 지정한 날 전날 오후에 회사 휴게실에서 지한은 형민에게 전화를 걸었다.


“윤 피디님, ‘부름’ 시나리오 다 쓰셨나요? 혹시 못쓰셨다면 기권패가 되실 건데요. 걱정돼서 전화했습니다.”

“당신, 저번부터 계속 날 열받게 하는데 나에게 무슨 악감정이라도 있는 거야?”

“악감정이라뇨.”

“아니면 내게 건방 떨어도 된다고 여길 정도로 날 우습게 알든가.”

“그럴리가요. 단지 극단 배우나 관계자분들이 칭찬하는 피디님이 그깟 시나리오 완성 못해서 폐인처럼 사는 게 우습긴 하지만요. 그 정도도 못 해내는 분이 어떻게 피디는 됐나 너무 궁금하네요.”

“뭐?”


지한은 형민이 열 받아 소리를 지르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피식 웃었다.


“그럼, 윤 피디님, 내일 오후 1시에 극단 ‘혼’에서 뵙기로 하죠.”


이번에는 지한이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마치 저번에 형민이 한 행동을 그대로 돌려주는 것처럼. 형민은 이를 갈면서 휴대폰을 탁자 위에 올렸다.


“이 건방진 새끼를 그냥......”


사실 형민은 ‘부름’의 10분짜리 시나리오를 쓰면서 슬쩍슬쩍 지한의 시나리오를 참고했다. 특히 다른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하게 어렵게 쓴다 싶은 생각이 들면 그랬다. 그러면서 자신도 모르게 지한에게 감탄하고 있었다. 지한을 고소하고 싶다가도 이런 작품을 쓰는 사람과 같이 작업하고 싶었다. 한마디로 마음이 갈팡질팡했다. 그런데 방금 전화로 형민의 마음에 다시 불길이 타올랐다.


“이 새끼, 진짜 콩밥을 먹게 해주겠어.”


형민은 볼을 부들거리며 다시 이를 갈았다.

*



병지는 씨익 웃으며 전화를 끊은 지한을 걱정스러움과 어이없음이 섞인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아니, 왜 또 윤 피디를 도발하는 거야? 진짜 감방 가고 싶어서 그래?”

“이 정도는 해줘야 대결에서 도망가지 않고 힘을 낼 사람이니까.”


병지의 걱정에도 지한은 태연한 얼굴로 대답했다.


“같은 창작자 입장에서 나도 윤 피디 같은 마음이었을 때가 있었어. 정말로 소중한 작품을 쓸 때 내가 잘 해낼 수 있을지 의심하고 걱정했어. 윤 피디가 그렇게 오랜 세월 ‘부름’을 손대지 못한 이유가 겁이 나서이기도 하다고 생각해. 작품을 망치느니 아직 자신의 실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게 때론 마음이 편하지. 윤 피디는 이렇게 들쑤셔야 세상 밖으로 나올 사람이야.”

“.....좋아. 윤 피디를 생각하는 마음은 알겠어. 그러면 나도 생각해주라.”

“너를 생각해주라니?”

“혹시 윤 피디가 이겨서 네가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하면 삼촌 변호사를 써도 된다고 허락해줘.”


지한은 조금 놀란 표정으로 병지를 쳐다보았다.


“내가 고소당한다면 김 이사님 변호사를 쓴다고?”


병지가 고개를 끄덕이며 단단히 결심한 듯이 말했다.


“너 의외로 고집이 세서 지금 네 동의를 구해야겠어.”

“걱정 하지마. 분명히 내가 이길 거니까.”

“어떻게 그렇게 장담하는데? 상대는 천재 연출가야. 더구나 네가 쓴 시나리오를 그 사람에게 연출해달라고 했잖아? 윤 피디가 앙심품고 엉망으로 연출하면 어쩌려고 그래?”

“그 사람은 절대 그렇게 못해. 그렇기 때문에 연출을 부탁한 거고.”

“그래. 니 말이 맞다고 치자. 그래도 나는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야 겠다. 삼촌 변호사 써도 되는 거지?”


병지는 절대 물러서지 않겠다는 표정으로 지한 앞에 버티고 섰다. 병지를 쳐다보던 병지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한이 동의하자 병지는 고집스런 표정을 풀었다.


“어휴, 너랑 같이 있다보면 내 명대로 못 살겠다 싶은 때가 있어. 그것도 자주.”


병지의 말을 듣고 지한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니가 이렇게까지 대가 약하고 겁이 많을 줄은 나도 몰랐어.’



*



지한과 병지가 극단 ‘혼’ 앞에 도착해 차에서 내리자 주위를 서성거리던 형민이 다가왔다. 가랑비가 내리는 날씨인데도 형민은 우산을 쓰지 않고 있었다.


“윤 피디님, 일찍 오셨네요.”


지한은 반가운 얼굴로 인사하자 형민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지한을 노려보았다. 병지는 다시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지한과 형민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흥, 이대로 내뺄 줄 알았더니 잘도 여기까지 기어왔군, 그래?”


형민은 거친 목소리로 지한에 응수하면서도 뒤돌아 먼저 극단 ‘혼’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지한은 형민이 입고 있는 낡은 셔츠와 청바지를 쳐다본 뒤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데 윤 피디님은 극단 밖에서 몇 시간이나 기다리신 겁니까?”


지한의 말에 형민의 얼굴이 빨개졌다. 그제야 병지 역시 형민의 옷이 비에 젖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정확히는 비에 젖은 형민의 옷이 말라 있었다. 그만큼 형민의 극단 밖에 오래 서 있었다는 뜻이었다.


“내가 어디서 얼마나 있는지 네 녀석한테 왜 말해야 하지?”

“물론 윤 피디님에게 그것을 제게 알려야 할 의무는 없죠. 그냥 궁금해서 물어봤습니다.”


지한은 윤 피디를 스쳐 극단 ‘혼’의 문 앞에 섰다. 초인종을 누른 뒤 지한은 윤 피디를 돌아보았다.


“윤 피디님, 안 들어가실 겁니까?”

“아, 아니, 간다고.”


그렇게 말하면서도 윤 피디는 쉽게 극단 쪽으로 몸을 틀지 못했다. 마치 뒤에 호랑이나 귀신같이 무서운 뭔가가 있는 사람처럼 겁을 내고 있었다.


‘확실히 윤 피디를 움직이려면 도발하는 게 좋은 방법이긴 한 것 같네. 그런데 지한은 어떻게 사람을 움직이는 법을 알지? 이 녀석, 정말 작가이기만 한 거야?’


병지는 형민을 지나치며 새삼 새로운 시선으로 지한을 쳐다보았다.


형민은 극단 배우가 나와서 자신의 이름을 부르고 나서야 극단 안으로 발을 들여놓을 수 있었다.


“윤 피디님은 극단 ‘혼’과 같이 일한 적이 있죠. 여기 배우들이 익숙할 테니 시나리오를 받아 연기할 배우 선택권을 윤 피디님에게 드리죠.”


지한은 의자 끄트머리에 어색한 태도로 앉아 있는 형민을 쳐다보며 말했다. 형민은 ‘부름’을 사람들 앞에 보인다는 두려움도 잊고 눈을 크게 뜨고 지한을 보았다.


“시나리오 연출을 내게 맡겼는데 배우 선택까지 내가 하라고?”

“예.”

“허, 장기로 치면 ‘차’ ‘포’ 다 떼고 나와 붙겠다는 건데 그 자신감 어디서 나온 거지?”

“제가 쓴 시나리오에서요.”

“아무리 시나리오에 자신 있다고 해도 당신 너무 무모한 거 아냐?”


지한은 형민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싱긋 웃었다.


“어차피 전 이분들의 연기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어서요. 설마 윤 피디님이 자식 같은 ‘부름’을 연기할 배우로 아무나 뽑지 않을 거잖아요.”

“.....그야 그렇지만......”


그 말을 들은 병지는 눈썹을 꿈틀했지만 지한이 하는 대로 내버려 두었다.


‘어차피 말린다고 들을 녀석도 아니고. 분명 저렇게 하는 이유가 있겠지.’


이제 병지는 걱정되면서도 내심 기대가 되었다.



형민이 배우들을 고르는 것을 지켜보다가 지한은 병지에게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역시 들은 대로 배우를 보는 안목이 좋네. 뽑는 사람마다 연기로 한가락 하는 사람들을 뽑잖아.”

“그러네......”


극단 ‘혼’ 배우들의 연기를 모른다는 말은 거짓말이었다. 지한과 병지는 배우들이 연기한 무대를 직접 본 것으로도 모자라 극단 관계자의 평과 관객들 평까지 모두 확인한 뒤였다. 게다가 연기 연습을 위해 찍은 영상까지 모두 봤기에 누가 어떤 식으로 연기할지 다 꿰고 있었다.



지한은 형민이 뽑은 10명의 배우에게 시나리오를 나눠준 뒤 말했다.


“여러분들은 윤 피디님과 제가 쓴 두 가지 버전의 ‘부름’을 연기할 겁니다. 연출은 두 가지 버전 다 윤 피디님이 연출하실 거고요.”


지한은 형민이 연출한다는 것을 한 번 더 강조하듯 말했다. 그것을 보고 병지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이건 아니야. 애초에 이렇게 한 쪽에 거의 몰아주는 대결이 어디 있어?’


형민 골치 아픈 얼굴로 지한을 보고 있었다.


지한은 배우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럼, 연기 잘 부탁드립니다.”

“예.”

“아, 예...”

“알겠습니다.”


지한의 부탁에 배우들은 고개를 끄덕이거나 대답했다.


“그럼, 저희는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다음 일정이 있어서요.”


그 말에 병지는 의자에서 일어나 지한 옆으로 갔다. 지한은 여전히 개운치 않은 얼굴을 하고 있는 형민에게로 다가갔다.


“윤 피디님, 연출 잘 부탁드립니다. 모쪼록 피디님의 바람대로 저를 고소할 수 있는 결과가 나왔으면 좋겠네요.”


말을 마친 지한은 형민을 보며 싱긋 웃었다.


작가의말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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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윤 피디 24.08.05 26 1 12쪽
65 영역 싸움 시작 24.08.03 27 1 12쪽
64 영역 싸움 시작 24.08.02 27 1 12쪽
63 영역 싸움 시작 24.07.31 29 1 12쪽
62 함정 24.07.30 30 1 12쪽
61 함정 24.07.29 26 1 12쪽
60 함정 24.07.27 28 1 13쪽
59 함정 +2 24.07.26 27 1 12쪽
58 함정 24.07.24 30 1 12쪽
57 함정 +2 24.07.23 29 1 12쪽
56 함정 24.07.22 29 1 12쪽
55 함정 24.07.20 31 1 13쪽
54 마약 스캔들 24.07.19 32 1 12쪽
53 마약 스캔들 +2 24.07.17 30 1 12쪽
52 마약 스캔들 24.07.16 31 1 12쪽
51 마약 스캔들 24.07.15 32 1 11쪽
50 마약 스캔들 24.07.13 37 1 12쪽
49 권 회장 24.07.12 31 1 13쪽
48 권 회장 24.07.10 31 1 13쪽
47 권 회장 24.07.09 35 1 12쪽
46 화상회의 24.07.08 36 1 11쪽
45 화상회의 24.07.06 35 1 12쪽
44 요구 24.07.05 37 1 11쪽
43 요구 24.07.03 39 1 12쪽
42 요구 24.07.02 37 1 11쪽
41 미끼 24.07.01 40 1 12쪽
40 미끼 24.06.29 39 1 12쪽
39 미끼 24.06.28 42 1 11쪽
38 미끼 24.06.26 45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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