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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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초리初理
그림/삽화
퐌베어
작품등록일 :
2024.07.08 11:48
최근연재일 :
2024.09.04 14:00
연재수 :
5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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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75,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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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10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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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제3 장 망명(1) - 서간도로 가는 길

DUMMY

새로운 시작이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익숙한 조국을 떠나온 새로운 세계는 만만한 곳이 아니었다.

엄청난 추위와 척박한 땅, 이방인에 대한 경계심 가득한 눈초리 그 모든 것을 극복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 느껴보는 감정과 생각에 설레었다.

이제 나의 꿈, 나의 미래에 대하여 생각을 할 수 있다.

몸이 고되고 힘들지언정 내 마음이 시키는 일, 내가 옳다고 생각하던 일을 위하여 하루하루 최선을 다했다.

이제 나도 무언가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조금씩 성장하고 있었다.

돌이켜 보면 내 인생에서 가장 즐거웠던 시절이 아니었나 싶다.



* * *



우당 선생은 석오, 야은, 해관 선생 같은 분들과 몇 번이나 만주 시찰을 다녀왔다.

보재 선생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만난 후 나는 떠날 시기가 가까워졌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그때가 온 것 같았다.


우당 선생은 육 형제 중 넷째로 태어났다.

형제는 우애가 깊었으며 모든 형제가 우당 선생의 뜻을 존중해 주었다.

우당 선생은 어렸을 때부터 일반 사대부의 자제와는 다른 특별함이 있었다.

전국적으로 큰 물난리가 나서 백성들의 삶이 힘들어지자 곳간을 열어 식량을 풀어 백성을 구제하도록 부친에게 건의했고 부친 또한 이를 받아들였다.

또한 노비 제도가 폐지되었으나 어느 사대부도 이를 지키지 않고 노비를 유지할 때 홀로 노비를 해방시키는 행보를 보였다.

다만 노비들이 평생 살아온 이곳을 떠나는 걸 원치 않자 노동에 대한 임금을 지급하기로 하고 그대로 살게 하였다.

이런 파격적 행보에도 부친은 물론 어느 형제 하나 반대하는 법이 없었다.

혁명가의 기질이 강한 우당 선생은 신문물 및 문화를 받아들임에 있어서도 망설임이 없었다.

옛것을 고집하는 사대부 집안에서 쉽지 않은 결심이었기에 처음에는 반대도 있었으나 결국 모든 형제들은 선생의 뜻에 따라 머리를 깎고 신학문을 받아들였다.


이러한 우애를 가진 형제였으니 어찌 다른 마음을 갖으랴.

모든 형제가 한마음이 되어 가산을 정리하고 떠날 준비를 하였다.

특히 둘째 형님인 영석 선생은 문중의 귤원 대감 댁에 양자로 들어갔는데 이 집안은 조선에서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부호였다.

살고 있는 양주 땅에서 동대문까지 남의 땅을 밟지 않고 왕래를 하였다 하니 그 부가 상상 이상이었다.

영석 선생은 양부로부터 이 모든 부를 물려받았으나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민족을 위한다는 동생의 뜻에 따라 모든 가산을 정리하였다.

형제들의 부는 쉽게 정리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일본의 감시를 피해 급하게 처분을 하였지만 몇 개월이란 세월이 걸렸다.


그러던 어느 날 우당 선생은 집안 일꾼과 노비를 모두 한자리에 모으고 우리에게 먹고살 만한 돈을 나눠주면서 각자 살길을 찾아 떠나라 하였다.


“저희가 가면 어디를 가겠습니까. 끝까지 나으리를 따르겠습니다.”


몇몇 노비들은 끝까지 선생 곁에 남겠다고 버티고 있었다.


“그곳은 사람이 살기 좋은 곳이 아니다. 너희들까지 고생을 할 필요는 없다.”


선생은 앞으로 닥칠 고난에 걱정이 앞섰다.


“아무리 못 배운 노비라 하나 나라를 빼앗기고 어디 간들 편하겠습니까. 나으리 곁에서 나라를 위해 살겠습니다. 부디 저희를 내치지 말아 주십시오.”


그들의 간절한 마음을 선생은 끝까지 내치지 못하였다.


“어르신 저도 부탁드립니다.”


나 또한 간절한 마음으로 선생께 청하였다.


“죽을 수도 있다. 어린 너까지 올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선생은 어린 내가 앞으로 겪을 고생을 생각하며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만류하였다.


“어르신을 만나고 처음으로 인간답게 살았습니다. 이젠 무엇이 옳은지 정도는 판단할 수 있습니다. 비록 목숨이 다한다 하더라도 계속 인간답게 살고 싶습니다.”


간절한 나의 마음이 결국은 선생에게 통했는지 마지못해 허락을 받았다.

그렇게 나 또한 망명길에 오를 수 있었다.


나라를 빼앗긴 땅에서 새해를 날 수 없다는 마음에 해가 바뀌기 전에 서둘러 떠났다.

꽤 큰 규모의 인원이 일본의 눈을 피해 전부 한꺼번에 떠날 수 없었기에 형제들은 나누어서 떠났다.

우당 선생은 동지들과 사전에 망명 경로를 마련하였고 주요 거점마다 쉬어갈 수 있는 비밀 연락 기지를 마련해 놓았다.

다른 형제 일가들이 다 떠나고 난 후 우당 선생의 가족들도 첫 번째 목적지인 신의주를 향해 떠났다.

우두머리 격인 홍 할아버지를 비롯한 13명의 노비들과 함께 나도 망명길에 오를 수 있었다.

아침 일찍 집을 나섰으나 밤이 다 돼서야 신의주에 도착하였다.

일반인들에게 밥도 팔고 술도 파는 평범한 주막은 첫 번째 연락 기지였다.

거기서 몇 시간을 기다려 새벽이 되자 우리는 썰매를 타고 꽁꽁 언 압록강을 건널 수 있었다.


‘이제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평생을 나고 자란 내 나라를 떠나는 모든 이의 심정은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이 순간 아무도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강해지리라. 실력을 키우고 강해져서 반드시 조국을 되찾으러 올 것이다. 그때까진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 와도 버텨내리라.’


나 자신에게 몇 번이고 다짐을 했다.

매서운 강바람이 내 얼굴을 때리며 살갗이 찢어질 듯한 고통이 느껴졌지만 그런 건 중요치 않았다.

일개 심부름꾼 꼬맹이지만 독립투사로 새롭게 태어나는 느낌이었다.


얼마 후 안동현에 도착하였다.

안동현 연락 기지를 담당하고 있던 석오 선생의 매부는 우리를 위하여 조선 쌀로 지은 식량을 준비해 놓았고 우리가 타고 갈 마차에 골고루 실어 주었다.

어쩌면 내 인생의 마지막 조선 쌀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에서 육 형제와 모든 가족들이 모이니 60명의 대규모 인원이 되었다.

우리는 12대의 삼두마차에 나눠 탔고 새해가 밝은지 얼마가 되지 않아 다음 목적지인 횡도촌을 향하여 출발하였다.


만주 벌판을 마차를 타고 달리는 일은 생각했던 것보다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

엄동설한 한가운데 만주의 추위가 마차를 뚫고 그대로 전달되었다.

마차는 끊임없이 흔들렸고 추위와 함께 울렁거림이 나를 지독히도 괴롭혔다.

횡도촌까지는 500리가 넘는 길이었기에 편안히 쉬면서 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또한 이렇게 많은 인원이 함께 묶을 수 있는 쾌전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간신히 큰 쾌전을 만나면 밤새 잠시 눈을 붙이고 새벽 네 시에 일어나 다시 남은 길을 재촉했지만 쾌전이 없을 때는 밤을 꼬박 새우면서 끊임없이 달렸다.

우리 같은 노비나 일꾼들도 버티기 힘든 길이었는데 삼한갑족의 후예로 대저택의 편안함에 익숙해 있던 선생의 가족들은 얼마나 견디기 힘들지 안타까운 마음뿐이었다.

하지만 마님과 15살 밖에 안 된 첫째 도련님은 표정 한번 바뀌지 않고 모든 걸 견뎌 내었다.

그렇게 일주일을 넘게 달려서 우리는 목적지인 횡도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선생과 형제 몇 분이 먼저 최종 목적지에 들려 확인을 하는 동안 횡도촌의 안가에서 며칠 쉴 수 있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안락함에 지난 며칠 간이 마치 일 년이 넘는 긴 시간이 지난 예전 일 같은 착각이 들었다.

앞으로 펼쳐질 험란함에 비하면 지난 며칠 동안의 고생은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지만 지금은 아무 생각할 수 없었다.

그저 흔들리지 않는 땅에 두 발을 딛고 설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오랜만에 여유로운 식사를 하였다.

모락모락 김이 나는 따뜻한 쌀밥에 나도 모르게 침이 꿀떡 넘어갔지만 크게 첫 술을 떠서 입에 넣는 순간 바로 내 현실을 자각할 수 있었다.

만주에서 재배된 쌀은 너무도 푸석푸석하여 허기진 와중에도 쉽게 목구멍에 넘어가질 않았다.


‘아 내 잠시 착각을 하였구나. 난 편하려 이곳을 온 것이 아니지 않나. 잠시의 안락함에 내 본분과 상황을 잊고 있었구나.’


나 자신을 질책하면서 내가 처해진 상황 그리고 앞으로 가려는 현실이 얼마나 힘든 곳인지 다시 한번 생각을 하였다.

그리고 잠시라도 나 자신을 안락함에 안주하지 말도록 스스로 다짐을 하였다.


그리고 며칠 뒤 마침내 최종 목적지인 유하현을 향해 600리 길을 떠났다.

그곳은 유하현의 ‘추가가’라는 마을이었는데 이름과 같이 추씨들이 모여서 사는 마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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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제5 장 전쟁(7) - 독립군 3대 대첩, 봉오동 전쟁 24.07.23 59 3 9쪽
20 제5 장 전쟁(6) - 전쟁의 시작, 삼둔자 전투 +1 24.07.22 60 3 8쪽
19 제5 장 전쟁(5) - 형님. 행복하십니까? 24.07.21 62 3 8쪽
18 제5 장 전쟁(4) - 전투의 시작, 사람을 죽이다. 24.07.20 67 4 8쪽
17 제5 장 전쟁(3) - 봉오동 저격수의 탄생 24.07.19 79 4 8쪽
16 제5 장 전쟁(2) - 무술을 배우다. 24.07.18 70 4 7쪽
15 제5 장 전쟁(1) - 슬픈 운명의 소녀 24.07.17 68 4 7쪽
14 제4 장 운산(3) - 동민 형의 결심 24.07.16 65 4 8쪽
13 제4 장 운산(2) - 봉오동 독립군 기지와 정예 독립군 ‘독군부’ 24.07.15 74 3 8쪽
12 제4 장 운산(1) - 북간도의 사 형제 24.07.14 83 4 8쪽
11 제3 장 망명(4) - 어린아이의 호기심이 세상을 바꾸다. +2 24.07.13 112 4 9쪽
10 제3 장 망명(3) - 신흥 무관 학교 24.07.12 106 4 8쪽
9 제3 장 망명(2) - 대고산에 울려 퍼진 한민족의 기개 24.07.11 109 4 9쪽
» 제3 장 망명(1) - 서간도로 가는 길 24.07.10 110 5 9쪽
7 제2 장 대항(4) - 경술년에 일어난 나라의 수치 24.07.09 128 4 10쪽
6 제2 장 대항(3) - 그리고 그곳엔 충정한 군인의 유서가 있었다. 24.07.09 241 3 7쪽
5 제2 장 대항(2) - 헤이그의 영웅들 24.07.09 188 6 12쪽
4 제2 장 대항(1) - 백악관의 밀약 24.07.09 218 6 9쪽
3 제1 장 우당(2) - 을사늑약 24.07.08 287 4 8쪽
2 제1 장 우당(1) - 괜찮습니까? 24.07.08 427 9 12쪽
1 프롤로그 +1 24.07.08 609 12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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