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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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초리初理
그림/삽화
퐌베어
작품등록일 :
2024.07.08 11:48
최근연재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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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수 :
5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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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12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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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쪽

제3 장 망명(3) - 신흥 무관 학교

DUMMY

우리는 식량 걱정을 안 할 수 없었기에 학교에 딸린 자그마한 농막과 근처에 개간되지 않은 황무지를 돌아다니며 농사를 지었다.

서간도에서 벼농사는 흔하지 않아서 콩이나 옥수수 같은 걸 재배하였다.

아저씨들과 동민 형은 낮에는 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학교를 마친 뒤 농사를 지었다.

나와 홍 할아버지는 낮에 작물을 돌보는 대신 밤에는 학교에 다녀온 사람들에게 그날의 배움에 대해서 가르침을 받았다.


“흠 이게 뭐였더라. 그러니까 이건 그런 뜻이야. 허 참 이건 말이야···”

“자네는 어쩜 바로 오늘 배운 것조차 기억을 못 하나. 참 한심한지고. 그냥 자네가 모든 농사일을 하고 꼬마를 학교로 보내게.”


환이 아저씨와 장순 아저씨는 여전히 티격태격하였고 그럴 때마다 동민 형은 말없이 답이 있는 부분을 펼쳐서 보여 주었다.

모든 것이 너무도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참으로 즐거웠다.

그렇게 만주에서의 첫 번째 겨울이 다가오고 있었다.

우리의 첫 번째 시련과 함께.


우리의 부단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개간되어 있지 않은 황량한 벌판에서 그 어떤 농작물도 잘 자라지 못했다.

새로운 환경에서의 우리의 첫 번째 농사는 완전 실패하였고 그해 겨울 먹을 것이 너무나도 모자랐다.

하루에 한 끼조차 제대로 먹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환이 아저씨는 본인 먹을 것조차 나에게 양보하였다.

그렇게 지낸 지 얼마 후 환이 아저씨는 엄청난 열과 함께 며칠을 일어나지 못하였고 그 후 아저씨는 조금만 움직여도 힘들어하며 제대로 된 생활을 하기 힘들어했다.

제대로 된 약을 지어먹기에도 의사를 찾아가서 진료를 받기도 어려운 상황이라 그냥 그렇게 버텼다.

음식조차 제대로 먹지도 못한 채.

나중에 어렵게 의사를 찾아갔지만 폐에 손상이 와서 다시는 예전처럼 활동하기 힘들다 하였다.


“걱정하지 마라.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다시 예전처럼 웃는 너의 모습이 그립구나.”


아저씨가 아픈 것이 나의 탓인 것 같아서 너무도 괴로워하는 나를 보고 아저씨는 웃으면서 오히려 위로해 줬다.


만주에서는 세 가지 죽음이 있다고 하였다.

첫 번째는 얼어 죽는 것, 둘째는 굶어 죽는 것, 그리고 병들어 죽는 것.

그 무렵 만주의 한인들의 가장 큰 적은 일본이 아닌 풍토병이었다.

새로운 기후와 환경 그리고 익숙지 않은 음식과 물에 많은 한인들이 병에 걸렸고 목숨을 잃었다.

특히 어린아이들은 홍역, 장티푸스 같은 병으로 둘에 하나는 목숨을 잃었으나 다행히 나는 멀쩡하였다.

마치 환이 아저씨가 나 대신 병에 걸려 내 목숨을 살려준 것 같았다.


병도 병이지만 식량 또한 큰 걱정거리가 아닐 수 없었다.

먹을 것을 제대로 먹지 못하니 병에 걸리기도 쉽고 걸려도 나을 수가 없었다.

제대로 된 농지에서 경작을 하지 못하니 우리뿐 아니라 대부분의 망명객들은 흉년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한인 지도자들은 어찌할 수 있을 도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무슨 수를 써보려고 했지만 현실은 막막한 절망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당 선생이 석오 선생과 함께 어디론가 떠났다.

소문에 의하면 중국 정부로부터 협조를 받으러 갔다고 했지만 그 누구도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겨울을 대비해 이미 여름에 우당 선생은 만주 지역 동북 삼성을 총괄하는 총독에게 도움을 청하려 했으나 그를 만나지도 못하고 돌아왔었다.

아무도 대놓고 내색을 하지는 못했지만 대책 없이 다가올 겨울을 보낼 생각에 실망이 역력하였다.

나라를 잃어버린 망국의 백성을 위해 아무런 대가 없이 도움을 줄 나라는 이 세상에 없었다.

그것이 우리가 실력을 키우려고 여기까지 온 이유지만 현실은 너무나 혹독하였다.

누구도 기대하지 않고 있었지만 얼마 후 우당 선생은 높은 관리로 보이는 사람과 함께 추가 마을로 돌아왔다.

우당 선생은 중화민국의 대총통인 원세개를 만나서 우리 민족에 대한 협조 약조를 받고 그의 비서와 함께 돌아온 것이었다.

우당 선생이 원세개가 젊은 시절 조선에 부임해 왔을 때 그와 친분을 맺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돌아오기 전 대총통의 비서와 함께 우당 선생은 동북 삼성의 총독을 다시 방문했고 그는 근처의 모든 현의 현장들에게 대총통의 명령서를 전달했다.


‘모든 만주 원주민들은 이주 오는 한인들의 농업, 교육 등 모든 사업에 일체 협조하도록 하여라. 만일 이를 어길 시에는 엄벌에 처하겠다.’


추상같은 대총통의 명령 앞에 원주민들은 앞다투어 땅을 팔겠다고 하였다.


오만불손하던 동북 삼성의 총독은 우당 선생 앞에 잔뜩 겁을 먹었고 고집불통의 만주인들은 그들의 고집을 꺾었다.

아무도 해내리라고 생각지도 않았던 일을 우당 선생이 해냈다.

선생은 불가능이라고 생각하는 것조차 포기하지 않고 해내는 그런 인물이었다.


만주에 온 지 일 년이 지나서 드디어 우리의 꿈을 펼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다.

추가 마을보다 더 적합한 땅을 찾아서 통화현 합니하라는 곳에 새로운 자리를 잡았다.

합니하는 동남쪽으로 태산준령이 북쪽으로는 심산유곡이 위치하여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곳으로 원주민들조차 쉽게 가기 힘든 험한 지형이었다.

일본의 침입에 대비하기에 추가 마을보다 훨씬 수월하였기에 무관 학교 위치로 더 적합하였다.

험지의 한편으로 강이 관통하고 있고 그 옆으로 학교를 세울 만한 넓은 평야가 펼쳐져 있었다.

우당 선생의 둘째 형님인 영석 선생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학교 부지와 그 근처에 농사를 지을 만한 땅을 전부 매입하였다.


어느덧 만주에도 봄이 왔다.

이제 땅이 생겼고 희망이 생겼다.

학교 교사는 우리가 직접 지어야 했다.

만주의 봄은 진달래 피는 조선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추웠지만 지난날의 절망도 극복한 우리에게 봄추위 따위는 아무런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처음에는 추가 마을에서 매일 네 시간이 넘는 거리를 마차로 이동했지만 곧 합니하에 거처를 마련하였다.

합니하로 이사하고부터는 새벽 여섯 시부터 해가 질 때까지 중노동의 연속이었으나 힘들기는커녕 오히려 신이 났다.


풀을 베고 땅을 파서 그 속에 나무뿌리를 제거했다.

터를 닦기 위한 작업에는 나 같은 어린아이도 할 수 있는 일이 있었다.


“거 참 걸리적거리는구먼. 자네 같은 환자까지 나설 필요 없네.”

“이 정도 작업은 문제없이 할 수 있다네. 그러는 자네야말로 산에 나무하러 가지 않고 여기서 뭐 하는 겐가?”


환이 아저씨는 크게 힘을 쓰거나 오래 움직일 수 없었기에 나와 함께 나무뿌리를 캐거나 잡초를 나르는 잡일을 하고 있었다.

그런 아저씨가 걱정되었는지 장순 아저씨는 자꾸 우리가 일하는 곳에 와서 잔소리를 하였다.

장순 아저씨나 동민 형 같은 장정들은 산속에 들어가 커다란 나무를 베어와 제목을 다듬거나 흙을 구워서 벽돌을 만드는 일 같은 작업에 투입이 되었다.

이런 일들은 가장 힘이 드는 일이기에 체격이 좋고 힘이 센 어른들만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다.

그렇게 삼 개월이 걸려서 학교 교사가 완성이 되었다.

완공된 건물을 보면서 우리는 한동안 아무 말도 못 한 채 눈물만 글썽거렸다.

아무것도 없던 맨 땅에 시작부터 끝까지 우리의 피땀으로 모든 걸 이루었기에 그 의미가 남달랐다.

교실, 강당, 식당, 운동장, 기숙사를 포함한 모든 시설을 갖춘 학교 교사와 함께 수리 사업까지 완벽하게 해냈기에 농사를 짓기에도 수월해질 것이었다.


학교의 이름을 '신흥 무관 학교'로 고치고 낙성식을 열어 기쁨을 나누었다.

학교 부지를 비롯한 모든 경비를 댄 영석 선생이 교주로 한인들의 지도자인 안동 유림 대표 석주 선생이 교장으로 추대되었다.

학교에는 사 년제 중학 과정 본과와 육 개월의 특별과가 있었는데 특별과는 무관 장교를 육성하기 위한 교육 과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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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제5 장 전쟁(6) - 전쟁의 시작, 삼둔자 전투 +1 24.07.22 59 3 8쪽
19 제5 장 전쟁(5) - 형님. 행복하십니까? 24.07.21 61 3 8쪽
18 제5 장 전쟁(4) - 전투의 시작, 사람을 죽이다. 24.07.20 66 4 8쪽
17 제5 장 전쟁(3) - 봉오동 저격수의 탄생 24.07.19 78 4 8쪽
16 제5 장 전쟁(2) - 무술을 배우다. 24.07.18 70 4 7쪽
15 제5 장 전쟁(1) - 슬픈 운명의 소녀 24.07.17 67 4 7쪽
14 제4 장 운산(3) - 동민 형의 결심 24.07.16 64 4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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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제4 장 운산(1) - 북간도의 사 형제 24.07.14 82 4 8쪽
11 제3 장 망명(4) - 어린아이의 호기심이 세상을 바꾸다. +2 24.07.13 111 4 9쪽
» 제3 장 망명(3) - 신흥 무관 학교 24.07.12 105 4 8쪽
9 제3 장 망명(2) - 대고산에 울려 퍼진 한민족의 기개 24.07.11 108 4 9쪽
8 제3 장 망명(1) - 서간도로 가는 길 24.07.10 108 5 9쪽
7 제2 장 대항(4) - 경술년에 일어난 나라의 수치 24.07.09 128 4 10쪽
6 제2 장 대항(3) - 그리고 그곳엔 충정한 군인의 유서가 있었다. 24.07.09 239 3 7쪽
5 제2 장 대항(2) - 헤이그의 영웅들 24.07.09 188 6 12쪽
4 제2 장 대항(1) - 백악관의 밀약 24.07.09 216 6 9쪽
3 제1 장 우당(2) - 을사늑약 24.07.08 284 4 8쪽
2 제1 장 우당(1) - 괜찮습니까? 24.07.08 424 9 12쪽
1 프롤로그 +1 24.07.08 606 12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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