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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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초리初理
그림/삽화
퐌베어
작품등록일 :
2024.07.08 11:48
최근연재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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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09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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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제2 장 대항(1) - 백악관의 밀약

DUMMY

을사년의 강제 조약에 대한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 결국 그들의 의도대로 나라가 통째로 남의 손에 넘어갔다.

이미 그들이 짜 놓은 각본대로 흘러간 것이지만 이런 엄청난 사건이 벌어지기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 오 년이 안 됐다.

그렇게 난 내 조국을 떠났다.



* * *



무력을 앞세운 일본의 강제 조약을 폐기하기 위하여 수많은 의병이 봉기하고 우국지사들의 시위가 계속되었지만 상황은 달라지지 않은 채 새해가 밝았다.

강제 조약에 대한 후속 조치로 일본은 대한 제국의 외교를 담당하던 외부를 폐지하고 한성에 통감부를 설치하여 외교권을 완전히 박탈하였다.

일본 내각의 실세인 이토 히로부미는 초대 통감으로 임명되었고 강제 조약 체결의 공을 세운 민족의 반역자 을사오적을 필두로 새로운 내각이 구성되었다.

이완용은 이 새로운 내각의 핵심 인물이 되었다.

이토는 통감부 업무 개시 후 한 달 뒤 부임해 왔고 그때까지는 을사늑약의 체결을 위해서 일본 군대를 동원하여 궁궐을 포위한 하세가와 요시미치가 통감 업무 대리를 하였다.

훗날 하세가와는 조선 총독에 부임할 정도로 막강한 지위에 오르기까지 했다.

결론적으로 강제 조약에 직접적으로 관련된 모든 이들은 그 후속 조치로 요직을 한 자리씩 차지하게 되었다.

이쯤 되면 강제 조약 체결을 위한 그들의 그 집요한 노력이 무엇을 위한 건지 뻔해 보였지만 그들은 열강으로부터의 보호라느니 민족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느니 하는 어설픈 변명으로 그들의 행동에 타당성을 부여하고 있었다.

그러한 변명에 놀아날 민족이 아니었으니, 이들을 처단하기 위한 민족의 부단한 노력은 이들의 생명이 다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을사오적은 부와 권력을 얻으며 입신양명에 성공했을지언정 평생 암살 기도에 벌벌 떠는 신세가 되었다.


통감부는 애초에 강제 조약에 명시된 대로 외교권에 대한 업무를 대리하는 것으로 보였으나 곧 이전에 체결된 다른 강제 조약을 근거로 대한 제국의 행정, 경제, 국방 등에 깊숙이 관여하여 한반도 내의 모든 주요 내정을 감독하고 감시하는 기관이 되었다.

이는 실질적으로 주권을 빼앗긴 것을 의미하며 수많은 뜻있는 지사들이 주권을 되찾기 위하여 움직였다.



* * *



사실 고종 황제는 강제 조약 체결 한 달 전쯤 가장 믿을 수 있는 미국인 호머 헐버트 박사를 미국에 특사로 파견하여 미국 대통령에게 친서를 보내고자 시도하였다.

친서를 통해 일본의 침략으로부터 미국의 간섭을 이끌어 낼 계획이었던 것이었다.

헐버트 박사는 조정에서 운영하는 근대식 왕립 교육 기관인 육영 공원의 교사로서 초빙을 받아 조선에 입국하였고 교사로서 온 힘을 다하여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는 조선의 글과 문화에 많은 관심을 가졌으며 입국한 지 삼 년 만에 조선의 글로 책을 저술할 정도로 엄청난 열정과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 무렵 조선에 대한 일본의 위협은 심각한 수준으로 커지고 있었다.

이러한 침탈 행위를 목격하면서 조선의 국내 및 국제 정치, 외교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 그는 결국 조선의 자주권 회복 운동에 헌신하기 시작하였다.

한 나라의 국모를 무자비하게 살해하는 을미사변이 일어나자 헐버트 박사는 고종 황제를 최측근에서 호위하며 보필하고 자문의 역할까지 맡아하게 되었다.

그러한 그였기에 황제의 밀명을 미국에 전달하는 역할에 최적의 인물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미국인인 그라도 일본의 감시를 피해 황제의 친서를 미국까지 가지고 가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는 여행 중 강탈당할 우려에 미국 공사관 행랑에 친서를 미리 워싱턴으로 보내고 자신은 일본을 경유하여 미국으로 귀국하였다.

천신만고 끝에 워싱턴에 도착한 그는 백악관에 들려 대통령 면담을 신청했지만 백악관은 국무부를 통하라 하고 국무부는 그의 면담을 거절하였다.

이렇게 차일피일 시간이 흘러가던 어느 날 국무 장관과의 면담이 드디어 성사되었다.


“지금 일본은 대한 제국의 자주권을 빼앗으려고 합니다. 이에 대한 제국의 황제께서는 내게 친필 문서를 전달하여 미국 정부의 도움을 요청하였습니다. 우리 미국과 대한 제국의 전신인 조선이 1882년에 체결한 조미 수호 통상 조약에 따르면 제 3국이 조약의 어느 한 나라에 강압적으로 간섭할 경우 조약 상대국은 원만한 타결을 가져오도록 주선하게 되어있습니다. 국무 장관께서는 어서 대통령 각하께 말씀드려 조약의 내용을 이행하도록 해 주세요. 이는 우리 미합중국의 신의가 달린 문제입니다. 서둘러야 합니다.”

“그대가 무엇을 잘못 알고 있는 것 같소. 이미 얼마 전 일본은 대한 제국과 외교권에 관련된 조약을 맺었소. 이제 대한 제국의 외교에 대한 권한은 일본에게 있소. 지금 그대가 말하는 조미 수호 통상 조약은 일본에게 권한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오.”


헐버트 박사의 호소에 국무 장관의 강압적 답변을 들은 뒤에야 왜 그토록 백악관과 국무부가 그를 만나주지 않고 시간을 끌었는지 알 수 있었다.

을사늑약 직후 고종 황제는 위험을 무릅쓰고 헐버트 박사에게 전보를 보냈다.


‘해당 조약은 황제의 재가 없이 일본이 각료를 협박하여 승인한 것이므로 효력이 없다.’


하지만 그건 힘없는 자의 외침일 뿐이었다.

그러한 사실 따위는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열강의 정의 앞에선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하였다.

전보의 내용을 토대로 아무리 호소를 해봐야 국무부도 미국 대통령도 그들의 결정을 바꾸지 않았고 헐버트 박사는 미국 정부에 도움을 얻는 것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그는 미국 행정부가 아닌 미국 국민에게 직접 알리는 길을 선택했다.

뉴욕 타임스와의 회견을 통하여 일본이 부당한 조약을 강제로 체결하여 대한 제국의 외교권을 찬탈하였을 뿐 아니라 일본 치하의 대한 제국의 백성들은 비참한 삶을 살고 있다고 폭로하였다.

그들은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그들의 땅을 일본인들에게 부당하게 빼앗기고 있었고 그것을 피하기 위하여 미국인인 자신에게 헐값에 땅을 팔아넘기고 있다고 했다.

미국인인 그의 땅을 일본이 맘대로 빼앗을 수 없기 때문에 잠시 맡아준다는 각서를 써주고 본인 명의로 바꾼 땅이 벌써 오만 에이커가 넘는다고 말했다.


백악관의 깊은 밀실에서는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긴 침묵을 깬 건 미합중국 대통령의 우려였다.


“헐버트의 회견을 통한 국민들의 반응은 어떻소?”

“각하, 그저 잠시 지나가는 연민의 감정일 뿐입니다.”


헐버트 박사를 대할 때와는 다른 정중한 말투로 국무 장관은 말했다.


“내년도에 중요한 심사가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오.”

“그것은 아무 차질 없이 진행될 것입니다.”


루스벨트 행정부의 국무 장관인 엘리후 루트는 대외 외교 정책을 통하여 대중에게 긍정적 이미지를 제대로 어필하며 정치적 기반을 공고하게 할 뿐 아니라 개인이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영예인 노벨 평화상까지 노리는 이 노련한 정치인을 보면서 제대로 된 문명도 누리지 못하는 미개한 나라의 불쌍한 시민들을 위하여 노력하는 헐버트가 가여우면서도 한심해 보였다.

그가 외치는 정의와 신의의 진실은 불쌍한 민족을 위해서가 아닌 눈앞의 권력자를 위한 것이었다.


“태프트 관련 우려할 사항은?”

“그는 야심가입니다. 걱정하실 상황은 없습니다. 그 만남에 대하여 입을 열 사람은 없습니다.”


사실 러일 전쟁의 종전을 알리는 포츠머스 회담은 그냥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포츠머스 회담이 이루어지기 전 비밀스러운 회동을 통하여 서로 간의 입장을 확실히 하는 사전 작업을 하였던 것이었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자신의 대외 외교 업적을 확고히 하기 위하여 가장 믿을 수 있는 자신의 친우인 육군 장관 태프트를 포츠머스 회담 한 달 전 도쿄로 보냈다.

일본 총리 가쓰라 다로와의 비밀 회담을 통하여 미국은 필리핀에 대한 지배권을 인정받는 대신 대한 제국의 지배권을 일본 측에 인정해 준다는 약속을 상호 간에 먼저 체결하였던 것이었다.

밀약의 존재가 알려질 경우 받게 될 정치적 타격이 꽤 걱정스러웠는지 루스벨트는 자신이 가장 신뢰하는 태프트에게 조차 경계심을 나타냈다.

열강의 이익을 위하여 잘 짜인 각본 위에 장기판의 말처럼 희생당할 민족의 운명이었으나 힘없고 순진한 황제는 그조차 알지 못하고 각본의 작성자에게 지구의 반대편까지 어렵게 도움을 구하러 갔으니 참으로 한탄스러운 상황이었다.

하지만 할 수 있는 일이 이것밖에 없었다. 안 될 것을 알면서도 시도할 수밖에 없는 저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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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제2 장 대항(4) - 경술년에 일어난 나라의 수치 24.07.09 128 4 10쪽
6 제2 장 대항(3) - 그리고 그곳엔 충정한 군인의 유서가 있었다. 24.07.09 239 3 7쪽
5 제2 장 대항(2) - 헤이그의 영웅들 24.07.09 188 6 12쪽
» 제2 장 대항(1) - 백악관의 밀약 24.07.09 217 6 9쪽
3 제1 장 우당(2) - 을사늑약 24.07.08 284 4 8쪽
2 제1 장 우당(1) - 괜찮습니까? 24.07.08 425 9 12쪽
1 프롤로그 +1 24.07.08 607 12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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