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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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초리初理
그림/삽화
퐌베어
작품등록일 :
2024.07.08 11:48
최근연재일 :
2024.09.04 14:00
연재수 :
51 회
조회수 :
4,362
추천수 :
150
글자수 :
175,431

작성
24.07.21 14:00
조회
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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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8쪽

제5 장 전쟁(5) - 형님. 행복하십니까?

DUMMY

우리가 가장 국경에 가까운 일본 헌병 감시대를 아무도 모르게 점령하자 그보다 안쪽에 있던 일본군은 무기력하게 무너졌다.

우리의 승전보에 맞춰서 희 장군이 이끄는 대규모 부대가 근처 경찰서와 파출소를 습격하였고 결과는 대승이었다.

선봉 부대의 일원인 나조차도 모르게 은밀하게 진군해 우리와 협공을 성공한 흥 장군의 부대와 이후 전광석화와 같은 진군 속도로 바로 후방까지 침투한 희 장군의 부대는 정말 놀라웠다.

이토록 정확한 협공과 자연스러운 연대가 가능한 우리의 전투력은 그동안 최강이라 불리며 자만하던 일본군의 자존심을 뭉개 버렸다.


이날의 전투를 시작으로 국경 곳곳의 경찰서, 헌병대를 포함한 일본 수비대들을 공격하였다.

소규모의 유격전에서부터 대규모의 습격까지 다양한 전투로 우리는 일본군을 괴롭혔다.

그날 이후로는 운산 장군과 같이 전투에 참여하지는 못했지만 나는 혼자서도 점점 총알이 빗발치는 상황에 익숙해져 갔다.

몇 개월이 흘렀고 이제는 제법 저격병의 임무를 능숙히 처리하고 있었지만 왠지 모를 불안감은 점점 커져만 갔다.


전투가 없는 날에는 종종 봉오동이 한눈에 보이는 언덕에 누워 막연히 하늘을 바라보곤 하였다.

이상한 불안감에서 해방되는 유일한 시간이었다.


“무슨 생각 중이야?”


나를 부르는 소리에 잠시 동안의 평화를 깨고 일어났다.


“철이구나. 그냥 좀 쉬고 있었어. 무슨 일 있어?”


상대에게 대꾸하며 몸을 일으켰다.


나보다 다섯 살이 어린 철이는 운산 장군의 막냇동생이었다.

15살의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철이는 독립군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아직 어린 나이라 직접 전투에 참여할 수 없어 정식 부대원은 아니었지만 부대 내의 갖은 심부름을 하였다.

때로는 운산 장군의 중요한 서신을 다른 단체에 전달하거나 전투 중인 부대의 전령 노릇을 하기도 하였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적어도 나에게 철이는 그 누구보다 역할에 충실한 독립군의 일원이었다.


“셋째 형님이 수행 계곡으로 부르셔. 꼭 둘이 같이 오라고 하시네.”


철이의 말에 따라 우리는 내가 예전에 수행하던 계곡으로 향했다.


내가 수행하던 계곡은 운산 장군의 형제들에게는 익숙한 곳이었다.

운산 장군 또한 이곳에서 직접 수행을 하였고 인적이 드문 이곳은 자연 경치가 아름다울 뿐 아니라 너무나도 평화스러운 분위기를 내고 있어서 중요한 일이 있거나 형제간 논의가 필요할 때 종종 이곳으로 모이는 것 같았다.

그렇기에 나는 수련을 끝낸 후로 이곳에 온 적이 없었다.

봉오동 창립 형제의 공간을 내가 함부로 침범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찾는 수행 계곡에 설레는 마음이 들었다.


“부르셨습니까? 형님.”


내가 부르는 소리에 계곡 물속에서 정자세로 명상을 하고 있던 흥 장군이 감은 눈을 떴다.


“역시 이 계곡에 몸을 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지는구나.”


운산 장군 못지않게 단련된 기운을 풍기며 흥 장군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계곡을 나왔다.


“둘 다 앉아 보거라.”


흥 장군은 한쪽 편의 바위에 자리를 잡았고 그 옆에 우리 둘도 자리를 잡으며 앉았다.


“너희들도 느끼고 있었겠지만 이제 곧 큰 전투가 일어날 것이다. 그것도 아름다운 이곳에서 말이다.”


평상시와는 다르게 진지한 말투로 흥 장군은 말을 이어 나갔다.


“철이 너는 아직 어리지만 이건 우리 집안의 숙명이니라. 그리고 꼬마 너는 이제 훌륭한 저격수로 성장하였다. 둘 다 각자의 임무를 위해서 이곳의 지형을 아주 자세히 파악해야 한다. 이제부터 너희들은 봉오동의 모든 봉우리와 골짜기를 면밀히 파악한다. 매일 아침부터 해가 질 때까지 산속을 달린다. 누구보다 빠르게 눈감고 다닐 수 있을 정도로 익숙해질 때까지 단련해야 한다. 이것이 너희들의 새로운 임무다.”


흥 장군의 위엄 있는 명령에 나는 내 첫 전투가 생각이 났다.

갑자기 나타나 돌격하던 그 용맹한 모습은 평상시의 장난기가 넘치던 형님과는 너무도 다른 모습이었다.


“네 임무를 받들겠습니다.”

“셋째 형님, 전 아직 어리지만 아버님과 형님들께 누가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거예요.”


나와 철이는 비장한 각오로 임무를 받아들였다.


“너희들의 임무는 내일부터 시작이니까 그럼 편안한 마음으로 오늘을 즐겨 보자꾸나.”


흥 장군은 평상시 같은 장난기 어린 모습으로 다시 돌아와서 가져온 찐 감자와 옥수수 그리고 탁주를 내어놓았다.


아직 어린 철이는 후후 불며 감자를 맛있게 먹었고 나는 흥 장군과 처음으로 같이 술을 먹었다.


“너 요새 고민 있지?”


말없이 술잔만 만져 대는 날 보며 흥 장군이 말했다.


“아닙니다.”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아 놀라면서 대답했다.


“아니긴. 딱 보면 안다. 꼬마야 내가 말했지. 인생은 가끔은 편하게 생각해야 한다. 너무 진지하면 오히려 힘들어져.”

“사실은 이유도 없이 어느 순간부터 불안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어요. 불안하다고 해야 할지 불편하다고 해야 할지 저도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인 것 같아요.”

“적이지만 사람을 죽이고 또 죽이는 일이 쉽지 않을 것이야. 나도 처음엔 그랬단다. 우리 중 그 누구도 원해서 이 전쟁을 시작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우리의 전쟁은 꼭 해야만 하는 것이야. 힘들어도 해야만 하는 일이야. 다른 누군가가 대신해 줄 수 없는 우리가 꼭 해야만 하는 일이다.”


흥 장군은 잠시 쉬었다가 계속 이어서 말했다.


“이건 단순한 살인이 아니다. 우리의 민족과 나라를 지키기 위한 최후의 투쟁이다. 사람이 죽어 나가고 피가 튀기고 살이 뜯기는 지옥 같은 곳을 겪고 또 겪어야 한다. 그곳에서 견디는 것은 어떤 사람도 쉽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야. 하지만 우리는 버텨야 한다. 우리의 정신이 무너지면 우리는 모든 것을 빼앗겨 버릴 거야.”


흥 장군은 다시 진지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형님. 행복하십니까?”


나는 뜬금없이 물었다.


“그래. 아주 행복하단다.”


흥 장군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온화한 미소로 답해 주었다.


“형님과 다른 장군들의 경제력이면 일본에 협조하면서 편하게 지낼 수도 있잖아요. 그럼 이런 전쟁을 치르지 않아도 되고 지옥 같은 상황을 겪게 되지 않을 수도 있잖아요. 그럼 더욱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요?”


나는 술기운 때문인지 무례한 질문을 서슴없이 하였다.


“잘못인 줄 알면서 그렇게 산다는 건 오히려 지금보다 어려운 일이란다. 세상에서 가장 속이기 어려운 건 나 자신이란다. 아무리 자기 자신을 속이려 해도 속에서는 끊임없이 말할 거야. 잘못된 것이라고. 몸은 편할지언정 마음은 더 깊은 지옥 속으로 들어갈 것이야.”


어쩌면 모든 사람이 알고 있지만 실행하기 어려운 진실을 말하는 흥 장군을 보며 많은 생각이 머릿속에 흘러갔다.


전투가 있기 전날 밤 운산 장군이 날 부른 이유, 그리고 오늘 흥 장군이 준비한 술자리의 의미를 새기며 아주 오랜만에 푹 잠에 들 수 있었다.


이제 더 이상 국내 진공 작전에 투입되지 않았다.

새벽 일찍부터 눈을 떠서 철이와 산속을 달리기 시작했다.

난 내 키의 반 만한 저격총을 등 뒤에 매고 달렸다.

한 달 정도 지나자 우리는 숨소리조차 내지 않고 봉오동의 모든 산속을 아주 빨리 오르고 내릴 수 있었다.


“꼬마 형, 대단한데. 그 무거운 총을 메고도 숨소리조차 내지 않으니.”

“철이 너야말로 희, 풍, 운 세 장군 못지않은 대단한 독립군이야.”


우리는 서로에게 놀라며 새로운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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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제6 장 학살(1) - 와룡동의 비극 24.07.25 59 2 7쪽
22 제5 장 전쟁(8) - 내 인생의 가장 행복한 순간 +1 24.07.24 64 3 9쪽
21 제5 장 전쟁(7) - 독립군 3대 대첩, 봉오동 전쟁 24.07.23 58 3 9쪽
20 제5 장 전쟁(6) - 전쟁의 시작, 삼둔자 전투 +1 24.07.22 59 3 8쪽
» 제5 장 전쟁(5) - 형님. 행복하십니까? 24.07.21 61 3 8쪽
18 제5 장 전쟁(4) - 전투의 시작, 사람을 죽이다. 24.07.20 66 4 8쪽
17 제5 장 전쟁(3) - 봉오동 저격수의 탄생 24.07.19 78 4 8쪽
16 제5 장 전쟁(2) - 무술을 배우다. 24.07.18 70 4 7쪽
15 제5 장 전쟁(1) - 슬픈 운명의 소녀 24.07.17 67 4 7쪽
14 제4 장 운산(3) - 동민 형의 결심 24.07.16 64 4 8쪽
13 제4 장 운산(2) - 봉오동 독립군 기지와 정예 독립군 ‘독군부’ 24.07.15 73 3 8쪽
12 제4 장 운산(1) - 북간도의 사 형제 24.07.14 82 4 8쪽
11 제3 장 망명(4) - 어린아이의 호기심이 세상을 바꾸다. +2 24.07.13 111 4 9쪽
10 제3 장 망명(3) - 신흥 무관 학교 24.07.12 104 4 8쪽
9 제3 장 망명(2) - 대고산에 울려 퍼진 한민족의 기개 24.07.11 108 4 9쪽
8 제3 장 망명(1) - 서간도로 가는 길 24.07.10 108 5 9쪽
7 제2 장 대항(4) - 경술년에 일어난 나라의 수치 24.07.09 128 4 10쪽
6 제2 장 대항(3) - 그리고 그곳엔 충정한 군인의 유서가 있었다. 24.07.09 239 3 7쪽
5 제2 장 대항(2) - 헤이그의 영웅들 24.07.09 188 6 12쪽
4 제2 장 대항(1) - 백악관의 밀약 24.07.09 216 6 9쪽
3 제1 장 우당(2) - 을사늑약 24.07.08 283 4 8쪽
2 제1 장 우당(1) - 괜찮습니까? 24.07.08 424 9 12쪽
1 프롤로그 +1 24.07.08 606 12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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