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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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초리初理
그림/삽화
퐌베어
작품등록일 :
2024.07.08 11:48
최근연재일 :
2024.09.04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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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09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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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제2 장 대항(2) - 헤이그의 영웅들

DUMMY

* * *



우당 선생은 더 이상 전통적인 순진한 방식으로는 일본의 침략 의욕을 막을 순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새로운 방식의 민족 운동의 필요성에 대하여 고민을 하기 시작하였다.

한편 일본의 침략에 비분한 심정으로 자결까지 시도하며 대항을 하려 했던 보재 선생 또한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평생의 지기이자 영혼의 단짝이었던 그들은 비슷한 생각으로 자연스럽게 의기투합하였다.


“보재, 이제 더 이상 상소와 시위 같은 방식으로는 이 상황을 타결해 나가기 힘들어 보여요. 이젠 우리 민족도 새로운 방식의 대항을 할 때가 온 것 같소.”

“우당 형, 이제 곧 통감부에서 학제를 개편해 전국적으로 보통학교 교감과 중등학교 학감을 일본인들에게 맡긴다고 합니다. 그렇게 되면 그들은 교육을 통제하여 우리 민족의 앞날을 그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만들 거예요.”


교육을 통한 민족의 깨우침이 우리가 나아갈 방향이라고 평생을 믿어온 두 우국지사는 이 상황의 심각성에 대하여 가볍게 지나갈 수 없었다.


“이제 더 이상 국내에서의 교육 활동은 어려울 것 같아요. 이젠 해외로 나가서 새로운 방법을 모색해야 해요. 제가 나가겠습니다.”


보재 선생이 결연에 찬 말투로 말했다.


“해외란 말이죠. 저도 그 방법 밖에 없다고 생각이 듭니다. 다만···”


우당 선생은 보재 선생이 앞으로 겪을 고생과 이제 더는 그를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였다.


“민족의 영광을 위해 바친 이 한 몸, 어찌 몸뚱이의 편안함만을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이승에서 어렵다면 저승에서라도 다시 우당 형을 만날 날을 고대하겠습니다. 형과 평생 동지였다는 사실이 자랑스럽습니다.”

“오 보재. 나야말로 보재와 함께할 수 있어서 무한한 영광이었어요.”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이별의 아쉬움을 뒤로한 채 앞으로의 일에 대한 자세한 계획을 세우기 위하여 상동청년회 동지들을 소집하였다.


상동교회에서 모인 우당 선생과 동지들은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도 결연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어렵사리 우당 선생이 상황에 대하여 설명을 하였고 보재 선생이 결연에 찬 목소리로 대화를 이어 나갔다.


“해외로 나가서 백성들을 교육하여야 합니다. 그들은 훌륭한 독립운동가가 될 것입니다.”

“보재 동지께서 중요한 점을 지적해 주셨습니다. 여기 있는 동지들 모두 같은 생각일 거라 생각합니다. 최대한 빨리 학교를 세울 적합한 장소와 나갈 사람을 물색해야겠습니다.”

“만주의 용정촌이 적합하오. 북으로는 러시아와 통하고 남으로는 강 하나만 건너면 국내로 들어올 수 있소. 무엇보다 우리 민족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이오. 이보다 더 적합한 곳은 없을 것이외다. 그리고 내가 직접 나서지 않으면 누가 가겠소.”

“보재 동지의 결단력과 용기는 정말 놀랍지 않을 수가 없소. 나도 이 한 몸 바쳐서 그대를 도울 것이오.”

“저도 또한 그대들과 함께 하겠습니다.”


그 자리에 있던 석오 선생과 충북 청주 출신의 검은 선생이 선뜻 나서서 보재 선생과 함께 하기로 하였다.

보재, 석오, 검은 이렇게 세 명의 독립투사는 원대한 뜻을 품고 만주로 떠났다.

그들은 만주 용정촌의 서전평야에 자리를 잡고 민족 학교를 세웠다.

서전평야의 이름을 따서 서전서숙이라 명명하고 만주의 한인들 자제를 대상으로 역사, 지리, 수학, 정치학 등의 신학문을 가르쳤다.

서전서숙은 민족 교육을 통한 항일 독립운동의 기본 방향을 제시하였고 일본에 대항하여 해외에 세워진 최초의 교육 기관이라는 상징적 의의를 가지고 있었다.



* * *



보재 선생이 떠나고 해가 바뀐 어느 날 상동청년회 동지이자 언론인 우강 선생이 우당 선생을 찾아왔다.

영국인 기자 어니스트 베델과 함께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한 우강 선생은 영국인 베델의 명의로 신문을 발행하여 일본의 사전 검열을 피할 수 있었고 일본의 국권 침탈 야욕을 비판하는 논설을 자유롭게 게재하여 대중을 계몽하고 항일 사상을 고취시키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었다.


‘나의 말 백 마디보다 신문의 한 마디가 한인들을 더 격동시킨다.’


오죽하면 민족의 가장 큰 주적인 이토 히로부미가 이런 한탄을 하였다.


우강 선생은 언론인인 만큼 세계정세 및 정보에 밝았고 곧 네덜란드의 헤이그에서 만국 평화 회의가 열린다는 사실을 알렸다.


“이번 기회를 통하여 세계열강에게 을사년의 조약이 강제로 체결 됐음을 알려야 합니다.”


상기된 표정의 우강 선생이 결연하게 말했다.

그는 자신의 파트너 베델과 함께 언론인으로서 우리 민족의 독립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었다.


“제가 폐하께 주청을 드릴 방법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우당 선생이 고민을 하며 대답하였다.


고종 황제는 여러 차례 을사늑약의 부당함에 대한 밀서를 내린 적이 있었고 이에 통감부에서는 황제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었다.

그러한 연유로 황제와 만나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우당 선생은 황제의 측근인 궁내부 대신 미경 대감과 훗날 사돈이 될 만큼 가까운 사이였고 또한 황제를 바로 옆에서 모시는 내관 안 씨와의 친분도 있었기에 이들을 통하여 황제에게 뜻을 전달하는 것이 가능하였다.

우당 선생의 중계로 황제의 측근들과 상동청년회 주요 인물들은 한데 모여서 헤이그에 특사를 파견할 것을 주청 하기로 결정하였다.

중요한 것은 누구를 특사로 보내느냐는 것이었는데 우당 선생의 추천으로 보재 선생이 결정되었다.

보재 선생은 외국어에 능통했으며 을사늑약이 체결될 당시 자결을 시도할 정도로 애국심이 남다른 사람이었다.

또한 늑약 당시 의정부 참찬을 지낸 만큼 당시 사정에 대해 누구보다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만한 적격자도 없었기에 모두가 납득할 만한 인물이었다.

또 다른 인물은 전목사가 추천하였다.


“일성 동지는 전 평리원 검사 출신의 강직한 사람이며 현재 청년회 회장으로 활동 중입니다. 특히 저번 그 일을 생각하면 특사로 가는 것이 이 사람의 운명이 아닌가 싶습니다.”


전목사는 그 일화를 모두에게 들려주었다.

그는 평리원 검사 시절 고종 황제가 내린 특사령에 을사오적을 처단하려다가 체포된 홍암, 의재 선생 같은 민족 투사들을 포함시키고자 했다.

그러나 친일 법부대신 이하영과 평리원 재판관이자 을사오적의 우두머리인 이완용의 형 이윤용 등이 본인들의 과오가 다시 드러나는 것이 두려워 이들을 누락시키고 명단을 작성하게 하였다.

이에 굴하지 않은 일성 선생은 공식적으로 제출된 특사 명단을 함부로 삭제한 죄로 자신의 상관들을 고소하였고 후에 법부대신과 재판장 이하 관리 전원을 면직하고 처벌해 달라는 청원을 제출한다.

오히려 그는 상관에 대한 불복종으로 처벌을 받고 결국에는 면직을 당하게 되지만 그의 강직함은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보재, 일성 두 분은 나도 잘 알고 있소. 이 두 분이라면 틀림없이 폐하께서도 만족스러워하실 겁니다. 폐하께 주청 드려서 일을 빨리 진행하도록 하겠소이다.”


그렇게 미경 대감과 내관 안 씨가 떠났고 얼마 후 헐버트 박사가 어렵게 신임장을 우당 선생에게 전달해 주었다.


“일본의 감시가 너무 심하여 제대로 된 옥새도 찍지 못하였으나 황제께서 나에게 직접 이 신임장을 주며 이 일이 꼭 성사되도록 부탁하였습니다. 선생께서는 꼭 이 신임장을 정사인 보재 선생에게 전달해 주시고 특사들이 무사히 목적지까지 갈 수 있도록 돕기 바랍니다. 난 이제 적들의 눈을 돌리기 위해 떠나야 합니다.”


헐버트 박사는 우당 선생에게 신임장을 전달하고는 바로 일본으로 떠났다.

일본은 헐버트 박사를 항상 주시하고 있었고 그에게 일본의 눈이 쏠린 사이 우당 선생은 무사히 만주로 건너가 보재 선생을 만나 신임장을 전달할 수 있었다.

신임장에는 보재 선생을 정사로 일성 선생과 전 러시아 공사의 차남인 위종 선생을 부사로 임명하는 황제의 뜻이 담겨 있었다.

위종 선생은 어려서부터 러시아, 미국, 프랑스 등에서 외국 생활을 하며 일곱 개 국어에 능통하여 특사 임무에 큰 도움이 될 인물이었다.


“보재, 다시 한번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어려운 걸음 부탁드려요. 내 정녕 보재에게는 미안함뿐이라오.”

“우당 형 그런 말마오. 내가 민족을 위해 무언가 할 수 있다는 것이 기쁠 뿐이오. 다만··· 이생에서는 이번이 정말 마지막인 것 같소. 난 항상 형과 함께 한다는 것을 기억해 주오.”

“보재···”


그들은 속으로 한없이 눈물을 흘리며 마지막일 것만 같은 그들의 만남을 슬퍼하였고 슬픔을 달랠 겨를도 없이 보재 선생은 블라디보스토크로 떠났고 우당 선생은 돌아왔다.


그 무렵 전목사의 이질녀인 김 상궁이 지밀내인으로 궁궐 출입이 자유롭다는 점을 활용하여 고종 황제의 친서를 전달받을 수 있었던 일성 선생 또한 결연한 말을 남기고 블라디보스토크로 떠났다.


“일을 성사하지 못하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소.”


그는 보재 선생과 만나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출발하였다.

러시아 황제인 니콜라이 2세를 알현하고 고종 황제의 친서를 전달하려 하였으나 실패하였고 문서만 러시아 외무부에 접수하였다.

이후 위종 선생을 만나 함께 헤이그에 도착하였다.


한편 먼저 일본으로 간 헐버트 박사는 일본, 중국, 시베리아 횡단 철도로 러시아를 거쳐 스위스에 도착하였다.

그는 자신이 특사인 척 행동하여 일본의 이목을 진짜 특사 일행에게서 분산시켜 놓았다. 진짜 특사 일행이 헤이그에 도착하고 난 후 그 또한 헤이그에 도착하였다.


각고의 노력 끝에 특사들은 헤이그에 도착했지만 그들을 기다린 건 절망뿐인 힘의 논리였다.

그들이 도착하고 나서야 특사의 존재를 알게 된 일본은 회의장 내에 그들이 들어오는 것을 전면 차단하였고 다른 열강들은 일본과의 관계를 고려해 특사를 인정하지 않았다.

만국 평화 회의는 모든 나라와 민족의 평화가 아닌 열강의 평화를 위한 회의였던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사 일행은 굴하지 않고 세계 각국의 기자단이 모인 것을 이용하여 여론전을 펼쳤다.

특히 위종 선생은 각국 신문 기자단이 주최한 국제 협회에서 유창한 불어로 연설하였고 이는 기자단 사이에서 만장일치로 대한 제국을 동정한다는 결의문을 통과시키는 성과를 이루어냈다.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일성 선생은 회의에 참석하지 못한 분노로 병환이 악화되어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출발 전 이루지 못하면 돌아오지 않겠다는 그의 말이 서글프게도 지켜졌다.


멀리서 소식을 들은 우당 선생은 생각했다.


‘보재, 헤이그에 파견된 특사들은 실패를 의미하는 게 아니외다. 일본의 눈을 피하여 황제에게 우리의 뜻을 전한 미경 대감, 내관 안 씨, 김 상궁은 그들의 감시가 아무리 심해도 민족의 뜻을 굽힐 수는 없다는 기개를 보여주었소. 또한 미국인이면서도 우리 민족을 위해 험란한 여정을 무릅쓰고 일본의 눈을 다른 곳으로 돌려 특사들의 무사한 도착을 도운 헐버트 박사는 정의가 무엇인지 보여 주었소. 그리고 그대들 세 명의 특사는 형언할 수 없는 무언가를 우리 민족의 가슴속에 심어 주었소. 그것은 평생 우리 민족의 가슴에 남으리라. 부디 다음 생에는 편한 곳에서 다시 만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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