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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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초리初理
그림/삽화
퐌베어
작품등록일 :
2024.07.08 11:48
최근연재일 :
2024.09.04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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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09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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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제2 장 대항(4) - 경술년에 일어난 나라의 수치

DUMMY

* * *



많은 병사들이 보여준 용기와 의병들의 굳건한 의지에도 불구하고 결국 일본은 그들이 원하는 대로 군대까지 해산시키고 나라를 빼앗는 단계를 점진적으로 밟아가고 있었다.


우당 선생은 점점 절망적으로 바뀌어 가는 상황에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기 위하여 블라디보스토크로 향했다.

일본은 헤이그의 밀사로 파견되었다는 이유로 궐석 재판을 열어 보재 선생을 사형에 일성, 위종 선생을 무기 징역에 처했다.

이제 그들은 일본이 물러나지 않는 한 국내로 들어올 수 없었다.

일성 선생은 이미 머나먼 해외에서 생을 마감하였지만 그들에게 자비란 없었다.

보재 선생은 그러한 연유로 블라디보스토크에 머물고 있었고 연해주와 만주 국경 지대의 한인들을 모아 ‘한민족이 부흥하는 마을’이란 의미의 한흥동을 건설하고 있었다.

헤이그에서 이루지 못한 바람도 국내에 돌아올 수 없는 상황도 보재 선생의 의지를 꺾지는 못하였다.

우당 선생은 강인한 정신과 굳건한 의지 그리고 세계정세에 대한 해박한 판단 능력을 가진 그와 함께라면 이 상황을 헤쳐 나갈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였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평생의 뜻을 함께한 지기인 그가 너무 보고 싶었다.

일본의 의심을 피하기 위하여 아홉 살이었던 난 우당 선생의 가족인 척 동행을 하였고 선생과 처음으로 중요한 일을 함께 한다는 생각에 난 너무나도 설레었다.


“신나느냐?”


우당 선생의 질문에 들떠있던 난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죄송합니다. 제가 잠시 경거망동했습니다. 앞으로는 삼가겠습니다.”


무엇을 하러 가는지도 잠시 잊고 철없이 군 나 자신을 자책하였다.


“괜찮다. 많이 보고 듣고 느끼거라. 지금 하는 경험이 너의 인생에서 큰 가르침이 될 것이다. 이러한 가르침을 바탕으로 좋은 어른으로 성장을 하면 좋겠구나. 그러겠다고 약속해 줄 수 있겠느냐?”


다정한 선생의 가르침은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그때의 그 약속은 내 마음속의 빚이 되어 평생을 맴돌았다.


새로운 세계에 대한 나의 설렘과 신기함을 뒤로한 채 어느덧 우리는 목적지에 도착하였고 보재 선생을 만날 수 있었다.


“마지막일 거라 생각했었는데 그 후로 벌써 두 번이나 더 볼 수 있다니 정말 꿈만 같아요.”


다시는 못 볼 줄 알았던 지기와의 만남에 우당 선생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우당 형, 나 역시 너무나 꿈만 같습니다. 강녕하셨지요?”


보재 선생의 상기된 얼굴엔 눈물이 글썽였다.


“이젠 나라의 군대도 해산되고 하나씩 하나씩 그들에게 넘어가고 있어요. 전국 각지에서 의병이 일어났지만 일본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에요. 이제 더 이상 한성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스러워요.”


수심이 가득한 한숨을 쉬며 우당 선생이 국내 정세에 대해 공유하였다.


“세계정세가 급변하고 있어요. 러시아는 무기를 서둘러 제조하고 시베리아 철도를 이용해 만주와 몽골 국경에 군대를 배치하고 있어요. 이는 일본의 팽창에 대한 불안과 견제를 보여주는 것이지요. 미국 또한 일본의 세력이 너무 강해지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고 있어요. 그들의 세력이 동양에서 줄어드는 걸 가만히 보고만 있지는 않을 거예요. 중국은 비록 지금은 그 세력이 많이 줄었지만 사억 인구를 만만하게 볼 수는 없어요. 중국, 미국, 러시아가 일본을 가만히 보고 있지만 않는다면 조만간 다시 전운이 일어날 것이에요. 우리 또한 대비를 해야 해요. 국내에서는 어려워요. 이제 해외에서 군대를 조직해야 합니다. 전초 기지를 세우고 독립군을 양성하여 열강들의 이해 충돌로 기회가 생길 때를 노리면 기필코 조국 광복을 이룰 수 있을 것이외다.”


보재 선생은 상기된 얼굴로 열띤 주장을 계속 펼쳤다.


“서전서숙을 운영하면서 깨달았어요. 미약하지만 뭉치면 큰 뜻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지금 이곳에는 많은 한인들이 흩어져 살고 있어요. 난 이들을 하나로 뭉칠 생각입니다. 지금 건설하고 있는 한흥동이 구심점이 되어서 하나로 뭉친다면 일본에 대항할 수 있는 큰 힘이 될 것이에요.”


보재 선생의 의견을 들은 우당 선생은 비로소 본인의 다음 운명이 무엇인지 보이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의견을 하나로 모아 독립을 위한 다음 단계를 도모하였다.

동지들을 규합하여 국민 교육을 장려하고 만주에서 독립군을 양성하기로 하였다.

그것을 위하여 비밀 결사체를 조직하고 운동 자금을 준비해야 했다.


“벌써 세 번째 이별이구려. 이젠 웃으면서 보재와 헤어질 수 있겠어요.”


이상했다.

두 분은 처음에 보였던 상기된 표정도 떨리던 눈빛도 더는 보이지 않았다.

민족과 나라를 위한 엄중한 사명감 때문인가?

아니 그보다 왜 이들은 이렇게까지 하는 것일까?

어린 난 진짜 하나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가 그들의 나이였으면 이해를 할 수 있었을까?


이젠 진짜 마지막이었다.

둘은 서로 다시 만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았다.

그런데 진짜로 마지막이 된 이별 앞에서 그들은 너무도 편안한 표정을 지었다.

난 먼 훗날이 돼서도 그때 그들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너무 늦었지만 깨달았다.



* * *



다시 돌아온 우당 선생은 신민회와 논의를 하면서 만주에서의 독립 기지 건설을 준비하고 있었다.

적합한 땅을 직접 둘러보기 위하여 만주에 여러 차례 방문을 하기도 하였다.

상황은 여전히 그대로였고 아무것도 바뀔 것 같지 않던 어느 날 멀리 하얼빈에서 아주 기쁜 소식이 전해졌다.


“호외요. 호외! 이토 히로부미가 처단되었습니다.”


온 나라에 소식이 울려 퍼졌다.

도마라는 한 애국지사는 민족과 나라를 강탈한 죄목에 의해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였다.

이토를 저격한 그는 도망가거나 피하지 않았다.

그는 당당하게 그의 행동을 천하에 알렸고 법원에서 우리 민족과 나라를 강탈한 이토의 죄를 꾸짖었다.

또 공정치 못한 일본 법원에서 내려진 사형 선고에도 항소하지 않았다.

일본 법원 자체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이 얼마나 기개 높은 뜻이랴.

그가 외친 ‘대한 만세’라는 뜻의 ‘코레아 우라’가 온 민족의 마음속에 울려 퍼졌다.


그리고 해가 지나가기도 전에 또 한 번 쾌거를 이루어냈다.

갓 스물을 넘긴 재명이라는 젊은 독립투사는 민족의 가장 큰 배신자인 이완용에게 나라를 팔아먹은 대가를 치르게 해 줬다.

민족의 한을 담은 그의 칼에 이완용은 갈비뼈 사이로 폐를 찔리고 치명상을 입었다.

비록 목숨을 빼앗기지 않았지만 이완용은 그 후유증으로 평생 힘들게 숨 쉬며 살아가야만 했다.

나라를 팔아먹은 대가로 엄청난 부와 권력을 쌓았을지언정 모든 사람들에게 허락된 가장 기본적인 숨쉬기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삶을 살게 되었던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완용을 비롯한 매국노들은 멈추지 않았다.

현 내각을 대표하는 이완용과 일진회를 이끄는 송병준 간 대결이 벌어졌다.

어이없게도 그들은 나라를 팔아먹기 위한 대결을 하고 있었다.

한편에서는 민족의 진정한 자유와 평화를 위하여 자신들의 목숨과 안위조차 돌보지 않고 모든 걸 바쳐서 투쟁을 하고 있었으나 그들은 같은 민족이라고 믿기 힘든 행동을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대한 제국을 강제로 병탄 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던 일본에게 더 맘에 드는 제안을 하기 위하여 고민하고 또 고민하였다.

결국 이 대결의 승자인 이완용은 통감부를 받들어 나라를 통째로 일본에 넘겼다.


기존의 경험을 바탕으로 주요 대신들이 모여서 한일 합방 조약이란 걸 체결하였다.

경술년에 체결된 새로운 강제 조약에 서명한 여덟 명의 매국노는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이었다.

내각 총리대신 이완용, 시종원경 윤덕영, 궁내부 대신 민병석, 탁지부 대신 고영희, 내부대신 박제순, 농상공부 대신 조중응, 친위부 장관 겸 시종무관장 이병무, 승녕부 총관 조민희 이상 여덟 명은 이천만 민족에게 씻을 수 없는 치욕을 안겨 주었다.

또한 후손에까지 대대손손 씻을 수 없는 역사의 상처를 새겨 놓았다.

을사년, 정미년에 이어 경술년에도 주요 대신 및 왕족을 비롯한 이 나라의 지배층들은 한결같이 백성과 민족의 걱정은 뒤로 한 채 자신의 안위만을 생각하였다.

특히 박제순, 조중응, 고영희, 이병무는 두 번씩이나 그리고 이 모든 일의 원흉이라 할 수 있는 이완용은 세 번 모두 그 더러운 이름을 조약서에 남김으로써 그들이 저지른 매국 행위는 억겁의 시간이 지나도 지워질 수 없도록 깊이 새겨졌다.



* * *



반만년 역사에 처음 있는 크나큰 치욕이었다.

외세에 침입을 받은 적은 있어도 나라가 송두리째 남의 손에 넘어간 것은 처음이었다.

경술년에 받은 나라의 수치, 경술국치는 우리 민족에겐 세기가 지나도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되었다.

수많은 애국지사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대항을 했다.

나라를 잃은 설움에 비분강개하여 자결을 하는 사람들, 산속으로 들어가 속세와의 연을 끊은 사람들, 모든 걸 바쳐서 투쟁을 준비하는 사람들.

나 또한 선택을 해야 했다.

그렇게 난 내가 나고 자란 이 땅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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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제5 장 전쟁(5) - 형님. 행복하십니까? 24.07.21 60 3 8쪽
18 제5 장 전쟁(4) - 전투의 시작, 사람을 죽이다. 24.07.20 66 4 8쪽
17 제5 장 전쟁(3) - 봉오동 저격수의 탄생 24.07.19 78 4 8쪽
16 제5 장 전쟁(2) - 무술을 배우다. 24.07.18 69 4 7쪽
15 제5 장 전쟁(1) - 슬픈 운명의 소녀 24.07.17 66 4 7쪽
14 제4 장 운산(3) - 동민 형의 결심 24.07.16 63 4 8쪽
13 제4 장 운산(2) - 봉오동 독립군 기지와 정예 독립군 ‘독군부’ 24.07.15 72 3 8쪽
12 제4 장 운산(1) - 북간도의 사 형제 24.07.14 81 4 8쪽
11 제3 장 망명(4) - 어린아이의 호기심이 세상을 바꾸다. +2 24.07.13 111 4 9쪽
10 제3 장 망명(3) - 신흥 무관 학교 24.07.12 104 4 8쪽
9 제3 장 망명(2) - 대고산에 울려 퍼진 한민족의 기개 24.07.11 108 4 9쪽
8 제3 장 망명(1) - 서간도로 가는 길 24.07.10 108 5 9쪽
» 제2 장 대항(4) - 경술년에 일어난 나라의 수치 24.07.09 128 4 10쪽
6 제2 장 대항(3) - 그리고 그곳엔 충정한 군인의 유서가 있었다. 24.07.09 239 3 7쪽
5 제2 장 대항(2) - 헤이그의 영웅들 24.07.09 188 6 12쪽
4 제2 장 대항(1) - 백악관의 밀약 24.07.09 216 6 9쪽
3 제1 장 우당(2) - 을사늑약 24.07.08 283 4 8쪽
2 제1 장 우당(1) - 괜찮습니까? 24.07.08 423 9 12쪽
1 프롤로그 +1 24.07.08 605 12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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