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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초리初理
그림/삽화
퐌베어
작품등록일 :
2024.07.08 11:48
최근연재일 :
2024.09.04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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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14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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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쪽

제4 장 운산(1) - 북간도의 사 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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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만강을 건너면 간도라는 땅이 나온다.

‘사이섬’이라는 말뜻 그대로 청나라와 조선 사이에 비어있는 섬과 같은 땅이었다.

조선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이 땅은 오랜 세월 동안 한민족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 왔다.

이 지역에는 만주족의 선조인 여진족이 대대로 살고 있었지만 예로부터 한민족의 직간접적 지배를 받아 왔다.

조선 시대에도 때로는 조선에 조공을 바치기도 하고 때로는 조선과 대립을 하는 등 여전히 조선의 영향력이 강하게 작용하였다.

세종 시절에는 이 지역 여진족 족장에게 관직이 내려지기도 하였다.

후에 만주족들이 청나라를 세우면서 이 지역의 만주족들이 대거 중원으로 이주하였고 비어있는 땅에 조선인들이 이주를 하여 구한말 대한 제국이 설립될 무렵 이곳의 주민은 대부분 조선인들로 채워졌다.

국경 북쪽이지만 실질적 조선의 땅이나 마찬가지인 복잡한 이 지역에서 또 하나의 민족 영웅이 태어났다.

서간도에 우당 육 형제가 있다면 이곳에는 운산 사 형제가 있었다.



* * *



구한말 도태란 관직이 있었다.

이 시기 두만강 이북의 간도는 조선인들의 삶의 터전이었다.

청나라가 건국되고 만주족들이 중원으로 떠나며 비어있는 간도 지역을 청나라는 만주족의 발상지라 여기고 다른 민족의 이주를 금지하는 봉금령을 시행하였다.

시간이 흐르자 세도 정치의 학정과 지방 수령의 수탈을 견디다 못한 조선의 농민들이 봉금령에도 불구하고 두만강 이북으로 건너가 이주하기 시작하였다.

이후 조선에 대흉년이 들며 더 많은 조선인들이 이주하자 단속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서양 열강의 침략과 태평천국 운동이 일어나며 청나라가 쇠퇴해지자 봉금령은 해이해지기 시작했고 더 이상 조선인들의 간도 이주를 막을 순 없었다.

결국 봉금령은 폐지되었고 이 지역은 실직적 조선의 땅이었다.

그러자 조선의 조정에서는 간도 지역의 조선인들을 관리하는 도태란 관직을 두고 관리를 파견하였다.

이 중에는 연변으로 파견된 연변 도태 우삼이 있었다.


러시아에 연해주를 빼앗긴 청은 만주 지역을 다시 발전시키기 위하여 본토의 중국인들을 이 지역으로 대규모 이주시켰고 이 과정에서 기존에 살고 있던 조선인들과 마찰이 생기게 되었다.

대쪽 같은 성격의 도태 우삼은 조선인의 자주와 권리를 침범해 오는 청나라에 맞서 간도가 조선 땅임을 분명히 밝히고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결국 청나라군과 무력 충돌까지 일어났으나 중과부적인 군사의 열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패배하고 만다.

전통 무술 고단자인 지인의 도움으로 두 아들과 함께 두만강을 건너 피신하였으나 어머니가 청나라 군대에 잡혀갔다.

그 자식에 그 어미라 도태의 모친인 한 씨 부인은 목숨을 구걸하기는커녕 한 치의 비굴함도 없이 청나라의 잘못을 꾸짖었다.


“원래 간도는 조선인들이 사는 조선 땅이다. 내 아들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으니 잘못한 것이 없다.”


하지만 도태는 모친을 살리기 위해 다시 연변으로 돌아와서 청나라군에 자진 출두했다.

한 씨 부인과 도태의 아들들은 가산을 정리하여 보석금을 내고 도태를 석방시켰지만 이로 인해 가세가 기울었다.


집안을 살리기 위해 도태의 두 아들들이 나섰다.

중국인 부호 밑에서 일했던 큰 아들은 그의 총명함에 반한 주인의 양자로 들어가며 넓은 토지를 물려받았다.

둘째 또한 왕청현 총판으로 일하며 황무지 땅을 민간에 파는 중국 정부의 토지 정책을 이용해 근방의 땅을 헐값에 매입하여 왕청현 일대 대부분의 땅이 그의 소유가 되었다.

두 아들 덕에 도태의 집안은 다시 일어서게 되었다.


둘째 운산은 멀리서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만큼 용모가 뛰어났다.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도 한눈에 띌 만큼 잘생긴 얼굴에 남들보다 월등히 큰 키와 덩치는 단순히 기골장대 하다고 표현하기에는 아쉬울 정도였다.

또한 옆에 있는 사람들이 놀랄 만큼 목소리가 우렁차고 씩씩해서 천상 장군감이란 생각이 절로 나오게 하는 인물이었다.

이러한 외모만큼 무인으로서 그의 기질은 뛰어났다.

일전에 가족들의 목숨을 구해준 무술 고단자인 도태의 친구는 같은 집에 지내면서 도태의 자식들과 동네 청년들을 모아서 무술을 가르쳤다.

처음에는 50명 정도가 시작하였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훈련의 강도는 점점 세어졌다.

난이도가 높아질수록 견디기 힘든 수행에 참지 못하고 하나둘씩 포기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참을성이 남달랐던 운산은 끝까지 버텼고 결국 마지막 수련까지 마친 건 혼자뿐이었다.

사부는 더 이상 가르칠 것이 없다고 운산을 무술 전수자로 인정하였다.

강인한 체력과 무술 실력을 바탕으로 운산은 뛰어난 군사적 재능을 보이기 시작했다.


운산은 군사적 능력뿐 아니라 탁월한 사업가이기도 했다.

뛰어난 식견으로 왕청현 일대의 거대한 토지를 싼 가격에 구입했던 그는 그의 소유의 땅에서 농장과 목장을 운영하였다.

이를 기반으로 훈춘과 장춘 등지에서 러시아와의 무역이 가능해졌다.

재배된 곡물과 길러진 소들은 러시아 군의 식량으로 대량 납품되었고 머지않아 그는 더 많은 부를 창출할 수 있었다.

시대의 흐름을 제대로 읽을 줄 알았던 그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가진 자본을 기반으로 근대화된 공장을 운영하기 시작하였다.

콩기름, 국수, 주류, 비누, 성냥, 콩과자 등을 생산하는 공장을 지었고 이는 기존의 농업 및 목축업에서 나오던 것의 몇 배에 해당하는 수익을 올리게 해 주었다.

간도 최고의 거부가 된 그는 북만주, 연해주 등지의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하였다.

당시 이 근방 지역에서 그의 도움을 받지 않은 독립운동 단체나 애국지사가 없다고 할 정도였다.


그런 그가 어느 날 도시인 연길을 떠나 자신의 소유인 한 산골짜기로 이주했다.

시대의 흐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그의 본능적 감각 때문인지 부모와 형제를 설득해 그의 가족 전부를 데리고 아무도 살지 않는 산골에 들어가 마을을 건설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가족들과 먼저 자리를 잡은 뒤 일가친척과 근처의 동포들을 불러 모아 신한촌을 건설하였다.

거주를 위한 가옥들이 하나둘씩 지어졌고 농사가 시작되었다.

비옥한 땅 덕분인지 벼농사가 잘 되었고 콩, 옥수수, 무, 배추 등의 다양한 작물도 잘 자라났다.

풍부한 식량을 바탕으로 갖춰진 자급자족의 능력은 훗날 자체적 군량 보급까지 가능하게 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모임에 따라 학교와 같은 교육 기관까지 세워지며 마을은 점점 발전하게 되었다.

어쩌면 그는 모든 것을 다 예상하고 미리부터 차근차근 계획을 세우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독립군을 조직하고 체계적으로 일본군과 싸우기 위해서는 군대의 근간이 되는 기지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봉황 봉, 오동나무 오, 봉황새가 오동나무에 깃을 사린다는 봉오동이라는 전대미문의 독립 기지는 그렇게 탄생했다.

봉오동은 정말 최적의 독립 기지였다.

고려령 산줄기에 둘러싸인 마을은 입구를 제외하고는 쉽게 왕래가 어려웠기에 방어에 최적화되어 있었다.

계곡을 따라 맑은 물이 흐르는 강을 끼고 있던 마을에는 농사를 짓기에 비옥한 땅들이 확보되었다.

위치적으로 봐도 여러 가지 유리한 점이 있었다.

봉오동에서 십 킬로미터 정도를 가면 두만강이 나왔다.

강폭이 좁은 곳은 헤엄을 못 치는 사람도 쉽게 건널 수 있을 정도였다.

그렇게 두만강을 건너면 함경북도 온성이 나왔다.

국내로 들어가기 최적의 장소였다.

또한 국경 도시 도문과 인접한 봉오동의 입구는 연길과 왕청으로 가는 길목이었다.

산길을 따라가면 한쪽으로는 북만주의 여러 지역과 다른 쪽으로는 훈춘을 지나 연해주로 가는 길목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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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제5 장 전쟁(4) - 전투의 시작, 사람을 죽이다. 24.07.20 66 4 8쪽
17 제5 장 전쟁(3) - 봉오동 저격수의 탄생 24.07.19 78 4 8쪽
16 제5 장 전쟁(2) - 무술을 배우다. 24.07.18 70 4 7쪽
15 제5 장 전쟁(1) - 슬픈 운명의 소녀 24.07.17 67 4 7쪽
14 제4 장 운산(3) - 동민 형의 결심 24.07.16 64 4 8쪽
13 제4 장 운산(2) - 봉오동 독립군 기지와 정예 독립군 ‘독군부’ 24.07.15 73 3 8쪽
» 제4 장 운산(1) - 북간도의 사 형제 24.07.14 82 4 8쪽
11 제3 장 망명(4) - 어린아이의 호기심이 세상을 바꾸다. +2 24.07.13 111 4 9쪽
10 제3 장 망명(3) - 신흥 무관 학교 24.07.12 104 4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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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제3 장 망명(1) - 서간도로 가는 길 24.07.10 108 5 9쪽
7 제2 장 대항(4) - 경술년에 일어난 나라의 수치 24.07.09 128 4 10쪽
6 제2 장 대항(3) - 그리고 그곳엔 충정한 군인의 유서가 있었다. 24.07.09 239 3 7쪽
5 제2 장 대항(2) - 헤이그의 영웅들 24.07.09 188 6 12쪽
4 제2 장 대항(1) - 백악관의 밀약 24.07.09 216 6 9쪽
3 제1 장 우당(2) - 을사늑약 24.07.08 283 4 8쪽
2 제1 장 우당(1) - 괜찮습니까? 24.07.08 424 9 12쪽
1 프롤로그 +1 24.07.08 606 12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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