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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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초리初理
그림/삽화
퐌베어
작품등록일 :
2024.07.08 11:48
최근연재일 :
2024.09.04 14:00
연재수 :
5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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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75,431

작성
24.07.08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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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제1 장 우당(1) - 괜찮습니까?

DUMMY

누구에게는 목숨을 버릴 만큼 수치스러운, 누구에게는 모든 부와 권력을 부여잡는 기회가 된 을사년의 강제 조약이 일어나던 그 무렵 난 우당 선생을 처음 만났다.



* * *



구한 말 어지러운 시절, 중인의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실상 노비와 크게 다르지 않은 생활을 하고 있었다.

나라님들은 자기 배를 채우기에 바빴고 흉년과 기근은 우리네 삶을 더 어렵게 만들었다.

먹을 것이 없어서 자식까지 팔아야 하는 나라에서 부잣집 대감의 농사 심부름을 한다는 것은 노비와 별반 다르지 않은 처지를 말하는 거였다.

이 대감 저 대감 집을 떠돌며 희망 없는 하루를 보내던 중 난 조금 특별한 대감 집의 일을 맡게 되었다.


우당 선생은 예로부터 최고의 명문 가문이라 일컫는 삼한갑족(三韓甲族)으로 불린 명문대가 출신으로 대대로 고위 관직을 지낸 집안의 어르신이었다.

그의 10대조 조부님인 백사 대감은 조선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영의정 중 하나라 불리는 분이었다.

임진왜란이 한창 조선 반도를 어지럽히던 시절 선조 임금을 모시고 피난을 떠나면서도 왜적을 물리치는 일에 온 힘을 다한 분이었다.

어쩌면 일본에 대항하는 우당 선생의 정신은 핏줄 깊은 곳으로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르겠다.

그 외 영의정, 좌의정, 형조참판 등 조선의 주요 관직을 차지하는 권문세가의 집안이었다.

가깝게는 선생의 부친 또한 이조 판서를 역임하였다. 권력과 부는 따로 생각할 수 없다고 했던가?

역임한 관직만큼 집안의 부는 축적되었고 조선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드는 큰 부호였다.


먹을 것이 없어서 음식을 얻기 위해 시작한 농사 허드렛일은 어느새 직업이 되어 있었고 결국 나의 신분을 결정하였다.

그렇게 난 다섯 살부터 남의 집의 농사일을 도우는 소작농 같은 처지였고 실상 노비들과 같이 먹고 자며 중인이란 신분이 무색해졌다.

한 왕조의 끝자락에 일개 평민 따위의 안위를 누가 지켜줄 것인가.

평민과 천민의 경계가 있을 리 만무한 시기였다.

신분 따위에 대해 신경 쓰기엔 너무 어린 나이였기도 했고 그저 이 집 가라면 가고 저 집 가라면 가는 아무런 의미 없는 미래가 보이지 않는 삶을 살아간 지 일 년쯤 지날 무렵 어느 날 선생과의 첫 만남이 이루어졌다.


그날도 새벽부터 밭에 있는 잡초를 뽑고 자갈을 골라내는 일을 하루 종일 하고 있었다.

그 무렵 조선에서는 거듭된 흉년과 역병이 일어났고 수확이 줄어들자 가장 먼저 나 같은 소작농에게 돌아오는 식량을 줄이는 일은 지주에게는 당연한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태어났을 땐 이미 한반도에는 조선이란 국호 대신 대한 제국이란 국호가 선포된 지 삼 년 남짓 되었지만 그런 건 한 공기의 쌀밥보다 의미가 없는 것이었다.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며칠째 제대로 된 음식을 못 먹어서인지 나도 모르게 쓰러지고 말았다.

내 몸집 만한 지게가 나와 함께 쓰러지며 하루 종일 뽑은 잡초와 자갈이 거리에 쏟아지고 말았고 하필 그 옆을 지나가는 지체 높은 양반의 옷깃을 더럽히고 말았다.

집사로 보이는 사람의 호통이 치는 것 같았지만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고 어쩌면 이대로 맞아 죽을지도 모르지만 난 오히려 편안하게 정신줄을 놓아 버렸다.


“괜찮습니까?”


한참 후 깨어난 나의 귀에 들려온 건 내가 저승에 온 것이라고 착각할 정도로 정중한 말이었다.

그것도 지체 높은 양반의 입에서.

일개 노비와 같은 어린 평민을 상대로 이런 정중한 말투는 조선 팔도 어디에서도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믿어왔던 나에겐 너무나 큰 충격이었다.


“어르신께 큰 폐를 끼쳤습니다. 송구스럽습니다.”

“다행입니다. 몸이 쾌차할 때까지 편히 쉬다가 가셔도 됩니다.”


너무나도 큰 배려 때문인지 생애 처음 받아보는 정중함에 대한 기만이었는지 나도 모르는 용기가 나왔다.


“부탁이 있습니다.”


당장이라도 호통이 떨어져도 이상하지 않은 아니 어디 한 군데 부러질 정도로 매질을 당하고 쫓겨나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나에게 돌아온 건 온화한 미소였다.


“편하게 얘기해 보시지요.”

“저를 이 집의 심부름꾼으로 써 주세요. 전 부모도 없고 갈 곳도 없습니다.”

“편하게 쉬십시오.”


그렇게 우당 선생과의 만남이 시작되었다.



* * *



우당 선생을 만난 후, 일개 심부름꾼이지만 글도 배우고 학문의 기회도 얻을 수 있었다.

그러한 것들은 어둠뿐이었던 나의 삶에도 처음으로 희망찬 내일을 그리게 해 줬다.

이젠 더 이상 다음날 눈을 뜨는 것이 괴롭지가 않았다.

나의 삶을 바꾼 건 어쩌면 선생의 신념이었다.

선생은 우리 민족의 더 나은 앞날을 위해서라면 교육을 통한 백성들의 깨달음이 꼭 필요하다고 믿었다.

미개한 섬나라였던 일본이 서양식 문화를 인정하고 문물을 받아들이며 신식 교육으로 국민들을 계몽함으로써 이론과 이상을 논하는 유교 사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중국 대륙과 한반도를 지배할 저력을 보유하게 되었다.

계급 간 격차가 줄어들며 많은 사람들이 신학문을 배울 수 있었던 일본과는 다르게 아직까지도 조선에서는 봉건적 계급에 의해 지배 계층만이 교육의 특권을 누릴 수 있었고 그 또한 실보단 예를 중시하며 논에서 논으로 끝나는 이상적 학문이 전부였다.

외국어, 수학, 물리학, 경제학과 같이 급변하는 국제 정세에 대응하기 위한 실질적 학문보다는 논어 만 천 자, 맹자 삼만 자를 외우는 것이 이 시대의 사대부에게는 더 명예로운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미 모든 힘을 빼앗겨 버린 나라의 귀족이었으나 그들에게 배움은 절대로 나눌 수 없는 권리였다.

사대부들은 이런 시대에조차 백성들의 배움을 허락하지 않았다.


일본은 이미 후쿠자와 유키치의 게이오 의숙 같은 교육 기관을 통해 일반 백성들에게 새로운 사상과 실질적 학문을 보급하고 있었다.

이러한 교육을 통해 새로운 정치 기반, 과학, 의학 등의 발전을 이룩하였고 이를 통하여 강대국으로 발돋움하게 되었다.

우당 선생은 이와 같이 모든 백성들에게 가르침의 기회를 주는 것이 우리 민족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고 생각하였다.

일찍이 선생은 교육 사업에 많은 투자를 하였다.

상동학원 설립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고 이를 통하여 많은 백성들이 신교육을 받을 기회를 받았다.

그렇기에 나와 같은 일개 심부름꾼뿐 아니라 집안의 노비들에게조차 책을 접할 기회를 주었다.



* * *



우당 선생이 태어난 집터는 한성 남부 명례방 저동에 위치하고 있었다.

대대로 고관대작을 지낸 삼한갑족의 가문인 만큼 이곳은 풍수지리적으로 명당이었다.

그러므로 뭇 양반의 저택이 주변에 자리 잡고 있었고 바로 옆집에는 동부승지 대감의 댁이 있었다.

이 댁에는 대를 이을 후사가 없었기 때문에 문중에서 한 아이를 골라 양자로 입적시켰다.

우당 선생의 평생지기이자 독립 투쟁의 영혼의 동지인 보재 선생과의 만남이 이렇게 이루어졌다.

이 두 사람의 만남이 없었더라면 민족의 영광과 주권을 되찾는 대한 제국의 독립 투쟁이 다른 방향으로 이루어졌을지도 모른다.


옆집 사는 두 천재 양반 도령의 운명적 만남과 비슷하면서도 완전 반대인 다른 운명적 만남이 명당이라는 선생 저택의 지리적 이점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우당 선생의 저택에서 십여 분 걸어 내려가면 상동골이 나오고 장안에서 가장 큰 상동 저잣거리가 나왔다.

그렇기에 선생은 저잣거리의 소식에 대해서 쉽게 접하는 유년 시절을 보낼 수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상동 저잣거리를 통해 보고 느낀 불평등한 백성들의 삶은 선생에게 큰 영향을 미쳤고 이는 모든 백성들을 깨우쳐야 한다는 교육 신념과 모든 인간은 평등해야 한다는 사대부 답지 않은 사상을 선생에게 일깨워 줬다.

또한 상동 저잣거리에 위치한 상동교회는 우당 선생의 초창기 민족 운동의 구심점이 되었다.

이 교회의 담임 목사인 전목사는 원래 조실부모하고 삼촌 밑에서 숯을 팔며 가난하게 지내던 소년이었다.

이 시절 외국인 선교사들은 한성 곳곳에 들어와 있었다.

자기와 다른 외모에 대한 신기함과 두려움으로 저잣거리 아이들은 이들에 대하여 이상한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호기심에 아이들은 이들이 지나가면 손가락질을 하거나 심지어 멀리서 돌을 던지기도 하였다.

소년 시절 전목사도 여느 아이들처럼 선교사가 운영하는 약국에 돌을 던져서 유리창을 깨버렸다.

하지만 선교사 메리 스크랜튼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를 용서하였고 이에 감복한 전목사는 그 집에서 심부름과 약국의 잡일을 하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그는 메리의 아들 스크랜튼 선교사의 밑에서 의료 선교의 일을 돕게 되었고 결국 본인도 목사 안수를 받게 되었다.

우당 선생은 안수 전부터 전목사의 언변에 감탄해 서로 의기투합하였고 자연스럽게 상동교회는 민족 교육 운동 및 외세 침입에 대한 독립 투쟁의 중심지로 자리 잡고 있었다.

상동교회 내 상동청년회가 조직되었고 여기에는 전목사와 우당, 보재 선생을 중심으로 우당의 동생인 성재, 석오, 우강, 야은, 의병장 우강 선생 같은 많은 지사들이 모이고 있었다.

이들은 백성들을 실학 위주로 교육하는 계몽 운동을 하는 한편 의병 활동을 지원하는 일도 하였다.

이를 위하여 민족 자본 마련이 필요하였고 조정의 내장원경을 통하여 왕실의 땅을 임대해 인삼 재배 사업을 벌이는 등 체계적인 민족 운동을 진행하였다.


‘나라와 백성을 다시 일으키기 위해서 변화하는 세계에 적응해야 한다. 청나라를 상국으로 섬기며 중국 대륙과 한반도 만이 이 세상의 전부라고 믿어야 했던 시대는 갔다.’


이러한 생각으로 우당과 보재 선생은 일찍이 청년 시절부터 백성들의 실용적 교육의 중요성에 대해서 깨닫고 있었다.


세계열강은 앞다투어 다른 대륙을 그들의 영향력 아래 놓으려고 때로는 선진 기술을 전수해 준다는 유혹으로 때로는 그들이 가진 강력한 신식 무기를 앞세운 협박으로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걸 동원했다.

아시아 대륙 또한 예외는 아니었으며 세계 열강의 신식 문물을 받아들이고 메이지 유신을 이뤄낸 일본과는 다르게 한반도에서는 새로운 것을 배척하였고 결국 일본의 영향력 아래 놓이게 되었다.

어린 시절 저잣거리에서 일본인 상인들에게 사탕을 구걸하는 아이들, 일본제 물건에 혹해서 자진해서 제사를 지낼 곡식을 가져다 바치고 후회하는 여인들을 보면서 우당 선생은 다짐하였다.


‘옛 것을 고집하며 우리만의 틀에 박혀서는 절대로 열강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없다. 필요한 것은 받아들이고 우리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양반들만이 아닌 모든 백성들을 깨우쳐야 한다.’


이러한 신념을 반영하듯이 상동청년회를 중심으로 중등 교육 기관인 상동학원 설립되었다.

내가 우당 선생을 만나기 얼마 전에 세워진 이 교육 기관은 나에게도 큰 도움을 주었다.

선생과의 만남 후 아직 어린 나이였던 나는 대부분 집에서 책으로 공부를 하였지만 가끔 선생을 따라서 학원에 놀러 갈 기회를 얻었다.

그 시절 어깨너머 보고 배운 일본어, 영어는 나의 인생에 큰 도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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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제5 장 전쟁(5) - 형님. 행복하십니까? 24.07.21 61 3 8쪽
18 제5 장 전쟁(4) - 전투의 시작, 사람을 죽이다. 24.07.20 66 4 8쪽
17 제5 장 전쟁(3) - 봉오동 저격수의 탄생 24.07.19 78 4 8쪽
16 제5 장 전쟁(2) - 무술을 배우다. 24.07.18 70 4 7쪽
15 제5 장 전쟁(1) - 슬픈 운명의 소녀 24.07.17 67 4 7쪽
14 제4 장 운산(3) - 동민 형의 결심 24.07.16 64 4 8쪽
13 제4 장 운산(2) - 봉오동 독립군 기지와 정예 독립군 ‘독군부’ 24.07.15 73 3 8쪽
12 제4 장 운산(1) - 북간도의 사 형제 24.07.14 82 4 8쪽
11 제3 장 망명(4) - 어린아이의 호기심이 세상을 바꾸다. +2 24.07.13 111 4 9쪽
10 제3 장 망명(3) - 신흥 무관 학교 24.07.12 105 4 8쪽
9 제3 장 망명(2) - 대고산에 울려 퍼진 한민족의 기개 24.07.11 108 4 9쪽
8 제3 장 망명(1) - 서간도로 가는 길 24.07.10 108 5 9쪽
7 제2 장 대항(4) - 경술년에 일어난 나라의 수치 24.07.09 128 4 10쪽
6 제2 장 대항(3) - 그리고 그곳엔 충정한 군인의 유서가 있었다. 24.07.09 239 3 7쪽
5 제2 장 대항(2) - 헤이그의 영웅들 24.07.09 188 6 12쪽
4 제2 장 대항(1) - 백악관의 밀약 24.07.09 216 6 9쪽
3 제1 장 우당(2) - 을사늑약 24.07.08 284 4 8쪽
» 제1 장 우당(1) - 괜찮습니까? 24.07.08 425 9 12쪽
1 프롤로그 +1 24.07.08 607 12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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