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제일 개방 방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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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헌앙
그림/삽화
헌앙
작품등록일 :
2024.07.20 08:19
최근연재일 :
2024.08.10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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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20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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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쪽

걸개회귀전

DUMMY

安得更似開元中

어찌하면 개원의 태평성대가 다시 될까?

道路卽今多擁隔

길은 지금도 막히는 경우가 예삿일이니


光祿坂行

두보(杜甫)


*


숭정17년 4월.


이자성이 군대를 이끌고 북경을 점령했다.

명나라 마지막 황제 숭정제는 경산에서 목을 매 자결했다.


같은 해 5월.


요녕성 각산장성.

북경을 지키는 만리장성의 산해관으로부터 불과 6리 떨어진 곳이다.

이곳에 청나라 군영이 설치되어 있었다.


5살의 조카 순치제를 대신해서 청을 다스리는 황부섭정왕.

아이신기오로 도르곤.

그는 산해관을 치기위해서 팔기군을 이끌고 각산장성에 주둔하고 있었다.


도르곤은 이자성의 난으로 정신 없는 틈을 타 명의 마지막 관문인 산해관을 공략하러 온 것이다.


산해관을 지나면 바로 북경이었다.

명나라의 운명은 바람 앞의 등불이었다.



늦은 저녁.

청나라 군영은 낮처럼 불을 밝히고 떠들썩했다.

오늘 낮에 있었던 각산장성 전투의 승리를 축하하는 연회였다.

청군은 도르곤의 막사 앞에 길다란 탁자를 두었다.

그 위에 끝도없는 산해진미들이 펼쳐져 있었다.


탁자 상석에 갑옷을 입은 도르곤이 앉았고,

오른편에는 팔기군의 장군들이 앉았다.

왼편에는 청나라를 돕는 무림의 고수들이 앉았다.


서장 밀교의 고승인 금장상인金杖上人 .

개방의 방주 장묵張默.

항산파 장문인 계오진인契悟眞人.

태산파 장문인 천기자天驥子.

장백파 장문인 박귀태朴貴太.

모용세가주 모용첩募容捷.


흔히 절정고수라 불리는 여섯 명이었다.

그 외에도 무림의 내로라하는 일류 고수들이 청나라의 휘하에 들어가 그들을 위해 싸웠다.


도르곤은 술에 불콰하게 취해 기분이 좋았다.

왼편에 앉은 금장상인에게 손수 술을 따라주며 인사를 표했다.


“금장상인을 포함해서 여러 무림의 고수들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우리가 중원을 제패하기 힘들었을 것이오. ”


금장상인이 도르곤의 술잔을 공손히 받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 모두 황부왕의 덕이 뛰어나서 아니겠습니까. 저희 무림인들이 한 것은 그저 작은 일에 불과합니다.”

“아니야. 중원의 무림인이란 것들이 골치아팠소. 그놈들은 돈을 준대도 마다하고 신출귀몰해서 잡기도 힘든 것들이오. 그런데 여기 모여주신 세 분 장문인, 모용 가주, 장 방주가 정말로 큰 일을 해주었소.”


도르곤의 말에 금장상인이 공을 오른편에 앉은 개방 방주 장묵에게 돌렸다.


“사실 장 방주가 큰일을 해주었지요. 중원 각지에 긴밀한 정보망을 가진 개방의 도움이 없었다면 우리 청나라 군대가 이렇게 파죽지세로 움직일 수는 없었을 겁니다.”


금장상인의 칭찬에 장묵 방주는 부끄러워하며 포권을 했다.


“작은 공을 이리 세워주시니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하하하. 장 방주는 겸양이 과하구려. 내 북경을 손에 넣는 날에는 장 방주에게 아쉽지 않게 사례하겠소.”


도르곤의 말에 장묵은 벌떡 의자에서 일어나 바닥에 꿇고 절했다.


“전하, 성은이 망극합니다.”

“어허, 일어나시구려.”


도르곤은 손수 장묵을 일으켜주고 장묵의 잔에 술까지 따라주었다.


“한 잔 쭉 들이키시오.”


장묵이 도르곤이 준 술잔을 공손히 받아서 고개를 돌리고 마셨다.


“장 방주 뿐만이 아니고 계오진인, 천 장문, 박 장문, 모용 가주의 고생을 내가 다 기억할 것이오. 그 밖의 여러 영웅들의 고생 또한 마찬가지고.”


도르곤의 말에 여기저기서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하는 말이 터져 나왔다.



도르곤이 무림 고수들의 공적을 크게 보상해준다는 말이 나오자 무림 고수들의 표정이 풀어지고 분위기가 훈훈해졌다.


“자, 다들 마십시다. 아직도 술과 양고기가 넘쳐나도록 많이 있소.”


도르곤이 무림인들의 자리를 한 바퀴 돌면서 술잔을 따라주고 자리로 돌아오는데,

별안간 피융, 하고 화살이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들렸다.


쨍강!


금장상인이 금장을 손에 들고 도르곤의 뒤통수를 꿰뚫으려는 화살을 쳐냈다.


“거기 누구냐!”


금장상인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강한 내력이 담긴 웅후한 외침이었다.


금장상인의 사자후를 들은 각 문파의 장문인들은 모골이 송연해졌다.


‘금장상인의 내력이 대단한 걸 볼 때 벌써 초절정의 경지에 도달했구나. ’


금장상인의 시선이 연회장 주변에 세워진 군의 막사에 향했다.

둥그런 원형의 막사 위에 삼각뿔 모양으로 지붕이 있었는데 그 위에 한 명의 인영이 나타났다.


어두워서 잘은 보이지 않았으나 누더기를 걸친 60세쯤 되어보이는 장년인이었다.

덩치는 당당했고 그의 손에는 활이 들려있었다.


“도르곤! 너는 어째서 애먼 중원을 침략해서 백성들을 도탄에 빠뜨리는 거냐!”


누더기를 걸친 장년인이 도르곤을 꾸짖었다.

그 목소리는 금장상인만큼이나 우렁찼다.

무림 고수들은 혼란에 빠졌다.


‘저 고인은 누구길래 저렇게 내력이 웅후하지? 우리가 모르는 고수가 또 있다는 말인가?’


“지금이라도 휘하 군대를 이끌고 너희 땅으로 돌아가라. 그러면 네 목숨만은 붙여놓겠다.”


도르곤이 화난 목소리로 외쳤다.


“저 잡것은 대체 뭐란 말이오! 금장상인 어서 저놈을 잡아 오시오!”


장년인은 다시 화살을 하나 더 메겼다.


쉬익!


화살이 도르곤의 머리통을 향해서 곧장 날아갔다.

그러나 금장상인의 금장에 화살은 다시 튕겨져 나갔다.


갑자기 도르곤의 막사 좌우에서 함성과 함께 화살이 마구 쏘아졌다.


화살에 팔기군의 장군 한 명이 목이 꿰여 바로 죽었고

여러 명의 만주족 군관이 목숨을 잃었다.


화살이 한 차례 쏘아진 후,

많은 수의 칼든 자들이 청나라 군대에 덤벼들었는데 행색을 보아하니 명나라 군인이 아니었다.

무림인들인 듯했다.


그중 태반은 거지 차림의 무림인이었다.

개방 방주 장묵에 반대해서 방을 떠났던 오의파 개방도들이었다.


“저, 저것들이 다 뭐란 말이냐?”


도르곤은 놀라서 엉덩방아를 찧었다.


“전하, 일단 안전한 곳으로 피하시죠! 제가 호위 하겠습니다.”


금장상인이 도르곤을 일으키며 말했다.

그러고는 휘하 군인들을 둘러보며 명했다.


“뭐하고 있소! 전하를 보호하시오!”


금장상인의 명에 군인들이 서둘러 움직였다.


“저희는 살수를 잡겠습니다.”


금장상인이 고개를 끄덕이자 장묵을 비롯한 고수들은 누더기 옷의 무인을 잡기 위해 움직였다.


“댁은 대체 누구길래 황부왕을 공격한 것이오? 목숨이 열 개라도 된단 말이오?”

“만주 오랑캐의 개가 사람을 보고 짖는구나.”


누더기 옷의 무림인이 장묵을 보며 일갈했다.


“뭐가 어쩌고 어째?”


화가난 장묵이 막사 위쪽으로 솟구쳐 올라가 누더기 무림인을 공격했다.

하지만 누더기 무림인은 절묘하게 장묵의 공격을 몸을 비틀어 피하고는 활을 버리고 허리춤에 찬 나무 지팡이를 치켜 들었다.


파파팍!


장묵은 누더기 무림인의 공격이 너무 빠르고 변화가 무궁해서 막을 수가 없었다.

장묵은 버티려 했지만 손속이 어지러워졌다.

결국 채 50여 합을 버티지 못하고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누더기 무림인도 장묵의 뒤를 이어서 막사 아래로 내려왔다.

횃불이 있는 막사 아래 쪽으로 내려오자 누더기 옷의 무림인의 정체가 드러났다.


“홍강! 네가 어떻게 여기에!”


장묵이 누더기 무림인을 알아보고 소리쳤다.

누더기 무림인은 강호에 이름 높은 걸개토룡乞丐土龍 홍강洪康이었다.


홍강의 누더기 옷 허리춤에는 6개의 매듭이 묶어져 있었다.

개방에서 법개 신분임을 뜻했다.


“장묵! 그 더러운 입으로 감히 내 이름을 부르느냐!”


홍강이 장묵에게 일갈했다.


“개방을 오랑캐에게 갖다 바치고 자신의 일신영달만을 추구하는 네녀석이! 돌아가신 사부님과 사조들의 이름에 먹칠을 하는구나!”


“사제! 오해가 있네. 내가 청나라에게 귀의한 것은 다 백성을 위해서야, 이자성이 난을 일으켜 북경은 함락되고 황제는 죽었는데 어쩌겠나. 청나라가 중원을 다스리는 것이 만 백성을 위하는 길이네.”


홍강은 가소롭고 증오스럽다는 눈길을 보냈다.


“요녕성 곳곳에 돌멩이보다 한족 백성들의 시체가 더 많이 널부러져있다! 네놈이 요사스런 혓바닥을 놀려서 개방도들을 악의 구렁텅이로 빠뜨렸어!”


홍강이 장묵을 향해 장풍을 날렸다.

장묵은 홍강의 장풍을 맞 장풍을 쏴서 파해했다.

항룡십팔장 단풍취룡 초식이었다.


“내 오늘 네 목을 따서 사부님의 묘소에 바치겠다!”

“홍 사제, 왜 목숨을 자초하느냐! 네가 항룡십팔장을 익힌 날 막아낼 수 있을 것 같으냐?”

“너 같이 더럽게 오래 살기보다는 초개같이 짧게 살다가 죽는게 낫다!”


홍강이 권법을 펼쳐서 장묵을 공격했다.

용음십이수 권법이었다.

장묵은 개방방주에게 전해지는 항룡십팔장으로 맞섰다.


두 사람의 웅혼한 장력이 맞 부딪혔다.


항산파 계오진인, 장백파의 박귀태, 태산파 장문 천기자와 모용세가주 모용첩 네 사람도 살수를 잡기 위해서 달려왔다.


그러나 두 사형제 지간이 맞서고 있어서 장묵이 홍강을 죽일때까지 좀 지켜보기로했다.


홍강의 무공이 높아보였지만 장묵도 절정고수로 개방 방주이자 항룡십팔장을 익힌 고수였다.


고수들은 당연히 장묵이 홍강을 제압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장법을 교환할 수록 점차 장묵이 밀리고 있었다.

홍강의 무공이 명백하게 장묵보다 위였다.

항룡십팔장이 절초가 아니었다면 장묵은 벌써 홍강에게 졌을 것이다.


장묵의 뒷목에 식은땀이 흘렀다.


‘홍강 이놈이 언제 이렇게 무공이 높아졌지?’


홍강은 장묵의 표정을 통해 그의 생각을 읽었다.


“네가 20년 동안 간신배에게 아부하고 만주 오랑캐 뒤를 핥고 분주할 동안 나는 쉬지 않고 무공을 수련했다. 너랑 내 무공이 같겠느냐?”


퍼엉!


장풍이 터졌다.

장묵은 피를 토하며 한 장 가까이 나가떨어졌다.

척 봐도 큰 내상을 입은 듯했다.


“저, 저놈을 죽여···내 원한을···.”


장묵은 말을 끝맺지 못하고 절명했다.



고수들이 칼을 들고 홍강을 둘러쌌다.


“네놈들은 어떻게 죽겠느냐?”


홍강이 경멸어린 눈으로 고수들을 노려봤다.

네 사람은 서로 눈치만 볼 뿐 섣불리 홍강에게 공격해 들어갈 수 없었다.


절정 고수인 개방 방주 장묵을 손 쉽게 쓰러뜨린 걸로 봐서,

홍강은 초절정의 고수가 틀림 없었다.


전대 제濟 방주의 제자였던 홍강이 유명했던건 벌써 20년 전 일이었다.

사형인 장묵이 방주의 자리를 계승하고 홍강은 강호에서 은퇴하다시피 자취를 감추었다.


그런데 20년 만에 나타난 홍강이 절정의 벽을 넘어서 초절정의 경지에 도달했을 줄이야!


세 명의 장문인과 모용첩은 서로 눈짓을 교환했다.

한꺼번에 합격하자는 뜻이었다.

홍강의 무위가 예상 밖으로 대단하기는 했지만 장문인 급 네 명의 고수가 합격한다면 이길 수 있다고 판단했다.


홍강이 비웃었다.


“쥐새끼들. 만주의 개들은 한 놈도 살려둘 생각이 없다. 너희들도 지옥으로 보내주마!”


“광오한놈!”


태산파 천기자가 먼저 일 검을 찌르며 홍강을 공격해 들어갔다.

홍강은 나무 지팡이로 천기자의 검격을 막아냈다.

이어서 항산파 계오진인과 장백파의 박귀태, 모용첩 세 사람도 틈을 보아서 일 검씩 찔러대며 홍강을 압박했다.


천기자의 장검이 빗살같은 찌르기로 홍강을 공격했다.

태산파의 이십이로쾌검식의 수법이었다.


이어지는 검격에 홍강의 나무지팡이는 서걱서걱 썰려서 못쓰게 되버리고 말았다.


천기자가 오만하게 웃었다.


“무기가 없으니 어찌 싸울 것이냐?”


하지만 홍강의 표정은 태연자약했다.


“무기가 없으니 네 검을 좀 빌려야겠다.”


다음 순간.

홍강의 손이 뱀처럼 휘면서 뻗더니 천기자의 손에서 장검을 낚아채버렸다.


“아닛!”


천기자 뿐 아니라 다른 세 사람도 홍강의 금나수법에 크게 놀랐다.

천기자도 한 문파의 장문인인데 이리 쉽게 검을 빼앗기다니.

정말 귀신같은 수법이었다.


홍강이 검신을 손으로 땅 쳤다.

맑은 음색이 흘렀다.


“좋은 검이구나.”


홍강은 천기자에게 뺏은 검을 빙빙 휘둘렀다.


“어느 놈부터 칼밥이 먹고 싶으냐?”


홍강이 고수들을 노려봤다.

계오진인과 박귀태가 검을 꼬나쥐고 앞으로 나섰다.


“광오한 놈!”

“네가 어디 절대 고수라도 되는 줄 아느냐!”


계오진인은 왼쪽에서, 박귀태는 오른쪽에서 각각 홍강을 노렸다.

내공을 실은 검이 한 밤중에 번쩍거렸다.

칼소리가 마치 폭죽이라도 터트리듯 요란했다.


홍강은 침착하게 한 초식 한 초식 두 고수의 검을 튕겨냈다.


계오진인은 식은땀을 흘렸다.

홍강과 50여 합을 겨루니 자연히 그의 실력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홍강의 무공은 계오진인보다 두세 수 위에 있었다.

박귀태와 둘이서 협공을 하는데도 홍강을 제압할 묘수가 쉽사리 보이지 않았다.


반면에 두 명의 고수를 상대하면서도 홍강은 여유가 있었다.


“홍 대협, 장 방주와는 달리 우리는 서로 원한이 없는 사이 아니오. 이 쯤에서 손을 거둡시다.”


계오진인의 말에 홍강이 비웃음을 띄었다.


“오늘 나는 장묵 뿐 아니라 너희들 만주족의 개들을 다 죽이고 도르곤의 목을 벨 것이다.”

“멍청한 놈. 네놈 혼자서 우리들을 상대하겠다고?”


모용첩이 뒤에서 홍강을 찔러들어갔다.


촤악!


모용첩의 비겁한 공격에 홍강의 어깨가 얕게 베였다.


천기자도 어디선가 검을 가지고 와서 공격에 가세했다.

순식간에 네 명의 고수가 홍강을 포위하듯 둘러싸고 검진을 펼치는 모양새가 됐다.


동서남북으로 막아서서 검을 휘두르니 홍강이 도망갈 곳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홍강은 침착했다.

강호에서 60년을 살면서 이런 위기는 한두 번이 아니었다.


차가운 눈으로 검진의 약점을 훑었다.


‘과연···.’


겉으로 보기에는 한치도 빠져나갈 공간이 없는 검진처럼 보였다.

그러나 네 명의 고수는 오늘 처음 합을 맞춰보는 것이었다.

각각의 무공이 절정에 달해 겉보기에는 빈틈이 없어 보였지만 실제로는 틈이 있었다.

홍강의 눈에는 그 틈이 보였다.


천기자는 자신의 애병기를 홍강에게 빼앗겨서 청군의 칼을 가지고 와서 휘두르고 있었다.

하지만 손에 익지 않은 병기를 사용하는 탓에 검로에 빈틈이 보였다.


홍강은 천기자를 중점적으로 공격해 들어갔다.

천기자의 양쪽에 있는 계오진인과 모용첩이 천기자를 도우려 했으나 한계가 있었다.


“악!”


결국 천기자는 홍강의 검에 손목을 상처입고 물러나게 되었다.

천기자가 물러나자 세 명이서 펼치는 검진은 급속도로 틈이 생겨 허물어졌다.


홍강은 화려하게 검을 휘두르며 세 고수를 상대했다.

삼 대 일의 상황이었으나 전혀 밀리는 느낌이 없었다.


“크악!”


모용첩이 목이 베여 피를 분수처럼 뿜으며 쓰러졌다.


“모용가주!”


박귀태가 그를 불렀지만 모용첩은 이미 불귀의 객이 된 후였다.


그때 황금 가사를 펄럭이며 금장상인이 경공을 펼치면서 날아왔다.


카앙!


금장상인이 기습적으로 홍강을 공격했다.

내력을 실은 공격에 홍강은 내상을 입고 왈칵 피를 토했다.

금장상인의 내력은 다른 고수들과 차원이 달랐다.


“노 거지. 그대의 무공을 보니 그냥 죽이기엔 아깝소. 황부왕은 자비로우신 분이오. 그대가 투항한다면 용서받을 수 있을 것이오. 대청나라에 충성을 맹세할 생각은 없소?”


금장상인의 말에 홍강은 퉤, 피묻은 침을 뱉었다.


“내가 죽을 지언정 네 놈들에게 투항할 일은 없다!”


금장상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거 아쉽구려. 죽는 수밖에.”


금장상인이 내공을 끌어올려 금장을 마구 휘둘렀다.

계오진인과 박귀태는 금장상인의 방해를 할까봐 멀찍이 물러나서 다른 무림인을 상대했다.


캉 캉!


홍강의 검이 금장상인의 금장과 마주칠 때마다 웅후한 내력에 손이 저릿저릿했다.


홍강은 금장상인과 백여 초를 겨뤘다.

하지만 금장상인의 무공이 높아 쉽게 그를 제압할 수 없었다.


홍강은 초조했다.

금장상인을 빨리 제압할 필요가 있었다.


곧 산해관의 명나라 군대가 도달할 것이다.

그 혼란을 틈타 도르곤의 목을 베지 않는다면 다신 기회가 없을 것이다.


‘아무래도 내 목숨은 여기까진 것 같구나.’


홍강은 체내의 선천진기를 끌어냈다.

오랜 세월 동안 모은 내공을 잃겠지만 신경쓰지 않았다.


홍강이 선천진기까지 끌어다 쓰며 싸우자 금장상인이 밀리기 시작했다.

금장상인은 홍강이 선천진기를 끌어 쓰는 걸 알고 살초를 마구 날렸다.


금장 끝에서 칼날이 튀어나와 홍강을 노렸다.

홍강은 여러 곳을 베였지만 치명상은 아니었다.


홍강은 금장상인의 공격을 분석하며 틈을 노렸다.

그리고 금장상인의 틈을 만드려면 살을 내주고 뼈를 취해야 한다는 걸 알았다.


금장상인이 홍강의 어깨를 노리고 금장을 내리쳤다.

홍강은 금장이 자신의 어깨를 부수는 것도 무시하고 검을 찔러 넣었다.


“이야압!”

“아닛!”


당연히 홍강이 금장을 피할 줄 알았는데 그대로 공격을 받아내자,

오히려 금장상인이 위험한 상태가 되었다.

금장상인의 복부가 무방비로 드러났다.


촤악!


홍강의 장검이 금장상인의 복부를 관통했다.

금장상인의 등에서 피 묻어서 시뻘건 칼날이 빠져 나왔다.


“커헉!”


금장상인은 피를 토해내며 쓰러졌다.

초절정 고수인 금장상인은 죽었다.


하지만 홍강도 선천진기를 다 끌어냈다.

기운이 기진맥진해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상황이었다.


홍강은 주위를 둘러봤다.

홍강 편의 무림인들이 싸우고 있었지만 청나라 군대에 비해 수가 많이 부족했다.

자연히 무림인들이 밀리고 있었다.


그때 한 거지가 홍강을 향해 달려왔다.

홍강의 부하 노익이었다.


“오삼계 장군은 뭐 하고 있는 것이냐? 산해관의 군대가 벌써 당도해야하지 않느냐!”


“어르신. 오삼계 놈은 청나라 군대를 두려워해서 움직이지 않고 있습니다. 무당파도 산해관의 군대가 움직이지 않는다면 돌아가겠다고 했습니다.”


홍강은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았다.


주먹을 내뻗어서 청군의 막사 장대를 부숴버렸다.

중앙 장대가 부숴지자 막사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무너져 내렸다.


“우리 무림인들은 목숨 걸고 나라를 지키겠다고 나섰는데 나라의 장군이라는 자가 어찌 이럴 수 있단 말이냐!”


홍강은 이를 악물었다.

썩어빠진 조정의 벼슬아치를 믿는게 아니었다.


“이 나라는 망하는게 운명인가보다.”


홍강이 탄식했다.


“어르신, 이대로는 위험합니다. 황기군이 각산 쪽으로 오고있다 합니다. 도망가셔야 합니다.”


노익이 안타까워하며 권했다.

하지만 홍강은 고개를 저었다.


“도망갈 수 없다. 오늘이 지나면 도르곤은 산해관을 지나 북경에 도달할 거다. 그날이 되면 우리 한족은 만주족 아래에서 평생 노예가 될 것이다.”


“어르신이 돌아가시면 개방도들은 어찌해야합니까?”

“황 장로의 명을 받거라. 어찌 되었던 개방의 이름을 지켜나가야한다.”


노익은 울음을 참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홍강은 도르곤을 향해 달렸나갔다.

체내의 진력은 다 빠져나갔지만 지금이 도르곤을 죽일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저놈을 잡아라!”


도르곤을 향해 돌진하는 홍강을 발견한 팔기군 장군이 소리쳤다.


홍강의 시야가 뿌예졌다.

피를 너무 많이 흘린 듯했다.


100명이 넘는 청나라 군인들이 물샐틈 없이 홍강을 포위했다.


“도르곤! 네놈만은 데리고 지옥으로 가겠다.”


도르곤과 홍강의 거리는 고작 십 장 남짓.

평소에 눈을 감고도 칼을 던져 맞출 수 있는 거리였다.


쇄액!


홍강은 전력을 다해 칼을 던졌다.


그때 갑자기 바람이 세게 불었다.


선천진기까지 써서 기운이 빠져있었다. 칼은 도르곤의 옷자락만을 찢으면서 빗나갔다.


지금껏 수백, 수천번을 던졌던 수법이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순간에 바람이 불어 도르곤을 죽이지 못하다니!


홍강은 깨달았다.


‘아! 하늘이 아직 도르곤이 죽을 때가 아니라고 하는구나.’


하늘이 선택했다면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것이다.


홍강은 갑자기 몸에서 기운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홍강은 그자리에 풀썩 쓰러졌다.

땅바닥이 차가웠다.



#



원래 스승 제 걸개는 홍강에게 개방 방주 자리를 물려주려고 했다.

그러나 홍강은 강호의 은원을 지긋지긋하게 여겼다.

홍강은 권력이나 지위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저 무공이 좋아서 수련하고 유유자적하면서 살아가는게 자신의 삶이라 여겼다.


반면 사형인 장묵은 홍강과 정 반대의 인물이었다.

정력적이었고 사람들을 모아 세력을 키우고 개방을 발전시키는데 열심이었다.


홍강은 무공은 내가 더 낫지만 방주의 역할에는 사형 장묵이 더 나을 것이라고 스승 제 걸개를 설득했다.

아끼는 홍강이 권하니 제 걸개는 장묵의 인성이 조금 못 미덥다고 염려하면서도 그에게 방주 자리를 물려주었다.


아! 하지만 그 결정이 개방을 망하게 하는 길인줄 그때는 아무도 몰랐다.


욕심이 많던 장묵은 개방을 천하제일 방파로 만들겠다며 명의 권력자들에게 접근하기 시작했다.

20년의 세월 동안 처음에 열정적이던 장묵은 서서히 변질되어갔다.

명예를 추구하던 그의 열정은 점차 권력에 대한 집착으로 바뀌었다.


명나라가 기울자 장묵은 금나라의 금장상인에게 접근해 더 큰 힘을 쫒았다.

금나라가 청나라로 바뀌고 장묵은 청나라를 위해 그들의 앞잡이가 되어서 개방도들을 민족의 배신자로 만들었다.



깊은 산중에서 유유자적하면서 세상과 단절하면서 살아온 홍강이 개방의 소식을 들었을때는 이미 개방이 두 파로 나뉜 후였다.

장묵을 따르는 정의淨衣파와 그에 반대하는 오의汚衣파로 나뉘어서 서로 완전히 갈라진 후였다.


홍강은 오의파의 대장인 황 장로의 부탁으로 개방을 다시 세우고 민족의 배신자인 장묵을 처단하기 위해서 다시 강호로 나왔다.


그러다 이자성의 난이 일어나고 혼란을 틈타 청나라가 한족의 땅으로 침략해 들어온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무림의 영웅들은 뜻을 모아 오랑캐가 중원 땅을 침략하는 것만은 막아야겠다고 뜻을 모았다.


산해관으로 향한 영웅들은 산해관을 지키는 장수 오삼계에게 뜻을 전하고 같이 각산장성에 주둔하고 있는 청나라의 섭정왕 도르곤을 공격하자고 계획을 세웠던 것이다.


그러나 계획은 오삼계의 배신으로 허무하게 실패하고 말았다.



‘스승님이 개방의 방주 자리를 권하셨을 때 거절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때 내가 개방의 방주가 되었더라면···.’


후회해봤자 소용 없는 일이었다.

시간을 되돌릴 방법이 있다면 또 모를까.

시간은 그냥 흐를뿐이었다.

아무리 후회한다고해서 무엇이 바뀐단 말인가!


홍강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홍강의 의식은 어둠 속으로 잠겨갔다.



#



홍강은 배고픔에 눈을 떴다.


굴다리 아래,

그는 거지 막사에 누워 있었다.


바깥을 둘러보니 아직 해가 뜨지 앉아서 컴컴했다.

배가 너무 고파서 눈이 일찍 떠진 것 같았다.


옆에는 홍강과 같은 처지인 거지 아이들이 널부러져 자고 있었다.



아침이 되자 홍강은 동료 거지 아이들을 따라 구걸을 하러 나섰다.


너무 배가 고파서 다른 걸 생각할 여지가 없었다.


동냥을 한 밥 한 덩이를 먹으니 배고픔이 좀 가셨다.

그제서야 생각할 여유가 났다.


‘내가 간밤에 꿈을 꾼 것인가?’


꿈이라기엔 지난 60여년의 삶이 너무나도 생생했다.

하지만 정말로 꿈이 아니냐고 물으면 또 자신이 없었다.

애매했다.


“지금이 몇 년도냐?”


옆에서 나무 밥그릇에 구걸한 밥을 허겁지겁 먹는 친구 거지에게 물었다.

친구는 홍강을 이상하다는 듯 쳐다봤다.


“모르겠는데?”

“아는 놈 없냐?”


대여섯 되는 거지 아이들이 대답을 못하고 있었다.

그중 좀 똘똘한 녀석이 입을 열었다.

거지 아이들 사이에서 ‘학사’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애였다.


“만력제께서 즉위하신지 26년째다.”


거지 아이들 사이에서 오오, 하는 감탄사가 터져나왔다.


만력 26년.

46년 전으로 돌아왔다.

홍강의 나이 16세.

한창 파릇파릇할 나이다.



#



한 달이 지났다.


홍강은 생각했다.


‘하늘이 왜 나를 과거로 돌려보냈을까?’


지난 한 달 동안 숱하게 고민했다.

홍강은 자신이 머리가 좋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고민이라는 단어는 홍강에게 어울리지 않는 말이었다.

그는 생전에 별로 고민해 본 일이 없었다.

인생은 흘러가는대로 사는게 제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개방이 반으로 갈라져 망했다.


개방뿐 아니라 나라가 망했다.

민족이 망했다.


솔직히 나라니 민족이니 하는 큰 일까지 홍강이 생각할 필요도 능력도 없었다.

나라가 망한건 오삼계가 무능해서다.

아니, 황제가 무능해서다.


전생에 홍강은 목숨을 걸고 나라를 구하려했다.

하지만 황제와 조정 대신들이 무능한데 어쩌겠는가.


‘나라를 지키기 위해 할만큼 했다.’


홍강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하지만 개방은 달랐다.

개방이 망한 것은 그가 막을 수 있는 일이었다.


스승님은 홍강에게 방주 자리를 맡겠느냐 물었다.

전생의 홍강은 고개를 저었다.


‘거지가 골아프게 무슨 방주입니까. 하고 싶다는 장 사형 시켜주세요.’


그땐 몰랐다.

장묵이 겉으로만 착한척하는 위선자 씹쓰레기일 줄은.


만약 그때 홍강이 방주 자리를 맡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모르긴몰라도 장묵보단 나았으리라.


뭐가됐든 간에 해야할 일은 하나였다.

장묵을 개방 방주로 만들어선 안 된다.


“학사야. 오늘이 며칠날이냐?”


옆에 누운 학사에게 물었다.


“오월 중순쯤 되었지.”


홍강은 기억을 더듬었다.

분명 스승 취걸개 제종호와 만난 것이 이때 쯤이었다.



#



그날부터 홍강은 주막에서 싸구려 두강주를 한 병 사서 동네를 매일 돌아다녔다.


친구 거지들은 그가 왜 매일 할일도 없이 동네를 돌아다니나 의아해 했다.


‘이번 달이 아니었나?’


아무래도 60년이나 지난만큼 기억이 좀 애매했다.


‘어쩔 수 없지. 한 달 더 돌아다녀야겠다.’


스무날이 지나서 6월 중순 쯤 되었을 때,

드디어 발견할 수 있었다.


사거리가 지나는 골목길 모퉁이에 추레한 장년의 거지가 술에 꼴아서 누워있었다.


홍강은 반가운 마음에 거지 앞으로 두다다 달려갔다.


“뭐냐?”


늙은 거지가 홍강을 쳐다봤다.


홍강은 그앞에 즉시 흙바닥에 엎드려 절했다.


“어르신 절 제자로 받아주십시오!”


작가의말

재밌게 봐주세요!

과거의 1화+2화입니다. 소설의 템포를 빠르게 가져가기 위해 합쳤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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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육신병기의 소문 24.07.29 128 2 12쪽
8 날 방해하지 마! 24.07.28 131 2 12쪽
7 장묵 일당의 방해 24.07.27 121 2 12쪽
6 개방 총타 24.07.26 132 2 12쪽
5 역류혈맥 24.07.25 131 2 12쪽
4 절맥증이 아니다? 24.07.24 145 2 13쪽
3 단약 24.07.23 158 2 14쪽
2 거지의 제자가 되다 24.07.22 166 2 13쪽
» 걸개회귀전 24.07.20 309 3 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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