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이어 헌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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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레
작품등록일 :
2024.07.22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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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5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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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0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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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화

DUMMY

자신을 정소나라고 밝힌, 사장의 언니에게 나도 덩달아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여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대신 본명을 말하진 않았다. 아무래도 이미 죽은 사람으로 처리된 만큼 나중에 문제가 생길 여지가 있다고 판단했기 대문이다.

하지만 가명도 나중에 문제 생길 거 같단 말이지.

나는 신분증 속 내 얼굴사진을 써올리고는, 속으로 식은 땀을 흘렸다.

그리고 내가 깜빡하고 명함을 못가져왔다고 죄송하다고 말하자 괜찮다고 했다.

“평소에 제가 일방적으로 고민한 털어놓는데, 자기 정보를 안밝히는 건 좀 비겁하다고 생각해서요.”

“저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걸요.”

“제가 그렇게 생각해서 그러는 거니 괜찮아요.”

사장 언니, 정소나는 그렇게 말하고는 미소지었다. 그 미소는 부드러웠지만 명함 때문일까? 더 이상 말을 못하게 하는 카리스마가 느껴졌다.

사전에 미리 준비를 했는지, 금방 요리가 나왔다. 한 손으로 집어먹을 수 있는 크기의 작은 요리였다.

점원이 '아뮤즈 부쉬'라고 말하며 각각 무슨 재료로 만들었고 어떤 순서로 먹어야하는지를 상세히 설명해주었다.

나는 그걸 멍하게 듣고 있었는데, 그에 반해 정소나는 마치 그런 점원을 평가라도 하듯, 한손으로 턱을 궨 채 차가운 표정으로 듣고 있었다.

점원이 물러가고 나서 나는 정소나에게 말했다.

“방금 전에 좀 멋있어요.”

“뭐가요?”

“표정이요. 점원이 말하는 것 하나하나 평가하시는 것 같던데요?”

“이런걸로 직원들을 하나하나 괴롭히진 않아요. 그냥 매장의 평균적인 수준을 평가하고 이후 지침의 증거로 삼는거죠.”

그게 그거 인 거 같다만.

정소나는 타월로 손을 닦고, 하나를 입에 넣었다. 나는 평소에는 부드러운 표정이었다가 맛을 볼때 순간 눈이 차가워지는 것을 보며 신기하면서도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 뒤로 애피타이저, 수프, 세가지의 메인요리까지.

모든 요리가 마치 다 짜놓은 것처럼 적절한 시간 간격으로 착착 준비되었다.

식사를 하면서 나는 타이밍을 재다가 정소나에게 최근에 많이 걱정되어 보이신다며, 그때 여동생 일은 잘 해결되었는지를 물었다.

사장의 정보를 얻어내기 위함이었다.

내 말에, 마치 교과서와도 같은 절제된 동작으로 스테이크를 썰던 정소나는 순간 멈칫하다가, 스테이크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저번에 말씀해주신 것 때문에 한번 둘이서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눴거든요. 그 이후로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이후에 다른 방면으로 말썽을 피우고 있어서 좀······.”

“또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내 말에 정소나는 조금 조심스러워하더니, 목소리를 낮추었다. 여기 손님은 우리 말고 아무도 없었지만, 직원들이 듣기에 별로 안 좋다고 생각한 듯 했다.

“그 최근 가문에 결혼 이야기가 나오고 있어서요.”


······이건 예상외로 큰 이야기인데.


나는 어색해보이지 않게 나이프로 스테이크를 썰며 말했다.

“힘드시겠어요.”

“아무래도 이런 가문에 있어서는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니까요. 그런데 거기서 또 얘가 문제를 일으켜서······.”

“무슨 문제를요?”

순간 궁금했던 나는 조심해야하는 것도 잊고 불쑥 그렇게 물었다. 정소나가 말했다.

“저번에도 말씀드렸지만, 얘가 평소에는 아빠 말씀을 잘 따른단 말이에요? 그런데 저번에 가족 식사때 결혼이야기가 화제가 됐을 때 아빠가 막내인 얘한테 맞선 이야기를 꺼냈는데······.”

“그랬는데요?”

“바로 그딴거 신경 쓸 시간 없다고 잘라 말해서 한 번 큰일이 났었어요.”

······그건 듣는 내가 상상만 해도 식은땀이 날 정도군. 하긴 평소 사장 행실을 보아하면 그런거에 전혀 관심을 안가질 것 같긴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렇게 가족이 다 있는 자리에서, 그것도 평소에는 행동거지를 잘 하고 있다가 갑자기 급발진을 했을 줄이야.

“결혼 이야기만 나와도 질색을 하더라구요.” 하고 정소나는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나는 그 말에 속으로 의아해했다.

그런 것치고는, 처음에 나를 전 회사에 빼낼때 약혼자 행세까지 하며 결혼 어쩌구 했던거 같은데.

설마 일에 방해될까봐 가족 입에서 다시는 그런 말 안나오게 연기하는 건가? 그래도 재벌가문의 제일 권력자에게 그런 태도로 나오는 건 좀 위험하지 않을까.

고민하던 나는 그제야 내가 사장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장은 이 세상, 이 게임 속에서 플레이어가 설치고 다니는 것이 보기 싫다고 그를 사냥하기 위해 이 회사를 만들었다고 했지만, 왜 싫은지에 대한 이유에 대해서는 알려주지 않았다.

재벌2세가 회사를 만들고, 사람을 모아 목숨을 걸어가며 위험한 일에 직접 뛰어들다니.

아무리 싫어도 이렇게까지 하지 않을텐데, 진짜 목적이 따로 있을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 표정이 싹 변하던데, 지켜보던 제가 식은땀이 다 나더군요. 그 뒤로 아빠가 얘를 따로 불러서 이야기했던 거 같은데, 무슨 이야기했는지 알려주지 않더라고요.”

나는 깊은 고민에 빠진 정소나에게, 머릿속을 짜내고 짜내 내 생각을 전했다.

“조심스럽게 말해보자면, 아마도 자신의 짝을 강제로 맺어주는게 정말 싫어서 반사적으로 그랬던게 아닐까요?”

“그말인 즉슨 따로 마음에 두는 사람이 있다는 건가요?”

내 말에 정소나는 눈을 빛냈다. 여동생의 가십거리를 찾은 누나의 호기심이 엿보였다.

나는 사장을 떠올리고는 생리적으로 드는 거부감을 이겨내기 위해 몇 번이나 마음을 다잡고 말했다.

“만에 하나 그럴 가능성도 있겠지요. 아니면 다른 할 일이 있다던가요.”

다른 할 일이라, 하고 중얼거리던 정소나는 아스파라거스를 포크로 굴리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얘가 여전히 무슨일 하는지 도통 알려주지 않는데, 그것 때문에 아빠가 이야기를 꺼낸 걸 수도 있겠네요.”

“그런가요?”

“네. 아빠가 마치 회사를 경영하는 것처럼 자식에게도 간접적으로 영향을 줘서 원하는 태도를 이끌어내시거든요. 압박을 한다고 해야하나?”

나는 그 말을 듣고 반사적으로 입을 열었다.

“그건 좀 음습······ 아, 죄송합니다.”

내 말에 정소나는 푸훗,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네. 맞아요, 음습한 행동이죠. 저도 아빠를 존경하지만 그런 면은 정말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렇게 되지 않으려고 하고 있고요.”

“그쪽은요?”

“······네?”

나는 디저트와 함께 나온 커피를 들며, 정소나에게 만약 자신이 그렇게 아빠에게 질문을 받았다면 어떻게 대답할 지 물어보았다.

내 말에 정소나는 한참을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그런 질문은 처음이라 좀 어렵긴 하지만······.”

“어렵게 생각하지면 대답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저는 그쪽의 생각과 판단을 듣고 싶어서 그런거니까요.”

“······왜 제 생각을 듣고 싶어하시나요?”

커피잔을 만지작거리며 나를 똑바로 바라보는 정소나를 보고, 나는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생각이 깊으신거 같아서, 이럴때 어떻게 반응하실지 궁금했어요.”

나는 그렇게 말하며 제 주변에는 생각이 짧은 사람만 있어서 그렇다고 웃으며 덧붙였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긴했다. 생각이 이상해서 그렇지.

정소나는 디저트가 다 나온 후, 쁘띠 푸르라고 하는 작은 과자가 나올 때까지 고민하고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아마 저도 여동생처럼 반응했을 지도 모르겠네요.”


어두운 조명에 어울리는, 옅지만 부드러운 미소를 띄고서.


***


식사가 끝나자, 제법 늦은 밤이었다.

저녁식사 약속이긴 했지만, 이렇게 식사시간이 길줄은 몰랐다.

길고 성대한 코스요리를 처음먹어서 이렇게 시간이 지난지도 전혀 모르고 있었다.

발렛파킹하는 직원이 차를 가지고와 가게 앞에 대었다.

플레이어가 몰았던 스포츠카만큼은 아니었지만, 그와 다른의미로 고급스러운 차였다.

직원은 차에서 내려 정소나에게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정소나는 차가운 눈으로 점원을 훑어보다 인사와 키를 받았다.

그리고 나를 돌아보며 미소를 지었다.

“오늘 즐거웠어요.”

“네 저도 즐거웠습니다.”

나는 그렇게 답하며, 차 안에 아무도 없는 걸 보며 놀라서 물었다.

“운전수가 따로 없으신가요?”

내 말에 정소나는 뾰루퉁한 표정을 지었다.

“그건 편견이에요.”

“아, 죄, 죄송합니다.”

내가 머리를 긁적이자, 푸훗, 하고 수줍게 웃었다.

“농담이에요. 사실 있어야되긴해요. 제가 고집을 부린거죠.”

“고집이라면······?”

내 말에 정소나는 자신의 손에 있는 자동차 키와 식당을 바라보았다.

“저는 소위 말해 재벌 가문의 딸이에요. 저는 많은 것들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들은 명백히 말하면 제 것이 아니에요. 제가 이룬게 아니니까.”

정소나는 내 시선을 슬쩍 피하며 말을 이었다.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사는 입장에서 배부른 소리일지도 모르겠지만, 저는 이따금 그것들 때문에 숨이 막힐거 같은 느낌을 받아요. 마치 그런 풍요가, 저를 짓누르고 강요하는 기분이 들죠. 저는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서, 제가 홀로 그만큼 많은 것을 해내야한다고 생각했어요.”

그저 그뿐이에요, 라고 하며 정소나는 쑥쓰러운 듯 웃었다.

나는 그제야 이해했다. 왜 그녀가 그렇게 몸도 그리 좋지 않으면서 홀로 새벽까지 남아 일을 하는지 말이다.

나는 진심으로 존경을 담아 말했다.

“정말 대단하세요.”

정소나는 아니에요, 라고 말하며 나를 보다가 말을 멈췄다. 나를 한동안 바라보던 그녀가 불쑥 말했다.

“전 사실 오늘 좀 실망했었어요.”

“······예?”

“처음에 그쪽을 만난건, 그냥 새벽에 외로워서 그런 거였어요. 새벽에 혼자 일을 하다가 창밖을 보는데, 꾸준히 뭔가 목표를 가진 듯이 열심히 뛰고 계시더라구요. 그걸 보면서 말을 걸고 싶다. 이 사람이라면 내 고민을 들어줄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점점 관심이 생겼고, 이렇게 같이 식사까지 하고 싶어졌어요.”

정소나는 뒷짐을 지고 좌우로 보폭을 넓혀 깡총깡총 걸었다.

“그런데 오늘 이야기해보니 저보다 제 가정사에 대해 더 관심을 보이는 거 있죠?"

나는 그 말에 속으로 뜨끔해서 고개를 숙였다.

“죄, 죄송합니다.”

“그래서 이 남자도 나보다 내 가문에 관심이 있구나, 하고 실망하는데 점점 이야기를 하다보니 이상한거죠. 정작 가문의 일을 말하면서, 우리 가문이 무슨일을 하는지, 돈을 얼마나 버는지, 사업을 몇 개나 하는지 보다, 우리의 기분을 궁금해하고 이해하고 공감하려고 했으니까.”

정말 신기한 사람이야, 하고 소리내어 말한 뒤 정소나는 나를 보고 고개를 들어 달라고 했다.

“사과하지마세요. 그런걸로 사과하면, 저는 투정을 부린 걸로 당신에게 아무리 사과해도 모자라니까요.”

정소나는 곱슬머리를 쓸어넘기며, 내게 말했다.


자신도 나에 대해 알고 싶다고. 그리고 내 기분에 이해하고 공감해주고 싶다고.


하지만 나는 답하지 못했다. 나는 그럴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바로 대답하지 않는 나를 보고, 정소나가 말했다.

“알려달라고 하는 건 아니에요. 지금까지 그래왔 듯이, 제가 스스로 알아내고 싶다는 거지.”

정소나는 그렇게 말한 뒤, 다음에 또 보자며 차에 타고 가버렸다.

나는 그 차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며, 생각했다.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고.

우리 사장이 언니를 조금이라도 본받기를 바라며, 나는 걸음을 옮겼다.

시간이 늦어 택시라도 잡아야겠다 싶어 도로변으로 나와 차를 기다리는데 갑자기 웬 고급스러운 차가 내 앞에 멈춰섰다.

뭐지?

혹시 조직의 습격인가 싶어 긴장한 채로 선팅된 조수석을 노려보고 있는데 차창이 천천히 내려가더니,


검은 선글라스를 낀 금발의 여성이 나타났다.


“이봐, 형씨. 우리 잠깐 이야기 좀 할까?”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나타난 사장과 비서를 보며 생각했다.


정말, 이쪽도 다른 의미로 대단한 사람이라고.


작가의말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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