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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레
작품등록일 :
2024.07.22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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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5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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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6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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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화

DUMMY

나는 솔직히 말해서, 그 옥상 위의 참상을 보고 장미가 바로 도망갈 줄 알았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장미는 순순히 사장이 건넨 짜장면 그릇을 받고는 그 옆에 신문지를 깔고 앉았다.

그리고는 능숙하게 래핑을 뜯어낸 이후. 젓가락을 쪼개 짜장면을 비비기 시작했다.

사장도 나와 같은 심정이었는지, 놀란 눈으로 장미를 바라보았다.

“뭐야, 먹네?”

젓가락을 들고 면을 입에 넣으려던 장미는, 사장의 말에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왜요? 안에 뭐 넣었나요?”

“아니, 이야기 들은 거랑 달라서. 고상하게 하고 다니길래 이런 저질스러운 음식에는 입도 대지 않을 줄 알았지.”

사장의 말에 장미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건 제가 당신에게 할 말이거든요? 우리나라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재계의 막내딸에게 그런 소리를 듣다니, 참나.”

장미는 다시 젓가락을 들며 덧붙였다.

“지금이라 이렇게 고상한척하고 다니지만, 이전에는 볼꼴 못볼꼴 다보면서 살아온 더러운 년이니까요.”

그렇게 면을 입에 넣고 먹고 있는데, 갑자기 미스터 후가 젓가락으로 장미를 가리키며 말했다.

“너를 부수겠다.”

갑작스러운 선전포고에 장미가 면을 입에 문채로,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사장은 한숨을 내쉬며, 알바에게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미스터 후 옆에 앉아있던 알바가, 옆에 놓여있는 세 번째 짜장면 그릇을 뜯어 건네주었다.

“삼촌, 밥시간에는 밥이나 드세요. 왜 또 입가에는 칠칠치 못하게 묻히고 그래요?”

장미가 설명을 요구하는 눈으로 사장과 나를 번갈아보았다.

사장이 입안에 면을 가득 물고 있길래, 내가 대신 대답했다.

“원래 저런 녀석이니 신경쓰지마.”

“어, 언제 그렇게 친해진 건가요?”

“어제.”

“······뭐라고요?”

“그리고 친해지지 않았어. 서로 거래를 해서, 잠시 동업자가 되었을 뿐이지.”

“어떻게 거래를 했죠? 전에 사람을 보냈을 때는 다 두들겨 맞고 나왔다고 들었는데요?”

장미의 물음에, 사장이 입안에 있는 것을 목 뒤로 넘긴 뒤에 말했다.

“넌 어떻게 하려고 했는데?”

“뭐가요?”

“너, 처음에 우리를 데리고 저 무식한 자식과 설득하려고 했잖아. 그때는 어떻게 거래하려고 했냐고.”

“······뭐, 먼저 요구사항을 들어보고 난 뒤에 조율을 해야죠.”

사장은 단무지를 오도독 씹으며 말했다.

“방금 말했어.”

“······네?”

“요구사항, 방금 너한테 말했다고.”

정미는 젓가락을 든 채로, 두 눈을 깜박였다.

그 때 옆에서 설유진이, 단무지와 양파가 담긴 스티포롬 용기에 씐 랩을 뜯어서 건내주며 말했다.

“당신을 부수고 싶다가 요구조건이라는 소리에요.”

“아주 그냥 대변인 납셨네. 납셨어.”

뒤늦게 올라온 파견이 손을 털며, 설유진과 장미 사이에 털썩 주저 앉았다.

설유진이 그런 파견에게 짜장면이 답긴 접시를 건네며 말했다.

“사람을 이해하고 파악하는데에는 자신이 있거든요. 그쪽도 대변해드려요?”

“뭘 대변하는데?”

나는 그때 갑자기 설유진이 뒤에 서있는 나를 돌아보았다. 나는 식사를 안하겠다는 표시로 두 손을 저었다.

이렇게 얼굴 전체에 분장을 한 상태로 식사를 하는 건 생각이상으로 불편했다.

차라리 일이 다 끝나고 따로 먹는게 낫지.

“······너!”

파견의 입에 양파를 넣어주는 설유진을 바라보며, 둘의 사이가 전보다는 확실히 돈독해졌다는 것을 새삼 실감했다.

역시 직장 동료들 끼리 사이는 나쁜 것보다 좋은게 낫지.

나는 속으로 흐뭇하게 웃으며, 사장과 장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때마침, 장미가 아연질색하고 있던 참이었다.

“······지금 뭐라고 했어요?”

“나한테도 너처럼 부수겠다고 했다고, 그러라고 했어. 그렇게 해서 거래가 성립된거지. 맞지?”

사장의 물음에, 면다발을 입에 가득 문채로, 미스터 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장미는 이마에 손을 짚으며 중얼거렸다.

“다들 미쳤군요.”

“미친놈과 거래하려면 같이 미쳐야지. 안 그래?”

“······하긴, 다 정신나간 녀석들 뿐이군요.”

장미는 주변을 둘러보다, 벽에 기대어 서있는 나를 보았다,

“한 명 빼고요.”

“남의 직원에 침 발라놓지 말고, 얌전히 밥이나 마저 먹어. 안그러면 분다?”

사장의 말에, 장미는 다시 젓가락을 들어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대충 다들 식사가 마무리 될 무렵 옥상의 문이 열리고, 성필이 부하들과 함께 쟁반을 들고 나타났다.

쟁반에는 뜨거운 믹스커피가 들어있는 종이컵이 가득했다.

당장이라도 사람을 죽일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성필을 향해, 사장이 말했다.

“그거 타는데 뭐 이리 걸려?”

“아니 그럼 커피 잘타게 생긴, 저기, 저 아가씨에게 맡기던가, 왜 날 시키고 지랄이야, 지랄은!”

“간만에 직원이 다 모여서 식사하는데, 커피 타오라고 할 수는 없잖아. 그건 직장내 괴롭힘이라고.”

“그럼 저, 저 새끼는? 밥 안먹잖아?”

성필은 식사를 안하고 있는 나를 턱으로 가리켰다.

그리고 내가 돌아보자 겁을 먹고 바로 시선을 피했다.

“쟤는 우리 회사 이사야. 이사가 커피 타는게 말이 돼?”


······자기는 그보다 더한 잡일을 숱하게 시켰으면서.


“이사고 나발이고, 나 같은 건달은 그런거 모른다고!”

“그러니까 커피나 타오라고 한 거야.”

사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자기 몫의 커피만 휙 가져갔다. 성필은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그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나 이거 너무 달아서 싫은데, 다른거 없어?”

파견의 으엑, 하는 표정을 지으며 종이컵을 들고 흔들었다. 그러자 성필이 얼굴이 시뻘게졌다.

“그럼 니가 직접 타던가!······요.”

파견의 표정이 어땠는지 이쪽에서 보이지 않아 모르겠지만, 성필이 파견의 얼굴을 본 순간, 순식간에 기가 죽어 말투를 흐렸다.

파견은 툭, 성필의 어깨를 치면서 그에게 뭐라고 속삭였다. 그리고 두 손에 커피를 들고 내게 다가왔다.

“자 여기.”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커피잔을 받았다. 잔뜩 쪼그라들어있는 성필을 바라보며, 파견에게 속삭였다.

“방금 뭐라고 했어요?”

“뭘? 아, 쟤한테? 별 말 안했어. 그냥 첫 날 우리한테 시비걸었을 때 상대가 내가 아니라서 다행인줄 알라고 했지. 나였으면 아킬레스건 다 끊어 버려서 지금 기어서 커피 가져왔을 거라고 했을 뿐인데?”

파견은 그렇게 말하며, 정말로 별거 아닌 것처럼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새삼스럽게 다시 느끼지만, 파견이 내 편인게 정말 다행이다.

의기소침에 쪼그라들었던 성필은, 그 이후에 장미와 설유진과 커피를 가져가면서 감사해하자 표정이 환해졌다.

그리고는 자신이 대신 하겠다는 설유진을 만류하며, 자신해서 돌아다니며 커피를 나누어주었다.

나는 커피를 홀찍이며, 사장과 장미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그래서, 저를 이 자리에 부른 이유가 뭔가요?”

“그냥 이제부터 같이 일하게 됐으니, 식사나 하면서 돈독한 사이가 되자는 거지.”

“저 남자까지 포섭을 끝내놓은 것을 보여주면서, 저를 압박하는 것이 아니라요?”

“내가 왜 널 압박해? 넌 이제 아무것도 아닌데.”

사장은 어디서 가져왔는지 모를, 박하사탕을 입에 던져넣으며 그렇게 말했다.

“상황을 잘 모르면 사람은 잘못된 판단을 할 수도 있으니까, 알려주는 겸해서 밥이나 같이 하자고 한 거야. 너도 뒤에 내가 있는 줄 모르고 일을 벌이다 이렇게 된거 아니야?”

사장의 말에, 장미의 손에 들려있던 종이컵이 구겨졌다.

“정말, 당신이 배후가 맞나요?”

“응, 맞아. 정확히 말하면 저 놈은 바지사장인 셈이고, 내가 진짜야.” 하고 사장은 나를 가리키며 그렇게 말했다.

장미는 그런 사장을 빤히 바라보다 길게 한숨을 내쉬고 알겠다고 했다.

사장이 말했다.

“신기하네.”

“뭐가요?”

“이 사실을 밝히면 다들 꼭 물어봤거든. 그렇게 돈과 권력이 있는데 대체 왜 이런 짓을 하냐고. 근데 넌 안 물어보네?”

사장의 말에, 장미가 구겨진 종이컵을 손에서 돌리며 말했다.

“이 바닥에 청소부로 일하면서, 가장 가져서는 안될 것이 하나있죠.”

“그게 뭐지?”

장미는, 사장의 말에 많은 것이 함축되어있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호기심이요.”


***


그렇게 티타임까지 끝난 후, 나와 사장, 그리고 파견과 경비는 장미와 함께 그녀의 차가 주차된 지하 주차장으로 향했다.

장미가 자신의 차 앞에 서서, 우리를 돌아보며 말했다.

“배웅해줄 필요는 없습니다. 아니, 하지마세요. 솔직히 좀 무섭거든요.”

“널 어떻게 할까봐? 그럴 거였으면 진작에 그랬지.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멍청하진 않잖아?”

사장은 그러게 말하며 덧붙엿다.

너도, 나를 죽이라고 명령을 받을테지만 그러지 않았다고.

장미가 사장의 말에 웃었다.

“거기까지 알고 있었나요?”

“내가 거기 두목이라도 나를 죽이라고 했을 거야. 내가 가문에서 손절당한 것도 아마 알고 있을 거고. 아니, 오히려 그 사실 때문에 가문에서 나를 손절한 건가?”

사장은 고개를 갸웃했다.

“여튼 나랑 같이 묶어서 설유진을 처리하라고 명령했겠지. 하지만 너는 나를 죽이지 않았고, 나도 너를 죽이지 않았어.”

그보다 더 돈독한 관계가 어딨냐며, 사장은 장미에게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장미는 그 손을 바라보다가, 웃으며 손을 맞잡았다.

“정말, 당신은 미쳤군요.”

“칭찬 고마워.”

사장의 말에, 장미를 고개를 저은 뒤 내게 말했다.

“여튼, 그러면 저는 당신들이 알려준 계획대로 진행하면 되는 거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블루문 쪽에 여기 재성그룹의 막내딸과 설유진이 있다는 정보를 전달하고, 그쪽 병력을 데리고 와. 그리고 네가 한다리 걸치고 있는 지성파 쪽도 이야기에서 그쪽에서도 좀 인원 데려오고.”

“지성파 쪽은 잘 안될 수도 있어요. 누구 덕분에 거기서 제 입장이 아주 난처해졌거든요.”

“지성파 입장에서는 카지노를 망친 놈과, 재개발을 망친 놈을 한 번에 처리할 기회지. 그걸 빌미로 재기할 기회를 달라고 어필하면 불가능하진 않을텐데?”

“말은 쉽죠. 만약 잘 안되면요?”

장미의 말에, 갑자기 파견이 외쳤다.

“거 말 드럽게 많네. 지가 유리할때는 오만 여유 부리며 입털다가, 지금 꽁지에 불 붙은 상황되니까 왜 이렇게 간잽이가 됐어?”

파견은 내 옆에 서서, 내 어깨에 자신의 팔꿈치를 올리며 히죽였다.

“잘 안되면 뭐 다 죽는 거지. 그 바닥에서 뭐 안전한 일만 하고 살아오셨나봐? 아니면, 가진 게 많아지니 겁쟁이가 되셨나?”

장미는 고개를 돌려 파견을 바라보았다.

“당신은, 언젠가 일이 끝나고 꼭 따로 볼일이 있었으면 좋겠네요.”

“아이고 무서워라. 근데 어쩌지? 그때가 네 제삿날일텐데.”

둘이서 내버려두면 개과 고양이처럼 서로 치고 박고 싸울거 같아서, 나는 파견에게 눈짓을 줘서 뒤로 물러나게 했다.

장미는 차에 시동 건 뒤에, 운전석에 올라탔다. 사장은 그런 그녀에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

“그럼 내일 보자고. 파트너.”

그리고 다같이 돌아서서 돌아가는데, 갑자기 장미가 소리 높여 나를 불렀다.

“뭐지?”

“혹시 모르니 그쪽 휴대폰 번호도 좀 알려줘요. 전에 알려준 번호는 연락이 안 가던데요?”

······아, 그러고 보니 내 휴대폰은 미스터 후가 부숴버렸지 참.

나는 모두에게 먼저 가라고 한 뒤, 차로 걸어갔다,

장미는 차창을 열고, 내게 자신의 휴대폰을 건네주었다. 나는 거기에 내 번호를 찍어 돌려주었다.

장미가 그 번호를 보고 내게 말했다.

“이 번호 맞아요? 뭔가 좀 잘못 된거 같은데요?”

“뭐가 잘못되었······.”

차 창으로 고개를 가까이할 때, 갑자기 장미가 내 턱을 붙잡아 내 고개를 돌렸다.

갑자기 나를 습격하나 싶어 품에서 나이프를 꺼낼 찰나,


장미가 내게 키스했다.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방금 뭘한거지?

장미는 입술을 뗀 뒤, 눈을 지푸렸다.

“역시 분장이네요.”

“······무슨 속셈이지?”

“그쪽이 생각하는 속셈은 없어요. 그냥, 내꺼에 미리 점찍어두는 거지. 누구에 대한 복수도 하고요.”

의미 모를 소리를 한 다음, 장미가 말했다.

“저기 혹시 본 얼굴, 한 번만 보여주면 안되나요?”

“안돼,”

“재미없는 남자야. 그래서 좋지만.”

장미는 어둠 속에서 웃었다. 나는 그 미소를 보자 자신이 그녀에게 놀아났다는 생각에 기분이 나빠졌다.

“용건이 끝났으면, 얼른 꺼져.”

“설유진을 조심해요.”

“뭐?”

“당신네들을 이간질할려고 이런 말하는 게 아니에요. 이제 같은 팀이 됐는데 이간질해서 뭘 얻겠어요. 저는 단지 알려주고 싶었어요.”

장미는 진지한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그 아가씨는, 당신이 상상하는 그 이상으로 무모한 짓을 하거든요.”


장미는 그 말만 남기고, 차를 몰고 떠나버렸다.

나는 그 차가 지나가는 뒷모습을 한동안 멍하니 바라보았다.


장미, 그녀가 남긴 말의 의미를 곰 씹으면서.


작가의말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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