폼페이우스가 멸망하는 로마를 집어삼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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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트맨형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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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25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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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편. 그들의 꿈은 루키우스의 꿈이 되었다.

DUMMY

아버지 퀸투스에게 허락을 받는 건 식은 죽을 먹는 것보다 더 쉬웠다.


‘용광로? 그러니까 괴철로보다 훨씬 거대한 걸 짓겠다는 소리냐?’


‘예. 세리카(중국)에선 분쇄한 철광석과 석회석, 그리고 숯을 겹겹이 쌓아서 철을 만듭니다.’


‘분명 네가 만든 파피루스도 세리카에서 나온 것이었지. 그리고 넌 그 사실을 증명했고. 어디 해봐라.’


사실 퀸투스는 루키우스의 모든 걸 알고 있지만 굳이 그런 말을 꺼낸 이유는 당연히 주위 사람들을 납득시키기 위함이다.


퀸투스 역시 루키우스의 비밀을 아는 사람이 적어야 유리해진다는 걸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렇게 가장의 허락도 받았으니, 이제 남은 건 용광로 건설이다.


루키우스는 곧바로 메투스와 함께 대장간으로 찾은 뒤 이곳의 책임자 ‘아시두우스’를 소환했다.


“그러니까 작년에 제가 꺼냈던 이야기를 실행하자는 소리인가요?”


“그래. 작년에는 철을 많이 만들어봤자 그걸 팔 수 없으니까 문제였지만···.”


“지금은 다르단 소리군요. 알겠습니다. 뭐부터 하면 되겠습니까?”


그 말에 루키우스는 기다렸다는 듯 메투스에게서 설계도를 건네받고, 그걸 펼친 상태에서 아시두우스에게 전달했다.


“설계도야. 한번 알아보겠어?”


“한눈에 이해가 갑니다. 그런데 이 중앙에 있는 건 뭡니까?”


“철광석을 녹이면 불순물 같은 쓸데없는 것들이 있잖아. 그걸 따로 빼 줄 구멍이야.”


“그런데 이 구멍이 위 아래로 상당히 길쭉하네요?”


“아. 그건 적절한 위치를 알지 못해서 그렇게 그렸어. 그러니까 우리가 해볼 것은 그 적절한 위치를 찾는 거지.”


루키우스가 언급한 구멍은 바로 슬러그를 배출하는 구멍이다.


용광로 안에서 철을 녹이다 보면 비중 차에 의해서 철은 밑으로 내려앉고, 슬러그는 위에 뜨게 된다.


용광로는 도중에 멈추는 일 없이 원료를 넣어줘야 하는 시설이기에 슬러그를 빼주지 않으면 용광로 안은 슬러그로 가득 차게 된다.


그렇기에 슬러그를 따로 빼 줄 필요가 있다.


‘다만 슬러그 구멍을 너무 높게 잡으면 슬러그가 잘 안 빠져나가고, 반면 너무 낮게 잡으면 엉뚱하게 철이 빠져나갈 수 있지.’


그러니 적절한 위치를 잡아야 했다.


여기서 루키우스가 해야 할 일은 단 한 가지였다.


‘용광로를 짓는 걸 반복해서 최적화된 시설을 만드는 거지.’


용광로를 짓는 방법은 머릿속에 들어있지만 현실에선 어떤 문제점이 생길지 아무도 모른다.


그러므로 도전하고, 또 도전해서 앞으로 나올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돈이 소모될지 모른다.


그래도 루키우스는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미 이 대장간의 능력으론 주문량을 못 따라잡고 있으니 그걸 맞추기 위해서 공급을 대폭 늘려줘야 했다.


‘자. 그럼 시작해볼까?’


아버지에게 전권도 얻었으니, 남은 건 무수한 시도를 수행하고, 실패를 겪으며 끝끝내 성공을 거머쥐는 것뿐이었다.


*****


첫번째 시도.


“도련님. 밑에서 쇳물이 안 나오는데요?”


“풀무는 제대로 불었어?”


“예. 풀무에서 나오는 바람의 세기는 정상입니다.”


“연료는 확실히 코크스로 했겠지?”


“당연하죠.”


“씁. 뭐가 문제지?”


첫 번째 시도 실패!


실패의 원인을 생각하던 루키우스는 곧바로 자신의 기억을 더듬기 시작했고.


‘아. 이런 걸 ’행잉‘이라고 하는 구나.’


알고 봤더니, 용광로에 집어넣을 철광석은 따로 소결 작업을 해야 했다.


‘그러니까 가루 상태인 철광석을 석회석을 섞은 뒤 가열시켜 덩어리로 만드는 걸 소결이라고 하는구나. 그나저나 가루 상태의 철광석?’


소결 과정을 파고들다 보니 루키우스는 한 가지 문제점을 발견했다.


“그러니까 내 외삼촌에게서 받아온 철광석은 그대로 캐온 상태에서 받는 거라고?”


“예. 그렇게 한다고 들었습니다.”


“그쪽에서 따로 광석을 골라 주는 게 아니란 소리지?”


“예. 그냥 그대로 수입해서 써먹고 있습니다.”


“젠장. 그럴 줄 알았지.”


알고 보니까 이쪽 대장간은 리우비길드의 철광산에서 캐온 광석을 그대로 수입한다고 했다.


그러니까 선광(광석을 부숴 최대한 불순물을 제거하는 행위)도 여기서 해야 한다는 소리였다.


“일단 이 광석을 부수는 것부터 해야겠군.”


루키우스는 머릿속을 더듬다 마침내 선광 과정을 다룬 영상을 본 기억을 찾아냈다.


‘그때, 심심하다는 이유로 이걸 본 기억이 있었는데. 하. 살았다.’


이 초능력이 없었으면 진짜 어떻게 살았을까?


루키우스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이 영상의 내용을 그대로 종이에 옮겨 적었다.


가장 먼저 물레방아의 힘으로 광석을 분쇄하는 스탠드 밀을 지었다.


스탠드 밀로 철광석을 부숴 가루로 만든 다음.


그 가루를 물과 섞어 험프리 스파이럴 선광기의 입구에 집어넣었다.


이 험프리 스파이럴 선광기는 무려 서기 1942년경에 개발된 선광기이지만 전기나 증기기관처럼 동력이 따로 필요 없는 물건이었다.


회전 회오리 감자처럼 중앙에 막대를 세우고, 그 막대를 빙빙 도는 길을 만든 뒤 가장 윗부분에 물과 광석 가루를 흘려 보내주면 여러 성분으로 혼합된 가루가 중력과 비중 차이, 그리고 물로 인해 자동적으로 성분이 분류된다.


단순하게 말하면 기원전 3세기에 개발된 아르키메데스의 나선식 펌프를 좀 응용해서 광석 분류에 쓴다고 보면 된다.


“이런 식으로 철만 따로 모을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예전에 불순물을 때낸다고 죽어라 망치질을 하던 걸 생각한다면···.”


“걱정하지 마. 저렇게 가루로 만든 철에도 불순물이 있으니까. 저건 불순물을 대폭 줄여 주는 거지. 아예 없애 주는 게 아니거든.”


루키우스의 대답에 아시두우스는 뭐라 할 말을 잃었다.


‘아니 도련님은 도대체 어떻게 이런 걸 알고 있는 거지? 지난번 인도에서 썼다는 강철 제련법도 그렇고.’


그야말로 놀랄 노자였다.


아시두우스는 주님을 믿지만 그렇다고 주님의 기적을 딱히 믿지는 않았는데.


‘괜히 주교님이 주님의 기적을 말하는 게 아니구나. 도련님은 주님에게 축복을 받은 게 분명해.’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일은 불가능할 테니까.


이미 도련님이 이룬 업적만 보더라도 주님의 사도라고 칭해도 모자람이 없었다.


도련님에 대한 찬양도 찬양이지만.


‘그것보다 앞으로 여기 들어올 녀석들 편해지겠네. 우리처럼 불순물을 빼느라 죽어라 망치질 하는 일은 없을 테니까.’


이 생각을 하니, 아시두우스는 괜히 심술이 났다.


나중에 신입을 위한 특별 과정을 꼭 넣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여튼 선광 작업까지 완료하자 루키우스는 속으로 외삼촌 리우비길드를 욕하며 소결 과정에 들어갔다.


‘일단 가루가 된 철광석을 석회석에 섞고, 이걸 구우면 된다고 했지?’


석회석을 얼마나 집어넣는가를 직접 조절하며 자료를 만들어야 했다.


그런 식으로 소결 과정까지 마무리하고, 드디어 용광로에 다시 도전!


이번엔 다행히도 행잉은 일어나지 않았고, 용광로 밑에서 드디어 쇳물이 튀어나왔다.


“오오. 저게 바로 철입니까?”


“아직 멀었어. 좀 더 살펴봐야 돼.”


“예? 이거 된 거 아닙니까?”


“뭘 이 정도로 성공이라고 자신하는 거야?”


“······.”


루키우스의 욕심에 아시두우스와 대장간 인원들은 두 손 두 발 다 들고 말았다.


결국 이런저런 실험도 해보고,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문제점까지 해결하면서 용광로의 완성도를 높여갔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이번엔 성공하겠죠?”


“진짜 저거 몇 번이나 다시 지었는지 모르겠다.”


“한번 불이 꺼지면 더는 사용할 수 없는 괴철로라니.”


“도련님의 말씀대로 주문량이 폭주해야 사용할 수 있는 시설이군.”


아시두우스와 직원들은 쇳물이 나오는 용광로를 바라보며 소감을 말했다.


그리고 용광로에서 나오는 쇠를 한번 실험해보는데.


“어라? 이거 너무나도 잘 깨지네요.”


“그래. 이 철은 주물로 만들긴 좋아도 그만큼 잘 깨지는 철이지.”


“그래도 이건 가마솥이나 기타 주방 도구를 만들 때 좋겠군요.”


“사실 이 철로 강철을 만들 수 있긴 해.”


“그 작년에 만들었던 도가니 안에 이 철을 집어넣으면 됩니까?”


“그건 아니야. 이 철은 탄소를 가득 머금고 있거든.”


“아. 탄소라면 저번에 도련님이 말씀하셨던 철을 단단하게 해주는 성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작년 루키우스와 함께 도가니 제강법을 발명하면서 아시두우스는 탄소의 개념을 깨우쳤다.


“그럼 이 철은 반대로 그 탄소라는 걸 빼내야 하겠군요?”


“그래. 그렇지.”


문제라면 이 주철에서 탄소를 어떻게 빼내야 하냐는 것이다.


‘분명 탈탄제라고 따로 있던 것 같은데.’


아쉽게도 뭐가 탈탄제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초능력으로 살펴봐도 기억이 없다.


‘젠장. 일일이 하나씩 하나씩 탈탄제를 찾아야 하나?’


루키우스는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일단 주철은 탄소가 많아. 그러니 주철로 강철을 만들려면 이 탄소를 제거해야 해. 그렇다면 탄소를 어떻게 제거할까?’


루키우스는 고민했다.


‘탄소와 결합하는 물질엔 뭐가 있지? 이산화탄소? 잠깐 이산화탄소는 탄소에 산소가 붙어있는 녀석이었지!’


즉 주철 안의 탄소를 제거하려면 산소를 집어넣어야 했다.


‘그래. 그래. 이제야 알았다. 왜 베세머 전로에 공기를 불어넣는지. 그리고 차후 등장한 린츠-도나비츠 전로법에 왜 순산소를 사용하는지. 하지만 지금은 그 전로를 쓸 수가 없잖아!’


전로를 쓰려면 최소 증기기관이 필요했다.


지금처럼 순 장난감으로 쓰는 증기기관이 아닌 19세기 산업 사회에서 쓰던 강력한 출력을 가진 증기기관이 필요했다.


결국 전로가 아닌 방식으로 탄소를 제거해야 했다.


‘평로법도 마찬가지. 이것 또한 쓸 수가 없어. 씁. 반사로를 써볼까? 아니야. 이것도 따로 만들려면 시간이 걸려. 또 만든다고 해도 반사로는 연철을 대량 생산할 때 쓰는 방법이야.’


루키우스는 계속해서 머리를 굴렸다.


그리고 그 순간 루키우스의 머릿속에 한 단어가 떠올랐다.


‘산화. 그래. 산화가 있었지! 공기의 산소와 만나 결합된 물질들.’


아이디어를 떠올린 루키우스는 산화된 물질엔 뭐가 있는지 생각했다.


‘산화된 물질이라면···. 녹이 슨다? 이거다! 녹이 쓸었다는 건 산화되었다는 의미! 정답은 바로 녹슨 철이었어!’


드디어 탈탄제를 찾아낸 루키우스는 자신도 모르게 박수를 짝 쳤다.


“방법을 찾으셨습니까? 도련님?”


“녹슨 철 있지? 특히 가루가 된 거 들고 와봐.”


“녹슨 쇳가루요? 어이. 도련님 말씀 들었지. 여기로 가져와.”


아시두우스의 지시에 직원 중 한 명이 부리나케 창고로 달려갔다.


“오. 이제 사장님이라고 직원을 부리는 거야?”


“이게 다 도련님 덕분입니다. 하핫!”


아시두우스는 호탕하게 웃었다.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직원 하나가 녹슨 쇳가루가 담긴 주머니를 여기로 가져왔다.


“그래서 이 녹슨 쇳가루로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이걸 도가니에 뿌려볼 생각이야. 저 녹슨 쇳가루는 철안에 든 탄소를 없애주니까.”


“그런 건 어떻게 알고 있습니까?”


그 물음에 루키우스는 씩 웃더니 검지로 관자놀이를 툭툭 치며 대답했다.


“이 머리로 생각했지.”


‘이 사람은 도대체···.’


혀를 내두른 아시두우스는 머리 속에 주님의 기적을 다시 새겼다.


*****


한 사람이 용광로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나는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철 생산의 새로운 방식.’


저 건물 안에서 끊임없이 철을 토해내고 있다고 들었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그게 가능하냐는 부정적인 의문이 생겼지만.


‘자네의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해보게. 그럼 알 수 있을 거야.’


‘허. 어떤 자신감으로 그렇게 말하는지 모르겠지만. 그래. 좋아. 내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해주지.’


로브를 뒤집어쓴 채 이곳에 도달했다.


전직 사제이자 바가우다이 무리의 지도자였던 크리스푸스는 고개를 들어 연기가 모락모락 나는 용광로를 바라보며 이렇게 생각했다.


‘딱 보니까 거의 지옥의 한복판이 아닌가?’


크리스푸스가 알고 있는 지옥의 풍경은 유황이 녹아 흐를 정도로 뜨거운 용암에 죄인들이 허우적대고 있고, 마귀는 그 죄인들을 창으로 푹푹 찌르며 온 몸을 용암에 잠기게 한다고 알고 있다.


용광로의 풍경은 자신이 상상한 지옥을 그대로 구현해낸 광경과 같았다.


차이점이 있다면 저 용광로 안엔 죄인 대신 광물들을 집어넣고, 배출구에선 녹은 쇳물이 튀어나온다는 점이지만.


‘잠깐 쇳물이라고?’


순간 크리스푸스는 배출구에서 나오는 쇳물에 집중했다.


배출구에서 쇳물을 끊임없이 토해내고 있었다.


‘지난 로마의 역사 중에서 철을 이렇게 많이 만들었던 적이 있던가?’


크리스푸스는 기억을 되짚었으나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없었어. 이런 건 처음이야. 생긴 건 꼭 지옥 한복판을 보는 것과 같지만 정작 저기서 나오는 것은 그 어떤 때보다 더 많은 철.’


철. 철. 보다 더 많은 철.


크리스푸스는 철의 중요성을 너무나도 잘 알았다.


철이 모자랐기에 무기와 갑옷을 아껴 써야 했고, 철이 모자랐기에 나무 깎을 도구도 아껴 써야 했다.


교회에 있었을 때는 그 중요성을 알지 못했으나 직접 무리를 이끌고 생활하다 보니 철이 얼마나 귀중한 것인지 깨달았다.


그런데 지금 자신의 눈앞에 이토록 귀중한 철이 용광로의 배출구에서 강물이 흐르듯 쏟아지고 있었다.


‘이래서···. 이래서···. 그 친구가 직접 보라고 이야기를 했구나.’


오로시우스가 왜 그렇게 이야기를 했는지 이제야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크리스푸스는 그저 웃음이 나왔다.


기뻐서 나는 웃음은 결코 아니었다.


그저.


‘왜 이제야 이런 걸 보는 거야. 과거의 내가 이걸 바라봤다면 들고 일어났을까?’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바로 나왔다.


‘결코 아니었을 거다. 보다 더 많은 철은 더 많은 도구를 만들어내고, 더 많은 도구는 사람들에게 더 풍성한 수확을 가져다 줄 테니까.’


크리스푸스는 저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달았다.


저건 절망적인 현실을 부수고, 힘찬 미래를 내딛는 희망의 나팔이었다.


감미로웠다. 너무나 감미로웠다.


크리스푸스는 사뭇 기대된다는 얼굴로 용광로를 바라본다.


바로 그때.


“보고 계셨습니까?”


이 용광로를 설계하고, 만들어낸 장본인 루키우스가 크리스푸스 옆에 섰다.


“예. 봤습니다.”


“어떻습니까?”


“예전보다 더 많은 철이 나오는 걸 보고 있었습니다. 한 가지만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말씀하십시오.”


크리스푸스는 루키우스에게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당신은 무엇을 위해 저걸 만들었습니까?”


그 물음에 루키우스는 사뭇 진지한 얼굴로 대답했다.


“살기 위해서.”


“살기 위해서? 저런 대단한 것을 단순히 살기 위해서 만들었다?”


크리스푸스는 영 이해를 못하겠다는 얼굴로 루키우스를 쳐다봤다.


“예. 그저 살기 위해서입니다. 한 가지만 묻겠습니다. 크리스푸스 사제님. 당신은 무엇을 위해 들고 일어섰습니까? 당신은 무엇을 위해 그들을 이끌었습니까?”


“그건 그저 이 절망적인 현실을 참을 수 없어서 그렇습니다. 이대로 간다면 모두 다 죽을 테니까.”


“저도 같은 이유입니다. 이대로 가면 말라죽으니까. 저뿐만 아니라 제 소중한 가족들도 길거리에 나앉아 굶어 죽으니까.”


“도대체 얼마나 절망적인 미래를 봤기에···. 그런 말을 내놓습니까?”


그 물음에 루키우스는 담담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제 집안이 징세청부업을 한다는 건 오로시우스 사제에게 들었을 것입니다.”


루키우스의 대답에 크리스푸스는 순간 불편한 얼굴로 루키우스를 바라봤으나 이내 얼굴을 바꿨다.


“쓰레기 같은 징세청부업자들 중에서 한 떨기 장미는 있는 법이니까요. 그래서 그 징세청부업을 꺼내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간단합니다. 징세청부업자는 도시의 사람들이 있어야 살아갈 수 있는 존재입니다. 도시가 죽으면 그들도 죽죠.”


“으음···.”


“세금을 안 내는 콜로나투스가 득세할수록 도시의 사람들은 각박한 현실을 피해 콜로나투스에 내몰리게 됩니다. 그럴수록 도시는 작아지고, 도시에서 나오는 물건들도 적어지죠.”


루키우스는 담담하게 서로마 전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회 현실을 설명했다.


“기존에 세금을 거두던 징세청부업자는 적어진 수입에 더더욱 사람들을 쥐어짜려고 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 무거운 세금을 피해···.”


“도망치거나 들고 일어나겠죠.”


“예. 도시는 쇠퇴해 사라지고, 농촌만이 살아남죠. 농촌은 스스로 살아남을 수 있지만 도시는 농촌에서 생산되는 식량이 없으면 살아남지 못합니다.”


“그래서 교회로 하여금 자작농들을 보호하려고 하는 것입니까?”


“그래야 우리 가문이 살아남기 때문입니다.”


“당신 집안이라면 콜로나투스를 가질 수 있을 텐 데요?”


루키우스는 그 물음에 피식 웃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사제님이 콜로나투스를 싫어하는 것처럼 저 역시 그들을 싫어합니다. 제 선조는 왜 카이사르에게 패배했을까요?”


“으음. 그건···.”


“이유는 간단합니다. 제 선조는 사람들의 마음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위대한 그라쿠스는 처음으로 로마의 현실을 말하고, 고치려고 노력했죠. 하지만 라디푼디움의 주인들은 그라쿠스를 죽이는 걸로 그 목소리를 잠재웠습니다.”


“허나 그 목소리는 죽지 않고, 다른 사람이 그 목소리를 이어받았고···.”


“예. 결국엔 그 카이사르가 그 뜻을 이어 받습니다. 반면 제 선조와 옵티마테스는 카이사르를 경원시했고, 결국 그에게 패망했죠. 우리 일족은 그의 자비를 받아 지금 이렇게 살아 숨을 쉬고 있습니다.”


루키우스의 대답에 크리스푸스는 복잡한 눈길로 루키우스를 바라봤다.


“허나 지금은 어떻습니까? 카이사르는 그라쿠스의 뜻을 이어받았습니까? 옛날 라디푼디움을 아득 바득 들고 있던 원로원은 현재 콜로나투스를 쥔 채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카이사르가 가졌던 그 뜻은 그저 황제라는 직위로 바뀌었을 뿐입니다.”


“그럼 당신이 바라는 것은···.”


“전 카이사르보다 더 나은 대답을 위해 움직일 것입니다. 그의 뜻을 이어받은 자들이 사람들을 굶긴다면 전 그 굶주린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그의 뜻을 이어받은 자들이 사람들에게 복종할 것을 요구한다면 전 그 사람들이 자유를 위해 들고 일어나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그게 절 사랑해주고, 아껴 준 이 집안에 대한 보답이라고 생각하니까요.”


난생 처음으로 루키우스의 진심이 담긴 대답을 들은 크리스푸스는 생각했다.


‘주여. 왜 저를 그분보다 더 일찍 태어나게 하셨습니까?’


하느님에게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크리스푸스는 그 대답을 들은 듯했다.


그는 자신의 마음을 따르기로 했다.


크리스푸스는 루키우스에게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전 지금까지 왜 이토록 고통을 받으며 살아야 했는지 이유를 몰랐습니다. 하지만 지금 저는 그 이유를 알았습니다. 제 질기디 질긴 목숨은 이때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 목숨 고이 간직하십시오. 앞으로 헤쳐 나가야 할 어둠과 절망은 깊고도 험할 테니.”


루키우스의 대답에 크리스푸스는 미소를 지었다.


둘은 용광로에서 나는 연기를 바라봤다.


이 짙고, 어두운 절망 속에서 한 줄기 피어 나오는 희망의 연기를 바라봤다.


얼마 지나지 않아 크리스푸스와 그 무리들이 꿈꾸던 꿈은 루키우스의 꿈과 같아졌다.


크리스푸스와 그 무리들은 그렇게 루키우스를 따르게 됐다.


드디어 루키우스가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병력이 생기는 순간이었다.


서기 431년은 끝나고, 서기 432년이 다가왔다.

험프리 스파이럴 선광기.png


루키우스가 광석 가루를 분류할 때, 쓰던 험프리 스파이럴 선광기입니다.


원리는 앞서 설명한 것처럼 물의 흐름, 광물의 비중차, 그리고 중력으로 광물을 분리합니다.


작가의말

슬슬 시간 가속을 시작하겠습니다.



전개 속도가 느리다고 생각해서 말이죠.



이 글을 본 모든 분들은 복받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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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46편. 입 벌려. 과학 혁명 들어간다. +48 24.09.06 3,121 159 21쪽
45 45편. 서기 435년, 루키우스의 나이 15세. +36 24.09.05 3,292 179 19쪽
» 44편. 그들의 꿈은 루키우스의 꿈이 되었다. +54 24.09.04 3,312 183 20쪽
43 43편. 드디어 용광로를 쓸 때가 왔다. +50 24.09.03 3,375 205 18쪽
42 42편. 콜로나투스가 불태워지는 걸 보고 싶나? +56 24.09.02 3,499 221 18쪽
41 41편. 당신은 꼭두각시처럼 조종당했습니다. +76 24.09.01 3,612 244 19쪽
40 40편. 망원경 통신 체계와 추종자. +54 24.08.31 3,616 184 19쪽
39 39편. 보다 더 멀리 보다. +24 24.08.30 3,764 185 20쪽
38 38편. 환호와 유리, 그리고 보상. +34 24.08.29 3,970 183 18쪽
37 37편. 희망의 등불. +32 24.08.28 4,040 200 18쪽
36 36편. 로마 인빅타. (무너지지 않는 로마) +38 24.08.27 4,200 221 18쪽
35 35편. 루키우스가 미쳐 날뛰고 있습니다. +38 24.08.26 4,018 209 18쪽
34 34편. 싸울 마음을 품게 하는 방법. +32 24.08.25 3,958 188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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