폼페이우스가 멸망하는 로마를 집어삼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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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트맨형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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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25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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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6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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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7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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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편.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한 줄기의 빛.

DUMMY

사실 이런 경우는 잘 없다.


한 사람이 등장해 새로운 이론과 개념을 발표한다고 해서 기존 사람들이 그걸 곧바로 인정한다는 건 현실적으로 극히 드문 사례였다.


‘아오 씨. 제발 손 좀 씻으라고. 네 손에 묻은 세균이 몸 곳곳에 퍼진다니까!’


라고 진리와 팩트로 사람들을 깨우치려고 했던 제멜바이스는.


‘뭔 개소리야? 손을 씻으라니?’


‘저 새끼 증거 없이 아가리만 놀리네?’


‘이 새끼가 감히 우리에게 이의를 제기해?’


라는 기존 사람들의 반발로 인해 정신 병원에 감금당하고, 결국 그의 주장은 사장되나 싶었지만 후일 프랑스의 루이 파스퇴르가 세균을 증명하여 그 세균과 병에 관한 이론을 남기면서 재평가됐던 것처럼 말이다.


티치아노, 오로시우스, 루키우스 이 세 사람도 자신들이 던진 것들이 기존 사람들의 반발을 일으킬 건수라고 생각했다.


당연히 무수한 반발과 반론이 자신들을 덮칠 거라고 예상했는데.


‘이게 도대체 뭐지?’


반응은 정반대였다.


지금 이 자리에 앉아있는 이들은 그 누구보다 활화산처럼 불타올라 티치아노와 오로시우스가 던진 개념을 물고, 빨고, 핥는 데 정신이 없었다.


“이 바보야! 그러니까 여길 이 책에서 나오는 걸 사용한다면!”


“누가 누구 보고 바보라고 하는 거야?! 뒤질래?!”


“이걸로 자연 현상을 도식화할 수 있겠군.”


“크크. 그리스 놈들이 이걸 봤다면 큰 충격에 빠졌을 텐데 말이지.”


“형제여! 내 한 가지만 물어봐도 되겠소?”


드디어 어느 한 사람이 벌떡 일어서 반론을 날리는가 싶었는데.


“이 부분. 이 부분이 좀 이해가 안 되어서 그런데 좀 도와주실 수 있겠소?”


오히려 티치아노와 오로시우스에게 가르침을 구했다.


두 사람 모두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저들이 이토록 개방적이었나?’ 라는 의문을 품은 채 가르침을 구하는 사람들에게 다시 한번 자신들이 소개한 개념을 가르쳤다.


사실 이 부분은 티치아노와 오로시우스 자신들의 명성이 어느 정도인지 몰라서 생긴 현상이었다.


이미 그들은 로마에 오기 전부터 교회의 성직자들에게 주목 받고 있었다.


“타라코의 주교가 새로운 시도를 하는군요.”


“교회에서 땅을 사 농민들에게 나눠 준다니. 초기 교회 때처럼 돌아가는 건가요?”


“그저 자애심으로 나눠 주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교회에 모집된 농민들은 땅 값을 수 년 단위로 납부하고, 납부가 끝난 뒤에 십일조를 받습니다. 그 대신 교회는 농민들에게 가해지는 가혹한 착취를 막아냅니다.”


“호오···. 이거 참 획기적인 발상이군요!”


“우리 주님의 명예를 드높이는 건 물론이고, 현실에 지친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는 방안이라니.”


티치아노의 교회 자작농 연합은 시작할 때부터 성직자들의 주목을 받았고, 오로시우스 사제의 농법이 적용되자.


“이럴 수가! 이건 기적이야! 기적이라고!”


“이토록 많은 수확량이라니···.”


“이게 길이다! 이게 정답이었다고!”


이때의 기독교 성직자들은 그야말로 아노미 상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무너지는 제국, 한탄에 빠진 사람들, 뭘 해도 갑갑한 현실, 시간이 갈수록 상황은 암울해지고 있었다.


제국 곳곳에선 이단들이 치솟아 사람들을 현혹하고 있었고, 여러 사람들이 여러 방향으로 시도를 해보지만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고 있었다.


아우구스티누스가 그토록 원죄를 연구하는 이유도 ‘인간을 뜯어고치면 이 빌어먹을 현실을 바꿀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품었기 때문이다.


마치 춘추전국시대의 중국 지식인들이 뭘 하면 ‘이 조옷같은 난리를 끝낼 수 있을까?’ 라고 고민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던 와중 티치아노 주교가 시도한 방법은 이 시대 성직자들의 주목을 받기 충분했다.


부디 이번만큼은 성공하기를 바라며 마음속으로 빌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성공을 하자 성직자들은 열광했다.


그들은 티치아노 및 그를 따르는 여러 사제들에 시선을 두기 시작했다.


더불어 타라코에서 벌어지는 혁신은 그들에게 눈을 트이게 만들기 충분했다.


“이 멍청한 녀석들. 이게 바로 망원경이라고 하는 거다. 보다 더 멀리 있는 걸 눈앞에서 보여 주는 물건이지.”


“대단해! 이걸로 보니까 달을 눈앞에서 보는 것 같잖아!”


“미개한 녀석들 같으니라고! 이걸 쓰면 잘 안 보이던 눈도 볼 수 있게 해준다.”


“정말이네? 저 멀리에 있는 건물이 이렇게 또렷하게 보이다니! 오오! 이것이 바로 주님의 기적?”


“하핫! 이것만 있다면 성경이 복사가 된다고?! 지금까지의 필경 작업은 잊어! 그건 이미 퇴물이라고!”


“그 누구보다 많은 성경을 찍어낼 수 있다니! 티치아노 형제는 천사인가?!”


망원경, 안경, 종이와 인쇄술이 알음알음 교회에 퍼졌고, 그 혜택을 받기 시작하자 성직자들의 시선은 타라코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없었던 혁신과 최신 문물이 타라코에서 쏟아졌기 때문이다.


티치아노 주교는 세속적인 일에 몰두한다고 비판을 받지 않을까라고 홀로 생각했지만.


“티치아노 주교처럼 세상의 혼돈을 앞장서서 몰아내려고 하는 사람은 드물지요.”


“맞습니다. 그 형제만큼 우리 교회의 명성을 드높이는 사람은 없어요. 저로선 그가 교리에 집중했으면 좋겠지만 한 사람에게 너무 많은 걸 바라면 안 되겠죠.”


“만물의 법칙을 밝히기는커녕 다른 곳에서 일군 법칙들조차 불태운다고 온갖 지랄을 다 떨던 놈들도 우리가 해낸 걸 본다면 넋이 나가지 않겠습니까?”


“하하. 그들도 눈이 있다면 우리의 성과를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런 식으로 티치아노 주교를 인정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되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티치아노 주교가 로마에 가서 뭔가를 발표하겠다고 고하자.


“뭐?! 티치아노 주교가 로마에 온다고?! 우리도 로마에 방문한다. 일정 만들어놔!”


“내가 타라코로 가려고 했는데. 로마로 간다니! 하핫!”


“어서 빨리 그가 연구한 걸 듣고 싶다.”


마치 공의회를 소집하는 분위기처럼 활활 타올랐다.


서방 교회의 대다수 주교들은 티치아노 주교가 로마를 방문할 날짜에 맞춰서 일정을 짜기 시작했고, 그 날이 다가오자 하나둘 로마에 모였다.


그들은 기대감 가득한 시선으로 티치아노 주교와 그 일행을 기다렸고, 티치아노 주교와 오로시우스 사제가 새로운 개념들을 전파하자 열광할 수 있었다.


“그래. 이거지! 이거라고!”


“오! 주님이여! 찬양합니다! 오늘 제가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걸 너무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카데미아(플라톤이 세운 학술 교육 기관)에서 우리에게 무식하다고 소리치는 놈들아. 이걸 보라! 이것이 바로 우리가 일궈낸 성과이다!”


그야말로 광란의 도가니가 아닐 수 없었다.


‘일단 유명해져라. 그러면 당신이 똥을 싸더라도 사람들은 박수를 칠 것이다.’


라는 말이 왜 세상에 나돌았는가?


오늘 날의 이 현장은 티치아노 주교와 오로시우스 사제, 루키우스 외 기타 사람들이 불러일으킨 파도가 만들어낸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었다.


“루키우스.”


“예. 주교님.”


“이건 우리가 예상했던 모습과 많이 다르지 않은가?”


루키우스는 뺨을 긁적이며 대답했다.


“저도 난감합니다. 분명 벌 떼처럼 일어서서 반박과 반론을 날릴 거라 생각했는데.”


“그러니까 자네도 이런 건 예상하지 못했단 거지?”


“저 역시 하나의 사람인데, 모든 예측이 들어맞겠습니까?”


“하나의 사람이라···. 하하. 겸손하기 그지없는 말이구나.”


티치아노 주교는 흡족한 표정으로 루키우스에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현장에 시선을 돌렸다.


현장은 여전히 뜨겁고, 활기가 넘쳐 흘렀다.


티치아노 주교와 오로시우스 사제는 이 열기가 가라앉을 때까지 자신이 했던 설명을 되풀이해야 했다.


*****


숙소에 돌아오자마자 세 사람은 지친다는 얼굴로 침대, 의자에 걸터앉았다.


“다른 방향으로 지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말이지.”


“어휴. 말도 마십시오. 했던 말을 또 하고, 또 하고···. 그나마 책을 미리 나눠줘서 이 정도이지. 책도 나누지 않았으면 이 숙소에 문을 두들기는 사람이 엄청나게 많았을 것입니다. 아니 숙소로 되돌아올 수 있었겠습니까?”


오로시우스 사제는 한숨을 내쉬며 오늘의 그 소감을 토해냈다.


“그나저나 우리가 한 일이 이렇게까지 인정받을 줄은···.”


“저도 그 부분에서 얼떨떨합니다. 저 사람들이 그렇게까지 이 내용을 받아들일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그래. 맞는 말이야. 오늘은 정말이지 만족스러운 날이었네.”


티치아노 주교는 씩 미소를 지었다.


루키우스와 함께했던 시간들이 쌓이고, 쌓여 오늘날의 결실을 맺었다고 생각하니, 마약을 복용한 것 같은 기쁨이 티치아노 주교의 뇌를 자극했다.


이 기쁨을 평생 간직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티치아노 주교와 오로시우스 사제가 오늘 일을 만끽하면서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


-똑! 똑! 똑!-


문이 두들기는 소리가 들렸다.


“이런 벌써 숙소에 문을 두들기는 사람이 생기는가?”


티치아노 주교는 기대감 가득한 얼굴로 문을 열었고, 눈앞에 선 인물을 보자마자 입을 떡 벌렸다.


티치아노 주교가 입은 달마티카보다 호화스러운 달마티카를 입은 중년 사내.


사내는 티치아노 주교에게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안에 들어가도 되겠는가?”


“어···. 얼른 들어오십시오.”


티치아노 주교는 얼어붙은 얼굴로 중년 사내를 방 안으로 들였다.


“세상에 파문을 던지는 사람들이 많지. 하지만 지금처럼 크나큰 파문을 일으킨 경우는 내 생애에서 찾아 볼 수 없다고 말할 수 있네.”


사내는 마치 이곳이 자신의 방인 것 마냥 자연스럽게 빈 의자에 앉았다.


“타라코의 티치아노 주교와 오로시우스 사제여. 자네들이 발표한 그것들은 세상을 뒤바꿀 힘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사내의 물음에 티치아노 주교는 잠깐 생각을 하더니 곧 입을 열었다.


“어렴풋이 알고 있습니다.”


“그래. 인지는 한 모양이야. 그럼 이곳에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드는 걸 겨우 가로막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겠군.”


“예? 아니 잠깐 홀로 여기에 온 이유는···.”


“내 수행원들이 이곳에 사람들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지키고 있네.”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폰티펙스 막스무스여.”


그 대답에 순간 루키우스는 입을 떡 벌렸다.


‘잠깐 여기서 ‘폰티펙스 막시무스’라는 건 그러니까 로마 총대주교? 그 말은 곧 교황이잖아!’


루키우스는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그렇다. 의자에 앉아있는 중년 사내는 교황 ‘식스투스 3세’ 였다.


‘이 때 당시엔 교황이라는 단어가 없었지. 나도 처음 그걸 알고 깜짝 놀랐고.’


이 시기가 로마 말기라는 걸 자각하는 순간 아버지 퀸투스에게 현재 교황이 누구냐고 물었다가 오히려 퀸투스가 교황이 뭐냐는 물음에 땀을 뻘뻘 흘리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 식스투스 3세의 시선이 루키우스를 향했다.


“저 사람은 누구인가? 자네의 성당에 새로 들어올 사람인가?”


“성직자는 아닙니다. 그저 제 연구에 많은 도움과 영감을 가져다 준 아이입니다. 저 아이가 없었다면 오늘의 발표도 없었겠죠.”


“허. 그렇게 높이 평가하다니.”


“저 역시 저 아이의 도움이 없었다면 오늘의 성과를 발표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도중에 오로시우스 사제가 끼어들어 루키우스의 성과를 보탰다.


“흠. 자네까지 그렇게 말하는 걸 보면 이번 일에 저 아이의 몫이 지대했다는 소리군.”


그 말에 티치아노 주교와 오로시우스 사제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흠. 이렇게 되니, 궁금하군. 아이···. 잠깐 아이라고? 일반 성인보다 훨씬 덩치가 크잖아. 커흠. 이거 실례했군. 자네 이름이 뭐지?”


“예. 제 이름은 루키우스 폼페이우스 스트라보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폰티펙스 막시무스여! 오늘 당신을 만난 것이 제 가문의 영광이자 역사에 길이 남을···.”


“그렇게 아부할 필요는 없네. 그나저나 폼페이우스라고 한다면···.”


“예. 제 직계 선조가 카이사르와 맞붙은 그나이우스 폼페이우스 마그누스입니다.”


“허어···. 그러니까 자네가 그 폼페이우스의 직계 후손이란 소리군. 그나저나 이야기를 들어보니, 자네가 저 둘에게 많은 도움을 줬다고 하는데, 정확히 어떤 도움을 줬는지 말해 줄 수 있겠나?”


교황 식스투스 3세의 물음에 루키우스는 긴장한 얼굴로 대답했다.


“이야기가 조금 길어질 것 같습니다만···.”


“상관없네. 한번 이야기를 해보게.”


“옙.”


교황의 명을 어찌 거역할 수 있을까?


루키우스는 서서히 티치아노 주교와 오로시우스 사제를 도와준 일화를 천천히 소개하기 시작했다.


이야기가 진행될 수록 식스투스 3세의 눈빛은 루키우스에 집중했다.


“그래서 오늘 제가 이 자리에 온 것입니다. 이 무대의 주인공은 오롯이 두 분이-”


“티치아노 주교와 오로시우스 사제가 왜 그런 대답을 내놓았는지 이제야 알겠군.”


“예?”


“결국 자네가 없었다면 오늘 있었던 이 놀라운 발표가 없었다는 소리가 아닌가?”


“어···. 으음···. 그런가요?”


루키우스는 부끄러웠는지 뺨을 긁적이며 대답했다.


“마치 이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한 줄기의 빛과 같아. 그래서 자네에게 제안하겠네. 혹시 주님의 말씀에 더더욱 파고들 생각이 없는가?”


“죄송하지만 전 군에 뜻을 두고 있습니다.”


“자네라면 주교의 자리에 오를 수 있을 텐데?”


식스투스 3세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루키우스의 결심은 바뀌지 않았다.


“주교가 되는 것도 저와 제 가문에 영광이겠지만 제 결심을 바꿀 정도는 아닙니다.”


“흐음···. 그런 것 치고는 교회에 꽤 많은 도움을 준 것 같은데.”


“저와 제 집안에 도움이 되기에 그렇게 행동했을 뿐입니다.”


“그런가? 이거 참 아쉽구만. 알겠네. 자네의 뜻이 정 그러하다면 어쩔 수 없지.”


식스투스 3세의 시선은 티치아노 주교에게 향했다.


“타라코의 주교여. 참 아쉬운 일이야. 그렇지 않은가?”


그 물음에 티치아노 주교는 복잡한 미소를 짓는 걸로 대신했다.


‘폰티펙스 막시무스께서 저 녀석의 진짜 모습을 본다면 마귀 취급하겠지.’


티치아노는 그렇게 생각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후로도 식스투스 3세는 이곳에 있는 사람들과 여러 이야기를 나누다 방에서 떠났다.


하지만 일은 이제 시작이었다.


교황이 이 건물에서 나가자마자 건물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하이에나 무리들이 이곳을 급습했기 때문이다.


“타라코의 주교여! 내 물어볼 것이 있소!”


“오로시우스 형제여! 부디 내 의문을 풀어 주길 바라네!”


“끄아악! 그만! 피곤해 죽겠다고! 이야기는 다음에 합시다!”


티치아노 주교와 오로시우스 사제는 로마에서 대략 보름 정도 저들에게 시달려야 했다.


*****


활화산처럼 불타오르던 열기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점점 가라앉았다.


밤중에 저들이 불쑥 찾아오는 일도 점점 줄어들기 시작하면서 셋은 겨우 여유를 찾을 수 있었다.


“휴우. 이제 슬슬 분위기도 잠잠해진 것 같고, 타라코로 돌아갈 준비를 해볼까?”


“저들이 우릴 뒤쫓아 타라코로 온다면 어떻게 하죠?”


“오면 오는 거지. 타라코로 올 만큼 열정 가득한 사람이라면 내 직접 가르침을 주고 싶네.”


“분위기를 봐선 타라코로 향하는 사람들이 더 늘어날 것 같은데 말이죠.”


“에이. 그 정도는 아닐 거야. 저들의 눈에 타라코는 위험천만한 도시가 아닌가?”


“열정은 때로 위험을 감수하게 만들죠.”


오로시우스의 대답에 티치아노는 커흠 기침을 하며 주제를 다른 곳에 돌렸다.


“이제 이곳의 할 일도 끝났고, 슬슬 타라코로 되돌아갈 준비를 해야 할 것 같은데. 혹시 여기에 미련을 가진 사람 있나?”


티치아노의 물음에 일행들은 고개를 저었다.


“모두의 뜻이 그러하다면 내일 타라코로 돌아갈 준비를 하게.”


“예. 주교님.”


그렇게 로마에서의 일정을 마무리하고, 타라코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을 때.


“당신은···?”


“오랜만에 뵙습니다. 폼페이우스님.”


반달 상인 군타가 뜬금없이 루키우스를 찾았다.


“파피루스라면 이미 그쪽에 판 걸로 아는데, 무슨 문제라도 생겼습니까?”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건 그 부분이 아닙니다.”


“혹시 어머니가 문제라도 일으켰습니까?”


그 물음에 군타는 크흠크흠 헛기침을 했다.


“힐데아님이 자신을 습격한 녀석들을 붙잡아 노예로 만들긴 하지만 그리 큰 문제는 아닙니다.”


힐데아는 여전히 즐거운 선상 생활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타라코의 몇몇 사람들은 힐데아와 그 부하들을 가리켜 ‘고트 해적’ 혹은 ‘로마 해적’ 이라고 따로 부르고 있을 만큼 그녀의 활동력은 왕성했다.


“흠흠. 제 어머니 이야기가 아니라면···. 혹시 폐하께서 저를?”


“예. 폐하께서 폼페이우스님을 찾으십니다. 이제 슬슬 때가 됐다고 그렇게 말했습니다.”


“흐음. 때라···. 알겠습니다. 이곳 사람들에게 작별 인사를 나눈 뒤 그쪽으로 가겠습니다.”


“폐하께서도 흡족하실 것입니다.”


루키우스는 곧바로 티치아노 주교를 찾아 이야기를 전달했고.


“그래. 그 가이세리크가 자네를 부른다라···. 그럼 어쩔 수 없지. 잘 갔다 오게. 그나저나 요즘 아에티우스가 그쪽에 사절을 보낸다고 하던데. 혹시 이 일과 관련이 있는 것인지 모르겠군.”


“아에티우스가 가이세리크를 찾는다고요?”


“가이세리크가 아프리카의 곡물을 손에 쥐었지 않은가? 로마 전역의 곡물 가격을 내리기 위해선 그의 협조가 절실히 필요하니까 아에티우스로선 선택의 여지가 없겠지.”


“유용한 정보를 알려줘서 감사합니다.”


“로마의 길거리에서 떠도는 소문에 불과해. 그러니 너무 믿지는 말게.”


티치아노 일행과 작별 인사를 나눈 루키우스는 군타를 따라 히포 레기우스로 향했다.


*****


반달 왕국의 수도 히포 레기우스.


수에비 왕국과 마찬가지로 여기의 총독궁은 어느새 반달 왕국의 왕궁이 된 지 오래다.


루키우스는 군타의 안내를 따라 이곳 왕궁 안으로 들어갔고, 곧 집무실에서 가이세리크를 대면했다.


“오랜만에 얼굴을 보는군.”


5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가이세리크의 위엄은 여전했다.


루키우스는 가이세리크에게 싱긋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그나저나 절 대신할 사위 후보는 찾으셨습니까?”


“여전히 맹랑한 녀석이야. 뭐 한 사람은 만나봤는데. 달리아와 결혼시키기엔 너무 나이가 많은 사람이었지.”


“그 말은 절 위협할 사위 후보는 없다는 소리군요.”


“네놈이 이겼다. 루키우스 폼페이우스 스트라보. 한 가지만 더 묻지. 혹시 나 말고 결혼 약속을 잡은 집안이 따로 있나?”


“제안은 많았지만···.”


“많았지만?”


“제가 다 거부했습니다. 폐하께서 약속을 깨지 않는 한 저 역시 약속을 깰 생각은 추호도 없었으니까요. 계약은 확실히 지켜야 하지 않겠습니까?”


루키우스의 대답에 가이세리크는 흡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 벌어질 일에 저놈이 당황하는 걸 지켜볼 수 있겠군.’


루키우스를 골릴 수 있다는 생각에 즐거웠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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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46

  • 작성자
    Lv.72 血天狂魔
    작성일
    24.09.08 11:52
    No. 31

    따흐흐흑 여동생이면 잼인데 아쉬우우웁!

    찬성: 1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82 볼트맨형님
    작성일
    24.09.08 12:14
    No. 32

    흑흑. 그래도 여성 캐릭터는 등장하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찬성: 1 | 반대: 0

  • 작성자
    Lv.80 ly******..
    작성일
    24.09.08 12:14
    No. 33

    잘보고갑니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82 볼트맨형님
    작성일
    24.09.08 12:15
    No. 34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80 ly******..
    작성일
    24.09.08 12:15
    No. 35

    잘보고갑니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82 볼트맨형님
    작성일
    24.09.08 12:29
    No. 36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36 초아재
    작성일
    24.09.08 18:39
    No. 37

    어제 5세기 기후에 대해서 작가님 물음에 답신합니다.
    로마 말기에 시작된 기후변화는 수세기동안 지속되며 6세기초에는 지구전체에 심각한 수준의 한랭기가 찾아옵니다.

    6세기 동로마 기록에 따르면 530~540년대에는 햇볕이 몹시 흐려서 계절의 변동을 느낄수 없을 정도였으며 밀값이 그야말로 금값일 정도로 폭등했습니다.
    안그래도 유럽전역이 대륙성 기후로 변한 상황에서 이 한럥화는 고대 로마문명에 마지막 타격을 날려버렸지요.

    이 6세기 초 한랭화는 아이슬란드 혹은 자바 지역 화산의 대분출과 연관이 있다고 합니다.
    이 참혹한 겨울의 시대는 8~9세기 중세 온난화가 시작되면서 종식됩니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82 볼트맨형님
    작성일
    24.09.08 19:12
    No. 38

    답변 감사드립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36 초아재
    작성일
    24.09.08 18:40
    No. 39

    결론적으로 주인공은 앞으로 한랭기에 대비해야 한다는...

    찬성: 1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82 볼트맨형님
    작성일
    24.09.08 19:13
    No. 40

    루키우스 : 어차피 내가 아는 4윤작법도 17세기 소빙하기 시대 때 사용 가능하던 거 아님? ㅋㅋ 개꿀.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8 돌리라
    작성일
    24.09.08 21:14
    No. 41

    뭐지? 약혼녀가 정변한건가?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82 볼트맨형님
    작성일
    24.09.08 21:19
    No. 42

    그 부분은 다음 편을 보시면 알게 될 것입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Personacon 양마루
    작성일
    24.09.08 23:17
    No. 43
  • 답글
    작성자
    Lv.82 볼트맨형님
    작성일
    24.09.08 23:25
    No. 44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1 n2******..
    작성일
    24.09.11 12:43
    No. 45

    폰티펙스 막시무스는 최고 제사장을 의미합니다. 카이사르와 아우구스트스가 획득한 이래로 대대로 로마황제가 쓰던 직위 중 하나가 되었으나 379년, 그라티아누스 황제가 이교 관습을 모조리 타파하겠다고 결심하고 폰티펙스 막시무스 직책에서 물러났죠. 그 후 380년 2월 27일 서방 황제 그라티아누스와 동방 황제 테오도시우스 1세가 공동으로 반포한 테살로니카 칙령에서는 로마 주교 다마소 1세와 알렉산드리아 주교 베드로를 '폰티펙스'라고 칭했고 이후 황제들은 로마 다신교와 깊은 관련성이 있는 폰티펙스 막시무스 대신 폰티펙스 인클리투스(pontifex inclytus: 고귀한 사제)를 사용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후 폰티펙스 막시무스는 사실상 교황의 칭호가 됩니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82 볼트맨형님
    작성일
    24.09.11 12:53
    No. 46

    맞는 말씀입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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