폼페이우스가 멸망하는 로마를 집어삼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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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트맨형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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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25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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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6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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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8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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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편. 그녀와 재회하다.

DUMMY

루키우스와 가이세리크가 집무실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하녀와 하인들이 부리나케 움직이며 루키우스와 가이세리크 앞에 음식을 내려놓는다.


둘은 입안에 하나 씩 음식을 집어넣으며 배를 채워나갔다.


루키우스는 포도주를 마시다 문득 느껴지는 단맛에 퉥 뱉어버린다.


“벌써 배가 찼나? 신성한 주님의 피를 뱉다니.”


“단맛이 들어가서 그만···. 혹시 연당을 썼습니까?”


루키우스가 눈살을 찌푸리며 포도주를 바라보자 가이세리크는 의아한 얼굴을 짓는다.


“쓰긴 썼는데, 왜 그게 마음에 안 드나?”


“전 연당을 독극물이라고 생각해서 그렇습니다.”


“연당이 독극물이라? 그거 처음 듣는 소리군. 이렇게 맛 좋은 게 독극물이라니.”


“일반적인 독처럼 사람을 금방 죽이진 않습니다. 그 대신 사람을 오랫동안 약하게 또 병들게 만드는 독이지요.”


“흐음···. 하지만 단맛 없는 포도주는 좀 맛이 안 나는데.”


가이세리크는 아쉽다는 듯 포도주를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루키우스의 말이 사실인가 조금 의심스럽긴 하지만 저렇게 사리는 걸 보면 그래도 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자네 여기에 오기 전에 로마에서 지냈다고 들었는데, 무슨 일로 그곳을 찾았나?”


“티치아노 주교님과 오로시우스 사제님의 일을 도왔을 뿐입니다.”


“일을 도왔다?”


“지금까지 연구한 걸 교회에 발표했을 뿐입니다. 전 그걸 보조했고요.”


“군타에게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거의 공의회를 여는 수준이라고 했는데. 도대체 무슨 발표를 했기에 그런 분위기가 만들어졌는지 궁금하군.”


루키우스는 그 말에 어깨를 들썩이며 대답했다.


“성직자들에게 크나큰 충격을 안겨다 준 내용입니다. 일단 한 가지를 말씀드리면 주님께서 창조하신 만물의 법칙을 보다 더 쉽고 정교하게 체계화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말만 들어도 머리가 아파 오는군.”


“자세한 내용은 이 책에 담겨져 있습니다. 심심하면 한번 살펴보십시오.”


루키우스는 책 두 개를 가이세리크에게 건넸다.


가이세리크는 책 중 하나를 펼쳤고, 내용을 보자마자 어지러웠는지 얼른 책을 덮어버렸다.


참 알기 쉬운 사람이었다.


“그나저나 책을 이렇게 쉽게 접하다니. 이런 건 생각조차 하지 못했는데 말이지.”


“예전처럼 일일이 책 하나를 붙들고, 필사할 필요가 없어졌으니까요.”


“인쇄기란 도구로 내용을 한번에 담아낸다고 들었다. 그것도 네 손으로 만든 물건이겠지?”


“예. 교회에 빚을 팍팍 안기려고 그랬습니다. 애초에 책을 만드는 일은 교회가 주관하지 않습니까? 전 그곳에 파피루스를 팔아치워 돈을 벌고요.”


루키우스는 씩 웃으며 그런 대답을 내놓았고, 그걸 본 가이세리크도 씩 웃었다.


“덕분에 나 역시 많은 돈을 벌었지. 다만 한 가지 아쉬운 게 있다면···.”


가이세리크는 욕망어린 눈빛으로 루키우스를 바라보며 말을 잇는다.


“우리가 그 파피루스를 만들지 못한다는 거지. 우리도 이득을 얻긴 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우린 그저 심부름꾼에 불과해. 안 그런가?”


“흐음···.”


“타라코에 부가 쌓이고 있어. 모든 사람들이 그 부에 침을 꿀꺽 꿀꺽 삼키고 있지. 내 귀에 타라코의 번영이 들어갈 때마다 지금이라도 타라코를 약탈하고 싶다는 유혹에 빠지네.”


가이세리크는 지금까지 숨겨왔던 본심을 털었지만 루키우스의 얼굴은 바뀌지 않는다.


실망도 배신당했다는 분노와 절망도 없었다.


오히려 ‘네가 그럼 그렇지.’ 라는 얼굴로 가이세리크를 바라볼 뿐이었다.


마치 이런 반응을 이미 예상한 것처럼.


“쩝. 네 얼굴을 보니, 재미없군.”


“그럼 재미있게 만들어드리죠.”


루키우스는 싱긋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날 재미있게 만든다라? 좋아. 어디 해봐.”


“아무 것도 가지지 못한 사람에겐 보물은 인생을 뒤바꿀 기회이지만 동시에 죽음을 재촉하는 물건이지요.”


“죽음을 재촉한다? 아. 다른 놈이 그 보물을 빼앗으려는 한다는 소리군. 그래서?”


“시간이 갈수록 파피루스의 수요는 늘어나고 있습니다. 폐하께서 아이귑토스에서 생산되는 파피루스를 틀어막았기에 그렇죠.”


“이 빌어먹을 놈이 그걸 내 탓으로 돌리나?”


“하하. 그 덕분에 우리는 많은 돈을 벌 수 있었죠. 그리고 앞으로 이 돈을 더 많이 벌기 위해 그만큼 파피루스를 더 많이 생산해야 한다고 봅니다.”


가이세리크는 그 말에 눈을 반짝였고, 루키우스는 그의 기대감을 충족시켜줬다.


“혹시 ‘푸블리카니’ 라고 들어보셨습니까?”


“푸블리카니? 그건 또 뭔가?”


그 물음에 루키우스는 가이세리크에게 천천히 푸블리카니의 개념을 들려줬다.


“그러니까 그건 사업체란 소리잖아.”


“일반적인 사업체는 개인 소유입니다. 제 집안이 대장간과 파피루스 공장을 온전히 소유해 돈을 버는 것처럼 말이죠.”


“그럼 그 파피루스 공장을···.”


“예. 푸블리카니로 바꿀 생각입니다. 파르테스를 발행해 돈을 끌어모을 것이고, 급증한 파피루스의 수요에 걸 맞춰 공급을 대폭 확장시킬 생각입니다.”


그 대답에 가이세리크는 루키우스를 빤히 쳐다보다 이내 무언가를 깨달았는지 피식 웃음을 지었다.


“크크. 내 욕망을 이런 식으로 해결하겠다?”


“폐하께서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이제 심부름꾼 노릇은 지겹다고, 그래서 파피루스를 직접 만들어서 팔고 싶다고. 그럼 그쪽도 파피루스를 만들면 해결되는 문제가 아닙니까?”


“자네가 앞서 설명한 푸블리카니와 파르테스를 통해서 말이지. 그 말은 내가 파르테스를 더 많이 보유한다면 이득도 나에게 더 많이 돌아간다는 소리가 아닌가?”


“예. 그렇죠. 다만 전부를 인수하는 건 곤란합니다. 공주님도 수입원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 이걸로 네 약혼까지 엮겠다?”


가이세리크는 기가 막히다는 얼굴로 루키우스를 바라봤다.


루키우스가 이런 식으로 이중 삼중 안전 장치를 구상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루키우스는 자신에게 푸블리카니와 파르테스로 이익을 나눴고, 결혼을 통해 더는 욕심을 부릴 명분을 없앴다.


지분에 더 욕심을 부리면 딸의 재산을 빼앗는 놈으로 자신의 평판이 밑바닥으로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절묘한 수였다.


결국 가이세리크에게 남은 수단은.


‘파피루스를 더 많이 만들어 파는 것밖에 없나?’


시장을 한층 더 키우는 것밖에 없었다.


가이세리크는 턱을 집으며 루키우스를 바라봤다.


‘이 영악한 녀석 같으니.’


이래서 저 놈을 처음 보자마자 붙잡으라는 직감이 괜히 떠오른 게 아닌가 싶었다.


“그리고 폐하께 기회를 하나 더 드리죠.”


“기회?”


루키우스는 포도주를 든 유리잔을 집더니 서서히 입을 열었다.


“꿀보다 그리고 이런 연당보다 더 달콤하고, 몸에 무리가 없는 물질을 아십니까?”


“그런 꿈 같은 물질이 있기는 한가?”


“수백년 전, 페르시아를 정복한 알렉산드리아 대왕은 이번엔 인도를 정복하겠다고 마음을 먹었죠. 그리고 인도를 가는 도중에 한 물질을 찾게 됩니다.”


“그 물질이라는 게?”


“설탕이라 불리는 물질이지요. 그걸 본 사람들은 나무에서 꿀이 나온다고 했습니다.”


“그게 왜 나에게 기회가 된다는 소리지?”


마치 그 물음을 기다렸다는 듯 루키우스는 씩 웃으며 대답했다.


“이 빌어먹을 연당을 설탕으로 대체한다면 얼마나 많은 돈이 벌릴까요?”


“······.”


“사람이 달콤함을 바라는 욕망은 활화산이나 다름없습니다. 제가 암만 연당이 좋지 않다고 떠들어봤자 연당의 달콤함에 취한 사람들은 제 말을 무시하겠죠.”


“크흠···.”


루키우스가 가면 연당이 든 포도주를 마시려 했던 가이세리크는 속내가 들킨 게 부끄러웠는지 루키우스의 시선을 은근슬쩍 피했다.


“저 역시 입 아프게 연당을 먹지 말라고 떠들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오히려 이럴 때일수록 기회를 찾아야죠. 안 그렇습니까?”


“뭐 좋아. 다 좋은데, 인도까지 어떻게 가지? 콘스탄티노폴리스의 황제가 우리의 항행을 허락할 지가 의문이고, 또 아이귑토스에서도 우릴 통과시킬 지도 의문인데.”


가이세리크의 우려에 루키우스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폐하께서 잘 하는 게 하나 있지 않습니까?”


“잘 하는 거?”


“위협입니다.”


그 단어를 듣는 순간 가이세리크는 히죽 웃음을 지었다.


“그들이 우리의 요구를 거부하면 약탈할 명분이 생기는 군. 하하. 이 빌어먹을 새끼가.”


“예비 사위에게 욕을 하는 건 좀 그렇지 않습니까?”


“흥. 내가 이런 사람이라는 건 자네가 더 잘 알 텐데?”


루키우스와 가이세리크는 폭소를 터뜨렸다.


*****


가이세리크의 개인 방이자 침실.


가이세리크는 의자에 앉으며 한 사람을 기다렸다.


-똑! 똑! 똑!-


“아버님. 후네리크입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들어와라.”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문이 열리고, 건장한 소년 하나가 이 방안으로 들어온다.


바로 가이세리크의 아들이자 후계자인 ‘후네리크’였다.


“내 앞에 앉아라.”


“예. 아버지.”


후네리크는 조심스럽게 가이세리크 앞에 앉았다.


“너도 귀가 있다면 알고 있을 거다. 난 너를 로마에 보낼 생각이다.”


“절 로마에 보낸다고요?”


“로마를 안심시키려면 어쩔 수가 없거든.”


그 말에 후네리크는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아버지의 뜻은 잘 알겠습니다. 오히려 잘 됐군요. 아버지의 뒤를 이어 이 나라를 다스리려면 로마에 유학을 갈 필요가 있었는데 말이죠.”


본래 로마 제국은 국경 바깥의 야만 부족들에게 유학의 기회를 널리 베풀었다.


목적이야 당연히 야만 부족의 지배 계층을 로마 문화에 동화시켜 친로마 감정을 불러일으키려는 것이다.


반대로 야만 부족의 지배 계층도 로마의 이런 권유를 마다하지 않았다.


선진국의 앞선 학문과 문물을 접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기 때문이다.


훗날 동고트 왕국을 세운 테오도리크 대왕(서고트 왕국의 테오도리크와 다른 사람이다.)도 어린 시절에 동로마의 수도 콘스탄티노폴리스에 유학을 가 그곳에서 학문을 배워 왕국 운영에 써먹었으니.


어찌 보면 후네리크의 반응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 그곳에서 열심히 공부해 내 뒤를 이을 사람이라는 걸 증명하도록 해라.”


“증명···. 그 단어를 생각하니까 문득 아버지가 사위로 들이겠다는 녀석이 생각나네요.”


“폼페이우스 그 녀석 말인가?”


“예. 아버지는 그 녀석을 대할 때마다 즐거워했으니까요.”


그 말에 가이세리크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유달리 아부를 잘 하는 녀석이지. 그놈이 내 휘하에 있었다면···. 아마 난 그놈을 죽였을 지도 모른다.”


“예?”


후네리크는 당황한 얼굴로 가이세리크를 바라보자 가이세리크는 쓴 웃음을 지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왕의 기분을 잘 맞추는 사람이라면 왕을 꾀어 제 이득을 탐하기 마련이지. 그러면 그 왕이 다스리는 나라는 어떻게 되겠나?”


“나라가 망가지겠죠.”


“그래. 맞아. 나라에 해가 되는 사람이야. 그러니 너 역시 그런 자를 경계해야 한다. 아니면 그런 자를 완벽하게 조종해 나라에 보탬이 되게 만들던가.”


가이세리크의 조언에 후네리크는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남의 이익을 잘 헤아려 자신의 이익으로 만드는 데 능한 녀석이다. 그런 녀석을 붙잡을 자신이 없다면 최소한 남의 밑에 들어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아버지께선 제 여동생으로 하여금 그 녀석을 붙잡으려고 했군요.”


“그래. 그 녀석은 오히려 그걸 기회로 삼았지. 참 영악한 녀석이야.”


말은 그렇게 했지만 차마 감정을 속일 수 없는지 가이세리크의 입가가 위로 올라갔다.


“그러니 명심해라. 아들아. 이 아버지보다 살 날이 더 많은 너로선 분명 저 폼페이우스와 같은 사람을 만나게 될 거다. 그 사람을 휘어잡을 수 있다면 반드시 휘하에 넣고···.”


“잡을 수 없다면 남에게 보탬이 되지 않도록 죽이란 소리군요.”


“흐하하. 맞다. 그게 이 험난한 세상에서 살아남는 법이니까.”


후네리크의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가이세리크는 흡족한 표정으로 후네리크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저도 이제 성인입니다. 아버지.”


“미안하지만 내 눈엔 아직 아이로 보이는구나.”


후네리크는 그 말에 졌다는 듯 툴툴거리며 가이세리크의 애정을 받았다.


*****


다음날이 되자.


루키우스는 숙소에서 한 여자를 만날 수 있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루키우스의 인사에 여자는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어릴 때, 우리 한번 만난 적이 있었죠?”


“예. 그때는 우리 둘 다 어렸던 시절인 지라···.”


“글쎄요. 그때에 당신은 그리 어리지 않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상당히 어른스러워요.”


“흠흠···. 그렇습니까?”


“솔직히 제 오빠랑 같은 나이인 게 믿기지 않아요. 당신을 볼 때마다 제 아버지가 떠오르거든요.”


가이세리크의 딸이자 루키우스의 약혼녀 달리아가 한층 성숙한 모습으로 루키우스를 대했다.


‘이거 나보고 아저씨 같다고 까는 건가?’


어찌 보면 달리아의 말은 루키우스의 본질을 꿰뚫는 측면이 있었다.


루키우스의 현재 나이와 전생의 나이를 합산한다면 가이세리크보다 조금 적은 수준에 불과했으니 말이다.


루키우스가 달리아를 제 짝으로 맞이하는 것 자체가 양심 없는 일이었다.


‘그나저나 전생에도 딱히 여자는 안 사귀어봤는데.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지?’


루키우스는 달리아를 어떻게 대해야 할 지 난감했다.


이미 그녀와 정략 결혼을 할 예정이지만 그렇다고 일반적인 로마인 상류층처럼 서로 애인을 찾고 싶진 않다.


“저 혹시 뭘 좋아하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제가 좋아하는 거요?”


“예. 혹시 이런 건 좋아하나요?”


그때, 루키우스는 서랍을 열어 자신의 물건을 하나 꺼냈다.


-째깍 째깍!-


바로 자신이 직접 만든 회중 시계였다.


“어머···. 이건 뭔가요?”


달리아는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회중 시계의 여기저기를 관찰했다.


“들고 다닐 수 있는 시계입니다.”


“들고 다닐 수 있는 시계요? 그러니까 시간을 알 수 있는 물건이란 건가요?”


“예.”


“혹시 시간은 어떻게 알 수 있나요? 가르쳐 주시면 안 될까요?”


달리아의 호기심에 루키우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히 좋아하네. 처음 보는 물건이라서 그런 건가?’


루키우스는 그렇게 생각하며 달리아에게 회중 시계의 사용법을 차근차근 알려줬다.


“하루를 24시간으로 나누고, 그 1시간을 60분으로 나누고, 다시 그 1분을 60초로 나눈다는 소리인가요?”


“점성가들이 그렇게 시간을 확인하죠.”


“어머. 그래요? 그럼 이것만 있다면 바로 시간을 알 수 있겠네요?”


“예. 바로 알 수 있죠. 지금이 딱 9시 22분 17초네요.”


루키우스의 답변에 달리아는 다시 한번 회중 시계를 살펴봤고.


“아하. 이렇게 보는 거구나. 그나저나 이건 딱히 손을 대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돌아가네요? 참 신기해요. 마치 주님이 기적을 행사하는 것처럼···.”


“주님의 기적에 비하면 하찮기 그지 없는 물건입니다. 한 인간이 보잘것 없는 능력으로 이뤄낸 결과물이라고 생각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게 인간의 보잘것 없는 능력으로 이뤄낸 결과물이라고요?”


달리아는 그게 더 놀랍다는 얼굴로 루키우스를 바라봤다.


“저 혹시 이런 걸 만든 사람을 저에게 살짝 알려드리면 안 될까요? 저도 이런 거 하나 가지고 싶은데···.”


누가 가이세리크의 딸이 아니랄까봐 달리아는 루키우스의 시계를 탐냈지만.


루키우스의 눈엔 그녀의 그런 모습이 귀엽게 보였다.


“그거라면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거 제가 만들었거든요.”


“예? 그러니까 이걸 만든 사람이···.”


달리아는 믿지 못했는지 회중 시계와 루키우스를 번갈아 바라본다.


“정 원하시면 당신을 위한 회중 시계를 만들어드리죠. 어떻습니까?”


“······.”


달리아는 이런 제안을 받은 게 처음인지 뺨을 붉게 물들며 루키우스를 쳐다봤다.


“정말로 만들 수 있나요?”


“그럼요. 얼마든지···.”


그 순간 한 사람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바로 가이세리크의 아들이자 달리아의 친오빠인 ‘후네리크’였다.


“아버님이 널 찾으신다.”


“그렇습니까? 달리아님. 미안하지만 일단 폐하의 부름부터 먼저 해결해야겠군요.”


“그런가요···? 알겠어요.”


달리아는 시무룩한 얼굴로 그렇게 말하며 루키우스를 떠나보냈다.


그렇게 방안에 후네리크와 달리아만 남게 되자.


“이 빌어먹을 오빠가! 왜 하필 이때 나타나서 이 좋은 분위기를 망치는 거야?!”


“뭔 개소리야? 네가 분위기를 탄다고?”


후네리크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달리아에게 대꾸했다.


“저 녀석도 참 불쌍해. 너 같은 녀석이랑 맺어진다니.”


“그 입 닥쳐라. 아가리 찢어버린다.”


“말 험하게 하는 거 봐라. 저 녀석도 네 진짜 모습을 봐야 하는데 말이야.”


“오빠니까 그런 소리를 하는 거야. 저 사람에겐 오빠에게 없는 순수함과 다정함이 있거든.”


“그러니까 저 녀석이 불쌍하다고 말하는 거다.”


후네리크의 대답에 달리아는 열이 받았는지 주위에 있는 방석을 집고는 후네리크에게 집어던졌다.


*****


한편, 가이세리크의 부름을 받고 방안으로 들어온 루키우스는 놀라운 광경을 볼 수 있었다.


가이세리크는 의자에 앉아서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어라. 너는···.”


루키우스는 이미 그 누군가와 알고 있는 사이였기 때문이다.


‘아니 형이 거기서 왜 나와?!’


그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다 혼신의 힘으로 도로 집어넣었다.


“설마 폐하께서 말씀드린 사람이?”


“그래. 내가 로마에 호의적이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 내 아들을 로마 본토에 인질로 보냄과 동시에 내 딸 역시 로마인과 맺을 예정이라네. 저 아이가 바로 내 사위인 셈이지.”


“사위라니···. 도대체 언제부터···.”


그 사내는 당황한 얼굴로 가이세리크와 루키우스를 번갈아가며 물었고.


“저 녀석을 안지 대략 5년 정도 됐나? 그때부터 사위 후보로 뽑았지. 크크크. 인사해라. 저쪽은 아에티우스의 사절인 아비투스라는 사람이다.”


아에티우스의 부관 아비투스가 당황한 얼굴로 루키우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저번에 한번 만났는데, 이 자리에서 만나게 되네. 그것보다 몸집이···.”


“예. 더 자라났지요. 그것보다 그쪽은 잘 지내고 있습니까?”


“어···. 으음···. 그래. 잘 지내고 있지.”


아비투스는 이 자리에서 루키우스를 만난 것 자체가 예상하지 못한 반응이었다.


루키우스 또한 이 자리에서 아비투스를 만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크크. 저 녀석이 당황하는 얼굴을 이 자리에서 보게 되다니.’


가이세리크는 루키우스의 당황한 얼굴이 보기 좋았는지 싱글벙글 미소를 지었다.


깜짝 파티는 성공적이었다.


작가의말

아에티우스가 가이세리크에게 보낸 사절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여기선 아비투스를 사절로 결정했습니다.


이 사람은 서고트 부족과 협상을 능숙하게 진행한 사람인 만큼 아에티우스에게 있어 외교통이나 다름없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이 글을 읽어주신 모든 분들은 복받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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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38

  • 작성자
    Lv.46 노스아스터
    작성일
    24.09.09 07:55
    No. 31

    제가 쓴거에서 오타가 있어서 적습니다. 정복민->피정복민
    기존의 반달인과 알란인 전사와 그들의 가족 외에 도나투스파를 믿는 이들과(아리우스 파인 가이세리크를 반긴 이들이다)
    삼위일체파인 로마인도 새로운 백성과 신하로 받아들이게 되었으니,기존과는 다른 통치를 해야해서요.
    말위에서 내려서(비유적 표현) 전사-왕의 모습만 있었던건 변해야 했으니까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82 볼트맨형님
    작성일
    24.09.09 08:31
    No. 32

    댓글을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80 ly******..
    작성일
    24.09.09 10:13
    No. 33

    잘보고갑니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82 볼트맨형님
    작성일
    24.09.09 10:16
    No. 34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35 시즈사마
    작성일
    24.09.09 20:25
    No. 35

    해적질로 하나된 고부
    해적질로 하나된 서고트와 반달
    을 구경할 듯

    찬성: 1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82 볼트맨형님
    작성일
    24.09.09 20:34
    No. 36

    ㅎㅎㅎㅎ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1 n2******..
    작성일
    24.09.11 17:28
    No. 37

    달리아가 호전적인 본색을 숨키고 있더라도 어차피 호전적인 고트족 엄마를 보고 자란 루키우스 입장서는 새삼이랄까

    찬성: 1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82 볼트맨형님
    작성일
    24.09.11 17:29
    No. 38

    달리아의 본색을 본 루키우스 : 저 정도면 활달한 편이네.

    힐데아를 본 달리아 : 저 사람이 내 시어머니...?

    찬성: 1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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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56편. 잠깐의 휴식, 드디어 마주 보다. NEW +34 13시간 전 1,241 99 18쪽
55 55편. 본격적인 무대로 나아가기로 했다. +54 24.09.15 2,050 128 20쪽
54 54편. 루키우스가 베풀어 주는 은혜. +56 24.09.14 2,332 160 19쪽
53 53편. 약탈할 때 좋았지? 너희도 그대로 당해봐. +40 24.09.13 2,470 161 17쪽
52 52편. 약탈단 퇴치와 거대한 특권. +28 24.09.12 2,572 167 18쪽
51 51편. 약탈 부대를 싹 때려잡을 비법. +32 24.09.11 2,715 165 18쪽
50 50편. 루키우스, 세상으로 나아가다. +64 24.09.10 2,856 217 20쪽
49 49편. 왜 너네 부대만 사정이 좋음? +56 24.09.09 2,990 172 20쪽
» 48편. 그녀와 재회하다. +38 24.09.08 3,013 156 19쪽
47 47편.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한 줄기의 빛. +46 24.09.07 3,069 179 19쪽
46 46편. 입 벌려. 과학 혁명 들어간다. +48 24.09.06 3,123 159 21쪽
45 45편. 서기 435년, 루키우스의 나이 15세. +36 24.09.05 3,293 179 19쪽
44 44편. 그들의 꿈은 루키우스의 꿈이 되었다. +54 24.09.04 3,313 183 20쪽
43 43편. 드디어 용광로를 쓸 때가 왔다. +50 24.09.03 3,375 205 18쪽
42 42편. 콜로나투스가 불태워지는 걸 보고 싶나? +56 24.09.02 3,500 222 18쪽
41 41편. 당신은 꼭두각시처럼 조종당했습니다. +76 24.09.01 3,612 244 19쪽
40 40편. 망원경 통신 체계와 추종자. +54 24.08.31 3,617 184 19쪽
39 39편. 보다 더 멀리 보다. +24 24.08.30 3,765 185 20쪽
38 38편. 환호와 유리, 그리고 보상. +34 24.08.29 3,971 183 18쪽
37 37편. 희망의 등불. +32 24.08.28 4,041 200 18쪽
36 36편. 로마 인빅타. (무너지지 않는 로마) +38 24.08.27 4,200 221 18쪽
35 35편. 루키우스가 미쳐 날뛰고 있습니다. +38 24.08.26 4,018 209 18쪽
34 34편. 싸울 마음을 품게 하는 방법. +32 24.08.25 3,959 188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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