폼페이우스가 멸망하는 로마를 집어삼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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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트맨형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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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25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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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6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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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6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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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편. 입 벌려. 과학 혁명 들어간다.

DUMMY

-째깍! 째깍!-


시계에 귀를 가까이 대니 이런 소리가 들린다.


참으로 신기한 소리였다.


퀸투스는 회중시계를 연신 관찰하다 루키우스에게 시선을 돌렸다.


“결국 해냈구나.”


“후우···. 몇 년씩이나 걸린 작업이었죠.”


“그만큼 만들기 어려운 물건이겠지. 또 그렇기에 이처럼 유용한 것이고.”


“아버지. 저도 좀 주십시오.”


“그래. 너도 보거라.”


푸블리우스의 칭얼거림에 퀸투스는 그에게 회중시계를 건넸다.


푸블리우스는 마치 처음 보는 장난감처럼 회중시계를 관찰하며 소감을 말했다.


“이렇게 시간을 바로 확인할 수 있는 물건이라니. 세상 사람들이 보면 아주 깜짝 놀라겠습니다.”


“깜짝 놀랄 것까지야. 어차피 사람들은 해시계로 시간을 가늠하잖아.”


“해시계를 해석하는 것도 일이야. 이 자식아. 반면 이건 언제 어디서든 즉각 시간을 확인할 수 있잖아. 거기다 밤에도 시간을 확인할 수 있고.”


“뭐 그런 장점도 가지고 있지.”


루키우스는 그 말에 어깨를 으쓱거리며 대답했다.


“그런데 이건 어떻게 양산할 생각이냐? 네가 만들어둔 자료를 보니까 보통 손재주로는 이런 걸 만들 수 없을 것 같은데.”


“손재주 넘치는 녀석들을 따로 모아서 키워야지.”


“키운다고? 하기야 그 수밖에 없겠네.”


푸블리우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루키우스의 방안을 납득했다.


이 회중시계를 내놓는 건 루키우스가 최초였고, 다른 장인들은 이런 물건을 생각조차 하지 못했기에 어쩔 수 없었다.


루키우스가 평생 시계 장인으로 살면 모를까?


그에게 할 일은 많았기에 시계 만들 시간이 모자랐다.


뭐 취미 생활로 몇 개 만들면 몰라도 본격적인 생산을 하려면 루키우스의 방법대로 따로 제자를 양성해 그들로 하여금 생산 체계를 구축할 수밖에 없었다.


“하. 그것보다 너 예전보다 몸집이 많이 커졌다? 헤라클레스라도 되려고 하냐?”


푸블리우스는 루키우스의 체형을 보고, 그렇게 말했다.


4년 전에도 이미 체격 면에서 어른으로 취급하곤 했었는데, 지금은 그저.


‘어우. 몸집 봐라. 이게 사람 몸집인가? 게르만인조차 저렇게 안 클 걸? 아니 그것보다 나랑 같은 피를 이어받았는데, 왜 이렇게 차이가 나는 거지?’


푸블리우스는 자신의 몸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형과 달리 난 군인이 되려고 몸을 키웠을 뿐이야.”


“야. 결심을 한다고 몸이 키워지냐?”


“지금 형이 보고 있잖아.”


루키우스는 으쓱대며 자신의 몸을 자랑했다.


로마인들 중에서 루키우스보다 더 큰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아니 로마인보다 체격이 큰 게르만인들도 루키우스를 본다면 ‘이게 나랑 같은 사람인가?’ 이라는 의문을 품으리라.


“하아. 됐다. 그나저나 이 시계는 네가 가질 생각이야?”


푸블리우스는 이 회중시계가 탐이 났는지 루키우스에게 이런 말을 내뱉었고.


“뭔 개소리야? 당연히 아버지부터 먼저 드려야지. 형님은 좀 기다리라고.”


루키우스의 대답에 푸블리우스는 시무룩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퀸투스는 이런 장남의 모습에 피식 미소를 지으며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네가 이것에 혹한 모습을 보이다니, 그만큼 이게 갖고 싶은 거냐?”


그 물음에 푸블리우스는 사뭇 기대가 된다는 얼굴로 퀸투스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온갖 사치와 향락에도 지겨움을 느끼던 귀족들조차 이걸 보면 당장이라도 돈주머니를 들고, 이걸 달라고 울부짖지 않을까요?”


푸블리우스는 그렇게 말하며 탐욕스러운 시선으로 회중시계를 바라봤다.


마치 ‘마이 프레셔스!’ 라고 외치며 절대 반지를 탐내는 골룸이 떠오르는 건 왜일까?


퀸투스는 그런 푸블리우스를 이해할 수 있었다.


‘유용한 건 둘째치고, 그만큼 멋진 물건이니까.’


아마 멋에 돈을 투자하는 사람들이 이걸 봤다면 전 재산을 바쳐도 모자람이 없을 것이다.


그만큼 루키우스가 만들어낸 회중시계는 자신이 봐도 어마어마한 멋을 가졌다.


‘후우···. 이 물건이야말로 진정 마귀가 유혹하는 물건이 아닐까? 이토록 강렬하게 소유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물건이라니. 내 아들이 아닌 다른 사람이 이 물건을 가졌다고 한다면···.’


어떻게든 뺏어서 가지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물건이었다.


그야말로 사람의 혼을 홀리는 위험천만한 물건이었다.


하지만 이건 다시 말해서.


‘우리에게 어마어마한 돈을 안겨다 줄 녀석이라는 거지. 또 우리가 잘 보여야 할 상대에게 선물하기 딱 좋은 물건이기도 하고.’


암만 자신에게 이를 가는 상대라고 해도 이거 하나만 보내주면 언제 그런 원한을 가졌냐는 듯 자신에게 친절하게 굴 것이다.


그 오만한 요안네스조차 이걸 받으면 자신에게 눈물을 흘리며 형님이라고 울부짖으며 고마워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니, 퀸투스의 양쪽 입가는 절로 올라갔다.


“그나저나 루키우스, 너 이번에 로마로 간다며?”


“그래. 군에 입대하면 로마를 찾을 여유가 없으니까 그 전에 가려고.”


“무슨 일로 로마에 가는 거야?”


“저번에 말했잖아. 티치아노 주교님과 오로시우스 사제님의 보조로 간다고.”


“아 맞다. 두 사람이 로마에 가서 발표할 게 있다고 했지.”


푸블리우스는 이제야 기억이 난다는 듯 박수를 짝 쳤다.


“그나저나 로마라···. 이 아비도 한번도 안 가본 곳인데.”


“그럼 저랑 같이 한번 가보실래요?”


“난 이 집안을 지켜야지. 그저 부러워서 하는 말이다.”


폼페이우스 집안의 형편이 아무리 좋아졌다고 해도 그는 타라코에서 주름잡는 집안이지 로마를 포함한 이탈리아의 귀족들에겐 시골 유지에 불과한 존재였다.


“로마에 갈 때, 그곳에서 파는 것이라도 사서 돌아와.”


“로마나 타라코나 거기서 거기일 텐데. 뭘 그래? 오히려 로마 쪽이 우리 타라코의 물건에 관심을 기울일 걸?”


“타라코의 물건? 아. 확실히 그러겠네. 그들에겐 안경조차 신세계일 테니까.”


푸블리우스는 웃음을 머금었다.


피우스의 유리 사업장은 시간이 갈수록 규모가 점점 커지고 있었다.


그만큼 그의 유리 제품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그렇다.


망원경과 안경은 사람들에게 신세계를 보여 주는 물건이었고, 타라코에서 돈을 만지는 사람들이라면 반드시 가지고 있어야 무시를 당하지 않는 그야말로 ‘잇템’ 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타라코와 불편한 사이를 유지하는 카이사르아우구스타의 사람들조차 타라코를 방문한다면 꼭 안경과 망원경을 살 만큼 두 물건의 수요는 어마어마했다.


어깨에 한껏 힘이 들어간 푸블리우스는 싱글벙글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촌놈이 아니라 그쪽이 촌놈이라니. 아버지. 이런 걸 예상해보셨습니까?”


“생각조차 하지 못했지. 이곳 타라코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살던 토박이 노인들조차 옛날의 타라코보다 지금의 타라코가 더 잘나가고 있다고 생각할 걸?”


“하하. 확실히 그러겠네요.”


“하여튼 루키우스···. 그곳에서도 네 진가를 보여 줄 거라 믿는다.”


그 말에 루키우스는 머리를 긁적이더니.


“아버지. 그곳에서의 주인공은 제가 아니라 두 분인데요?”


“아. 그렇지. 내 깜빡했구나.”


루키우스의 말대로 티치아노와 오로시우스는 자신들이 지금까지 연구한 자료들로 로마에 큰 충격을 안겨 줄 생각이었다.


*****


로마.


기원전 8세기에 세워져 지금까지 존재하는 고대의 거대 도시.


천 년 넘게 영화를 누리며 전 유럽의 사람들에게 가슴을 뛰게 만드는 도시.


이 로마는 상징이었다.


그것도 전 유럽을 대표한다는 상징.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왜 나왔겠는가?


로마는 유럽 세계의 중심이고, 핵심이다.


그 기나긴 세월만큼 뭇 사람들에게 눈이 번쩍 떠지고, 입이 떡 벌어지는 건물들이 즐비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고,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머무른다.


그 중 일단의 무리도 이곳 로마를 방문했다.


“여기가 로마···.”


타라코에서 태어나 자라났던 루키우스의 눈에 이 거대 도시의 전경을 바라봤다.


“자네는 여길 처음 찾는 거지?”


티치아노의 물음에 루키우스는 급히 고개를 끄덕였고, 그 모습을 본 티치아노는 피식 웃었다.


“이 때만큼은 촌놈처럼 구는군. 암만 타라코가 예전보다 대단해졌다고 하지만 로마에 비하면 아주 작은 도시에 불과하지.”


“부정할 수가 없네요.”


“그래도 이곳 로마는···.”


로마의 전경을 둘러보던 티치아노는 씁쓸한 얼굴을 지으며 대답했다.


“예전보다 몰락하고 있는 게 눈에 보여.”


“예?”


“저번 로마를 찾았을 때는 지금보다 더 활기가 찼었거든.”


“그렇습니까?”


티치아노 주교의 말대로 현재 로마는 급속도로 쇠락하고 있었다.


한때 100만 명을 자랑했던 거대 도시는 이제 50만이 조금 넘는 인구를 보유하고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갈수록 그 인구 수는 점점 줄어들 것이다.


티치아노 주교의 눈에 그것이 한번에 보였다.


자신이 부임한 타라코는 생기를 되찾으며 차츰 활기를 띄고 있는데 반해 이곳 로마는 병에 걸려 죽을 날만 기다리는 노인처럼 생기를 잃어가고 있었다.


그게 몹시 안타까웠다.


지금 저 로마의 거리를 지나가는 시민들에게도 당당함과 자부심이 느껴지기는커녕 불안함과 초조함이 느껴지고 있었다.


타라코와 정반대로 말이다.


“젠장. 오늘도 밀가루 가격이 오른 거야?”


“사기 싫으면 저리 꺼져. 어차피 너 말고 살 사람은 많으니까.”


“이런 악독한 새끼 같으니! 네 배만 불리면 다야?!”


“좆까고 있네. 내 배를 불려? 시발. 이것도 억지로 파는 거라고. 따질 거면 가이세리크에게 따져. 그놈 때문에 밀가루 가격이 얼마나 많이 올랐는지 아냐?”


항의하는 시민과 저리 꺼지라는 상인의 대화에서도 이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젠장. 이놈의 도시는 하루가 지날수록 살아가기가 벅차.”


“오늘도 교회를 찾아가야 하나?”


“옛날에 빵을 공짜로 받았다고 했는데, 나는 왜 이런 시기에 태어나선! 에이 빌어먹을!”


굳이 초능력을 사용할 필요 없이 루키우스의 귓가에 시민들의 불평불만이 바로 들린다.


‘난리도 아니네. 오히려 지금이 더 안정된 시기라니.’


루키우스는 그렇게 생각하며 티치아노 주교에게 물었다.


“그나저나 교회에서도 따로 아카데미를 여는지 몰랐습니다.”


“교회 운영이나 교리에 대한 건 공의회에서 세계의 모든 주교들이 한 자리에 모여 결정하지만 만물의 법칙은 그럴 필요가 없으니까.”


“4년 전에 에페수스에서 공의회가 열리지 않았습니까?”


“그때 참석하지 못했지. 자네도 그 사정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그 말에 루키우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는 루시타니아에서 수에비 족과 맞붙었으니까.’


그때를 떠올리니, 문득 스칼라비스에 정착한 켄소리우스의 부대가 생각났다.


‘그때 겨우 200명에 불과했던 부대가 지금은 무려 2000명 가까이 불었지.’


특히 티치아노가 보낸 농법과 농기구가 그 부대의 성장에 상당한 효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배는 더 늘어난 풍족한 식량은 주위에 굶주린 유랑민들을 끌어들이는 원동력이 됐고, 켄소리우스는 이들 중 강인한 자를 가려 뽑아 병사로 키워냈다.


‘거기다 휴경지에 이탈리안 라이그라스를 재배해서 건초를 만들어 내기까지 했지. 다만 4윤작 법이 이 좆같은 기후에 통하지 않으니 그게 참 아쉽네.’


지난 번 오로시우스와 함께 실험했던 4윤작법은 아쉽게도 실패로 돌아갔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지중해 연안의 여름은 우리 사람에겐 좋지만 농작물에겐 그만한 지옥이 따로 없지. 기온도 기온이지만 토양 독성이 아오···. 시발!’


지중해성 기후에서 여름은 기온이 높고, 건조하다.


건조하다는 소리는 비가 잘 내리지 않는다는 소리이고, 그 말은 곧 토양 염화가 잘 일어난다는 소리였다.


지중해성 기후에 4윤작법을 적용하려면 농지에 물을 뿌려 이 토양 염류를 없애야 했다.


하지만 그렇게 하려면 물이 많이 필요했기에 결국 다른 방법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찾은 식물이 바로 이탈리안 라이그라스였다.


현대에도 건초로 많이 쓰이는 이 작물은 땅속 깊이 뿌리를 내리며 영양분을 쭉쭉 빨아재낀다.


그 영양분 중엔 소금기도 있었다. 한 마디로 토양 염류를 없애기에 딱 좋은 작물이란 거다.


‘현대 온실에서도 토양 염류를 없애기 위해 재배하던 녀석이었지.’


이래서 농사 경험이 중요했다.


물론 그 경험이라는 게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면서 알아낸 결과물이라는 게 참 씁쓸했지만.


뭐 하여튼 켄소리우스의 부대는 이 농법을 통해 자신들이 그토록 바라던 경제적 기반을 세우는 데 성공했고, 식량 사정이 한결 나아지자 주변 유랑민들을 거두면서 군단을 확장시키고 있었다.


“히다티우스 주교에게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최근 루시타니아가 꽤 안정된 모양이더군.”


“우리가 일군 성과가 그쪽에 그대로 적용되었으니 말이죠.”


루키우스의 대답에 티치아노는 좋아 죽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우리가 일궈낸 성과가 결국 루시타니아를 구원한 것이 아니겠나? 이런 식으로 한 걸음 한 걸음 걷다 보면 언젠가 이 암울한 현실을 바꿀 수도 있을 거라고 믿네.”


“예. 주교님의 기도는 하느님이 꼭 들어주실 것입니다.”


그 말에 티치아노는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곧 얼마 지나지 않아 로마 대성당에서 보낸 사제들이 루키우스, 티치아노 일행을 맞이했다.


*****


숙소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루키우스, 티치아노, 오로시우스 외 여러 사람들은 로마 대성당에서 보낸 사람의 안내를 따라 걸어갔다.


그 사람 뒤를 따라가니, 루키우스는 목적지의 광경을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이게 그 베드로 대성당인가?’


르네상스 시기에 건설된 베드로 대성당과 달리 이 시기의 베드로 대성당은 전형적인 로마 양식의 건축물이었다.


주황색 지붕에 새하얀 벽, 그리고 각 기둥 사이에 위로 반원을 그리는 아치가 보였다.


‘저걸 짓는다고 무려 30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고 들었는데, 그만한 시간을 들일 법 했네.’


웅장하고, 또 거대했다.


로마 제국의 힘이 또 로마 제국에서 기독교가 차지하는 위상이 얼마만큼 확실히 보여 주는 건물이었다.


그렇기에 이 건물을 수호하는 경비병들이 눈을 부라리며 이곳에 접근하는 사람들을 막지만.


“아. 당신이 타라코의 티치아노 주교이군요. 환영합니다.”


티치아노 일행만큼은 따로 프리패스를 끊었는지 바로 통과시켜줬다.


그렇게 베르도 대성당 안으로 들어가는 루키우스는 곧 대성당 내부를 바라볼 수 있었는데.


‘고대 대성당은 다 이런 식이구나.’


호화스러운 장식품과 벽에 새긴 벽화를 보니 눈이 즐거웠다.


“안 따라오고 뭐하나?”


그 소리에 루키우스는 퍼뜩 정신을 차리고, 티치아노의 곁에 다가갔다.


“그나저나 발표는 여기서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그 점은 나도 의아하게 여기고 있네. 우리가 발표할 내용이 충격적이긴 하지만···. 이렇게까지 우릴 대우해 주는 건 이상하다고 생각해.”


“흠흠. 세상 사람들이 주교님을 알아봐 주시는 것 아니겠습니까?”


“뭐 그랬으면 좋겠지만. 난 교리를 수용하는 쪽이지 이바지하는 쪽은 아니라서 말이야. 솔직히 교회의 시각에서 본다면 난 이단아라고 할 수 있어.”


“이단아? 그 만물의 법칙을 파고드는 것도 이단아에 속합니까?”


“교리에 열성적인 사람이 본다면 충분히 이단아지. 안 그런가? 오로시우스 사제여.”


그 물음에 오로시우스 사제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런 식으로 대화를 주고 받으며 티치아노의 일행은 어느새 대성당 내부 정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발표대가 거기에 있었기 때문이다.


따사로운 햇빛이 그들의 머리를 내리쬘 때, 티치아노는 달마티카를 입은 수많은 주교와 사제들이 자리에 앉아 자신을 기다리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이게 무슨···.’


티치아노는 당황했다.


자신이 이렇게까지 주목받아 본 적은 일생에서 단 한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드디어 왔군. 소문의 주인공이···.”


“타라코의 성당에서 책을 찍어내고 있다고 하던데.”


“하기야 요즘 책값이 많이 싸졌지. 돈 좀 만지는 녀석들도 하나 둘 성서를 가지고 있을 정도이니까.”


그들은 티치아노를 보자마자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티치아노는 이들의 모습에 긴장이 됐는지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허나 그것도 잠시 티치아노는 결심을 했는지 발표대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자리에 앉은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티치아노에게 쏠렸지만 티치아노는 그런 것조차 감수하겠다는 듯 담담한 표정으로 정면을 마주했다.


“안녕하십니까? 형제들이여. 이번에 주님이 창조하신 만물의 법칙을 쉽게 알기 위한 방법을 소개해드리려고 이곳에 왔습니다. 루키우스. 수레를 여기에 끌고 오게.”


그 말에 루키우스는 그 즉시 티치아노의 말대로 수레를 끌고 왔다.


“수레에 담긴 책들을 저들에게 나눠주게.”


루키우스는 그 지시대로 수레에 쌓인 책들을 들고 와 이 자리에 앉은 사람들에게 하나씩 하나씩 나눠줬다.


“타라코에서 책을 찍어낸다는 말이 사실이었군.”


“허허. 이토록 정갈한 책을 다 보다니. 이것이 바로 주님의 기적이 아니겠나?”


이 자리에 앉은 사람들은 티치아노가 나눠 준 책을 바로 펼쳐보기 시작했다.


“책을 읽으면서 제 발표를 들어주십시오. 제가 소개할 내용은 바로 이 로마에 활기를 가져다 줄 새로운 수의 체계와 그 활용 방도에 대한 것입니다.”


“새로운 수?”


“책에도 처음 보는 글씨가 적혀 있는데. 이게 설마?”


자리에 앉은 사람들은 순식간에 떠들썩하기 시작했고, 티치아노는 그 모습에 미소를 지으며 자신이 준비한 내용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루키우스와 함께 공부하며 알아낸 아라비아 숫자와 그걸 활용한 방법들.


사칙연산, 자연수와 정수, 유리수와 무리수, 기하학, 방정식, 좌표, 로그와 지수의 관계, 통계, 확률, 미분과 적분, 삼각 함수.


그외 실생활에서 쓰일 법한 유용한 수학 공식들.


그야말로 인류가 근현대까지 쌓아온 수학적 지식들이 티치아노의 설명에 들어가 있었다.


성직자는 지식과 진리를 탐구하는 자.


그들은 티치아노가 전해 주는 수학적 지식에 깊게 빠져들기 시작하더니.


“이런 새로운 것들은 도대체! 이런 걸 어찌 한 사람이 생각할 수 있단 말인가?!”


“허···. 이럴 수 있단 말인가?! 이걸 이렇게 간단히!”


“이런 것을 사용하면 지난번에 생각했던 것들을 공식으로 만들 수 있잖아!”


그들은 급한 눈초리로 책의 내용을 일일이 살펴봤다.


자신들이 알지 못했던 개념들이 저 책 안에 담겨져 있었다.


분위기는 그야말로 활화산처럼 타오르기 시작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이들은 책을 들고서 티치아노에게 질문을 퍼붓기 시작했다.


“형제여! 이 방정식이라는 걸 나에게 알려주게!”


“형제여! 이 기호들은 어떻게 생각한 건가?!”


“형제여! 이 ‘0’ 이라는 숫자를 설명해 줄 수 있겠나?”


“형제여···!”


“형제여···!”


마치 폭동이라도 일으키듯 티치아노에게 연신 질문이 쏟아졌다.


티치아노는 즐거운 표정으로 그 질문들을 하나씩 대답해줬다.


“방정식이라는 건···.”


“이 ‘+’라는 기호는 더하다는 의미일세. 나머지 ‘-’, ‘×’, ‘÷’는 말이지···.”


그야말로 활기가 넘쳐 흘렀다.


허나 티치아노의 발표는 이제 시작이었다.


다음은 루키우스와 함께 여러 가지 농법을 연구하던 오로시우스 사제였다.


“형제들이여. 저는 주님이 창조하신 만물의 법칙을 우리 인간들에게 더 유용하게 밝히는 방법을 설명하고자 왔습니다. 루키우스. 그분들에게 내 책을 나눠드리게.”


루키우스는 또 다시 수레에 담긴 책들을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에게 나눠줬다.


“책을 펼치십시오. 그 책 안엔 제가 주장하는 바가 있습니다. 그건 바로 과학적 방법론입니다.”


오로시우스의 입에서 과학적 방법론에 대한 내용들이 줄줄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자신이 이 과학적 방법론으로 어떻게 농법을 개선했는지를 설파했다.


이 자리에 앉아있는 사람들은 입을 꾹 닫으며 그 설명 하나하나를 귀담아 듣기 위해 집중했다.


그들은 전율했다.


자신들이 듣고 있는 이 내용이 세상을 얼마나 바꿀 수 있는지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걸 한 단어로 정의하자면 ‘혁명’ 일 것이다.


루키우스가 씨앗과 물을 주고, 티치아노와 오로시우스는 씨앗에 비료와 정성을 더해 살을 붙이며 내용을 만들어냈다.


결국 이 셋의 노력이 이곳 로마에서 과학 혁명을 불러 일으켰다.


지금으로부터 무려 1200년 뒤에야 발표될 내용이 여기서 튀어나왔고, 이 현장에 있는 성직자들은 충격에 휩싸였다.


작가의말

이 당시 기독교가 과학에 대한 입장을 설명하자면 사람마다 달랐다고 대답할 수 있습니다.


여기 작품에서 한번 등장했던 히포 레기우스의 주교 아우구스티누스는 <창세기의 문자적 해석>에서 옛날에 밝혀낸 과학적 지식을 성경과 맞지 않는다고 우기다간 사람들에게 비웃음을 당한다는 입장을 견지한 바 있습니다.


반면 전전대 황제 테오도시우스 대제의 경우는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과 그걸 이어받은 에피스쿠스 학파, 그외 옛 그리스-로마 신화에 대해서 기독교를 거스르는 이교의 산물이라고 보고, 그것들을 전부 불살랐습니다.


옛 그리스 로마 신화의 종교 시설이 기독교의 교회, 성당이 된 건 이때부터였죠.


흔히 중세 기독교가 과학에 적대적이라는 시각은 이런 테오도시우스 대제의 행동에서 비롯됩니다.


설명이 길었습니다.


이 글을 읽어주신 모든 분들은 복받으실 것입니다.


그리고 댓글과 추천은 작가에게 큰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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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48

  • 작성자
    Lv.46 IRI
    작성일
    24.09.07 06:09
    No. 31

    잘 보고 갑니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82 볼트맨형님
    작성일
    24.09.07 07:58
    No. 32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7 g9******..
    작성일
    24.09.07 06:51
    No. 33

    교회,성당이 과확쪽을 어느정도 지원해 주기도 했는데 아비뇽 유수,흑사병 등등 큰 이벤트 터지고 잘 안하게 됨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82 볼트맨형님
    작성일
    24.09.07 07:59
    No. 34

    아비뇽 유수 이후론 여유가 없으니까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46 노스아스터
    작성일
    24.09.07 08:03
    No. 35

    서로마제국이 무너지고나서 콜로세움같은 고대로마의 크고 아름다운 건축물과 많은 구조물(예시:수도교)이 무지한(정확히는 잊혀져서...) 이들이 잘 가공된 석재로 재활용했죠...
    건축물인 유적과 유물은 잊혀진다면, 가까이에 사는 사람이 가장 무서운 적으로 변했고요(잘 가공된 석재를 당연히 재활용 한다!)

    수도원은 도리어 잊혀지는 지식과 유적을 보존하려고 했고요. 수도원에서 수사들이 사용하기 위한 목욕탕이 있었던걸 보면 수도교같은거의 중요성을 모를수가 없어서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82 볼트맨형님
    작성일
    24.09.07 08:06
    No. 36

    예. 교회가 그 부분에서 큰 역할을 했죠.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46 노스아스터
    작성일
    24.09.07 08:06
    No. 37

    인간의 기억력은 생각보다 수명이 짧아서, 금나라가 몽골한테 멸망한 시점에서 금나라의 지식인이 금나라에 대한 기억이 잊혀지는걸 두려워하고,
    어떻게든 금나라의 사료를 최대한 지키면서(다행히도 가치를 알아보고 지켜준 몽골제국의 장군도 있었고) 자신이 사명을 금나라의 역사가 잊혀지지 않은걸로 정한 금나라의 유명한 시인도 있었죠.
    제가 말한 금나라의 식자이자 시인이 어떻게든 금나라의 역사를 복원하면서 쓴 책의 내용이, 원나라에서 금나라의 역사서를 만들때 복사붙이기 수준으로 참고해서 금나라의 역사를 지킨다는 사명을 지켰고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82 볼트맨형님
    작성일
    24.09.07 08:07
    No. 38

    이래서 책이 중요한 이유죠.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73 벚꽃고양이
    작성일
    24.09.07 12:02
    No. 39

    로마때 기술이나 문화생각해보면 ㄹㅇ 중세는 잃어버린 천년 ㄷㄷ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82 볼트맨형님
    작성일
    24.09.07 12:02
    No. 40

    근대 유럽인들이 괜히 중세를 혐오한 게 아니죠.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Personacon 양마루
    작성일
    24.09.07 16:22
    No. 41
  • 답글
    작성자
    Lv.82 볼트맨형님
    작성일
    24.09.07 16:23
    No. 42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36 초아재
    작성일
    24.09.07 21:22
    No. 43

    태클인지 모르게써습니다만, 당시 기후 연구 자료를 보면 5세기에 지중해성 기후를 유지하는 곳은 북아프리카가 유일합니다. 다른곳 다 대륙성기후로 바뀌었어요.

    그래서 로마 말기부터 의식주 문화 전반에서 로마식에서 게르만식으로 전환되어 갔습니다.
    포도농사를 조지니 맥주를 마셔야 했고, 올리브 농사를 조지니 버터를 발라먹어야 했습니다. 로마식 밀농사도 ㅈ되는지라 게르만족들이 북방에서 가져온 호밀을 재배했지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82 볼트맨형님
    작성일
    24.09.07 21:24
    No. 44

    그때 당시만 그런 건가요? 아니면 그때 이후로 계속 대륙성 기후로 바뀐 건가요?

    기후가 바뀌었다는 건 따로 들은 적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의식주가 게르만 식으로 바뀌어가고 있다는 말은 공감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76 비호(肥虎)
    작성일
    24.09.10 02:26
    No. 45

    너무 위험한거 같은데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82 볼트맨형님
    작성일
    24.09.10 08:11
    No. 46

    어떤 점이 위험한지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ㅎㅎㅎㅎ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1 n2******..
    작성일
    24.09.11 12:28
    No. 47

    이 시기 교황은 현대 혹은 중세 시절 수준의 권위를 갖지는 못했죠. 그저 로마 주교에 불과했을 뿐. 물론 기독교 5대교관구이며 나름 수위권이라는 것도 있긴 합니다만 그래봤자 로마황제 아래에 있는 대주교에 불과했죠. 서로마가 붕괴하고 로마를 지키고 유지하는 과정에서 로마주교는 교황이 되었죠.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82 볼트맨형님
    작성일
    24.09.11 12:52
    No. 48

    5대 교관구 시절에도 특별한 지위를 유지했지만 중세 시절의 권위까지는 아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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