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명문! 사립 낙원교도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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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용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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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과 소장의 데이트

DUMMY

“소장님은 현장직도 아니시잖아요.”

“영아. 누가 그래? 소장은 현장에 못 나간다는 법이라도 있어?”


“위험하기도 하고, 얼굴이 알려지면 좋지 않죠. 저는 사실 수료식에 오시는 것도 불안했다고요.”

“유령이 있는데 뭔 걱정? 난 전혀 두렵지 않은데. 영이 네가 지켜주면 되잖아.”


“제가 소장님께 항상 붙어있을 수는 없잖아요.”

“그게 문제라면 해결책은 간단하네? 항상 붙어있으면 되잖아.”


“소장님!”

“아이 알겠어. 농담도 못 하겠네.”


휴··· 다행이다. 농담이었구나.

진짜로 곤란할 뻔 했다.



그러나 더 거대한 곤란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럼 임무 말고, 데이트하자.”

“...예?”


차라리 소장님이랑 임무를 하는 편이 더 낫겠다 싶을 정도였다.

렉스와 오토, 코치가 나를 눈빛으로 뚫어 죽일듯이 노려봤으니까.




***


··· 내가 여기서 왜 이러고 있을까.

날씨는 쌀쌀해져 가는데도 땀이 비오듯 흐른다.


“영아. 좀 더 팍팍 넣어. 그리고 더 빠르게는 못 하겠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앗! 지금 반항하는 거야? 얼굴에 튀었잖아! 빨리 닦아.”

“죄송합니다. 처음이라서요.”


“진짜 처음이야? 아니, 처음이라도 그렇지. 다른 건 다 잘 하면서 왜 이래?”

“밥이라도 먹고 하면 안 될까요? 아으··· 허리야.”


“밥값을 해야 밥을 주지! 다 끝내기 전까지는 안 돼. 체력 관리 잘 하고 있는 거 맞아?”

“소장님은 이틀 밤 새고 오신 것 맞아요···? 왜 그렇게 체력이 좋으세요?”


··· 이게 무슨 데이트야!


데이트에 대해서 잘은 모르지만, 한 가지는 알겠다.

이것은 데이트가 아니다.


노동이지.



“소장님. 이럴 거면 다같이 오는 편이 좋지 않았을까요?”

“어머, 무슨 소리야? 데이트 몰라, 데이트?”


“데이트에 대해 모르는 건 소장님 같은데요.”

“아··· 알아! 성인 남녀가 함께 즐거운 시간 보내는 거!”


“사람들한테 물어 볼까요? 보육원에서 김장하는 게 데이트인지?”

“... 딱히 다른 취미가 없는데 어떡해. 영아, 너는 재미 없어?”


반칙이란 반칙은 다 하는구만.

그런 눈빛으로 바라보면 어떻게 이실직고를 합니까.


“하다 보니 요령도 생기고··· 보람차긴 하네요.”

“그치? 지금은 힘들어도, 또 이따가 애들 먹는 모습 보면 중독된다니까. 조금만 더 참자.”


씁··· 그래. 나는 이거면 됐다.

소장님 웃는 얼굴 볼 수 있으면 됐지.

지옥불 용암 걷기를 하든, 가시밭길에서 앞구르기 뒷구르기를 하든.


“영아. 김칫소 아끼지 말고 팍팍 넣으라니까!”

“이렇게까지 넣으면 애들한텐 너무 맵지 않아요?”


“... 그런가? 아냐! 늘 맛있다고, 잘 먹었다고 해 주는걸.”


당연히 그렇겠지.

누가 감히 소장님 면전에 대고 싫은 티를 내겠어.


“소장님이 한 번 드셔 보세요. 아 하세요.”


소장님은 새빨간 배추김치를 먹곤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많이 매운가? 눈가가 촉촉해지고 콧잔등엔 이슬까지 송골송골 맺혔다.


“아··· 애들이 밥을 많이 먹는 이유가 있었네···. 양념은 조금만 넣자.”


은근히 허당이라니까.


그런데 이걸 언제 다 하냐.

200포기는 넘게 남았겠다.



···


“드디어 끝! 고생했어, 영아.”

“소장님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나저나 어떻게 김장이 처음일 수가 있어? 한국인 맞아?”

“요즘은 거의 사먹지 않나요?”


“그래도 손맛이란 게 있잖아.”

“그렇긴 해요. 정성 무시 못하죠. 그래서 말인데 몇 포기 챙겨도 될까요?”


“아, ‘유령 회사’ 사람들 주게?”

“예. 소장님이 담근 김치라고 하면 환장할 듯 싶어서요.”


“에이, 내가 뭐라고···. 아무튼 알겠어. 영이 네가 결국에는 나보다 더 많이 했으니까. 참, 뭐든 빨리빨리 배운단 말이야.”

“소장님 덕분에 새로운 경험들을 많이 하네요.”


“참! 많이 배고프겠다. 어서 가서 먹자.”


··· 소장님은 땀이 흐르고 양념이 묻어도 멋있으시구나.



“얘들아, 오랜만이야!”


“와! 수정 누나다!”

“언니, 요즘 많이 바빴어?”


“응··· 일이 줄지를 않네.”


그러게··· 소장님 일이 좀 줄어야 될텐데.

어디서들 그렇게 범죄자 새끼들이 꾸역꾸역 튀어나오는지 원.


“직장 상사가 누나 괴롭혀요?”


너희 누나는 상사가 없단다.

본인이 대가리고 사장이거든.


“사장님이 언니 막 야근 시키고 그래요? 제가 혼내 줄까요?”


용감한 꼬마로구나. 그런데 어떡하니.

혼내려면 너희 언니를 혼내야겠는데?

휴무일에 순진한 직원 꼬셔서 튼실한 고랭지 배추 500 포기 김장 담그게 하는 악덕 사장이니까.


“아하하··· 얘들아. 어른들 일은 너희들이 신경쓸 거 없어. 맛있는 수육 보쌈이나 먹자.”

“와아아아아! 그런데 누나... 이번에도 매콤해요? ‘속이 꽉 찬’ 김치에요?”


소장님. 감지하셨습니까?

겉으로만 씩씩한 아이가 내비치는 이 미묘한 두려움을.


소장님은 웃음을 참으며 눈을 질끈 감았다.


“아쉽지만 이번엔 아니야. 여기 있는 이 형이 소를 조금만 넣자고 했거든.”


“아이고! 너무 아쉽다!”

“그런데··· 오빠가 어디 있어요?”


아차! 나 여기 있다.


“우와! 갑자기 나타났어! 형! 언제부터 거기 있었어요?”

“아저씨는 누구에요?”


“아저씨는 너희 언니의 부하란다.”


“부하요? 형은 시키면 뭐든지 하는 꼬붕이에요?”

“언니보다 나이 많은 것 같은데 왜 부하에요?”


“맞아. 시키면 뭐든지 한단다. 꼬붕 맞고, 너희 언니가 너무 대단해서 그래. 나보다 나이 많은 부하들도 수두룩 빽빽이란다.”


“형! 힘 세요? 저랑 팔씨름 할래요?”

“언니. 이 사람 혹시 남자친구는 아니죠? 부하 맞죠?”


배고파. 제발 밥 좀 먹고 하자, 이 귀여운 녀석들아.



여러모로 곤란한 와중에 보육원 원장님이 나타나 우릴 구원하셨다.


“얘들아.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을 막 내뱉으면 안 된다고 했지?”


“예. 원장님.”

“네. 원장님.”


오오. 카리스마 장난 아니다.

부드럽게 말하는데도 겁나 무서워.


“아유, 수정아. 고생 많았어. 우리가 돕겠다니까 하여간 예전부터 고집은.”


그런데 또 활짝 웃으니까 엄청 온화해 보였다.

··· 어딘가 소장님이 원장님을 닮은 구석이 있는 듯도 하고?


“다른 일 바쁘신데 뭘요. 저희가 도우러 온 거니까 저희가 해야죠.”

“어여 먹자. 조리실 여사님이 너 간만에 왔다고 신경 많이 쓰셨대.”


원장님은 가벼운 손짓만으로 시끄러운 애들을 물리고 쾌적한 분위기를 조성해 주셨다.


상차림은 간단하면서도 기본에 충실했다.

메밀 막국수랑 알배추, 얇게 썬 오겹살 수육.


거기에 양념 가득 김치.

이게 애들 먹기엔 맵겠지만 어른한텐 딱이거든.

수육에는 이런 실비김치 스타일이 최고지.


알배추 위에 수육 얹고 막국수랑 김치 올려서 딱 먹으려는데,


“수정이 남자친구 분이세요?”


제발, 원장님! 밥 좀 먹고 합시다!

그렇게 머릿속에 떠오른 거 막 말씀하셔도 돼요?


“아··· 저기···. 부하 직원입니다.”

“흐음··· 아.”


원장님은 고개 숙여 손으로 입을 가리고 속삭였다.


“유령?”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혹시나 했는데 원장님은 알고 계시는구나···.

소장님의 직업이 무엇인지, 내가 누군지.


“맞군요. 그런데 왜, 떳떳하지 못한 사람처럼 굴어요?”


그러는 원장님은 왜 비밀 얘기 하듯이 속삭이시는데요.


“좀··· 그렇잖아요. 당당하게 나설 수 있는 직업은 아니니까요.”

“그런가요? 의도도 좋고 결과도 좋은데, 수단이 적법하지 못하다는 이유만으로?”


“예. 정확히 그런 이유입니다.”

“... 수정이가 좋아하는 이유를 알겠네요.”


뭐··· 뭐라고 하셨습니까?


소장님은 소리를 질렀다.


“원장님!”

“아니 뭐, 이성적으로가 아니라, 철학적으로 둘이 잘 맞다는 거지. 왜 화를 내고 그래?”


소장님이 원장님 귀에 대고 필사적으로 뭐라고 속삭이니까,


“뭐, 비밀 얘기였다고? 수정아. 너 소녀야? 왜 아직도 그렇게 애처럼 굴어.”


소장님은 얼굴이 새빨개져서는 원장님을 퍽퍽 때렸다.


“아야. 아야. 알겠어. 방해 안 할 테니까 둘이 좋은 시간 보내. 저기, 만나서 반가웠어요. 다음에 또 와요!”



원장님이 떠나자 소장님은 씩씩거리며 자리에 앉았다.


“원장님이 장난치신 거야.”

“알아요. 재밌는 분이시네요.”


나는 드디어 보쌈을 한 입 먹었다.


“와···. 소장님. 인생 손해 본 기분이네요.”

“왜?”


“이 맛을 이제야 알다니···. 내년에도 꼭 김장 담그러 와요. 다음에는 엄청 빨리 끝낼 수 있어요.”

“그래! 그러자. 약속이야!”


소장님은 보육원에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코스모스처럼 웃으셨다.



···


오늘 하루는 땀방울로 시작해서 웃음으로 끝났다.

그러니까··· 데이트가 맞나?


데이트라기엔 어째 허리도 아프고 어깨도 아픈데, 그래도 보람찼다.

봉사도 김장도 처음이었지만 즐거웠다.

다음에 또 해야겠다.


이런 보람을 나만 알 수는 없지.

언젠가 회사 사람들 데리고도 와야겠다.


렉스 형이 배추 나르고, 오토 형이 양념 묻히고.

코치는 시끄러운 애들 놀아 주면 되겠네.




***


수정이가 남자를 데려왔다.

존재감이 희미한 걸로 봐서 그 지긋지긋하게 들었던 유령이란 놈 같은데.

어쩐지 곱게 보이지만은 않았다.


하루종일 커튼 너머로 두 눈 크게 뜨고 염탐했다.

네깟 놈이 가슴으로 낳아 기른 수정이를 홀랑 채가게 둘 수야 없지.


뭐···? 김장을 처음 해 봤다고?

너 마이너스 50점.


수정이 얼굴에 양념을 튀게 해?

마이너스 100점.


흠. 그래도 김장 솜씨가 금방금방 느는군.

플러스 5점.


어··· 어! 저 녀석이 배운 지 얼마나 됐다고 수정이에게 김칫소를 덜 넣으라고 말한다!


고맙다. 고마워 이 자식아!

너무 짜고 맵다고 솔직히 말할 수도 없고, 버릴 수도 없고.


우리 원 아이들은 이수정 김치로 인내심을 단련하는 수준이었어!

양은 또 얼마나 많이 해 놓는지 1년 안에 다 먹기가 아주 힘들었다고.


너 플러스 200점!


···


솔직히 끝까지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저 녀석이 나쁜 녀석이라서는 아닐 거다.

언젠가 수정이도 둥지를 떠나야 할 테니까.

그게 아쉬워서지, 뭐.


수정이가 저렇게 자주 많이 크게 활짝 웃는 건 처음 봤다.

항상 ‘웃음을 잃어버린 아이’처럼 살았으니···.


하이고, 저기 마당에 심어놓은 코스모스처럼도 웃는구나.

그래. 그거면 됐지 뭐.


인생, 가는 길 힘들어도 말이다.

같이 고생하고 가끔 함께 웃을 사람 있으면 된 거 아니겠냐.


수정아.

하얀 코스모스의 꽃말은 ‘은총’이란다.

세상 업보는 네가 다 짊어지더라도··· 사람들이 언젠가는 알아줄 게다.

네가 했던 일들이 단순한 화풀이가 아닌, 세상에 베푼 은총임을.


그리고 수정아.

빠알간 코스모스의 꽃말은 ‘사랑’이야.

바쁘고 힘들어 괴롭고, 세상이 너를 등져 외롭더라도 잊지 말렴.

너를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네가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그래. 그거면 된 게다.




***

대한민국 XX대 총선.


“단군 이래 최악의 범죄 조직, 낙원을 정치 깡패처럼 부리는 정의철! 현혹되지 마십시오, 시민 여러분! 현명하게 한 표 행사하십시오! 공정하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의 미래에 낙원은 방해물일 뿐입니다! 현명한 한 표! 기호 1번 정한표! 꼭 기억해 주십시오!”


“안녕하십니까. 무소속, 기호 6번 정의철입니다. 저도 낙원이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수정 소장이 10분 토론 나와서 그랬거든요? 대한민국 사법 체계가 공정하고 정의로워진다면 교도소 문 닫겠다고요. 제가 하겠습니다! 교도소로서의 낙원을 없애고! 이 대한민국을 낙원으로 만들겠습니다! 공정하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위하여! 기호 6번, 정의철입니다!”


···


정의철은 여당 의원을 꺾고 86.4%라는 압도적인 득표율로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국민 여러분, 다시 한 번 저를 믿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는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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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필요악 24.09.04 11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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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사형수(4) 24.08.29 10 0 11쪽
44 사형수(3) 24.08.28 9 0 11쪽
43 사형수(2) 24.08.27 12 1 11쪽
42 사형수(1) 24.08.26 11 0 11쪽
41 단절과 이어짐 24.08.25 13 0 11쪽
» 유영과 소장의 데이트 24.08.24 14 0 12쪽
39 층간소음 보복 임무(3) 24.08.23 16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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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걔 안 죽었는데요? 24.08.20 16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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